항목 ID | GC028A010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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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해숙 |
효는 대표적인 유가적 윤리관이다. 그리고 이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시대 이래 지금까지 시대를 초월하고 지역을 초월하여 다양한 이야기로 전승되며 민중들에게 중요한 삶의 가치관과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효에 대한 가치 추구는 특정 양반 계급이나 지역에 제한되지 않고 민족적 이념으로 승화되어 있는데, 그래서도 효와 관련된 이야기는 전국에 걸쳐 있고, 양적으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효감천 이야기]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근처에는 조선시대 효자로 이름난 오준(吳浚)[1444~1494]과 관련하여 유명한 효감천(孝感泉)이 있다. 개의 형국을 하고 있는 구산자락인 신림면 외화리 산39번지에 있는 효감천은 1980년 3월 8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43호로 지정되었다. 이 샘은 조선 전기인 1473년(성종 4) 오준의 지극한 효행에 하늘이 감동하여 내려 준 샘이라 하여 효감천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효감천 유래에 관해 문헌에 기록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오준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는데, 어머니의 생명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서 수혈하여 생명을 연명하게 하고, 종기가 나자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어 병을 낫게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자 취령산 아래에 장사를 지내고 여막을 지어 시묘를 살았는데, 이러한 효성에 감동한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다 주기도 해서 제물로 사용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근처에 샘이 없어 오준이 10여 리 떨어진 수산에서 물을 길어와 제수로 사용하고 있던 어느 날, 하늘이 감동했는지 번개와 천둥이 치더니 여막 아래 물이 솟아났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흥덕현감이 샘가에 돌을 쌓고 비를 세워 주었다고 한다. 이후 오준의 후손들이 1748년(영조 24)에 창효사를 세우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러한 오준의 효성스런 이야기는 이 일대에서는 유명한 이야기다. 그러나 가평마을 차순임[1927년생] 씨가 전하는 이야기는 문헌에 기록된 것과는 달리 일부가 생략되거나 변이되어 있다. 구연자의 상상이 첨가된 것이다. 내용인즉,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를 살던 효자가 매일 방장산에 있는 절까지 가서 청수를 떠 가지고 와 저녁이면 그 청수를 어머니께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산신령인 호랑이가 나타나 효자 오씨를 등에 업고 방장산까지 데려다 주었다. 오씨의 효성에 감복하여 하늘이 알고 산신령이 알아, 그를 지켜 주고 보호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문헌의 기록과 구전의 내용이 약간 다를지라도 오준이 효를 다했다는 점은 같다. 이야기가 입을 통해 전하다 보니 문헌의 내용을 온전히 전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 효를 다하면 마을 사람들이 알고 호랑이가 알며, 심지어 초자연적인 존재인 하늘까지 감동시켜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고금 이래 백행(百行)의 근본인 효는 전통적인 윤리 관념으로 정착되어, 그에 관한 이야기는 듣는 이들에게 또 다른 감동과 재미를 선사해 준다. 이것이 이야기의 묘미인 것이다.
차순임 씨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다.
“산 밖에 나가면 정문덕이 있어. 오가들이 산 유적도 있고. 거기는 아들이 하도 효자라 시묘를 살았어. 엄마가. 효감천이라고. 근디 그 사람이 3년을 시묘를 살면서 방장산, 시방 절이 있는디 거가서 물을 떠다가 저녁이면 지 어매한테 청수를 올렸다네. 청수를.
올린게로 산신령이 나와서 호랭이가 나타나서 낭중에는[나중에는] 딱 가로막고 엎져서[엎드려서] 그런게로, ‘나를 잡아먹을려고 그러는 것이냐?’ 한 게로 호랭이가 고개를 살살 흔들고. ‘그믄 니가 어쩌라고 그러느냐?’ 한 게로 지 등거리를 입으로 가리키면서 타라고 그러드랴. 그래서 그 타고댕기면서 물 질러다가 거시기다 지 어매 묘에다가 떠 놨어. 떠 놓은 게로 하늘이 알고 뇌성벽락을 쳐서. 그래서 효감천이라 새암을 팠네.
그런디 옛날에는 거 정월에 봄에 거시기가 나와서 연꽃이 올라와 갖고 모심을 때는 물이 몇 질이 되야도 물이 동동 떠 있더래. 지금은 연꽃이 없어졌어. 거기 오씨 선산에 산지기도 있어. 효감천 문 앞에. 그 물이 생전 다라지지[마르지] 않고 그대로 있어. 학생들이 시방도 그곳으로 소풍을 와.”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