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C02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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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 신동(새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삼문 |
인동장씨 세계(世系)에 따르면, 시조를 장금용으로 하고 있으며 그 이후 15세에 해당하는 장우(張俁)가 인동에 처음 들어 온 입향조이며, 19세에 해당하는 장열과 장희의 후손들이 신동 마을의 주류를 이루었다.
다음의 세계표는 인동장씨 세계를 간추려, 인동 입향조와 신동 입향조를 표시한 것이다.
〈표〉인동장씨 세계표 중 인동 입향조와 신동 입향조
19세인 열을 판서공, 희를 승지공이라 부르는데 이 판서공과 승지공의 후손이 주로 새올(신곡)을 본거지로 삼고 있다. 승지공의 둘째 아들인 응일이 판서공의 아들인 현광(응일의 종숙)의 양자가 되었다.
판서공의 후손은 주로 안마와 거리마에 거주하였고, 승지공의 후손은 ‘새마(새로 생긴 마을)’를 중심으로 거주하였다.
판서공의 6대 주손 지덕(趾德)은 호가 사이당(四而堂)인데 음직으로 세자 익위사익찬(世子翊衛司 翊贊)을 제수 받았다. 만년에 새올의 천생산 아래에 별장을 짓고 우거하여 3대 만에 맏이(휘 胤宗)는 남산 종택으로 돌아가고 지차(之次) 여러 집은 그대로 눌러 앉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