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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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延詔里推定宮城址 |
영어의미역 | Attributed Palace Site in Yeonjo-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608[향교길 29-18]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신종환 |
성격 | 궁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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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가야시대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608[향교길 29-18] |
소유자 | 고령군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 있는 가야시대 궁성 터.
[개설]
고령 주산성과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배경으로 대가야읍을 내려다볼 수 있는 설상대지(舌狀臺地)에 입지하고 있는 대가야 때의 궁성지 유적이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고령향교가 있으며, 조선시대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궁성지와 관련된 기록들이 전해오고 있다.
[변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령현 남쪽 1리에 대가야 궁궐지가 있고, 그 옆에 우물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어정이라고 전한다”라고 하여 연조리 추정 궁성 터와 어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개항기 향토사학자 이두훈의 『고령지(高靈誌)』에서도 확인된다. 20세기 초 일본의 학자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도 이곳을 답사하여 대가야 왕궁지로 비정한 바 있으며,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마나미 지로[南次郞] 총독이 ‘임나대가야국성지(任那大加耶國城址)’라는 기념비를 이곳에 세우기도 했다.
한편 고령향교는 조선시대에 몇 차례의 이건을 거치면서 1702년(숙종 28)에 이곳으로 이건되었다. 향교 주변 공간은 일제강점기 때 학교 부지로 이용되어 교사와 배수로, 연못, 축사 등 부속 시설을 설치하면서 원래 지형이 많이 삭평되거나 훼손되었다. 이후 고령읍에서 출토된 불교 관련 석조물들을 야외에 전시하는 유적 공원으로 이용해 왔으나, 2005년 대가야박물관 개관과 함께 박물관 정원으로 옮겨졌으며, 현재는 고령향교와 그 주변이 공원으로 정비되어 있다.
[위치]
대가야읍의 서쪽 가장자리에 주산을 배경으로 한 해발 50m 정도의 나지막한 구릉상의 대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심부에 고령향교가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연조리 추정 궁성 터는 2000년에서 2001년에 걸쳐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정밀 지표 조사와 함께 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는 고령군의 대가야문화권 개발 사업 계획에 따라 대가야읍 연조리 일대의 대가야 궁성지에 대한 복원과 정비 사업을 추진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조사였다. 이 조사를 통해 고령향교 동남쪽 경사지에서 이른바 대벽건물지(大壁建物址) 등 왕궁의 부속 건물로 여겨지는 유구들이 확인되었다. 대규모 건물지와 구덩 등 대가야 때의 유구와 토기를 비롯한 다수의 기와, 벽돌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궁성지로 추정되는 구릉은 동서로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동쪽이 넓고 서쪽이 약간 좁아 마치 주걱과 같은 모양을 띠고 있다. 둘레는 550m 정도 되고, 높이 5m 정도의 단애를 이루는 지형이다. 구릉 경사면을 따라 돌아가면서 민가와 교회, 성당, 보건소 등의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이래로 전해오는 대가야 궁성지에 대한 학술 조사를 통해 향후 대가야 왕궁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특히 유적이 위치한 설상대지의 동북쪽 모서리에는 구신정지(九臣亭址)가 있고, 그 동쪽에는 연조문(延詔門)과 가야성 문루(伽倻城門樓)가 있었던 것으로 전하고 있어 그와 같은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