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598 |
---|---|
한자 | 合伽里碑石群 |
영어의미역 | Memorial Monuments in Hapga-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용만 |
성격 | 비석 |
---|---|
양식 | 귀접이형|호패형 |
건립시기/일시 | 1841년 1월 |
관련인물 | 김용근|권영규 |
재질 | 사암질 혼합된 화강암 |
높이 | 73㎝[진상체전소]|76㎝[진상체소] |
너비 | 36㎝[진상체전소]|35㎝[진상체소]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112[개실1길 34]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군.
[건립경위]
합천에서 고령을 거쳐 서울로 가는 진상품을 인수인계하는 장소를 확정하고, 이 사실을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합천군수와 고령현감이 1841년 1월에 세운 비석이다.
[위치]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속칭 개실마을[佳谷] 앞 도로변에 있던 것을 도로 확·포장 공사시 비석을 보존하기 위해 도로에서 마을 쪽으로 조금 들어가 있는 도연재(道淵齋)[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1호] 정문 왼편 담장 기단으로 옮겨놓았다.
[형태]
왼편 진상체전소(進上替傳所) 비는 호패형으로 지면에 노출된 비의 높이가 73㎝, 너비 36㎝, 두께 10㎝이다. 오른편 진상체소(進上替所) 비는 호패형으로 지면에 노출된 비의 높이가 76㎝, 너비 35㎝, 두께 10㎝이다. 비석의 재질이 약하여 마모가 많이 진행된 상태이다.
[금석문]
왼편 진상체전소 비는 전면 상단에 ‘진상체전소(進上替傳所)’라고 새기고, 그 아래 세로로 좌측에 ‘합천군수김후용근(陜川郡守金侯龍根)’, 우측에 ‘고령현감권후영규(高霊県監権侯永圭)’라 새기고 그 아래 중앙에 세로로 ‘불망비(不忘碑)’라 새겼다. 진상체소 비는 전면 상단에 ‘진상체소(進上替所)’라고 새기고 그 아래 세로로 좌측에 ‘합천군수김후용근(陜川郡守金侯龍根)’, 우측에 ‘고령현감권후영규(高霊県監権侯永圭)’ 라 새기고 그 아래 중앙에 세로로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라 새긴 것으로 짐작되지만 ‘불망비(不忘碑)’ 부분은 시멘트 모르타르 기단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작은 글자로 새긴 부분은 비면의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매우 어렵다. 그 대강의 내용을 보면 대자 우측에 ‘양후협진석□인□(兩侯協軫昔□人□)’, 좌측에 ‘조민□생우□명□(兆民□甦雨□命□)’이라 새겼다. 향후 탁본 등의 방법을 통해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
[현황]
보존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나 이미 비석의 표면이 많이 마모되어 글자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다. 고령군에서 비의 좌측에 조그마한 안내 표석을 설치하여 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울로 진상품을 보내는 과정에서 인접 군과 현의 수장이 인수인계 장소를 정해 두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비석을 세운 것은 드문 일로 보인다. 또한 이 비석들을 통해 합가리 마을 앞길이 조선시대 합천군과 고령현의 물산이 유통되는 주요 도로로서 역할을 하였다는 역사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