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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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筽篒島 |
이칭/별칭 | 요죽도,오시도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유미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9년 - 오식도, 전라북도 옥구군에서 전라북도 군산시로 편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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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오식도 - 전라북도 군산시 오식도동 [동경 126°34′, 북위 35°58′] |
성격 | 섬 |
면적 | 1.76㎢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오식도동에 있었던 섬.
[개설]
전라북도 군산시의 북서부에 있던 섬이다. 1989년 옥구군에서 군산시로 편입되었으며, 군산 국가 산업 단지가 조성되면서 육지화 되었다. 오식도는 50여 년 전부터 금강 상류에서 흘러 내려오는 토사와 남쪽으로 흐르는 연안 해류에 의하여 이동·퇴적된 간석지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 썰물 때는 내초도까지 걸어 다닐 수 있었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서해안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조선 시대에는 조운선의 중간 기착지로 국가의 소를 방목하는 목우장의 역할도 하였던 곳이다. 섬의 중심 산인 무제봉[80m] 동쪽 기슭에는 관청의 원님이 마셨다고 하는 관청샘이라는 우물과, 성곽이 있었다는 뜻의 성안골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과거 오식도의 중심 마을이었던 신기멀과 진터멀 마을에는 군산 서흥 중학교 오식도 분교와 오식도 초등학교가 있었다. 또한 항거멀 마을에는 선착장이 있었으나 육지가 되면서 비응도로 옮겨 갔다. 역사 유적으로는 오식도 조개더미와 1994년 군산 국가 산업 단지 발굴 조사 때 발견된 신석기 유적이 있으며, 전하는 민요로는 시집 살이 노래가 있다.
[명칭 유래]
오식도의 지명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조선 시대에 섬에 피리를 만드는 대나무가 많아 섬사람들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었기 때문에 즐거울 요(樂)와 대나무 죽(竹) 자를 써서 요죽도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다른 하나는 군산창에 모인 세곡을 한양으로 운반하던 조운선이 침몰하여 바다에 선원들의 시신이 가득 떠있는데, 시신 위에 까마귀 떼가 앉아 있었다 하여 까마귀 오(烏)와 주검 시(屍) 자를 써서 오시도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그밖에 섬에 대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대바구니 오(筽)와 대바구니 식(篒) 자를 써서 오식도라 불렀다고도 한다.
[자연 환경]
해안 일대에는 해안 사구와 넓은 간석지가 분포하고, 1월 평균 기온 -1℃, 8월 평균 기온 27℃, 연강수량 1,094㎜, 연강설량 197㎜이다.
[현황]
육지화가 되기 이전에는 대부분의 주민이 농업과 어업을 겸하였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고구마·무·파 등이 생산되며, 연안에서는 갈치·민어·꽃게 등이 잡히고, 조개류를 채취하며, 섬 남쪽에 소규모 염전이 있었다.
현재는 오식도동 북동쪽에 군산항의 5부두가 있으며, 북쪽으로 한국 GM 자동차 전용 부두가 건설되었다. 오식도의 남단으로는 국도 21호선이 지나가고 있다. 남서쪽의 비응도는 새만금 방조제의 해안 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신시도를 거쳐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교통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