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1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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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自然災害 |
영어공식명칭 | natural disaster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손승호 |
[정의]
경기도 구리시에서 발생한 이상 자연 현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인적·물적 피해.
[개설]
한반도의 중부 지방에서 한강 변에 자리한 구리시는 여름철에 집중 호우가 내림에 따라 한강이나 왕숙천이 범람하는 재해를 입기도 하였으나, 근래 들어서는 인공 제방이 조성되고 재해 예방 시스템이 구축되어 큰 재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구리시에서의 자연 재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25년에 발생한 을축년 홍수로 인한 주변 농경지와 취락의 침수 피해이며,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여름철 한강의 홍수 피해를 경험하였다. 특히 수해를 자주 겪은 지역은 한강과 왕숙천이 만나는 수택동 일대이다. 구리시는 홍수 이외의 원인에 의한 자연 재해 발생 빈도가 높지 않은 지역이다.
[을축년 홍수]
1925년 을축년(乙丑年)에 한반도에서 네 차례의 홍수가 발생하였으며, 이는 20세기 최대의 홍수로 기록되었다. 그 가운데 1차 홍수는 7월 9-11일에 열대성 저기압[태풍]이 중부 지방을 통과하면서 발생하였고, 2차 홍수는 7월 15-18일에 열대성 저기압이 황해도 북부를 지나면서 그 오른쪽 반경에 포함된 임진강과 한강 유역에 집중 호우를 뿌리면서 발생하였다. 두 차례의 홍수로 한강 하류 양안의 거의 모든 지역이 침수되었으며, 한강의 지류로 물이 역류하면서 구리시 일대에서도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다. 왕숙천 유역에서는 퇴계원 일대까지 범람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지금의 토평동 일대인 토막리를 비롯하여 벌말과 돌섬 등지에 취락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을축년 홍수로 인해 대부분 수택리[지금의 수택동] 너머로 이주하였다. 이를 계기로 1936년까지 한강 연안에는 인공 제방이 대대적으로 축조되었고 경작지에는 각종 배수 시설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왕숙천 유역에서는 제방 축조가 진행되지 않았다.
[집중 호우]
구리시에서 발생한 자연 재해 가운데 가장 취약한 부분은 수해와 관련된 것이다. 1989년 8월 9일부터 3일간 쏟아진 340㎜의 집중 호우로 지대가 낮은 수택동 일대 1,500동의 건물이 침수되었다. 이로 인해 2,000여 세대에서 8천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고 농경지 348㏊가 물에 잠겼다. 이듬해인 1990년 9월에 내린 358㎜의 집중 호우로 건물 1,585동이 침수되었으며 8,136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2001년에는 304㎜의 폭우가 쏟아져 2명의 인명 피해와 주택 수십 채가 침수되기도 하였으며, 2010년에는 집중 호우로 인해 토평 지구의 원룸 200여 채가 물에 잠긴 적이 있다.
2010년 이후로 수해 방지 대책을 실시한 결과,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는 크게 감소하였다. 2011년 7월 26일부터 3일간 구리시에는 475㎜의 집중호우가 내렸다. 시내의 주택가와 제방 도로, 하천 등이 일부 침수되거나 유실되었지만,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고 인명 피해도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