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8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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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州潘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
집필자 | 김두헌 |
본관 | 광주(光州) - 전라남도 광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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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옥산면 -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
성씨 시조 | 반충(潘忠) |
입향 시조 | 반서룡(潘瑞龍)|반서린(潘瑞麟)|반잠(潘岑) |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옥구현]에 세거한 성씨.
[개설]
광주반씨(光州潘氏)는 15세기 중엽에 호조 판서 반서룡(潘瑞龍)과 충무위 부사과 반서린(潘瑞麟) 형제[시조 반충의 4세손], 반잠(潘岑)[시조 반충의 손자], 부산포첨절제사(釜山浦僉節制使) 반희(潘凞) 등이 옥구(沃溝)에 입거한 이후, 이들의 후손들이 옥구군 옥산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연원]
광주반씨의 시조 반충(潘忠)은 자(字)가 평중(平重) 또는 공직(公直)이다. 고려 시대인 1348년(충목왕 4)에 태어났고, 사망 연도는 미상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1392년(태조 1)에 개국원종공신에 녹훈(錄勳)되었고, 해양군(海陽君) 광주백(光州伯)에 봉군되었으며, 시호로 문헌(文憲)을 수여받았다.
[입향 경위]
광주반씨로 옥구에 입거한 인물은 여러 명이다. 시조 반충의 손자 반잠(潘岑), 증손자 반서룡(潘瑞龍)과 반서린(潘瑞麟) 형제, 그리고 증손자 반희(潘凞) 등이다. 반잠은 15세기 중엽에 경기도 이천에서 옥구로, 반서룡과 반서린 형제는 15세기 후반에 이천에서 옥구로, 그리고 반희는 만경에서 임피로 각각 이주해 왔다.
[현황]
반잠(潘岑), 반서룡(潘瑞龍)과 반서린(潘瑞麟) 형제가 옥구에 입거한 이후 후손들은 옥구에 세거하여 왔다. 반잠이 호조판서를 지냈다는 연유로 후손들이 자신들을 광주반씨 판서공파라고 불러왔다.
반서룡과 반서린 형제의 후손들은 아버지 반강이 증직으로 호조 참의를 받았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광주반씨 참의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반희(潘凞)는 딸만 두 명이 있었다. 둘째 사위가 이인신[본관은 경주]인데, 이인신의 아들 이몽원(李夢黿)이 옥구에 입거하면서부터 후손들이 옥구에 세거하였다. 곧, 반희의 외손자 이몽원은 경주 이씨 상서공파 옥구 입향조이다.
옥구에 입거한 성씨들의 입거 경위는 어느 한 인물이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번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광주반씨는 가까운 일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거의 유사한 시기에 다발적으로 옥구에 입거하였으며, 후손들이 계속 옥구에 입거한 경우도 있었지만, 본인만 또는 몇 세대만 옥구에서 거주하고 이후 후손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한 경우도 있었다.
군산 지역에 거주하는 광주반씨 현황에 대해서는 조사된 사례가 없어 정확한 실정을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