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경열사에 있는 고려 후기 정지 장군의 행적을 기록한 사적비. 정지(鄭地)[1347~1391]는 고려 말엽의 무장으로 수군에 대한 정책을 제안하여 수군을 쇄신하였다. 1377년(우왕 3년) 순천도병마사로서 왜구를 크게 물리쳤으며, 그 공으로 해도대원수·문하평리가 되었다. 시호는 경렬(景烈)이다. 경렬공정지장군사적비는 정지 장군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1980년...
-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 있는 파평윤씨 사우인 서강사의 강당. 경모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 있는 서강사(瑞岡祠)의 강당(講堂)이다. 서강사는 파평윤씨 문중의 사우로 시조인 윤신달(尹莘達), 후손인 윤관(尹瓘), 윤언이(尹彦頤), 윤위(尹威), 윤돈(尹敦), 윤보(尹珤)의 6명을 모시고 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파평윤씨 문중에서 광주광역시에 파평윤씨의 사우가 없음을 알고 건립하...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경열사 경내에 있는 유허비. 정지(鄭地)를 배향한 경열사(景烈祠)의 유허비다. 정지는 고려 후기 문하평리(門下評理), 양광전라경상도도절제체찰사(楊廣全羅慶尙道都節制體察使) 등을 역임한 무신으로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다. 조선시대에 정지를 배향하였는데, 뒤에 7인을 추배(追配)하면서 팔현사(八賢祠)로도 불렀다. 추배된 7인은 유사(柳泗), 고중영(高仲英), 전상...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박재룡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박재룡(朴載龍)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적비이다. 박재룡은 본관이 함양(咸陽)이다. 지산마을 서쪽 산골짝에 논 수만 정보가 말라 있는 땅이었는데, 최홍진(崔鴻鎭)의 주선으로 양과제(良苽堤)를 쌓는 일에 함께 힘을 보탰다. 1967년 겨울 관청 지원금을 교섭하여 범위를 넓히고 두어 길의 땅을 파서 둑을 쌓았다...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강학 공간. 경의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으며, 1930년 소해정(蘇海亭)이란 이름으로 소해(蘇海) 노종룡(盧種龍)[1856~1940]이 건립하였다. 노종룡은 최익현(崔益鉉)[1833~1907], 송병선(宋秉璿)[1836~1905] 등으로부터 학문을 배웠고, 구한말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여러 차례 상소를 올리면서 을사오적(乙巳五賊)...
-
광주광역시 남구 화장동 농막마을에 있는 김정수의 유허비. 김정수(金鼎洙)[1887~1936]의 유허에 세운 비이다. 최윤환(崔允煥)이 글을 지어 1973년에 세웠다. 김정수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영현(永賢), 호는 계남(桂南)이다 고광선(高光善)의 문인으로 이름난 효자였고, 땅을 주어 농민들의 기근을 줄여주고 병자들을 구제하였다. 1932년 관호정(觀湖亭)을 지어 문인들과...
-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고려시대의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고려시대의 문화유산은 불교문화유산, 역사인물유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불교문화유산은 불탑, 승탑, 석조 존상, 목조 존상, 석비, 석등 등이 포함된다. 역사인물유산은 무구류, 묘소 등을 들 수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고룡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토기 가마. 고룡동 창암 토기 가마에서는 경질토기편과 경화된 가마벽 파편, 소토(燒土)덩이가 수습되었다. 가마의 수량과 정확한 시기를 추정하기 어려우며 현재는 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월봉서원에 있는 조선 후기 기대승의 문집을 발행하기 위해 만든 목판. 고봉문집목판(高峰文集木板)은 조선 시대 대표 성리학자인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문집을 발행하기 위해 1629년(인조 7) 기대승의 손녀 사위인 조찬한(趙纘韓)이 목판본을 만들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월봉서원에 있으며, 1992년 3월 16일 광주광역시 유...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문. 고씨삼강문은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다.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고경명의 동생인 고경형(高敬兄),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高從厚)[1554~1593]와 고인후(高因厚)[1561~1592], 딸인 영광유생 노상룡(盧尙龍)의 부인, 고경명의 조카 고거후(高巨厚)의 부인인 광산정씨, 고경명의 손자 고부금(高傅金) 총 7...
-
광주광역시 북구 용전동에 있는 광람계 기적비. 광람계(光藍契)는 1918년 당시 전라남도 광주군 우치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면장 범재풍(范在豊)이 우치면과 본촌면 일대 주민 61명으로 계원을 삼아 창계하였다. 광람계라는 명칭은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도 중국 남전여씨(藍田呂氏) 향약(鄕約)의 전범에 따른 유교적 이상향을 건설해 보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계원의 거주지는...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광산구에는 모두 26점의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가 있다. 지정문화재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는 1점, 광주광역시 지정문화재는 12점으로 유형문화재 3점, 무형문화재 2종목, 기념물 6점, 민속문화재 1점이다. 문화재자료는 11점이다. 등록문화재는 국가등록문화재 1점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발견된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고고학적 유물이 있는 유적지. 유물산포지는 석기(石器)나 토기(土器), 자기(磁器), 기와 등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이 지표에 드러난 곳이다. 유물산포지는 무덤이나 집 등 사람이 만든 구조물(構造物)의 흔적인 유구(遺構)가 확인되지 않아서 유적이 땅속에 존재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지만, 지표에 유물이 있어서 땅속에 유적이...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만산마을에 있는 김정복, 김정열 형제의 효행을 기려 세운 정려비. 1922년 광산김씨(光山金氏) 김정복(金廷福)·김정열(金廷烈) 형제의 효행를 기리기 위해 문중에서 세웠다. 김정복과 김정열은 김계문(金啓文)의 아들로 전라남도 광산군 유등곡면 향등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살았다. 어머니 김해김씨(金海金氏)의 병세가 위독하자 큰아들 김정복과 둘째아들...
-
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에 있는 개항기 광산이씨의 효열각. 광산이씨효열각은 음성박씨 박성립(朴性立)의 부인인 광산이씨의 효열(孝烈)을 기리고자 세운 비각이다. 광산이씨는 1795년 출생하여 1819년 박성립과 결혼하였으나,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남편 박성립이 죽었다. 그러자 광산이씨는 남편을 따라 삶을 마감하였다. 1832년 광주 지역 유림들이 광산이씨의 효열을 조정에 천거하였으며...
-
광주광역시 동구 용연동 샘골에서 발원하여 광주 시가지와 시청을 경유하여 서구 마륵동·광산구 우산동, 영산강 합류점 하구까지 흐르는 국가하천 광주천의 이야기. 광주천은 광주광역시 동구 용연동 샘골에서 발원하여 광주 시가지와 시청을 경유하여 서구 마륵동·광산구 우산동, 영산강 합류점 하구까지 24.3km의 길이로 흐르며, 유역면적은 108.42㎢이다. 2020년 초 증심사천 합류점에서...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내에 있는 석등 부재. 광주교도소내 석등 부재(光州矯導所內石燈部材)는 광주광역시 각화농산물도매시장 맞은편 옛 광주교도소 보안청사 앞 화단에 있는 2기의 석등 부재이다. 원래 하대석(下臺石) 부재 2기, 옥개석(屋蓋石)과 간주석(竿柱石)으로 이루어진 부재 2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하대석 부재 2기만 관리되고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와 동구, 전라남도 화순군과 담양군에 걸쳐 있는 높이 1,187m의 산. 『삼국사기지리지』에는 ‘무진악(武珍岳)’이라고 나오고, 『고려사지리지』에는 “백제 때 「무등산곡(無等山曲)」이라는 속악(俗樂)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서석산이라고 하며, 하늘같이 높고 큰 것이 웅장하게 50여 리[약 400m]에 걸쳐 있다”고 나와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는 조선시대 광주 지역 중등교육 및 유교 교화를 담당하였던 기관. 광주향교(光州鄕校)는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으며, 조선시대 광주 지역의 관학(官學) 중심 중등교육과 지역민 교육을 담당하고, 공자와 여러 유학자들의 제사를 지내는 등 성리학과 유학 관련 일을 진행하였던 곳이다....
-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근현대의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근현대 문화유산은 역사유산, 주거유산, 기록유산, 민속유산, 업무시설, 교육시설, 종교시설, 현대유산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고분. 금곡동 고분은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서림마을 북서쪽 구릉의 울산김씨 선산에 있다. 이곳 지형은 높이 167m에 해당되는 구릉 끝자락이다. 고분 일대는 높은 산지와 곡간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부근에는 조선시대 분청사기 가마터가 분포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었던 배재마을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 지내던 마을 제사. 금곡동 배재[梨峙]마을 당산제는 배재마을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 6.25전쟁 전까지 모셨던 마을 제사이다. 예전에 당산제를 모시던 방식이 몇몇 촌로들 사이에 띄엄띄엄 기억되고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과 송정동에 걸쳐 있는 산. 금봉산은 높이 104m의 산으로 쇠봉산이라고도 불린다. 금봉산은 산기슭에 송정공원, 광주송정도서관, 금선사, 현충탑, 송정신사 등이 있는 휴양처이다....
-
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금호동 망월 고인돌은 1995년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실시한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 택지 개발 사업과 관련한 정밀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이후 1996년 전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 고인돌 1기가 조사되었다. 1998년 금호동 망월 고인돌은 유적 내 풍암돌 고인돌과 함께 풍암동 제7호 어린이공원으로 이전·복원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촌동에 있는 효자 김창환의 유허비. 김창환(金昌煥)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운 유허비(遺墟碑)이다. 김창환은 김해김씨(金海金氏)로 관직은 동몽교관(童蒙敎官)과 조봉대부(行朝奉大夫)를 역임하고 이조참판(吏曹叅判)에 증직(贈職)되었다. 기우만(奇宇萬)이 명(銘)을 짓고 오준선(吳駿善)이 찬(撰)하였다. 이중권(李重權)이 글을 짓고, 이재춘(李載春)이 글씨를 썼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나주오씨 3대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나주오씨(羅州吳氏) 오상림(吳相霖), 오상림의 아들 오덕환(吳德煥)과 오직환(吳直煥), 오상림의 손자 오영기(吳永基) 등 3대의 효행을 기록한 비이다. 명도동 지역은 원래 조선시대에 나주목 적량면에 속하였는데,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편입되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관내에 있는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남구 관내의 문화유산은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 32점이 있다. 국가지정문화재는 2점으로 보물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고려시대 초기 석탑으로 성거산(聖居山)의 형세가 거북처럼 생겼다 하여 거북이 광주 지역을 떠나지 못하도록 거북의 등에 해당하는 자리에 성거사(聖居寺)를 세우고 거북의 목 부근에는 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국가무형...
-
광주광역시 남구에서 발견된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고고학적 유물이 있는 유적지. 광주광역시 남구의 유물산포지는 석기(石器)나 토기(土器), 자기(磁器), 기와 등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이 지표에 드러난 곳이다. 유물산포지는 무덤이나 집 등 사람이 만든 구조물(構造物)의 흔적인 유구(遺構)가 확인되지 않아서 유적이 땅속에 존재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지만, 지표에 유물이 있어서...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현대의 사우. 남동영당은 '남동사(南洞祠)', '남동영각(南洞影閣)'으로도 불리우며, 만취(晩翠) 심원표(沈遠杓)[1853~1939]와 아들인 남석(南石) 심종대(沈鐘大)[1882~1959], 손자 주봉(柱峰) 심한구(沈翰求)[1898~1974] 3명의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심원표는 구한말 유학자로 항일의병장을 도왔으며, 일제가 주는 은사금을 거부...
-
광주광역시 남구 도금동 도촌마을에 있는 윤의순의 효행비. 윤의순(尹義順)은 조선 전기 형조판서,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윤효손(尹孝孫) 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윤병철(尹秉哲)이다. 타고난 자품이 순박 온후하고 자상하였다. 전라남도 광산군 대촌면 도촌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도금동]에 있는 삭녕최씨(朔寧崔氏) 최성한(崔成漢)에게 출가하였다. 윤의순은 시댁에서 남다른 부덕(婦德)을...
-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문. 문장갑과 문장섭 형제는 지극한 효자였다. 아버지가 병환에 들자 2년 동안 정성으로 간호하였는데, 많이 아플 때는 본인들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상례(喪禮)의 제도에 따라서 장사를 지냈다. 주변 마을 사람들로부터 효자라고 칭송되어지고, 나라에서 문장갑, 문장섭 형제의 이와 같은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66년에...
-
광주광역시 동구 내남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내남동 주남 고인돌은 주남마을 입구인 평강채씨 선산 아래쪽에 있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내산동 대봉 고인돌군은 대봉마을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계곡 끝부분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내산동 망월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산동 망월마을 뒤편 구릉 지대에 있고, 나군은 내산동 망월 고인돌에서 남서쪽으로 100여m 떨어진 구릉 사면에 있으며, 다군은 내산동 망월 고인돌에서 동쪽으로 100여m 떨어진 밭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산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내산동 망월마을 고인돌은 마을 북동쪽에 형성된 구릉지에 있으며, 이곳 지형은 높이 55m의 북서향하는 구릉 정상부에 해당한다. 북서쪽으로 인접하여 몽심헌 김홍련의 비가 있다. 고인돌 일대는 높은 산지 사이에 저평한 구릉지와 곡간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구릉 끝자락 여러 개소에 고인돌이 분포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산동에 있었던 쌍내마을에 있는 3기의 선돌. 내산동 쌍내마을 선돌은 원래 4기가 있었다. 그러나 1기의 선돌이 유실되어 3기가 남아 있다. 쌍내마을 사람들은 선돌이 마을에 들어오는 질병과 액을 방비해 준다고 믿어 선돌을 수호신으로 여겼다. 하지만 선돌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제사는 없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구암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노대동 고인돌은 광주대학교에서 노대동 노대마을로 이어지는 도로 남쪽의 논 가운데 있으며, 행정 구역상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654-2번지에 해당한다. 노대동 고인돌은 구릉 말단부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노대천이 동서 방향으로 흐른다....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과 취락 집단. 노대동 구암마을 고인돌군은 1990년 조사 당시 효덕동 구암마을 고인돌군으로 보고되었으며, 15번 시내버스 종점인 함안윤씨 제각(祭閣) 앞에 있었다. 1996년 조사 당시 행암동이 행정 구역상 기존 서구에서 남구로 변경되면서, 고인돌 명칭 또한 행암동 구암고인돌군으로 바뀌었다. 2004년 조사 당시에는 고인돌군이...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노대마을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노대동 노대마을 당산제는 음력 정월 14일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예전에는 '안 당산'과 '바깥 당산' 두 곳에서 당산제를 모셨으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안 당산'이 있는 길을 넓히면서 '안 당산'은 자연스레 '바깥 당산'인 할아버지 당산과 합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당산제를 지...
-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유물수습지. 광주광역시 농성동 유물수습지는 현재의 그린파크 아파트 뒷산 구릉 북서사면 끝자락으로 추정된다. 농성동 유물수습지 남동쪽으로는 높이 90m 정도의 구릉이 있는데, 남쪽 구릉 정상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구릉을 개간한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구릉 주변은 주거 밀집 지역으로 양측에 아파트 단지와 주택이 있다....
-
광주광역시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있는 조선 시대 문신 눌재 박상의 문집인 『눌재집(訥齋集)』을 발행하기 위한 만든 목판. 눌재집목판각(訥齋集木版刻)은 1547년(명종 2) 임억령(林億齡)[1486~1568]이 처음으로 목판을 만들었으며, 1684년(숙종 20) 이사명(李師命)[1647~1689]이 다시 판각을 시작하여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중단되었다가, 1694년(숙종...
-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행주기씨 사우. 담숙재는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 녹동마을에 있으며, 조선시대 의병장인 기의헌(奇義獻)[1587~1653]을 모신 사우이다. 기의헌은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후손으로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신촌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군사를 모으고 군량미를 조...
-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있는 광산김씨 유허비. 담양평장동광산김씨유허비는 광산김씨 세거지 내력을 기록한 유허비로, 광산김씨 시조인 신라 신무왕의 3남 김흥광(金興光)이 둔거한 곳에 1739년(영조 15) 김진동 등이 주도하여 세웠다. 건립 당시에는 전라도 광주에 속하였으며 1914년에 담양군으로 편입되었다....
-
광주광역시 북구 동림동에 있는 산. 대마산은 높이가 92m이고, 왕건, 진훤과 관계가 깊은 광주군 황계면 죽림리와 동배리 동남쪽[현 동림동]의 진훤대(甄萱臺)로 추정되는 산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대산동 가산 고인돌군은 가산마을 남쪽 논 가운데에 인접한 야트막한 구릉 아래 평지에 있고, 대산동 가산 고인돌 나는 가산 고인돌군 맞은편 산사면 밭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대산동 대야 고인돌 가군은 대야마을 구릉 지대에 있고, 나군은 진주정씨 민묘가 조성되어 있는 노송으로 둘러쌓인 구릉 정상부에 있다. 다군은 대야마을에서 남쪽으로 300여m 떨어진 한빛노인전문요양원 서쪽 논에 있으며, 라군은 대야마을 북쪽 구릉 정상부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던 대야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이었던 선돌. 대야마을은 마을이 크다고 하여 '대몰', '댓말'이라고도 불렀다. 마을은 대(大) 자 모양을 띠고 있어 대야(大也)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대야마을은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일대의 도야마을에 살던 상산김씨(商山金氏) 김연선이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아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고분. 대산동 우치고분은 대야마을 뒤쪽에 있는 진주정씨 문중 선산에 있다. 고분이 있는 지점은 높이 85m 부근의 구릉 사면부이며, 서쪽으로 대규모 군집을 이루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이 인접하여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대지동 상촌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물이었던 선돌. 상촌마을은 영산강과 대촌천 사이의 평야에 형성된 마을로 등룡산(登龍山)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은 동서로 길게 형성되어 있고 가옥은 대부분 남쪽을 향하고 있다. 대지동 상촌 선돌은 상촌마을 사람들이 '각시바우'라고 부르며, 마을에 있는 두 개의 당산과 함께 마을 신앙의 대상물로 의례를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
광주광역시 북구 대촌동의 옛 대촌마을에 있는 선돌. 대촌마을은 지역에서 '큰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에 대촌마을 뒷쪽의 동녕골이라는 골짜기에는 도적 무리들이 모여 살았다. 도적 무리는 남의 재산을 약탈해서 큰 기와집을 짓고 호화롭게 살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대촌마을로 이주하여 터를 잡고 성촌(成村)하였다고 전한다. 대촌마을 위쪽으로 상대마을, 대촌마을 아래쪽으로...
-
광주광역시 남구 덕남동 덕남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밤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덕남동 덕남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덕남마을의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류재만의 행적비와 모선기실비. 문화류씨(文化柳氏) 류재만(柳在萬)[1909~?]의 지극한 효성과 위선(爲先)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행적비(行蹟碑)와 모선기실비(慕先紀實碑)이다. 류재만은 양일묵(梁鎰默), 오필선(吳弼善)의 문하이고 선조(先祖) 현창(顯彰)에 헌신하였다. 1964년 모친상, 1968년 부친상을 당하여 예를 다하였다. 현재 덕림동...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 수성마을에서 정월대보름 무렵에 지냈다고 전해지는 마을 제사. 수성마을은 본래 고와수(高臥水), 과우, 광암(光岩) 등이라고 불리다가 일제강점기 때는 고암(古岩)이라고 불렸다. 수성마을은 400여 년 전에 죽산부사(竹山府使) 류희달(柳希達)이 들어와 정착하면서 성촌되었고, 이후 문화류씨(文化柳氏)가 대부분 거주하고 있는 마을이다. 덕림동 수성마을 당산제는 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덕림동 을림 고인돌은 을림마을 남서쪽에 형성된 구릉지에 있으며, 행정 구역상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 을림마을 78-1번지에 해당한다. 고인돌 동쪽으로 560m 지점에는 평림천이 흐르며, 일대에 구릉지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구릉 말단부에는 여러 고인돌군이 분포한다....
-
광주광역시 남구 도금동 옛 도촌마을에 있는 2기의 선돌. 도금동 도촌마을 선돌은 2기가 있다. 선돌 2기는 모두 마을 앞 논에 있으며, 경지 정리를 하면서 기단을 만들어 다시 세웠다. 마을 사람들은 선돌을 '선바우', '삼두창 입석'으로 부른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도덕동 상지 고인돌군은 1990년 조사에서 처음 확인되었으며, 현재까지 변함없이 고인돌 3기가 유지되고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우. 도림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 도림마을 입구에 있으며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 난와(難窩) 오계수(吳繼洙)[1843~1915],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善)[1851~1931]을 모신 사우이다. 기정진은 현재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으로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1866[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나...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천동 작은도랑실에 있는 삼국시대·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광주광역시 도천동은 국도13호선[사암로]을 기준으로 북쪽은 큰도랑실, 남쪽은 작은도랑실로 구분되며, 도천동 작은도랑실마을은 도촌제[도촌2제]의 서쪽에 있다. 도천동 작은도랑실 유물산포지는 도촌제의 중앙에서 북쪽으로 240m, 서쪽으로 370m 정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범위로 구릉 사면과 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천동 큰도랑실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대보름 날 낮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도천동 큰도랑실마을 당산제는 정월대보름날 낮에 큰도랑실마을의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
광주광역시 동구 관내에 있는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문화유산은 지정문화재 21점, 등록문화재 6점 등 모두 27점이다. 지정문화재는 국가지정문화재 5점, 광주광역시 지정문화재 12점,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4점이다. 등록문화재는 국가등록문화재 6점이다....
-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발견된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고고학적 유물이 있는 유적지. 유물산포지는 석기(石器)나 토기(土器), 자기(磁器), 기와 등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이 지표에 드러나 있는 곳이다. 유물산포지는 무덤이나 집 등 사람이 만든 구조물(構造物)의 흔적인 유구(遺構)가 확인되지 않아서 유적이 땅속에 존재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지만, 지표에 유물이 있어서 땅속에 유적...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림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동림동 원동마을 고인돌이 분포한 원동마을은 영산강 지류인 평림천변에 있다. 마을 동쪽은 평림천 유역 충적평지를 마주하고 있고, 서쪽은 높이 100~200m의 산과 얕은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동림동에 있는 고분. 동림동 죽림 고분은 광주광역시 북구 동림동 삼익아파트 동쪽에 형성된 구릉에 있다. 고분이 있는 곳은 운암산 남쪽 구릉으로 높이 63m에 해당되며, 서쪽으로 700m 지점에 영산강이 있다. 고분 주변에는 택지가 조성되어 원래 지형이 확인되지 않는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동호동 본촌마을 고인돌은 나주오씨 선산에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행정 구역상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 299-1번지, 산22-2번지 일원에 해당한다. 동호동 본촌마을 고인돌이 있는 곳은 감도산 서쪽 사면 말단부로서 높이 30m 내외의 지역이다. 동호동 본촌마을 고인돌 서쪽 부근으로 평림천이 흐르며, 이 일대에는 넓은 충적지와...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심덕부, 심징, 심선, 심풍, 심광헌을 모신 사우. 동호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만취정(晩翠亭), 남동영당(南洞影堂)과 같이 있다. 심덕부(沈德符)[1328~1401], 심징(沈澄)[?~1432], 심선(沈璿)[?~1467], 심풍(沈灃)[1482~?], 심광헌(沈光憲)[1541~1593] 5명을 기리는 사우이다. 심덕부는 고려 말 조선 초...
-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에 있는 삼국시대 토기 가마터. 두암동 토기 가마터는 광주광역시 두암동 신흥맨션과 무등파크맨션을 지나 제2순환도로 밑으로 가로질러 가면 미륵사가 있고 여기서 등산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가마터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은 ‘빈대절터’ 또는 ‘북당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두정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두정동 가정고분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두정동 가정마을의 남동쪽 구릉에 있다. 이곳의 지형은 가정마을 북편에 형성된 판사등산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 사면 끝자락으로 높이 76m에 해당된다....
-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하동정씨 재실. 만석재는 광주광역시 하동정씨의 재실로 1917년 정천익(鄭天翼)이 하동정씨의 정자인 삼호정(三湖亭)을 증축하면서 삼호정 옆에 세웠다. '一'자형 2칸 건물이었던 삼호정 바로 옆에 만석재를 지어서 'ㄱ'자형 건물을 만들고, 관리가 용이하도록 서로 연결하였다. 정윤길정려가 만석재의 대문 역할을 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망월동 고분군은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분토마을에서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으로 넘어가는 곳에 점재해 있으며, 김성곤의 선산으로 이용되고 있다. 고분군이 있는 곳은 높이 110m의 구릉 끝자락으로 곡간부와 경계 지점에 해당한다. 고분 일대는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 방향으로는 조선시대 백자 가마터가 인접하여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망월동 분토마을 고인돌군은 광주동초등학교 북쪽의 논과 밭, 민묘(民墓) 주변에 7기가 있다. 고인돌군 동서쪽으로 구릉이 형성되어 있고, 고인돌군은 그 가운데 계곡부 평지에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터. 광주광역시 청풍학생야영장에서 망월공원묘지 방향으로 가다가 분토동에서 금현저수지 쪽으로 500m쯤 가면 고개의 정상부에 동강학원 실습지의 관리원 주택이 있다. 망월동 점재 도자 가마터는 이 주택 좌측으로 김해김씨 묘지 주변에 있다. 도로 옆 밭에는 현대의 옹기 가마터의 흔적이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에 있는 고려시대 유적으로 추정되는 유물수습지. 매곡동 유물수습지의 위치는 현재의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 해당하며, 북쪽 구릉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평지성 구릉에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매월동 개산 고인돌 가군은 2004년 조사 당시 계곡 평지에서 계단식으로 이어지는 논둑에 2열로 6기가 분포하였으며, 나군은 개산마을 남쪽의 동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에 3기가 있다고 기록되었다....
-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과 남구 원산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매월동 고인돌군은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과남구 원산동 경계 지점인 원산동 원산교 삼거리에서 매월동 개산마을 앞 도로에 이르는 구간 중간쯤의 구릉 정상부에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매월동 동산 고인돌 가군은 개금산에서 북서쪽으로 내려오는 능선 고갯마루에, 나군은 동산마을 서쪽 구릉 사면에 분포하였다....
-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적. 광주광역시 매월동 동산 유적은 개금산[179.2m] 북서 줄기에 있다. 'A' 지점은 월산마을에서 배고랑을 지나 매월동 동산마을로 가는 중간에 있는 높이 76m 언덕 북쪽 비탈에 있으며. 'B' 지점은 'A' 지점에서 동남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언덕 마루에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매월동 화산 고인돌군은 화산마을 서북쪽의 영식재(永武齋) 앞에 있다. 이곳은 개금산 서북쪽 끝자락으로 앞에는 곡간을 따라 좁은 충적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매월농원’이란 식당으로 들어가는 도로변을 따라 고인돌이 분포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었던 가마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모셨다는 마을 제사. 가마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지냈다고 구술로만 전해지고 있다. 가마마을에는 마을 뒤에 와우산(臥牛山)[높이 58.7m]이 있고, 앞들 논 가운데에 '소꼬리 배미', '진고개 배미', '구수 배미'라는 이름의 수전(水田)이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가마솥처럼 생...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던 일제강점기 사당. 명동영당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었으며 오재수(吳在洙)를 배향한 사당이다. 오재수는 대한제국 시기에 항일운동가이자 유학자인 오계수(吳繼洙)[1843~1915] 제자로, 1916년 동문인 오준선(吳駿善)·오정선(吳禎善)과 함께 스승인 오계수의 글을 모아 『『난와집』를 만들고 발문(跋文)을 썼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화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명화동장고분은 화동마을 북동쪽 구릉 말단부인 높이 35m 내외의 저평한 구릉지에 있다. 행정구역상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화동 170-5번지이며, 명화동장고분 일대는 북쪽의 복룡산에서 발원한 여러 개의 작은 하천이 만나며 저평(低平)한 구릉지와 평지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용연동과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에 사이에 있는, 무등산의 기운을 담아 펼쳐진 주상절리. 서석대와 입석대는 광주광역시 동구 용연동과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에 있는 주상절리이다. 수직단애(垂直斷崖)는 무등산 정상에서 남서쪽 해발고도 1,060~1090m, 970~1,000m에 자리한다. 한랭기후 속 동결·융해작용의 반복으로 형성된 암주이다. 지형학에서는...
-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일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의 성터. 광주광역시 무진고성지(武珍古城址)는 장원봉[386m]을 중심으로 장대봉[350m]과 제4수원지 산 능선을 따라 조성되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절골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눌재 박상의 신도비. 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은 1501년(연산군 7)에 문과에 입격하였고, 중종 폐비 신씨(愼氏)의 복위를 상소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났으나, 학행이 뛰어나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 문간박선생눌재신도비명은1859년(철종 10)에 조선 전기 문신인 박상의 묘소 입구에 세운 신도비이다....
-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 광주광역시 문화재는 160점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에 있는 개항기 효자문. 밀양손씨삼효문은 1870년(고종 7) 밀양손씨의 손맹옥(孫孟玉), 손맹대(孫孟大) 형제와 손맹대의 아들인 손양복(孫陽復)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손맹옥과 손맹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다. 부모님이 깊은 병환에 들자, 손맹옥과 손맹대는 넓적다리 살을 잘라 고아서 부모님께 드렸다. 손양복은 손맹대의 아들로...
-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에 있는 산. 『조선지지자료』[1919]에는 백석곡(白石谷)이라는 백석골이 있고, 우리말 독백이개[석백점(石白店)]라는 주막집도 있다. 『한국지명총람』13-전남편1[1982]에 백석산을 흑석산이라는 이칭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 백석산은 산의 암석이나 돌과 관련이 깊은 명칭으로 보인다. 『1:50000 지형도』-광주[1956, 2001]에는 백석사(白石寺)[현...
-
광주광역시 남구 백운동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유물수습지. 광주광역시 백운동 유물수습지는 광주석산고등학교가 들어서 있으며, 유물수습지 남동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수피아 홀과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커티스 메모리얼 홀이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범세동의 묘역. 범세동선생묘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 산 94-1번지 일원에 있다. 묘역은 높이 70m의 구릉지에서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으로 180m 떨어진 지점에 평림천이 흐르고 있다. 이 일대에는 구릉지와 곡간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촌동에 있는 대한불교화엄종의 말사. 법흥사(法興寺)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 대한불교화엄종(大韓佛敎華嚴宗)의 말사이다. 송정동초등학교 뒤 방계산에 세워진 사찰로서 국리민복을 기원하는 도량[道場]이다. 규모는 작지만 아담하고 짜임새가 있으며, 대한불교 전남종무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 벽진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벽진동 마산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서구 벽진동 마산마을 고갯마루 구릉 지대인 서산정공지여(瑞山鄭公之閭) 옆에 2기가 있었다....
-
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 병천사에 있는 지응현 시혜비 등 13기의 비석. 병천사비군(秉天祠碑群)은 병천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13기의 비석이다. 1918년부터 1920년 사이 전라남도 광주 관내와 담양, 장성, 곡성 등지에 건립되었던 지응현(池應鉉)의 시혜비와 제하상모자비(祭鰕商母子碑)가 있다. 지응현의 자는 형숙(亨淑), 호는 붕남(鵬南)이다. 기우만(奇宇萬)이 거병하여 항일 무장...
-
광주광역시 광산구 생용동 생용마을에 있는 복룡사 유허비. 복룡사(伏龍祠)는 범세동(范世東), 범가용(范可容), 범천배(范天培), 범기생(范起生), 범기봉(范起鳳)을 배향한 곳이다. 범세동의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伏崖), 본관은 금성(錦城)이다. 1369년(고려 공민왕 18) 과거에 합격하여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을 지냈다. 조선이 건국되자 절의를 지키고 두문동에 은거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동과 지죽동에 걸쳐 있는 산. 복룡산 지역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복룡폐현(伏龍廢縣)은 본래 백제 때 복룡현이며, 일명 배룡(盃龍)이라고도 하다가 신라 때 용산(龍山)으로 고쳐 무주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때 옛 이름으로 복구하여 나주에 예속하고, 본조에 와서도 그대로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복룡산의 명칭은 강변에 엎드려 솟은 산에 붙는 이름이다...
-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던 개항기 사우. 봉산사는 한말 유학자였던 고광선(高光善)[1855~1934]을 모신 사우였다. 고광선은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북촌에서 태어났으며, 기정진(奇正鎭)[1798~1879]과 나도규(羅燾圭)[1826~1885]로부터 유학을 배웠으며, 명성이 널리 알려져 많은 이들이 제자가 되길 원하였다. 고광선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세상과 인...
-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봉산사의 묘정비. 봉산사묘정비는 봉산사의 묘정(廟庭)에 세운 비이다. 봉산사는 현와 고광선(高光善)[1855~1934]을 모시는 사우(寺宇)이며, 봉산사묘정비에는 봉산사의 건립 취지와 고광선의 공적, 추숭(追崇) 내용이 새겨져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유물수습지. 광주광역시 봉선동 유물수습지는 치마봉[205m]의 산줄기가 서쪽으로 길게 뻗어내린 구릉의 사면에 있으며 동아여자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북구에는 모두 54점의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가 있다. 지정문화재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는 17점이다. 광주광역시 지정문화재는 26점으로 유형문화재 10점, 무형문화재 4점, 기념물 7점, 민속문화재 5점이다. 문화재자료는 5점이다. 등록문화재는 국가등록문화재 6점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에서 발견된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고고학적 유물이 있는 유적지. 유물산포지는 석기(石器)나 토기(土器), 자기(磁器), 기와 등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이 지표에 드러난 곳이다. 유물산포지는 무덤이나 집 등 사람이 만든 구조물(構造物)의 흔적인 유구(遺構)가 확인되지 않아서 유적이 땅속에 존재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지만, 지표에 유물이 있어서 땅속에 유적이 남...
-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수영경로당 옆에 있었던 당산나무에서 지냈다고 전해지는 마을 제사. 불로동 당산제는 광주광역시에서 가장 오래된 노인당인 수영경로당(壽寧敬老堂)[수녕당(壽寧堂)] 옆에 있었던 당산나무에서 지냈다고 전해지나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각종 비석. 광주광역시 관내의 비는 『광주의 문화유적』에는 신도비 9기, 유허비 18기, 효열비 45기, 기타비 44기 등 116기가 조사된 바 있고, 『광주금석문 아름다운 이야기』에는 모두 539기가 조사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에 있었던 상아마을에서 지냈다고 전해지는 마을 제사. 상아마을은 상아산마을이라고도 전해진다. 마을이 상아산(上鴉山) 구릉의 서남쪽에 있고, 마을의 형국이 '날으는 까마귀'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600년대 김해김씨(金海金氏) 김단경이 임진왜란을 피해 마을에 정착하면서 성촌되었다고 전해진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에 있었던 장터마을에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냈다고 전해지는 마을 제사. 비아동 장터마을 당산제는 장터마을에서 모신 것으로 전해지는 당산제이다. 장터마을은 이곳에 5일장이 열리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장터마을은 100여 년 전에 마을에 김해김씨(金海金氏), 광산김씨(光山金氏), 탐진최씨(耽津崔氏) 등이 들어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강당. 빙월당은 월봉서원의 강당(講堂)이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 월봉서원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전까지 불리던 이름이다. 월봉서원은 조선시대 대표 성리학자인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을 모셨다. 기대승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4개의 마음[사단(四端), 곧 측은지...
-
광주광역시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사암 박순의 문집인 『사암집(思庵集)』을 발행하기 위한 만든 목판. 사암집목판각(思庵集木版刻)은 1648년(인조 26) 사암(思庵) 박순(朴淳)[1523~1589]의 후손들이 박순의 문집인 『사암집(思庵集)』을 발행하기 위해 만든 목판이다. 1857년(철종 8) 중간하였고, 총 180장, 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눌재집목판각(訥齋集...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수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산수동 용산마을 고인돌군은 용산마을 뒤편 김준태의 밭에 있다. 고인돌군이 있는 지점은 높이 36m로 구릉 정상부에 해당하며, 이 구릉 일대에는 구석기 시대~삼국 시대에 해당되는 유물산포지가 있다. 고인돌군 동쪽으로 670m 부근에 황룡강이 흐르며, 이 일대에는 저평한 구릉지와 곡간지가 형성되어 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산수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수습지. 광주광역시 산수동 유물수습지2는 광주광역시 산수해광파크와 두암타운 사이 밭에 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산수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유물수습지. 광주광역시 산수동 유물수습지 1은 광주광역시 제2순환로 및 무등산 일주도로 사이의 야산에 있다. 장원봉에서 서쪽으로 길게 내려오는 구릉 말단부이며, 지산유원지 입구 교차로의 왼쪽 야산에 해당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수동 입석마을에 있는 선정비. 한 바위면에 구획을 하고 나주목사(羅州牧使) 2인의 비를 새긴 선정비(善政碑)와 유애비(遺愛碑)이다. 민치성(閔致成)은 1820년(순조 20) 4월 2일 나주목에 도임하여 1822년(순조 22) 7월까지 재임하였다. 이지연(李止淵)은 1830년(순조 30) 10월 1일에 도임하여 1831년(순조 31) 1월까지 재임하다가 한성판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정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산정동 지실 고분은 어등산 동쪽에 형성된 골짜기 끝자락의 저수지 내에 있다. 고분 남동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으로 249m 지점은 택지 개발이 이루어져 많은 유적이 발굴 조사되었다. 현재는 원래 지형을 확인할 수 없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정동 지실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산정동 지실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지실마을의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삼거동 삼암 고인돌군은 삼암마을 동쪽과 서쪽에 있으며, 행정구역상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 114, 143, 624-3번지에 해당한다. 고인돌이 있는 지형은 높이 30m에 해당하는 구릉 말단부로 곡간부와 인접한 곳이다. 고인돌 동쪽으로 평림천이 흐르며, 이 일대에는 저평한 구릉지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어 많은 유적이 분포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 삼암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삼거동 삼암마을 고인돌은 가·나 2개군으로 구분된다. 가군은 삼암마을 동쪽에 형성된 높이 27m의 나지막한 구릉에 있고, 나군은 삼암마을 서쪽 김종성 묘역이 있는 높이 30~40m에 해당되는 구릉 말단부에 있다. 삼암마을 고인돌 가·나군은 독립된 구릉 남쪽 말단부에 있으며, 동쪽으로 600m 지점에 평림천이 흐르고 이...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삼거동고인돌군은 평택임씨 선산의 구릉 남쪽 사면부에 있으며, 행정 구역상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 산50, 51, 51-1번지 일원에 해당한다. 고인돌이 있는 곳의 지형은 높이 70m 내외의 구릉 사면부이며, 이 일대에는 높이 80m 이상의 산지와 곡간지가 형성되어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태령동에 있는 삼상위친계의 기적비. 삼상위친계(三相爲親契)는 광주성(光州城) 북쪽 서산(西山)의 서쪽 니상산(尼上山) 아래 사는 주민들이 상부상조를 위하여 결성한 계이다. 주민들이 곗돈을 모아서 전토를 사들이고 운영하면서 매년 봄 3월에 강신(講信)[여러 사람이 모여 약법(約法)이나 계를 맺는 것]을 하고, 난정수계(蘭亭修稧) 고사(故事)를 본 떠 시회(詩會)를 개...
-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생룡마을 뒤편 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옛 성터. 생용동 성터는 후백제 시기[892~936년]에 쌓은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성곽으로 보인다. 『문화유적총람』에 따르면, "생용동 성터는 '우치산성지(牛峙山城址)'라고 불리며 1894년(고종 31) 당시 국내외 정세에 대비한 피란처로 생룡마을의 범경준, 범윤길, 범윤기 등이 축조하였다. 길이...
-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 서강사에 있는 묘정비. 서강사(瑞岡祠)는 고려시대 삼한공신(三韓功臣) 윤신달(尹莘達)을 주벽(主壁)으로 하고,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東北九城)을 개척한 영평현개국백(鈴平縣開國伯) 윤관(尹瓘), 호부상서(戶部尙書) 윤언이(尹彦頤), 남원백(南原伯) 윤위(尹威), 함안백(咸安伯) 윤돈(尹暾), 영평부원군(鈴平府院君) 윤보(尹珤) 등 6위를 배향하는 사우(祠...
-
광주광역시 서구 관내에 있는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서구 관내에 있는 문화유산은 지정문화재 11점, 등록문화재 4점 등 모두 15점이다. 국가지정문화재는 아직 없다. 광주광역시 지정문화재는 7점으로 유형문화재 4점, 무형문화재 2점, 기념물 1점이다....
-
광주광역시 서구에서 발견된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고고학적 유물이 있는 유적지. 서구의 유물산포지는 석기(石器)나 토기(土器), 자기(磁器), 기와 등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이 지표에 드러난 곳이다. 유물산포지는 무덤이나 집 등 사람이 만든 구조물(構造物)의 흔적인 유구(遺構)가 확인되지 않아서 유적이 땅속에 존재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지만, 지표에 유물이 있어서 땅속에 유...
-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분청사기 수습지. 서동 유물수습지는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 대성초등학교 교정이며, 광주향교에서 남서쪽으로 330m 떨어져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광주광역시 서봉동은 북쪽으로 어등산[290.3m], 남쪽으로 복룡산[228.3m]을 끼고 있는 황룡강 안의 충적지이다. 서봉동 유물산포지는 황새봉[151.3m]에서 내려온 구릉의 계곡부로 황룡강과 만나는 지점이며, 국도 제22호선에서 서봉마을로 들어가는 도로 왼쪽에 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정봉서· 정덕방 부자와 추성전씨의 정려비. 서산정씨(瑞山鄭氏) 정봉서(鄭鳳瑞)와 정봉서의 아내 추성전씨(秋城田氏), 정봉서의 셋째아들 정덕방(鄭德邦)의 효행과 열행을 기려 세운 정려비(旌閭碑) 이다. 정봉서의 자는 현거(賢舉), 호는 만오(晚悟)이다. 정봉서는 여섯 살 때 모친상을 당해 예를 갖추었고, 부친상 때 삼년 시묘살이를 하였다. 추성전씨는 남...
-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제단. 서석단은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 신촌마을에 있으며,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문선(文璿)과 기준(奇遵)을 모신 제단이다. 문선과 기준은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1482~1579]의 제자들로, 기준은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화를 입은 기묘명현(己卯名賢) 중의 한 명이다. 1929년에 남평문씨 문중과 행주기씨 문...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서창동 불암 고인돌군은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불암마을에서 남동쪽으로 400여m 떨어진 곡간 평지 서쪽 산 사면 과수원 안에 2기가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 있는 3기의 비석. 서창동 비석군(西倉洞碑石群)은 농선대시주비(農船大施主碑) 1기와 시혜비(施惠碑) 2기로 이루어져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 배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밤에 지냈던 마을 공동 제사. 석곡동 배촌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배촌마을의 윗당산과 아랫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당산제 다음날인 정월대보름에는 신촌마을과 함께 줄다리기를 하고 그 줄을 입석에 감아두기도 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 신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밤에 모셨던 마을 공동 제사. 석곡동 신촌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신촌마을의 할아버지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신기마을에 있는 김상기의 성묘를 보위한 공을 기려 세운 비. 김상기(金相基)는 본관이 김해(金海)이고, 호는 석서(石西)이다. 김용후(金容厚)의 아들로 전라남도 광주군 효우동면 노대[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서 세거한 집안이다. 기우만(奇宇萬), 고광선(高光善)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김상기(金相基)가 향교 장의(掌議)로 있으면서 대성전(大成殿) 성묘의...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춘설헌의 옛 이름인 석아정과 오방정의 이름을 적은 현판. 석아정(石啞亭)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최원순(崔元淳)이 지은 정자로, 최원순이 건강이 안 좋아 전라남도 광주로 와서 지낼 때 만든 건물이다. 석아정의 글씨는 일제강점기 서예가 김돈희(金敦熙)가 적었다. 이후 전라남도 광주에서 한센병 환자를 구호하고, 독립운동을...
-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동에 있던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석정동 내동마을 고인돌군은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동에서 내동과 정착촌으로 가는 도로변 대나무숲 옆에 있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동 석정마을 뒤편 밭과 구릉지에 4기가 있으며, 예전 7기의 고인돌이 있던 마을 앞에는 덮개돌만 쌓여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산동에 있는 조선시대 정려. 선거이지각(宣居怡之閣)은 선거이지려(宣居怡之閭)라고도 하며 임진왜란 중 진도군수[종6품], 전라병사[종2품], 충청병사[종2품], 충청수사[정3품]을 역임하면서 해전과 육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선거이(宣居怡)[1545~?)에게 1801년(순조 1)에 내려진 정려이다. 선거이는 1545년(인종 1) 보성군에서 출생하였으나 정려는 광...
-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선교동 교동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 교동마을 너릿재 구릉 하단부에 2기가 있었다....
-
광주광역시에서 마을 공간을 표시하기 위해 돌로 세운 인공물. 선돌은 인간이 일정 공간에 인위적으로 세운 돌로 만든 조형물이다. 많은 선돌이 마을 공간을 표시하는 기능으로서 세워져 있으며, 현재에도 세워지고 있다. 선돌은 인간이 일정 공간을 점유해서 공동체를 구성해서 살아가겠다는 표시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정 공간을 상상적으로 설정하고, 상상적 공간을 실체적 공간으로 확정하는 과정에...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암동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선암사지 삼층석탑(仙巖寺址三層石塔)은 1층 탑신과 3개 층의 옥개석(屋蓋石), 보륜(寶輪)과 보주(寶珠)만이 남아 있는 석탑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최홍진의 공을 기려 세운 공적비. 최홍진(崔鴻鎭)이 1941년 연간에 건천(乾川) 상류에 양과제(良苽堤) 저수지를 축조한 공적을 기려 세운 공적비이다. 1941년에 가뭄이 심했는데 최홍진이 앞장서서 민생을 좀먹는 사람들을 배격하고, 마을 부로의 명을 이어 당국과 교섭하여 몇 달 안에 저수지를 축조하였다....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성촌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2기의 돌벅수. 성촌마을 돌벅수 2기는 각각 할아버지 벅수와 할머니 벅수로 불린다. 원래 성촌마을 입구에서 서로 마주보고 서 있었으나 1977년 증심사 가는 마을 앞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하여 방치되었다. 1981년 민속교육자료로 활용하겠다는 학운초등학교의 요청에 의하여 학운초등학교 교내 동쪽 정원으로 옮겨졌다가 2017년 성촌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에 있는 시대 미상의 제철유적.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은 어등산 동자봉[153.6m]에서 시작하여 송정동까지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남쪽에는 소촌농공단지가 있으며 북쪽에는 무진대로가 동서 방향으로 지난다. 소촌동 제철유적은 동자봉에서 내려오는 구릉 끝자락과 완만한 계곡에 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소태동에 있던 고인돌군. 소태동 고인돌군은 구릉성 야산 사이에 형성된 고갯마루에 있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수습지. 광주광역시 소태동 유물수습지는 광주광역시 소태역 인근 빛고을종합사회복지관 옆 야산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 세동마을 인근 도덕동에 있는 원삼국시대의 주거지. 광주광역시 송산동 세동마을은 구릉을 등지고 평림천을 마주보며 형성된 마을로, 마을 남쪽으로는 국도 제22호선이 지나고 있다. 원삼국시대의 주거지 윤곽이 확인된 위치는 마을의 남서쪽 구릉으로 도덕동에 속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었던 세동마을에 있는 선돌. 송산동 세동마을 선돌은 원래 4기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마을 제각 옆에 1기만 남아 있다. 송산동 세동마을 선돌은 원래 전라도 나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이정표 구실을 하였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세동마을에 높은 벼슬을 한 금향군이 살아서 말을 타고 마을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선돌 앞에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 옛 죽산마을에 있는 2기의 선돌. 송산동 죽산마을 선돌은 마을회관 양쪽에 2기가 서 있다. 왼쪽 선돌은 암돌 또는 여자 선돌, 오른쪽 선돌은 숫돌 또는 남자 선돌이라고 불렀다. 원래 선돌은 기단 위에 서 있었다. 그런데 남자 선돌은 도로 포장을 하면서 기단이 아스팔트에 묻혀 버렸다. 여자 선돌은 본래 주차장 쪽에 있었는데, 마을회관을 지으면서 회관 왼쪽으로...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치동에 있었던 금치마을에서 지냈던 마을 제사. 송치동 금치마을 당산제는 금치마을에서 일제강점기까지 모셨다고 전해지는 마을 제사이다. 금치마을은 조선 중기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이 터를 잡고 살다가 떠난 뒤 한때 폐촌이 되었다. 그 뒤 김해김씨(金海金氏) 김선귀가 토지가 비옥하고 산세가 좋다고 하여 황산에서 분가하여 금치마을에 옮겨와 살게 되었다. 분가할 당시 황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치동 금치마을에 있는 3기의 선돌. 선돌은 비보신앙(补救信仰)[사람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연환경을 인위적으로 보완하여 실한 곳으로 바꾸려고 하는 방법]에 따라 세워진 돌을 말한다. 송치동 금치마을 선돌은 총 3기가 있다. 2기의 선돌은 마을 입구 맞은편 길가에 있으며, 나머지 1기는 마을 안쪽에 있다. 과거에 경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선돌을 눕혀 놓았...
-
광주광역시 남구 효덕동 노대마을에 있는 김경두와 밀양박씨의 효열비. 김경두(金炅斗)[1812~?]와 김경두의 아내 밀양박씨(密陽朴氏)[1811~1840]의 효열 행적비이다. 김경두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중집(中集)이다. 호적상 아버지는 김창섭(金昌燮), 생부는 통정대부 김창익(金昌益)이다. 효심으로 양부모를 봉양하였고, 병환이 들자 손가락 피를 흘려 환을 지어 먹게 할...
-
광주광역시 남구 송하동 입하마을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송하동 입하마을 고인돌은 송암일반산업단지에서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운과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 도로 우측 구릉 지대에 있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삼각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각. 수원백씨충효정려각(水原白氏忠孝旌閭閣)은 충신 백홍암(白弘嵒)과 효자 백찬수(白讚洙)[1822~1858]의 충효 정신을 기려 세웠다. 백홍암은 병자호란 때 이흥발(李興勃)과 같이 의병을 일으켜 청주까지 나아갔다. 돌아와서는 부모님을 섬기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친상을 당하여 시묘를 3년 동안 했는데 범이 늘 호위하였다 하여 호계라는...
-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에 있는 개항기 천안전씨 사우. 숭모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장등마을 입구에 있다. 천안전씨 문중의 재실로 전구생(全俱生)과 전자명(全自明) 부자를 모신 사우이다. 전구생은 광주목사를, 전자명은 상주목사를 지냈다. 천안전씨 문중에서 전구생과 전자명을 기리고자 1884년 전구생과 전자명 부자의 묘소가 있는 입구에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임병룡의 은혜를 기린 비. 승지(承旨) 임병룡(林炳龍)의 공덕을 잊지 않기 위해 세운 비이다. 임병룡은 귀래정(歸來亭) 임붕(林鵬)의 후손으로 호는 가헌(可軒)이고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음사(蔭仕)로 비서승(秘書丞)을 지냈고, 대환정(大歡亭)을 지어 유회소(儒會所)로 활용하였으며, 주민 구제활동을 하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승촌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승촌동 승촌 고분은 광주광역시 남구 승촌동 승촌마을 서쪽에 인접하여 있다. 고분이 있는 곳은 영산강변에 형성된 충적 지대로 높이 10m에 해당한다....
-
광주광역시에 건립되었거나 광주광역시로 옮겨진 부도 10기. 광주광역시에는 이 지역에서 건립된 8기의 부도(浮屠)와 이 지역으로 옮겨진 2기의 부도가 있다. 이 부도들은 동구에 6기, 북구에 2기, 광산구 2기가 분포한다. 광주광역시로 옮겨진 부도들은 전라남도 담양과 화순에 있던 것이며, 현재는 모두 북구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흑석동에 있는 조선시대 중기 문신 이신의를 모신 사우. 시정유애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흑석동에 있으며,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석탄 이신의(李愼儀)[1551~1627]를 모신 사우이다. 이신의는 임진왜란 때 향군(鄕軍) 300명과 함께 왜군을 무찔렀으며, 1596년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였다. 이후 광주목사를 역임하였으며, 광해군의 인목대비 유폐와 영창대군 죽임에 대...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에 있었던 선창마을에서 지냈다고 전해지는 마을 제사. 신가동 선창마을 당산제는 선창마을에서 정월 14일 밤에 지냈다고 전해지는 마을 제사이다. 선창마을은 조선시대 밀양손씨(密陽孫氏)가 터를 잡아 마을이 성촌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옛날 풍영천(風詠川) 물이 자주 범람하여 마을 풍경이 마치 배가 드나드는 선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광주광역시에 있는 일정 관품 이상 관리의 묘소 입구에 세우는 비석. 신도비는 왕이나 고관의 묘소 앞이나 묘소로 가는 입구에 세운 묘도문자(墓道文字)의 하나로 죽은 이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보통 묘소의 남동쪽에 남쪽을 향하여 세운다. 묘소 근처에 마을이 있으면 마을 가까운 곳에 세우기도 한다....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에 있었던 재매마을에서 마을의 액운을 막기 위해 지내던 마을 제사. 재매마을에서는 마을로 들어오는 액운을 막기 위해 매년 음력 2월 1일 마을의 정결한 곳으로 여겨지던 동·서·남 세 곳에서 깃대제라고 불리는 마을 제사를 지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신창동 매결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북서-남동 방향으로 뻗은 구릉 남쪽 사면에 있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철기시대 옹관묘[독무덤]와 토광묘[널무덤]. 신창동 옹관묘지가 발굴된 광주 신창동 유적은 영산강이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흘러가 반원형으로 곡류하는 지점에 있다. 동쪽은 넓은 충적평야 지대이고, 서쪽은 높이 50m 내외의 낮은 구릉지이다. 신창동 옹관묘지가 있는 지점은 신창제와 인접한 서쪽 구릉지 말단부이며, 높이 35m 내외에 해당한다. 주변 일대는...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류상렬을 모신 사우. 신호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 신촌마을에 있으며, 관암(寬庵) 류상렬(柳庠烈)[1880~1962]의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1967년에 건립하였다. 류상렬은 1880년 현재의 동호동 신촌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문리(文理)가 트였다. 한일병합 이후 고향에서 향리 자제들을 가르치며 학문을 닦았다. 이후 문화류씨의 시...
-
광주광역시 광산구 쌍암동에 있던 삼국시대 고분. 쌍암동 고분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쌍암동 응암마을 앞 논에 있었다. 고분 주변 지형은 영산강변에 형성된 충적 대지이며 고분이 자리한 곳은 높이 22m에 해당한다. 쌍암동 고분 자리에서 남서쪽으로 300m 떨어진 지점에 월계동장고분이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에서 확인된 조선시대의 분청사기 수습지.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일대는 영산강의 지류인 극락강과 광주천 주변에 형성된 충적지와 그 배후에 펼쳐진 높이 30~40m의 낮은 구릉이 이어지는 곳이다. 유물수습지 주위에는 주택단지와 공업단지가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압촌동 압촌마을 고인돌군은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장흥고씨 문중 산 사면, 송학산 남동쪽 고갯마루 도로변, 송학산과 제봉산 사이 고갯마루를 넘어가는 소로변 등에 군집을 이루어 분포한다....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서 확인된 조선시대의 유물수습지.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은 북쪽에는 송학산[212.3m], 동쪽에는 제봉산[163.7m], 남서쪽에는 방구산[104m], 중앙에는 압촌제가 있다. 유물수습지는 송학산의 곡간지에서 내려온 지점에 주택이 조성된 곳에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었던 향등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물이었던 선돌. 향등마을은 삼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만 트여 있다. 남쪽은 전라남도 화순군과 경계를 이루고 동쪽 산너머는 덕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덕남동]이 있었다. 양과동 향등마을 선돌은 향등마을에 있던 선돌 2기 중 현재 남아 있는 1기의 선돌이다. 당산나무 두 곳과 함께 마을의 문지기 역할을 했던...
-
광주광역시 광산구 양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양동 월암마을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양동 양산김씨 선산 구릉 하단에 2기가 분포한다. 지형상 마을 앞 농경지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이며, 주변에는 민묘(民墓)가 산재하고 소나무 등 잡목이 우거져 있다....
-
19세기에 폐사되었다가 광주광역시 광산구 두정동에 건립된 사찰. 양림사(養林寺)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두정동 457에 있다. 일명 백룡사(白龍寺)라고도 한다. 19세기에 폐사되었다가 1945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주거지 유적.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은 영산강 제5하중도와 신용동, 한새봉[146m]과 일곡동 사이에 있으며 한새봉에서 내려오는 낮은 산지의 구릉성 곡간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양산동 유적은 양지마을 앞 안산이라고 불리는 작은 동산 남쪽 말단부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조선시대 묘역. 양송천묘역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명한 문장가인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1519~1581]과 양응정 자손의 묘역이다. 1978년 9월 22일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고, 제주양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조선 전기 양심당 이시원의 유허비. 이시원(李始元)[1410~1471]의 호는 양심당(養心堂)이며 필문(畢門) 이선제(李先齊)[1389~1454]의 큰아들로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 예조참판(禮曹參判) 등을 지냈다. 아버지의 시묘살이를 마친 뒤 양심당을 지어 강학하였다. 양심당이선생유허비는 1957년 이시원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유허비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정락교의 구휼 정신을 기린 비. 양파(楊波) 정락교(鄭洛敎)[1863~1938]의 주민 구제활동을 기려 광산군 석곡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 소작인들이 세운 비이다. 정락교는 온양정씨(溫陽鄭氏)로 참봉(參奉)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석서정(石犀亭)의 옛터에 양파정(楊波亭)을 건립하여 광주부[지금의 광주광역시]에 기증하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묘화광 서씨의 의연 행적을 기린 비. 묘화광(妙華光) 서씨(徐氏)의 의연(義捐) 행적을 기려 세웠다. 서씨는 법명이 묘화광이고, 침당의 액호가 우죽당(友竹堂)이다. 본관은 이천(利川)이고 서치조(徐致祚)의 딸이다. 소학교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삼천 원(圓)을 기부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연제동에 있는 고분. 연제동 고분은 영산강 동쪽으로 형성된 넓은 평야 지대에 자리한 신촌마을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이곳 지형은 해발 33m 내외로 낮은 구릉 지대이며 주변은 택지가 조성되어 있어 원래 지형이 확인되지 않는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광산김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와 비각. 열녀숙부인광산김씨지려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정동 평지마을로 가는 도로변에 있다. 광산김씨는 정일룡(鄭日龍)의 부인으로 시부모를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피면서 효도를 다하고, 남편을 극진히 모셔 열행을 다하였다. 나주정씨 문중에서 광산김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문중마을인 지정동 평지마을...
-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에 있는 열녀 창녕조씨의 비. 창녕조씨(昌寧曺氏)의 열행(烈行)과 정절(貞節)을 기려 세웠다. 비석이 있는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은 조선시대 때 전라남도 광주군 지한면 주남리에 속한 지역이었다. 1914년 부동방면 월동리와 녹동리, 지한면 주남리를 합하여 지한면 월남리라 하였다. 1935년 효지면 월남리가 되었고, 1955년 전라남도 광주시 월남동이 되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에 있는 천안전씨의 열행을 기린 비. 1974년 열부 천안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열부학생박상승처유인김씨지려(烈婦學生朴相升妻孺人金氏之閭)는 조선 후기 박상승(朴相 升)의 부인인 광산김씨의 열행(烈行)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각이다. 광산김씨는 박상승과 결혼한 후 한 달 만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남편을 따라 죽으려고 하자 시부모가 그 뜻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친정에 보냈으나, 친정 앞 강물에 몸을 던졌다. 이에...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포충사에 있는 국왕이 내린 사제문을 새긴 현판. 「열성조사제문다록(列聖朝賜祭文茶錄)」은 사액(賜額) 사우(祠宇)인 포충사 제향 때 역대 국왕이 내린 사제문을 새긴 현판 2개이다. 포충사 유물 전시관에 보관된 사제문 현판은 1603년(선조 36), 1605년(선조 38), 1623년(인조 1), 1734년(영조 10), 1772년(영조 48)에 내린 사제문 5...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사우. 영모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으며, 조선 중기 학자이자 의병장인 송제민(宋齊民)[1549~1602]을 모신 사우이다. 송제민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천일(金千鎰), 양산룡(梁山龍), 양산숙(梁山璹)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김덕령 휘하에 들어가서 활약하였다. 왜적을 물리치는 방안을 적은 상소를 여러 번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오자치를 기려 세운 신도비. 오자치(吳自治)[1426~?]는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1467년(성종 8)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발발하자 도총사(都摠使) 이준(李浚) 휘하의 군관(軍官)으로 토벌에 참가하였다. 오자치는 난이 진압된 이후 사직을 지킨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책봉되었다. 이후 의흥위(義興衛) 호군(護軍), 평안도(平安道) 조전장(...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문. 오효열정문(五孝烈旌門)은 '서산유씨효렬정려(瑞山柳氏孝烈旌閭)'로 불리며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다. 서산유씨 일가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고자 나주목사가 조정에 추천하여 세운 정려문이다. 1615년(광해군 7)에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옥동 옥동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옥동 옥동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옥동마을의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옥동마을은 나주 함평 방면으로 가는 갈림길에 있으며, 평동평야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원래 마을 이름은 '탑동(...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옥동 옥동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옥동 옥동마을 탑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옥동마을의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옥동마을은 나주 함평 방면으로 가는 갈림길에 있으며, 평동평야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원래 마을 이름은 '탑동(塔...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옥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옥동 옥연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옥동 옥연마을 남쪽에서 동서 방향으로 진행하는 지방도 831호선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500m쯤 떨어진 지역의 동북쪽 모서리에 있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요기동 상정마을과 두산마을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산포지. 광주광역시 요기동 일대는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과 인접해 있으며, 영산강[115.5㎞]의 영향으로 나지막한 구릉이 발달해 있다. 요기동 유물산포지는 요기제 옆 상정마을 뒤편 구릉 일대부터 두산마을에 이르기까지의 구릉과 밭 일대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요기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요기동 조산 고분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요기동 조산마을에 있다. 고분이 있는 곳은 영산강의 지류인 황룡강변 일대 충적평야 지대로 높이 14m 내외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용강동 용강마을에 있는 선돌. 용강마을은 광주광역시 최북단에 있으며 영산강 주변의 평야와 접해 있는 마을로 북쪽에는 산으로 가려져 있고 앞에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용강마을이라는 이름은 굽이쳐 흐르는 강가에 마을이 조성되어 있어 용강이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또 하나는 무등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용 모양]가 이곳에 와서 물을 만난다고 하여 용강이라고 불렀다고...
-
광주광역시 북구 용강동에 있었던 원용강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해 지내던 마을 제사. 용강동 원용강마을 당산제는 광주광역시 최북단에 있었던 원용강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모셨던 제사이다. 원용강마을은 영산강 주변의 평야와 접해 있는 마을로 북쪽에는 산, 앞에는 넓은 들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현재 용강동 원용강마을 당산제는 사라진 지 오래되어, 마을 내에서 당산제를 기억하고...
-
광주광역시 북구 용강동에 있었던 입암마을에서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선돌. 입암마을에는 들판 한가운데 한 길 반 정도[약 2.6~3.2m] 되는 선바위가 있는데, 이 때문에 입암이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 입암마을에는 동쪽에 섶나무가 많은 섶바탕이 있고, 남쪽의 들은 곱은골[또는 정자골]이라고 부르며, 서쪽 비암 아래에는 한방쟁이라고 부르는 들판이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용강동 하신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지냈던 마을 공동 제사. 용강동 하신마을 당산제는 하신마을의 당산나무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냈던 제사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곡동 일대의 복룡현 관아지로 추정되는 유적 터. 용곡동 복룡현 관아지는 광주광역시 용곡동 기곡마을과 용곡마을 사이에 있는데 평동 저수지와 직선거리로 770m 떨어져 있다. 발견 당시에는 홍태희의 가옥 좌측의 논과 광산김씨 선산이 있었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곡동에 있는 시대 미상의 성터.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곡동 기곡저수지 북쪽 복룡산[228m] 정상 부근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곡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용곡동 용곡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복룡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구릉 지대에 자리잡은 용곡동 금곡마을[현재의 용곡마을]에서 연산동 화전마을로 가는 교차로 동북쪽 모퉁이에 1기가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동 관동마을 일대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산포지. 광주광역시 용동은 북서쪽으로는 복룡산[228.3m]에서 뻗어내린 높은 산지성 구릉이 있고, 동쪽으로는 죽천제가 있다. 유물산포지는 높이 168m의 구릉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의 말단부와 논과 밭에 있다. 구릉의 북쪽 능선부 말단은 민묘, 동쪽은 밭과 과수원 등으로, 서사면은 논으로 이용되...
-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신룡마을에 있는 2기의 선돌. 용두동 신룡마을 선돌 2기는 각각 할아버지 선돌, 할머니 선돌로 불린다. 하지만 할아버지 선돌과 할머니 선돌에 대한 명확한 구별은 없다. 마을 주민들은 선돌이 마을로 들어오는 질병과 액을 막아 준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용두동지석묘는 학동마을 동쪽에 있는 삼각산 서쪽 사면 말단부에 군집을 이루어 분포하며, 행정 구역상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25번지에 해당한다. 고인돌군에서 서쪽으로 1.7㎞ 떨어진 곳에 영산강이 흐르며, 이 일대에는 여러 개소의 고인돌이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용봉동 고인돌군은 광주광역시 북구 용동봉 산기슭 사면부에 있었으며, 고인돌 2기가 북동-남서 방향으로 10m 거리를 두고 배치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호동 용진산 북쪽 기슭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상.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호동 청룡사(靑龍寺) 뒤 산길을 100미터 정도 올라 왼쪽 암벽 중앙에 새겨진 마애불(磨崖佛)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남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운남동 고분은 풍영정천이 영산강에 합류되는 지점 부근에 형성된 높이 15m 내외의 충적지에 있다. 북쪽 구릉은 택지로 개발되어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남동에 있던 철기시대 옹관묘. 운남동 옹관묘는 높이 30m 내외의 나지막한 구릉지에 있으며, 서쪽으로 660m 지점에 풍영정천이 흐른다. 이 일대는 저평한 구릉지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여러 개소의 유적이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서원. 2021년 현재 운리영당 명칭은 벽진서원(碧津書院)이다. 운리영당은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임진왜란 공신인 (懷齋) 박광옥(朴光玉)[1526~1593]을 모신 사우이다. 박광옥은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기대승(奇大升)·박순(朴淳)·노사신(盧思愼) 등과 학문 교류를 나누었다. 현재의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황산대첩비를 세웠으며,...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성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6~7일경에 지냈던 마을 공동 제사. 운림동 성촌마을 당산제는 정월 6~7일경에 성촌마을의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성촌마을에 있는 성터. 운림동 성터는 무등산의 줄기인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성촌마을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수동에 있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산포지. 광주광역시 운수동 유물산포지는 광주광역시 운수동의 남서쪽에 있으며, 책상봉[108.9m]의 정상부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내린 구릉의 말단부에 있다. 운수동 유물산포지 북서쪽에는 높이 100m 정도의 여러 개의 산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국도 제22호선이 지나고 남동쪽에는 광주광역시 보문고등학교가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수습지. 광주광역시 운암동 유물수습지는 광주광역시 광주문화예술회관 옆 야산에 있으며, 주변은 주택단지가 밀집되어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원효사와 무애암 갈림길에 있는 20세기에 건립된 부도. 원담 내원 승탑(圓潭乃圓僧塔)은 탑신의 정면에 '원담화상탑(圓潭和尙塔)'이라는 탑호가 음각되어 있으며, 탑호 좌우에 '삭발본사(削髮本寺) 원효유허(元曉遺墟) 수법회운(受法會雲) 원담승훈(圓潭丞勳) 도기초(道旣超) 적즉연(蹟則然) 탑사흘(塔斯屹) 이난힐(理難詰) 숭정기원후오정묘십일월(崇禎紀元後五丁卯十一月)...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개항기 사우. 원당영각(元堂影閣)은 조선 전기 무관인 오자치(吳自治)[1426~?]의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오자치는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으로 책봉되고, 1476년(성종 7) 공신의 포상으로 초상화를 받았다. 1892년 영정을 보관하기 위하여 오자치의 나주오씨 후손과 지역 유림들이 원당영각을...
-
광주광역시 동구 금곡동 원효사 인근에 있는 10여 기의 부도·비군. 원효사와 원효사 인근에 있는 10여 기의 부도와 비는 대부분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이나, 일부 현대에 건립되기도 하였다. 원효사 부도·비군(元曉寺浮屠·碑群)은 고승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것도 있지만, 단지 해당 인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도 있으며, 원효사의 불사에 많은 공덕이 있는 재가자(在家者)를 기리기 위한...
-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월계동장고분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 장구촌마을 북편에 있다. 월계동장고분이 있는 지점은 높이 22m 내외의 구릉 말단부로서 충적지와 경계를 이룬다. 월계동장고분 일대는 저평한 구릉과 넓은 충적평야 지대이며, 북쪽으로 300m 떨어진 지점에 삼국시대 고분인 쌍암동 고분이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과 우산동 경계 지점에 있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산포지. 광주광역시 월곡 유물산포지는 전라남도 장성에서 흘러드는 풍영정천과 극락강이 합수하여 광주광역시를 관통하는 영산강 중·상류 지역에 있다. 하천변에 보논들·장산들·락생이들·고래실들 등 비교적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유물산포지는 월곡공원 동쪽의 구릉에서 확인되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월산동에서 확인된 조선시대의 분청사기 수습지. 월산동은 광주광역시 남구 북동쪽에 있으며 수박등[105m]에서 덕림산[94m]으로 이어지는 능선 양쪽에 있다. 월산동 유물수습지는 남북 방향으로 가늘고 길게 이루어진 저지성 구릉 일대에 해당하며 월산동 중앙부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밀양박씨의 효열비. 유인(孺人) 밀양박씨(密陽朴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유인 행주기씨의 효열비. 행주기씨(幸州奇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행주기씨는 기권중(奇權仲)의 딸로, 장흥고씨(長興髙氏) 고경주(高庚柱)와 혼인하여 시부모에게 극진히 효도를 하였고 남편을 섬겼다. 고광은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다. 건립 추진위원장은 박하만, 부위원장은 기세은이었다....
-
광주광역시의 오래된 건축물, 고분, 싸움터 등 옛사람의 생활 터전이 남아 있는 자취. 광주광역시 관내에는 자연유산, 선사유적, 불교유적, 도자유적, 관방유적, 유교유적, 역사유적, 민속유적, 근대유적 등이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오선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의령남씨와 광산김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의령남씨‧광산김씨 효열정려는 하성채(河聖采)의 처 효부 의령남씨(宜寧南氏)와 하달채(河達采)의 처 열녀 광산김씨(光山金氏)의 효열정려각이다. 의령남씨는 시아버지가 병환에 들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시아버지께 드리고, 다리살을 잘라 약에 타서 드렸다. 광산김씨는 남편이 역...
-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 광주공원에 있는 의병장 심남일의 순절비. 대한제국기 의병장 심남일(沈南一)[1871~1910]의 본명은 수택(守澤), 호는 덕홍(德弘), 본관은 청송(靑松), 전라남도 함평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켜 장흥, 영암. 해남, 보성, 남평, 능주, 나주 등지에서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9년 능주 풍치(風峙)[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의병장 오성술의 묘. 오성술(吳成述)[1884~1910]의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죽파(竹坡), 본명은 오인수(吳仁洙)이다. 전라남도 광산군 삼도면 송산리 죽산마을 양반 가문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한학을 익히며 한문과 유학의 기초를 닦았다. 1907년 고향마을 용진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태원(金泰元)[1870~1908] 의진(義陣)...
-
광주광역시 남구 이장동에 있는 시대 미상의 기왓가마터. 이장동 기왓가마터는 광주광역시 포충사에서 빛고을농촌테마공원 방향의 포충로를 따라 900m 정도 가면 왼쪽에 이촌마을로 가는 이장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 180m 정도 가면 이장동 경로당 앞의 밭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원래 이 지역은 야산이었으나 개간하여 밭으로 사용하고 한다....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통일 신라시대까지의 유적. 광주광역시 일곡동 유적은 4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발굴 조사되었는데 '일곡동 유적 가' 지구는 일곡마을의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낮은 구릉에 형성되어 있다. '일곡동 유적 나' 지구는 '일곡동 유적 가' 지구에서 북동쪽으로 약 400m 거리에 있으며, 마을 뒤편으로 뻗어내린 능선지대가 끝나는 지점에 해당한다....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광산노씨 재실. 일신재(日新齋)는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일곡마을에 있으며, 고려 후기 문신인 노준공(盧俊恭)[1340~1397]과 조선 중기 문신인 노희서(盧希瑞)[1558~1592]를 모신 사우인 절효사(節孝祠)와 같이 있다. 원래 자리에는 사우가 있었는데, 사우가 철폐되면서 일신재로 이름을 바꿨다. 일신은 대학(大學)에 있는 '苟日新日日新又日新(...
-
광주광역시 남구 임암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임암동 화방 고인돌군은 화방산[212.4m]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오는 구릉 지대에 3기가 있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임암동과 원산동 경계에 조성된 청동기시대 집터와 통일신라시대 석곽묘[돌덧널무덤]. 임암동.원산동선사주거지및석곽묘(林岩洞院山洞先史住居址-石槨墓)는 광주광역시 남구 임암동과 원산동 경계를 이루는 구릉지대에 형성된 청동기시대 집터와 통일신라시대 돌덧널무덤 유적이다. 1977년 발굴 결과 풍화된 화강암반을 20cm 정도 파고 들어가 축조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수동에 있었던 입석마을에 있는 1기의 선돌. 입석마을은 황룡강(黃龍江) 가장자리에 있었던 마을이다. 입석마을입석은 마을 주민의 주택 마당에 있다. 입석마을이라는 이름도 선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과 두암동을 연결하는 고개. 한자 '성(城)'은 잣·잿·작과 혼용되어 왔다. 성치와 척치(尺峙), 현(峴)은 한자화가 된 별칭이다. 『한국지명총람』13-전남편에는 “잣고개는 장안촌 동북쪽에서 청옥동으로 가는 고개로 무진도독고성(武珍都督古城)의 위쪽인데 잣나무가 많다”고 기록되어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덕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장덕동 성덕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덕동 성덕마을에 있었다. 고인돌 동쪽으로는 영산강의 지류인 풍영정천이 흐르며, 이 일대에는 저평한 구릉지가 형성되어 있어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유구가 발굴 조사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덕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장덕동 신완 고인돌은 하남일반산업단지 도로에서 지방도 813호선을 따라 장덕동 신완마을로 가면 단위농협창고가 있는 도로 오른쪽에 1기가 있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덕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장덕동 장자 고인돌군은 장덕초등학교와 장덕중학교 사이 구릉 동쪽 사면에 대나무숲으로 둘러싸여 3기가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동 수남마을 일대에 있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의 도자 가마터. 장수동 수남 도자 가마터는 광주광역시 진곡일반산업단지에서 운수나들목 방향의 장수 교차로를 지나서 장수제 저수지 위쪽 농로의 좌우편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장수동 점등 고인돌군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동 점등마을 북쪽의 구릉 말단부에 형성된 태산박씨 민묘 주변에 있다. 고인돌이 있는 지역에는 높이 60m 내외의 저평한 구릉지와 곡간지가 형성되어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초기의 전라병영. 전라병영은 1397년(태조 6)부터 1417년(태종 17)까지 20년 동안 전라도 광주목에 있었던 성으로, 이후 전라도 강진으로 이영(移營)하였다. 병영이 옮겨가면서 사용하지 않은 성으로 '고병영성'이라 불리었다. 전라병영이 있던 자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일대이며, '고내상성지(古內廂城址)'란 이름으로 성(城)과...
-
광주광역시 남구 임암동 임정마을에 있는 전부일 장군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전부일(全富一)[1924~2004]의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정길(丁吉), 호는 서봉(瑞峰)이다. 전방은(全邦殷)의 셋째아들로 임암마을 출신이다. 일제강점기에 징병으로 입대하여 중국 만주(滿洲)에서 복무 중 부친상 비보를 들었지만 올 수가 없어서 땅을 치고 하늘을 보며 곡을 하였다고 한다. 광복 뒤에는...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전상의 장군의 무덤. 전상의(全尙毅)[1575~1627] 의 본관은 천안(天安)이며, 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구동에서 전용(全蓉)의 아들로 태어났다. 1603년(선조 36)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벼슬길에 나아갔다. 1617년(광해군 9) 오윤겸과 함께 회답사로 일본에 건너가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끌려간 동포 1500여 명을 귀국시...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는 박태용의 시혜불망비와 유적비. 박태용(朴台鏞)[1869~1941]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성빈(聖彬)이다. 아버지는 박정보, 어머니는 이천서씨(利川徐氏)이다. 1893년(고종 30)에 덕행으로 온릉참봉(溫陵陵參)에 천거되었고, 1897년(고종 34)에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지냈다....
-
광주광역시에 있는 충신·효자·열녀의 행적을 표창하기 위해 세운 비. 정려비(旌閭碑)는 충효열(忠孝烈)의 정신을 실천한 인물을 표창하는 비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문. 정윤길정려는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으며, 송월당(松月堂) 정윤길(鄭潤吉)[1723~1802]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95년에 세웠다. 정윤길은 현재의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서 태어났으며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으나, 늙은 부모님을 위하여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극진한 정성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학문을 익혔다. 정윤길이...
-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는 개항기 정재요 부인 밀양박씨를 기리기 위한 사우. 정재요밀양박씨효열각은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으며, 1905년 정재요(鄭在堯)[1838~1879]의 부인 밀양박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정재요는 정윤길(鄭潤吉)의 증손으로, 시문을 잘 쓰고 명필이었다. 밀양박씨는 정재요가 병에 걸리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정재요에게 주면서 극진히...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에 있는 고려 후기 무신 정지 장군의 무덤.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분토마을에서 북서쪽으로 400m 지점에 경열사가 있으며, 정지(鄭地)[1347~1391] 장군 묘소는 경열사에서 북쪽으로 42m 지점에 조성되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포충사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고경명의 문집을 발행하기 위한 만든 목판. 제봉문집목판(霽峰文集木版)은 1617년(광해군 9)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의 막내아들인 고용후(高用厚)가 만들었으며 총 481장, 9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경명의 후손인 장흥고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포충사 정기관에 소장되어 있...
-
조선시대 광주목에 설치한 공립 교육기관인 광주향교의 연혁과 현황. 광주향교는 조선시대 광주목에 설치한 공립 교육기관이다. 1985년 2월 25일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화유산은 유교유산, 불교유산, 역사유산, 인물유산, 도자유산, 기록유산, 민속유산, 자연유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 있었던 이용헌의 묘비. 이용헌(李龍憲)[1851~1895]의 묘비이다. 이용헌은 기정진(奇正鎭)의 제자로 학문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에 있는 개항기 천안전씨 사우. 종묘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장등마을 입구에 있다. 천안전씨 문중의 재실로 전구생(全俱生)과 전자명(全自明) 부자를 모신 사우이다. 전구생은 광주목사를, 전자명은 상주목사를 지냈다. 천안전씨 문중에서 이들을 기리고자 1884년 전구생과 전자명 부자의 묘소가 있는 입구에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주월동 월산 고인돌은 산에서 내려오는 나지막한 구릉 능선 정상부에 자리한 민가 안에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에 있는 최명구의 기념비. 죽헌최명구 기념비(竹軒崔命龜紀念碑)는 전라남도 광주군 우치면 죽헌농계원(竹軒農契員) 일동이 최명구의 공적을 기려 세웠다. 우치면은 1931년까지 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지야동[건국동 관할] 일원에 있었던 면 이름이다. 1931년 4월 1일 우치면과 본촌면을 합해 지산면이라 하였다. 1935년 광주군을 광산군으로 개칭하여 광산군 지산면...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산동에 있었던 능동마을의 판석 모양 선돌. 능동마을은 원래 '밖능동'과 '안능동'의 두 뜸[한동네 안에서 몇 집씩 따로 모여 있는 구역]이었는데 이를 합쳐 능동마을로 불렀다. 조선 중기에 상산김씨(商山金氏)가 남쪽으로 이주하여 정착, 개촌(開村)하였다고 전해진다. 지산동 능동마을 선돌은 농로에 세워져 있는 판석 모양의 선돌이다....
-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에 있는 철기시대 옹관묘[독무덤]. 지산동 옹관묘는 광주광역시 동구 깃대봉[220m]에서 발원한 서쪽 구릉 사면부에 있으며, 서쪽으로 1.3㎞ 지점에는 광주천이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우. 지산재는 본래 광주 지역 경주최씨 문중에서 세운 최치원(崔致遠)[857~?]을 배향한 지산사(芝山祠)의 강당이었다. 1868년[고종 5] 영당만 남고 모두 훼철되었으나 1922년 강당이 복설되고 지산재로 이름을 바꾸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죽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지죽동 매화 고인돌군은 평동일반산업단지 북쪽 끝부분인 영천마을 입구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는 소로를 따라 가면 ‘은혜와평강교회’가 나오는데, 그 길을 따라 올라가는 곳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평동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백자편 수습지. 지평동 가삼마을은 광주광역시 평림천에서 남서쪽으로 666m 떨어진 지점에 있다. 마을의 북쪽으로는 22번 일반국도가 지나고 있고 마을 뒤편으로 야산과 가삼제가 있다. 지평교차로에서는 직선거리로 511m 떨어져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평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지평동 용강골 고인돌 가군은 서봉마을 앞 황룡강 건너편 강변을 따라 14기가 있고, 나군은 서봉마을 앞 황룡강 건너편 ‘강변정’ 식당 입구에 3기가 분포한다....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원제마을에 있던 선사시대 고인돌. 진월동 원제마을 고인돌 6기는 광주광역시 남구 효덕동에서 동구 지원동 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2㎞쯤 떨어진 우측 저수지 주변 논 가운데 있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고성운의 은혜를 기린 비와 정순환의 선행을 기린 비.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소작인들이 통정대부(通政大夫) 고성운(高聖運)[1857~1936]의 시은(施恩)에 보답하고자 세운 불망비와 효천면 주민 일동이 세운 효천면장 정순환(鄭淳煥)의 선행 행적비이다....
-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있는 조선 후기 광주목사 신익전의 선정(善政)을 기린 비. 신익전(申翊全)[1605~1660]은 1636년(인조 14)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병자호란으로 인해 청나라에 볼모로 다녀왔다. 1645년(인조 23년) 광주목사로 부임하면서 환곡(還穀)의 문란을 바로잡고, 군역을 올바르게 진행하였다. 이에 전라도 광주 지역 백성들이 신익전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선정비인...
-
광주광역시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문화 유산. 청동기시대는 덴마크의 톰센[C.J.Thomsen, 1788~1865]이 구분한 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로 구성된 삼시대 체계[three age system] 중의 한 시대로, 신대륙에서는 사용되지 않으나 구대륙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시대 개념이다. 광석에서 구리를 추출한 후 주석·아연·납 등 몇 가지 다른 금속과 배합하여 청동기를...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이조원의 행적을 기록한 비. 광산이씨(光山李氏) 청심당(淸心堂) 이조원(李調元)[1433~1510]의 행적을 기록한 유허비이다. 이조원은 필문(蓽門) 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 이선제의 학통을 이어 문장과 도학이 당대의 종사(宗師)라고 추앙을 받았다. 전라남도 강진군에 있는 수암서원과 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오현당에...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 있는 청주한씨 부인의 효열비. 청주한씨(淸州韓氏)는 29세 때 남편이 괴질에 걸리자 성심껏 간호를 하였고, 남편이 운명하려 하자 살을 베고 피를 주어 며칠을 연명하게 하였다. 남편이 운명하자 본인도 따르려 하였으나, 나이든 시부모를 모시기 위해 상례를 잘 치렀다. 시어머니가 병이 들자 극진히 간호하였고, 좌우 손가락을 베고[斷指] 피를 입으로 넣어 연명하...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진제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청주한씨 효자 2명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청주한씨쌍효비는 조선 후기 효자 한필오(韓弼五), 한필룡(韓弼龍)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2개의 비석이다. 한필오와 한필룡 형제는 본관이 청주(淸州)로 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다. 1760년 부친상을 당하자 두 형제는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어머니가 노망(老妄)이 나자 두 형...
-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청풍동 등촌 고인돌이 있는 곳은 마을 북동쪽 산에서 내려오는 구릉 말단부로 남동쪽을 제외하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 등촌마을 입구에 있는 2기의 선돌. 청풍동 등촌마을 선돌은 마을 입구에 2기가 있다. 오른쪽 선돌은 전면에 채흔(採痕)이 5군데 있으며, 기단(基壇)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4단으로 쌓았다. 왼쪽 선돌도 오른쪽 선돌과 같이 1.2m 반경으로 돌을 돌려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선돌을 올렸다. 등촌마을 사람들은 2기의 선돌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잡귀와 액운을 막아준다고...
-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에 있는 고분. 청풍동 수혈식 석실분은 무등산 잣고개를 지나 제4수원지에 이르는 계곡의 중간 지점에 있다. 고분이 있는 곳의 지형은 높이 365m인 군암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내리는 사면 말단부로 계곡부가 인접한 곳이다. 고분 일대는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남서쪽으로 통일신라~고려시대로 편년되는 무진고성지(武珍古城址)가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신기마을에 있는 김순곤의 공적을 기려 세운 비. 김순곤(金順坤)[1918~1979]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경순이다. 김용관(金容權)의 3남으로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노대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서 태어났다. 낙후된 고장의 발전을 위해 향토인이 함께 뭉쳐 일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남제지방(南堤池防)을 축조할 때 답 825평[약 272...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전상의를 배향한 사우. 충민사(忠愍祠)는 조선시대 무신인 구성(龜城) 전상의(全尙毅)[1575~1627]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우이다. 전상의는 현재의 광주광역시 서구 구동에서 태어났으며,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주성[평안남도 안주군] 전투에 참여하여...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충민사 경내에 있는 정려각. 조선 중기의 무신 전상의(全尙毅)[1575~1627]의 충절을 기려 세웠다. 전상의의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희원(希元) 또는 환중(桓仲)이다. 1603년(선조 36)에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구성부사로 좌영장을 겸하였는데 적군과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저서로 『구성공실기(龜城公實記)』가 전한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조선시대 의병장 김덕령을 배향한 사우. 충장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의병장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1567~1596]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김덕령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인 김덕홍(金德弘)[?~1593]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고경명(高敬命) 및 권율(權慄) 휘하에서 전라도와 영남 서부 지역을 방어하였다. 1594년 장문포...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우. 충현각은 광주광역시 남구 동호동 신촌마을 입구에 조신 초기 문신인 서산(西山) 유자미(柳自湄)[? ~ 1462]를 모신 사우이다. 유자미는 1451년(문종 1)에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에 있던 중 1455년(단종 3)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선양(禪讓)하자, 관직을 나와 해주와 양주에 숨어 지내며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문화...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충효동 버성골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버성골 서쪽에 형성된 구릉지 능선에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성내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에 모시는 마을 공동 제사. 충효동 성내마을 당산제는 성내마을에서 정월 열나흗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이다.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 두 곳에서 제를 지내다가, 현재는 당산할머니를 할아버지당산으로 모셔와 함께 제를 지내고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성내마을에 있는 선돌. 충효동은 무등산 북쪽 자락에 있는데,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형이 성안처럼 되어 있어 '성안' 또는 '성내' 마을로 불리다가 조선 후기 정조 때 김덕령 장군이 태어나 자란 곳이라 하여 ‘충효리’라는 마을 이름을 얻게 되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성안마을에 있는 성터.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성안마을 일대에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충효동 수리 고인돌군은 수리마을 남서쪽에 있는 충효저수지 북쪽 가장자리에 있다. 이곳은 세장(細長)한 구릉 사이 고갯마루에 해당한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조선 후기 비와 비각. 충효동정려비각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충효마을 입구에 있으며, 김덕령(金德齡)[1567~1596]과 김덕령의 부인 흥양이씨, 김덕령의 형 김덕홍(金德弘)[?~1593]과 아우 김덕보(金德普)[1571~1627]의 충효와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와 비각이다. 김덕홍은 고경명 휘하에 의병으로 참여하여 금산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칠석동 칠석마을 고인돌 가군 11기는 칠석마을 남쪽의 나지막한 구릉 사면에 있고, 나군 3기는 마을 북동쪽의 작은 구릉 지대에 있다....
-
광주광역시에서 건립되었거나 광주광역시로 옮겨진 총 14기의 불탑. 광주광역시에는 이 지역에서 건립된 11기의 불탑과 이 지역으로 옮겨진 3기의 불탑이 있다. 이 불탑들은 동구 6기, 남구 1기, 북구 4기, 광산구 3기가 있다. 옮겨진 불탑은 원래 영암, 담양, 장성에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북구에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태령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광주광역시 태령동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담양군의 경계 지점에 있으며 동서로는 고창담양고속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광주광역시 태령동은 평야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남쪽만 깃대봉[145.9m]의 가지능선에 해당한다. 태령동 유물산포지는 태령동의 북서쪽 모서리에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에 있었던 산. 태봉산은 신안동에 있었던 높이 52m의 작은 산으로, 인조의 아들 용성대군의 태를 묻었던 산이다. 태봉산을 헐어내어 경양방죽을 메우는 데 사용하였고 지금은 태봉산유래비만 남아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산동에 있는 평택임씨 삼강유허비. 평택임씨(平澤林氏) 임영수(林英秀)와 임영수의 아내, 임영수의 아들 임계(林桂)와 임계의 아내, 임영수의 손자 임광윤(林光胤), 임영수의 증손자 임은(林嶾)과 임두(林㞳) 등 4대에 걸친 충·효·열 삼강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기우만(奇宇萬)이 1915년에 비문을 지었고, 후손 임철주(林哲周)가 1941년에 비문 글씨를...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조선시대 의병장 고경명 등을 배향한 사우. 포충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高從厚)[1554~1593], 고인후(高因厚)[1561~1592] 및 금산전투에서 같이 순절한 유팽로(柳彭老)[1554~1592], 안영(安瑛)[1564~1592]을 배향하고 있다. 광...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포충사의 편액. 조선시대 사액(賜額) 사우(祠宇)인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포충사(褒忠祠)의 편액(扁額)이다. 해서체로 끝에 ‘만력삼십일년유월일선사(萬曆三十一年六月日宣賜)’라는 기록이 있어 1603년(선조 36) 6월 사액 당시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명필가였던 석봉 한호(韓濩)[1543~1605] 노년기의 필체이다. 『포충사지(褒忠祠誌)』...
-
전라도 광주에 있는 포충사 소장 자료로, 김상헌이 고경명의 충절을 추앙하여 지은 시가. 「포충사우가(褒忠祠宇歌)」는 1614년(광해군 6) 10월 그믐에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의 충절을 추앙하여 지은 글이다. 일종의 일대기 형식의 시가(詩歌)이다. 포충사는 임진왜란에서 순절한 고경명, 고종후(高從厚)[155...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포충사의 중수 기록을 새긴 현판. 포충사중수기는 1879년(고종 16) 4월에 고경명의 8세손 고시원(高時源)이 지은 글을 현판에 새긴 것이다. 고시원은 1857년(철종 8) 포충사 중건을 주간하였는데 1879년에 60여 일에 걸쳐 중수할 때도 주간하였다. 중수기문에 이어 1960년 3월에 고시원의 증손 고윤주(高允柱)가 지은 추기문이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에 있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산포지. 광주광역시 풍암동 운리마을은 풍암동과 진월동·송하동의 지리적 경계를 이루는 금당산[303.5m]이 북서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의 끝자락에 해당하며, 풍암동 운리 유물산포지는 풍암동 SK뷰아파트 남쪽 구릉사면에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풍암동 풍암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동에서 노인고개를 넘어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으로 가는 도로에서 풍암마을로 갈라지는 진입로를 따라 150m를 가면 나타나는 동쪽 구릉에 1기가 있었다....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풍암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대보름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풍암동 풍암마을 당산제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풍암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 무렵에 지내던 마을제사이다. 광주 송암동과 접계를 이룬 마을로 풍암(楓岩) 또는 신암(新岩)이란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는 마을 뒷산인 금당산의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에 있는 3기의 선돌. 풍암마을에는 당산나무 주변에 적석으로 간신히 지탱되어 있는 3기의 선돌이 있었다. 그런데 풍암마을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발굴·조사되어 풍암지구 제2근린공원[풍암동 당산어린이공원]으로 이전 복원되었다. 풍암동 풍암마을 선돌은 원래 12기였으나 마을이 도시화하면서 차츰 줄어들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 있는 박노술의 광복을 염원하는 글을 새긴 석대. 풍천대(風泉臺)는 박노술(朴魯述)[1851~1917]의 항일 의적(義蹟)을 기념하는 삼층 석대(石臺)이다. 박노술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서 태어났다. 기정진(奇正鎭) 문하에서 학업을 닦았다. 항일의식 각성을 촉구하였고, 1917년 6월 광주경찰서에 끌려갔다가 사흘 만에 의식을...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만산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이선제의 신도비. 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가보(家父), 호는 필문(蓽門)이다. 1419년(세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고, 『태종실록(太宗實錄)』편찬과 『고려사(高麗史)』의 개찬에 참여하였던 집현전 학사로서 호조참판(戶曹參判), 예문관(藝文館) 제학(提學) 등을 지냈다. 145...
-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산동에 있는 고분. 하산동 고분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동곡동 간 도로변 우측에 히메기고개라 부르는 구릉에 있다. 고분은 높이 34m의 구릉 정상부에 있고, 주변은 곡간지(谷間地)가 형성되어 있어 고분이 있는 지점은 우뚝 솟은 형상이다. 고분 일대에는 서산유씨 민묘(民墓)가 들어서 있고, 잡목과 노송이 우거져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함풍이씨의 효열 정려각. 정호직(鄭浩直)의 처 함풍이씨(咸豊李氏)의 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하동정씨 문중에서 세웠다. 함평이씨는 어버이를 섬기는 데 노력을 다하였고 남편을 잘 위하여 죽은 뒤 조정으로부터 정려를 세우라는 특명이 있었다. 1830년 10월에 정민영(鄭旻濚)이 기록한 '제효열질부이씨정려병서(題孝烈侄婦李氏旌閭幷序)'에 나온다....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송제민의 비. 송제민(宋濟民)의 공적을 기려 세운 비석이다. 송제민의 자는 이인(以仁), 본관은 홍주(洪州)이다. 송정황(宋庭篁)의 아들이며 정개청(鄭介淸), 이지함(李之菡)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양산룡(梁山龍)·양산숙(梁山璹)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김천일(金千鎰) 의병장 막하에서 활동하였고, 김덕령(金德齡)의...
-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탐진최씨 재실. 현승재는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에 있으며 탐진최씨 문중의 재실이다. 선교동은 탐진최씨 집성촌이었으며, 문중에서 탐진최씨의 선조를 기리고자 1937년에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동구 호남동 천주교 광주대교구 호남동성당 입구에 있는 연꽃 문양 석재와 장대석. 호남동성당 입구 왼쪽에 있는 야외 등나무 휴게실과 돌담 사이에 있는 불상 대좌와 석재들이다....
-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우. 화담사는 고려 멸망 후 조선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킨 두문동 72현 중 한 명인 묵은(黙隱) 정희(鄭熙)[1350~?]와 정희의 아들 열지(悅之) 정초(鄭招)[?~1434], 정초의 아들로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참여하고 이후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공신(佐翼功臣)에 오른 경부(敬夫) 정수충(鄭守忠)...
-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지씨문중 재실. 화망재는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 화산마을 입구에 있으며 지씨문중의 재실이다. 광주광역시 화산마을은 지씨문중의 집성촌으로, 지씨문중에서 본인들의 선조를 기리기 위하여 화산마을 입구에 1937년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임암동과 서구 풍암동에 걸쳐 있는 산. 화방산은 높이 214.8m의 산으로, 산모양이 꽃봉오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꽃뫼봉'이라고 하였다. 화방산 서쪽은 선사 유물들이 산포하고 있는 오래된 주거지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었던 정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모셨던 마을 제사. 화암동 정촌마을 당산제는 정촌마을에서 8.15광복 이전까지 매년 정월대보름에 지냈다. 정촌마을 당산은 신목(神木)만 남아 있다. 화암동 정촌마을 당산제는 1999년 광주광역시 북구청에서 발간한 『광주북구지리지』에 기록이 남아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 가마터. 화암동 화암 도자 가마터는 제4수원지에서 충민사로 가는 길에 송제민 유허비가 있는데 이 유허비 뒤편의 언덕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김우생과 김문기를 모신 사우. 화엄사(花嚴詞)는 조선 초기 문신인 김우생(金佑生)[1372~1457]과 김문기(金文起)[1399~1456]를 배향한 사우이다. 김우생은 조선 태종 이방원을 도와 1400년[정종 2] 박포(朴苞)의 난[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였다. 이후 1456년[세조 2]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었고, 1457년[세조 3] 단종이 죽...
-
광주광역시 남구 화장동 농막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밤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화장동 농막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농막마을의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
광주광역시 벽진서원에 있는 회재 박광옥의 문집인 『회재유집(懷齋遺集)』을 발행하기 위해 만든 조선 후기의 목판. 회재유집목판(懷齋遺集木板)은 박광옥(朴光玉)[1526~1593]의 문집인 『회재유집』을 발행하기 위해 1799년(정조 23) 박광옥의 후손인 박성일(朴性一)이 목판본을 만들었고, 이후 1847년(헌종 13) 부록이 추가되었다.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벽진서원에 있으며,...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정석남의 실적비. 정석남(石南實)의 효행 행적을 기리려 세웠다. 정석남은 동래정씨(東萊鄭氏) 정운선(鄭云先)의 딸이며, 어머니는 추계추씨(楸溪秋氏)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었고 정석남의 아들인 정재장(鄭載長)도 일찍 죽었다. 한결같은 효심으로 시부모를 섬기는 데 마치 남편을 섬긴 것같이 하였다. 시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10리[약 4㎞] 밖 옥녀봉 동쪽...
-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에 있었던 신촌마을에서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선돌. 신촌마을은 종방마을 동쪽에 새롭게 형성된 마을이기 때문에 신촌(新村)이라고 하였다. 신촌마을에는 마을 길옆에 선돌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金德齡)[1568~1596] 장군의 누이가 큰 돌덩이를 치마폭에 싸가지고 가다가 신촌마을에 1기, 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에 있었던 우곡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지냈던 마을 제사. 우곡마을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제물을 차려 놓고 굿을 하며 당산제를 모셨다고 전한다. 우곡마을은 죽지봉 북쪽 끝단부터 영산강 주변에 이르는 조그마한 마을로 마을 사람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우곡마을의 당산은 오래전에 사라져 그 유래나 연혁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는 고성이씨의 기행비. 고성이씨(固城李氏)의 효행을 기려 세운 기행비(紀行碑)이다. 김해김씨(金海金氏) 김호송(金鎬松)에게 시집을 와서 시어머니 해주최씨(海州崔氏)와 시할머니 밀양박씨(密陽朴氏)를 20여년 간 봉양하고, 시어머니 간병을 4년 동안 하는 등 효행을 실천한 사실을 국한문 혼용체로 기록하였다. 위계도가 비문을 짓고 비문 글씨는 강인환이 썼다....
-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에 있는 효열부 남평문씨의 비. 홍한주(洪翰周)의 아내 남평문씨(南平文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려 세웠다. 홍한주의 호는 해옹(海翁)이다. 조선 후기 문신으로 현감과 군수를 지냈으며, 문집으로 『해옹시문집(海翁詩文集)』이 전한다....
-
광주광역시 남구 이장동 복수마을에 있는 문화유씨 행적비. 문화유씨(文化柳氏)는 고재열(高在烈)에게 16살에 시집을 왔는데 반 년도 못 되어 사별하였다. 이후 문화유씨는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시부모가 세상을 뜨자 생존하였을 때와 똑같이 섬기며 예를 갖추고 조카를 승중손(承重孫)으로 세웠다. 문화유씨의 효열 실천을 기리기 위해 김준식(金駿植)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김정회(金正...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영광김씨 효열을 기리는 비와 정려각. 효열부증숙인영광김씨려는 박세방(朴世芳)의 부인인 영광김씨의 효열을 기리는 비와 정려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백길마을 입구에 있다. 영광김씨는 남편인 박세방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리자, 낮에는 약을 구하는 데 정성을 다하고, 밤에는 자신이 남편 대신 병에 걸리게 기원하면서 남편을 보살피고, 남...
-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덕동에 있는 진주강씨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진주강씨(晋州姜氏)는 강이회(姜以會)의 딸로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반두명(潘斗明)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를 잘 봉양하였고, 반두명이 세상을 먼저 떠나자 예를 갖춰 장례를 치렀다. 낮에는 땔감을 하고 밤에는 길쌈을 하여 어려운 시가를 일으키고 시부모를 공경하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풍산홍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려 세운 행적비. 풍산홍씨(豐山洪氏)는 1922년 22세 때 남편이 괴질에 걸리자 대변을 맛보아 차도를 징험했다. 단을 만들어 새벽마다 정화수를 올리고 축원을 하였으나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예절에 맞게 장례를 치렀다. 시조부모 초상 때에는 몸이 수척하도록 서러워하며 옛 제도를 따랐다. 시어머니 초상을 치르고 나자 전답이 없어...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정엄의 정려비와 정려각. 문신 정엄(鄭淹)[1528~1580]의 효자 정려비와 정려각이다. 정엄은 본관이 광주(光州)로 정만종의 아들이다.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574년(선조 7)에 어머니 봉양을 위하여 나주목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면서 어머니의 병을 정성껏 돌보았으나 돌아가시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장례를 치른...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효자 김기삼을 기려 세운 비. 김기삼(金基三)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운 기적비(紀蹟碑)이다. 비각 안에 있으며 비각 상량문의 글은 오동수(吳東洙)가 지었다. 김기삼은 어른들의 상을 당하여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이때 동물들이 호위를 해 주었고 시묘 지역에는 풀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정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각. 효자정계흥지려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평동 봉정마을 입구에 있다. 1875년 나주정씨 문중에서 정계흥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정계흥은 1780년(정조 4) 광주광역시 봉정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아버지가 병환에 들자 한겨울에 강의 얼음을 깨서 잉어를 잡아 봉양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아버지께...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김선진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김선진(金善鎭)[1916~1949]은 노조모와 편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여 향리의 효자로 널리 알려졌다. 김선진은 고광선(高光善)에게 배웠으며 김문발(金文發)이 세운 부용정(芙蓉亭)이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된 것을 단독으로 환원시켰다. 해마다 7월 백중이 되면 쌀 두어 섬으로 마을 안의 궁핍한 사람들을 구휼하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에 있는 윤광훈과 윤광훈의 아내 나주임씨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윤광훈(尹光訓)과 윤광훈의 아내 나주임씨(羅州林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는 실적비(實蹟碑)이다. 윤광훈은 어려서부터 효도하고 근면하였기에 가정이 비록 가난하였지만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봉양하고 잠자리를 편안하게 하는 등 효를 다하였다고 한다. 이때 윤광훈의 아내 나주임씨의 내조가 지극하여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