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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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顯宗 |
영어공식명칭 | Hyeonjong |
이칭/별칭 | 이연,경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11-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민정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숭릉에 묻힌 조선 후기의 국왕.
[개설]
현종(顯宗)[1641~1674]은 조선의 제18대 왕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이름은 연(棩), 자는 경직(景直)이다.
[가계]
현종은 조선의 제17대 왕 효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장유(張維)의 딸 인선 왕후(仁宣王后)이다. 1641년(인조 19) 효종이 봉림 대군(鳳林大君)으로서 청나라 선양[瀋陽]에서 볼모로 있을 때 태어났다. 조선의 역대 왕 가운데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난 왕이다. 1651년(효종 2) 김우명(金佑明)의 딸 명성 왕후(明聖王后)와 가례를 올려, 숙종(肅宗)과 세 명의 공주를 낳았다.
[활동 사항]
현종은 1645년(인조 23)에 인조(仁祖)의 맏아들 소현 세자(昭顯世子)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아버지 봉림 대군이 왕세자로 책봉되자 자연스레 원손(元孫)이 되었다. 1649년에는 왕세손에 책봉되었으며, 1649년 효종이 즉위한 후, 1651년(효종 2) 왕세자가 되었다. 1659년에 효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현종이 즉위한 시기는 효종 대로부터 지속된 남인과 서인 간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던 시기였다. 현종은 즉위하자마자 아버지 효종에 대한 할머니 장렬 왕후(莊烈王后)의 상복 문제를 둘러싼 예송(禮訟) 논쟁에 직면해야 했다. 이때 현종은 1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 서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상복 문제는 효종이 적자인지 서자인지에 대한 해석 문제와 결부되어 언제든지 다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었고, 국왕 현종의 결단에 따라 어느 한쪽은 잘못된 예를 주장하여 부왕 효종의 지위에 흠을 낸 붕당으로 인식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결국 1674년(현종 15), 현종의 어머니 인선 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인선 왕후에 대한 장렬 왕후의 상복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다. 이번에는 현종이 남인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어 현종 초 서인이 주장하였던 예법도 잘못된 것으로 귀착되었다. 결국 서인은 정계에서 배척되기에 이르렀다. 복제 문제는 현종 대에서 그치지 않아, 숙종이 즉위한 후에도 지속되었다.
예송으로 인해 붕당 간의 대립이 점차 격화되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현종은 여러 신하들과 함께 필요한 정책들을 수행해 나갔다. 우선 현종은 부왕 효종의 숙원 사업이었던 북벌 정책을 중단하였으며, 호남 지방에 대동법을 시행하여 나라의 안정을 기하고자 하였다. 청과의 직접적인 군사 대결을 의미하는 북벌을 포기하기는 하였지만, 조선에 은혜를 베풀어 주었던 명을 숭상하는 숭명 의식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이는 단순한 숭명 의식을 넘어 조선이 명을 계승하여 중화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는 조선 중화주의로 연결되었다.
1674년 현종이 승하한 후, 현종의 치세 당시의 사실들을 평가한 『현종실록(顯宗實錄)』의 내용을 두고 붕당 간의 대립이 이어져 『현종 개수 실록(顯宗改修實錄)』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묘소]
현종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경내에 있는 숭릉에 묻혀 있다. 숭릉은 현종과 현종의 비 명성 왕후 김씨의 능이며,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1674년(현조 15) 현종이 승하하자,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하였는데, 산릉을 조성하는 공역 중에 승려의 부도를 세우려 했던 흔적이 드러나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깊이가 그리 깊지 않아 지맥을 손상하지 않았고 광중(壙中)[시체가 놓이는 무덤의 구덩이 부분]의 밖이라는 이유로, 이 위치를 버리지 않고 숭릉을 조성하였다. 숭릉의 석물은 효종의 구 영릉(寧陵) 석물을 다시 사용한 것이다. 영릉을 여주로 옮길 때에 본래 영릉 자리의 석물을 그대로 땅에 묻었다가 다시 파내어 숭릉에 이용한 것이다. 1683년(숙종 9)에 현종의 비 명성 왕후가 승하하자, 쌍릉 방식으로 능을 조성하였다. 1970년에 동구릉 전체가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현종의 신위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셔 놓은 종묘에 봉안되어 있다. 종묘에서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전통 제례 의식으로 대제를 봉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