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혼례 때 신부를 싣고 가는 가마꾼들이 부른 민요. 「가마소리」는 혼례 때 신부를 신랑의 집으로 이동시키는 수단인 가마를 메고 행진하면서 부르는 소리다. 전통사회에는 차량이 없었으므로 혼례 때 가마로 10~20리 이상 먼 거리를 움직여야 했고, 심한 경우에는 100리 넘게 이동해야 했다. 이러한 일은 가마꾼들에게 중노동이었고, 발을 맞추고...
-
충청남도 공주시 중학동 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바위에 관련된 충견 이야기. 「개바위 전설」은 자기를 돌봐 준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다 죽은 개의 넋이 소생해서 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불을 꺼서 주인 살린 개」, 「주인의 죽음을 알린 개」 등 ‘주인을 구한 짐승’이라는 유형의 민담과 비슷한 내용을 지니고 있다. 지금도 개바위에 고사를 지내는 사람이 많은데 여...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서 전승되고 있는 거북바위의 유래 이야기. 「거북바위 전설」은 우금고개를 이인 방면으로 넘어가노라면, 길옆 좌측에 화석이 된 두 거북이에게 깃든 이야기이다. ‘거북이 천년초를 얻기 위해 우금고개 뒷산에 다녀갔다’는 말에는 공주가 천년 왕국을 누릴 수 있는 길지(吉地)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동해 용궁인 신라와 서해 용궁인 백...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송학리에 전해오는 거북이가 찾은 명당 이야기. 「거북이 명당 유래」는 소주길흉론(所主吉凶論)에 관련한 응보 주제의 풍수전설이다. 소주길흉에 대한 전설은 공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상당히 수집되는데, 철저한 윤리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천편일률적인 권선징악으로 표현되어 왔다. 명당은 반드시 덕(德)과 선(善)을 쌓아야 차지할 수...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곰나루의 지명 이야기이자 인간과 동물의 결연 이야기. 「곰나루 전설」은 곰나루 지명을 구체적인 증거물로 제시하고 있는 지명 전설이자 인간과 곰이 결연하는 이물교혼담(異物交婚譚)이다. 공주시에서 서북쪽으로 십리 정도 가면, 공주를 싸고도는 금강 기슭에 곰나루라고 하는 나루터가 나온다. 이를 ‘고마나루터’, ‘웅진’이라...
-
1651년(효종 2) 김홍욱(金弘郁)[1602~1654]이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여 공주감영에서 머물며 지은 한시. 「공산십경시」는 작자의 문집인 『학주전집(鶴洲全集)』5에 전한다. 김홍욱이 42세 때 당시 국정의 중요 정책이었던 대동법을 시행함에 있어, 적임자로 발탁되어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자 공주에 머물면서 주위의 뛰어난 자연경관을 읊은 것이다. 모두 10수로서 그 제...
-
1872년 제작된 공주목의 지도.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양란을 겪은 조선 사회는 18세기 영조·정조 대에 이르러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각종 문물 제도가 정비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면서 중심 산업인 농업 부문의 생산력이 높아지고 이와 더불어 상품 유통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이 시기는 실학을 비롯한 학문뿐만 아니라 문학·예술 부분에서도 많은 성과들이 축적되기도 하였다....
-
1452년(문종 2)으로 추정되는 해에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공주를 유람하면서 지은 한시. 「공주십경시」는 작자의 문집인 『사가집(四佳集)』에 전한다. 작가가 젊어서 공주를 유람하였는데, 이 때 집현전 학자 이개(李塏)[1417~1456]를 만나 연회를 베풀 때 시를 수창한 바 있으며, 또 계룡산의 「가섭암중신기(迦葉菴重新記)」를 1452년에 지었다는 기...
-
1455년(세조 1) 전후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공주에 있는 연정(蓮亭)에서 지은 한시. 「공주연정」은 『사가집(四佳集)』4에 전한다. 서거정이 36세 전후 공주를 찾았을 때 마침 이개(李塏)[1417~1456]가 도착하여 함께 공주 객관의 정자인 연정에서 연회를 베풀며 시를 지어 유흥을 펼쳤다. 「공주연정」 역시 그 즈음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전해지는 공주 지역의 명승지를 노래한 민요. 각 고장에는 지명을 노래하는 민요들이 산재해 있다. 공주에는 「충청남도 창부 타령」과 충청남도 지명을 풀어 노래한 「호서가」, 공주의 명승을 노래한 「공주창부타령」(일명 「공주 타령」) 등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공주창부타령」은 2~4소절의 노랫말이 마을마다 다르게 산재해 있었는...
-
1371년 (공민왕 20)에 공주에 거주하던 이존오(李存吾)[1341~1371]가 지은 시조. 「구름이 무심탄 말이」는 시조집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한다. 이존오가 우정언의 직책에 있을 때, 공민왕의 신임을 등에 업고 국정을 전횡하며 풍속을 어지럽히는 신돈의 무리들을 탄핵하다가 장사(전라도 무장, 현 전라북도 고창) 감무로 좌천되었다. 뒤에 향리인 공주의 석탄(石灘...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대리 일대를 근거로 전해 내려오는 지명 이야기이자 백제의 패망 이야기. 「구린내전설」은 부여와 공주 등 옛 백제의 도읍 지역에 두루 광범하게 전해지고 있으며, 공주 지역에서는 하천과 관련된 유일한 전설이기도 하다. 1992년 공주문화원에서 간행한 『공주민속』에 실려 있는데, 본래 1973년에 임헌도가 집필한 『한국전설대관』에 게재된 것...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충남교향악단에서 출간한 음악 시디(CD). 백제문화권을 소재로 한 충청 지역 출신 시인들의 시를 바탕으로 한국작곡가협회 대전·충남지부 회원들이 작곡한 창작 가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1997년 공주문예회관에서 충남교향악단의 반주로(지휘 장준근), 소프라노 3명, 테너 2명, 바리톤 1명의 성악가들이 출연하여 공연을 하였고, 그 결과물을 「금강...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하신리에 전해지는 여인들만 있는 장소에서 부르던 부녀자들의 민요. 공주시 일원의 부녀자들 노래를 기능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베틀가·마전질소리 등의 일노래, 창부 타령이나 아리랑 등의 놀이소리, 시집살이 노래 등 한탄 섞인 일상의 노래로 나누어볼 수 있다. 「남매노래」는 이러한 소리 가운데 남자들이 듣는 곳에서는 좀처럼 부르지 않았던 부녀자...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남매탑의 조성 이야기. 「남매탑 전설」은 보은을 주제로 한 석탑조성 관련 유래담이다. 공주 지역의 보은 주제의 전설은 「노루목 전설」(우성면), 「비학실의 농부」(장기면) 등이 있다. 1992년에 공주시·공주문화원에서 간행한 『공주의 맥』과 역시 같은 해 공주문화원에서 간행한 『공주민속』에 실려 있다. 전자에는 수집...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월암리와 신영리에 전해지는 상례시 무덤을 지으며 부르던 노동요이자 의식요. 묘를 지을 때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다지는 일을 하면서 부르는 달구(달궁) 소리는, 공주시에서도 마을마다 형식과 노랫말이 약간 다르다. 의식요이면서도 일을 하는 현장에서 부르는 일노래라서, 선창자가 메김소리를 하고 달구질꾼들이 후렴을 하는 형태로 불린다. 노래의 속도에 따라...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대중리에 전해지는 부녀자들이 놀이판에서 흥겹게 부르던 민요. 담방구 타령은 전국적으로 널리 퍼진 노래다. 공주 지역의 「담방구타령」은 느리게 부르는 타령과 빠르게 부르는 자진 타령으로 나뉜다. 「담방구타령」은 1984년 1월 19일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대중리 한시랭이마을에서 박계홍, 황인덕에 의해 채록되었다. 노래는 이정희(여, 19...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었던 대통사(大通寺)를 짓게 된 유래 이야기. 「대통사 연기 전설」은 절의 건립 내력을 설명하는 이야기이다. 대통사는 526년(백제 성왕 4)에 창건된 사찰로 그 터가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의 봉황산에 남아 있다. 대통사에 대하여 『삼국유사』흥법조에는, “대통 원년, 즉 성왕 4년에 중국 양나라의 황제를 위해서 ‘대통사’라는 절을 창...
-
충청남도 공주시 중학동에 있는 도척이바위에 깃든 지명 이야기이자 악행 응징 이야기. 「도척이바위 전설」은 거지였던 도척이가 의원의 도움으로 부자가 되었으나 온갖 못된 짓을 하다가 바위로 변했다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흔히 몹시 악한 사람을 일러 ‘도척 같은 놈’이라고 말한다. 이는 옛날 중국 춘추시대에 나라 안을 휩쓸며 악한 짓을 한 유명한 도둑 도척에 비유하...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대중리에 전해 내려오는 돌고개에 깃든 지명 이야기이자 사랑 이야기. 「돌고개 전설」은 남녀간의 애절한 사랑을 담고 있는데, 공주 지역에서 이런 유형의 전설을 찾아보면 「각흘고개 전설」 등을 들 수 있다. 1992년에 공주시·공주문화원에서 간행한 『공주의 맥』에 실려 있다. 옛날 시랑공이라는 벼슬살이 하던 사람이 난리가 나서 이곳에 혼자...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대룡리에 전해오는 지명 이야기이자 못된 부자의 응징 이야기. 「두암리 전설」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다가 하늘의 벌을 받았다고 하는 응보 주제의 이야기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대룡리에는 ‘말바위’라고도 하고 ‘두암(斗岩)’이라고도 하는 바위가 있다. 1992년에 공주시·공주문화원에서 간행한 『공주의 맥』에 실려 있다. 아주 옛날 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의 부속 암자인 고왕암과 마명암 터에 전해지는 이야기. 「마명암 전설」은 고명암과 지금은 사라진 마명암 터에 대한 이야기로서 백제의 패망과 충복의 말을 다루고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에 전해지는 「엄대암 전설」 또한 백제 멸망에 관련된 전설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와 신원사의 승려들에게 널리 알려진...
-
일제강점기 이후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신흥리에 전해지는 부녀자들이 남편의 무능을 조롱하며 부르던 민요. 일제강점기 이후 새로운 음악이 보급되면서 공주 지역의 민요에도 세태를 반영하는 노래들이 도입되었다. 「며느리 노래」의 시작은 이러한 노래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른바 「아리랑 춘자야」와 유사하다. 노랫말은 부녀자들이 남편을 헐뜯는 기존의 「난봉질 소리」의 일부분으로 변하여 1960...
-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동 금강 주변의 미나리강에 얽힌 지명 이야기이자 사랑 이야기. 「미나리강 전설」은 금강변에서 관군과 동학군이 서로 싸우는 중 동학군을 돕다 억울하게 죽은 서자 김덕봉과 그를 사랑하는 노비 옥녀의 죽음에 관한 애닯은 이야기이다. 1992년 『공주의 맥』을 편찬하면서 현지 주민에게서 채록한 자료를 당시의 집필자가 재정리한 것이다. 한말 동학군이...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봉현리에 전래되는 상례소리.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봉현리는 충청남도 청양군과 경계에 있는 산골 마을로 굴티·묘재·사룡동·새울·무재 등 5개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봉현리에는 조선시대 공주 관아에서 육성한 「역담여 소리」가 전승됐으며, 「봉현 상례소리」라고 하여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었다. 역담...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추계리와 정안면 장원리에 전해지는 나무꾼들이 부른 아리랑. 공주시 유구읍·신풍면·정안면 등 차령산맥에 의지한 산골에서 나무꾼들이 많이 불렀다 해서 「나무꾼 타령」 또는 「나무꾼 아리랑」 등으로 일컬어진다. 아리랑의 한 종류로, 노래를 할 때 흥에 따라 속도와 가락이 변하는 형식을 잘 보여준다. 처음 노래를 시작할 때는 아리랑으로 생각하기...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하신리에 전해지는 처녀와 여인네들의 금기사항을 총각들이 비아냥거리듯 부르던 민요. 과거 충청남도 공주시에서는 여인들이 할 수 없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정해져 있었다. 예를 들면 처녀는 산속에 들어가 나무를 해 오는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여인네는 나이 불문하고 논에 들어가 하는 일을 하지 못하며 집안에서도 도끼질을 하지 않았다. 이 노래는 공...
-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의 수원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2년 공주문화원에서 『공주의 맥』을 출판하기 위해 필자가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한 것이다. 백제 때에 공주 월성산 아래에는 ‘수원사’라는 큰 절이 있었다. 어느 날 신라 진지왕 때 흥륜사(興輪寺)의 진자(眞慈)라는 승려가 수원사를 찾아오게 되었는데, 그는 평소에 부처님이 화랑으로 화신하여 세상을 제도해...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에 전해지는 부녀자들의 인생 한탄조 민요.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신세 타령이라는 이름이나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신세 타령조 노래들이 전한다. 이 노래는 크게 남정네들의 소리와 여인네들의 소리로 나뉘고 이는 또한 한탄조로 일관하는 소리와 놀이마당에서 부를 수 있도록 힘없이 시작하여 흥겹게 바뀌는 것으로 나뉘는데, 「어떤 사람은 팔...
-
충청남도 계룡면 유평리에서 영규대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73년 임헌도 교수가 갑사에 가는 도중 만난 구십 노인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을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갑사에 가는 도중 만난 구십 노인이다. 영규대사는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조실부모하여 외로운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어느 날 나뭇짐을...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서 영은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공주시 공산성내에 영은사라는 절이 있다. 임진왜란 때 산신령의 도움으로 왜적을 번번이 물리쳤다는 전설로 이 절에는 신령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로 영은사(靈隱寺)라 불렀다는 전설이다. 1956년 5월 7일 충청남도 공주시 중학동에서 임헌도 교수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서 오뉘바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63년 2월 10일 임헌도 교수가 공주시 중학동 184-7번지에서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최건구(남)이다. 300여 년 전 공주의 개울동리에 김의삼이란 사내와 김의숙이란 남매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무술에 뛰어나며 칼쓰기·말타기에 능숙하였다. 또한 이 마...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입석리에 전해지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놀이판에서 부르던 민요. 「외다리 가진 땅개비가」는 성인이 부르는 소리와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 두 가지가 있다.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는 발 고르기, 발 끼기, 한 커리 두 커리 등의 놀이에 반드시 필요한 노래였다. 이 놀이는 2인 이상이 발을 뻗어 서로 양발 사이로 엇갈리게 끼고 한 사람이 이 노래를...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욕설을 이용하여 흥을 키우면서 부른 민요. 공주시에는 15수의 욕타령이 있었으며 지금도 5수의 욕타령이 전한다. 욕타령은 굿거리장단으로 창부 타령과 흡사하게 부르는 것, 노랫가락과 유사한 노래, 각설이 타령 속에 포함된 욕타령 등이 있다. 이중 「욕질」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욕타령」은 창부 타령재로 부르는데, 흥을 위해서 고함치듯 소리...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구왕1리에서 용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공주시 계룡면 구왕1리 마을회관에 있는 느티나무 정자를 끼고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면 용산(龍山)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계룡산 자락의 마을로 경치가 수려해 반포의 신소로부터 상창소를 하창소로 이어지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예로부터 삼소지간이 마화구룡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던 곳이라...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전해지는 청소년들이 일상이나 놀이판에서 부르던 민요.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의 성인 민요 중에는 신세 타령조의 노래들이 많다. 이 노래는 청소년들이 가족을 모두 거창하게 표현하면서 자신을 돌팔이라 자탄하지만, 노래는 흥겹게 부르는 특징이 있다.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부르던 노래로 남녀 노래 2곡이 있다. 「우리 아버지 서...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서 이도 묘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62년 10월 5일 공주시 중학동에서 임헌도 교수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박윤교(남)이다. 공주시 신관동 시목에서 월송동으로 가는 길가에 이도산(李棹山)이 있다. 그 산위에 전의이씨(全義李氏) 시조인 이도(李棹)의 묘가 있다. 전하는 바에...
-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서 인절미와 도루메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인절미와 도루메기에 얽힌 유래담으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나 역사적인 사실과 관계되어 공주시 산성동에 전해 오는 임금의 피난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1967년 1월 7일 임헌도 교수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함. 제보자는 공주시 산성동의 박천일(남)이...
-
1764년(영조 40) 공주 출신인 김인겸이 일본을 다녀오고 지은 장편 기행가사. 「일동장유가」는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석장리 출신인 김인겸이 조엄(趙曮)을 정사로 하는 일본 통신사의 삼방서기(三房書記)로 수행하여 일본 에도(江戶, 오늘날 東京)까지 11개월 동안(1763. 8. 3~1764. 7. 8)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일본의 문물, 제도, 인물, 풍속 등을 8,...
-
충청남도 공주시 중학동에서 장군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59년 4월 1일 임헌도 교수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한 것이다. 제보자는 공주시 신풍면 대룡리 김평중(남)이다. 지금부터 약 1,500년 전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무너뜨리고 개로왕을 죽였다. 백제는 문주왕을 새 임금으로 모시고 수도를 지금의 공주로 옮겼...
-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에서 걸인들이 구걸할 때 부르던 민요. 공주 지역에는 10여 종의 「장타령」이 구전되어 왔으며, 걸인들이 아니라도 허튼(병신)춤을 추면서 「장타령」을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 「장타령」을 부르는 창법에 따라 분류하면, 보통의 장타령과 빠르게 부르는 장타령, 중얼거리듯 하는 장타령 등으로 구분된다. 「장타령」을 부르는 사람은 이 세 가지 유형을...
-
1377년(우왕 3) 정도전이 유배 생활을 마치고 옛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공주의 금강루에 올라 지은 한시. 「제공주금강루」는 작자의 문집인 『삼봉집(三峰集)』 및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 17, 공주조에 실려 있다. 정도전이 1375년(우왕 원년)에 친원정책을 반대하여 나주로 유배되었다가, 2년 후에 해배되어 상경하는 길에 금강루에 올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서 조왕골이라는 마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65년 5월 6일 임헌도 교수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 노경종(남)이다. 지금부터 300여 년 전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인조는 이괄의 난을 피하기 위하여 한양을 버리고 남쪽으로 피란을 떠났다. 인조는 공...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대중리에 전해지는 부녀자들의 창부 타령조 민요. 전통사회 공주에서 가장 많이 부른 민요는 청춘가, 창부 타령, 노랫가락, 아리랑 순이었다. 남녀 구분이 엄격하던 양반의 고장이라는 인상이 강했기 때문에 남녀가 같은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런데 창부 타령과 청춘가는 남녀가 함께 부르는 소리였을 만큼 생활 놀이판과 친숙하였던 노래에...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전해지는 부녀자들의 시집살이 노래. 부녀자들이 인생의 한스러움을 아주 느린 굿거리재로 부르던 노래다. 노랫말은 「진주 난봉가」와 유사하다. 공주 일원에 이런 종류의 노래가 없는 점으로 보아 진주 지방에서 시집온 여인이 부르고 이를 따라 부르면서 내용이 변형된 것이거나 해방 이후 유성기나 라디오를 통해 나온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지역적 특성...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사곡면·신풍면 일원에서 불리던 충청남도의 지명과 특색을 열거하며 공주 등을 노래한 민요. 「충청남도 창부 타령」은 단가인 「호서가」와 함께 충청남도를 노래한 대표적인 민요이다. 공주(금강), 부여(팔경), 논산(은진미륵), 보령(마애불), 서천·한산(세모시), 온양(온천), 천안(역전), 연기·조치원(역전), 대전(역전)을 돌아보고는 이...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우성면·신풍면·유구읍 등의 북부 산간 지역에서 불린 단가. 「취담」은 공주시 사곡면 일원에서 「단가」라는 제목으로 많이 불렸으며, 지금도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어서 원형대로 전승되고 있다. 취담이란 술에 취해 나누는 이야기이다. 당연히 진실을 이야기 하면서도 가벼이 할 수 있고, 싫은 이야기도 쉽게 할 수 있다. 「취담」...
-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에서 장이 서던 옛 조선시대 지명의 특색을 소재로 한 단가. 「호서가」는 조선시대의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의 주요 고을과 장이 서던 생활권 중 광범위한 고장을 포함하여 지은 노래로서 교육적 측면에서도 지역의 이름을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하기 위한 애향의 단가이다. 또한 「호서가」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지명으로 노래한 「호남가」와 함께...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불리던 결혼과 관련된 민요. 「혼인타령」은 각설이가 갑자기 혼례상을 차리고 혼례 올리는 과정을 묘사한 노래이다. 공주에는 경사스런 날에 부르는 민요가 여러 종류 전한다. 예를 든다면 「회갑상 차리는 소리」, 「혼례상 차리는 소리」, 「귀딩이 돌상 차리는 소리」 등이다. 공주시 유구읍 입동리 일원에서 많이 불린 「회갑상 차리는 소리」는 단...
-
1647년(인조 25) 신유가 공주 일원의 명승고적 가운데 10곳을 골라서 지은 한시. 「후공주십경시」는 작자의 문집인 『죽당집(竹堂集)』에 전한다. 신유가 38세 때 공산현감으로 부임하였는데, 이때 공주 일원의 명승고적 중 10곳을 택하여 시를 지었다. 후십경시(後十景詩)라 한 것은 2백 년 전에 서거정이 지은 「공주십경시」가 있기에 이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된...
-
1861년 간행된 충청남도 공주의 사찬 읍지. 『공산지(公山誌)』는 영조 대의 구읍지를 바탕으로 관찰사, 판관 등의 협조를 받아 공주 지역의 유력 향반이 보완하여 제작하였다. 편찬 작업에는 임정회(林挺會)·이익형(李翼亨)·오흠(吳欽)·노기웅(盧基雄) 등이 참여하였다. 『공산지』의 사본이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후대의 필사본 산질(散秩)인 『공산지』와 발췌본인 『...
-
1894년(고종 31)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전개된 동학농민전쟁을 기록한 고문헌. 『공산초비기(公山剿匪記)』는 내용상 공주 전투에 참여하였던 관군이 기록한 것으로 보이나, 저자 및 편찬 경위에 대해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공산초비기』는 1권 1책이며, 필사본이다. 가로는 25㎝이고, 세로는 35.5㎝이다. 『공산초비기』는 「이인지역(利仁之役)...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인 이규상의 문집. 기록이 없어 자세한 발간 경위는 알기 어려우며, 김복한(金福漢)의 문인으로 동문 후배인 전용욱(田溶彧)의 서문과 아들 이병문(李炳文)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국사시고(菊史詩稿)』는 상·하 2권 1책이며, 연인본(鉛印本)이다. 장정법은 선장본(線裝本)이다.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다. 반곽(半郭) 크기는 가로...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서 발행하는 일반 주간 신문. 신용희는 공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도 중부권의 발전과 금강 유역 지역민들의 생존권 확보와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고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총망라한 지역 언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2006년 5월 23일 금강뉴스창간위원회를 발족한데 이어 동년 6월 1일 『금강뉴스』를 창간하였다. 판형은 대판으로 12면을...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송래희의 문집. 송래희(宋來熙)[1791~1867]는 조선 후기 공주 관리를 역임했던 문신이자 학자이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7세손으로서,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학통을 이은 이직보(李直輔)의 문인이다. 25세에 진사가 되었으며 오랫동안 벼슬에 나가지 않다가 1835년(헌종 1) 45세에 선공감역으로 출사하였다....
-
1845년(헌종 11) 4월 은진송씨가 공주 지역을 유람하고 저술한 내방가사집. 내방가사는 주로 영남 지방 부녀자들에 의해 창작되어 출가하는 딸이나 조카딸에게 전승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내방가사의 영남편재설이라 한다. 그러나 기호지방이나 충청 및 호남에서도 일부 내방가사 자료가 발견되어 전국분포설이 제기되고 있다. 『금행일기(錦行日記)』는 영남과 관련 없는 충...
-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인 서정세의 문집. 서정세(徐廷世)[1887~1955]는 간재 전우(田愚)의 문인으로 수학 후, 서당을 설립하여 다수의 청장년과 문중인을 교습하여 지역의 문맹 퇴치에 공헌하였다. 호가 달재(達齋)이다. 아들 서홍석이 서정세의 원고를 정리하여 출간코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쳤는데, 서홍석의 아들 서연원(徐沇源)이 고희에 이...
-
충청남도 공주의 유학자이자 한의사인 노재광의 한시집. 『대원당시초(大元堂詩抄)』는 공주향교의 전교와 공주유도회장을 역임한 노재광(盧載光)의 회갑 기념 문집인 『대원당수연시집(大元堂壽筵詩集)』에 첨부된 한시집이다. 활자를 사용치 않고 문일건(文日乾)이 서판에 맞추어 각각의 시편들을 세필로 정리하였다. 1983년 노일선(盧一善)이 편집과 발행을 맡았으며, 공주에...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서 발행하는 일반 주간 신문. 『백제신문』은 백제문화권이었던 공주시, 청양군, 논산시, 부여군, 연기군, 조치원 지역의 소식을 보도하기 위하여 2007년 3월 10일 창간되었다. 구성은 뉴스, 정치·행정, 사회, 문화·교육, 오피니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정치·행정면에서는 공주·연기·부여 세 지역을 다루고 있다. 사회면에서는 더불어...
-
1959년에 간행된 공주 출신 문인 서병주의 문집. 서병주(徐丙周)[1866~1943]는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관료였다. 특히 『삼은유고』에는 ‘서문’에서조차도 저자의 생몰 연대와 사우 관계를 언급치 않아서, 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다른 문헌을 통해 저자의 생몰 연대를 재구하여 보면 위와 같다. 또 조선 말기의 유학자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가...
-
1970년부터 공주교육대학 석초 동인회 출신의 졸업생 중심으로 활동하던 시 중심의 동인지. 설립 동인은 윤석산, 이장희, 이관묵, 김명수, 전민, 안홍렬, 구재기 등이었으며, 1972년부터 공주 사범 출신인 라태주가 동참하고, 회원들이 모두 등단하면서 충남은 물론 전국적인 젊은 시인들의 동인회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동인은 아니었으나, 충남 문단의 원로격인 한성기 시인이 지도자 겸...
-
고려 후기 문신 이존오(李存吾)의 문집. 저자 이존오는 고려 후기 공민왕 때에 문과에 급제, 우정언이 되어 신돈의 횡포를 탄핵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장사감무(長沙監務)로 좌천되었으며, 공주 석탄(石灘)에 은거하다가 세상을 마쳤다. 사후 350년이 지난 1738년(영조 14) 후손들에 의해 문집이 간행되었다. 이것은 초간본이며, 본 『석탄유집』은 초간본을 증보한 중간본(重刊本)으로...
-
1965년에 저술된 공주 출신 문인 박영희의 문집. 박영희(朴永熹)[1903~1965]는 공주시 탄천면에서 참봉 박세현(朴世鉉)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상이 호협하고 언변이 유창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빼앗긴 것을 통분하게 여기어 국내는 물론 일본과 만주까지 유람하면서 우국지사와의 연대를 모색하였다. 광복 이후는 해공 신익희(申翼熙)·유석 조병옥(趙炳玉)·창랑...
-
1962년에 간행된 공주 출신 문인 박세현의 문집. 송암 박세현(朴世鉉)[1868~1935]의 사후 29년이 지나 아들 박영준이 유고를 수습하여, 창산(昌山)인 성구용(成九鏞)의 서문을 받아 대전에서 간행하였다. 『송암실기(松菴實紀)』는 상·하 2권 1책이며, 책의 크기는 세로 29.7㎝이고 가로 19.9㎝이다. 사주 쌍변에 반곽 세로 20.7㎝이고, 가로 1...
-
1936년에 초간되고 1998년에 중간(重刊)된 공주 출신 문인 최종화의 문집. 최종화(崔鍾和)[1859~1918]는 공주목 연기현 동리에서 태어났다. 1892년 33세 때에 과거 공부를 뿌리치고 간재 전우(田愚)[1841~1922]의 문하에 들어가 경학에 전념하여 기호학파의 학맥을 잇는 신진학자로서 촉망을 받았다. 한말 국가의 정세가 위태할 때 공주목 정안현(현재 공주...
-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인 문중대의 문집. 문중대(文重大)[1919~1993]는 본래 황해도 연백군 봉서면 출생으로 월남하여 충청남도 공주에 정착하였으며, 한때 공주 금성시사(錦城詩社)의 회장을 맡아 공주 지역 시회(詩會)를 이끌었다. 1979년 문중대의 회갑 때 받은 수연시(壽筵詩)를 모아 1980년 『연강수연시집(延岡壽筵詩集)』을 간행할 때, 책 뒤편에...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은거한 문신 정달영의 문집. 『영암집(寧菴集)』은 2권 1책이다. 장정법은 선장본이다. 광곽은 사주쌍변으로 반곽 크기는 가로가 16.5㎝이고, 세로가 22.3㎝이다. 행수는 12행이고, 한 행의 자수는 25자이다. 서문은 정달영(鄭達泳)[1828~1891]의 4종손(四從孫) 정헌태(鄭憲泰)가 썼고, 발문은 정달영의 재종손(再從孫) 정헌극(...
-
백제불교사상연구회에서 발행되었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불교 포교지. 대한불교조계종 6교구 계룡산 갑사의 주지 승려였던 장곡과 지역 불교 포교에 뜻있는 불자들이 모여 백제불교사상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월간 백제불교』는 백제불교사상연구회가 중심이 되어 공주·대전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법을 포교하기 위하여 창간한 월간지이다. 초기 편집장은 사희수가 맡았고, 편집 자문...
-
1970년에 간행된 문인 이선식의 문집. 이선식(李善植)[1838~1912]은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1811~1876]의 문인으로서, 원래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으나, 1867년 30세 때에 스승 임헌회가 머물고 있던 공주군 사곡면(寺谷面) 명강리(明剛里)로 이주하였다. 이로써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이곳의 학자 문인들과 폭넓은 교유를 맺게 되었다. 저자 사후 2...
-
1986년에 간행된 문인 김광호의 문집. 김광호(金光鎬)[1890~1963]는 일제강점기 말인 1944년(54세)에 출생지인 천안을 떠나 공주에 이거하였다. 공주 유구의 옥산(玉山) 아래에 이사하여 후학을 양성하는데 전념하였으며, 대체로 천안과 공주 지역의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의 문하 연원의 문사들과 교류하였다. 「옥산강회(玉山講會)」, 「옥산우거...
-
1989년에 간행된 문인 학자 김순동의 문집. 김순동(金舜東)[1898~1972]은 가학을 전수받아 한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윤용구(尹用求)에게 서법을 익혀 명필로서 명성이 높았다. 광복 후, 국학대학에 교수로 부임하여 국학을 강의하였다. 6·25 동란 후 대전에 거주하며 충남대학의 창설에 기여하였고, 교수로 부임하여 한문학, 국사학, 서예를 가르쳐 많은 후학을 양성하면...
-
1967년에 간행된 공주 출신 문인 심상교의 문집. 심상교(沈相喬)[1837~1918]는 공주 율정(현재 의당면 율정리)에서 태어났다. 심상교는 독서를 좋아하고 경사(經史)에 밝아 일찍이 과업을 닦으며 주위의 촉망을 받았으나, 1862년에 일어났던 진주민란 사건에 무고로 연루되어 1869년 부친과 숙부가 체포되어 옥사당하고, 자신도 옥에 갇히는 고초를 겪게 되었다. 이후...
-
2000년에 간행된 공주 출신의 문인 양기덕의 문집. 양기덕(梁基德)[1920~1999]의 사후에 아들 양의호(梁義鎬)와 양승호(梁承鎬) 및 저자의 친우 박구식(朴九植) 등이 초고를 수습하여 정동휘(鄭東暉)의 교정과 서문(序文)을 받아 2000년에 간행하였다. 상·중·하 3권 1책으로 되어 있고, 컴퓨터 조판에 횡서로 편집하였으며, 한장본의 형태로 제본하였다. 권수제 및...
-
1790년(정조 14) 간행된 충청감영의 현황을 기록한 읍지. 영조(英祖) 대에 이어 정조(正祖) 대에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속성 작업이 계속되었다. 1789년(정조 13) 실록 기사에 “여러 문신들이 분담, 각 도의 읍지를 널리 모아 『동국여지승람』의 속성 작업을 실시하되 편찬은 교서관에서 하라고 규장각에 명하였으나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다”는 내용으로 보아...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공주 지역 최초의 온라인 신문. 2006년 11월 6일 김광섭(金廣燮)은 공주 지역의 정치, 시사 및 각종 정보와 뉴스를 보도하여 지역 사회의 올바른 여론 형성에 기여하고자 (주)공주뉴스 법인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11월 9일 법인 등록을 마쳤다. 같은 해 11월 28일 『공주뉴스』를 정기 간행물로 등록한데 이어 12월 12일 『...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활동한 정헌태의 문집. 정헌태(鄭憲泰)[1894~1974]가 작고한 후, 아들 정인희(鄭璘喜)가 정동휘와 더불어 정헌태의 유고를 정리하여 1987년 편집을 완료한 후, 문인 이병관·오창환 등과 힘을 합하여 1988년 6권 4책으로 간행하였다. 『하당사고(荷堂私稿)』는 6권 4책이며, 필사영인본이다. 권수제 및 판심제는 ‘하당사...
-
1905년에 간행된 공주 출신 문인 최종화의 작품집.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걸쳐 생존한 문인 최종화(崔鍾和)[1859~1918]는 공주목 연기현 동리에서 태어났다. 33세 때에 과거 공부를 뿌리치고 간재 전우(田愚)[1841~1922]의 문하에 들어가 경학에 전념하여 기호학파의 학맥을 잇는 신진학자로서 촉망을 받았다. 한말 국가의 정세가 위태할 때 공주목 정안현(현재 공주시 정...
-
일제강점기의 신문을 뒤져보면 갑사와 관련한 기사들이 주목된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는 80세 이상의 노인들이 어린 시절인 해방 이전의 마을 모습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사적인 일에 제한되어 있어 당시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한 신문기사를 통해 80여년전 갑사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해 보자. 동아일보 1924년 9월 22일 “...
-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공주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공주 지역 3·1독립만세운동의 첫 시도는 3월 7일 있었고, 3월 10일에는 독립만세운동을 위한 사전 모임이 있었으며, 3월 12일에는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독립만세운동은 3월 14일 유구에서 시작되었다. 이어서 3월 15일과 17일 양일에 거쳐 공주에서 일어났고, 4월 1일부터 5...
-
공암 1리는 현재 6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파출소와 지방도로 변의 면소재지동, 장터마을, 서원마을, 연정마을, 양지말, 길만동이 그것인데, 면소재지동은 면사무소가 들어서면서 새로 생긴 곳이요, 장터말은 일제시대에 장이 서면서 만들어진 자연마을이다. 조선시대까지는 그 외 4개의 자연마을이 합쳐 한 마을을 형성하였다. 면소재지 동은 공암리 합동정류소와 파출소가 있는...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가교리에서 올리는 산신제와 여제(厲祭). 가교리의 산신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승과 팔월 말에 길일을 잡아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제일이 결정되면 제관, 축관, 제주(일명 화주)를 선정한다. 제물은 고기(생 것), 떡, 과일 등을 마련하여 올린다. 가교리의 거리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동네 어귀에서 지낸다. 제물은 떡, 과일 등으로 비...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대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완부부곡은 공주의 서쪽 4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완도부곡은 지금의 가랏골을 말하며, 이 마을은 노동·완동으로도 불린다. 가랏골이란 명칭은 마을 주변에 갈대가 무성한 데서 유래하였다. 강아지풀이 무성하여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마곡사에서 정안천으로 흘러...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가척리 청림사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종형 부도. 부도는 승려가 입적한 후 문도들이 세워주는 기념적인 조형물로 일종의 묘탑(墓塔)이다. 부도에는 입적한 승려를 화장하고 남은 유골이나 사리가 봉안된다. 가척리 청림사지 석조 부도도 조선 후기 청림사에 오랫동안 머물렀거나 청림사에서 입적한 승려를 기념하여 만든 조형물인 듯하다. 탄천면 가척리...
-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에서 부르던 걸인(乞人) 노래의 통칭. 공주시는 각설이타령이 탄생된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청에서 발간된 연구서에 의하면 각설이타령은 공주와 예산 일원에서 발생되었다고 한다. 현대의 각설이 타령은 구걸행위 때 부르는 흥겨운 노래이지만, 공주에서는 슬픈 각설이타령이 1970년대까지 많이 불렸다. 2000년까지도 이 노래를 많이 불렀으나,...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개신교의 한 교파. 감리교(監理敎, Mehtodist Church)는 1729년 영국의 존 웨슬리에 의하여 시작된 개신교의 한 종파로 교리보다는 실제적인 생활과 성경의 진리를 실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사랑에 의하여 구현되는 신앙과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고 이성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며 타 종파에 비해 신학적 이론을 비교적 자유롭게 전개하고 있다...
-
삼한시대 마한의 54개 소국(小國) 중 하나. 마한 지역 소국의 대부분은 기원전 3~2세기 이래의 세형동검(細形銅劍) 문화를 배경으로 대두된 다수의 정치 집단들이 발전한 결과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2세기 이후 마한 지역은 한강 유역에 위치한 백제국(伯濟國) 중심의 소국 연맹체와 목지국(目支國) 중심의 토착 세력권이 병존하였다가, 3~4세기에 이르러 점차 백제 중심의...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사적비. 공주에서 논산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0㎞를 가면 계룡면소재지로 빠지는 길목이 있고, 이곳에서 계룡저수지를 지나 6㎞ 거리에 갑사 입구가 있다. 갑사 일주문을 통과해 사천왕문에 이르러 왼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갑사 부도군 옆에 갑사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화강석 자연 암반을 좌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당. 임진왜란 때 왜적과 맞서 싸운 승병장 서산(西山)대사 휴정(休靜)과 사명(四溟)대사 유정(惟政), 기허(騎虛)대사 영규(靈圭)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갑사 표충원에 봉안된 영규는 공주 출신으로, 계룡산 갑사에서 출가를 하였고, 뒤에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수백 명을...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에 있는 산. 갑하산이라는 명칭은 갑소(甲所), 갑골, 갑동 등으로 바뀌어온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갑소의 소(所)는 고려시대의 행정구역의 하나로 주로 왕실이나 관아의 공물을 생산하던 사람들이 생활하던 구역이며, 주로 갑옷을 만들었던 곳이라 한다. 한편 세 개의 봉우리가 불상을 닮았다고 하여 삼불봉이라고도 한다. 계룡산지에...
-
부전동의 대표적인 세거성씨 가운데 하나인 강화최씨 가에는 약 30점의 고문서가 대대로 전해 오고 있다. 강화최씨는 부전동의 세거성씨이었던 김석견(金錫堅)의 사위로 입향하게 되었는데, 입향시기는 입향조 김석견의 손자 방(逄)의 출생년이 1508년(중종3)인 것으로 보아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부전동 강화최씨 가의 고문서로 시기가 가장...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공주 지역은 역사적으로 백제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그 후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의 중심지로서 문화, 행정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지녀왔다. 따라서 종교적으로도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왔을 뿐만 아니라 인근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종교적 인구 밀도를 가지고...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만들어진 건물이나 구조물.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환경은 시골, 도시 할 것 없이 비슷한 속성을 지니며,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각 지역마다 갖는 자연적, 인문사회적 배경에 따라 마치 사투리와도 같은 삶의 모습이 그들의 독특한 생활 환경에 투영되고, 이것이 확대된 도시의 모습은 그들 나름...
-
충청남도 공주시 오곡동에서 발원하여 검상동에서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검상천의 유수 계통을 보면, 금강이 본류이다. 1991년 5월 9일에 충청남도 88호 지방 2급 하천에 지정되었다. 검상천은 공주 구시가지 남쪽의 오곡동 옥고개 일대에서 시작하여 주미동·봉정동을 거쳐 검상동에 이르러 금강에 합류한다. 검상천은 해발 고도 약 40m에서 구릉성 산지...
-
공암1리 마을 입구석(入口石)에서 마을쪽으로 약 20m를 가면 공주시 반포면 주민들을 위해 마련된 게이트볼장이 있다. 이곳에는 매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친구들과 모여 게임을 즐기기 위해 모이는 공주 노인들로 북적거린다. 게이트볼장은 15년 전에 공암리 주민 몇몇이 돈을 모아 야외용으로 만들어서 이용해 오던 것을 2006년 4월에 공주시에서 4천만원을 들여 야외용 게이...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고사를 지내거나 푸닥거리할 때 외는 주문. 무속의 의례는 일반적으로 토착적인 굿과 도교적 성격이 강한 경문을 외는 송경(誦經) 두 가지가 있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굿거리에서 사용되는 것을 무가(巫歌)라고 하고, 송경에서 사용되는 것을 무경(巫經), 곧 경문이라 부른다. 공주 지역에서 앉은굿의 하나로 널리 행하는 설위설경에서는 기본적으로 안택과 관련된...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경제 산업은 경제와 산업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제는 인간이 공동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 전반을 의미한다. 산업은 이러한 활동 중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전반이나 활동 영역으로서 대체로 농업, 공업, 수산업, 임업, 광업 등 유...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1898년에 천안·공주 지역에 처음으로 북감리교의 스웨러 선교사가 파송되었고, 1901년에는 충추·진천·청주에 각각 교회가 세워졌다. 공주에는 1903년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졌고, 같은 해에 원산에서 의료 선교를 하던 맥길 선교사가 공주 지방에 파송되어 의료 선교를 시작하였다. 1905년 4월 10일 넓...
-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경천역에 관한 기록은 여러 지리지나 읍지에 위치, 소속된 말과 노비의 수 따위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세조실록』에는 “세조 6년 2월 5일자 기사에서는 성환도, 일신도, 증약도, 율봉도를 합하여 성환도라 칭하고 증약도찰방으로 책임을 맡게 하였다.” 이 기록에 따르면 경천역은 공주의 광정역·유구역·단평...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에 있는 농공단지. 계룡농공단지는 1983년 제정된 ‘농어촌 소득원 개발촉진법’에 따라 공주 지역에 공업을 유치하여 농촌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기하고, 나아가 지방 재정 확충 및 주민 소득 증대를 통해 도시와 농·어촌 간 지역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계룡농공단지는 충청남도 공주시내에서 남동쪽으로 약 11㎞...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있는 집성촌. 현재 계룡면에 유허가 남아 있는 전통 있는 성씨들은 대체로 16세기 이후 터를 잡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그 이전에는 간혹 전설상으로 나타날 뿐이다. 계룡면의 대표적인 성씨로는 진주정씨, 전주이씨, 강릉유씨, 해주오씨, 순천박씨, 부안임씨, 창녕성씨, 장기정씨 등이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는 수백 년 전부터 많...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문화 예술 단체.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연극 활동에 전념하고 있던 오태근에 의해 ‘공주계룡문화회’라는 이름으로 창단된 단체가 후에 계룡문화예술회로 명칭을 바꾸어 활동하고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의 문화 예술 진흥과 교육을 위해 창단되었다. 공주에서 영화 상영관으로 긴 역사를 자랑하는 공주극장(후에 아카데미극장으로 명칭...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터널. 2007년 1월 11일 준공되었으며, 2개의 터널로 이루어져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방동에서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까지의 10㎞ 구간에 건설된 계룡산 관통도로 상에 축조되어 있다. 계룡산 관통도로는 국도 1호선 논산과 공주 사이의 일부 구간을 직선화한 4차선 도로로, 국도 32호선과 국도 4호선을 직선으로...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 일대에서 무당이나 법사와 보살이 굿을 전문적으로 올리는 제의 장소. 계룡산 일대에는 70여 개의 굿당이 산재해 있다. 여기서 올려지는 굿은 소위 ‘계룡산굿’이다. 여기서 ‘계룡산굿’이란 서울과 경기와 이북 지역의 춤추는 무당이 담당하는 굿과 도교 계통의 충청 지역 일대에서 법사들이 올리는 설위설경, 즉 송경을 합하여 재생산된 현대의 굿이...
-
공주에는 역사 깊은 사찰과 절터가 수없이 많이 남아있다. 이는 백제의 고도에서 조선시대 충청도관찰사가 머무는 충청감영이 있던 ‘공주’의 지역적 위상 덕분이며 그것은 즉 많은 사람들이 공주에 살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계룡산에 사찰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통일신라시대부터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갑사가 백제 때에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입증할...
-
계룡산은 공주, 대전, 논산에 걸쳐 있는 충청의 명산이다.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국가에서 신성시하며 제사를 지냈던 ‘5악(동악 토함산, 남악 지리산, 서악 계룡산, 북악 태백산, 중악 팔공산)’ 중 하나였다. 유교주의 국가였던 조선에 와서도 명산이라 하여 국가에서 매년 봄·가을에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하였던 산이다. 계룡산의 서쪽에는 ‘으뜸’을 뜻하는 갑사(甲寺)가 자리하...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과 반포면에 걸쳐 있는 국립 공원. 계룡산(鷄龍山)은 경관이 뛰어나고 생물 다양성이 높으며, 지정문화재를 비롯하여 동학사(東鶴寺), 갑사(甲寺), 신원사(新元寺) 등 유서 깊은 사찰이 산재해 있어 1968년 12월 31일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로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970년 3월 24일 건설부 공고 제29호에 의거하여 공원 기본...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 있는 도예 마을. 계룡산 북쪽에 위치하며 계룡산 전설지로 유명한 곳이다. 계룡산 도자예술촌은 계룡산 지명과 도예 집성촌의 합성어로 고유명사가 되었다. 약칭으로는 ‘계룡산 도예촌’이라 부른다. 1991년 9월경 대전(공주)도예가협회 창립 전시회에 참가한 11명의 도예가와 도자 재료 연구회인 도연회가 도예촌 설립에 관한 좌담을 나누...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계룡산 도자예술촌에서 해마다 열리는 철화분청사기 축제. 계룡산철화분청사기는 전라남도 강진의 상감청자와 경기도 광주의 청화백자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도자기 중 하나로 형태와 문양이 자유분방하고 서민적이면서 예술성이 뛰어나 ‘계룡산 분청’이라는 별칭이 있는 공주 지역 고유의 유산이다. 이를 재창출하고 시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개최하였...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에 있는 조각 공원. 공주시를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과 지역 주민들에게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 기회와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계룡산조각공원을 조성하였다.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대전엑스포) 기간에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많은 관광객들이 공주를 찾아올 수 있도록 계룡산조각공원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1996년 7월 작품...
-
조선 전기 단종(端宗)을 받들던 충신과 열사들의 혼령을 제사지내던 건물 터. 1456년 (세조 2)에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이 이곳에 제단을 마련하고 초혼제(招魂祭)를 올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나라에서 단종·안평대군 등의 종실 인물과 김종서·황보인 등 당시 죽음을 당한 280여 충신과 열사들의 위패를 모시도록 한 초혼각(招魂閣)을 세웠던 곳이다, 계룡산초혼각지는...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더불어 사는 삶을 기반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기초 기본 학습을 토대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 위생과 안전을 생활 습관화하여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 다양한 학습 경험을 기초로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이다. 1919년 3월 12...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추계리에 있는 고려 중기의 문신 충숙공 문극겸(文克謙)[1122~1189]을 기리는 유적. 공주 유구역 인근에 있는 고간원은 고려 후기의 충신 남평문씨 문극겸의 충간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사당이다. 그러나 건립 시기나 건립 배경, 건립 주체 등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여러 가지 기록을 통해 대강의 상황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가 낮은 지형 형태.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고개는 보통 그 지역의 지명이나 전설과 관련된 명칭을 가지고 있으며 장고개와 같이 주민 생활과 관련되어져 이름이 붙여진 경우도 있다. 고개와 관련된 지명으로는 재, 치, 티 등이 있다. 『공주지명지』를 중심으로 살펴 본 공주의 고개는 대략 190여 곳으로 파악되는데...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북계리 봉화산에 세워진 조선시대 봉수. 고등산 봉수대는 공주시 옥룡동의 월산성 봉수대에서 연결받은 봉화를 북쪽에 있는 인풍리 쌍봉 봉수대로 연결하는 봉수이다. 정안면 북계리와 의당면 두만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해발 184m의 봉화산 정상에 있다. 봉수대는 둘레 78m의 둥근 석축의 형태이며, 석축 북쪽에 원형의 고대가 설치되...
-
통일신라시대 웅천주에 설치되었던 지방 군사 조직. 통일신라시대 지방 군사 조직인 10정(十停)은 삼국시대의 정제도를 계승하여 확대된 영토를 9주로 구획하는 과정에서 설정된 제도이다. 10정은 통일신라의 구주(九州)를 기준으로 하여 지방의 정치적·경제적 중심지인 주치(州治)에 가까운 곳에 설치되었다. 음리화정(音里火停)·고량부리정(古良夫里停)·거사물정(居斯勿停)·삼량화정(參良火停)·...
-
918년 고려 개국 때부터 1392년 멸망 때까지 충청남도 공주시의 역사. 통일신라시대의 웅주는 940년(태조 23) 공주(公州)로 개명되었다. 당시 전면적인 주(州)·부(府)·군(郡)·현(縣)의 명칭 개정이 있었는데, 그 일환으로 오늘날의 이름인 공주가 탄생한 것이다. 이후 고려 초기에 공주도호부가 되었다는 『공산지(公山誌)』의 기록이 있으나 정사인 『고려사(高麗史)』나 『고려사...
-
충청남도 공주시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이르는 무덤. 고분은 과거 우리 조상이 묻힌 무덤을 통칭하는 옛무덤을 말하지만, 고고학에서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한정된 시대의 무덤을 말한다. 여기에서 한정된 시대란 고대까지를 말한다. 물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무덤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이 시기의 무덤 역시 옛무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당시의 사회와...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연희나 축제 마당에서 풍장 가락에 맞추어 기원의 의미로 부르는 소리. 공주시 일원에서는 풍물패가 풍장을 치면 상쇠잽이가 한마디쯤 고사 덕담을 할 줄 알아야 상쇠 소리를 들었을 만큼 많은 축원소리가 있었다. 축원소리에는 마을 단위의 고사소리, 대단위 사업 전에 치르는 각종 고사장에서 부르는 축원소리, 개인적인 입장에서의 고사소리, 집터 다기기...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이용하여 만든 선사시대 거석 건조물의 일종이다. 고인돌은 그 분포권이 북유럽·서유럽·지중해 연안·북아프리카·서남아시아 일대의 신석기시대 묘제로 분포한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고인돌과는 직접적인 문화적 관계가 없는 듯하다. 중국 랴오닝[遼寧]성과 산둥[山東]반도 및 일본 규슈[九州] 등을 포함한 동북...
-
조선시대 제작된 공주의 지도. 공주의 고지도는 지도책에 포함된 지도, 단독 지도, 읍지에 포함된 지도 등이 있으며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제작된 자료들이다. 공주의 옛 지도를 크게 지도책에 포함된 지도와 읍지에 포함된 지도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공주의 고지도가 수록된 전국 지도책으로서는 『여지도(輿地圖)』(18세기 중엽), 『해동지도(海東地圖...
-
서기의 선계(先系)나 신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기록이 있다. 같은 시대 사람인 중봉(重峰) 조헌(趙憲)은 1586년 공주제독을 지낼 때에 임금에게 올린 소장에서 그를 ‘양인(良人)’으로 표현했고, 서기가 만년에 공암에서 강학할 때 공주목사였던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1534-1591]는 서기의 출신이 ‘비미(卑微)하다’고 했으며, 서기의 벗이었던 수암(守菴) 박지...
-
고청 서기는 이지함과 이중호를 사사했다. 이지함은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1489-1546]의 문인으로, 서경덕 주기론의 영향을 받아 『주역』을 기본으로 하여 수리·의학·복서·천문·지리·음양·술서 등에 달통한 인물이다. 또한 전국의 산천을 두루 다니며 명당과 길지를 점지했는데, 서기도 그와 함께 다닌 적이 있다. 이중호는 소학을 강조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
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에 있는 곰 전설과 관련이 있는 바위굴. 공주시청에서 북쪽 방향으로 3.6㎞ 정도 가면 쌍신동이 있다. 연미산(燕尾山) 주차장에서 등산로를 따라 100m 정도 직진하여 올라가면 안내 표지판이 나오고, 그곳에서 우측 방향으로 350m 정도를 더 가면 현재의 곰굴이 있다.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머리를 마주 대고 있는 형상으로 입구가 삼각형에...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공산성은 동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를 에워싼 형태로 축조되어 있다. 동쪽에 있는 산봉우리는 해발 110m고, 서쪽에 있는 산봉우리는 해발 85m인데, 광복루는 동쪽에 있는 해발 110m의 산봉우리 정상부에 있다. 광복루는 원래 조선시대 중군영의 정문 문루였고, 명칭도 폐문루(閉門樓)였다. 일...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루(門樓). 공주 시내에서 공산성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공산성의 정문인 남문에 있다. 진남루는 원래 1903년(고종 40)에 관찰사 홍승헌(洪承憲)이 수리하였다. 그 뒤 45년이 지난 1948년에 붕괴된 것을 공주읍장과 읍민들이 새로이 중건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1971년에 모두 해체하였다가 원래대...
-
이천일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공주의 세거 성씨. 시조 이천일은 기원전 53년(신라 박혁거세왕 5) 중국 한나라로 가서 뛰어난 문명으로 대장군에 올라 흉노적을 정벌한 공훈으로 요동백에 봉해졌다. 환국 후 공산군에 봉해진 이천일은 그때부터 공산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조선 전기 지리지에는...
-
조선시대 공주목에서 강상죄인(綱常罪人)이나 배역자(背逆者)가 생겼을 때 강등하여 부르던 이름. 『인조실록』권 47, 인조 24년(1646) 5월 1일 기사에 처음으로 공산현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공청도(公淸道) 공주목을 강등하여 공산현으로 삼고, 이산(尼山)·연산(連山)·은진(恩津)을 혁파하여 1개현으로 합하여 은산현(恩山縣)이라고 하고, 공청도를 홍청도(洪淸道)로...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자연 동굴. 공암리라는 지명은 구멍 뚫린 산인 공암굴에서 유래되었다. 공암굴은 반포면에서 서고청굴 또는 고청굴로 불리는데, 이는 공암굴과 조선 중기 학자인 고청 서기와의 인연 때문이다. 고청 서기가 지리산 홍운동에서 가서 학문을 연구하고 있을 때 사향 심상공 충청감사가 편지로 계룡산 북방 고청봉 아래 공암에 와서 후학 양성...
-
공암은 부수 작물조차 없는 대부분 논농사 위주의 농촌마을이다. 이런 가운데서 공암에서 유일하게 상품작물인 토마토 농사를 시작한 김응천씨의 신식 농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응천씨(52)는 3년 전에 토마토농사를 시작하였다. 부산에서 부인과 조그만 식당을 경영하였으나 다른 지방에서 토마토농사를 지어 성공하고 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3년 전에 부모님이 계시는 공...
-
충청남도 공주에서 생산되는 감을 재료로 하여 만든 식초. 공주 계룡산 갑사(甲寺) 일대는 감나무가 많고, 예로부터 이 일대에서는 가을에 수확되는 감을 이용하여 식초를 만들어 조미료로 사용해 왔지만 그 정확한 연원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402년(백제 구이신왕 원년) 고구려의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한 갑사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감식초를 만들어 조미료로...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승탑.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석조 승탑[浮屠]과 탑비(塔碑)는 국사(國師)나 왕사(王師)를 역임하였거나, 그러한 지위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았을 경우 세워졌다. 승탑은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한 무덤의 기능도 있었지만 사찰의 위상을 대내외에 알리는 기능도 있었다. 원래는 중사자암이라는 암자에 있었는데, 1917년경...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통일신라의 철당간. 통일신라 이후 사원에서 행사가 있을 때,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었는데, 이러한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한편 당은 사원의 종파를 알리기도 한다. 기단과 철당간, 당간지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석은 장대석 2매를 철정으로 고정...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금강의 옛 나루터. 공주 고마나루는 한 어부가 인근 연미산(燕尾山)의 암곰에게 잡혀가 부부의 인연을 맺어 두 명의 자식까지 두었으나, 어부가 도망가 버리자 그것을 비관한 암곰이 자식과 함께 금강에 빠져 죽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곰나루라고도 한다. 백제 웅진기의 지명인 고마나루는 한자로 웅진(熊津)이라 썼으며, 475년...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서 금강을 가로질러 신관동의 전막으로 연결되는 철교. 공주 금강철교는 서울에서 목포를 연결하는 국도 1호선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다리로 1932년 1월 2일에 착공하여 1933년 10월 23일에 준공하였다. 철교가 완성되기 전에는 배를 연결하여 왕래했으나 비가 올 때에는 금강의 수량이 증가하여 통행에 어려움이 많았던 상황에서 19...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동학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조각승 각민이 제작한 불상과 복장유물. 공주 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중 복장유물은 2010년 8월 동학사 대웅전의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의 개금불사(改金佛事)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조성 발원문, 개금 중수 발원문, 개금불사 원문을 비롯해 후령통(喉鈴筒)과 사경(寫...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 마곡사 포교당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청동 범종. 오대산 상원사 소장 범종 이후 우리나라 범종의 전통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거의 완전한 형태의 조선시대 범종으로, 범종 정상부에는 단룡과 음통(音筒)이 한 조를 이루는 종뉴가 갖추어져 있으며, 몸체에는 상하 문양대와 네 개의 네모꼴 유곽이 구비되어 있다. 종뉴 가운데의 용은 마치 천판을...
-
충청남도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나무로 얼레빗을 만드는 장인과 그 활동. 얼레빗을 만드는 목소장은 고려시대 어용(御用) 장식기구와 제작을 담당했던 중상서(中尙署)와 관아(官衙)에 관장(官匠)으로 소속되어 있었다. 조선 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공조(工曹)와 상의원(尙衣院)에 경공장(京工匠)으로 목소장이 소속되어 있었고,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경공장...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는 통일신라 때 대통사의 당간지주. 통일신라 이후 사원에서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러한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당은 한편으로 사원의 종파를 알리기도 한다. 네모꼴의 지주가 동서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지주 상단 바깥 면이 호형으로 치석되어...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있는 개항기 산신도. 「공주 상세동 산신도」는 1896년(고종 33) 화주(化主) 신양선(申良善)이 공주시 유구읍 상세리 상세동 마을의 산제당 건립과 함께 산신도 제작을 주도하여 봉안한 산신 탱화이다. 공주 마곡사 금어(金魚)[불화를 그리는 스님]인 금호당(錦浩堂) 약효(若效)가 그린 것으로, 태화산 상세동의 산제당...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동학농민운동 격전지. 공주 우금치 전적은 1894년 11월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을 상대로 항전을 전개한 곳이다. 전봉준이 지휘하는 농민군은 1894년 9월 재봉기 이후 논산에 머물며 공주를 공격 목표로 설정하는 작전을 세웠다. 당시의 공주는 충청도 감영(監營)이 있는 곳이었고, 또 우금치는 공주에서 부여 방면으로 넘...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송정리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시대의 금동보살입상. 머리에 삼면관이 올려져 있고, 보관(寶冠) 정면에서 좌상의 화불이 확인된다. 본래 보관의 좌우면에도 화불이 있었던 듯하나 오른쪽 부분의 경우 멸실되어 확인할 수 없고 왼쪽의 것은 불감만 남아 있다. 보관의 아래위로 보발이 표현되어 있다. 상호에는 살이 올라 있으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입가에는 미...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집을 짓기 전에 집터를 다지는 소리. 공주 지역에서 집터를 다지는 일은 땅을 다지는 노동을 넘어서 지신(地神)에 대한 숭배와 일체화 과정의 제례행위였다. 이는 인간과 지신과 땅이 하나 되어 집터다지기라는 소리로 결실을 보게 되는 이 노동은 그 자체가 생활과 신앙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자 축제였다. 노래를 부르는 요령은 선소리꾼이 줄을 잡지 않...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이귀의 묘. 공주시청에서 송산리 고분군을 지나 소정펄길을 타고 약 7.95㎞ 가면 이인면 만수리가 있다. 만수리 아랫마을의 남서쪽 계성산 능선에 연평부원군 이귀의 묘소와 묘비가 있다. 본래 공주 이귀의 묘가 있는 계성산에는 이귀와 아들 연양부원군 이시백(李時白), 사우당 이시담(李時聃), 연성군 이시방(李時昉)을...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정지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제사 유적. 정지산 능선은 송산리 고분군에서 금강쪽으로 북동 20°의 축으로 형성되어 있다. 공주 정지산 유적은 정지산의 정상에 위치한다. 공주 정지산 유적은 1996년 백제문화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건설 중인 공주-부여 간 백제큰길 건설 공사 과정에서 국립공주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이 조성...
-
충청남도 공주시 중학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서양식 주거용 건물.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은 미국인 선교사 샤프 목사가 설계하여 1921년 10월에 중국인 목수가 시공한 주거 시설로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건물이다. 공주 지역 최초의 서양식 주거용 건축물인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은 건축 공사 때 선교사들이 직접 벽돌을 제작하였다고...
-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에 있는 조선시대 천주교도 순교지. 충청감영이 있던 공주에서는 천주교 박해 때마다 각처에서 체포된 천주교도들이 와서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그중에서 끝까지 천주 신앙을 버리지 않은 순교자들 가운데 일부가 공주의 처형지에서 순교했는데, 그 순교지가 바로 황새바위이다. 공주 황새바위 천주교순교유적 성지 조성 사업이 시작된 것은 198...
-
1927년 7월 충청남도 공주에 있던 공주고등보통학교의 학생들이 일으킨 동맹 휴교 사건. 1922년 5월에 개교한 공주고등보통학교는 조선인과 일본인 학생들이 함께 다닌 학교였다. 교장을 비롯한 대다수의 교사가 일본인으로 조선을 무시하고 조선인을 폄하하는 말과 행동이 잦았다. 조선인 학생들은 이러한 민족 차별의 식민지 현실 속에서 민족의식을 키워 나갔다. 학생들의 민족의식은 일본인...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전개되었던 중등 교육 기관 유치 운동. 일제강점기 공주 인근 지역인 대전에는 관립 대전중학교(현 대전고등학교)와 대전공립실과고등여학교(현 대전여자중학교)가 있었으나 대전중학교와 대전공립실과고등여학교 모두 일본인 자녀를 위한 학교였으므로 1920년대 초반까지 충청도 지역에는 민족 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는 한국인을 위한 중등 교육 기관이 전무한 상태였다....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절 터. 구룡사, 혹은 상신리 사지에 대한 기록은 각종 지리지 등의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대체로 조선시대에 찬술된 지리지는 각 지역의 사찰이나 구전으로 전하는 사찰에 대한 내용이 많이 기록되어 있어, 사역 범위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공주 구룡사지와 관련된 기록이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기록의...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귀산리에 있는 노응환·노응탁·노응호 3형제의 생가 터. 노응환(盧應皖)[1555~1592], 노응탁(盧應晫)[1560~1592], 노응호(盧應皓)[1574~1592] 등은 본관이 만경이다. 이들은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아들로서 일찍이 공주목사였던 중봉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공부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이...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공주 금학동 고분군은 공주시의 남동쪽에 위치하는 해발 312m의 월성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의 남향 사면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서쪽의 물안주에서 동쪽의 월성산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성산 주변에는 동쪽과 남쪽에 능치 고분군·신기동 고분군·남산 고분군, 북쪽에 옥룡동 고분군...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 있는 감리회 태화복지재단 산하의 종합사회복지관. 충청남도에서 가장 오래된 종합사회복지관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중소도시 복지관 사업의 실천 모델이 되고 있다. 특히 지역사회 변화에 대응한 각종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확산함으로써 공주시 민간 복지 기관의 중심체로 자리하고 있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공주 지역사회의 복지...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최초로 결성된 기자 단체. 일제강점기 조선어 신문 삼사인 『조선일보』·『동아일보』·『매일신보』는 지방의 기사 수합과 신문 판매를 목적으로 전국 각지에 경쟁적으로 지국을 설치·운영하고자 하였다. 또한 지방의 유지나 혁신 청년들도 유지정치(有志政治: 로비와 진정, 향응과 뇌물이 오가는 뒷거래 정치)나 사회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지방 지국을 인수하는...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절 터. 백제가 초창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고, 신라 하대에 처음 세워졌고 이후 조선시대까지 존속했던 남혈사의 터로 파악된다. 공주남혈사지의 연대, 성격, 가람 배치를 파악하기 위하여 1990년에 국립공주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조선시대의 건물 터 7동이 검출되었고, 신라 하대...
-
1920년대 후반 공주 지역농민의 항일 저항 운동 단체. 공주노농협성회와 지부의 설립은 소작인과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단체를 조직하고 저항하여 생존권 확보를 위해 투쟁하였던 민족운동이다. 1920년대 농민조합운동이 합법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소작상조, 노동공제, 무산교육, 애경상문’ 등의 목적으로 농민들을 중심으로 노동협성회가 조직되었다. 1925년 8월 『조선일보』...
-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과 신관동을 연결하는 다리. 길이는 480m, 총 폭은 22m, 유효 폭은 20m, 높이는 16m이다. 경간 수는 8개, 최대 경간장은 60m이다. 공주대교의 상부 구조 형식은 P.C Box Girder 60m, 4경간 연속교(60×4×2=480m)로 2차선 11m와 4차선 11m로 분리·가설되었다. 공주대교는 공주 지역의 구시가지와 신시...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 있는 공공 도서관. 지역 주민과 학생들이 원하는 지식과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제공함으로써 지역 교육 문화의 중심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985년 11월 1일 도서관 건물을 준공하였고, 같은 해 12월 16일 공주군립도서관으로 개관하였다. 1986년 4월 1일 공주시립도서관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91년 3월 26일 공...
-
고려시대 때 설치된 충청남도 공주의 행정구역. 고려 전기 성종은 즉위하자마자 5품 이상의 중앙 관리들로 하여금 봉사(封事)를 올려 좋은 정책을 건의하게 했는데, 그 중 최승로(崔承老)의 봉사가 채택되어 정책에 반영되었다. 최승로가 올린 시무 제28조 중 제7조는 전국의 주요 지역에 외관을 파견할 것을 건의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983년(성종 2) 전국에 설치된 12목 중 하나...
-
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까지 공주 지방을 맡아 다스린 정3품의 외직(外職) 관리. 고려시대의 지방 제도는 성종 때 이르러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983년(성종 2)인 983년에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국의 12개 주에 주목이란 외관을 파견하였는데, 12개의 주목 중에서 공주도 포함되어 상주하는 외관이 파견됨으로써 충청 지역 행정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의...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문화 예술 공연 시설. 500석 이상의 현대화된 공연장을 확보하여 백제문화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충남연극제, 전국연극제 등 대규모의 문화 예술 행사를 수행하고 있으며, 대형 공연물을 기획하고 공연하여 지역 문화의 질적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공주문예회관은 공주 지역 문화 예술인들의 예술 작품의 발표 공간을 확보하고, 시민들의...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는 지역 문화 예술 진흥 기관. 1954년 12월 16일 설립된 문화관광부 산하 비영리 문화 예술 기관으로 공주 지역의 문화 사업과 사회 교육 사업 및 향토 문화 연구는 물론 각종 행사 등을 시행하고 있다. 지역의 고유 문화의 계발, 연구, 조사 및 지역 문화 행사의 개최, 활발한 국내·외 교류 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문화 생활의 질을 높이고...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봉현리에 전승되는 상여소리. 공주시 우성면 봉현리 연반계는 조선 후기 이래 상례를 주관해 온 자치 조직이다. 공주시 우성면 봉현리에는 초상이 나면 임종부터 출상(出喪)까지 사흘 동안 주민들이 모두 나서 상가를 돕는 전통이 있다. 이때 연반계원을 2개 조로 나누어서 상여를 메는 일과 봉분을 조성하는 산역(山役) 등 제반 상례를 주도적으로...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옥천습곡대와 경기육괴 사이의 분지. 공주 지역의 산계(山系)를 크게 보면, 북부와 남동부의 능선들은 대체로 북북동이나 남북 방향이 우세하지만, 중앙부의 공주분지를 둘러싼 해발 고도가 낮은 능선들은 대체로 N30~40E의 방향성을 띄고 있다. 한편 공주 지역의 산계는 계룡산지에 관입한 반암 등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점, 약산과 묵방산 일대의...
-
1898년 심기섭이 공주에 세운 충청남도 최초의 민족계 사립 초등학교. 공주사립소학교는 1898년 설립된 오늘날의 사립 초등학교로 충청남도에서 처음으로 개교한 민족계 사립 학교이다. 이는 개화기의 새로운 학교 제도가 국가적으로 마련된 지 3년 후의 일이다. 당시 문호 개방의 영향으로 여러 문물과 함께 서구 학문과 지식이 물밀 듯이 들어왔고 초기에는 소수이기는 했지만 개화...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구룡사지 입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당간지주. 통일신라 이후 사원에서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 당(幢)이라는 기를 달아두는데, 이를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당은 한편으로 사원의 종파를 알리기도 한다.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지주 위쪽에는 장방형의 간구가 마련되어 있고,...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망월산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절 터. 백제계 연화문 와당이 채집되었는데, 백제의 4혈사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발굴 조사 결과 통일신라 때의 유구와 유물이 주로 검출되었다. 백제의 유구는 아직 발굴되지 않았으며 탑지와 금당지는 통일신라시대의 유구로 파악된다. 출토 유물로 보면 조선시대까지 존속한 것으로 여겨진다. 1969년과...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선학리에서 서민들이 지게를 이용한 집단 놀이 지게놀이는 한민족의 농경사회(農耕社會)에서 농민들과 가장 밀접했던 농기구(農器具)인 지게를 이용하여 즐기는 놀이 문화의 결집체이다. 공주 선학리에서 시연되고 있는 지게놀이는 「지게 상여」, 「지게풍장」, 「지게 걸음마」, 「작대기 걸음마」, 「지게 썰매」, 「지게장단 노래」, 「지게 지네발놀이...
-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절 터. 수원사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보아 백제 위덕왕 대에 창건된 사찰로 여겨진다. 현재 공주 수원사지가 있는 마을의 이름이 수원골인 점을 중시하여, 『삼국유사』 및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오는 수원사 터로 인정하여 왔다. 그러나 발굴 조사에서는 통일신라 이전의 유구나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196...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소장되어 있는 1507년(중종 2)과 1625년(인조 3)에 간행된 공신 녹권. 『공주순천박씨공신녹권』2책은 계룡면 양화리에 세거하는 순천박씨가에 소장되어 있는 『십공신회맹록(十功臣會盟錄)』1책과 『정사원종공신녹권(丁巳原從功臣錄券)』1책 등 2책을 가리킨다.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순천박씨가는 중종반정의 주체인 박원종(...
-
충청남도의 동부 중앙에 있는 시. 차령산맥 일부가 공주시의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어 무성산[613.6m]·국사봉[590.6m]·금계산[574.8m]·갈미봉[515.2m] 등의 산들이 사곡면·정안면·유구읍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공주시의 북부 지역은 비교적 높은 산지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남동 지역은 국립공원인 계룡산[845.1m] 지괴가 분포하고...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목천길에 있는 농업 관련 사업 및 정책을 총괄하기 위해 설치된 공주시 직속 기관. 21세기 공주 농업의 발전을 위해 농업이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유망 산업을 꾸준히 지원하고 농업인의 애로를 해결하며 소비자를 위한 친환경 농업을 보급하여 환경 친화적이며 현장 중심의 농정을 추진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1957년 2월 12일 공주...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생활 체육 단체. 생활 체육을 진흥하여 시민의 건강 증진과 여가 선용에 기여하고, 앞서가는 체육 문화를 창달하기 위해 창립되었다. 1991년 5월 25일 창립되어 초대 회장에 서정석이 취임하였다. 1995년 시·군 통합 협의회가 출범하였다. 2008년 정기대의원 총회를 갖고 제6대 심태진 회장을 선출하였다. 2009년 10월 21일에 공주시...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선거 사무를 담당하는 공공 기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충청남도 선거관리위원회 하급 기관으로 53개 투표구를 통괄하며 공직 선거(대통령·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와 각종 위탁 선거를 관리하고, 정당·정치자금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며 깨끗한 선거 문화 정착과 민주 정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63년 1월 21일 중앙선거관...
-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동에 있는 수돗물을 생산·공급하는 행정 기관. 충청남도 공주시 관내에 맑고 깨끗한 수돗물을 생산·공급하여 시민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상수도 공급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에 의해 사업 인가(800㎥/일)를 받았다. 1923년 3월 1일 중학정수장(450㎥/일) 건설로 공주읍 지역에 급수를 개시하...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종합 경기장. 공주 지역 주민들의 체력 증진과 도민 체육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1984년 11월 14일 착공하여 1990년 10월 26일 공주공설운동장을 준공·개장하였다. 이로써 충청남도에서 천안에 이어 두 번째로 공설운동장을 건립하게 되었다. 사업비는 국비 990백만 원, 도비 2,240백만 원, 시비 1,692백만 원, 기타...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지역 사회·문화 발전에 기여한 시민에게 수여하는 상. 공주시 웅진문화상은 1995년 지역 사회 개발, 교육 문화 발전, 사회 질서 확립 및 미풍양속의 순화에 기여한 공로가 현저한 자를 발굴해 시상하는 제도로 공주 지역의 사회·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제정되었다. 공주시 웅진문화상은 1995년 제1회 시상식을 거행한 후, 2008년 현재 제9회 시상식을...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6·25전쟁 당시 피난민을 구호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 공주 지역의 유지들이 공주 지역으로 피난하는 사람과 후퇴하는 군인, 관리들에게 음식과 숙소를 알선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6·25전쟁 직후인 6월 말 7월 초에 결성되어 공주 지역이 북한군에 점령되기 직전인 7월 12일까지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 초기 관리와 군경, 그 가족들...
-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로에 있는 지방 행정 기관. 공주시청은 중앙정부 및 충청남도 도청으로부터 위임된 업무와 자치권이 있는 고유 행정 업무 및 민원 업무 수행을 위해 설치되었다. 공주는 1911년 한일합방 후에도 계속 충청남도의 도청 소재지로서 종전의 관찰사를 도장관으로 개칭하여 충청남도의 행정 수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과...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전통 음악을 가르치는 국악원. 충청남도와 공주시의 지원으로 백제의 고도인 공주에서 우리 고유의 전통 음악을 알리고 보급시키기 위해 1997년도에 개원한 국악원이다. 충청남도 도민에게 우리 고유의 음악을 쉽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전통 음악을 알려 우리의 흥과 멋, 정신을 널리 보급하고, 청소년들에게 우리 것에...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시목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 공주신관리석실고분은 공주의 금강 북안에 있는 신관동 시목골 속칭 감나무골 뒷산에 위치한다. 이곳은 금강대교의 북쪽 건너편에 해당하며, 강안의 북편 구릉지대로 후면에 비교적 높은 산이 자리한다. 고분은 이 산릉이 남쪽인 강으로 흘러내리는 경사면에 2기가 남북으로 서로 가까이 위치한다. 공주신관리석...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청룡리 공주민속극박물관에서 열리는 1인극 축제. 아시아의 많은 민족들은 서양의 식민지로 살아오면서 자기 민족의 독창적인 전통 문화들이 사라지거나 훼손당하고 종속되는 수난을 겪어 왔다. 공주아시아1인극제는 아시아 지역 민족의 전통 문화를 전승하며 그것을 모태로 새로운 창작을 통하여 아시아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데 목적을 두었다. 1987년...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연문 광장 일원에서 매년 9월 하순에서 10월 초순 사이에 개최되는 알밤 축제. 공주 알밤 축제는 전국에 널리 알려진 밤의 고장 공주, 특히 공주시의 특산품으로 유명한 정안밤을 홍보하기 위해 금성동 연문 광장 일원에서 펼쳐지는 축제이다. 정안밤은 공주시 정안면 농가에서 생산하는 지역 특산품이다. 정안면의 1,10...
-
1730년경부터 약 160년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개설된 약령시. 약령시는 원래 감영 소재지로 모이는 약재 중에서 국가가 구입한 뒤 일반인에게 판매를 하는 장터로서 처음에는 각종 약재의 채집과 집산 등의 사정으로 월령(月令)에 따라 몇 차례 개설하였으나 점차 봄과 가을 두 차례 개시로 정착되었다. 한 달 동안 열리는 장터에는 전국 각지의 약초 재배자와 심마니, 상인과 한의사 등이...
-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여성 문인들이 결성한 문학 모임. 공주여성문학회는 공주 지역의 여성 문인을 발굴하여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와 타지방 여성 문학회와의 교류를 촉진하여 공주 지역문학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96년 4월 12일 이소자·이수일·이순구·이영이·주위출·최복주·최정숙 등이 주축이 되어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공주여성문...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기독교 사랑을 실천하는 도덕인, 수준 높은 학력을 지닌 지식인,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지성인, 튼튼한 체력과 정서를 갖춘 건강인을 육성한다. 교훈은 박애·진실·면학이다. 공주 지역에 공주영명고등학교가 설립된 것은 1904년 샤프 목사가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로 공주에 오면서부터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의 노골적인 침...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 있는 사립 중학교 기독교 사랑을 실천하는 도덕인, 수준 높은 학력을 지닌 지식인,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지성인, 튼튼한 체력과 정서를 갖춘 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한다. 교훈은 박애·진실·면학이다. 1905년 미국에서 선교사로 파송된 앨리스 샤프(Alice Sharp, 한국명 사애리시)가 설립하였던 명설학교가 1906년 10월 15일 윌리엄스(...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관음보살좌상. 전체 높이 79㎝로, 머리에는 극락조(極樂鳥)가 새겨진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보관의 양옆으로 천관대가 나부끼고 있으며, 두 가닥의 보발이 가지런히 내려와 양 어깨 위에 드리워 있다. 목이 짧고 어깨도 좁지만 무릎은 양감이 강하고 폭도 넓다. 전체적으로 이목구비와 자연스러운 옷자락 표현이 뛰어나다....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후기 청동으로 제작된 범종. 공주 영은사 청동 범종은 크게 용뉴부(龍鈕部)와 종신부(鐘身部)로 구성되어 있어, 신라시대 이래 제작된 우리나라 범종의 전형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 용뉴부는 용이 네 개의 발을 힘차게 아래로 뻗쳐 발가락으로 동종의 천판을 강하게 짚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어 역동적으로 보인다. 볼록한 용...
-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공주지부가 매년 가을 주관하는 공주 지역의 순수 종합 예술 축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공주지부는 우리 고장의 향토 서정과 백제 왕도로서의 역사적 자취가 담긴 예술 문화를 발전시키고, 고도의 산업 사회의 각박한 일상에 매여 여유로운 내면의 멋보다 물질적인 면을 쫓는 현대인들에게 예술을 통해 생활의 활력과 즐거움을 주고자 기획되었다. 이...
-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옥녀봉 정상부에 있는 백제시대의 토축 산성. 공주 옥녀봉성은 백제시대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시기는 알 수 없다. 기존에 알려져 온 것처럼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이라면 공주 공산성의 동쪽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금강의 남안(南岸)에 백제 웅진시대의 왕...
-
마을에 연세 60대 이상의 어른들은 누구나 기억하는 소리꾼이 있다. 삼거리마을에 살았던 김재익. 그는 공주의 민간 재인 중 마지막 우두머리 재인이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유명한 재인이었고,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배운 실력이 청출어람이라 소문이 자자했다. 살아있다면 100살쯤 되었을까. 미인박명이라더니 6·25 전쟁 직후에 사망했다. 젊은 시절에는 중장2리인 오미마을에 살다 삼거리마...
-
충청남도 공주시 상왕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인 이유태가 여생을 보낸 장소. 공주이유태유허지는 초려 이유태(李惟泰)가 말년에 후학을 가르치고 독서로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이유태는 현종·숙종 대의 문인으로 특히 현종 때 학덕이 높은 유학자로 크게 활약하였다. 1675년(숙종 1) 복상 문제로 제2차 예송(禮訟)이 일어나자 남인의 배척을 받아 영변에 유배되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동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공주제일교회는 공주지역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최초의 감리교회이다. 1903년 의사이자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인 맥길(William B. McGill)이 이용주 전도사의 도움을 받아 공주제일교회를 설립하였다. 맥길 선교사는 당시의 남부면 하리동(현재의 앵산공원 서쪽부근)에 초가 2동을 구입하여 하나는 예...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주미리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절 터. 공주 주변의 백제 혈사(穴寺)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지만 발굴 조사 결과 통일신라 때의 소규모 가람과 조선시대의 가람이 조사되었다. 통일신라 때에는 주미사의 규모가 소규모였지만 조선시대에는 사역이 확장되어 모두 7동의 건물이 □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백제문화권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97년에 공주...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 있는 한국천주교 대전교구 소속의 성당. 공주중동성당은 공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 성당이다. 공주중동성당은 1897년 5월 8일 현재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리에 있는 합덕성당과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공세리 성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된 공주중동성당에서 출발하였다. 프랑스 선교사 기낭(Guinnand)이 초대 신부로 임명되...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민주 시민 의식을 기초로 공동체 발전에 공헌하는 민주인, 학력을 증진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실력인, 과학적 사고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창의인, 건강한 심신으로 전인적 성장을 추구하는 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이다. 1922년 4월 22일 공주공립고등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그해 5월 11일...
-
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저소득층의 자활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 복지 기관. 지역 사회 자활이란 근로 능력을 가진 빈곤층에 대해 지역 사회에서 노동의 기회 및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일련의 과정이며,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원조 활동이다. 1997년 IMF 경제 위기 속에서 대량 실업으로 인한 실직자의 발생과 이들이 거리의 노숙자가 되는...
-
1920년대 초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계몽운동을 전개한 청년단체. 3·1운동 이후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면서 청년수양단체들은 야학, 생활 개선과 같은 민중계몽 활동, 강연회·토론회·연극회·체육회와 같은 문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대 전반기 활성화된 민족개조운동, 농촌계몽운동,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등은 청년수양운동과 그 흐름을 같이 하는 신문화운동이었다. 192...
-
1920년대 중반 공주 지역에서 혁신 운동을 전개한 청년 단체. 민중 본위의 합리적인 신 사회 건설의 역군이 될 만한 훈련과 교양에 노력하고, 조선 민중의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진하며, 단결을 공고히 하여 일체의 파벌주의를 근본적으로 배제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공주 지역의 청년회 혁신 운동은 1925년경부터 전개되었다. 1925년 11월 29일 결성된 공주청년회는 1...
-
1892년(고종 29) 10월 충청도 공주에서 서인주와 서병학이 동학 교조 최제우의 신원과 포교의 자유를 주장하기 위해 개최한 집회. 1864년 3월 교조 최제우가 좌도난정(左道亂政: 사악한 종교로 세상을 어지럽힘)의 죄목으로 처형된 이후, 동학(東學)은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의 교세는 수그러들지 않았으며, 1890년대 초반 삼남지역(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 소라실에서 정월 대보름날 남·여 장승을 합궁시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공주탄천장승제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1989년 12월 29일에 지정되었다. 공주탄천장승제는 송학리의 소라실에서 마을의 안녕과 길일을 축원하는 마을 축제이다. 특히 축원에 의하면 칠성(七姓) 즉 공주의 토성(土姓)이 그 대상인 것으로...
-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에 위치한 고려와 조선시대의 국립 중등 교육기관. 공주향교는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며, 지방민을 교화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공주향교의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공주시청에서 무령로를 따라 약 2㎞ 거리에 있는 공주 교동성당 앞에서 왼쪽으로 2㎞를 가면 충남통일관이 있다. 그 앞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2㎞...
-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 공주향교에 소장되어 있는 향교 관련 고문헌. 공주향교에는 향교의 역사나 운영 모습, 공주 지역사족의 사회적, 경제적 기반들을 파악할 수 있는 고문헌들을 소장하고 있다. 해당 고문헌으로는 향안(鄕案), 청금록(靑衿錄), 절목(節目)·완문(完文), 경제 관련 문서, 선생안, 유림계안, 석채록, 도기(到記)들로 총 20여 권이 남아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지역 문화 단체. 공주 지역의 전통 문화 유산을 발굴, 조사, 연구함으로써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1988년 3월 공주사범대학의 교원을 중심으로 웅진문화동호회로 창립되었고, 10월 13일 공주향토문화연구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12월 30일에 『웅진문화』창간호를 발간하였다. 1993년 12월 가입 자격을 일반...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사립 병원. 공주 지역에 보다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0년 10월 23일 개원 이래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병원으로 성장하고 있다. 공주현대병원은 133병상 규모로 정형외과, 내과, 인공관절센터, 영상의학과, 마취과, 간호과, 임상병리실, 물리치료실, 영상의학실, 의무협력실 등 종합 병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연 과학·응용 과학·공학 및 그에 따른 생산 기술을 일괄해서 일컫는 말. 공주에는 과학 기술과 관련한 기관 단체로 공주대학교 교육과학연구원 과학교육연구소, 공주대학교 기초과학연구원 태풍연구센터, 신풍비행장치지정검사소 등이 있다. 공주대학교 교육과학연구원 과학교육연구소는 중등학교의 수학과 과학 교육에 대한 교육 과...
-
충청남도 공주시의 자연 환경과 풍습 등을 경험하며 유람하는 일. 충청남도 공주시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과거 백제의 수도로서 또한 교육, 지방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서 많은 문화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충청남도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교통의 요충지로서 X자형의 광역 교통망을 형성하고 있으며 도심을 가로지르는 금강과 주위의 계룡산 등 수려한 자연 경관을 보유하고...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석남리에 있는 산. 관불산은 그 모양이 부처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는 말봉과 감로봉 등 봉우리가 두 개 있는데 이 봉우리 사이의 모습이 말안장과 비슷하며 예전에는 꼭대기에 막대기를 꽂고 말굽을 놓았다고도 한다. 관불산은 편암계 화강편마암층으로 이루어졌다. 관불산의 동쪽으로 유구천이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흐르며...
-
충청남도 공주시의 산업 중 광업과 공업을 포함하는 업종. 광공업은 광물을 탐사, 채굴, 선광하여 제련하는 광업과 1차 산업에서 얻어진 수확물을 원료로 하여 가공하는 제조업을 함께 지칭하는 말이다. 한국산업분류표의 중분류에 의하면 모두 21개 업종을 광공업에 포함시키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석탄·원유 및 우라늄 광업, 비금속 광물 광업, 음·식료품 제조업, 섬유 제품 제조업...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성재산 정상부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축 산성. 광정리 산성이 자리한 광정리는 북쪽으로 차령산맥을 넘어가면 천안에 닿을 수 있고, 남하하면 곧장 공주 시내로 진입할 수 있다. 또한 서쪽으로는 유구를 거쳐 예산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렇게 교통의 요충지에 있는 만큼 다양한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공주에...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서 정월 대보름날 행하는 민속놀이. 광정리 암숫강다리기는 놀이 문화와 기원 문화의 결집체로서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지역의 광정1리·광정2리·광정3리·대산1리·대산2리·월산리·사현1리·사현2리·인풍리·내문리 등 10개 마을이 함께 즐긴 전통 민속 줄다리기이다. 남성과 여성의 직접적인 성행위 내용을 기반으로 하는 민속놀이이라서 즐거움을 더하였기 때문...
-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이 6곳이니 일신·광정·경천·이인·단평·유구이다.”라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 북쪽 45리에 있다. 설장수의 시에 ‘아침 해 둥그렇게 뜨자 광정역을 떠나니, 흰 구름이 깊숙이 일만 산 푸른 것을 깊이 감추었네. 들꽃 난만히 주인 없이 피어서 봄빛을 단장하여 그림...
-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의 향교산 제당에서 마을 공동으로 치러지는 산신제. 교동 산신제는 동네 주민들이 모여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룻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제사이다. 교동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향교가 소재한 곳이다. 그러므로 공주의 향교 전래 의례가 비교적 많이 전해진다는데 의미를 둘 수 있겠다. 산신제는 교동의 주민들로 구성된 대동...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역사 문화 도시이자 교육 도시인 공주의 지역 정체성이 확립된 것은 공주가 백제의 수도(首都)였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백제가 한대(漢代)의 오경박사(五經博士)제도를 도입하고,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하는 등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볼 때 당시의 교육 수준이 대단히 높...
-
공암리의 교육 생활권은 크게 공주 및 대전권으로 볼 수 있다. 학교로는 유일하게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518-1번지에 있는 공립초등학교인 반포초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공암의 이웃동네인 000에는 반포중학교가 위치하기 때문에 공암 사람들은 대부분 이 곳으로 중학교를 다닌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근처에 없어 공주 시내나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학교로 분산하여 통학...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교육에 관한 일을 맡아 보는 기관. 2008년 4월 1일 현재 공주 지역에는 유치원 39개 원, 초등학교 32개 교, 중학교 15개 교, 고등학교 10개 교, 특수 학교 1개 교, 대학 3개 교 등 총 100개 교의 교육 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공주 지역 교육 기관은 학교급별, 설립별로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교촌리 고분군은 공주시의 서쪽에 있는 교동 향교골에 위치한다. 북쪽의 송산리 고개를 경계로 무령왕릉이 위치한 송산리 고분군과 단절된 형태를 이루는데, 지형상으로는 남북 방향으로 연결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고분군이 확인된 지역은 해발 95m 야산의 남동사면 중하단부에 해당한다. 교촌리 고분은 1930...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인간 및 재화 또는 정보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공간적 이동. 교통이란 인간 및 재화 또는 정보의 공간적 이동을 의미한다. 교통 기관의 발달은 생활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제 생활 및 사회 문화를 발달시키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좁은 의미에서의 교통은 그 중 인간과 재화의 공간적 이동만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통 수단은 일반적으로 육상...
-
대전에서 공주 방향으로 4차선 23번국도가 개통되면서 공암마을 앞까지 큰 도로가 뚫리게 되었다. 23번 국도는 공주의 동서를 지나는 국도로서, 공주는 이 국도덕택에 호남 지방과 서울을 잇는 교통요지가 되었다. 공암마을 역시 국도와의 인접성 때문에 인구가 증가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공암에서 23번 국도를 이용하여 대전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5분이며, 공암에서...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 교회라는 말은 본래 넓은 의미로 같은 종교를 믿는 신자의 집단 또는 집회소를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회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개신교인들의 가시적인 단체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다. 현재 전 세계에는 수백 개의 개신교 교파가 존재하고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에서는 감리교회, 장로교회, 성결교회, 침...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구전되어 오는 문학. 구비전승이란 말로 된 문학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글로 표현된 문학인 기록 문학과 구별된다. 말로 창작되고 전승되기 때문에 전승 과정에서 계속 변하며, 그 변화의 누적으로 개별 작품이 존재하게 된다. 구비전승의 주요 장르로는 말(설화·속담·수수께끼 등)과 노래(민요·판소리 등), 행위(민속극·연희·마을제의 등) 등을 들 수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뗀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구석기시대는 지구상에 등장한 인류가 유인원과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리·진화를 거듭하면서 도구를 제작하여 사용했던 약 400만년 전 내지 250만년 전부터 약 12,000년 전까지다. 이 기간은 인류 역사의 99.5%를 차지하는 아주 장구한 시간이며, 지질학상 제4기 갱신세(Pleistocene)에 속한다. 구석기인들...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구암리 1구 작은말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구암리 고인돌군은 이인면소재지의 북쪽에 있는 구암리 1구 작은말의 안쪽에 위치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형성된 구릉의 남사면 하단부에 3기가 자리한다. 구암리 고인돌군은 1986년 공주사범대학 박물관에서 진행한 공주 지역문화재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당시 고인돌은 마을...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국곡리 국곡마을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국곡리 고분군은 국곡마을의 서쪽에 동서 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해발 150m 미만 능선의 남동쪽으로 흘러내리듯이 형성된 사면의 선상부에 위치한다. 현재 고분군의 전방으로는 ‘원골’이라 불리는 골짜기가 북서-남동 방향으로 길쭉하게 형성되어 있다. 국곡리 고분은 1986년 공주사범대학 박물...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화헌리에서 정안면 인풍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23호선은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에서 충청남도 천안시까지 연결되는 도로로, 총 길이는 394.1㎞이다. 그 중 왕복 2차선은 276.2㎞, 왕복 4차선은 117.9㎞이고, 도로 포장률은 100%이다. 전국 25개 남북 노선 가운데 하나로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관리한다. 전체 길이 100m 이...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분강리에서 중동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40호선은 충청남도 보령시에서 예산군 덕산면까지 연결되는 도로로, 총 길이는 72.3㎞이다. 그 중 왕복 2차선은 64.9.㎞, 왕복 4차선은 7.4㎞이고, 도로 포장률은 100%이다. 전국 24개 동서 노선 가운데 하나로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관리한다. 소교량이 18개 소 있으며, 충청남도 보령시에...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국립 박물관. 공주를 비롯한 충청남도 지역에서 출토된 중요 유물을 보관·전시하고, 유적 발굴 조사와 해외 문화재 조사 등을 통한 학술 연구 활동을 수행하며, 지역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평생 학습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일제강점기 공주 지역의 백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만든 공주고적...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공주 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전지역본부의 산하 조직으로 충청남도 공주시 시민의 건강 증진과 권익 보호를 위해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 진단, 치료, 재활, 출산, 사망 및 건강 증진에 대하여 보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사회보장을 증진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7년 11월 1일 공주군 의료보험조합이 설립되고...
-
1950년 7월 충청남도 공주에서 국민보도연맹원이 집단 학살된 사건. 1949년 6월 이승만 정권은 해방 후에 좌익 활동의 전력이 있는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국민보도연맹을 결성하였다. 국민보도연맹은 대한민국 정부 절대 지지, 북한 정권 절대 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 사상 배격·분쇄, 남로당, 북로당의 파괴 정책 폭로·분쇄, 민족진영의...
-
계룡산의 수많은 전통 사찰 중에 으뜸으로 손꼽히는 갑사는 그 역사만큼이나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신라시대의 당간지주, 고려시대의 부도, 조선시대에 지어진 절집들, 돌부처, 종, 월인석보의 판목 등 그 종류도 많고, 하나같이 지정 문화재가 될 만큼 역사성과 예술성에 손색이 없다. 갑사에 남아있는 지정문화재는 다음과 같다. 국보 제298호 갑사삼신불괘불탱(甲寺三身佛掛...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봉곡리에 있는 봉우리. 국사봉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 전국에 걸쳐 다수가 존재하는 데, 보통 나랏일을 하는 산봉우리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는 나라의 스승이라는 국사봉(國師峰)과 나라에서 작호를 주었다는 국사봉(國賜峰) 등이 동음이의어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봉곡리의 국사봉은 후자에 해당한다. 해발 고도가 392m 정도인 국사봉은 정상 부근에 토르가...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 있는 도교 계통의 신종교. 국제도덕협회는 1947년 이후 우리나라에 소개된 일관도(一貫道)라는 신종교의 한 교파이다. 이 종교는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을 융합하여 일관한다는 뜻에서 ‘일관도’라 한다. 공주의 국제도덕협회는 170여개 지부 중의 하나이다. 공주의 국제도덕협회는 1962년 화교인 모덕경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
평범한 농촌과 예술의 만남은 한국 국제자연미술가협회(약칭 야투[野投])의 적극적인 노력과 마을주민의 호응이 있어 가능했다. 야투는 공주에서 국제자연미술전을 열고 있던 미술인 모임으로, 1980년 젊은 미술인들에 의해 결성된 작은 미술단체였다. 이 협회의 결성 취지는 ‘자연과 호흡을 같이하는 자연예술 미술운동으로 미술을 통한 자연환경 그리고 인간을 표방하여 공주 금강의 천...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바위. 굴바위는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의 마을 남쪽에 있으며, 아래 부분에 굴이 뚫려져 있는 자연석 바위이다. 앞에 들판이 펼쳐져 있어 바위의 굴이 보인다. 굴은 높이 20척(606㎝), 너비 12척(364㎝), 굴의 길이가 30척(9m)이나 된다. 굴바위는 충현서원(忠賢書院)의 창건자인 고청(孤靑) 서기...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귀산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고분. 귀산리 고분은 공주시의 북서쪽으로 약 8㎞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다. 고분은 해발 40m 내외의 나지막한 구릉의 남서사면 하단부에 입지한다. 주변에는 정안천에 유입되는 작은 하천이 있으며, 낮은 구릉과 평야지대가 잘 발달되어 있다. 귀산리 유적에 대한 조사는 1998년 공주~연기 간 국도...
-
일제강점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역사. 한국 역사에서 근현대라 함은 보통 일제의 대한제국에 대한 주권 침탈에 의한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1910년 8월부터 해방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시기까지를 말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는 크게 1910년대의 무단통치기, 1920년대의 문화정치기로 불리는 민족분열통치기, 1930년대 이후부터 1945년 일제 패망까지...
-
충청남도 공주 지역을 거쳐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에서 서해로 흘러드는 강. 국가 하천인 금강의 경우 하천 연장은 360.7㎞이고, 유로 연장은 397.79㎞이며, 유역 면적은 9,912.15㎢이다. 금강 기점의 계획상 홍수량은 1,520㎥/s, 홍수위는 272.46EL.m, 하폭은 125m이고, 종점의 계획상 홍수량은 14,320㎥/s, 홍수위는 4.62EL.m, 하폭은...
-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과 신관동을 연결하는 다리. 길이는 513.5m, 총 폭은 6.5m, 유효 폭은 5.8m, 높이는 12m이다. 경간 수는 14개, 최대 경간장은 67m이다. 상행과 하행 각각 1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강교는 1932년 일제강점기 하에서 충청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할 때 제공된 여러 건의 보상물 가운데 하나로 건립되었다....
-
2006년 여름 금강비엔날레의 개막에 앞서 내외국인 작가 60여 명이 내산리를 방문했다. 이들 작가들은 금강비엔날레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공주를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당시 금강비엔날레 주최 측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비엔날레의 취지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농촌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외국인들에게 농촌의 정취가 묻어나는 우리가락...
-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충청남도 공주에서 금강 수계를 이용하여 발달했던 수운. 조선시대에 공주 지역은 충청도 일대의 수위 도시로서 금강과 주변의 산지들이 방어 기지가 되는 군사적 요충지였고, 금강수운의 주요 하천 항구였다. 공주시의 주요 도시 기능 가운데, 교육과 교통 기능의 원형은 대체로 일제강점기에 부여된 것인데, 이는 조선시대의 도시 기능과도 관련되어 있다. 조선시대...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시민 공원. 공주시가 공주 지역주민들의 여가 생활 및 체육 활동에 기여하고자 1996년 11월 21일에 착공하여 1998년 11월 20일에 금강시민공원을 준공하였다. 금강시민공원의 부지는 157,000㎡이다. 11,103㎡의 꿈나무야구장, 14,133㎡와 7,350㎡ 의 축구장, 배구장, 3,684㎡의 족구장, 농구장,...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활동하는 여성 문인들의 단체. 공주 지역 여성 문학 작품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동인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동시에 공주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향유권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1992년 10월 9명의 여성 문인들이 동인지 발간을 기획하고 출간하면서 공주 지역의 첫 번째 여성 문학 단체로 출발했다. 초대 회장으로는 김현주가 취임했으며,...
-
선사시대에 강은 지리적으로는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고, 문화와 문화를 연결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금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와 낮고 완만한 구릉들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선사시대 이래로 생활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고, 이러한 금강을 따라 펼쳐진 선사 유적은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상을 보이고 있다. 금강 유역에서 조사된...
-
한국자연미술가협회 야투가 충청남도 공주시 연미산에서 격년으로 주최하는 국제 미술제. 자연 미술의 발상지인 공주와 금강을 토대로 개최되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자연, 예술, 문화의 트라이앵글을 형성하여 상호 유기적 발전을 모색해 왔다. 즉, 예술적 측면에서는 자연 현장에서의 새로운 예술적 표현의 가능성을 열었으며, ‘미술을 통한 자연, 환경 그리고 인간’이라는 비엔날레의...
-
1950년 7월 12일 충청남도 공주에서 미 8군 제24사단이 금강철교를 폭파한 사건. 금강철교(일명 금강교)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준공되었으며, 당시 한강 이남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하자 6월 27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중앙 정부를 대전으로 이전할 것을 결정하였다. 중앙 정부가 대전으로 이전하자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의 피난민이...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금대리에 있는 평야. 우리나라의 자연 취락은 대부분 전면에는 평지와 하천을, 후면에는 산을 둠으로 배산임수의 형태를 취해 입지해 왔다. 이 중 전면의 평지는 보통 해당 지역 또는 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금대들도 그렇게 지어진 명칭 중 하나이다. 금반형의 명당이 있는 곳에 세워진 마을이라 하여 금대리라 지어졌으며 전면의 평야를 금대들이라 부르...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발견된 철이나 청동 등 쇠붙이나 석재에 기록한 글씨나 그림. 금석문은 보통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를 뜻하며, 넓게는 나무·토기·그릇·직물·전돌·기와 등에 기록된 문자를 포괄하여 부르기도 한다. 역사 연구에 있어 고문서 등의 기록과 함께 특히 주목되는 자료이다. 금석문의 기록을 통해 지역의 지명·인명(행적)·연대 및 건립 경위와 주체 등을 확인할 수...
-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제민천 상의 교량. 길이는 96m, 총 폭은 12m, 유효 폭은 11m, 높이는 8m이다. 경간 수는 3개, 최대 경간장은 32m이다. 상행과 하행 각각 1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성교는 공주 지역구시가지를 남북 방향으로 종단하면서 흐르는 제민천(濟民川)에 건설되어 있는 여러 개의 교량들 가운데의 하나로서 1993년 준공되었다....
-
1907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립된 최초의 금융 기관. 각 지방의 금융조합은 1907년 ‘지방금융조합규칙’에 의해 설립되어 조합원을 상대로 농업 자금 저리 대부와 민간 저축 업무를 실시하는 일종의 지방은행이다. 금성금융조합은 1907년 11월에 설립되었다. 설립 시기의 업무 구역은 공주·회덕·정산·청양·노성·은진·석성·부여·연산·진잠 등이고, 조합장은 신태준, 이사는...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자방리(正子方里), 산성리(山城里), 허문리(許門里), 교촌리(校村里), 송산리(宋山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금성리라 하고 주외면(州外面)에 편입되었다. 1938년 공주읍에 편입되어 금성정으로 불리다가 1947년 금성동으로 개칭하였다. 1986년 공주읍이 공주시로 승격되면서 공주시 금성동이 되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유림들이 결성한 한시 동호회. 한시를 통해 옛 성현의 가르침을 오늘에 되살려 세상을 교화하고, 한시의 명맥을 발전, 부흥시킴으로써 전통 문화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1964년 7월에 결성되었다. 초대회장에 송호(松湖) 노원선(盧元善), 부회장에 은산(隱山) 박노성(朴魯聲)이 추대되었다. 초기 회원들은 공주와 그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유림과 한...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조선 말기에 공주군 남부면(南部面) 지역으로, 자기소(瓷器所)가 있어서 사기막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지막골, 금학골, 학동이라 하였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학동, 하선리(下仙里), 지막동(止幕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금학리라 하여 주외면(州外面)에 편입되었다. 1938년 주외면이 폐지되어 공주읍에 편입되고...
-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조 광배. 금학동 사지란 현재의 공주교육대학교와 공주여자고등학교의 북쪽에 있는 절터와 금학동 탑골로 불리는 지역을 함께 지칭한다. 이곳에서는 통일신라 때의 석탑 부재와 우물 뚜껑, 그리고 석재의 소탑과 와당 등이 출토되었다. 금학동 사지 석불광배 역시 이 부근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위...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생태 공원. 금학생태공원은 갑사(甲寺), 계룡산, 고마 나루, 공산성(公山城), 금강, 마곡사(麻谷寺), 무령왕릉(武寧王陵), 석장리 풍경, 창벽(蒼壁)과 더불어 ‘공주 10경’ 중 하나로 꼽힌다. 오랫동안 공주 시민의 수원지 역할을 했던 금학동 주미산 계곡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공주 시민의 수원지 역할을 했던 금학동...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대기 현상의 종합적 평균 상태.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은 6~16℃ 분포로 지역차가 매우 큰 편이며, 산악 지대를 제외한 연평균 기온은 10~16℃이다. 연중 가장 무더운 달인 8월의 평균 기온은 25℃이고, 가장 추운 달인 1월의 평균 기온은 -0.7℃이다. 연 강수량은 남부 지방이 연평균 약 1,500㎜ 이고, 중부 지방이...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김갑순은 1872년(고종 9) 5월 김현종(金顯宗)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김갑순은 그의 부친과 형님의 요절로 13살 때인 1884년(고종 21)에 호주가 되었다. 김갑순은 조선 말기에 내장원봉세관(內藏院捧稅官)을 거쳐, 1906년에는 공주군수, 1911년 아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김갑순은 1914년 충청남도 참사(參事...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이선(而善)이다. 공주의 예안김씨 입향조(入鄕祖) 김숙량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김해이다. 예안김씨가 공주에 정착하게 되는 배경은 조선 초기 당진감무(唐津監務)를 지낸 김숙량(金叔良)이 공주이씨를 후처로 맞이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예안김씨는 입향 초기부터 공주 지역에서 사족으로서의 위치를 굳혀 간 것으로...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수철은 1894년(고종 31)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공주 영명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2일과 3월 15일 공주 지역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고, 김수철은 이에 자극받아 영명학교 교사인 김관회·이규상·현언동과 졸업생 김사현, 재학생 오익표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계...
-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문신. 순천김씨는 원래 순천에 세거하였던 성씨였으나 김종서의 조부 김태영(金台泳) 때에 이르러 공주에 세거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世宗實錄)』과 『단종실록(端宗實錄)』의 여러 기사를 통해 공주에 김종서의 집과 농장이 있었으며 선대의 묘도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관은 순천(順天). 아버지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명장인 절재(...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있는 김옥균의 출생지. 김옥균 선생 유허는 조선 말기 개화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옥균[1851~1894]이 태어난 곳이다. 김옥균은 본관이 안동, 자는 백온(白溫), 호는 고균(古筠) 또는 고우(古愚)로 정안면 광정리에서 태어나 6살까지 살았다. 현재 감나무골이라 불리는 김옥균 선생 유허는 부근 일대에 경작지만 있을 뿐, 마을은...
-
고려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인주이씨 이허겸(李許謙)의 사위이다. 현종(顯宗)의 왕비인 원성왕후(元成王后)·원혜왕후(元惠王后)·원평왕후(元平王后)의 아버지이자 정종(靖宗)의 외조부이다. 고려 성종(成宗) 때 견관승(甄官丞), 목종(穆宗) 때 어주사(御廚使)를 거쳐 현종 초에 공주절도사(公州節度使)가 되었다. 1011년(현종 2)에 거란의 침입으로 현종이 나...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희원(希元)이고, 호는 사계(沙溪)이다. 할아버지는 지례현감 김호(金鎬)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김계휘(金繼輝)이다.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우참찬 신영(申瑛)의 딸이고, 아들은 김집(金集)이다. 1578년(선조 11) 학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이 되고, 1581년 종계변무의 일로 아버지를 따라 명나...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절재(節齋)이다. 할아버지는 지평 김태영(金台泳)이고, 아버지는 공주에서 도총제(都摠制)를 지낸 김추(金錘)이며, 어머니는 성주 배씨로 대사헌 배규(裵規)의 딸이다. 3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1405년(태종 5) 식년시(式年試)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김종서(金宗瑞)[1383~1453]는 여러...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대교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대교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종서의 묘. 김종서는 조선 단종 대의 충신으로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절제(節齊),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공주 의당면 월곡리에서 출생한 것으로 전하는데, 1405년(태종 5)에 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어린 신왕 단종을 보위하다, 1453년(단종 1)...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김종서의 생가지. 김종서 유허지가 있는 의당면 월곡리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이자 명장이며 절의인으로 이름 높은 절재(節齋) 김종서(金宗瑞)의 생가 터와 김종서를 배향하던 사우 요당서사(蓼塘書社)가 있던 마을이다. 김종서는 천태산 아래 하월곡리에서 태어났다. 죽은 후 이곳 천태산 아래에 묻었다가 장기면 대교리 밤실로 이장하였다...
-
조선 중기 열녀. 본관은 금성(錦城). 아버지는 참봉 나열(羅悅)이고, 남편은 정유재란 때 공을 세우고 순절한 김충수(金忠秀)이다. 본래 나주김씨는 전라남도 무안에 세거하고 있었다. 공주로의 입향은 김충수의 장남 김천성(金天成)에 의해 이루어졌다. 『나주김씨대동보』와 나주김씨세거향비(羅州金氏世居鄕碑)에 의하면 무안에서 김충수와 김충수 처 금성나씨가 순절한 이후 자식들은...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대학리 굴덕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인 김충수의 처 금성나씨의 정려. 공주에서 부여로 가는 국도 651호선 ‘백제큰길’을 따라 약 23㎞ 가다 보면 96번 도로와의 연결 지점이 있다. 이때 96번 도로로 들어가면 대학리 입구가 있는데 대학리 굴덕 안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구릉지에 있다. 김충수 처 금성나씨 정려는 원래 전라...
-
822년(헌덕왕 14) 웅천주에서 김헌창이 일으킨 난. 김헌창(金憲昌)[?~822]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주원(金周元)이다. 김주원은 선덕왕(宣德王) 6년에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의 왕위 계승 경쟁에서 패한 후 정계에서 물러났으나, 780년(혜공왕 16)에 일어났던 정변에서 큰 공을 세운 덕에 아들 김헌창은 정부에 참여 할 수 있게 되었다....
-
충청남도 공주에서 행해진 여자 아이들의 안방놀이. 꼬대각시는 신내림을 활용하는 놀이로 무속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평소에 하지 못하였던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소녀들은 즐거워했으나 신내림을 풀지 못하면 신병을 얻거나 심한 경우 정신분열증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다 하여 어른들은 꼬대각시 놀이를 금기시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른들 몰래 숨어서 꼬대각시 놀이를 했다고 한다...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의 교회. 꿈의교회는 한국의 침례교회 중 가장 먼저 설립된 교회이다. 1896년 6월 미국 엘라싱 선교회 소속 선교사인 폴링 목사 일행이 공주시 반죽동에 선교 스테이션을 마련한 것이 공주침례교회의 시작이다. 폴링 목사에 이어 스테드맨, 엑클스, 엘머 선교사가 2진으로 들어오며 교회의 기틀을 세웠다. 1901년...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남산 2리 송정골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거석 기념물. 공주시에서 국도 40호선으로 부여 방향으로 가다가 탄천면 삼각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지방도 799번을 따라 4.2㎞ 남짓 가다 보면 남산리로 진입하는 소로가 나온다. 남산리 선돌은 공주시에서 남서 방향으로 18.6㎞ 정도 떨어진 공주시와 부여군의 경계에 인접한 남산 2리에 위치한다. 농...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성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남이웅(南以雄)[1575~1648]의 영정을 보존하고 있는 영당. 남이웅 집안에는 남이웅의 사직상소에 대해 인조가 내린 불윤(不允)의 비답 문서 12장, 1648년(인조 26) 좌의정으로 승진하였을 때의 교지(敎旨) 등이 남아 있다. 또 남이웅이 소현세자와 청나라에 다녀왔을 때의 필사본 일기인 『노정기(路...
-
부전동의 지세와 형국으로 보아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문헌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부전동에 살았던 주민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조선초기부터이다. 태종조에 당진감무를 지낸 예안김씨 김숙량(金叔良)이 확인가능한 부전동 최초의 입향조(入鄕祖)이다. 입향동기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으나 아마 김숙량이 공주이씨를 후처로...
-
공주 지역에 처음 뿌리 내린 강화최씨는 최덕준(崔德峻)이라는 인물에서 시작되었다. 강화최씨가 부전동에 정착하게 된 것은 이미 부전동에 자리잡고 있던 예안김씨와의 혼인관계를 통해서였다. 즉 최덕준이 김석견(金石堅)의 사위가 되면서 강화최씨들은 공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공주의 강화최씨를 일명 뜸밭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후 강화최씨들은 지금까지 내산리를 비롯한...
-
내산리는 과거 수백 년간 ‘뜸밭[浮田洞]’이라고 불리우던 큰 마을에 속해 있다. 뜸밭은 공주에서 예산(청양) 방면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가면 연미산 터널을 지나자마자 왼쪽에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지역으로, 오늘날의 행정구역상으로는 우성면의 한천리·내산리·도천리·신웅리의 4개 리, 15개의 자연촌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전동의 남쪽 끝에는 연미산과 채죽...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계회(季晦), 호는 국재(菊齋)이다. 공주의 만경노씨 입향조(入鄕祖) 노혁의 5대손으로,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삼의사(三義士) 중 한 명인 노응탁(盧應晫)[1555~1592]은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진사과(進士科)에...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시회(時晦), 호는 체헌(棣軒)이다. 공주의 만경노씨 입향조(入鄕祖) 노혁의 5대손으로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삼의사(三義士) 중 한 명인 노응호(盧應皓)[1574~1592]는 임진왜란 때에 조헌(趙憲)이 일으킨 의병을 따라 두...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명원(明遠), 호는 수암(守庵)이다. 공주의 만경노씨 입향조(入鄕祖) 노혁의 5대손으로,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삼의사(三義士) 중 한 명인 노응환(盧應皖)[1555~1592]은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는데,...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운암리에 있는 나루. 현재 공주시 이인면 운암리에 속한 나루로 북으로는 이인면 검상리의 새나루와, 남으로는 이인면 운암리 소맹동과 이어져 있다. 현재 공주에서 부여를 잇는 백제큰길 가에 있으며, 조선시대에 놋점나루를 건너 공주시 우성면 어천리로 갔으며, 어천리를 통해 청양군 목면 방면으로 갈 수 있었다. 옛날 이곳 놋점나루가 있던 운암리 놋점에는...
-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에서 농악대들이 들고 다니는 두레를 상징하는 깃발. 농기는 농악대들이 들고 다니는 두레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농기를 만드는 두레의 여건에 따라 각각 다른 농기를 세웠으며, 여기에 딸려서 붙는 물품 또한 달랐다. 공주 지역의 농기에는 각기 다른 서열이 있다. 1. 용담기 서열이 최상위인 용담기는 고장을 대표하는 경우에 한하여 제작한다. 예를 들어 면(面...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토지를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길러 생산물을 얻어내는 경제 활동. 농업은 토지를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사육하여 의식주에 필요한 자재를 생산하는 인간의 경제 활동 중 가장 기본이 되는 1차 산업이다. 농업은 유기적인 생물을 생산하기 때문에 토지와 기후 등 자연 조건에 크게 좌우되며 그 방법과 내용은 시대와 지역에...
-
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절 터. 공주-논산 간 국도변 오른쪽의 공주시 월성산이 남쪽으로 흐르는 신기동 뒷산 해발 160m 지점 계곡 사이에 있다. 현재 능엄사지로 알려진 곳에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능엄사(陵奄寺)라는 암자가 있는데, 이 사찰의 건립 과정에서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작은 불상 3구가 발견되었고,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이...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과 신기동의 경계인 능치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능치(陵峙)는 금학동과 신기동의 경계 지점으로 공주시의 남동쪽에 위치한다. 능치 고분군은 월성산이 남쪽으로 길게 흘러내린 능선의 남동사면에 위치하며, 신기동 고분군과 마주하고 있다. 따라서 신기동 고분군과 능치 고분군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지형이 구분되고, 조사 시기가 다르다는 점에 근...
-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에서 불리던 사설조의 짧은 소리. 단가는 판소리에 비하여 짧은 사설이라는 의미로 일컬어지던 소리이다. 공주 지역은 다양한 단가가 불리었던 판소리 중고재의 고장이다. 1970년대 이전에는 한 마을에 2~3명의 소리꾼들이 단가를 불렀으며, 마을의 정서도 단가 한 자락은 해야 점잖은 소리꾼 대접을 받았다. 더구나 판소리의 단대목을 즐겨 불러 단가화가 된 소...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토축 산성. 단지리 토성의 축조 경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다만 위치나 성내에서 출토된 유물을 감안해 볼 때 백제 웅진시대에 축조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공주 지역에 있는 다른 산성들과 마찬가지로 왕도 웅진을 방비하기 위해 외곽에 배치된 산성으로 여겨진다. 공주시내에서 예산, 청양 쪽으로 가는 국도 36호선을...
-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단평역은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존재하였던 조선시대 중요한 역참이다. 역참은 주요 도로 30리마다 존재하였으며, 단평역은 공주의 다른 역참인 이인역·경천역·광정역·유구역과 함께 중요한 도로 교통망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은 여섯 곳이니 일신·광정·경천·이인·단평·유구이다.”라고 기록되어...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분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선비인 박경래를 제향하는 사우. 대도사는 원래 재실이었으나, 1955년부터 박완식(朴完植), 박기대(朴基大) 등의 후손들과 구행서(具行書), 이계철(李啓哲) 등 공주·부여·논산의 유림들이 박경래의 유덕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대도사 건립을 발의, 3년여의 준비 끝에 1958년 건립되었다. 공주에서 4...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대산리 안소랭이에서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산제와 노제. 대산리 안소랭이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호환을 막기 위해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의 신격은 ‘복주산신령’이다. 산제를 지내기 열흘이나 일주일 전에 공양주를 선출하여 음식 장만과 제사를 주관하도록 한다. 제비는 동계 기금으로 충당한다. 동계 기금은 마을에 있는...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대성리 안골에 있는 백제시대로 추정되는 고분군. 대성리 고분군은 공주시 우성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1㎞ 정도 떨어진 대성리 대문안의 남쪽에 동서 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능선상에 위치한다. 대성리 고분군은 1986년 공주 지역일원을 대상으로 한 문화재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당시 지표상에서 고분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에 있는 대종교의 교사(敎司) 기관. 대종교에서 교무행정을 담당하는 교사(敎司) 기관으로는 대일각 아래에 총전교의 명령을 집행하는 총본사가 있고, 총본사 아래에 각 도의 도본사사 있으며, 도본사 아래에 지사가 있고, 지사 아래에 시교당이 있다. 공주시의 대종교 시교당은 공주 지역에서 대종교의 선교를 담당하고 있으며, 2005년 현재...
-
충청남도 공주시 검상동 검상농공단지 내에 있는 대주중공업의 스테인리스 강관 제조공장. 1988년 설립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해온 대주중공업이 인재 육성,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 등 고객의 만족과 풍요로운 미래를 위하여 2001년 5월 대주중공업 공주공장을 건립하였다. 1988년 대주개발을 설립하였다. 1990년 수출·입 면허 취득을 시작으로, 1994년 항만 운송 사업...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과 반죽동을 연결하는 다리. 대통사 앞에 있는 다리라 하여 대통다리 또는 대통교(大通橋)라고 부른다. 길이는 18m, 총 폭은 15m, 유효 폭은 9m, 높이는 2.6m이다. 경간 수는 2개, 최대 경간장은 9m이다. 상행과 하행 각각 1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옛날에는 선화당(宣化堂) 앞에 있던 다리로서 자연석의 홍예(虹霓)로 되어 있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사람이나 차가 다니는 비교적 넓고 큰 길. 공주시 지역은 과거 수로 교통이 발달하였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철도 교통과 도로 교통이 급격히 발달하였다. 1933년 건설된 금강교는 공주가 철도 교통 대신 도로 교통의 중심으로 다시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공주시의 도로 포장률은 국도 100%, 지방도 78.7%, 시·군도 57.7%로...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도서를 비롯한 각종 기록 정보를 모아 보관하고 일반인에게 열람시키는 시설. 도서관은 단순하게 도서(圖書), 출판물, 디지털 자료 등 각종 지식 정보 매체를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이나 지역 주민들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발표회, 전시회,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하여 새로운 도서관 문화를 창출해 나가는 정보 문화 중심...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상용리에서 생산하는 토마토.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가지과의 한해살이풀로 일본에서 개발된 토마토 품종으로 1992년부터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상용리에서 생산을 개시하였다. ‘도태랑’이라는 말은 일본어로 ‘감’을 의미한다. 일본 육종연구소에서 새로운 품종의 토마토를 개발하면서, 감처럼 빨갛게 익었을 때 따는 토마토라 하여 도태랑토마토라 명명되었다....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한 활동가. 일제강점기 공주 지역에서는 만세 시위운동, 동맹 휴교 투쟁, 사회 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민족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다. 1935년의 조선총독부 자료에도 이러한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주로 3·1운동 연루자인 「보안법」 위반자가 80명, 「치안유지법」위반자가 15명, 소작 쟁의나 노동 쟁의와...
-
충청남도 공주시 지역의 특정 지역이나 수역(水域)에 사는 동물. 공주시는 한반도 중부 지방에 위치하며 공주시를 동서로 가로 질러 금강이 흐르고 있다. 또한 공주시의 남쪽에는 백두대간 중 금남정맥의 끝부분에 해당되는 곳에 계룡산[845.1m]이 있다. 공주의 상징인 계룡산은 북방계에 속하는 식생과 일부 남방계의 식생이 혼재하는 곳으로 다양한 식생과 함께 다양한...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해마다 열리는 마라톤 대회. 2002년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시민 마라토너들을 위해 안면도마라톤대회가 개최되었다. 공주시는 2003년 1월 준공된 공주~부여 간 백제큰길을 기념하고 마라톤 인구의 저변 확대를 통한 공주시의 체육 위상을 높이고자 안면도마라톤대회를 옮겨와 개최하기로 하였다. 2003 동아일보백제마라톤대회는 9월 28일 개최되었다. 코스...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전평리에 있는 자동차용 동력 전달 장치 제조공장. 동아전기부품은 1996년 자동차용 전장 부품 부문과 자동차용 레지스터 부문에서 ISO 9002를 획득하였고, 와이어 하니스 부문에서 100PPM 품질 인증을 획득하였으며 자동차용 레지스터 부문에서 ISO 9001을 획득하였다. 또한 모든 동아전기부품 아이템에 QS 9000 인증(독일 TU...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었던 축구 동호회 성격을 띤 체육 단체. 1918년 회장 김응근을 비롯하여 청년과 학생 약 70여 명을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일제강점기에 공주는 충청남도 도청 소재지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학교가 설립되어 충청남도의 다른 지역보다 근대적 체육 보급이 빨랐다. 1918년 조직된 축구 모임인 동우단은 군내는 물론 예산과 논산 등 주변 지역에 원정 경기를...
-
공주시에서 동원 1리 원골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매우 쉽다. 공주에서 예산으로 이어지는 32번 국도를 따라 25㎞, 자동차로 30분 정도 가면 만나게 된다. 공주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금강을 왼쪽으로 바라보면서 32번 국도를 달리면 연미산 터널을 만나게 된다. 최근에 새로 건설되어 개통한 연미산 터널은 공주시와 우성면이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길게 이어진 연미산 터널을 지나...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집안에 여러 가지 동토가 났을 때 올리는 민간 의례 문화. 일반적으로 동티로 발음하며, 흙을 잘못 다룸으로써 지신(地神)이 노하여 가족에게 병을 앓게 한다는 뜻이다. 흙 이외에도 집안의 나무를 베었다든지, 집을 고쳤다든지, 또는 밖에서 물건을 집안으로 들여놓았다든지 하는 일로 집안에 우환이 생겼을 때에 실행한다. 이 환자가 동토에 의한 것인지는 생...
-
1894년 9월 재봉기를 선언한 동학농민군은 서울로 북상하기 위해서는 중부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라 할 수 있는 공주를 점령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 전봉준이 이끄는 주력 부대와 손병희의 북접 부대가 결합한 동학농민군 연합 부대는 논산에 집결하여 공주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하였으나, 2차에 걸쳐 전개된 공주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척왜’와 ‘보국안민’의 기치 아래 전개된 동학농민혁명이...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공주목사가 정무를 집행하고 공사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 동헌은 조선시대 지방 관아에서 고을의 원(員)이나 현감(縣監), 병사(兵使), 수사(水使), 감사(監司) 및 그 밖의 수령(守令)들이 주재하는 건물로 정무(政務)를 집행하고 공사(公事)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을 말하며, 대청을 이르기도 한다. 지방의 일반 행정 업무와 재판 등이 동헌에서...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동혈사가 있는 천태산은 ‘동혈산(銅穴山)’, 혹은 ‘동혈산(東穴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절 이름도 지금처럼 ‘동혈사(銅穴寺)’로 부른 것 외에 『신증동국여지승람』·『공산지(公山誌)』에는 ‘동혈사(東穴寺)’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이것은 동혈사가 공주 지역의 혈사(穴寺...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농사일을 공동 작업으로 수행하던 마을 단위의 조직. 두레는 촌락이나 리(里) 단위에서 일을 함께 하기 위해 구성되는 노동 조직을 의미한다. 현재 공주 지역에는 두레가 완전히 소멸되어 몇 개의 두레가 활동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1960년대까지는 두레가 살아 있던 마을이 많았고, 공주시의 267개 행정리 가운데 838개가 자연마을을 이루...
-
충청남도 공주에 전해 내려오는 두레에서 파생된 민속놀이. 두레란 농촌에서 서로 협력하여 공동 작업을 하는 풍습, 또는 이를 위하여 마을 단위로 구성한 조직을 이르는데, 주로 마을 전체의 모내기, 김매기, 벼베기, 타작 등 농사의 전 과정에 해당된다. 일반적으로 두레의 유래에 대해서는, 고대 씨족 공동 사회에서 찾는 견해가 많다. 삼한시대에 농사의 시작과 끝에 행하던 음주...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두미에는 조선시대 행인의 교통 편의를 도와주던 인저원(仁儲院)이 있었다. 두미는 마을이 주변 산의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에 위치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차령산맥의 높은 산줄기가 두미를 둘러싸고 있으며, 산지는 온통 밤나무 단지로 조성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신암문이와, 서쪽으로는 너분배와,...
-
2007년 새마을 지도자를 역임하고 있는 서수철씨는 동회장, 이장과 함께 마을의 3대표이자, 이장 부재시의 대리이며, 부녀회장님과 함께 마을의 대소사의 실무를 맡고 있다. 서수철 씨도 역시 이장님과 같은 이천서씨로 이후 이장님이 될 첫 후보자로 지목되고 있는데 이렇게 마을을 사랑하고 마을을 위해 준비된 지도자 서수철씨의 공암에서 생활했던 어린시절 이야기와 마을을 어떻게...
-
내산리는 공주에서 예산(청양) 방면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연미터널을 지나면 바로 우측에 길게 펼쳐져 있는 마을이다. 버스는 오전에 3번 오후에 3번씩 하루에 6번 운행하며 공주시내에서 내산·한천행 버스를 타면 15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곳은 400여 년의 전통과 음악을 간직해온 마을로 예전부터 ‘뜸밭’ 또는 ‘부전동’이라 불리었다. 지금도 내산리는 부전동계와...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하봉리 충렬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무신 유형 장군의 교지와 호패 각 1점. 유형은 진주유씨로, 자는 사온(士溫), 호는 석담(石潭)이다. 어려서부터 무예가 출중하여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과 강화도에서 공을 세우고, 1595년(선조 28)에 무과에 급제한 후 이순신의 휘하에서 노량대전에 참전하였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전투에서 승전하여...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부도군. 부도는 입적한 승려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문도들이 세워주는 기념물로서, 일종의 무덤이었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상당한 지위를 누렸거나 그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았던 고승들의 부도를 세웠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살아생전의 법계(法階) 및 지위와는 상관없이 문도들이 승려의 입적을 추모하고 명복을 빌...
-
공암리 주민들의 대표자가 되어 마을일을 보아온 역대이장님을 공암리 마을사람들은 잊지 않는다. 바로 공암리 마을회관 2층의 한 면을 그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공암리 이장단들은 자신들이 이장이 되었을 때 그리고 이장을 역임하고 있지 않은 때에도 마을의 중대사를 챙기고 농사와 마을의 공동 작업을 진행하는 역할을 맡았기에 때로는 마을의 어른으...
-
동원1리 일대는 역사적인 유래가 깊은 곳이다. 고려시대에는 큰 사찰이 있었고, 신풍현의 치소와도 관련이 있다. 그런 만큼 동원1리 원골에는 흥미로운 지명유래가 많이 전해진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원골’이란 마을명에서 나타나는 ‘원’에 관한 전설이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이 마을에 옛날 원님이 살았기 때문에 ‘원골’이라고 부르게...
-
현재 원골마을 동계장인 조창묵(70세) 할아버지는 원골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70년을 살아오신 분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이장직을 맡아 마을을 위하여 일하셨고, 현재는 동계장을 8년째 해오고 계신 조창묵 할아버지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할아버지의 살아온 일생을 정리해 본다. 조창묵 할아버지는 1938년(무인년)에 출생하였다. 할아버지는 원골마을의 대표적인 성씨인 풍양조씨...
-
공암 1리를 찾아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농촌풍경이 펼쳐져 있다. 특히 공주시내에서 공암으로 가는 강변도로는 금강과 함께 달릴 수 있어 경치가 더없이 좋다. 공암에 가려면 자가용이 아니라면 모두 버스만을 이용해야 하는데 시내버스로는 공주시내에서는 2, 5, 21번을 타고 15분, 대전 유성에서는 5번을 타고 10분이다. 또한 대전과 공주를 오가는 직행버스도 이곳에...
-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는 총 3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바로 중장 1리. 갑사의 아랫마을이다. 갑사 사찰은 계룡산 둘러둘러 골짜기마다 자리잡은 고풍스러운 여러 사찰 중 가장 으뜸되는 절이니, 매년 갑사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중장1리 마을을 지나고 있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계룡산을 등산하는 등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갑사에서 고개를 넘어...
-
내산리는 오랜 역사와 전통만큼이나 공부에 대한 열의도 대단했다. 마을사람들이 뜻을 모아 학교를 세운 것이다. 당시 마을 주변에는 초등학교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마을사람들이 학교를 만든 까닭은 오랜 학문적 전통과 애향심의 발로였다. 내산리는 일제강점기에도 민경식 씨가 운영하던 사설서당이 있었다. 이 죽계서당에서는 우리말 쓰기에서부터 고전을 주로 가르쳤다. 1961...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함을 유지하고 구성원의 화목을 도모하려고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니는 신앙체계. 마을신앙은 마을 의례 문화에서 제일 잘 나타난다. 한 마을만이 독립적으로 치르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여러 마을이 서로 합하여 마을 의례를 치른다. 그 의례의 자리와 형태로는 마을 입지의 배경이 되는 산을 모시는 산신제, 마을의 입구를 지키는 장승·...
-
공주는 전국 밤 생산량의 15%를 차지 할 정도로 산과 들에 밤나무가 가득하다. 정안면과 사곡면·이인면·우성면 일원에서 생산되고 있는 공주 밤은 토질과 기후 면에서 밤 재배에 적합하고 기술 수준이 높아 최고 품질의 밤으로 인정받고 있다. 내산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9월이 오면 본격적인 밤 수확이 시작된다. 내산리의 마을 지형은 무성산에서 발원하는 하천을 중심으로...
-
계룡산 북쪽 줄기의 고청봉이 바라보이는 아늑한 공암마을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재미난 이야기가 많다. 그 중 대부분은 풍수와 밀접하게 관련지어 내려오는 것들인데 이러한 이야기들은 마을의 터나 지리 등의 특색을 반영해 준다. 이 중 조사한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마을의 서북쪽 양지마을 도로가에는 아직도 300년 묵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솔고개인데,...
-
현재 동원1리에 살고 있는 78가구 178명의 주민들 가운데 제일 많이 거주하고 있는 성씨는 여주이씨와 풍양조씨 사람들이다. 여주이씨는 16호에 37명이 거주하고 있고, 풍양조씨는 10호에 22명이 살고 있다. 이 밖에도 평강채씨, 공산이씨, 전주이씨, 덕수이씨 등이 살고 있다. 원래 동원리 원골에는 공산이씨가 먼저 입향하여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동원리 원골마을에는 공산이씨...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마암리와 봉곡리에 걸쳐 있는 터널. 1997년 준공되었으며, 국도 32호선상에 있다. 마티터널은 말재(마치)에 있는 터널인데, 마티터널이 건설되기 이전에는 말재를 넘어 다녔다. 높이 6.9m, 길이 700m, 너비 8m인 왕복 4차선 도로이다. 마티터널은 짧게는 대전과 공주, 길게는 대전과 서산을 연결하는 국도 32호선의 중요 터널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만수리 고분군은 이인면 만수리 아랫만수동 북쪽에 위치한 산의 남사면 일대에 위치한다. 주변으로는 서북쪽에 금강이 있으며, 북서쪽 정상부에는 해발 172m의 개숭산에 백제시대 만수리 산성이 위치한다. 만수리 고분군은 1987년 백제문화개발연구원의 지원으로 공주사범대학 박물관에서 진행한 공주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산성. 산성인지조차 불분명한 만큼 축조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금강 변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금강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된 산성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금강 변을 따라 공주와 부여를 연결하기 위해 최근에 새롭게 개설한 것이 백제큰길이다. 공주시내에서 이 백제큰길을 따라 부여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만수리의...
-
1176년(명종 6)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의 주도로 일어난 민란. 무신 집권기에 들어서면서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 약화, 신분제의 변화, 지방관의 수탈 등이 원인이 되어 전국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났는데, 특히 소(所)는 특산물을 생산하여 국가에 공납하는 지역으로서 국가나 지방관에 의한 수탈은 다른 지역보다 욱 심각했다. 1176년(명종 6) 정월에 공주에 딸린 천민 마을인...
-
공암리에 있는 반포초등학교는 공주에 있는 초등학교 중 다섯 번째 설립된 학교요, 현재 반포면에는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로 일제치하 1921년에 세워져 올해로 85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곳의 현 구성은 1999년에 설립된 특수학급 1학급을 포함하여 7학급과 유치원 1학급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교원 14인, 일반직 1인, 기능직 4인으로 19인이 운영하고 있...
-
충청남도 공주시의 7개 지역에서 1970년대까지 일을 서로 거들어 주던 협동 노동 형식. 명 품앗이는 공주 지역에서 공동 작업으로 행하던 전통 사회 길쌈 공동체이다. 명은 무명천을 짜기 전 상태인 실을 일컬으며, 목화로 실을 뽑는 행동을 명 잣기라 한다. 명 품앗이가 이루어지는 시기는 가을 수확이 끝난 후 겨울 동안 행하며, 봄이 되어 들일이 시작되면 쉬었다가 음력 7월...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公山城) 안에 있는 명나라 장수의 송덕비. 명국삼장비는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년(선조 31) 가을 공주에 주둔하면서 군기를 엄히 단속하고, 주민을 정성껏 보살핌으로써, 왜군의 위협 하에서도 안전하게 생업에 안주할 수 있게 하였던 명나라의 장수 제독(提督) 이공(李公), 위관(委官) 임제(林濟), 유격장(遊擊將) 남방위(藍芳威)의 업적을...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 지역에 있었던 기독교 선교 학교. 명설학교는 충청권에서는 최초의 근대 학교라는 점에서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1896년에 미국 감리회의 한국선교연합회에서는 수원과 공주를 한 구역으로 묶어서 스크랜톤(W.B. Scranton)을 구역 담임자로 임명하였다. 당시 공주를 선정한 이유는 공주에 충청남도의 관찰부(현 도청)가 소재해 있었기 때문에...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정안면·우성면에 걸쳐 있는 산. 무성산의 산봉에는 돌로 쌓은 산성이 있는데, 고려 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무성산에는 홍길동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는데, 홍길동과 그 누이동생이 장사였다고 한다. 서로 그 힘을 겨루기로 하고 홍길동은 서울까지 갔다 오는 것으로, 동생은 성을 쌓는 것으로 내기를 했다 한다. 동생이 성을 다 쌓을 무렵 어머...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한천리 무성산 정상부에 있는 시대 미상의 석축 산성. 한천리 주민들은 홍길동이 축성하였다고 전하는데, 실제로 홍길동이 축성하였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 따라서 앞으로 발굴 조사를 통해 축성 시기가 밝혀져야 산성의 축성 배경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공주 지역에서 예산으로 통하는 국도 36호선을 타고 12㎞쯤 가면 사곡면 면...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남아 있는 원시 종교. 무속신앙(巫俗信仰)은 외래 종교인 불교·유교·기독교의 상대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샤머니즘을 무속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 이는 샤머니즘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종교적 현상으로 전래하여 왔기 때문이다. 여하튼 무속신앙을 크게 외래 종교의 대칭어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19세기 굿의 대표적 기록물인...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행해지는 몸짓을 통해 사상·감정·감각·정서 등을 율동적으로 표현하는 예술. 무용은 인간이 취락 집단을 형성하면서부터 자연에 대한 외경(畏敬)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종교 의식이나 무속 행사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후 왕권 정치가 확립됨과 더불어 오늘날과 같은 무용 본래의 개념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궁중에서는 전문...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안양리와 방흥리 사이에 있는 산. 우리나라의 전통 취락은 대체로 산과 강을 끼고 있는 배산임수의 형태로 발전해왔으며, 이에 따라 산과 강 그리고 마을의 이름을 비슷하게 공유해온 경우가 많다. 묵방산도 그와 마찬가지로 인근의 묵방 또는 먹방리와 명칭을 공유하고 있다. 묵방산 남동쪽에 묵방소류지가 있으며, 그곳에 먹방리가 있는데 마을에 선인...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하는 예술 및 그 작품. 공주 지역 문학의 시발은 중앙의 신문학이나 인근 도시인 대전보다 많이 뒤진다. 1950년대 중반에야 주로 공주사범대학의 교수와 학생을 중심으로 싹이 터서 2세대, 3세대로 확대·발전해 나갔다. 공주의 문학을 말함에 있어 공주의 문학과 공주의 문인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
-
충청남도 공주시 출신의 문인들에 의해 조직·운영되는, 문학 활동을 하는 단체. 공주시의 문학단체는 공주사범대학교의 교수·학생·지역문인들의 혼합 구성체였던 ‘시회’로부터 출발한다. 이 모임은 정식 문학단체라기보다는 공부하는 모임에 가까웠다. 단체의 구성 요소라 할 임원진이나 규약, 기관지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수한 의도와 문학적 열의만은 높게 평가...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문화 예술을 공연·전시할 수 있는 장소 및 시설. 충청남도 공주시의 문화 시설은 크게 공연 시설, 전시 시설, 지역 문화 보급 및 전수 시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공연 시설로는 공주문예회관이 있으며, 전시 시설로는 국립공주박물관, 임립미술관, 무령왕릉모형전시관, 석장리 박물관, 충청남도 산림박물관,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계룡산 자연사박...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문화 예술 활동 관련자 또는 동호인들이 결성한 단체. 문화 예술 단체는 문학·미술·음악·무용·연극·사진·서예·연예·영화 등 문화 예술의 여러 영역에 걸쳐 다양한 종류·규모·형태 등으로 결성될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문화 예술 관련 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공주 지역의 문화 예술 단체들은 각자 고유의 독자적인 활동을...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옛사람들이 남겨놓은 유·무형의 자산. 공주 지역은 60여 년간 백제의 왕도로서 역사상 특별히 부각되고 있고, 공주 공산성이나 무령왕릉 같은 유적들이 그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공주의 역사는 비단 백제시대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백제의 왕도였다는 사실에 비해 더 길고 오랜, 그리고 복잡한 역사의 흔적들이 공주 지역에 남아 있...
-
충청남도 공주시 지역에서 행해지는 색채를 이용하여 표현하는 예술의 한 분야.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산천, 그리하여 예부터 청풍명월의 고향이라 일컬어지던 충청남도의 중심부에 있는 공주는 후박한 인심과 찬란했던 백제 문화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천혜의 예술적 토대와 여건을 갖춘 곳이다. 특히 세계 고고학 사상 가장 중요한 발굴 사례로 손꼽히는 무령왕릉의 발견은 그...
-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민간에서 오래전부터 믿어온 신앙. 충청남도 공주시는 행정 구역상 유구읍의 1개 읍(邑)과 금학동을 비롯한 6개 동(洞)과 계룡면을 비롯한 10개 면(面)으로 편성되었다. 역사적으로는 공주 석장리 구석기유적에서 보듯이 석기시대부터 삼한을 거쳐 백제시대의 수도이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충청남도 지역의 중심적 도시로 발전하여 왔다. 지리적으로는...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전승되는 민간인의 생활풍속. 민속은 범주가 아직 학술적으로 정립되지 못한 개념이다. 2002년에 간행된 『공주시지』에서는 민속 항목을 민속사회·세시풍속과 민속놀이·민간신앙·축제·설화·지명·전통 예술·민속 음악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민속사회에서는 의생활·전통복식·식생활·주생활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세시풍속과 민속놀이에서는 사계절에 따른...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전승되는 공예 기술 및 작품. 일반적으로 민속 공예는 수공업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며 우리나라에서는 민속 공예와 비슷한 의미로 방물(方物)·토산(土産)·물산(物産) 등의 용어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는 민속 공예가 실용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의미이나 실용적인 가치보다 세공이나 장식성과 같은 예술적인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면 일상생활 용품의 차원을...
-
충청남도 공주 일원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는 민중들의 놀이. 충청남도 공주시는 행정구역상 유구읍의 1읍, 금학동을 비롯한 8개 동, 계룡면을 비롯한 10개 면으로 편성되었다. 역사적으로는 석장리의 구석기 유적에서 보듯이 석기시대부터 삼한을 거쳐 백제시대의 수도로,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충청남도의 중심적 도시로 발전되어 왔다. 지리적으로는 계룡산과 금강을 비롯하여...
-
상장마을에는 진씨 가문의 정려인 여흥민씨 열녀문이 있다. 여흥민씨는 어려서부터 효녀로 이름났다. 겨우 열세살 어린나이에 병든 부모님을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드려 부모를 살려냈을 정도였다. 부모에게 효성스러웠던 그 고운 마음은 열일곱에 삼척진씨 진철규(陣喆奎)[1788~1805]와 결혼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남편이 몹쓸병에 걸려 죽게되자, 결국 진씨...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민영선은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인물로 조선 말기 주사와 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 말기 명화학교에 기부금을 냈으며, 공주청년회 주관 자선행사에 후원금을 기부 하는 등 공주 지역사회 발전에 관심이 높았다. 민영선 1920년 6월 성보영 등과 함께 남선흥업주식회사(南鮮興業株式會社)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남선흥업주식회사는 일제강점...
-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에서 민중들이 일상적인 삶을 통해 불러온 전통적인 노래. 공주는 충청남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고장이다. 지리적인 여건으로 볼 때 북서쪽의 차령산맥권과 동쪽의 계룡산권과 남쪽의 평야 지대로 나뉜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지역에 따라 다른 성질의 민요가 도입되었다. 북쪽으로는 경기 민요의 영향을 받아 경조의 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동쪽의 계룡...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고개. 고개가 밋밋하여 민목재라 부르기도 한다. 계룡산 국립공원 안에 있으며 황적봉과 관암산 사이에 있다. 공주 지역에는 남북 방향으로 발달한 산지가 많은데 밀목재는 이러한 산지들 사이에 위치한 약 270m 정도의 높이의 고개이다. 금강의 지류인 용수천의 계곡 상류부에 해당된다. 밀목재는 반포면 학봉리와 계룡시 남선면 용동...
-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국악인. 박동진은 1916년 7월 12일에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태어나, 2003년 7월 8일 세상을 떠났으며, 인간문화재로 선정되기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다. 또한 많은 수상을 받게 됨에 따라 국악 하면 박동진, 판소리 하면 박동진으로 잘 알려진 공주 지역에서 배출해 낸 걸출한 인물이다. 박동진의 학력은 대전공립중학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
-
충청남도 공주시 무릉동에 있는 판소리 후진을 양성하는 판소리 전수관. 우리 전통의 소리인 판소리의 전승 맥을 이어가기 위한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1998년도에 건립된 판소리 전수관이다. 박동진판소리전수관은 판소리 다섯마당(「적벽가」, 「춘향가」, 「수궁가」, 「심청가」, 「홍보가」), 성서판소리(「예수전」), 단가, 남요민요 등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공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벌인 공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동맹휴학과 반일 가두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하였다. 그 후 공주고등보통학교 학생 김순태(金淳泰), 공주소년연맹 위원장 안병두(安炳斗) 등과 함께 반전운동을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1932년 3월 5일경 영명학교(永明學...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박산소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박산소 고분군은 공주시의 서북쪽에 있는 송산리 고분군에 인접한 지역에 위치한다. 현재 고분군 주변으로는 웅진동 고분군이 밀집되어 분포한다. 고분군이 위치한 지역은 남쪽의 해발 205m 서열봉에서 서북쪽으로 흘러내린 능선 하단부의 동사면에 해당한다. 1964년 국립공주박물관에 의해 1기의 고분이 수습 조사...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 입향한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아버지는 박이검(朴而儉)이다. 박인손의 손자인 박정제(朴廷濟)는 1624년 이괄의 난 때 어가를 호종하여 공신녹권(功臣錄卷: 공신 전체의 공적과 상훈을 기록한 문서)을 받음으로써 공신 집안으로 유명해졌다. 원래 박인손은 전라남도 영암에 살았다. 후손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박이검과 박인손 부자가 영암에 가기 위하여 공주...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에 있는 동학사·유성·공암으로 향하는 삼거리 길목을 일컫는 지명. 박정자라는 명칭은 18세기에 마을에 살던 밀양박씨들이 심은 많은 느티나무 가운데 행인이 쉴 만한 정자나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박정자 삼거리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먹뱅이골 또는 묵방산이라고 불리는 지역인 계룡산에 속한 장군봉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공암으...
-
충청남도 야구협회가 매년 공주에서 열고 있는 초등학생 야구 대회. 박찬호기전국초등학교야구대회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체육 육성 및 야구의 저변 확대와 전국의 야구 꿈나무를 발굴·육성한다는 취지로 2000년 박찬호의 고향인 충청남도 공주에서 개최되었다. 행사는 대한야구협회가 주최하고 공주시, 공주시 체육회, 충청남도 야구협회가 주관하였다. 행사는 개막식에 이어 참가한...
-
1932년 2월 28일 충청남도 공주에서 김순태, 노수남 등이 반제국주의의 내용이 담긴 격문을 살포한 사건. 1929년 대공황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위기에 처하고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대중들의 생활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일제는 공황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고 조선의 민족 운동과 사회 운동을 탄압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이후 전반적으로 학생 운동이 침체되는...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는 백제시대에 공주 제민천 돌다리 교각 밑에 받쳐두었던 초석.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원래 초석이 있던 자리가 대통사지의 남동쪽으로, 인근에 당간지주가 있어 대통사로 통하는 다리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처음 만든 시기는 대통사가 건립된 백제 때였을 것으로 보인다. 가로, 세로 각각 1m 정도의 화강석 위에 교...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특유한 언어나 언어적 용법. 충청남도 공주시는 백제의 고도로서,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중앙에 도심지역과 외곽지역에 농촌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도·농 통합형 도시이다.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앙부이며 충남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즉 동쪽으로 대전광역시와 연기군, 서쪽으로 청양군과 예산군, 남쪽으로 부여군과 논산시,...
-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 공북루 앞 구 금강철교 동쪽에 있던 배를 엮어 만든 다리. 배다리는 과거에 하천에서 배를 엮어 다리로 이용하던 것이다. 배다리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전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조선 후기 정조의 화성(華城) 행차를 위해 한강에 설치한 경우가 있다. 일제강점기 공주는 시가지 정비·관청 시설 설치·교통 시설 설치 등 도시 기반 시설을 확충하여 근대 도시로...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 있는 봉우리. 백운봉은 도덕봉[534m]의 남쪽 줄기에 해당하며, 공주시와 대전광역시가 만나는 남동쪽 경계에 있다. 계룡산계에 속하는 봉우리로서 화강암계 암석 중 하나인 복운모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는 금수봉, 남쪽으로는 관암산과 이어지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금강의 지류인 용수천이 곡저 충적지를 형성하며 흐르고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운암리에 있는 산. 흰바위가 있어 먼 데서 보면 흰 구름과 같이 보인다 하여 백운산이라 한다. 공주와 그 일대의 지형과 수계는 지질구조선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 예로서 금강을 들 수 있는데,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시작하는 금강은 북쪽으로 흐르다가 충청남도 연기군에서부터 지질구조선을 반영하여 각 구간별로 유로를 변경하게 된다. 공주시가지...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서 공주시와 부여군이 격년으로 번갈아가며 백제의 4대왕을 추모하는 제사 의식. 백제 4왕 추모제는 충청남도의 대표적인 향토 축제인 백제문화제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로 백제 전성기 무렵의 4대왕으로 문주왕(文周王)·삼근왕(三斤王)·동성왕(東城王)·무령왕(武寧王)을 추모하는 행사이다. 1955년경부터 2007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백제문화제 추진 단체. 백제 문화 예술의 진흥과 고귀한 문화 유산을 계승·발전시키고, 매년 개최되는 백제문화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창립되었다. 1955년 백제문화제가 열린 부여에서 백제대제집행위원회가 구성되었고, 1966년부터 공주에서도 백제문화제가 개최되면서 공주와 부여를 종합하는 백제문화제위원회가 조직되었다. 1977년부터 1...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백제 불교 연구 단체. 백제불교사상연구회는 백제 불교의 연구 및 공주와 대전 지역의 불교 활성화를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0년대에 갑사의 주지였던 승려 장곡의 주도로 충청남도와 대전광역시 및 공주 지역의 불교학자와 일반인들이 모여 백제불교사상연구회를 설립하였다. 백제불교사상연구회는 소재지를 대전광역시 중구 대사동 산 2 로 옮기면서 2...
-
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과 금성동을 연결하는 다리. 길이는 725m, 총 폭은 25.6m, 유효 폭은 18.5m, 높이는 21.2m이다. 경간 수는 18개, 최대 경관장은 70m이다. 상행과 하행은 각각 2차선이다. 백제큰다리는 공주 지역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교통 흐름을 원활히 하기 위해 2001년 준공되었다. 공주시는 2007년 11월 백제큰다리...
-
충청남도 공주에서 전해 내려오는 품격을 매긴 두레 농기. 공주 지역에서는 두레 및 마을의 상징인 농기(農旗)에도 품격과 벼슬이 있었다. 이 말은 이웃마을의 농기에 대해 상대적으로 서열이 있다는 것인데, 공주 지역에서 일원적으로 서열을 정하는 순서를 보면 첫째가 청룡이나 황룡 또는 쌍룡이 그려진 용담기(龍膽旗)로서 몇 개 공동체 마을을 대표하는 농기이며, 둘째는...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병든 사람을 진단·치료하고 질병의 예방과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및 시설. 의료 기관은 ‘의료법’ 상 규정된 종합 병원·병원·치과 병원·한방 병원·의원·치과 의원·한의원·조산소 등을 가리킨다. 이 중 종합 병원은 의사 및 치과 의사가 의료를 행하는 곳으로서 입원 환자 8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진료 과목이 적어도 내과·일반외...
-
1636년(인조 14) 12월 2일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침략으로 발생한 전쟁.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형제의 의’를 맺은 이후 조선은 후금(後金)과 무역뿐만 아니라 일정한 정도의 공물을 바쳐야만 했다. 그러나 후금은 만주의 대부분을 석권하고 만리장성을 넘어 명(明)의 북경 부근까지 공격하면서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의 의’을 ‘군신의 의’로 고치자고 요청을 해올 뿐 아니라, 종...
-
충청남도 공주시 소학동 보통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보통골 고분군이 위치한 지역은 공주의 동쪽에 위치한 월성산이 북쪽으로 뻗으면서 금강의 남안에 형성된 산곡이다. 고분군은 계곡의 동쪽 산기슭에 분포되어 있다. 보통골 고분군은 이미 1930년대 개괄적으로 조사된 바 있으며, 이후에도 학술적 필요에 의해 조사 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보흥리 안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보흥리 안골 고분군은 우성면소재지에서 청양 방면으로 약 2.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형성된 능선의 동남사면 하단부에 해당하며, 현재는 산림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흥리 안골 고분군은 1986년 문화재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이후 구체적인...
-
충청남도 공주시 오곡동과 이인면 목동리 사이에 있는 산. 봉우리가 매우 수려하고 복스럽게 생겼다 하여 복귀산이라고 한다. 복귀산은 높이가 185m이며, 이인면과 오곡동 경계에 있고, 구절산 남쪽 능선에 있다. 구절산과 동일하게 반상쇄층편마상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형적인 구릉성 산지이다. 남쪽 능선을 따라가면 안골산과 거묵바위산으로 이어지며, 서쪽 능선을...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조선시대의 통신 수단. 봉수제도는 변방의 다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군사적 목적으로만 사용하였다. 봉수대는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횃불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횃불 3개, 국경을 침범하면 횃불 4개, 전...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에 있는 산. 봉수는 높은 산정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횃불로써, 낮에는 연기로써 변경의 정세를 중앙에 급히 전달하는 군사 통신 조직이다. 공주를 비롯한 전국에는 봉화가 위치해 있던 많은 산과 봉우리들이 있으며, 그 예로 이곳 정안면뿐만 아니라 금학동과 이인면 등을 비롯한 전국의 다른 여러 지역에도 비슷한 이름의 산과 봉우리들이 많이 분포...
-
충청남도 공주시 봉정동 새재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공주시의 남쪽으로 약 1㎞ 정도 떨어진 거리에 봉정동 새재가 있다. 이 마을의 북서쪽으로는 금강에 연결된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봉정동 고분군은 마을 동북쪽에 있는 해발 205m의 서열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남서사면 구릉 중하단부에 위치한다. 봉정동 고분군은 1975년 공주사범대학 박...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 있는 산. 봉화란 나라에 병란이나 사변이 있을 때 신호로 올리던 불이다. 전국의 주요 산정(山頂)에 봉화대를 설치하여 낮에는 토끼 똥을 태운 연기로, 밤에는 불로 신호를 하였는 데, 상황에 따라 올리는 횟수가 달랐다. 공주를 비롯한 전국에는 봉화가 위치해 있던 많은 산과 봉우리들이 있으며, 그 예로 이곳 의당면뿐만 아니라 금학동과 정안면...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공주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 석재로 만든 사자 모양의 조각품. 사자는 호랑이와 더불어 맹수의 왕이다. 강인한 남성을 상징하기도 하고, 온갖 잡귀를 막아주는 수호의 상징물로서, 문양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사자를 응용하여 조각물이나 문양을 만들어 붙여두면 사악한 기운과 잡귀가 침범하지 못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러한 사자의 상징성으로 인...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는 산. 봉우리가 수려하여 마치 봉황새가 알을 품은 형국이라 하기도 하며, 봉황산을 이루고 있는 능선의 형태에 따라 뒤쪽은 봉산, 앞쪽은 황산이라 하여 봉황산이라 불리운다. 봉황산은 공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릉성 산지 중 하나로 높이가 147m이며, 금강 남쪽에 위치해 있는 공주시가지에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으로 운모편암으로 이루...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신라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존속한 특수한 지방 하급 행정 구획. 우리나라 전근대 사회에 존속하였던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부곡 집단은 조선시대 이전인 고려시대의 부곡 집단이다. 고려시대는 부곡 이외에도 소(所)·처(處)·장(莊) 등 특수한 집단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공주 지역에서 부곡과 관련된 큰...
-
부전동은 공주에서 예산(청양) 방면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약 4㎞로 정도 가서 왼쪽에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지역으로 오늘날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공주시(公州市) 우성면(牛城面)의 한천리(韓川里)·내산리(內山里)·도천리(道川里)·신웅리(新熊里)의 4개리, 15개의 자연촌락으로 되어 있다. 본래 부전동은 ‘뜸밭 열두동네’라 하였던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크고 작은...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부전동 뜸박 열두동네에서 음력 10월 초이튿날 지내는 마을 제사.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부전동에는 무성산 골짜기를 중심으로 여러 마을들이 위치하는데, 이를 사람들은 ‘뜸박 열두동네’라고 부른다. 여기서 ‘열두동네’란 한천리(상·중·하)·내산리(안골·경석골·동석리·중말)·도천리·신웅리·월미리·영천리(2개 마을) 등의 마을을 말한다. 부전...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 부조묘는 불천위(不遷位)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다. 예부터 종갓집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위로 4대에 해당하는 선조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되어 있었다. 문제는 제사를 모시던 자가 죽은 경우인데, 죽은 후 그 후손은 뒤를 이어 제사를 모실 때 죽은 이를 포...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분강리와 부여읍 저석리의 경계 지점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백제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분강·저석리 고분군은 부여에서 8㎞, 공주에서 16㎞ 떨어진 지점인 능선에 위치한다. 이 능선은 금강에 맞닿아 있는 해발 120.5m의 산으로 고분군은 능선 상부에서부터 남쪽 경사면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한다. 분강·저석리 고분군은 일찍부터 알...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분강리와 부여읍 저석리의 경계 지점에 있는 분강·저석리 고분군에 속하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분강·저석리 고분군은 부여에서 8㎞, 공주에서 16㎞ 떨어진 부여~공주 간 국도의 북쪽 지점인 능선에 위치한다. 이 능선은 해발 120.5m의 산에서 서쪽으로 금강변까지 점차 낮아지다가 서남쪽으로 꺾여 금강을 따라 이어진다. 분강리 돌널무덤은 금강...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보흥리에 있는 자연 마을. 이 마을에서 곡식이 많이 나질 않아 식량이 부족하여 살기가 분하고 원통하여 분토골이라 한다. 분토골은 옛날에 부자 마을이었다. 하루는 노승이 시주를 얻으러 왔는데, 마을에서 쌀 한 되 주지 않고 내쫓았다. 이에 중이 중얼거리자, 마을 사람은 더 큰 부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시주하리라 했다. 중이 말하기를 마을에 있...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석가모니(釋迦牟尼)를 교조로 삼고 석가모니가 설(說)한 교법(敎法)을 종지(宗旨)로 활동하는 종교. 불교라는 말은 석가모니인 부처가 설한 교법이라는 뜻과 부처가 되기 위한 교법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교·이슬람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인 불교는 석가 생전에 이미 교단(敎團)이 조직되어 포교가 시작되었으나 교세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불교 관련 단체. 불교단체라는 범주 속에는 다양한 단체들이 포함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사찰을 중심으로 조직된 승려들의 수행 공동체인 승가를 대표적인 불교단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에도 불교의 교리를 학습하거나 불교 수행법을 실천하기 위하여 승려와 신도들이 조직한 단체, 불교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응하거나...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불교 교리에 의한 예배의 대상을 시각적 조형 매체를 통하여 표현한 상. 일반적으로 불상이란 부처의 상을 통칭하는 말이나 넓은 의미로는 불교와 관련되는 모든 상, 즉 부처의 상을 비롯하여 보살상(菩薩像)·천부신장상(天部神將像)·명왕상(明王像)·나한상(羅漢像) 등이 포함된다. 삼국시대 낙랑이 멸망하고 고구려의 국력 강성으로 인해 백제는 475년 한성에...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도남리와 장기면 금암리를 연결했던 다리. 길이는 420m, 총 폭은 14.5m, 유효 폭은 13m, 높이는 10m이다. 경간 수는 8개, 최대 경간장은 95m이다. 상행과 하행은 각각 1차로이다. 불티교는 2002년에 준공되었다. 불티교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남리 충청남도 산림박물관과 금강 대안의 지방도 96번을 연결하는...
-
내산리 마을회관 에서 안골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면 4기의 비석과 만나게 된다. 1기는 이상한 모양의 돌이라 하여 괴석(怪石)이라하고 그 옆에 괴석의 내력을 담은 비석이 있다. 방형의 화강석 위해 93㎝의 높이로 세워져 있는 이 괴석은 전주이씨의 부전동 입향조인 이세장과 관련이 있다. 부전동의 전주이씨는 한재 이목이 김수손의 사위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선현이나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는 곳. 사당은 제사를 드리는 의례 공간으로 가족 차원에서는 가묘(家廟), 국가 차원에서는 종묘(宗廟)라고도 한다. 또한 서원이나 향교를 비롯한 학문 공동체나 지역 사회에서도 제사를 드리는 의례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에 전래된 주자학과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조선시대...
-
조선 중기 공주 지역의 정치와 사상의 흐름을 주도한 양반 지식인 세력. 공주 지역은 지리적으로 호서 지방의 중앙에 위치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비중이 더욱 심원하다. 공주 지역은 오랜 역사를 지낸 고도일 뿐만 아니라 고려 말 조선 초 이후로는 유서 깊은 유향으로서 청주, 충주 등과 더불어 호서 사림의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계룡산과 금강을 배경으로 천험의 지형...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용봉리에 있는 산. 사마 장군(司馬 將軍)이 놀았다 하여, 또는 그 모양이 상어같이 생겼다 하여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 공주의 지형은 대체로 지질구조선을 반영하고 있으며, 금강 역시 지질구조선을 반영하여 역암대가 들어서 있는 공주시가지와 연미산 부근에서 남서 방향으로 유로를 변경하여 흐르게 된다. 사마산은 그 역암대에 위치해 있는 산으...
-
538년(성왕 16) 백제 제26대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긴 사건. 고대 사회에서 도읍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이다. 천도는 곧 중심지의 이동이며, 지배 세력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렇기에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의 평양 천도 이후 국내성에 거주한 귀족들의 반발이나 신라 신문왕(神文王)의 달구벌(현 대구) 천도 실패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 지배 세...
-
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 아랫사송정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현재 공주 사람들은 사송정을 공산이씨(公山李氏)와 연관된 정자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송정이 위치한 아랫사송정에 충절사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 기록인 『희암선생집(希菴先生集)』을 보면 사송정은 여주이씨 이상의(李尙毅)[1560~1624]에 의하여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1871년 간행...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남아 있는 절 터. 사지(寺址)는 과거 완전한 형체를 갖춘 사찰이었으나 기둥을 포함한 사찰의 상부구조가 멸실되고 기단, 초석, 적심시설 등 하부 구조만 남아 있는 사찰의 터를 말한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는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사지(寺址)가 남아 있다. 백제시대 공주에는 흥륜사, 대통사, 수원사, 옹산사 등이 창건되어 있었던 것...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불상을 모셔 놓고 공적으로 불교 신행을 행하는 장소. 사찰은 절, 사원(寺院), 정사(精舍), 가람(伽藍)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우기를 피해 한 곳에 모여 생활을 하는 공동 주거지의 성격을 띠었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종교 의례를 행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변모하였다. 충청남도 공주는 475년(문주왕 원년) 백제의...
-
조선 말기에는 유서깊은 사찰의 사하촌마다 신도계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의 사찰은 배불정책과 맞물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았으므로 조선 말기에는 사찰 자체적으로 재정을 유지하기 위해 승려와 신도가 함께하는 신도계를 결성하였던 것이다. 갑사의 경우 어떤 종류의 사찰계가 있었는지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다만 가까운 공주의 마곡사 불량계(佛糧契), 동학사 지...
-
충청남도 공주시를 단위로 독자적인 문화와 제도를 갖고 공동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 조직. 사회란 지역사회가 처해있는 사회적 상태, 즉 나이·성별·인종·종교 등 인구학적 조건이나 조직 사회의 조건과 사회적 계층을 포함한 사회 구조의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역 사회의 삶의 질과 관련된다. 일반적으로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고조된다. 삶...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시행되고 있는 국민의 생활 향상과 사회 보장을 위한 광범위한 사회 정책. 사회 복지는 교육, 문화, 의료, 노동 등 사회 생활의 모든 분야와 관계되는 조직적인 개념으로 ‘사회복지법’, ‘생활보호법’, ‘아동보호법’ 등의 법률에 기초를 두고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의 ‘사회보장기본법’에서는 사회 복지의 범주를 사회 보험, 공공 부조, 사회 복지 서비스 등으...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사회 변화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전개하는 집단적 행동. 사회 운동은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기존의 자원 배분 상태·사회 규범·가치 체계의 변혁, 의식이나 사상의 개혁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활동이다. 대부분의 사회 운동은 노동 운동·농민 운동·여성 운동·환경 운동·인권 운동 등과 같이 기존 사회 질서의 개량이나...
-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에 있는 제민천 상의 교량. 길이는 23.25m, 총 폭은 16m, 유효 폭은 15m, 높이는 4.5m이다. 경간 수는 1개, 최대 경간장은 23.25m이다. 상행과 하행 각각 1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성교는 공주 지역 구시가지를 남북 방향으로 종단하면서 흐르는 제민천(濟民川) 상에 건설되어 있는 여러 교량들 가운데의 하나로서 2003년...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산정리 오얏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공주시 신풍면과 유구읍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신풍면 산정리가 있다. 산정리 고분군은 산정리 3구 쇠실의 북쪽에 있는 산의 동남사면 하단부에 위치한다. 산정리 고분군은 1986년 문화재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당시는 주민의 전언과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는 고분 석재를 기초로 고분군...
-
1920년 충청남도 공주군 탄천면 삼각리에서 활동하였던 농촌 진흥 운동 단체. 1916년경부터 충청남도는 도내 마을 단위의 진흥회가 조직되어 풍기 개선, 산업 개선, 부업 장려, 저축 장려, 납세 장려, 교육 보급, 부인회 조직, 위생 개선, 도로 개수 등의 사업을 전개하였다. 일제에 의해 추진된 진흥회는 1930년 12월 말 충청남도 내 175개 면 2,356개 리에 2,132개...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출산과 육아를 관장하는 집안의 봉안신. 삼신은 세칭 삼신할머니라고 한다. 삼신은 아이의 점지(點指)에서부터 태(胎)를 보호하고, 아이의 성장과 15세까지의 양육을 맡는 신이다. 아기 출생 후와 산모 해산 후 가장 중요한 시기인 21일(삼칠일) 동안은 미역국과 메를 지어 삼신께 먼저 정성을 올린 후 먹었으며,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 백일이나 돌을 맞이하여...
-
과거 공암리의 경제 생활권은 1950년대 공암장이 섰던 때를 제외하면 마을과 인접한 공주장이나 유성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공암장이 섰던 곳은 현재 보건소가 있는 자리로, 4일장과 9일장이 열렸다. 이후 공주·유성의 상설 시장과 대형 마트가 생기고, 1997년 마티터널이 완공되어 개통됨에 따라 공주와 대전으로의 이동 거리가 짧아지면서 생활소비권이 빠른 속도로 확대 되었다. 현재의...
-
갑사 입구의 상가촌은 어느날 갑자기 형성된 것도 아니고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여러사람의 피땀어린 노력이 있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 역시 공주와의 인연으로, 갑사와의 인연으로 상가촌 형성 이전부터 이곳에 모여 식당을 차리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계룡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갑사 입구에는 작은 식당이나 잡화점, 그리고 여관 등이...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사람이 죽은 후 장사 지내는 예법.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 수반되는 모든 의례가 상례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마지막 통과하는 관문이 죽음이고, 이에 따르는 의례가 상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상례를 가장 중요한 예법으로 간주해 왔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죽음을 단순히 인간의 생물학적인 활동의 정지가...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상을 당했을 때 입는 옷. 상례는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수반되는 모든 의례를 말하며, 장사지낼 때 입는 복식을 상례복이라 한다. 상례복에는 상이 났을 때 죽은 사람이 입는 옷인 수의와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하여 입는 옷인 상복이 있다. 공주 지역 수의의 특징은 도포의 마련과 착용이다. 남자는 환갑 때 삼베로 도포를 특별...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큰 둠벙이 있어 신소(莘沼)라고도 부르며, 신소골 위에 위치하여 상신소(上辛沼) 또는 상신(上莘)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반포면(反浦面) 지역으로, 1914년 반포면의 상신리라 하였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가 되었다. 상신리의 남부와 서부·북부에는 각각 해발 고도 700여m...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서 정월 초이틀과 시월 초사흘, 정월 열 나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서 치러지는 산신제는 일 년에 2회로, 정월 초이틀과 시월 초사흘에 치러지며, 거리제는 일 년에 1회, 정월 열 나흗날에 치러진다. 상신리는 토질이 척박하고 지형이 험한 자연촌락이어서 예전부터 밭농사에...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물품 매매업. 상업은 넓은 의미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재화의 사회적 유통 활동을 지칭한다. 따라서 사회적 유통 활동을 촉진·조성하는 금융업, 운송업, 보험업, 창고업 등도 넓은 의미로는 상업에 포함된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의 상업은 단지 상인의 영리 목적에 의해서 행하여지는 재화의 매매 활동만...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상여를 마련하기 위한 계. 상여계는 조선시대 향촌공동체를 중심으로 모아진 자생적 생활 문화 조직이다. 상여의 운반 및 무덤터 다지기, 묘 쓰기 등 장례에 관계되는 일을 하는, 두레 형식을 모방한 공동조직이다. 상여계는 마을과 상여의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데 보통 20~30가구 안팎으로 이루어진다. 운구와 산역에 따른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상여계에...
-
충청남도 공주시 상왕 2동 큰목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 공주에서 동쪽으로 약 4㎞ 떨어진 거리에 상왕동이 있다. 이곳은 금강의 남안 지역이면서 계룡산 줄기가 서북으로 이어진 산지에 포함된다. 상왕동 고분은 큰목골이라 불리는 계곡의 가장 북단부에 있는 해발 50m 미만의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조사된 고분은 북쪽으로 전개된 구릉이 약간 동쪽으로 틀어지면서 남향...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에 있는 계곡. 상원계곡의 계류는 인근에 있는 유구읍의 유구천과 연계되어 있다. 유구천은 금강 권역의 금강 수계에 속하며, 금강의 제1지류이다. 유구천은 정안천, 대교천과 함께 금강에 합류되는 공주권 3대 하천의 하나이다.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하며 구간 곳곳에 50개에 달하는 보(洑)가 있다. 그 중 낚시가 가능한 20곳 중 꽃보...
-
2007년 1월 1일, 내산리 마을 사람들은 시린 손을 비벼가며 새벽부터 분주하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미산 정상에 올라 한바탕 풍물을 연주하기 위해서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행사를 해돋이 축제라 부르고 있다. 5시 30분경 연미산에 도착한 풍물회원들은 저마다 장구와 북을 짊어지고 둥근 해가 떠 주기를 희망하며 가파른 산을 올랐다. 게다가 빈약한 풍물회의 재정으로 간단한 먹거리도...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마을을 지켜 주는 서낭신[성황신]을 모셔 놓은 신당. 공주 지역에서는 서낭신이 토지와 마을을 지켜 주는 마을신으로서 알려져 있다. 서낭신은 일반적으로 성황신이라고도 불리지만, 원래 서낭신과 성황신은 달랐다고 한다. 서낭신은 우리의 신명이고 성황신은 중국의 군사적인 신명이었으나, 고려시대에 군사적 목적으로 결합되면서 성황당(城隍堂)과 혼합된...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서덕순은 1892년(고종 29) 2월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서덕순의 부친 서한보(徐漢輔)는 조선 말기 관리출신으로 1901년 중추원 의관, 1911년 공주군 참사를 지낸 인물로 1890년경부터 대지주로의 면모를 갖추었다. 서덕순은 조선 말기 명화학교(明化學校)를 다니다가 1910년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1913...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서범순은 1895년(고종 32)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서한보(徐漢輔)는 조선 말기 관리출신으로 1901년(고종 38)에 중추원 의관, 1911년에 충청남도 공주군 참사를 지낸 인물로 1890년경부터 대지주로의 면모를 갖추었다. 서범순은 공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30년 말 기준으로 205㏊의 토지를 소유한...
-
서울 출신 조순자씨는 스무살에 공주 사람을 만나 결혼하여 중장리 삼거리마을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과 중장마을의 분위기를 비교한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하루에 한두번 동네에 들어오는 버스는 물론이고 신문과 TV가 없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를 시골동네. 그저 벌레소리 새소리만 들려오는 조용한 세상이었다. 답답했다. 나물조차 뜯어본 적이 없는...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학문 연구와 선현제향(先賢祭享)을 위하여 설립된 조선시대 교육 기관. 서원은 주로 조선 중기 이후에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 운영 기구이다. 서원의 명칭은 당(唐)나라 현종 때 서적 편수처이던 여정전서원(麗正殿書院)·집현전서원에서 유래하였고 제도로 정해진 것은 송(宋)나라에 들어와서이다. 특히 주자가 도학연마의 도...
-
공암 입구에서 서원마을로 약 50미터 들어가면 마을의 산 증인 서인호 씨 댁이 나온다. 서인호(남, 82세) 씨는 마을에서 가장 연세가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수립 이후 첫 행정사무가 시작되면서부터 마을의 대표자로 지금까지 마을과 함께 하고 있다. 서인호 씨 댁의 대문은 현재 검은 철 대문으로, 대문 바로 밖에는 서인호 씨의 유일한 농토가 자리한다. 그...
-
반포면사무소 건너편에 위치한 소방서의 뒤편으로 대전~공주 간 32번 국도의 보행자 전용 육교의 아래쪽에 부안임씨[1886~1935] 정려가 있다. 정려(旌閭)란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충신(忠臣)·효자(孝子)·열녀(烈女)·열부(烈婦)등의 행적을 기리고 풍속을 교화하기 위해 그들이 살던 고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한 것을 말한다. 정려에는 충·효·열 중 한 글자...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 있는 계룡산 연봉 중의 하나. 봉우리가 돌로 되어 있어 석봉이라 불리운다. 계룡산의 상당 부분을 이루고 있는 홍색장석화강암 위에 놓인 석봉은 계룡산의 주봉인 천황봉[845.1m]으로부터 북동쪽에 있는 봉우리이다. 동학사계곡의 입구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 금강의 지류 중 하나인 용수천이 흐르고 있다. 석봉은 반포면의 남부에...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석송리 안말에 있는 정자. 공주에서 정안IC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2.73㎞ 가다보면 오른편에 석송리가 나온다. 석송정은 석송리의 남쪽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석송정은 인조가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내려오는 길에 잠시 쉬어 갔던 곳이다. 당시에는 소나무 아래 바위만 있었는데 지방 유림들이...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장암리에 있는 구석기 유물 박물관. 공주 지역의 구석기 문화의 역사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이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지 사적을 보존하고 전시하기 위하여 1991년 12월 전시관 설계를 완료하였고, 1996년 4월에 설계 승인을 받았다. 1997년 3월에 공사를 착공하였으며, 19...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선사시대부터 근세에 이르는 거석 기념물의 한 종류. 선돌은 자연석이나 자연석을 일부 다듬어 세워 놓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고인돌과 조합을 이뤄 세워 놓은 것도 있다. 선돌의 연대를 추정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지역에 따라 다르다. 서유럽의 경우에는 신석시시대 후기부터 시작하여 청동기시대에 유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선돌에 성혈(性穴)을 새겨 놓...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발견된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의 유적과 유물. 선사시대는 역사시대와 대비되는 시대 구분 용어로, 일반적으로 문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기, 즉 구석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까지를 포함한다. 우리나라의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를 비롯하여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로 구분된다. 공주 지역은 남쪽과 북쪽에 높은 산이 많고, 시가지를...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는 민담·전설·신화의 총칭. 공주 지역 설화를 살펴보면 신화는 거의 없고 전설과 민담이 전승되고 있는데, 이도 백제사 및 계룡산과 관련이 깊다. 또한 공주가 한양과 가까운 관계로 정치사와 관련된 설화가 적지 않은데, 예를 들면 이괄의 난으로 인한 인조의 공주 파천 등이 그것이다. 1992년에 구중회가 『공주민속』에서 설화를 정...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개신교의 한 교파. 성결교(The Honyness Church)는 19세기말 미국에서 감리교의 창시자이자 영국 성공회 사제였던 웨슬리의 완전주의적 입장을 강조하며 형성된 교파이다. 중생(重生)·성결(聖潔)·신유(神癒)·재림(再臨)을 4중 복음으로 내세우고 불세례 체험과 성결의 은혜를 강조한다. 한국에서 성결 운동의 모체가 된 교회는 1901년 일본...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창작 오페라단. 충청남도와 대전 지역의 오페라 문화를 개척하며 우리나라 창작 오페라 활성화 및 창작 오페라 세계화 운동을 전개하여 우리나라 오페라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창단되었다. 충남오페라단이 민간(백기현, 공주대학교 교수) 주도로 1991년 창단되었다. 오페라 공연에 필요한 기업의 후원과 독지가의 후원을 구하는 과...
-
충청남도 공주시에 분포하고 있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시설. 성곽(城郭)이란 내성(內城)과 외곽(外郭)을 함께 가리키는 말이다. 시가지 전체를 에워싼 나성(羅城)을 ‘곽’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곽의 안쪽에 또 다른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독립된 공간을 ‘성’이라고 한다. 나라를 뜻하는 ‘국(國)’이라는 말이 성곽[口]을 창[戈]으로 지키고 있는 형...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천주교의 종교 의식이 행해지는 회당. 교회법상의 성당은 하느님 경배를 위해 지정된 거룩한 건물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본당(parish, 신부가 상주하는 지역 신자들의 공동체) 혹은 천주교(Catholic church)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공주 지역의 성당은 1897년 5월 8일에 설립된 공주본당(公州本堂)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성리 고인돌은 탄천면소재지에서 부여 방향으로 약 2㎞ 정도 거리의 성리에 위치한다. 유적의 북쪽 전방으로는 서쪽으로 흘러 금강에 유입되는 하천이 있으며, 하천변에는 나지막한 구릉과 평평한 충적지대가 잘 발달되어 있다. 고인돌이 위치한 지역도 주변의 지형 환경과 동일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성리...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동일한 인물을 시조로 하는 성들. 우리나라에서 성씨가 발생한 것은 단군시대부터라고 하며, 중국 제도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고조선 때에 왕족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귀족 관료층을 중심으로 성씨가 일반화되고 고려시대에 본관 제도가 확립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 본관제의 의미는 퇴색된 채 동일한 성은 본관이 다르더라도 거성(巨姓)의 본관...
-
삼국시대 백제 제26대 왕.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성왕은 무령왕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맏아들이라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성왕은 무령왕의 맏아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513년 8월 무령왕의 아들 순타태자(淳陀太子)가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왕의 맏아들은 위덕왕인데, 554년에 29세였다고 『일본서기』에 되어...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용성리에 있는 산. 성항산(城項山)이라 불리우기도 하는 데, 국립지리원에서 1961년 4월 22일 성정산(城頂山)으로 고시하였다. 특별한 유래는 찾아볼 수 없었으나, 둘레 약 800m나 되는 백제시대의 용산성(龍山城)의 성 터가 남아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성이 있던 산이라 하여 명칭 그대로 성정산이라 불리우게 된 것으로 추측된...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경(子敬), 호는 동주(東洲)이다. 시조는 고려 때 중윤(中允)을 지낸 성인보(成仁輔)이다. 6대조는 이헌(怡軒) 성여완(成汝完)으로, 고려 말에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내다가 조선 태조가 등극하자 포천의 왕방산에 은거하면서 삭망 때면 송악을 바라보고 통곡하면서 스스로 왕방거사라 칭하며 고려를 잊지 않는...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집을 지키고 보호하는 성주신에게 올리는 굿거리의 하나. 성주는 성조(成造)·상량신(上樑神)·대주(垈主)라고도 불리는 가신(家神)으로, 민간신앙에서는 가신 중에서 상위의 신명으로 개념되고 있다. 공주 지역에서는 보통 10월 상달에 성주를 위한 의례로서 성주받기(성주굿)를 행하였으나 근래 들어 거의 맥이 끊긴 상태이다. 새로 집을 짓거나 이사를 할 때 임...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 공주에서 국도 40호선 ‘백제큰길’을 따라 부여 방면으로 가다가 공주시와 이인면 경계에서 4㎞ 정도 가면 도로 오른쪽에 오룡리 숭선군 묘로 가는 문화재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1.5㎞ 정도 들어가면 오룡리 마을회관 뒤편에 있다. 남편이 죽은 후 자결한 김원발(金源發)의 처 성주이씨(星州李氏...
-
아랫마을로 조금만 내려가도 평지가 넓고 양지바른 곳이라 농사가 잘된다 하지만, 중장1리는 다르다. 아랫동네보다 연평균 기온이 낮고, 산 그림자로 볕이 드는 시간이 짧은데다 농토는 좁다. 그러나 아무리 농사짓기 어려운 환경이라도 해도 중장리는 농촌마을이었다. 대대로 농사를 지어왔고, 지금도 토박이들은 벼농사를 주업으로 삼고 있다. 동네에서 제일 넓은 경작지를 소유한 사람은 진대섭씨로...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사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마련한 1년 12달에 베푼 의례. 세시풍속은 집단적으로 매년 정월부터 섣달까지 춘하추동 자연의 변화와 순환에 맞추어 동일 양식의 관습적 생활방식이 되풀이되는 월중 행사이다. 매월 보름마다 절기(節氣)를 두어 자연의 변화를 인식했으며, 매월 특별한 이름을 지닌 명절(名節)을 두어 삶에 변화를 주었다. 정월의 설 명절,...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전기의 가마. 세조대왕연은 조선시대에 세조가 타고 다니던 가마로 마곡사를 방문할 때 쓰인 것을 절에서 보관해 온 것이다. 왕이 거둥[擧動]할 때에 타는 가마를 ‘연(輦)’이라고 한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공주에 은신하고 있던 매월당 김시습을 찾아 연을 타고 이 절에 왔다고 한다. 그러나 왕의 행차...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목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우물. 조선 중기 때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공주로 피난을 갔을 때, 소가 기갈이 심하자 물을 먹이고 간 후로 유명해졌으며, 면 이름도 우정면이라 하여 7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에 우성면이 되었다. 『공산지(公山誌)』제2권 36장에 “仁祖大王……馬極駕牛間關過木洞村直一路邊之井駐蹕飮牛 命名曰牛井牛井之(인...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목천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옛날 농경시대 목동이 소를 몰고 다닐 때 소가 즐겨 물을 마시던 우물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소우물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무성산(武城山)에서 발원한 산줄기가 소우물 주변을 에워싸고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금강(錦江)을 가로막고 우뚝 솟은 연미산(燕尾山)과 취리산(就利山)이 보인다. 얕은 구릉과 논·밭으로 둘러싸...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던 지방 행정 구역. 속군(屬郡)은 속부(屬府), 속현(屬縣) 등으로 구분될 수 있으나 통상 속현으로 총칭된다. 지방관이 파견된 지역을 주현(主縣)이라 하였는데,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을 통하여 인근 속현을 간접 통치하는 주현·속현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공주 지역은 1018년(현종 9)의 관제...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알기 쉬운 격언. 속담은 대체로 교훈이나 풍자를 하기 위하여 어떤 사실을 비유의 방법으로 서술하는 간단한 관용어구이다. 역사의 변천에 따라 함께 변화하면서 전해 내려온 지식적·정신적 유산 중의 하나인 속담은 오랜 기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반복된 결과물이다. 속담은 쓰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같이 공감하면서 생성되고 변...
-
전통시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던 공주 지역의 행정 구역. 속현(屬縣)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지역을 말한다.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을 통하여 인근 속현을 간접 통치하는 주현·속현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공주 지역은 1018년(현종 9)의 관제 변화와 함께 목(牧)에서 지주군(知州郡)의 위치로 격이 낮추어졌고 목사 대신 지주군사가 수령으로 부임하여 왔다. 공...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청흥리에 있는 고개. 솔티고개는 신풍면 청흥리와 청양군 정산면 송학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솔티고개는 송학리에 있는 고개라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송학리의 ‘송’자는 소나무를 뜻하기 때문에 솔티고개의 ‘솔’자는 소나무를 뜻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한편, 솔티고개는 삼청동고개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청흥리에 있는 자연 취락인 삼청동으로 넘어가...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 성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석축 산성. 송곡리 산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시기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산성을 축조한 배경에 대해서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다 보면 안산교(案山橋)가 나온다. 송곡리 산성은 안산교 왼쪽에 있는 성재의 정상부에서 중복(中腹)에 걸쳐 위치...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 안송곡에서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냈던 마을 제사. 송곡리에는 숟갈샘이 있다. 숟갈처럼 생긴 바위 위로 물이 흐르고 있다고 해서 숟갈샘이라고 한다. 송곡리에는 긴 계곡이라 하여 큰골이 있는데, 숟갈샘은 큰골 앞에 있다. 옛날에 절이 있었다는 승적골과 절 텃골, 무당이 살고 산신당이 있었다는 펀던, 서낭당과...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송정리에 있는 백제시대 석축 산성. 송정리 산성의 축조 경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축성 시기부터 정확하게 밝혀져야 하는데, 아직까지 송정리 산성에 대해서는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시기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축조 배경에 대해서도 알기 어렵다. 공주에서 전의(全儀) 쪽으로 빠지는 지방 도로를 타고 8㎞쯤 가...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탄천면소재지의 북쪽에 송학리 방재가 있다. 송학리 고분군은 송학리 방재의 북쪽에 있는 해발 184m의 무명산에서 남쪽으로 길게 흘러내린 능선의 남사면에 위치한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분토골이라는 자연 골짜기가 남북 방향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 주변의 산림 지역으로 전체적으로 나지막한 구릉을 이루고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 소라실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공주에서 부여로 통하는 국도 40호선의 북쪽에 탄천면 송학리 소라실이 있다. 송학리 독무덤[옹관묘]은 이 마을의 북동쪽에 있는 해발 80m 미만의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한다. 이 구릉은 송학리와 국동리를 연결하는 ‘메골고개’로도 불리며, 북서-남동간으로 연결된 나지막한 구릉의 남사면 일대를 포함하는...
-
갑사 입구에는 ‘갑사로 가는 길’ 이라 쓰여진 커다란 아치가 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식당가가 ‘ㅁ’자 모양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그 입구 우측에 바로 수정식당이 있다. 수정식당은 공주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꽤 알려져 있고, 계룡산을 안내하는 책자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수정식당을 경영하는 김태순씨는 여자의 몸으로 쉽지 않은 식당경영을 20여년간 성공...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토성. 수촌리 토성은 축성 시기와 사용 기간을 단정할 수 없지만, 대체로 신라 하대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의당면 일대의 평야를 생활 근거지로 하는 집단의 치성(治城)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공주시내에서 천안 쪽으로 가는 지방도 691번을 타고 약 5㎞쯤 가면 수촌리 양촌에 닿는다. 수촌리 토성...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단종의 영혼과 세조에게 항거한 충신 열사의 혼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사우. 공주에서 대전 방면으로 32번 도로를 따라가면 16㎞ 거리에 박정자 삼거리가 있다. 여기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약 4㎞를 가면 동학사가 있는데, 숙모전은 동학사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숙모전은 억울하게 죽은 단종과 사육신, 금...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숭선군 묘. 숭선군은 인조의 다섯째 아들로 이름은 이징(李澂)이고, 시호는 효경(孝敬)이다. 1646년(인조 24)에 숭선군에 봉해졌으나, 1651년 모친과 누이가 역모에 관련되었다 하여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1656년 부수찬 홍우원의 소청으로 풀려나 관직이 복구되었다. 숭선군이 공주 지역에 묻히게...
-
충청남도 공주시 상왕3동에 있는 성암(醒菴) 이철영(李喆榮)[1867~1919]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사우. 숭의사는 초려 이유태 선생의 9세손이었던 이철영의 항일 행적과 덕행을 기리고, 제향하기 위해 세워진 사우이다. 숭의사의 건립이 처음으로 발의된 것은 1968년 3월로, 당시 공주향교의 전교 정인상 등 공주 유림 51명이 각 향교와 서원에 통문을 돌리고...
-
웅진교육박물관 을 운영하고 있는 이재우 씨는 옛 것에 대한 향수와 애정이 남달랐다.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틈나는 데로 모으기 시작한 유물이 이제는 2만여 점이나 된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이재우 씨는 ‘어려서부터 남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 낡고 오래된 물건을 매우 좋아했던 것 같다’고 회고한다. 아니 오래된 것 뿐 아니라 무엇이든 수집을 하는 것이...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일반적으로 시장은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을 말한다. 상설 시장은 일정 지역 내 하나의 건물 안에서 영업자가 항시 물품의 매매 교환을 할 수 있는 시장을 말하며 정기 시장은 일정 구역 안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을 말한다. 따라서 시장은 상품 교환의 발생 빈도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느냐 연속적으로 매일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
충청남도 공주시 지역에 분포하는 식물. 식물상은 일정 지역에 분포하는 식물 목록을 의미하며, 식물상에는 넓이의 개념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지구 위의 모든 식물을 포함하는 세계의 식물상, 대한민국에 분포하는 모든 식물을 포함하는 한국의 식물상과 같이 넓게 사용하거나, 계룡산의 식물상과 같이 국지적으로도 사용한다. 식물상 조사를 위해서는 조사 지역을 사계절 동안 답...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생명의 연장 및 성장에 필요한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 행위. 옛 백제의 고도인 공주시는 농업이 주가 되는 지역으로서, 충청도 음식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음식이 소박한 인심을 나타내며 꾸밈이 별로 없고 사치스럽지 않다. 양념을 많이 쓰지 않으며 자연 그대로의 소박한 맛을 낸다. 공주 지역은 산야에서 많이 나는 산채·버섯·밤·도토리를 이용한...
-
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신기동 고분군은 공주시의 동남쪽으로 약 2㎞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월성산에서 남으로 뻗어내린 능선이 마안형(馬鞍形)의 지형으로 능치를 이루고, 여기서 남으로 연장되어 흘러내린 구릉의 남사면에 자리한다. 고분은 주로 산의 중턱에서 돌출된 선상부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신기동 고분군은 196...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발행되는 뉴스·논설을 비롯하여 정보·지식·오락 등을 전달하는 정기 간행물. 신문은 통상적으로는 신문사라 불리는 전문 기업이 일간 또는 주간으로 뉴스 보도를 중심으로 하여 발행하는 일반지(一般紙)를 가리키며 매스커뮤니케이션 미디어[媒體]의 일종이다. 그러나 신문은 일반지 외에도 기사의 내용과 그 신문이 대상으로 삼는 독자 또는 발행 형태에 따라 여러...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구석기시대와 중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간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BC 8,000년경이 되면 홍적세가 끝나고 충적세가 시작된다. 문화적으로는 구석기시대가 끝나고 중석기시대를 거쳐 신석기시대가 시작되는 때이다. 기후도 빙하기가 끝나고 후빙기가 되어 점점 따뜻해져서 현재와 거의 같아진다. 신석기시대는 일반적으로 간석기의 사용, 농경과 정착 생활...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신영리 진밭에서 정월 열 나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신영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구 변화 등으로 말미암아 마을의 분화에 따라 진밭 일대는 신영리로, 마상골 일대는 신영2리로, 안영리 일대는 신영3리로 각각 나뉘게 되었다. 사곡면 신영1리는 사곡면 면사무소 소재지인 호계리의 남쪽에 접한 마을로, 사곡면 면사무...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신웅리와 도천리 입구에서 정월 열 나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우성면 도천리는 북쪽은 내산리, 동쪽은 산웅리, 남쪽과 서쪽은 상서리에 접해 있다. 백제 때는 웅천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웅주에 속했다. 조선시대 때 공주군에 속했으며 조선 말기에 공주군 우정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약천리,...
-
충청남도 공주시 검상동 검상농공단지 내에 있는 유기 용기 제조업체. 신일팜글라스는 포장용 유기 용기 제조를 주 업종으로 하는 중소기업으로 공주에 본사와 공장을 두고 있고 서울에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1986년 의료 용기 전문 생산 업체로 출발한 이래 의료 용기 앰플(Ampoules), 바이알(Vials) 생산과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우수한 기술 인력과 첨단...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활동해온 기성 종교에 대하여 새로 일어난 종교. 우리나라의 신종교는 300~400개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수적으로 다양하고 각기 계통을 달리함에도 불구 여러 특징들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내용만 다를 뿐 그 내적 구조는 어느 종파를 막론하고 동일해 보일 정도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종교는 19세기말~20세기 초의 개항기...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에서 재배하는 고추.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은 일교차가 심하고 사질 토양을 갖고 있어 고추의 맛이 독특하다. 특히 같은 공주 지역이라도 신풍면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추는 신풍 고추와 맛과 색깔이 다르다. 1992년 고추 생산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소규모 작목반들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신풍 고추라는 새 브랜...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동족촌. 신풍면에 들어온 성씨들을 16세기 이전, 16세기, 그리고 17세기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16세기 이전에는 광산김씨와 의령남씨, 평양조씨 등이 있었고, 16세기는 여주이씨, 남원양씨가 있었다. 17세기에는 평산신씨, 김해김씨 안경공파, 진주유씨, 만경노씨, 전주이씨, 경주이씨, 부안임씨, 영월엄씨...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산정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토축 산성. 신풍산성이 있는 곳은 나지막한 구릉으로, 해발 110m에 해당되며, 전체 성벽의 둘레는 약 350m에 이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신풍산성을 “신풍현 남쪽 3리 지점에 있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7백 1척이다, 지금은 폐성이 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성벽은 토축으로 남아...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의 고려와 조선시대의 지방행정구역. 백제·신라시대에는 벌음지현(伐音支縣)이었으며, 고려 초에 신풍현이 되었다고 추측한다. 918년에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즉위한 뒤에도 삼한 통일을 위한 계속적인 정복사업을 펼쳤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지방제도가 변경 개편되기도 하였다. 후삼국을 통일한 후 940년(태조 23)에 효과적인 지방통제의 일환으로 군현제에...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평산(平山).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19세손으로 영의정에 증직된 신화국(申華國)과 첨정 벼슬을 지낸 윤양정(尹讓貞)의 딸 파평윤씨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또한 충주전투로 유명한 충장공(忠莊公) 신립(申砬)[1546~1592]이 셋째 형이며, 둘째 형 신급은 피난 중 왜군을 만난 어머니가 벼랑에서 투신하자 그 뒤를 따라 뛰어내려 모친을...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교육자. 조선왕조는 1880년대에 오랜 쇄국정책을 버리고 외국의 여러 나라와 통상수호조약(通商修好條約)을 맺음으로써 본격적인 개화기에 돌입하였다. 1882년에 미국·영국·독일과의 교류를 개시하면서, 1884년에는 러시아와 1886년에는 프랑스와 통상수호조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앞서 일본과는 1876년(고종 13) 불평등조약으로 강화도조약을 체결하...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피난과 보신의 10가지 장소 중 하나. 십승지지(十勝之地)는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피난(避亂)과 보신(保身)의 10가지 장소를 의미한다. 즉, 십승지지란 피난하면 전쟁의 참화를 면할 뿐 아니라 식량 걱정도 없이 안주낙생(安住樂生)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10여 군데 피난처를 의미한다. 십승지지는 십승지(十勝地)라고도 한다....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 쌍령산 정상에 있는 조선 전기의 봉수대. 쌍령산 봉수대는 조선 전기에 설치되었으며,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와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무학리에 걸쳐 있는 쌍령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남쪽 공주의 고등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천안의 대학산 봉수로 전달하던 곳이다. 공주에서 천안 방향으로 22.5㎞ 정도 가다 보면 차령고개에 이르...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이괄의 난 당시 인조는 공주로 파천하여 공산성 내에 머물게 되었다. 당시 인조가 머물던 곳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는데 이괄의 난이 평정되자 이 소식을 들은 인조가 기뻐하며 자신이 머물고 있던 쌍수에 정3품의 품계를 하사하셨다. 이 유지를 기념하기 위해 관찰사 이수항이 1734년(영조 10년)에...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병두(安秉斗)는 1910년 7월 4일 충청남도 공주군 주외면 옥룡리 364번지(현재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364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안병두는 공주소년동맹 집행위원장으로 1931년 10월 충청남도 공주군 우성면 방흥리에서 소작쟁의가 발생하자 박명열(朴命烈)과 함께 쟁의를 지도하였다. 1931년 12월에는 이학근(李學根) 등...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가신(家神)을 초청하여 치르는 굿거리의 하나. 공주 지역에서는 보통 정초나 가을에 안택고사를 모신다. 정초에 행하는 안택고사는 특히 액막이의 성격이 강한데, 이는 집 안에 있는 여러 신들을 잘 달래어 한 해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또한 명절이나 별식이 생기면 이를 집안신에게 골고루 바치기도 하며,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동네...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서 개최되는 알밤 줍기 농촌 체험 행사.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은 공주시 밤 생산량의 50%, 전국 밤 생산량의 10%를 생산하는 밤의 주산지이다. 1,100여 농가 중 절반이 넘는 680여 가구가 밤 농사를 짓고 있다. 30여 년 전부터 밤 농사가 마을 농사의 주류를 이뤘다고 한다. 정안 밤은 육질이 단단해 저장하기 좋고, 당도가 높아...
-
일제강점기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야학을 통해 민족 실력 양성을 꾀했던 교육 운동. 야학은 3·1운동 이후 민족 실력 양성 운동이 전개되면서 교육열이 고조된 데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일제의 차별적인 식민지 교육 정책으로 인하여 교육 시설이 부족한 데다가 민족 교육이 온상지로 지목되어 사립 학교가 탄압을 받고 있어서 정규 사립 학교 설립이 어려웠다. 여기에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의무교...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원(南原). 남원양씨의 공주 입향조(入鄕祖)인 양계무(梁季武)의 8세손으로 양정규(梁廷揆)와 홍관휴(洪觀休)의 딸 남양홍씨 사이에서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양진언(梁震彦)[1791~1853]은 어려서부터 예의가 바르고 효성이 매우 지극하였다. 16세 되던 해, 어머니의 병환이 매우 위중해지자 밤낮으로 정성을 다하...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양천손(梁千孫)은 1902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38년 36세의 늦은 나이에 공주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양천손은 1922년 20세부터 공주 읍내에서 도자기 상점을 경영하여 부를 축적하였으며, 주조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1935년에는 공주주조 조합장을 역임할 정도였다. 특히 양천손의 특별한 양조방법은 애주가들로...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 성재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축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양화산성(良化山城)은 공주 남쪽 40리 지점에 있는데,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1,050척이고, 그 안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양화산성은 석성이었고, 성내에 우물이 한 곳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에 있는 공원. 어린이교통공원은 교통 안전에 대한 살아 있는 지식을 전달하고 놀이와 체험 학습을 통해 한발 앞선 새로운 모습의 어린이 교통 안전 체험 교육장으로서 어린이들이 보고, 이해하고, 느끼고, 체험을 통해 즐기며, 교통 법규 준수의 중요성을 인식해 장래 어린이들을 건전한 시민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조성한 공원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어천리에서 정월 열 나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어천리 장승제는 한 해 동안 주민들의 동안의 액운을 막고 마을에 전염병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민간신앙으로서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에게 제사를 지낸다. 다른 모든 마을 장승은 남녀 한 쌍인데 비해, 어천리 장승은 남자장승 하나에 부인장승 둘이 있어 첩을 둔 장승...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매체를 통하여 사실을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언론은 넓게는 말이나 글로 자기의 생각을 발표하는 일 또는 말이나 글 그 자체를 의미하며 좁게는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또는 그 관련 기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언론이라는 용어는 주로 이러...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집안의 재물을 지켜주는 수호신. 제주 지역에서 재신(財神)이며 사신(蛇神)인 업은 칠성신으로 여겨진다. 이 칠성신은 안 칠성과 바깥 칠성이 있는데 그 내력이 칠성 본풀이이다. 이와 관련하여 업에 대한 믿음에서 상업학교의 상징에는 예외 없이 뱀의 도상이 들어가 있다. 인도 철학에서의 업(業)은 과거 행위가 미래 세계인 다음 생에 영향을 끼...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신종교의 하나. 1872년 미국의 찰스 러셀에 의해 설립되었다. 뉴욕의 브루클린에 본부가 있으며 한국에는 1912년 선교사 홀리스터에 의해서 전파되기 시작하여 현재 1,400개 회중에 9만 4천여 명의 신도가 있다. 왕국회관이라 부르는 교회당에서 매주 세 차례의 집회를 가지고 있다. 각 회중(會衆)들은 정해진 구역이 있으며 증인마다 전도할 이웃들이...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여호와의증인 교단 소속의 교회. 여호와의증인 왕국회관은 충청남도 공주시의 여호와의증인 신자들이 집회와 침례를 행하는 교회당이다. 1958년 옥응두·이서주 부부가 워치타워 성서책자협회 한국지부로부터 임명되어 공주 지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0년대 초에는 국민은행 공주지점에서 설립되었으며, 여호와의증인이었던 국민은행 공주지점장...
-
중장1리의 관문인 통미산 입구에는 주유소를 가운데에 둔 삼거리가 있다.(삼거리마을과는 상관없다.) 여기에서 갑사 방향으로 가면 중장1리의 삼거리마을로 들어가고, 좌측의 대전 방향으로 가면 윗장마을과 배살미마을이 있다. 배살미마을은 중장리에서 가장 전통있는 삼척진씨의 터전이다. 삼척진씨는 계룡면 열두대장의 대표적인 세 성씨중의 하나로, 1500년대 후반에 진응린(陳應麟)[...
-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남도 공주시의 역사. 공주는 금강의 중류에 위치한 역사 도시이다. 선사 이래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부 지역 거점으로서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한 중부 지역 대표 도시의 하나이다. 남한에서 최초로 조사된 석장리 구석기 유적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이미 50만 년 전 인류가 거주하던 공간이며 신석기와 청동기시대를 거치며 도시 형성이 이루어진다....
-
고려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역참은 전통시대 육상 교통로에 설치되어 역부와 역마를 이용하여 중앙과 지방 및 외국과의 공문서 전달, 변경의 긴급한 군사 정보 전달, 관물 수송, 관리 및 사신 왕래에 따른 숙박 등을 담당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통해 역(驛)은 삼국시대부터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 원(元)의 참적...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행해지는 무대에서 연기를 통해 내용을 전달하는 종합 예술. 연극은 삶의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경험에 기원을 두고 있어 다른 어떤 문화적 산물 못지않게 역사적·지역적·민족적 소산인데 비해 영화는 제작 과정에 창조적 요소와 기계적·기술적 요소, 그리고 경제적 요소가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제작자, 스튜디오, 카메라,...
-
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에 있는 산. 연미산은 산의 꼬리가 제비꼬리를 닮았다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연미산은 높이가 192m이며, 공주시가지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공주시를 관류하는 금강이 북서 방향에서 남서 방향으로 방향을 바꾸는 곳에 있다. 연미산 정상을 기준으로 북쪽은 안산암질암, 남쪽은 역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동-남서 방향의 단층이 연미산...
-
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과 우성면 신웅리 사이에 있는 고개. 백제 때부터 선비들의 한이 서린 고개이며 연미산 비탈길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연미라는 이름은 산세가 제비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연치미고개의 정상은 높이 71m이다. 중생대 백악기의 역암층으로 되어 있고, 고개로 접근하는 길은 대부분 흙, 모래, 자갈로 이루어진 신생대 제4기의 충적층으...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연평부원군 이귀의 신도비. 이귀[1557~1633]는 연안이씨로,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모집하였고, 양곡을 거두어 개성으로 운반하여 서울 수복전에 공로를 세웠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623년(광해군 15)에는 김류(金瑬), 신경진(申景禛) 등과 함께 인조반정을 일...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승려이자 승병장. 속성은 박씨(朴氏)이고,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기허(騎虛)이다. 계룡산 갑사에서 출가한 뒤 사명대사 유정(惟政)과 함께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법을 깨우쳐 휴정의 제자가 되었다. 공주 천련암(天蓮庵)에 있으면서 선장(禪杖)을 가지고 무예를 익히기를 즐겼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 수백 명을 규합하였...
-
임진왜란이 시작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처음으로 승려를 규합해 전장으로 나선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영규대사’이다. 영규대사는 공주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속성은 밀양박씨, 이름은 영규(靈圭), 호는 기허당(騎虛堂), 공주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계룡산 갑사에 들어가 출가한 뒤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법을 깨우쳐 그의 제자가 되었다. 공주 청...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규대사의 묘.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당(騎虛堂), 속성은 박씨이다. 공주 출신으로 갑사에 들어가 출가하고, 뒤에 휴정의 제자가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승병 궐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조헌과 합세하여 청주성을 탈환한 후, 1592년 금산성 전투에서 항전하다가 부상을 입고 현재의 비각 자리에서 숨...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영규대사의 임진왜란 당시 행적을 기리는 비. 영규대사 비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인들의 침략과 약탈을 참지 못하고 승병장(僧兵將)이 되어 승려 수백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영규대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騎虛)이고, 속성은 박씨이며, 본관은 밀양으로 전해지고 있다. 본래 휴정대사의 수제...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 마새에서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공주 지역에서 둥구나무제는 봉정동 반선말, 정안면 보물리, 정안면 월산리, 정안면 대산리 죽암, 우성면 귀산리 심산, 신풍면 쌍대리 짐대울 등에서 치러진다. 정안면 보물리에서는 둥구나무제를 괴목제(槐木祭)라고도 부르는데, 제일(祭日)에는 둥구나무에 황토 무...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영화를 상영하는 전문 극장. 영화관은 영사를 위한 스크린과 음의 재생 장치를 포함한 스테이지, 객석, 영사실, 로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는 영화관이 다수 생겼으며, 오늘날에는 복합관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영화는 영화관의 영사 재생 장치가 중요한데,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난 영화라 해도 재생 장치가 불량하면 충분한 효과를 올릴...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와 예술 활동. 예술은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등으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또는 작품의 창작과 감상에 의해서 정신의 충실 체험을 추구하는 문화 활동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문학·음악·조형 미술·연극·무용·영화 등을 총칭하는 말이며 공간 예술, 시간 예술, 종합 예술 등으로 나눌 수...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 1구 원골에서 열리는 마을 예술제. 예술과 마을전은 자연 미술의 시원적 형태라 할 수 있는 민중의 솜씨와 예술가의 예술이 만나는 접점을 시도하여 농즉예(農卽藝) 예즉농(藝卽農)이라는 관점을 실현하였다. 예술과 마을전은 농민과 예술가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질적 문화 간의 교류를 통한 상호이해의 장이 됨은 물론 국내 최초로 농촌 마을에...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는 공주문화원이 후원하는 문화 예술 단체. 예인촌은 공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선무용단, 극단 파고, 월가리 풍장단, 웅진어린이합창단, 극단 금성, 우리문화공연단 논두렁 밭두렁, 햇님스튜디오 등이 모여 만든 문화 예술 단체이다. 정부 지원금 없이 순수한 예술 활동으로 공주의 지역 문화 예술의 창달을 도모하고, 단체 간 상호 협력 공연을...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충신.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경도(景圖)이다. 보성오씨 시조 오현필(吳賢弼)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오응두(吳應斗)이고, 어머니 전의이씨 이경우(李景佑)의 딸이다. 부인은 연안이씨 이희정(李希程)의 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촌형 오대린(吳大麟)과 함께 왕을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겸오위도총부부총관효충장의선무원종공신(嘉善大夫同知中...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오동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 오동리 돌방무덤은 오동리의 서쪽으로 깊게 형성되어 있는 큰골 안쪽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해발 308m의 사마산에서 동북쪽 해발 208m의 검은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에서 동주한 능선의 남동사면 하단부에 해당한다. 주변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동쪽의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흐르...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밤갓에서 정월 열 나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현재 공주 지역의 노신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장승제를 뜻하기도 하고, 공주시 검상동의 경우처럼 마을 앞의 여러 선돌(주석지신, 여석지신, 구석지신, 와석지신)에 대한 제사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구읍 신영리 여드니, 우성면 도천리, 우성면 동대리, 의당면...
-
수백년간 열두대징이를 지킨 집안이 있다. 밀양변씨, 삼척진씨, 전주이씨가 순서대로 입향하여 중장리 일대에 자리잡았고, 훗날 동래정씨가 아랫동네인 하대리 넓은 땅을 소유하면서 세거하였다. 이 네 가문은 오늘날 대부분 마을을 떠나 후손을 찾아보기 힘든데, 지금까지 집안의 터전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윗장마을 진중용씨 부부이다. 중장1리 윗장마을에 입향한 삼척진...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덕구(德耉), 호는 묵재(默齋)이다. 할아버지는 직장 오극권(吳克權)이고, 아버지는 직장 오세현(吳世賢)이다.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참봉 성근(成近)의 딸이다. 오백령은 슬하에 4형제를 두었는데, 오준(吳竣)[1587~1666]은 벼슬이 판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명필로 유명하였다. 오단(吳端)[...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오백령의 사우. 이괄의 난 때 인조를 호종했던 오백령의 사우로, 영정을 봉안하던 것이 사우로 발전한 경우이다. 건립 시기가 명확하지 않으나 조선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공주에서 예산 방면으로 국도 32호선을 따라 약 7㎞ 정도 가다 보면 우성면소재지가 나오는데, 오백령 사우는 면소재지 직전...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있는 오시수의 신도비. 신도비는 임금이나 종이품 이상 벼슬아치의 무덤 남동쪽의 큰길가에 세운 석비(石碑)를 말한다. 오시수 신도비는 두 기가 존재한다. 우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에 세워진 것이고, 좌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에 연루되어 추탈되었던 오시수(吳始壽)[1632~1681]의 관작이 1784년(정조 8...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오인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성. 오인리 산성은 발굴 조사를 통해 축성 시기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지표 조사를 통해 수습된 유물 중 백제시대 것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북쪽의 경우도 왕도 웅진을 향해 침입하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공주에서 천안으로 통하는 국도를 타고 1...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있는 오정창의 처 해주정씨 정려. 공주에서 청양 방면으로 국도 32호선을 따라 7㎞ 정도 가면 우성면소재지가 나오는데, 그곳에 조금 못 미쳐 도로 오른쪽에 단지리가 나온다. 오정창 처 해주정씨 정려는 도로변 왼쪽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이익공 건물이다. 정려각 내의 중앙에는 ‘열녀자헌대부예조판서겸지경연예...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오지영(吳智永)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아흔아홉 칸짜리 저택을 소유할 정도로 공주 지역의 대표적인 대지주였다. 오지영은 조선 말기 광산의 경영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것으로 보이며, 1930년대 말 기준으로 212㏊ 전(田)과 92㏊의 답(畓) 등 392㏊의 토지를 소유한 대주지였다. 오...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남원. 아버지는 찰방 윤형준(衡俊)이다. 손자 오시수(吳始壽)[1632~1681]가 공주 지역에 전장을 마련하고,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오시수의 종숙(從叔) 오정창(吳挺昌)의 묘를 쓰면서 후손들이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세거하게 되었다. 남편 오횡(吳竑)[1606~1626]이 죽자 음식을 먹지 않고, 자결하여 정려를...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소학리(巢鶴里) 쪽에 용 못이 있어 옥룡골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동부면(東部面)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원동(水源洞), 대추동(大秋洞), 장기대(將棊臺), 강경동(江景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옥룡리라 하고 주외면(州外面)에 편입되었다. 1938년 주외면이 폐지되어 공주읍에 편입되면...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옥성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토축 산성. 옥성리 산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축성 시기를 전혀 짐작해 볼 수 없다. 따라서 산성의 축조 배경도 현재로서는 잘 알 수 없다. 공주에서 청양으로 통하는 국도 36호선을 타고 서쪽으로 약 4㎞쯤 가면 우성면 상서리에 닿게 되는데, 여기에서 남쪽으로 난 소로를 타고 약 1.5㎞쯤...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네발나비과에 속한 나비. 날개 편 길이는 60~70㎜, 앞 날개는 길이 32~44㎜ 정도이다. 표범나비류 가운데 중간 크기의 종이다. 날개 아래쪽에는 은색 무늬의 변이가 다양하다. 수컷은 앞 날개 윗면에 검은색 줄무늬의 성표(性標)가 있다. 암컷은 수컷에 비하여 약간 크며 날개 폭도 약간 넓다. 암컷이 수컷보다 날개 바탕색이 진하며, 날개 아...
-
허임의 생애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부모는 관노와 사비였는데, 특히 부친은 악공으로 당대 최고의 피리꾼이었으며, 만년에는 거문고에도 능했던 만능 음악인이었다. 또한 학춤을 잘 추었다. 가무(歌舞)의 재능을 동시에 겸한 것이다. 부모로부터 미천한 신분과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은 허임은 임진왜란이라는 변수로 인해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광해군을 모시고 침구의로...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명곡리에 있는 한국천주교 대전교구 유구성당의 공소(公所). 요골공소는 1866년 병인박해 이후 각지에서 모여든 신자들이 일군 교우촌(敎友村)에서 기원한다. 이 교우촌은 1883년 프랑스 선교사 두세(Doucet)가 충청도 지역을 순회할 때 최초의 공소 가운데 하나로 설정되었으며, 1884년 초대 공소회장으로 이화진이 부임하였다. 1897...
-
열일곱살에 중장리로 들어왔다. 그해가 1942년. 해방되기 직전이었다. 원래 고향은 충청북도 옥산이었는데, 선비로 사셨던 아버지는 나라가 일제치하에 들어가자 1934년에 고향을 떠나 10승지지로 알려져 있던 공주로 오셨다. 일곱 살부터 10년간 살았던 동네는 이인면 잣골로, 두 형이 이인에 있던 금광산에서 일을 하며 집안의 생계를 이어갔다. 형들 덕분에 어려서는 직접 고생하는 일...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가마 터. 요지(窯址)는 토기·질그릇·오지그릇·도자기·기와·벽돌·숯 따위를 구워내는 시설을 뜻한다. 공주 지역에도 이와 같은 요지 유적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백제의 왕도였던 공주에서는 왕실을 비롯한 민간인들이 사용하는 그릇과 기와 등을 다량으로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령왕릉은 구운 벽돌을 이용해 축조...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있는 폭포. 용문폭포는 예로부터 갑사구곡(甲寺九曲)의 하나로 유명하다. 갑사구곡으로는 용유소, 이일천, 백룡강, 달문담, 군자대, 명월담, 계룡오암, 용문폭포, 수정봉을 말한다. 갑사구곡은 갑사로 오르는 계곡 일대를 지칭하는 데 추갑사(秋甲寺)라고 불릴 만큼 가을이면 단풍으로 붉게 물들고, 여름에는 우거진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용성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토축 산성. 공주에서 부여로 통하는 국도 변에 있는 만큼 축조 경위는 왕도의 방비 체제와 관련시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남아 있는 형태로 볼 때는 사비보다 웅진을 방비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공주에서 부여로 통하는 국도 40호선을 타고 8㎞쯤 가다 보면 용성리 누에머리에 닿게 된다. 용성리 산...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있는 우공로의 무덤 앞에 세운 비석. 우공로(禹恭老)는 본관이 단양으로 공주의 토착 성씨이다. 장자 우현손은 충청병마절도사를, 차남 우석손은 재령군수를, 삼남 우종손은 안주판관을 각각 역임하였다. 이렇게 단양우씨는 조선 말기에 많은 인물을 배출한 사족 집안이다. 우공로 묘비는 단양우씨의 후손들이 선조인 우공로의 행적을...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과 주미동 사이에 있는 고개. 우금치는 공주 남쪽을 지키는 관문이었으며, 동학운동 때 관군과 싸워 동학 농민군 10만 명이 전사한 역사적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우금치는 우금(牛禁)과 우금(牛金)이라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옛날에 도둑이 많이 있어서 해가 저물었을 때 소를 끌고 고개를 넘어가면 도둑들한테 소를 빼앗긴다고 해서...
-
충청남도 공주시 주미동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우금치는 공주 시내에서 남쪽으로 40번 도로를 따라 부여 방향으로 넘어가는 첫번째 고개를 말한다. 이곳은 동학혁명군의 위령탑이 위치한 유명한 곳이다. 우금치 고분군은 이 우금치 산록의 남동사면에 위치한다. 우금치 고분군은 1932년에 알려졌다. 당시 지표면에 상당수의 고분이 노출되어 외형 파악이 가능한...
-
1894년(고종 31)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과 조선·일본 연합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친일내각을 성립하였으며, 6월 23일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친일내각과 함께 동학농민군 토벌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반발로 전봉준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다시 봉기하였다. 그러나 전봉준을 비롯한 손...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우금치에서 개최되는 예술제. 1992년 추모 제례는 동학 정신 계승과 시민 참여 확대를 위하여 제향을 기본으로 다양한 행사를 구성하여 우금티예술제로 전환되었다. 동학 100주년을 맞은 1994년에는 100주년 기념 행사를 계기로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우금티예술제는 소수의 축제에서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축제로 거듭나게 되었다....
-
원골 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을까? 이러한 의문점을 해결해 주는 것은 현재 지표상에 남아있는 유적이다. 현재까지 원골에서 선사시대의 유적이 확인되지는 않지만, 유구천과 주변의 산세 등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므로, 원골 내지는 그 주변에 밝혀지지 않은 유적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공주지역은 금강과 금강 유역의 깊고 넓은 하천들...
-
웅진초등교육박물관은 우리나라 초등교육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초등교육박물관답게 최초의 국어교과서에서부터 제7차 교육과정에 이르는 다양하고 희귀한 교과서들을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2001년 11월 1일 처음 문을 연 이래로 지금까지 매년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는데 ‘사진으로 본 한국의 표정’(2001)이라든가 ‘방학숙제로 보는 초등교육 70년’, ‘국어...
-
윗장마을 의 진중용씨는 1927년생으로 일제강점기에 10대를 보내고 18세에 해방을 맞았다. 그 시절의 고생담이야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대대로 양반집안이란 자부심에 살았어도 세상이 뒤바뀐 일제 식민지 시대에 집안의 전통을 지키기는 힘들었다. 어려서는 계룡면사무소 옆동네인 유평리의 계룡보통학교를 다니며 공부했는데 그 시절 인근에서 유일한 교육시설이었기에 계룡면 뿐...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에 있는 산. 예전에 마을 일대에 큰 가뭄이 들었는데, 이 산에서 기우제를 지내자 빗방울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더니 큰 비가 왔다. 그 이후부터 비를 몰고 온 산이라 해서 우산봉이라 불리워졌다고 한다. 또한 옛날 대홍수가 났을 때 모두 물바다로 잠겼는데, 이 산은 높아서 다 잠기지 않고 꼭대기가 우산만큼 남았다고 해서 우산봉으로 불렸다고 하며...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서 재배하는 오이.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은 오이 재배에 적합한 자연 환경을 갖추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오이를 자급 자족하거나 공주 시장에 소규모로 판매하는 정도로 규모가 영세하고 출하량이 적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1984년 우성농업협동조합의 지원 아래 작목반이 결성되고 겨울철 저온 처리법을 이용한 재...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있는 집성촌. 1920년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우성면의 반촌리·동곡리·목동리·귀산리·내산리에서는 만경노씨, 상서리·방문리에서는 함평오씨, 방흥리·신웅리에서는 보성오씨, 옥성리·대성리·봉현리에서는 김해김씨, 보흥리·옥성리에서는 단양이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1. 만경노씨 『만경노씨족보』에 의하면 만경노씨의 시조는 고려시...
-
1920년대 일제의 수리 시설 확충에 반대하여 공주 지역 우성면에서 일어난 농민운동. 우성면민들은 일제에 의한 우성수리조합의 설립을 반대하여 조합 설립의 부당성을 진정하고 도지사·군수와의 면담을 요청하는 시위를 전개하는 한편 공사 저지 투쟁까지 전개하였다.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식민지 경제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우성수리조합 설립 반대 투쟁은 농민민족운동의 한 양상...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충현서원 입구에 있는 송시열의 추향기가 적혀 있는 비석.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자리한 충현서원의 입구 정면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중 정면 좌측에 있는 것이 우암송선생추향기비이다. 이 비에는 충현서원에 주자(朱子)와 이존오(李存吾), 이목(李穆), 성제원(成悌元), 김장생(金長生),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일원에서 생산되는 쌀 브랜드.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은 이전부터 유구천과 대룡천의 맑은 물을 이용해 양질의 벼를 생산해 왔지만 수확 후 처리 문제와 마땅한 판로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1995년 정부 지원 사업인 미곡종합처리장 유치를 계기로 최신 설비인 습식연마기, 색채선별기 등을 갖추고 양질의 쌀을 생산하게 되었다. 웅진 쌀은 공주 지...
-
475년 백제 문주왕이 왕도를 한성(현 서울)에서 웅진(현 공주)으로 옮긴 사실. 백제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은 3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백제 왕도인 한성을 공략하였으며, 개로왕은 이를 막아내지 못하고 한성이 함락되었다. 그 과정에서 개로왕은 죽음을 당하였다. 이에 한성에서 즉위한 문주왕(文周王)은 고구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자 그해 10월에 웅...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사립 교육 박물관. 교육에 관련된 자료들을 시대별로 수집, 보관, 전시하여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인성 교육 및 체험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성인들에게는 지나간 옛 추억을 통한 인간성 회복 및 정서 순화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2001년 8월 7일 웅진초등교육박물관 설립을 인가받아 2001년 11월 10일 폐교된 청산초등학교...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웅진동 고분군은 송산리 고분군과 더불어 백제시대의 고분군 지역으로 일찍부터 주목되었다. 이 일대에서는 1960년대 말 수습 조사된 박산소 고분군을 제외하고도 3번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1979년 웅진동 산610-1번지를 포함한 지역에서 조사된 것을 웅진동 고분군(1), 1989년 수습 조사된 것을 웅진동...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웅진동 고분군은 송산리 고분군과 더불어 백제시대의 고분군 지역으로 일찍부터 주목되었다. 이 일대에서는 1960년대 말 수습 조사된 박산소 고분군을 제외하고도 3번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1979년 웅진동 산610-1번지를 포함한 지역에서 조사된 것을 웅진동 고분군(1), 1989년 수습 조사된 것을 웅진동...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웅진동 고분군은 송산리 고분군과 더불어 백제시대의 고분군 지역으로 일찍부터 주목되었다. 이 일대에서는 1960년대 말 수습 조사된 박산소 고분군을 제외하고도 3번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1979년 웅진동 산610-1번지를 포함한 지역에서 조사된 것을 웅진동 고분군(1), 1989년 수습 조사된 것을 웅진동...
-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공주 공산성의 백제시대 명칭. 475년(문주왕 1) 고구려의 침입으로 수도였던 한성이 함락되자, 백제 문주왕은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이후 538년(성왕 16) 백제 성왕은 사비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따라서 웅진에 도읍한 시기는 63년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웅진으로 도읍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한 것에...
-
686년부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한 신라의 지방행정조직. 공주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가 475년(문주왕 1) 북한성(北漢城)에서 천도하여, 538년(성왕 16) 다시 부여로 옮기기까지 백제의 도성이었다. 백제가 나당(羅唐)연합군에게 멸망하고 나서 당나라는 공주 지역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두었으며, 670년(문무왕 10)에는 신라가 관장하였다. 신문왕 때 웅천주(...
-
동원 1리 원골마을은 마을의 북쪽을 산이 두르고 있는 지형이다. 바로 옥녀봉(玉女峰)에서 광덕산(廣德山)으로 이어지는 지형을 말하는데, 옥녀봉은 유구리와 화흥리 경계 부근에 있는 봉우리로 단정하고 빼어나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이라 하여 옥녀봉이라 부른다. 또한 광덕산은 원골과 화흥리 경계 부근에 있는 봉우리 골이 많으며 토산으로 되어 넓은 덕이 있다하여 광덕산이라 부...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유하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 원산정은 박의립에 의해 창건되었고, 아들 5형제가 지내던 곳이다. 따라서 원산정의 건립 연대는 박의립의 생몰년을 감안하면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건립 후 원산정의 사적은 정확치 않다. 건립 이후 언제, 어떤 이유로 정자가 없어졌는지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공주 관련 읍지나...
-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에 있는 산. 공주시의 진산(鎭山)으로, 조선시대에 서울과 남부 지역 연락에 중추적 역할을 한 봉수대가 있다. 조선시대에 축조된 봉수대는 전라도 지방에서 올라오는 남쪽 노성(魯城) 성산(城山) 봉수를 받아 북쪽의 정안면 고등산 봉수대로 연결되었으며, 삼남 지방에서 서울로 통신하던 중요한 곳이었다. 현재는 공주 공산성을 비롯하여 공주시민들이...
-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월성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봉수대. 월성산 봉수대는 논산 노성산에서 보내는 봉수를 받아 정안면 북계리 고등산 봉수대로 보내고 있다. 월성산 봉수대의 석축은 남북 직경 33m, 동서 직경 13m로, 남북이 긴 타원형의 형태이며, 둘레는 80m에 이른다. 또한 석축의 남쪽에는 봉수대로 출입하기 위한 문지가 남아 있고, 북쪽으로는 건...
-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유학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르는 말. 유교는 불교 및 기독교와 함께 한국 3대 종교의 하나로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는 전통 종교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경제·문화 등 한국 사회와 역사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한국 유교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전환점은 조선의 성립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유교는 조선의 개국과...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석남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인성으로 개성을 키워 가는 전인적 개성인, 새롭게 생각하고 탐구하는 창의적 능력인, 꿈을 갖고 자기의 소질을 계발하는 진로 개척인,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가치 창조인, 공동체의식을 갖고 협동하는 공동체 공헌인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근면, 성실’이다. 1914년 4월 1일 유구공립...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천향(天鄕)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공주 충렬사에 배향된 유형(柳珩)[1566~1615]이고, 아버지는 포도대장을 지낸 유병연(柳炳然)[1625~1681]이다. 원래 진주유씨 세거지는 경기도 고양이었는데 유형의 장남 유충걸(柳忠傑)이 공주로 이거(移居)한 것으로 추정된다. 묘소는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방리 언덕에 있...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숙춘(叔春), 호는 죽당(竹堂)이다. 증조부는 유열(柳悅)이고, 할아버지는 유자문(柳子文)이다. 아버지는 유한평(柳漢平)이며, 어머니는 홍귀해(洪貴海)의 딸이다. 원래 진주유씨의 세거지는 경기도 고양 지역이었는데, 유진동의 증손 유충걸(柳忠傑)[1588~1665]이 광해군 폐모 사건 등의 어수선한 정국을 피해 외향인 공주에 이거하면서 공주 지...
-
조선 중기 진주유씨 공주 입향조.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통제사 유형(柳珩)이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진주유씨의 입향조로 알려져 있다. 1618년 진사시에 합격했는데, 그 해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서인으로 강등시켜 서궁(西宮)에 유폐하자, 이에 분개하여 대과를 단념하고 공주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비로소 벼슬에 나갔으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사재감직장...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무신. 본관은 진주. 자는 사온(士溫), 호는 석담(石潭)이다. 할아버지는 유진동(柳辰同)이고 아버지는 유용(柳溶)이며 어머니는 선산임씨(善山林氏)이다. 장남 유충걸 때 진주유씨들이 공주 지역에 세거하게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북상하여 강화도에 이르러 김천일(金千鎰) 장군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회원의 처 부령김씨의 정려. 유회원 처 부령김씨 정려는 1812년(순조 12) 10월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는데, 부령김씨는 남편이 후사 없이 죽자 양자를 들여 장례를 치른 뒤 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이러한 열행이 알려져 정문이 내려졌다. 공주에서 예산 방향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20㎞ 정도...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윤각의 처 광주김씨 정려. 윤각 처 광주김씨 정려는 광주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1725년(영조 1) 명정을 받아 세워졌다. 광주김씨는 남편이 유배를 당하자 유배지에 따라가 남편이 신원되기만을 빌었고, 마침내 신원이 되자 자진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윤각 처...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아버지는 윤수(尹脩)이며,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숙부 윤건(尹建)에게 양자로 입계하였다. 부인은 동래정씨(東萊鄭氏)로 공주목사(公州牧使)를 역임한 정유순(鄭惟醇)의 딸이다. 칠원윤씨는 본래 정산(定山)[현 충청남도 청양군의 옛 지명]에서 대대로 세거하고 있었다. 그 후 정확한 사연이나 시기는 알...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윤찬(尹燦), 자는 정숙(靜叔), 호는 후촌(後村)이다. 병사(兵使) 윤선지(尹先智)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돈(尹暾)이며,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윤창세(尹昌世)이며, 어머니는 청주경씨(淸州慶氏)로 부제학 경혼(慶渾)의 딸이다. 아우는 문정공(文正公) 윤황(尹煌)이다. 부인은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윤증의 묘. 명재 윤증은 윤선거(尹宣擧)의 아들로, 17세기 조선조의 격동기를 살다 간 성리학자, 예학자이다. 윤증은 주자학적 종본주의를 고수하고, 학문의 자유로운 토론을 억압하며, 시대 변천에 역행하여 당면 과제를 외면하는 당시의 노론 정객과 정면으로 대립하였다. 윤증의 사상은 소론 진보 세력...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율정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토축 산성. 율정리 산성은 성벽의 흔적이 뚜렷한 편이지만 정확한 축조 시기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산성을 축조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없다. 공주에서 북쪽으로 약 6㎞쯤 가면 의당면 율정리가 나오는데, 이 마을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산이 성재산이다. 율정리 산성은 성재산 정상부에 있는...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은룡리 성재산 정상부에 있는 시대 미상의 토축 산성. 산성의 축성 시기가 불분명한 만큼 성벽의 축조 경위 또한 정확히 알 수 없다. 공주 시내에서 조치원으로 통하는 국도 36호선을 타고 약 9㎞쯤 가면 장기면소재지가 있는 도계리에 닿게 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난 소로를 타고 2㎞쯤 들어가면 은룡리 은골마을이 나오는데, 은골의 서남...
-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에서 유명한 음식제조업체 및 음식물을 조리하여 판매하는 가게. 충청남도는 농업이 주가 되므로 곡물, 채소 및 농산물이 많이 나며, 금강 지역에서는 민물고기 등의 수산물이 난다. 계룡산 지역 주변에는 버섯 및 산채류 등을 식생활 자원으로 하는 음식제조업체와 음식점들이 있다. 1) 김순남 할머니 장아찌 충남 지역 장아찌 시장 대부분을...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여러 형식으로 소리를 결합하여 나타내는 시간 예술. 고급 문화가 귀족들의 것이고 서민 문화가 서민들의 것이었던 17세기 이전의 문화적 흐름을 생각할 때, 소리는 참으로 신선한 것이며, 한민족의 문화적 깊이를 깊게 한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의 귀족 문화에서 파생된 예술이 현재 우리나라의 고급 문화로 자리 잡아버린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시사하...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에 있는 집성촌. 1920년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조선의 성』은 조선의 성씨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 자료이다. 동족촌의 발생 연대에 대한 『조선의 취락』에 의하면, 전국 1,685개의 동족촌 중 발생 연대가 300~500년 전의 것이 38.3%, 100~300년 전의 것이 20.8%, 500년 이전의 것이 12.3%, 100년 미만의 것은 1.4%에...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공주 지역에서 일반 백성과 승려들로 구성되어 활동한 민간 군사 조직체. 임진왜란 때 공주 지역에서는 영규대사(靈圭大師)[?~1592]를 중심으로 500명의 승병이 궐기하였다. 영규는 갑사(甲寺) 청련암(靑蓮庵)의 승려로 속성은 박씨이며, 계룡면 월암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무예 익히기를 즐겼다. 영규가 의승군(義僧軍)을 일으킨 시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선조가...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몸에 걸치거나 입었던 의복 및 이와 관련한 생활 풍속. 공주 지역은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반적인 의생활 양식이 현대화되어 있다. 특히 2008년 현재 대부분 일상복으로 서양복을 착용하고 있으며, 결혼식 폐백 등 특별한 의례복으로만 전통복식이 착용되고 있다. 현재 확립된 전통복식은 남성은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 여성은 치마·저...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곡리 백실에서 탑에 제를 올리어 금강의 수해를 막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냈던 마을 제사. 이곡리는 1983년에 이인면에 편입되었다. 이곡리의 원래 순수 우리말 이름은 배실이다. 1914년 일본의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배실이 이곡리(梨谷里)로 번안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공주 지역은 여러...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곡리에 있는 거석 기념물. 이곡리 선돌은 공주시에서 남서 방향으로 10.8㎞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곡리에 위치한다. 이인면소재지에서 공주-부여 간 국도 40호선을 따라 약 1㎞ 남짓 지나면 오른쪽으로 이곡리로 들어가는 소로가 나 있다. 이 길은 이인에서 금강으로 넘어가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다. 이 소로를 따라 2㎞ 정도 더 들어가면 도...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규상(李圭尙)은 1894(고종 31) 5월 21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당시 공주 영명학교(永明學校)에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이규상은 1919년 3월 12일과 3월 15일에 걸쳐 공주 지역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된데 자극받은 영명학교 교사 김관회(金寬會)·현언동(玄彦東)과 졸업생 김사현(金士賢...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 전주(全州). 덕천군(德泉君)의 13대손이며, 아버지는 이면달(李勉達)[1793~1877]이며, 어머니는 보성오씨(寶城吳氏)로 오종헌(吳宗憲)의 딸이다. 공주 지역의 전주이씨들은 덕천군의 후손들로 덕천군의 손자인 상산군(商山君)의 장남 이요년(李堯年)의 아들인 진주목사 이몽경(李夢慶)[1538~1624]부터였다. 원래 이들은 양주 지역에...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평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이덕사와 이태연의 묘비. 이덕사와 이태연은 한산이씨 집안으로 부자간이다. 이덕사의 묘비는 1666년(현종 7년)에, 이태연의 묘비는 1725년(영조 1년)에 각각 세워졌는데, 특히 이덕사는 우암 송시열의 장인으로, 사위인 송시열이 직접 찬서(撰書)하였고, 이태연 묘비는 권상하(權尙夏)가 찬서(撰書)하였다....
-
고려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개국공신. 본관은 전의(全義). 초명은 이치(李齒)이다. 충청남도 전의현(全義縣)[현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전동면 일대에 있던 옛고을 이름] 출신으로 이후 전의이씨(全義李氏)의 시조이다. 이도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후백제 정벌을 도왔다. 다시 말해, 왕건의 군대가 금강(錦江)에 이르렀을 때 마침 강물이 불어나 건너지 못했는데 당...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활동한 국악인. 이동백은 1867년 충청남도 서산군 비인면에서 출생하여, 1950년까지 생존한 조선 말기 다섯 명창 중의 한 사람이다. 8살에 서당 공부를 하였고, 13살에 판소리에 입문하여 김정근, 김세종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20살 때 2년간 독공하였다. 이동백은 진주 이곡사에서 3년 독공에 들어가기 전까지 공주 지역에서...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정종의 10남인 덕천군의 13대손이고, 덕천군의 현손인 공주 입향조 이몽경(李夢慶)의 4남 이담(李湛)[580~1642]의 7대손이다. 아버지는 이무형(李茂亨)[1793~1861]이고, 어머니는 결성장씨(結城張氏)[1789~1832]이다. 효심이 지극하여 늘 부모를 섬기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아버지...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 공주(公州). 아버지는 이엽(李曄)이다. 이명덕은 1392년(태조 5) 생원으로 식년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사헌부감찰, 사간원우헌납, 장령, 사인, 집의를 거쳐 품계가 좌사간대부(左司諫大夫)에 이르렀으며, 형조참의겸지도관사(刑曹參議兼知都官事) 등을 역임하였다. 1415년(태종 5) 승정원동부대언(承政院同副代言)이 되었다가 좌...
-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 공주 출신의 지사.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경장(敬章)이고, 호는 송은(松隱)이다. 할아버지는 첨의정승 이사손이고, 아버지는 전공판서 충청공 이엽(李曄)이다. 조선 각 시기에 간행된 읍지류에 등록된 가문을 보면, 공주이씨는 전주이씨를 비롯하여 부안임씨, 김해김씨, 여흥민씨 등과 더불어 공주의 유력 성씨 및 명족의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이목과 아들인 이세장과 관련된 유적. 이목(李穆)[1471~1498]은 반포면 충현서원에도 제향된 인물로 조선 전기 호서의 사림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중옹(仲雍), 호는 한재(寒齋),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19세로 진사에 합격하였으며, 1495년 25세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
고려시대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이복은 병석에 있는 어머니를 위하여 겨울에 금강 물의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모친을 치유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리고 공주시 옥룡동 부근에 ‘국을 엎질렀다’는 뜻의 ‘갱경(羹傾)골’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갱경골은 이복이 어머니에게 먹일 국을 얻어 귀가하던 중 서두르다 넘어져 국을 엎지른 곳이란 유래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
조선시대 금강[충남 공주] 출신으로 일본 도조(陶祖)가 된 도공. 공주 금강에 살던 이삼평은 도공으로 활동하다 임진왜란 중인 1596년 사가번의 번주(藩主)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조선 철군 때 예닐곱 명의 조선 도공과 함께 포로로 피랍되었다.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이삼평은 일본의 가라쓰[唐津]에 도착하여 오기군[小城郡] 다쿠촌[多久村]에 살면서 가나가에[金ヶ江...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 1913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였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서울방송국에서 근무하였으며 1946년부터 1949년까지 청주고등학교와 공주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9년부터 1971년까지 공주사범대학 교수로 근무하였다. 공주사범대학 교수로 재임하는 동안, 공주사범대학 부속 중·고등학교 교장을 겸임하기도...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이다. 1607년(선조 40)에 충청남도 금산군 노동리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학(幼學) 이서(李曙)이다. 어머니는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김집(金集)이 천거하여 1634년(인조 12)에 희릉참봉이 되었다. 이어 세자사부(世子師傅)를 지냈...
-
1894년(고종 31) 11월 19일 충청도 공주 이인역에서 동학농민군과 관군 및 일본군의 연합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 1894년 정월 전라도 고부봉기로부터 시작된 제1차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5월 관군과의 전주화약을 계기로 일시적인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전라도 전역에 집강소(執綱所: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이 전라도의 각 군현에 설치하였던 농민 자치 기구)를 설치하고...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서 확인된 원삼국시대의 무덤. 이인리 널무덤은 이인면소재지에 위치한 이인중학교의 동쪽 전방부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남서쪽의 산에서 북동향하여 흘러내린 능선의 남동사면 하단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표고상으로 55m의 위치에 있으며, 지형적으로 구릉의 선상부에 해당하나 비교적 저평한 지역이다. 공주-부여 간 국도 40호선 확...
-
충남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는 조선시대 비석군. 공주시 이인면 면사무소 앞에 충청도관찰사 선정비 3기와 찰방 선정비 5기의 비석군이 위치해 있다. 관찰사 선정비 3기는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한 윤광안, 남일우, 박제순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찰방 선정비 5기의 경우 역대 이인찰방들 중 이계희(李繼禧), 안승후(安承煦), 박창순(朴昌淳), 이범천(李範天)...
-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던 역원이다. 고려 때부터 1894년 갑오개혁으로 역원제가 폐지될 때까지 있었다. 1535년(중종 30)부터 찰방(察訪)이 주둔하여 산하의 9개 역을 관할하였다. 이인면은 한양과 호남으로 통하는 대로에 있어 백제시대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고려시...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탄금(彈琴), 호는 사포(沙浦)이다. 성호 이익(李瀷)과 『택리지(擇里志)』를 저술한 이중환(李重煥)을 배출한 여주이씨 집안의 종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상홍(李尙弘)이다. 이상홍은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사위이다. 이지천은 1598년(선조 31) 형인 풍곡(楓谷) 이지화(李知和)[1573~16...
-
충청남도 공주에 묘소가 있는 조선 인조의 다섯째 아들. 이징이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묻힌 까닭은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를 따라 공주로 피난 와서 신분을 감추고 오룡골에 사냥을 나가 만난 처녀와의 인연으로 죽어서 처녀가 살고 있는 오룡골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조선 제12대 왕 인...
-
공암1리 버스정류장에서 남쪽으로 닿아있는 산언덕을 오르면 이천서씨 선산이 있다. 선산을 가기위해 언덕에 오르면 바로 1966년에 세워진 서장호 처 부안임씨의 효부정려가 있다. 여기에서 바로 시작되는 대전-공주간 23번 국도에 놓여진 육교를 타고 공청봉 자락산으로 건너가면 선산과 재실, 고청서기 묘지가 나온다. 고청 서기 묘지는 선산 분묘 중 가장 높은...
-
공암은 이천서씨의 동족마을이다. 이천서씨 중에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인물은 고청(孤靑) 서기(徐起)[1523-1591]이다. 그는 충청우도 남포현(藍浦縣) 제석동(帝錫洞)에서 태어나 노년에 공암에 정착한 인물로 한미한 출신의 한계를 딛고 일어나 당시 신분사회의 질곡 속에서도 개인적 역량으로 한 시대에 기록될 만한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사람이다. 서기가 공주...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형(季衡), 호는 성암(醒菴)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의 9대손이다. 아버지는 이홍제(李弘濟), 어머니는 상산박씨(商山朴氏)로 통덕랑(通德郞) 박용원(朴龍遠)의 딸이다. 1904년 일본 사람들이 철도 부설을 위하여 공주에 있는 선영(先塋)을 침범하자, 유림의 진정서를 갖고 관계자를...
-
조선 중기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정숙(靜叔), 호는 눌재(訥齋)이다. 아버지는 이덕사(李德泗)이고, 우암 송시열이 매부이다. 1642년(인조 20) 진사로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자·검열을 거쳐 이듬해 대교가 되었고, 1646년 설서·정언·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50년(효종 1) 공산현감·수찬을 지냈고 낙당(洛黨) 김자점(金自點)의 일파로 탄...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 논밭을 소유하고 직접 농사를 지은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조선 제2대 왕 정종이다. 어머니는 정종의 후궁인 성빈 지씨이다. 정종의 열 번째 아들이다. 평소에 검소하여 사치를 멀리 하였고 가난한 자를 살피는 등 성품이 곧은 인물이었다. 왕자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농사에 힘써 공주에 논밭을 소유하고 때때로 내려와 직접 농사를 지었다. 어느 해 여...
-
충청남도 공주시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의 총체. 2006년 12월 31일 현재 공주시의 총 인구는 129,862명(남자 65,473명, 여자 64,389명)으로 충청남도 전체 인구 1,974,433명의 6.5%를 점유하고 있는데, 매년 감소 추세에 있다. 인구 밀도는 138명/㎢, 세대 수는 49,744세대, 세대당 사람 수는 2.6명 등으로 모든 수치가 감소 추세에 있다...
-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지표상에 존재하는 인문적 사상들을 지리적 관점에서 분석한 분야. 공주 지역은 충청남도의 동부 중앙에 있다. 경도상으로 볼 때 동쪽은 연기군의 서면·남면·금남면과 그리고 대전광역시의 유성구·서구에 접하고 있으며 동쪽의 맨 끝은 반포면 봉암리의 동쪽으로 동경 127° 17' 30"이다. 서쪽은 예산군의 대술면·신양면과 청양군의 운곡면·대치면·...
-
1624년(인조 2) 2월 이괄의 난으로 한양이 함락됨에 인조가 공주에 잠시 피난한 일. 선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광해군은 국방의 강화와 중립적 외교 정책 등 민생과 대외 정치에 있어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대내 정치에 있어서는 대북파의 권력 독점을 허용함으로써 다른 정치 세력들을 소외시켰고, 무엇보다도 인목대비를 폐비시킴으로써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동에 있는 산. 공주시가지의 남쪽에 위치하는 데 해가 지는 모양이라 하며, 공주중동초등학교 뒷산인 일출산의 상대적 개념에서 따온 산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떨어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월락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광복 후에 일락산으로 다시 고쳤다. 현재는 두 이름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일락산은 구릉성 산지로 높이는 170m이다....
-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역참은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 관아에 전달하며 외국 사신의 왕래, 공무 여행자에게 말을 제공하고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주요 도로에 대개 30리마다 두었다. 여러 개의 역을 하나로 편성하여 찰방(察訪) 또는 역승(驛丞)이 이를 관장하는 동시에 교통로 상의 지위를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보고하기도 하였다. 기록에 나타나는 공주...
-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35년간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시기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역사.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강점기는 1910년대의 무단통치기와 1920년대의 문화정치기로 불리는 민족분열통치기, 그리고 1930년대 이후부터 1945년 일제 패망까지의 파쇼통치기 등 3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식...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의병. 임대수(林大洙)는 1882년(고종 19) 2월 12일 현재의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당리에서 출생하였다. 임대수는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나서 쇠퇴하여가는 국권을 회복하고자 충청남도 일대에서 의거의 기치를 올려 19개 군에서 의병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순종 1) 정미칠조약이 체결되고 이어서 군대...
-
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은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에 조선은 관군과 각처에서 모집된 의병 등이 총력전을 펼쳤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명(明)이 개입하여 조선과 연합군을 형성, 일본에 대항하는 한편, 일본과의...
-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현대문학인. 임헌도(林憲道) 시인은 1920년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40년 『조선일보』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필 활동을 시작하였다.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공주대부설고등학교 교사,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를 역임하면서 시와 시조를 창작하는 한편, 공주 지역을 포함한 충청 지역 구비문학 작품의 수집·...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문신. 19세기 한말 대표적인 성리학자로서 충청남도 연기·공주 일대에서 크게 활약한 임헌회(任憲晦)[1811~1876]는 많은 관직들을 사양하고 성리학 특히 주기론(主氣論)을 주장한 인물이다.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이며, 자신의 문하에 간재(艮齋) 전우(田愚) 등이 있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명로(明老), 호는 고산(...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자연의 예기치 않은 변동에 의해 일어나는 피해. 자연 재해의 발생 유형은 지리적 자연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공주시 지역은 자연 지리적으로 내륙에 있으며, 협소한 주거 지역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를 이루고 있다. 공주시 지역 금강 이북에 신시가지가 조성되기 이전에 공주시 지역은 협소한 분지 모양의 지형적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지표의 자연 현상을 지역적인 관점에서 구명하는 지리학의 한 분야. 공주 지역의 자연지리는 지질·지형·기후·토양 등의 측면에서 정리할 수 있다. 공주 지역의 지질 분포를 보면, 선캄브리아기의 운모편암과 편마암, 중생대의 안산암, 화강암류, 공주군층, 신생대 4기의 충적층 등이 나타난다. 공주 지역은 차령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있으며, 산지...
-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에서 서민들이 지어 부르던 음담 성격의 노래. 공주 지역 사람들이 말하는 잡가는 일노래 속에서 음담이 들어 있는 모든 노래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12잡가, 휘모리잡가, 서도잡가, 남도잡가 등을 지칭하는 노래의 제목이 아니다. 예를 들면 「각설이 타령」 중에 「운우지정 사설」이나 「첫날밤 타령」 가운데 「씹타령」, 「아리랑」 중에...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태산리[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태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덕천군의 사우. 덕천군의 휘는 후생(厚生)이고 시호는 적덕(積德)이다. 정종의 10남으로 모후는 충주 성빈지씨(誠嬪池氏)이다. 성빈지씨가 흰 기린 꿈을 꾼 뒤 공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덕천의 천성이 효심이 깊고 우애로워 정종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후(厚)’자로 이름을 지었다고...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계룡산 연봉 중의 하나. 장군봉의 명칭 유래는 여러 개가 있는데, 산 봉우리가 장군 모양 같다고 하거나 산 모양이 오줌통(장군)을 닮았다고 해서 장군봉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람만한 큰 장군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를 떨어뜨렸다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고 해서 장군봉이라 불린다고도 한다. 장군봉은 계룡산 국립공...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에 있었던 집성촌. 부안임씨가 연기와 공주 일원에 뿌리를 내린 시기는 고려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후기에 공조전서로 봉직하던 임난수가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맞이하여 신하 된 도리로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충절을 지키기 위해 낙향한 곳이다. 당시 임난수는 제천리의 이웃 마을인 연기군 남면 양화리에 터를 잡았고 이후 현재까지 양화리...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신교의 한 종파. 한국의 장로교는 1884년 의사 알렌(Horace N. Allen)이 선교하면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목사에 의해 교세가 많이 확장되었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장로교는 1947년 4월 27일 공주시 반죽동 정영환의 집에서 최영실(崔永實) 장로를 비롯한 30여 명이...
-
서울에서 섬유업을 경영하던 장영덕 씨는 1990년대 초 도심공장의 지방이전이라는 서울시 방침에 따라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중소기업이 어렵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잘됐구나 싶었다. 낙천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힘들 때면 어린 시절 시골생활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이겨내곤 했었다. 그러나 막상 적당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 다녔지만 딱히 마음...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장원리 강성기미에서 확인된 원삼국시대의 무덤. 장원리 유적은 공주에서 북쪽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0㎞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유적은 표고 71.2m의 야산 정상부와 동쪽 경사면을 포함한 지역에 넓게 분포하며, 특히 원삼국시대 무덤은 야산의 북쪽 경사면 일부를 제외한 전체 조사 범위에서 확인된다. 장원리 유적은 1...
-
1920년대 일제가 설치한 친일적 회의체와 이에 대항한 유림 단체. 일제강점기에 충청남도는 도령으로 장의회의를 설치하여 각 군 향교의 재산을 관리하고 유생들을 통제하고자 하였다. 각 군의 장의회의는 10명 내외의 유림들로 구성되고, 의장은 군수였다. 이와 같이 일제가 장의회의를 조직하여 지방의 향교 재산을 관리하고 유림들을 통제하여 지방 세력을 장악하려고 시도하자, 유림들은 유림계...
-
1932년 3월 충청남도 공주에서 이수준, 이용하 등의 청년들이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독서회를 결성한 사건.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영향을 받아 조선의 농민과 노동자를 비롯한 대중의 생활은 더욱 악화되었다.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강화하고 민족 운동과 사회 운동을 탄압하였다. 사회 운동 세력은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활동가들이 체포되자, 소수 지식인과 학생 중심...
-
1931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청년들이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취하고 대중 운동을 지원한 사건.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영향을 받아 조선의 농민과 노동자를 비롯한 대중의 생활은 더욱 악화되었다.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강화하고 민족 운동과 사회운동을 탄압하였다. 사회 운동 세력은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활동가들이 체포되고, 소수 지식인과 학생 중심의 활동을...
-
백제문화제는 옛 백제 문화의 선양과 전통 문화의 창달을 목적으로 하여 백제 수도였던 공주의 공주 공산성과 부여의 구드레 광장을 중심으로 매년 10월에 개최되는 문화 관광 축제이다. 충청남도와 공주시·부여군이 주최하고 백제문화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하고 있는 축제로 지역적 축제에서 벗어나 전국적 규모의 축제로 진행되고 있는 전국 3대 축제의 하나이다. 1. 부여 단독 개최: 제1회(195...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지역에 있던 고을을 일컫던 지명. 전막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한다. 하나는 주막거리가 있어서 마차들이 전부 쉬어 갔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구한말 청나라 사람들의 밭이 많았으며, 그 밭을 돌보는 작은 집들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천막을 오른다는 뜻으로 이곳에 빈촌이 많이 있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대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세 쌍의 효열 정려. 전의이씨 삼쌍 효열 정려는 1729년(영조 5)에 명정을 받은 이연회와 1736년(영조 12)에 명정을 받은 이연회의 처 열녀 청송심씨, 그리고 1724년(영조 1)에 명정을 받은 이진성의 효행과 절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공주에서 청양 방향으로 국도 32호선을 따라 20㎞ 정...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화은2리 점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점골 고분군은 점골마을의 북서쪽에 있는 해발 300m의 무명산 남사면 중하단부에 위치한다. 고분군이 위치한 능선은 2개의 구릉으로 나뉘어 있으며, 양쪽 구릉의 해발 80~100m 내외 지점에 고분과 관련 석재들이 분포한다. 점골 고분군은 1987년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진행한 문화재 지...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장기(長鬐). 할아버지는 도암(陶庵) 이재(李縡)[1680~1746]의 제자 정래교(鄭來僑)이다. 아버지는 종제 정래숭(鄭來崇)의 장남 정광흠(鄭光欽)으로, 후사가 없는 집안에 양자로 입적되었다. 어머니는 풍양조씨 조벽(趙壁)의 딸로 풍녕군(豊寧君) 조응록(趙應祿)의 6대손이다. 부인은 청송심씨 심태진(沈泰鎭)의 딸로 부원군 심온(沈...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낙진(丁洛鎭)은 1925년 5월 18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송원리 683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일본 동경철도학교 재학 중인 1941년 12월에 항일결사 우리조선독립그룹에 가입하여 활약하였다. 정낙진은 우리조선독립그룹의 주도역할을 맡았던 현창석(玄昌碩) 등과 함께 여러 차례 모여 독립의식을 길렀다. 정낙진과 우리조선...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 호는 애일당(愛日堂). 판중추부사 문정공 정이오(鄭以吾)[1347~1430]의 아들이다. 그러나 정분에게 자손이 없어 종가에 봉사손(奉祀孫)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홍주목사 정효안(鄭孝安)이 자신의 장자인 정지산(鄭之産)을 그 종숙(從叔)인 정분의 계자(系子)로 입양시켜 대를 잇게 했다. 진주정씨가 이곳 호계리에 정착하게 된...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세거 성씨. 정안면 석송리에 가장 먼저 정착한 성씨는 전주이씨라고 한다. 처음 마을에 입향한 사람은 무림군의 후손인 이영춘(李營春)으로, 평안도 벽동군수를 지낸 인물이다. 정확한 입향 사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영춘의 묘는 의당면 중흥리에 있으며, 다른 후손들도 대부분 공주 지역에 묘가 있다. 정안면 석송리에 정...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에 있는 생태 공원. 정안천생태공원은 차령산맥이 지나가는 공주시 정안면에서 발원한 정안천이 신관동에 이르러 금강과 합류하기 직전인 정안천 하류의 둔치에 시민들이 휴식과 산책을 겸할 수 있도록 조성된 생태 공원이다. 정안천생태공원이 자리한 곳은 원래 농경지로 쓰다 버려진 땅이었다. 그런 곳을 공주 시민과 공무원들이 합심하여 습지·...
-
고려시대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열녀.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공주지(公州誌) 6권에는 ‘공주(公州)에 거주하던 현감(縣監) 정자구(鄭自丘)의 처’라고 기록되었다. 고씨는 나이 33세에 남편 정자구가 죽자 친정 아버지는 고씨를 개가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고씨는 아버지의 명을 좇지 않고 무덤 곁에 집을 짓고 매양 시속 명절날이면 반드시 친히 스스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언평(彦平), 호는 포신(逋臣) 또는 포옹(逋翁)이다. 생부는 홍주목사 정효안(鄭孝安)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이다. 우의정을 지낸 종숙(從叔) 정분이 후사 없이 죽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정효안이 자신의 장남인 정지산을 정분의 계자로 입양시켰다. 어려서부터 학문이 깊어 이름을 떨치더니 1445년(세종 27) 사마시에...
-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과 금성동, 웅진동에 걸쳐 있는 터널. 2002년에 준공되었으며, 지방도 651번 상에 있다. 터널 도로는 상행과 하행 각각 2차로로 건설되어 있다. 백제문화권 종합 개발 계획에 따라 1995년 3월 24일 착공한 백제큰길(공주와 부여를 잇는 백제문화권 개발 도로) 공사 예정 구간인 정지산 정상이, 왕이 하늘에 천제(天祭)를 지내던 제단이었다는 사실...
-
조선 중기 공주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선조실록(宣祖實錄)』에 의하면 선조 24년 사간원에서 “후릉참봉 정천경은 계차를 무시하고 승진하기 위하여 출사를 계산할 적에 간교하고 참람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파직시키소서”라는 기록이 있다. 선조 29년에는 “일을 잘한다는 명성을 얻어 백 리나 되는 고을의 원이 되었으나 역란(逆亂)을 만나자 고을을 버리고...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국가권력을 획득·유지·조정·행사하는 기능·과정 및 제도. 예로부터 충청 지역은 충절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통을 중시하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어 보수적인 정치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이 정치적 영역에 투영될 때, 몇 가지 독특한 특성이 유추된다. 예를 들면, 여론 조사자에 따르면 선거 예측 조사를 할 때, 가장 예측하기 힘든 지역이 충...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정한명(鄭漢明) 1892년(고종 29)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선대로부터 많은 토지를 물려받은 일제강점기 공주 지역의 대표적인 대지주이다. 정한명은 1930년 말 기준으로 76㏊의 전(田), 39㏊의 답(畓) 등 166㏊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정한명은 다른 공주 지역의 대지주들과 함께 남선제사에 자본을 투자하고...
-
1376년(우왕 2) 7월 공주목 정현에서 공주목사 김사혁의 부대가 왜구 침입에 대항하여 벌인 전투. 14세기 말은 원의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고려가 벗어나는 시기이지만 또한,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과 함께 전국적인 왜구의 침입이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되는 시기였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은 충청도의 경우만 53건이 기록되고 있다. 1376년 7월 왜구가 금강을 거슬러서 공주의...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제사 드릴 때 입는 옷. 제례는 조상숭배의 의례로서 제사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지배층에서 시작된 유교식 제례는 구한말에 이르러서는 서민에까지 보급·확산되었다. 해방 이후의 제례는 조상숭배 의례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절차에서 많은 변화를 보였다. 이 변화는 농업 위주의 사회구조가 산업 중심으로 바뀌면서 생기는 변화였다. 제례는 간소화되었고 더불어 제례복...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의 서문 입구에 모아 둔 공적비 중의 하나. 제민천 영세비는 공산성 서문 입구에 있는 43개의 비석들 가운데 하나이다. 제민천 영세비는 공주의 제민천과 제민천에 놓였던 교량의 중수에 대한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별하기 때문에 그 역사적인 의의를 지닌다. 제민천은 금학동의 남쪽 지막골에서 발원하여 공주시내를 관통하여...
-
산제문은 제사를 지낼 때 음색을 갖추어 신명께 고하는 글이다. 문헌기록상 임진왜란 이전부터 부전대동계의 실시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제사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봉향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부전동에 전해오는 산제문은 기해년 음력 11월 겨울[己亥仲冬]에 미산(美山)이라는 사람이 베껴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산제문은 총 52구 208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집 안의 복을 불러온다고 믿는 가신(家神). 제석단지는 ‘시준단지’라고도 불리는 신으로, 원래는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하며 아수라(阿修羅)의 군대를 징벌하는 신이었으나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제석신, 또는 삼불제석(三佛帝釋)으로 불리기도 한다. 공주 지역의 민간신앙에서 제석단지는 산신(産神)의 기능뿐만 아니라 농작물의 결실 및 수복(...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충청합회 소속의 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예수의 재림과 안식일 엄수를 주장하는 그리스도 교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교회이다.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신풍면 조평리의 조평리교회, 중학동의 공주교회, 사곡면 호계리의 사곡교회 등 3개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있다. 조평리교회와 사곡교회의 목회자는 주성로이며, 공...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보흥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인 송산(松山) 조견(趙狷)을 모신 사당. 공주시에서 청양으로 가는 국도 36호선을 따라 15분 정도 달리다 보면 우성면 보흥리가 나온다. 보흥리 보적골 경덕산업 옆에 있다. 원래 조견을 제향한 사당은 정절사(旌節祠)와 송산사(松山祠)로서, 양주 지역에 있었으나, 후손들이 공주로 이거하면서 사당을 함께 이전한...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역사. 조선시대에 공주는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감영의 소재지이자 관찰사가 위치하는 행정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충청도는 고려 말 1356년(공민왕 5) 양광도를 개칭한 것으로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행정구역의 조정이 이루어져 태종 때에 대체로 그 윤곽이 정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주는 충청도의 4...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부엌을 다스린다고 믿는 가신(家神). 조왕은 화신(火神)으로, 지역에 따라 조왕각시·조왕대신·부뚜막신이라고도 부른다. 조왕신앙의 풍습과 특징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공주 지역과 같은 남부 지방에서는 조왕이 가족의 질병과 액운을 막아 주며 가운(家運)이 일어나도록 도와준다고 믿었다. 조왕은 보통 부엌에 자리한 가신으로 알고 있으나 불교에서...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을 피해 인조(仁祖)가 공주로 피난 올 때였다. 당시 인조는 시종 몇 명과 함께 평민 복장으로 초라하게 피난을 왔는데, 이 마을에 살던 노숙이라는 사람이 쌀 300석과 닭 수 백 마리를 인조에게 바쳤다. 이에 크게 기뻐한 인조가 노숙에게 소원을 묻자, 노숙은 “묵지전의 세금을 덜어서 민폐를...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특정한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이 가진 신앙 체계. 충청남도 공주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도 또는 충청남도의 중심지로서 문화나 행정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지녀왔다. 따라서 종교적으로도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높은 종교적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다. 특...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산. 일부 산의 이름들은 풍수지리학적인 관점에서 산체의 형태나 형세를 따져 이름이 지어지는데, 주미산 역시 그 중 하나이다. 공주의 지형이 배와 같고, 주미산은 그 배의 꼬리 부분에 해당되어 주미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주미산은 높이가 381m이며, 공주시 남쪽에 위치해 있다. 주미산의 동쪽에는 우금치가 있으며, 남쪽에는 철마산이...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온 살림집의 형태와 기능 및 전반적인 생활의 모습들. 고대 백제 이전의 공주 지역은 공주 석장리 구석기유적의 발굴로 인하여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의 생활 터전으로 사용되었고, 신석기시대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유물 등이 수습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넓은 지역에 걸쳐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에 들어서면 주거지와 저장고...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전해지는 판소리 유파. 판소리는 한 사람의 소리꾼[唱者]이 고수(鼓手)의 북 반주에 맞춰 극적(劇的)으로 구성된 이야기를 ‘소리’와 ‘아니리’ 그리고 ‘발림’을 통해 전달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공연 예술이다. 판소리는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등 크게 세 유파로 구분할 수 있다. 판소리 중에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에게 가장 알려져 있는 것이 서편제...
-
공주는 명창 박동진과 이동백으로 유명한 판소리의 고장이다. 공주 출신이거나 공주에서 활동한 명창들 중에는 공주와의 연계에 다소 무리가 있는 인물들이 있기는 하나, 일정 기간 공주에서 활동한 인물이거나 공주 출신자들만의 면면만으로도 이들의 판소리가 공주를 중고제의 본산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공주가 충청관찰사의 소재지였다는 지역적 위...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공주의 중앙에 있는 지역이라 하여 중동(中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동부면(東部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현동(官峴洞), 강경동(江景洞) 일부와 남부면 고상아리(古上衙里), 허문리(許門里) 일부를 병합하여 중리(中里)라 하였다. 1931년 4월 공주읍이 승격되어 공주읍에 편입되었고 1938년 본정...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서 아이의 출생에 맞추어 안방에서 삼신에게 예의를 표하던 민간의례. 삼신제는 삼신굿이라고도 한다. 공주 지역에서는 아이를 ‘귀딩이’라고 불렀는데, 돌잔치에는 풍물패가 찾아가 대문 밖이나 바깥마당에서 고사상을 차려놓고 축원하는 ‘귀딩이 덕담’이 있다. 삼신받이에서 대를 따라 밖에 나가 돌이나 나무를 가져온다. 그러면 무당이 삼신전대를 만들어 받아온 삼...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 있는 공원. 중앙공원은 공주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으로 건립 과정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일제강점기부터 있던 공원으로 1924년 4월 공원에 가로등이 설치되어 밤마다 벚꽃 놀이를 즐겼을 정도로 벚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구 국립공주박물관을 포함했던 상당한 규모의 공원이었다. 현재 중앙공원으로 그 규모가 상당히 축소되어 공주영명중학...
-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지주제라는 것은 한국의 농민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켜 일본인들의 지배를 강화시키고 수탈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다. 우선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수탈을 강행하였고, 온갖 이유를 들어 소작료를 엄청나게 올리면서 끊임없이 농사에 간섭을 했다. 조금씩 불만을 갖고 있던 소작인들은 신분적으로도 일본에게 예속되는 상태가 되자, 소장쟁의라는 이름으로 1920년부터...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서 음력 정월 초사흘에 지내는 마을 제사. 갑사는 공주에서 동쪽으로 약 17㎞ 떨어진 계룡면 중장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계룡산 연천봉 서쪽 산골에 싸여 있다. 갑사는 420년(백제 구이신왕 원년)에 아도(阿道) 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 중장리 갑사 괴목대신제는 갑사 입구에 있는 1,600년이 넘는 나무에 제를 올리는 행사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오미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중장리 고분군은 계룡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2.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수정봉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산맥의 서사면 말단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해발 95.2m 내외의 나지막한 산봉의 서남사면 중하단부 일대이다. 중장리 고분군은 1975년 주민의 신고에 의해 알려져...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성재산 정상부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성. 공주시내에서 논산으로 통하는 국도변에 있는 만큼 공주 남쪽에서 공주시내로 진입하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한 산성으로 보인다. 공주에서 논산으로 통하는 국도를 타고 9㎞쯤 가면 계룡면소재지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다시 계룡산 쪽으로 약 800m 정도 들어가면 중장리 성재산이 나온다....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있는 평야. 여러 곳 작은 들의 종가(宗家)와 같은 들이라 해서 종평이라고도 부르며 마루처럼 판판한 들이라 해서 마룻돌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평들은 공주시가지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계룡산 국립공원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 곡저 충적 평야 중 하나이다. 공주~논산에 걸치는 남북의 구조곡에 형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충적 평야로 상평들과...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중등 보통 교육 기관. 1. 근대 근대 공주에 중학교 과정으로 처음 설립된 학교는 1905년 세워진 명설학교이다. 이듬해인 1906년 중흥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1909년에는 영명학교로 변경하였다. 영명학교는 지금의 공주영명중학교와 공주영명고등학교의 효시이다. 1910년 실업계 중등학교로 도립공주농림학교가 설립되었다. 도립공주농림학교는 1911년...
-
일제강점기에 충청남도 공주시의 대통교양 쪽 장소에서 열렸던 정초의 민간 제의(祭儀). 중학동 장군제는 대통교를 기준으로 이남과 이북에서 정초의 행사 가운데 하나로 열렸다. 마을 사람들의 친목을 다지고 한해를 준비하는 마을 신앙의 한 형태였다. 가을에 열렸던 중동 별신굿과 함께 공주 지역의 양대 행사였다. 정초의 행사는 예축(豫祝) 제의, 가을에는 감사(感謝) 제의였다....
-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기반을 이루는 지각의 구성 암석 및 광물의 상태. 공주 지역에 나타나는 암석은 지질시대 순으로 크게 선캄브리아기의 변성암류와 중생대 쥐라기의 화성암류, 그리고 백악기의 퇴적암류로 분류할 수 있다. 선캄브리아기 변성암류는 공주 지역의 암석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이 지역의 북서부에 넓게 분포하며, 호상편마암과 운모편암 등이 주를 이룬다. 편...
-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지표면의 기복 및 모양이나 형태. 공주시는 차령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위치하며 크게 산지 지형과 분지 지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산지 지형은 공주의 북부와 남동부 지역에 발달하였는 데 북부 지역은 차령산맥이 북동에서 서남으로 뻗어 무성산[614m]과 금계산[574m] 등 여러 산을 형성하고 있으며, 남동부의 경우는 천황봉[846.1m]을...
-
충청남도 공주시 검상동에 있는 패널 제조업체. 다양한 패널을 생산·판매하고, 미래의 패널 산업을 창도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1999년 12월에 설립되었다. 본사 및 공주공장은 충청남도 공주시 검상동 검상농공단지에, 논산공장은 논산시 지방산업단지에 있다. E.P.S 샌드위치 패널, G.W 샌드위치 패널, 그라스울 패널, 우레탄 패널, 칼라무늬프린트 패널, 칼라강판 부자재...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하봉리 충렬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주유씨 집안의 효자 및 열녀 세 사람의 정려. 진주유씨의 삼효열 정려는 1722년(경종 2)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죽은 유취장(柳就章)의 아들 유선기, 유취장의 처 전주이씨, 유선기의 처 경주이씨 등 3인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해 명정이 내려졌다. 공주시청에서 웅진로를 타고 약 1.4㎞ 정도...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상서리에 있는 고개. 질마고개는 우성면 상서리의 뱀고지 동쪽에 인접해 있는 고개이다. 질마고개는 길마의 형상에서 연유된 지명이므로 본래는 ‘길마고개’인데, 구개음화에 의해 ‘질마고개’로 변한 것이다. ‘ㄱ〉ㅈ’의 구개음화는 공주 지역의 방언에서 매우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한자형인 길마치(吉馬峙)도 길마고개에서 길마를 음차하고, 고개를 훈...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사람들이 같은 성(姓)과 본관(本貫)을 가지고 한 마을을 이루고 사는 곳. 공주 지역의 집성촌을 일괄 조사한 자료로는 1920년 조선의 성씨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한 『조선의 성』이 있다. 그 당시에 전면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 당시 조사에 의하면 공주에 많은 집성촌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에는 예전 집성촌의...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부르는 민요의 하나. 경기민요인 창부타령과 공주 지역의 창부타령은 노래를 부르는 방법과 노랫말의 양식이나 길이 모든 면에서 다르다. 공주 지역 창부타령의 특징을 경기 지역 창부타령과 비교하여 분야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창법: 공주 지역의 창부타령은 상청으로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남여 누구나 부르면서도 자신이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목청으...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종교의 하나. 천도교(天道敎)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자 제1대 교주인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1864]가 1860년에 세운 민족 종교인 동학(東學)을 1905년 제3대 교주 손병희(孫秉熙)[1861~1922]가 개칭한 종교이다. 동학은 서학(西學)인 천주교에 상대되는 의미이며, ‘사람이 곧 하늘이요, 하늘의 마음이 곧 사...
-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동에 소재하고 있는 천도교의 교구. 천도교 공주교구는 현재 공주 지역의 천도교 포덕(布德-전교 혹은 선교와 같은 용어임) 및 교인 교화를 담당하고 있으며, 천도교의 독특한 연원(淵源) 제도에 의해 광제포(廣濟包)에 소속되어 있다. 연원제도는 천도교의 정신교화를 담당한 조직으로 그 명칭이 ‘00포’로 되어 있으며 최고 지도자는 도정(道正)이라...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에서 탄천면 화정리까지 연결되는 고속국도. 천안~논산간고속국도는 천안시 목천읍 응원리의 경부고속국도 천안분기점에서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의 호남고속국도 논산분기점까지 연결되는 도로로, 총 길이는 82.00㎞이다. 인천국제공항고속국도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민간자본에 의해 건설된 도로이다. 천안~논산간고속국도의 개통으로 서울~논산의...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2005년 현재 가톨릭교회는 전 세계에 약 11억 명의 신도를 가진 최대의 공변된 교회이다. 2002년 현재 한국에는 420여 만여 명의 천주교 신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천주교회의 교구 수는 서울·대구·광주의 3개 대교구를 포함하여 모두 14개이다. 본당은 765개이며 공소(公所)는 1578개이다. 성직자는 대주교...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19세기 천주교 박해기에 천주교도들이 비밀리에 은거해 살던 마을. 엄격한 의미에서는 천주교도들만으로 이루어진 신자 공동체형 교우촌을 뜻하지만, 넓게는 신자와 비신자가 함께 사는 혼거형 교우촌까지도 포함시킨다. 특히 공주 지역에는 박해가 끝난 뒤에도 이와 유사한 교우촌이 각처에 새로 형성되었다. 기록에 처음 나타나는 공주 지역의 천주교 교우촌은 수리...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계룡산 일대에서 대량 생산된 산화철로 그림이 그려진 분청사기. 공주 계룡산에서는 조선시대 분청사기 제작 기법 중에 지역적 양식이 독특한 철화분청사기가 대량 생산되었다. 철화분청사기란 검붉은 태토에 귀얄로 막걸리색 분장토를 바르고, 그 위에 짙은 먹쑥색의 산화철로 익살스런 민화 고기나 당초문, 추상문을 그린 도자기를 말한다. 투박한 소지...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청년층에 의하여 조직되고 운영되었던 단체. 청년운동이란 청년들에 의해 수행되는 운동으로, 청년의 공통적인 세대적 특성에 기초해서 사회적 처지로 인해 고통 받는 각계각층 청년들이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하여 전개하는 운동이다. 이러한 사회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청년층들이 조직하고 운영해온 단체를 청년단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청년...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신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청동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청동기시대는 일반적으로 인류의 물질 문화 발전 단계 중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때부터 철기를 만들어 쓰기 직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청동기시대는 본격적인 농경사회의 시작, 무문 토기의 등장, 마제 석기의 본격적 사용, 사회 복합도의 증가로 정의된다. 한국의 청동기시...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마암리와 장기면 금암리를 연결하는 다리. 청벽대교는 서산~대천 간 또는 공주시 유구읍 녹천리~공주시 반포면 온천리 간을 연결하는 국도 32호선의 금강 상에 건설된 교량이다. 금암리 쪽에는 금암IC가 개설되어 있다. 상·하행 각각 2차선으로 되어 있다. 청벽대교는 금강에 바로 근접해 있는 청벽산의 서쪽에 위치한다. 태안~청원 간...
-
웅진문화회에서 해마다 열고 있는 청소년 댄스 대회. 청소년댄싱페스티벌은 1997년 공주 관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댄스 경연 대회였다. 웅진문화회에서 구 공주극장 건물을 운영할 당시 제1회와 제2회 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를 계기로 어른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청소년 댄스 문화의 긍정적인 면이 부각됨에 따라 댄싱 축제가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충청남도 지...
-
한국연극협회 공주지부에서 해마다 열고 있는 청소년 연극 대회. 청소년연극축전은 유능한 아마추어 연극인들을 조기에 발견·육성하고 교육을 통해 연극인의 저변 확대와 공주 지역의 연극 예술 발전에 기여하고자 공주대학연극제로 처음 개최되었다. 제1회 공주대학연극제는 관내 4개 대학교의 연극 동호회에서 출품하여 대상 1작품과 개인상을 시상하는 경연 대회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제1...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이루어지는 신체를 단련하고 운동 능력을 기르는 일 또는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 근대 이전 우리 민족의 주요 체육 활동은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줄다리기, 활쏘기, 그네뛰기, 씨름, 썰매타기, 가마타기, 팽이놀이, 팔씨름 등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체육 활동은 1910년대부터 설립되기 시작한 보통학교의 정규 교과 과정으로...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체육 단체 및 협의회. 공주시 경기 가맹 단체는 공주군 체육회가 태동한 근대 체육에서 비롯되었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경기 단체도 변화하였다. 특히 학교 중심의 체육 활동에서 점진적으로 사회단체로서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공주시 체육회는 1995년 각 경기 가맹 단체의 육성·지원으로 회장, 부회장, 이사, 고문 등 임원 총 158인으로...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초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공주에서 부여 방향으로 약 12㎞ 정도의 거리에 이인면소재지가 있다. 초봉리 고인돌군은 이인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1㎞ 정도 거리에 위치한다. 이곳은 공주와 부여를 연결하는 국도 40호선 변에 해당한다. 유적의 동쪽 전방으로는 용성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그 주변에는 넓은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자연 마을. 조선 전기까지는 하나의 자연촌(自然村)이 하나의 리(里)를 형성할 만큼 자연적 최소 생활공간이 규모화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인구의 증가, 경지의 개간과 확대, 농법의 개량과 생산량 증대 등으로 점차 생활 공간이 규모화하고, 이러한 변화는 자연촌의 성장과 발달, 나아가 집촌(集村)으로의 성장과 발달로...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안동권씨의 정려. 공주터미널에서 국도 32호선을 따라 예산 방면으로 가면 연미터널이 나오는데 그 터널을 지나 0.5㎞ 정도 가다가 질마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우성면 도천리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다시 2.5㎞ 정도 거리에 서북쪽으로 보이는 마을이 우성면 내산리이다. 최백복 처 안동권씨 정려는...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무용 단체. 최선무용단은 한국 전통춤의 계승과 재창조를 목표로 작품 창작 활동에 진력하면서 무용 예술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확장시켜 공주 지역의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하고자 창단되었다. 최선무용단은 1989년 공주대학교 무용학과 한국무용 교수인 최선과 김래성, 원정혜, 백우석 등 무용학과 한국무용 전공 학생들이 출연한...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개최되는 각종 규모의 행사. 공주는 백제시대의 서울[首都]이었으며 이후 충청도의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였다. 또한 금강과 계룡산의 아름다운 경관과 마곡사·갑사·신원사·동학사 등의 전통 사찰이 자리잡고 있으며 계룡산은 조선조 삼악중 중악으로 일컬어질 만큼 중요시 해온 산이다. 이에 따라 무속적인 면에서도 계룡산을 신성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
조선 후기의 학자 미촌 윤선거(尹宣擧)[1610~1669]는 계룡의 남북으로 명승지가 있는데 공암의 산수가 최고의 경치이고 그 다음이 갑사라 하였다. 공암은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를 말하는데 이곳은 계룡산 산줄기가 뻗은 사이로 용수천이 흐르고 낮은 야산 아래에 절벽이 이어져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지만 공주와 대전의 중간에 위치한 덕분에 급속히 개발이 진행된 상태이다. 그러나 갑사는 아...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아이의 출산을 전후하여 행하는 의례. 산속(産俗)이라고도 하는 출산의례에는 넓은 의미에서 아이를 갖기 위해 행하는 기자의례(祈子儀禮)부터 금기, 태교, 해산, 태처리 등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행해지는 여러 가지 의례가 포함된다. 출산의례는 모두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고 안전하게 하기 위한 실질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공주 지역에서는 예부...
-
조선 전기부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관찰사가 파견되어 직무를 보던 관아.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공주 지역은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감영의 소재지이자 관찰사가 위치하는 행정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조선시대에는 고을의 등급에 따라 중앙으로부터 부윤(종2품), 군수(종4품), 현령(종5품), 현감(종6품) 등의 수령이 파견되었다. 공주 지역에는 충주·청주·홍주와 함께 정3품의 목사가 파견되었...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도립 교향악단. 1991년 첫 연주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공주 지역에서 터를 잡고 연주회를 꾸준히 열어 음악 애호가의 저변 확대를 통해 공주시를 비롯한 충청남도 지역의 클래식 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도립 교향악단이다. 지역 문화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며 충남 지역 주민의 정서 함양 및 문화 향유 욕구를 충족시키고 최고의 예술적...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하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형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사우. 공주시에서 장기면 방향으로 국도 36호선을 따라 30여 분 달리다 보면 장기면 하봉리에 도착하게 된다. 충렬사는 하봉리에 들어서면 하봉저수지를 지나 마을회관 뒤 구릉에 있다. 유형 장군의 후손들은 충민공 유진동(柳辰仝), 충경공 유형(柳珩), 금사 유충걸(柳忠傑...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김해(金澥)와 아들 김경원(金慶遠)의 정려. 공주시청에서 예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2.5㎞ 정도 가면 연미산이 있으며, 이 산을 지나면 도로 오른쪽으로 우성면 신웅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다시 2.5㎞ 정도 더 가면 현재는 폐교된 청산초등학교가 나오는데, 학교 직전 다리에서 왼...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노숙의 정려. 공주에서 천안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2㎞ 정도 가다가 목천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해서 길을 따라 3㎞ 정도 더 가면 우성면 동곡리가 나온다. 동곡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동곡리 조왕골이 있는데, 충신 노숙 정려는 이 마을 가운데에 있다. 구체적인 명정 과정이나 중심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충신 신할의 정려. 공주시청에서 백제큰다리를 건너 예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약 19㎞를 가다 보면 신풍면과 사곡면의 경계에 들어서게 된다. 경계를 지나 다시 1.5㎞ 더 가면 냉정리와 영정리의 경계가 나오고,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서 예산 쪽으로 100m정도 더 가면 도로 왼쪽으로 신할의 사적비가 보...
-
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조선 말기 충신 오대붕의 정려. 공주에서 논산 방면 국도 23호선을 따라 2.8㎞ 정도 가면 도로 오른편에 효포초등학교가 있다. 충신 오대붕 정려는 효포초등학교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500m 정도 들어간 곳에 동북향으로 있다. 충신 오대붕 정려는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한 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및 효자 정분·정지산의 정려. 공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국도 32호선을 타고 14㎞ 정도 가다 보면 사곡면소재지가 나온다. 호계리는 면소재지에서 지방도 629번을 따라 북쪽으로 0.5㎞ 떨어진 곳에 있다. 1746년(영조 22) 정분이 복관(復官)된 이후 1804년(순조 4)에 명정을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 사송정에 있는 여말선초 학자 이명성과 이명덕의 학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 이명성(李明誠)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끝까지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절개를 지킨 고려 유신인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다. 이명덕(李明德)은 여말선초 문신으로 예문춘추관, 좌부대언 등을 지냈고 세종이 즉위하자 이조참판, 병조참판 등을 역임...
-
1603년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된 충청도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관청. 충청감영은 공주 지역의 유리한 지리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1603년(선조 36)에 공주 지역에 설치되어, 1932년 대전 지역으로 충청남도 도청이 이전될 때까지 있었다. 현존하는 많은 조선 후기의 문서들은 조선시대 충청감영으로의 공주 지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유적에 대한 훼손 탓에 본래의 모습...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교육 행정 기관. 충청남도 교육청의 하급 기관으로 공주시의 교육·과학·기술·체육, 기타 학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49년 12월 31일 ‘교육법’ 제정으로 군 단위 교육자치제가 확립되면서 1957년 6월 6일 충청남도 공주교육청 건물을 공주시 반죽동에 신축하였다. 1964년 1월 1일 교육자치제 부활로 충청...
-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에 있는 소상공인 지원 기관. 소자본 창업자들의 창업과 경영 컨설팅, 자금 알선 등을 지원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2002년 10월 8일 중소기업청 공주소상공인지원센터로 문을 연 뒤 2007년 1월 1일 충청남도 공주소상공인지원센터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창업 및 경영 개선을 위한 상담과 컨설팅, 소상공인의 지역별·업종별 창업 및 경영 개선 교육을 실시...
-
1931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충청남도 도청을 대전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에 반대한 운동. 공주 지역은 조선시대에 충청감영이 있던 곳으로 호서 지역과 호남 지역의 교통과 상업 교류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대전 지역을 통과하면서, 대전 지역이 삼남 교통의 요충지이며 물산 집산지로 변모하면서 신흥 상공업 도시로 부상하게 되었다. 더...
-
공주를 교육 도시라 부르는 것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학교가 많다거나 교육 인구가 많기 때문이 아니다. 2007년 말 현재, 공주의 인구는 128,573명으로 도농 복합 지역의 소도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민족 항일기부터 불리어지기 시작한 교육 도시라는 공주의 지역 정체성은 인구가 감소되고 있는 현 추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하다. 이처럼 공주를 교육 도시라고 부르게 된...
-
공주민속극박물관에서 2000년 개최한 계룡산굿으로 지칭되는 설위설경(設位說經) 경연 대회. ‘앉은굿’이란 말 그대로 앉아서 하는 굿이다. 무당이 맡아 하는 ‘선굿’과 대비되는 말이다. 한강을 기준으로 이남은 대개 앉은굿을, 이북은 선굿을 행해왔다는 게 일반적 분류이다. 앉은굿은 앉아서 경문이나 불경을 외며 혼자 북과 양판이란 악기를 두드리며 귀신을 쫓는다. 전에는 전국적...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충청도 최초로 세워진 사액 서원. 공주시청에서 대전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8㎞ 달리면 공암이 나온다. 대략 27분여의 시간이 소요되며, 충현서원은 마을의 중앙에 있다. 충현서원은 고청 서기에 의해 건립되었다. 서기는 출신적인 한계를 딛고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인물로, 노년기에 이곳에 정착...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충현서원에 있는 서원 사적비. 충현서원 사적비는 충현서원(일명 공암서원) 안에 있는 서원 사적비로, 1712년(숙종 38) 연천의 임장서원에서 주자의 화상을 모사해와 신판 뒤에 봉안한 과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임진왜란 때 충현서원이 소실되는 과정 속에서 주자 화상 또한 불타 없어졌다. 이후 중건되었으나 주자의 화상 대신...
-
충현서원 은 주자영정을 모신 사액서원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 부임하는 지방관은 물론 경향각지 유림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충현서원 소장문서인 『심원록 尋院錄』에는 광해군 3년(1611)부터 연산의 돈암서원이 사액 받는 현종 원년(1660)까지 50년간 충현서원을 방문한 854명의 유림인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을 분석해 보면, 우선 지방관의 서원 방문이...
-
충현서원 의 창설당시에는 주자를 주향으로 석탄 이존오·한재 이목·동주 성제원을 배향하였다. 1628년에는 고청 서기를 별사에 제향하였으며, 효종조 중봉 조헌을 시작으로 사계 김장생,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 등 4인을 추향하였다. 처음부터 배향된 배향인물 3인의 행적과 배향동기는 다음과 같다. 석탄(石灘) 이존오(李存吾)[341-1371]는 고려후...
-
고청 서기가 죽은 다음해에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공암서원은 폐허화되었다. 이것을 광해군 2년(1610)에 중수하게 되는데, 이때 중수를 주도한 인물은 서기의 문인들이었다. 중수당시 서원의 원장은 의금부도사를 지낸 박로(朴輅)였고, 그 외 박희성(朴希聖)·박희철(朴希哲)·민재문(閔在汶)·박고(朴卨+木) 등이 함께 참여했다. 이들은 모두 공주향교 『청금록』에 등재되어 있는...
-
공암마을의 중심지에는 기와담장에 둘러싸인 오색단청을 한 전통가옥이 있다. 해마다 가을철이면 뒷뜰에 있는 수백년 수령의 여덟 그루 단풍나무가 타는 듯이 붉게 물들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모은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면서도 정작 찾아가는 사람들은 그리 흔치 않은데, 이곳이 바로 충청남도에서 최초로 세워진 서원, 충현서원(忠賢書院)이다. 충현서원이 건립...
-
공주시 장기면 대교리에 있는 정려로 김종서의 충절과 김승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려. 공주시 장기면 대교리에 있는 이 정려는 김종서(金宗瑞)[1390~1453]의 충절과 아들 김승규(金承珪)[?~1453]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04년(순조 4)과 1747년(영조 23)에 각각 명정을 받아 건립된 것으로 김종서 장군 묘역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정분(鄭苯)과 정지산(鄭之産)을 배향하는 사우. 공주시에서 예산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가다 사곡면소재지를 지나 마곡사 방면으로 가다 보면 호계리에 이른다. 마을 입구에 충효사의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도로 왼쪽으로 약 300m 정도 가면 있다. 1924년에 제각(祭閣)인 경모재(...
-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충신과 효자와 열녀를 아울러 이르는 말. 유교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 강령인 삼강을 의미하는 충효열은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였던 조선시대의 전 기간·전 지역에 걸쳐 강조되었던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충신·효자·열녀를 최고의 도덕을 갖춘 인간으로 여기는 이와 같은 덕목은 당시 모든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더 나아가...
-
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에 있는 산. 취리산은 무령왕릉, 공주 공산성과 왕궁지와 같은 공주에 남아있는 백제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 중에 하나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이 산의 북쪽에 회맹제단이 설치되었음을 찾아볼 수 있다. 백제가 멸망한지 5년째인 665년에 당나라는 백제 멸망 시 포로로 잡아갔던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웅진도독으로 임명하였다. 이...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취리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취리산 고분군은 공주시내에서 북쪽 방향에 있는 금강의 북안에 위치한다.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의 북쪽에 있는 해발 52.4m의 취리산 남사면에 자리한다. 취리산 고분군은 백제문화권 개발 사업의 진행 과정에서 제·라회맹지(濟·羅會盟址)에 대한 확인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997년 공주시의 의뢰로...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백제 웅진도독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의 회맹을 위해 취리산 정상부에 쌓은 제단의 터. 당 고종은 웅진도독부 체제로 운영되는 백제가 영토를 유지하며 신라와 평화롭게 지내도록 하기 위해 665년 8월 유인원의 주재로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이 화친의 맹약을 맺도록 했다. 그리하여 웅진, 즉 지금의 공주에 있는 취리산 정상에 제단을 쌓고 백...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대학리에 있는 산. 봉우리가 일곱 개 있다고 해서 칠봉산이라고 한다. 칠봉산은 높이가 227.7m이며, 공주 일대에 흔히 나타나는 구릉성 산지로서 대부분 홍색장석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쪽 사면 말단부는 반상쇄층 편마상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탄천면의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공주시가지로부터 남서쪽에 위치해 있다. 칠봉산...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매월 음력 2일과 27일에 북두칠성을 모시는 민간 의례 문화. 충청남도 공주시는 행정구역상 유구읍의 1개 읍(邑)과 금학동을 비롯한 6개 동(洞)과 계룡면을 비롯한 10개 면(面)으로 편성되었다. 역사적으로는 공주 석장리의 구석기유적에서 보듯이 석기시대부터 삼한을 거쳐 백제시대의 수도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충청남도의 중심적 도시로 발전하...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개신교의 한 교파. 침례교(浸禮敎) 1612년 영국의 청교도 스미스와 헬비스에 의해 런던에서 세워진 교파로서 성서를 신앙과 생활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권위와 규범으로 삼고 있다. 또한 자각적인 신앙 고백에 기초한 침례를 행하며 유아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는 1890년 캐나다의 독립선교사 펜윅이 입국하면서 보급되기 시...
-
밀가루 반죽을 채 썰어 국물에 넣고 끓인 충청남도 공주시의 향토음식. 한국 전통음식 중에 밀가루 음식은 매우 귀하고 특별한 음식에 해당한다. 한국 음식에서 국수류로는 가늘게 뽑은 마른국수를 삶아 장국에 넣어 쇠고기 채, 달걀 채를 고명으로 얹어내는 잔치국수와 밀가루나 밀가루에 메밀가루를 섞어 반죽하여 장국에 끓여서 제물에 그대로 내는 제물칼국수가 있다. 공주의...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에 있는 집성촌. 함양박씨가 소라실과 인연을 맺은 것은 현재 주민의 15대조 때로, 약 4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함양박씨의 입향조인 박문필은 원래 전라도 김제에서 살았는데, 박문필의 아내 평창이씨는 남편이 죽자 아들 3형제와 딸 한 명을 데리고 이곳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원래 소라실에는 평창이씨가 먼저 살았던 것으로 보인...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삼각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인성으로 정신이 건강한 학생, 슬기롭게 생각하고 탐구하는 학생, 소질을 개발하고 꿈을 키우는 학생,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계승하는 학생, 자율과 책임으로 더불어 사는 학생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바르고 슬기롭게’이다. 1929년 3월 30일 4년제 2학급의 탄천공립보통학교로 인가되어 같은...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여러 층으로 또는 높고 뾰족하게 세운 건축물. 탑은 높이가 나비나 길이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높은 건조물을 말한다. 주로 감시나 방어 등의 군사적 목적, 천상(天上)세계에 대한 희구를 나타내는 종교적 목적, 권력이나 위엄의 상징, 기념·전망·관측·통신, 종탑이나 시계탑 등을 목적으로 축조되었으며 나무·돌·벽돌·콘크리트·철강 등 다양한 재료가 축조...
-
충청남도 공주시 태봉동과 검상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중기의 주거지. 태봉동 선사 유적은 공주시의 남서쪽에 있는 태봉동과 검상동 경계에 위치한다. 유적의 동쪽 전방에는 남에서 북으로 흘러 금강에 유입되는 검상천이 있어 주변에 넓은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다. 유적이 유치한 곳은 표고 57m 내외의 나지막한 저산성 구릉지대로 남서쪽으로는 표고 140m 내외의 산 능선이...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집터를 지켜 준다고 믿는 가신(家神). 지역에 따라 왕신단지, 터줏대감, 토주(土主)대신, 후토주임(后土主任), 대주(垈主) 등으로 불리는 터주는 집의 울타리 안을 주로 관장하는 신으로서, 집안의 액운을 거둬 주고 집터를 맡아서 재복(財福)을 관장하다고 믿는다. 공주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성주가 집안의 어른이라면 터주는 땅의 신으로 관념되고 있다. 터...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출토된 흙을 빚어 불에 구워 만든 용기. 토기는 보통 500~1,000℃ 이하에서 구워 만든 용기이다.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하고, 유약을 바른 것은 자기(磁器)라 한다.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으며, 저장의 필요성에 의해 제작된 것은...
-
전통시대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공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토성(土姓)이라는 말은 그 지역의 영토를 뜻하는 ‘(土)’와 성씨를 뜻하는 ‘성(姓)’이 합쳐진 말로, 그 지방에 토착하면서 그곳 지명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집단을 말한다. 즉 토성은 그 지역의 읍사(邑司)를 구성하는 지배 세력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 지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데 큰 역...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신영리에서 생산되는 배. 1900년경부터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신영리 일대는 공주에서 유일하게 배를 생산하는 지역이었다. 이곳은 배 재배에 적합한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어 품질 좋은 배를 생산하였지만, 1980년 초반까지는 특별한 브랜드 없이 소규모로 판매되었다. 1984년부터 상품화와 지역 홍보를 위해 지역의 명소인 통천포를 이용하여 통천포 배...
-
콩을 삶아 발효시킨 충청남도 공주시의 향토음식. 퉁퉁장이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청국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두를 푹 삶아 열박아지에 담아 수건으로 여러 벌 두껍게 싸서 더운 아랫목에 3~4일 동안 묻어 두면 실이 생기는데 이것을 공주 지역에서는 퉁퉁장이라 한다. 주로 찌개를 끓여 먹는다. 유중림(柳重臨)이 1766년에 찬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조전시장법(...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특별히 생산되는 산물. 특산물은 어떤 지역에서 생산·판매되는 우수하고 특별한 산물로 농산물, 수산물, 임산물, 수공업 제품 등 다양한 종류가 포함될 수 있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대표적인 특산물로는 계룡산 딸기, 공주 감초, 공주 먹는꽃, 동해동 산수박, 계룡산 건조누에가루, 도태랑토마토, 신풍 고추, 우성 오이, 웅진 쌀, 의당 토종손메주, 정...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마암리 금강 변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세운 공주판관 조병로의 불망비. 공주에서 왼쪽으로 금강을 끼고 대전 방향으로 국도 32호선을 따라 8㎞ 정도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청벽 어씨네 장어구이집이 보이는데, 70m 정도 덜 간 왼쪽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긴 장방형 비신 위에 맞배지붕 모양의 뚜껑돌을 씌운 형태의 비석이다. 전체 높이는 14...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에서 두레 싸움의 하나로 행하던 놀이. 팔매 싸움은 두레 싸움의 하나로 행해지던 민속놀이로서, 돌을 던지면 돌팔매질, 사금파리를 던지면 사금파리팔매질, 흙덩이를 던지면 흙팔매질로 불렸다. 주로 음력 7월 7일부터 7월 15일 중 하루를 택하여 행했는데, 이때는 들판에 곡식이 한창 자라는 시기이므로 곡식이 상하지 않도록 돌 대신 논흙을 뭉쳐서...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에 있는 산. 산봉우리 밑부분의 돌이 여덟 팔자 모양을 띠고 있어 팔재산 또는 팔자산이라 한다. 팔재산은 높이가 350m이며, 전체적으로 편마상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상부는 규장암, 석영반암, 화강반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룡면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와우산, 성화산에 이어지는 남쪽 능선에 해당된다. 동쪽으로는 계룡산지...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평기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토성. 평기리 토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를 알 수 없다. 다만 예전에 지표 조사를 통해 주변에서 백제토기편이 수습된 일이 있다. 때문에 백제시대 때 축조된 토성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웅진 왕도에서 동쪽으로 통하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장기면소재지가 있는 도...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생애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교육 활동. 평생 교육은 사회 교육보다 넓은 개념으로 가정 교육·학교 교육·사회 교육 등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교육 원리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3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주최 평생 교육 발전 세미나에서 공식적으로 제창되었다. 이후 1980년 헌법 제29조 5항과 6항에 국가의 평생...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지내는 의례. 평생의례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의식과 예절로서 ‘통과의례’, ‘일생의례’라고도 한다. 인간의 일생은 연속적인 과정이기도 하지만 몇 가지의 단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단계를 건널 때마다 의례가 따른다. 따라서 평생의례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변화되었음을 공식적으로 나타내는...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국동리에 있는 산. 토정 이지함이 올라가서 편하게 자리잡아 앉았다 해서 평안산이라 하기도 하며, 옛 성 터가 있어 이곳에 피난한 사람은 모두 무사하였다 하여 평안산이라 불리운다고 한다. 평안산은 높이가 162m이며, 공주 지역에 널리 분포해 있는 구릉성 산지 중 하나이다. 공주시가지로부터 남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금...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기복이 거의 없는 낮고 평평한 지형. 평야(平野)는 평지(平地)·평원(平原)이라고도 하며 대체로 해발 고도가 150m 이내의 토지를 말한다. 평야는 형성 원인에 따라 퇴적 평야(堆積平野)와 구조 평야(構造平野)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하천의 퇴적 작용만으로 형성된 평야를 퇴적 평야 또는 충적 평야라고 하는 데 선상지(扇狀地)·삼각주(三角洲)·해...
-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에 의하면 땅속에는 살아 꿈틀대는 정기(精氣)가 있으며, 이것은 우리 몸속의 피처럼 일정한 길을 따라 움직이는데, 정기를 타고난 사람은 복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고, 정기가 뭉친 곳에 집을 지으면 가운이 뻗쳐서 대대로 번창하며, 조상의 무덤을 쓰면 위대한 인물이 많이 태어난다고 한다. 집 터나 마을...
-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에서 농악에 쓰는 풍물을 민속적으로 일컫는 말.. 풍장은 남사당놀이 6종목 가운데 첫번째 놀이이자, 오늘날 농악으로 통하는 우리 민족음악의 본디 이름이기도 하다. 중부지방에서는 풍물, 호남에서는 풍장, 영남에서는 매구라 하기도 한다. 이를 농악이라 부르는 것은 일본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풍물은 4가지의 타악기(사물)인 꽹과리·징·북·장구가...
-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에 있는 공주경찰서와 중동사거리 사이에 있는 고개. 옛날 관리들이 향교를 지나기 위해서 말에서 내리던[下] 고개라 해서 하고개라고 하며 하우고개라고도 한다. 웅진동에서 중동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높이 약 50m의 고개로 주변은 상가와 주택, 아파트 등이 혼재되어 있다. 고개는 공주에서 가장 오래된 선캄브리아기의 운모편암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하봉리에 있는 원삼국시대의 고분군. 하봉리 유적은 공주의 북동쪽에 있는 장기면소재지의 북쪽으로 약 200m 가량 떨어진 하봉리에 위치한다. 유적이 확인된 곳은 면소재지의 서북쪽에 있는 해발 115m의 계란봉산에서 동서 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해발 40m 내외의 나지막한 능선상에 해당한다. 유적의 남쪽에는 요곡천이 동에서 서로 흐르고, 북동...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하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건물지. 하봉리 장고개 유적이 위치한 하봉리는 공주 중심부에서 동북쪽으로 7㎞ 거리에 있으며, 조치원 방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36호선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이곳은 청룡천과 대교천 사이에 형성된 해발 200m의 구릉 지역이다. 유적으로부터 북서 방향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장고개로 불리는 고개가 있으며...
-
충청남도 공주시 지역의 육지 표면에서 일정한 유로를 가지는 유수의 계통. 하계(河系)는 하천의 본류와 지류 모두를 포함한 총칭으로 공통 배출구를 가진 유로(流路)의 집합체를 말한다. 그리고 하나의 유역 분지 내에서 본류 하천과 이에 합류하는 수많은 지류로 이루어지는 하천의 망을 하계망(河系網) 또는 수계망(水系網)이라고 한다. 하계망의 패턴은 크게 수지상 패턴, 직각상...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한국문인협회 산하의 지부. 공주 지역에 거주하는 문인 및 출향 문인들의 문필 활동을 지원하고, 문학 작품 발표 지면을 확보하며,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문학적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1986년 공주문학회를 조직하고, 1987년 초대 회장에 임헌도, 부회장 한상각, 유동삼, 간사 나태주를 선임하였다. 1988년 한...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미술 단체. 미술을 즐기고 애호하는 학생들을 포함하여 시민들과 함께 공주의 미술을 발전시키자는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공주시에서 활동하는 문화 예술인들이 모여 공주미술협회를 결성한 뒤 1981년 9월 22일 한국미술협회 제312호로 인준을 받아 한국미술협회 공주지부로 출범하였다. 초대 지부장에 공주교육대학교 안종호 교수가 추대되었으며, 한...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는 사진 단체. 사진 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창작 활동으로 지역의 사진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회원의 권익 옹호와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78년 7월 20일 한국사진작가협회로부터 인준을 받아 창립되었고, 초대 이상우 지부장이 선임되었다. 1979년 10월 4일 제25회 백제문화제촬영대회를 계기로 저변이 확대되고 회원...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백교리에 있는 자카드 직물 기술 지원 센터. 자카드 직물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필요한 첨단 기술의 연구 개발과 기술 지원, 기능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2002년 6월 산업자원부의 산업 기술 기반 조성 산업의 일환으로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 자카드직물지원센터가 설립되었다. 2003년 6월 1일 산업자원부, 충청남도, 공주시가...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는 한국연극협회 소속의 연극 단체. 한국연극협회 공주지부는 공주 지역 연극 예술의 발전과 회원 상호 간의 친목 도모를 위하여 창립되었다. 1970년대 후반 연극을 하던 대학생들과 평소 연극에 관심이 있던 일반인 몇 명이 모여서 ‘함성(喊聲)’이라는 극회를 결성하였다. 이 함성이 바로 공주 지역의 근대적인 연극 단체로서의 출발점이 되었...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신웅리에 있는 미술 단체. 1981년 8월 공주시와 금강 유역을 근거로 활동하던 젊은 미술가들인 고승현·유동조·임동식·지석철·허진권 등이 중심이 되어 야외현장미술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창립되었다. 별칭인 야투(野投)는 작가의 생각을 자연 속에 표현한다는 뜻이다. 1983년 야투 자연미술연구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1995년 한국자연미술가협회 야투로 다시...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한산소 한산(韓山)에 있는 시대 미상의 토축 산성. 한산(韓山)은 해발 121m의 나지막한 야산으로, 한산을 속칭 ‘성뫼’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산성이 오래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산성의 축조 시기는 전혀 알 수 없다. 관련 기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축조 시기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전무하다. 따라서...
-
갑사 입구의 주차장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민박촌, 동쪽에는 식당가가 형성되어 있다. 이것은 1968년에 계룡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정비가 이루어진 결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나 공주시가 주도적으로 이 개발사업을 진행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상가 사람들의 피땀어린 노력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특히 현 한양식당의 이붕선씨는 당시...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노첨(魯瞻), 호는 시와(是窩)이다. 아버지는 장령 한진(韓縝)이다. 청주한씨의 공주 입향조(入鄕祖)이자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한지(韓祉)[1675~?]가 아들이다. 1666년(현종 7) 생원이 되었고 1669년(현종 10) 정시(庭試)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673년(현종 14) 정언, 1680년(숙종 6...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함경도 함흥부 읍성의 전경을 그린 회화식 지도. 「함흥읍도」는 조선 시대 함경도 감영의 소재지였던 함흥부의 읍성과 그 주변 일대 전경을 담은 회화식 지도이다. 2010년 공주 능성 구씨(綾城具氏) 첨추공(僉樞公)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지도를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기탁하였다. 지도의 제작 시기와 제작자...
-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전까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독립 운동. 일제는 1875년 강화도 침범을 계기로 조선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을 시작하여 1976년 강화도조약으로 향후 조선 지배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후 일제의 조선 지배 야욕은 더욱 노골화되어 1910년 마침내 대한제국의 주권을 침탈함과 더불어 조선에 대한 직접적인 식민지 지배를 단행하면서 우리 민족을 속박하...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떠돌이귀신이 씌었거나 동티가 났을 때 행하는 무속 의례. 공주 지역에서는 예부터 문상이나 외출에서 돌아와 오한이 들고 떨리는 병이 나서 낫지 않으면 ‘뜬귀[浮鬼]’, 곧 떠돌이귀신이 몸 안으로 침입하거나 동티, 혹은 조상신과 관련하여 부정을 탄 것으로 여긴다. 보통 하루나 이틀 정도 두고 보다가 차도가 없으면 해물리기를 하는데, 낮이든 밤이...
-
전통시대 이래 현대까지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지방 행정 체제. 현재의 공주시는 충청남도 2시 15군의 하나로, 1읍 10면 6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95년에 도농 복합 형태의 시가 설치되면서 종전의 공주시와 공주군이 통합되었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64년간 백제의 왕도에 해당하였고, 고려시대부터 계수관 고을로 지역 행정의 중심지였다. 또한 조선 후기에...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 사족들의 명부. 공주향교에 보관된 『향안』은 불에 탄 것을 배접하여 장첩(粧帖)한 것이다. 책의 크기는 46.5×32㎝이고, 반곽은 32.6×21㎝, 주사란(朱絲欄), 유계(有界), 7행, 철장 저지로 되어 있다. 표지의 제첨은 ‘향안(鄕案)’이다. 공주향교 소장 『향안』의 작성 시기는 면지에 “숭정후을축정월초삼일향중완의개안(崇禎...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안동김씨의 열녀비. 향지리 열녀비는 지방 유림의 발의로 군수가 세운 열녀비이다. 안동김씨는 부안임씨인 임완수의 처로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죽는 슬픔을 맞았다. 그러나 흐트러짐 없이 지극 정성으로 3년간 남편의 묘소를 옆에서 보살폈다. 안동김씨는 남편의 3년상이 끝난...
-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자연 환경 및 생활 풍습을 배경으로 전해 내려오는 지역 음식. 공주는 지리적으로 동서로는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금강이 관통하고, 동쪽으로는 수려한 계룡산이 가로 지르며, 북쪽으로는 험준한 차령산맥이 둘러져 있다. 이와 같이 깊은 산과 맑은 물로 이루어진 자연환경으로 인하여 산림자원과 수자원에서 나는 농산물, 임산물, 수산물을 중심으로 향...
-
내산리에는 오래전부터 강화최씨(江華崔氏)가 살고 있다. 이 강화최씨는 죽산에 거주하던 최순(崔淳)의 셋째 아들인 덕준(德峻)이 예안김씨의 사위가 되면서 전주이씨의 뒤를 부전동에 입향하였다. 그런데 이 최덕준의 고손자인 최우량은 허임에게서 침술을 배워 유명해졌다. 최우량[1599~1671]은 강화최씨 족보에 벼슬이 부사과(副司果, 종6품)에 이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호계리 고인돌은 사곡면소재지 서북쪽에 있는 호계리 1구 만수동 입구에 위치한다. 현재 고인돌의 남쪽 전방으로는 만수들이라는 넓은 평야지대가 있고, 금강에 유입되는 유구천이 북에서 남동 방향으로 감싸 안듯이 흐르고 있으며, 북쪽은 산림지대를 이루고 있다. 호계리 고인돌은 1987년 지표 조사를...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남녀가 혼인할 때 치르는 의례 과정. 가족을 구성하는 최초의 절차인 혼례는 남녀 두 사람의 사회적·경제적인 결합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혼례를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하여 중요시했는데, 이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가족을 이룬다는 지위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두 가문(家門)의 결합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공주 지역에서는 일반적으...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혼례 때 입는 옷. 혼례는 혼인을 행할 때 수반되는 모든 의례와 절차를 말하며, 두 개인이 결합하여 부부가 되었음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의례일 뿐 아니라, 두 가정의 결합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는 혼례식만을 고려하여 혼례 당사자인 신랑과 신부의 복식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공주 지역의 혼례복 조사 대상자는 장기봉(79세)·최희순(72세)·서 모(...
-
신라 말 고려 초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호족. 견훤과 궁예가 대결하는 후삼국기, 공주는 양대 세력이 마주하는 접점에 위치하여 있었다. 이 때문에 공주는 때로는 남쪽의 견훤에, 때로는 북쪽의 궁예나 왕건의 세력권에 들었다. 이때 공주의 실제적 지배자는 ‘공주장군’으로 지칭된 홍기(弘奇)였다. 처음에는 견훤에 가까웠으나 중부 지역에서 궁예가 흥기하여 경상도 상주 등지까지 세...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홍원표(洪元杓)는 1904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30년 26세의 나이로 할아버지 홍종협(洪鍾夾)의 사망으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 홍원표는 1930년 상속 당시 소작인 2천 명의 소작료 1천 석과 채권 3만 원을 탕감해 주는 자선사업으로 공주 지역 사회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홍원표는 27㏊의...
-
‘집구석에는 늙고 꼬부라진 고물딱지만 남았지. 여자들은 갑사 입구에서 밤 구워팔고, 모텔이나 식당에 나가서 일해. 그것도 잘 안돼’. 사는 게 괜찮던 시절은 1970년대라고 회상한다. 갑사 입구에는 술집이 늘어서 있었고, 공주 사람 뿐만 아니라 먼 데에서도 술 마시러 놀러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갑사 바로 아래에서 현재의 관리사무소가 있는 자리까지 술집이 있었다. 취객들 때문에 매일...
-
공주시 계룡면 화헌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장가 화산(華山) 정규한의 영당. 공주에서 논산 방향 국도 23호선을 통해 계룡면소재지를 지나 4㎞ 정도 가면 화헌우체국이 나온다. 화산영당은 화헌우체국에서 뒤편으로 70~80m 올라간 산기슭에 있다. 「화산영당창건기」에 의하면 정규한이 죽은 후 문인과 후손들이 1830년 문집인 『화산집(華山集)』을 발간하...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정자. 공주에서 예산 방면으로 국도 32호선을 따라 약 17㎞ 정도 달리면 사곡면사무소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북쪽으로 300m 정도 더 가면 화암정이 있다. 화암정은 1935년 관내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다. 당시 농사용으로 사용하고자 돌로 돌보(꽃보)를 만들었는데, 보기에도 좋고 기암...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화헌리에서 농부들이 두렛일의 마지막 날 하던 민속놀이. 호미씻기놀이는 여름 농사일의 고된 작업 중 하나인 논매기에 사용하던 호미를 올해에는 더 쓸 일이 없어 씻어 보관한다는 의미이다. 화헌리 호미씻기놀이와 유사한 민속놀이로는 공주시 신풍면 선학리의 두레 막음 놀이 중 ‘호맹이 목매달기’가 있고 공주시 우성면 한천리에 ‘호맹이 빨래줄’이 있는데 두...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운궁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본래 활원은 동쪽의 정안천(正安川) 건너 정안면 장원리에 있었는데, 공주에서 천안으로 가는 큰 길이 서쪽으로 옮겨짐에 따라 활원의 터도 정안면 운궁리로 옮겨지게 되었다. 궁원(弓院)이라고도 한다. 활원 앞으로는 고성천이 흐르고 있으며, 주변에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 도로 가의 전형적인 ‘-원’이 들어가는...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병주(黃秉周)는 1884년(고종 21) 11월 20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추계리에서 출생하였다. 천도교 신자인 황병주는 1919년 3월에 교주인 손병희가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키고 체포된 사실을 알았으며, 고향인 공주 지역에서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14일 당시의 충청남도 공주군...
-
충청남도 공주시에 서식하는 매과에 속한 새. 몸 길이는 약 30㎝이다. 수컷이 암컷보다 약간 작다. 수컷은 머리 꼭대기부터 얼굴까지 푸른빛을 띤 회색이며 등과 덮깃은 다갈색 바탕에 검은 얼룩점이 있고 턱 밑은 흐린 황갈색이다. 날개깃은 까맣고 꽁지는 푸른빛을 띤 회색으로 끝이 까맣다. 몸뚱이 아래쪽은 엷은 황갈색으로 가슴에서 배까지 세로로 까만 반점이 있다. 암컷은 몸뚱...
-
1236년(고종 23) 12월 공주 효가동에서 있었던 고려의 야별초와 몽고군과의 전투. 몽고의 고려 침입은 1231년(고종 18)부터 1259년(고종 46)까지 총 6차(학자들에 따라서는 7차, 9차, 11차로 구분하기도 함)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 사이 호남 지역으로까지 침략군이 남하한 경우는 1236년, 1247년, 1256년, 1257년 등 도합 4회에 이른다. 1...
-
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부 오몽렬의 처 창녕성씨 정려. 공주에서 논산 방면 국도 23호선을 따라 2.8㎞ 정도 가면 오른쪽에 효포초등학교가 있는데, 이곳에서 논산 방면으로 300m 정도 더 간 뒤, 도로 오른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다시 300m 정도 들어가면 신기동에 이른다. 효부 성씨 정려비각은 이 마을의 오른쪽 구릉지에 북향으로 서 있...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백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양진언의 정려. 공주에서 예산 방면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24㎞ 정도 가면 신풍면소재지 약간 못 미쳐 청양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 갈림길 직전에 도로 왼쪽(농협 정미소 쪽)으로 백룡리로 들어가는 마을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약 1㎞ 정도 가면 백룡리 오름실이 나오는데, 효자 양진언 정려는...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오수혁의 정려. 공주에서 논산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6㎞ 정도 가면 계룡면 기산리 소정이에 이르게 된다. 효자 오수혁 정려는 이 마을의 입구에 있다. 효자 오수혁 정려는 오수혁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782년(정조 6)에 명정을 받아 건립한 것이다. 이규헌(李圭憲)이 지은 「효자오공정...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청흥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효자 윤직(尹稷)의 정려각. 공주에서 예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사곡면 방향으로 21㎞를 가다 보면 신풍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왼쪽 방향으로 약 5㎞ 거리에 신풍면 청흥리가 있다. 청흥리 초입의 마을은 삼청동로, 마을 입구에 정려가 있다. 효자 윤직 정려각은 부친의 병환에 뱀을 구해다...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이구상의 효자 정려. 공주에서 예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가다가 사곡면과 신풍면 경계를 지나 1㎞ 정도 더 가면 신풍면 영정리 영정초등학교가 나온다. 학교에서 100m 정도 못 미쳐 도로 오른쪽에 영정교가 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면 홍살문이 있고, 여기서 다시 500m 정도 더 올라가면 여주이씨 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화은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효자 이기원의 정려. 공주에서 논산 방향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으로 약 9.4㎞ 가면 계룡면 화은리가 나온다. 정려는 화은리 맞은편(도로 오른쪽)에 있다. 효자 이기원 정려는 전주이씨 이기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91년(고종 28)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효자 이기원 정려 안의 비석에 당시...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용암리[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용암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효자 이면주의 정려. 공주에서 천안 뱡향으로 가는 국도 36호선을 타고 약 6.8㎞ 가다 송선 교차로 왼쪽으로 약 2.31㎞ 가면 의당면소재지가 나온다. 이곳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약 8.51㎞ 더 가면 용암리가 나온다. 효자 이면주 정려는 도로 오른쪽에 있는 노인회관 건너편...
-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효자 이복의 정려비각. 공주시 중동사거리에서 북쪽으로 약 1.08㎞ 정도 가면 도로 오른쪽으로 옥룡동주민센터가 있다. 그 뒤편 언덕에 효자 이복 정려비각이 있다. 효자 이복 정려비각은 원래 옥룡동 비선거리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1978년 이복의 효를 알리기 위해 발기인 이치하와 옥룡동 노인회가 현재의 위치에...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삼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정이재의 정려. 공주에서 부여 방향으로 가는 국도 40호선을 따라 16.5㎞ 가면 탄천면소재지가 있다. 탄천면소재지 도로 오른쪽에 있는 탄천초등학교와 탄천중학교 사이에 있는 언고개 길로 약 1㎞ 정도 들어가면 도로 왼편에 효자 정이재 정려가 있다. 효자 정이재 정려는 정이재(鄭以載)의 효행을 기...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최성의 정려비. 공주에서 천안 방향으로 가는 국도 23호선로부터 약 21.83㎞ 거리에 정안면소재지가 있다. 면소재지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대산리가 나온다. 마을 입구에 있는 대산교를 건너 작은 길을 따라 700m 정도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을 입구 왼쪽에 있다. 『충효등록』에 최성이...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운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최익항의 정려. 공주에서 천안 방향의 국도 23호선에서 약 20.76㎞ 거리에 정안 교차로가 있다. 여기에서 왼쪽 방향으로 직진하여 표지판을 따라가면 운궁리가 나온다. 효자 최익항 정려는 마을 동쪽 끝에 있다. 최익항은 부친이 병환 중에 배(혹은 감)가 먹고 싶다고 하자 한겨울에 이를 구해 오는...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성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효자 황춘억의 정려. 공주에서 부여로 가는 국도 40호선을 따라 17㎞ 정도 가다 보면 탄천면소재지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부여 방면으로 500m 정도 더 가면 성리에 도착하게 되는데, 도로변 왼쪽에 효자 황춘억 정려가 있다. 1742년(영조 18) 효행으로 통선랑사헌부지평(通善郞司憲府持平)에 증직된 후 192...
-
900년에서 936년까지 존속했던 견훤(甄萱)이 세운 나라. 9세기 말 이후 신라 사회는 심한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리면서 경주 정부의 통제력은 상실되었다. 호남 지역에서 견훤은 전주를 도읍으로 정하고 백제의 부흥을 공언하며, 900년에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이어 철원의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웠다. 견훤과 궁예가 대결하는 후삼국시대, 공주는 양대 세력이 마주하는 접점에 있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 금흥동에 있는 정보 통신 회사 KT의 공주 지점. 기간 통신망을 바탕으로 한 유선 통신 서비스 제공 업무뿐만 아니라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업, 무선 통신 서비스 사업을 수행한다. KT 충남본부 공주지점은 현재 반전자교환기(AXE-10,TDX-1B)를 차세대 최첨단 교환기인 5-ESS로 교체하여 고품질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