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C01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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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숙 |
[3대에 걸친 지극한 효행]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은 경주최씨 최문세(崔文稅)[1610~?]가 말을 타고 들어와서 이룬 마을이라고 알려져 있다. 최문세는 고운 최치원의 24세손으로, 1655년 장성군 황룡면에서 살다가 마래마을로 들어와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현재까지 12대를 이어오고 있다.
마래마을 삼거리에 있는 삼효각은 경주최씨 집안의 3대째 이어 온 효행을 기리고 널리 알리어 후세 사람들이 이를 본받도록 하기 위해 1916년 후손들이 건립한 것이다. 삼효각 안에는 삼효비가 세워져 있는데, 경주최씨 27세손 농암공(農庵公) 최정(崔汀)과 28세손 단암공(丹庵公) 최처운(崔處雲), 29세손 두은공(斗隱公) 최봉지(崔鳳之)가 비석의 주인공들이다. 비문은 행주(幸州) 기우만(奇宇萬)이 지었고, 글씨는 김해(金海) 김용훈(金容勛)이 썼다. 삼효비에 있는 세 분을 기리는 제사는 음력으로 3월 15일 경주최씨 대문중에서 주관하여 지낸다.
농암공은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3일이나 연명하게 했는데, 그 효심이 널리 알려져 유림의 추천으로 상을 받았다고 한다. 농암공의 아들인 단암공은 아버지를 본받아 효심이 지극했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를 살았다고 한다. 단암공의 아들인 두은공 역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효행이 극진했다고 한다.
[문화재 등록은 후손들의 일]
경주최씨 삼효각에 대한 마래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현재 경주최씨 삼효각은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에 속해 있다. 도로를 중심으로 고창군과 영광군이 나뉘게 됐는데, 하필이면 도로 건너편에 있는 삼효각이 영광군으로 편입된 것이다. 마래마을 경주최씨들은 경주최씨 삼효각을 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면서 고창군이 아니라 영광군에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2008년부터 경주최씨 삼효각을 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 다녔던 최재언[1961년생] 씨는 한 뭉치나 되는 자료를 내보이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아직도 못하고 있어요. 어려움도 많고요. 행정구역이 개편되고 도로가 생기면서 마래마을이 두 조각으로 분리됐습니다. 삼효각도 그렇고, 큰샘도 그렇고, 우리 마을 자랑거리들이 모두 전남 영광군에 편입됐습니다. 그래도 문화재 등록은 우리가 해야죠. 후손들이 해야 할 일이잖아요. 그래서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비문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원광대에도 문의하고, 중앙박물관에도 자료가 있다고 하여 알아보고 있습니다.”
마래마을은 4개의 자연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현재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살고 있는 마을회관 근처는 ‘새터’이며, 그 뒤쪽 두암리 쪽이 ‘번등’이다. 마래주유소 뒤편은 영광에 속해 있어 ‘영광똥’이라고 하고, 삼효각 건너편은 옛날에 큰 마을이 있어서 ‘큰물’이라고 한다. 삼효각은 그중에서 ‘영광똥’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행정구역이야 어찌됐든 마을 주민들은 ‘영광똥’까지 마래마을로 인식하고 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 역시 스스로를 마래마을 사람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삼효각 관리는 여전히 마래마을 경주최씨들이 맡아서 하고 있다. 영광군에서 하든 고창군에서 하든 문화재 등록 역시 경주최씨들의 과제다. 그들 또한 자신들의 조상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인식하고 있다. 자신들의 할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조상을 섬기는 마음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