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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향랑전」[윤광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895
한자 烈女香娘傳-尹光紹-
영어의미역 Biography of Virtuous Woman Hyangna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형곡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傳)|전기|인물전|열녀전
작가 윤광소(尹光紹, 1708~1786)
창작연도/발표연도 조선 후기

[정의]

조선 후기 윤광소가 구미 지역 출신의 열녀(烈女) 향랑(香娘)에 대해 쓴 전기.

[개설]

윤광소(尹光紹, 1708~1786)는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자 치승(稚繩), 호는 소곡(素谷)이다. 1744년 수찬이 되어 이조판서 이종성과 같이 『속오례의』를 수찬하였다. 1776년(영조 52) 부사직(副司直)으로서 정후겸(鄭厚謙) 일파로 몰려 유배되었다. 유향(劉向)의 『열녀전(烈女傳)』에 언급되어 있는 열녀의 절개 있는 모습을 의심스러워하던 윤광서는 경상북도 선산부 상형곡(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형곡동)의 열부(烈婦) 향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향랑의 죽음을 마음 아파하며 「열녀향랑전」을 써 향랑의 일생을 기록하고 평가하였다.

[구성]

「열녀향랑전」은 유향(劉向)의 『열녀전』을 인용한 도입부와 윤광소가 들은 경상북도 선산부의 열부 향랑의 일대기, 그리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 ‘찬(贊)’을 첨부하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영남 선산의 향랑(香娘)은 어려서부터 성품과 행실이 단정하고 깨끗하여 동네의 아이들에 비해 남달랐다. 16세에 시집을 갔는데 남편의 성질이 패악하여 향랑을 욕하고 학대하는 등 행패를 그치지 않았다. 몇 년 뒤 마침내 향랑은 남편에게 쫓겨나 친정으로 갔지만 향랑의 아버지와 계모가 시집간 딸이라는 이유로 구박하고 개가를 권유하여 다시 시댁으로 되돌아갔다.

시댁에서도 시아버지가 개가를 종용하여 향랑은 마지막으로 외숙부에게 의지하였지만 외숙부 역시 개가를 권유하였다. 이에 향랑낙동강 아래의 지주연(砥柱淵)에 몸을 던져 죽기로 결심하고 낙동강가에서 만난 여자아이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내막을 알리고 「산유화」 한 곡을 부르고 죽었다.

찬자(贊者)로 나선 윤광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의 절의 있는 인물로 알려진 길재향랑을 비유하여, 향랑의 죽음이 길재가 남긴 충절(忠節)의 유풍에 영향을 입은 것으로 풀이하였다.

[특징]

「열녀향랑전」은 인물의 일대기를 서술하고 후반부에 ‘찬왈(贊曰)’로 시작하는 논평부를 첨가하는 전기의 일반적인 형식을 취하였다.

[의의와 평가]

「열녀향랑전」의 찬(贊) 부분에서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忠臣不事二君, 烈女不更二夫).’는 유가적 도덕관념을 재각인시킨 점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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