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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활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545
한자 政黨活動
영어의미역 Activities of Political Parties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현걸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정견과 정책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인 정치조직체의 활동.

[개설]

근대 이후 발달한 대의제 민주주의는 의회와 정당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정당은 정치 철학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조직적으로 대중에게 참여와 지지를 호소하여 궁극적으로는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자신들의 정책을 실현하고자 한다. 대체적으로 정당의 특성은 집단적 조직이라는 점, 정치권력의 획득이 목적이라는 점, 의회·선거제도와 더불어 존재한다는 점, 공익성을 주장한다는 점 등이다.

우리나라의 정당은 정권의 교체와 더불어 정당의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전개되어 왔다. 그 결과 구미 지역의 정당 활동 역시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정당들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자료들은 전무한 상태이다. 따라서 구미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들의 활동 상황을 지역에서 실시된 국회의원선거 결과를 통해 개략적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변천]

1948년 5월 10일에 실시된 제헌의원선거에서는 대한독립촉진국민회와 대동청년단이 구미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였으며, 1950년 5월 30일에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국민당의 활동이 두드러진 가운데 무소속으로 활동한 정치인들이 많았다. 자유당이 강력한 여당으로 등장하게 된 후 실시된 1954년 5월 20일 제3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전국적으로는 여당인 자유당과 야당인 민주국민당이 격돌하였으나, 선산군 선거에서는 무소속의 김우동 후보가 자유당의 재선의원 육홍균 후보와 무소속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1958년 5월 2일에 실시된 제4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자유당과 무소속 후보들이 대결하였으나, 자유당의 김우동 후보가 당선되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이 붕괴된 후 제2공화국 수립을 위한 1960년 7월 29일의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새로운 여당으로 대두하였으나, 선산군 선거에서는 무소속의 신준원 후보가 다른 무소속 후보들과 사회대중당·민주당·혁신동지총연맹·사회대중당의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1961년에 5·16군사혁명이 발생하여 기존 정당들과 함께 제2공화국이 붕괴되었다. 그 후 1963년 11월 26일에 실시된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새로운 여당 민주공화당의 김봉환 후보가 야당인 자유민주당의 김현규 후보 및 국민의당·보수당·민주당·민정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1967년 2월 7일에 여러 야당이 통합하여 신민당이 창당되었으며, 그 후 1967년 6월 8일에 제7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되었다. 선산군·군위군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의 김봉환 후보가 신민당·자유당·대중당·한국독립당·통일사회당의 후보들과 대결하여 당선되었다.

1971년 5월 25일에 실시된 제8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선산군·군위군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의 김봉환 후보가 신민당과 국민당 후보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1973년 2월 27일에 실시된 제9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칠곡군·군위군·성주군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의 신현확 후보가 신민당·민주통일당·무소속 후보들을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1978년 12월 12일에 실시된 제10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칠곡군·군위군·성주군과 합하여 새로운 선거구로 획정되었는데, 역시 민주공화당의 신현확 후보가 무소속과 신민당의 후보와 대결하여 승리하였다.

1979년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과 12·12사태로 제4공화국은 몰락하고 1980년에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민정당이 제1당으로 등장하였으며, 새로운 야당으로 민주한국당과 한국국민당이 창당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실시된 1981년 3월 25일의 제11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군위군·칠곡군과 함께 새로운 선거구로 획정된 구미시·선산군 선거 결과는 민주정의당의 박재홍 후보와 민주한국당의 김현규 후보가 신정당과 한국국민당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었다.

1985년 2월 12일의 제12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새로이 창당된 신한민주당이 전국적으로 돌풍을 일으켰으나, 군위군·칠곡군과 함께 하나의 선거구로 획정된 구미군·선산군의 선거 결과는 민주정의당 박재홍 후보와 무소속의 김현규 후보가 민주한국당과 근로농민당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1987년의 6·29민주화선언, 그리고 뒤이어 실시된 1987년 12월 16일의 5년 단임의 대통령선거에 의해 제5공화국 정권이 물러나고 제6공화국이 출범하였다. 이 과정에서 야당은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그리고 신민주공화당으로 나누어졌다.

1988년 4월 26일에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선거의 경우, 통합 선거구인 선산군·군위군 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의 김윤환 후보가 통일민주당과 무소속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었으며, 단독 선거구인 구미시 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의 박재홍 후보가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의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1990년 2월에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그리고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이 창당하였다. 그 후 실시된 1992년 3월 24일의 제14대 국회의원선거의 경우, 구미시의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의 박세직 후보가 민중당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었으며, 선산군·군위군의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의 김윤환 후보가 통일국민당과 무소속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소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여당인 민주자유당은 신한국당을, 야당은 새정치국민회의를 재창당하였다. 아울러 1995년에 통합구미시가 발족한 이후 1996년 4월 11일에 실시된 제15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선거구가 구미시 갑·을로 조정되었는데, 구미시갑선거구에서는 신한국당의 박세직 후보가 통합민주당·자유민주연합·무소속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으며, 구미시을선거구에서는 신한국당의 김윤환 후보가 새정치국민회의·통합민주당·자유민주연합·무소속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1998년에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야당으로 전락한 신한국당은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2000년 4월 13일의 제16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구미시가 단일 선거구로 획정되었으며, 선거 결과 한나라당의 김성조 후보가 민주당·자민련·민국당·무소속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하고, 여당인 민주당이 다시 열린우리당으로 재창당하였다. 2004년 4월 15일에 실시된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구미시 선거구가 조정되어 갑선거구와 을선거구로 분구되었다. 선거 결과 구미시갑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의 김성조 후보가 열린우리당·자민련·민주노동당·무소속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으며, 구미시을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의 김태환 후보가 열린우리당과 무소속 후보와 대결하여 당선되었다.

[의의와 평가]

한국의 정당사를 요약한다면, 한국 정당들은 주요 정치적 변혁들을 주도하지 못하고, 정권의 변화와 더불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정당들은 단명을 면치 못했으며, 지역 주민들의 가슴 속에 깊이 뿌리 내리지 못했다. 수많은 정당들이 복잡한 이합집산의 과정을 거듭해 왔기 때문에 그 전모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선 집권 여당의 경우, 제1공화국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에는 자유당이 집권당의 위치를 고수하였으나, 4·19혁명을 계기로 민주당이 잠시 집권당으로 등장하였으나, 5·16군사혁명 이후 10·26사태까지는 민주공화당, 제5공화국에서는 민주정의당, 제6공화국의 노태우 정부 시기에서는 민주자유당, 문민정부에서는 신한국당, 국민의 정부에서 새천년민주당, 그리고 참여정부에서는 열린우리당으로 각각 교체되었다. 야당은 한국민주당을 기점으로 민주국민당, 민주당, 민중당, 신민당, 민주한국당, 신한민주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밖의 정당들은 이른바 군소 정당에 불과하였다.

구미 지역의 경우, 초기에는 정당을 기반으로 한 후보자들의 활동에 비해 무소속 후보들의 활동이 비교적 활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자유당이 강력한 여당으로 등장하게 된 후 실시된 제3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제3공화국 이후부터 문민정부 기간에는 집권 여당이 높은 지지를 받았던 반면, 국민의 정부 이후부터는 야당의 지지도가 높게 나타났다. 또 한 가지 특징적인 현상은 제13대 국회의원선거부터 전국적으로 확연히 드러난 지역주의적 투표 성향이 구미 지역 선거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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