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
상고 시대부터 개화기 이전까지 전라도 광주 지역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문학 작품.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진 예술이다. 언어에는 말로 이루어진 음성언어와 글자로 이루어진 문자언어가 있는데, 이에 따라 문학에는 말로 전하여 오는 구비문학과 문자로 전승되는 기록문학이 있다....
-
김흥광을 시조로 하는 광주광역시의 세거 성씨. 광산김씨는 조선시대 문과급제자를 269명이나 내 조선조 5대 명문에 속한 집안이다. 사계 김장생(金長生)[1548~1631]과 아들인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1574~1656]이 문묘에 배향되어 명문으로 꼽힌다. 14세 양간공 김연(金璉) 집안을 경상북도 예안파라고도 하며, 그 후손이 김장생으로 13세손이다. 양간공 예안파에서만...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수령 약 430년의 왕버들 세 그루.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마을 어귀에 있는 세 그루의 왕버들로 수령은 430년 정도로 추정되며 2012년 10월 5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와 그 일원. 광주광역시 광주 환벽당(環碧堂) 일원은 자연 풍광이 수려한 지역으로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이 자주 드나드는 명승지였다. '푸르름이 고리를 두른다.'는 환벽의 의미처럼 무등산[1.186.8m] 원효계곡에서 시작된 물이 증암천(甑巖川)으로 흘러들고, 무등산을 비롯한 여러 산세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증암천 주변은 배롱...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광주동초등학교[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로 527]의 분교. 광주동초등학교 충효분교장 교훈은 ‘바른 심성, 알찬 학력, 굳센 의지’이다....
-
광주광역시 지역에 있는 누정과 누정을 대상으로 제작된 문학작품. 누정은 누각을 의미하는 '누(樓)'와 정자를 의미하는 '정(亭)'을 합친 용어로, 주거 공간과 구분되는 별개의 건축물이다. 누정은 조선 중기 이전까지는 왕실이나 관(官)에서 운영한 공적 누정이 대부분이었으나. 16세기 이후부터 개인이 경영하는 사설(私設) 누정이 크게 증가하였다. 사설 누정이 증가하면서 출입하는 문인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과 전남 담양군 고서면, 가사문학면에 걸쳐 자리잡고 있는 인공 호수. 광주호는 영산강 유역 종합개발계획 제1차 사업으로 완공된 4개 댐 가운데 하나인 광주댐에 의해 생긴 호수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생태공원. 광주호 호수생태원의 가장 큰 가치는 바로 자연친화형 생태자원을 살린 수변공원이라는 점이다. 호수 주변에 자라난 식물자원들을 활용하여 산책코스를 조성함으로써 경관 훼손을 최소화했으며,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 속 수변경관을 체험할 수 있다....
-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의병장. 김덕령(金德齡)[1567~1596]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수(景樹),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후(金珝), 할아버지는 김극효(金克孝)이다. 아버지는 습독(習讀) 김붕변(金鵬變), 어머니는 직장(直長) 반계종(潘繼宗)의 딸 남평반씨(南平潘氏)이다. 형은 김덕홍(金德弘)이며, 동생은 김덕보(金德普)이다. 부인은 첨정(僉正...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 오누이의 힘겨루기 이야기. 김덕령(金德齡)[1567~1596]은 남다른 용력(勇力)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용력으로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였다. 김덕령의 누이는 김덕령의 자만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옷 짓기와 성 쌓기 시합을 했는데, 일부러 져주면서 동생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는 이야기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 오누이의 힘겨루기 이야기. 김덕령(金德齡)[1567~1596]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씨름판을 돌아다녔다. 김덕령의 누이는 동생의 이러한 행동이 걱정스러워 남장(男裝)을 하고 씨름판에 나섰고, 김덕령을 이겼다. 김덕령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다시는 씨름판에 나서지 않았으며, 학문과 무술을 익히는 데 전념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과 관련한 용마 이야기. 김덕령은 무등산의 문(門)바위에서 용력을 기르고 술법을 익혔다. 김덕령은 문바위에서 활을 쏜 뒤에 용마(龍馬)를 타고 달려가기를 반복했는데, 이는 용마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다. 김덕령은 섣부른 판단으로 용마를 죽이고 말았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이 임진왜란을 대비해서 무기를 만들고 군사를 훈련시켰다는 장소와 관련한 지명에 관한 이야기. 김덕령(金德齡)[1567~1596]이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무등산 원효계곡 상류의 주검동(鑄劍洞)에 대장간을 세우고 칼과 창을 만들어서 군사들을 훈련시켰다는 이야기이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이 담력과 무술을 연마한 장소와 관련한 지명 이야기. 김덕령(金德齡)[1567~1596]이 어렸을 때부터 담력을 기르고 무술을 연마한 장소라고 전해 내려오는 데서 유래한 지명 관련 이야기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 김덕령(金德齡)[1567~1596]은 광주광역시 충효동에 태어난 조선시대 인물이다. 호랑이가 밭에서 일하고 있는 김덕령 어머니를 잡아먹고 사람으로 환생하려다가 신의 방해로 실패한 이야기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의 용력에 관한 이야기. 김덕령(金德齡)[1567~1596]은 광주광역시 충효동에서 태어난 조선시대 실존인물로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김덕령이 열다섯 살 때에 글공부를 위해서 서봉사에 갔다가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오는 김덕령의 비범성과 관련된 이야기. 어린 김덕령(金德齡)[1568~1596]이 논에 물을 대는 외갓집 식구들과 물싸움이 벌어진 이웃집 사람들을 징치[징계하여 다스림]하면서 비범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오는 김덕령 관련 이야기. 김덕령(金德齡)[1567~1596]과 함께 글공부를 하는 친구가 모친상(母親喪)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냇가의 물이 불어서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덕령이 지혜를 발휘하여 친구가 냇가를 건널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이야기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의 태몽과 관련된 이야기. 김덕령(金德齡)[1567~1596]은 전라도 광주 충효동에 태어난 조선 시대 실존 인물이다. 김덕령의 어머니가 호랑이꿈을 꾸고 김덕령을 낳았다는 이야기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의 비범한 능력을 보여 주는 이야기. 김덕령(金德齡)[1567~1596]이 여덟 살 때에 환벽당(環碧堂) 처마에 올라가 새둥지를 나무 위로 옮겨 주었고, 이를 지켜본 할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글공부에 전념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김덕령 장군의 회곽묘. 김덕령(金德齡)[1567~1596] 장군의 회곽묘는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배재마을 뒷산에 있었으며, 1974년 11월 19일 충장사(忠壯祠) 북쪽 구릉 지대로 이장되었다....
-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활동한 전라도 광주 출신 의병장. 김덕보(金德普)[1571~1627]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룡(子龍), 호는 풍암(楓巖)이다. 아버지는 김붕섭(金鵬燮)이며, 어머니는 남평박씨(南平朴氏)로 직장 박계종(朴繼宗)의 딸이다.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1567~1596]의 동생이다....
-
근대 개항기·일제강점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 김만식(金晩植)[1845~1922]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성(司晟), 호는 난실(蘭室)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김득호(金得嗚), 증조할아버지는 김치의(金致儀), 할아버지는 김기현(金琦鉉)이다. 아버지는 김홍태(金洪泰)이고, 어머니는 전학중(全學中)의 딸 천안전씨(天安全氏)이다. 부인은 고은진(高殷鎭)의 딸 장택고씨(長澤高氏)이...
-
조선 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홍문관교리, 나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윤제(金允悌)[1501~1572]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공로(恭老), 호는 사촌(沙村)이다. 할아버지는 진사 김자침(金自沈), 아버지는 정랑과 현감을 역임한 김후(金珝)이고,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여산김씨(礪山金氏)이다....
-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무신. 김전(金壂)[?~?]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승(子昇)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감(金瑊), 할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김홍익(金弘翼)이다. 아버지는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 어머니는 유사(柳泗)[1423~1471]의 딸 서산유씨(瑞山柳氏)이다. 부인은 부호군(副護軍) 안담수(安聃壽)의 딸 창평안씨(昌平安氏)이다....
-
조선 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예조정랑, 평안도사, 은율현감 등을 지낸 문신. 김치광(金致光)[1732~?]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국빈(國賓), 호는 충효당(忠孝堂)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인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의 먼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수신(金守信), 할아버지는 김영복(金榮復), 아버지는 김도명(金道鳴)이다....
-
조선 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승문원정자, 별검, 사변가주서 등을 역임한 문신. 김치덕(金致德)[1764~?]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김수신(金守信), 할아버지는 김영진(金榮晉), 아버지는 김택명(金擇鳴)이다....
-
전라도 광주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김만식의 유고 문집. 김만식(金晩植)[1845~1922]의 자는 사성(司晟), 호는 난실(蘭室),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충무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1567~1596]의 후손으로 광주광역시 충효동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후학을 지도하며 평생을 살았다. 1890년(고종 27)에는 친족들과 함께 김덕령의 넋을 위로하고 기리기 위하여 광주광역시...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금곡동 일대에서 확인된 가마터. 광주 충효동 요지는 1963년 발굴된 가마터이다. 우리나라 분청사기의 변화·쇠퇴 과정뿐 아니라 분청사기에서 백자로의 이행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터이다....
-
광주광역시에서 땅에 일정한 범위를 정해 놓고 상대방의 땅을 빼앗아 자기 땅을 늘려 가는 놀이. 땅재먹기는 땅에 원이나 네모를 그려 놓고 자기의 땅을 넓혀 가면서 상대방의 땅을 빼앗아 많이 차지한 사람이 이기는 어린이들의 놀이이다. 일부 마을에서는 ‘땅뺏기’라고 하는데, 각자가 땅을 확보한 후에 상대방의 땅을 따먹은 행위가 연속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땅따먹기’, ‘땅뺏기’, ‘땅따...
-
광주광역시 북구 구화인 부처꽃과의 낙엽활엽 소교목. 백일홍은 광주광역시 북구민의 끈기와 저력을 상징하는 꽃으로 인식되어 북구의 구화로 지정되었다. 진한 분홍색의 꽃과 매끈한 수피는 아름다운 수형을 만들어 내므로 광주광역시의 북구청 및 관공서 등에도 조경수로 식재되어 있다....
-
광주광역시에서 장례를 치를 때 직계 가족이나 친척이 입는 예복. 상복(喪服)은 전통적으로 상례 절차를 중요시하였던 우리나라에서 상을 당한 가족과 친지들이 착용하는 의복이다. 상복을 착용함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죽은 사람을 예로써 보내기 위한 표현 방법이다....
-
전라도 광주 지역 무등산 주변에 있는 환벽당과 식영정, 서하당 등에서 여름날 더위를 씻던 선비들의 모습을 담은 목판 그림. 「성산계류탁열도(星山溪流濯熱圖)」는 김성원(金成遠)[1525~1597]의 문집인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에 실려있는 목판화이다. 그림을 통해 환벽당(環碧堂), 식영정(息影亭), 서하당(棲霞堂)에서 모임을 하며 여름 더위를 피하는 조선 전기 선비들의 생활 모습...
-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태어난 문인 김성원의 문집 『서하당유고』에 수록된 그림. 「성산계류탁열도(星山溪流濯熱圖)」는 1590년(선조 23) 6월 복일(伏日)[초복, 중복, 말복이 되는 날]에 전라도 광주 근교인 전라남도 창평(昌平)의 식영정(息影亭)에서 김성원(金成遠)과 교유하던 호남 문인들이 가진 탁열(濯熱)[열을 식힌다는 의미] 행사를 그린 그림이다. 김성원의 시문집인 『서하당유...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 광주광역시 충효동의 충장사가 자리 잡은 고개를 배재 혹은 이치라고 불렀는데, 이 자리에 김덕령 집안의 묘가 13기가 있다. 이 자리가 장군묘의 명당자리여서 김덕령과 같은 명장이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
광주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충효동(忠孝洞)의 명칭은 조선시대 정조가 선조 때 충신인 김덕령 장군이 생장한 곳이라 하여 충효리(忠孝里)라 사명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금산과 금산성에 관한 이야기.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의 앞산인 금산과 금산성의 유래에 관한 전설이다. 금은보화가 가득해서 금산이 되었다는 지명 유래와 금산성을 축조하게 된 이유 그리고 금곡의 바위에 관한 이야기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충효동 버성골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버성골 서쪽에 형성된 구릉지 능선에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조산. 충효동 성안 고분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광주호 호수생태원 입구 왼편에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충효동 수리 고인돌군은 수리마을 남서쪽에 있는 충효저수지 북쪽 가장자리에 있다. 이곳은 세장(細長)한 구릉 사이 고갯마루에 해당한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용소와 송강 정철에 관한 이야기.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1501~1572]가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줘서, 정철이 관료로 승승장구했다는 이야기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충효마을에 있는 광산김씨 세거지. 충효동(忠孝洞)에 정착한 인물은 광산김씨 낭장공파 김규(金珪) 14세의 후손 김문손(金文孫) 27세이다. 김문손은 오늘날의 서구 벽진동에서 살던 김자침(金自沈)의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나 당시 석보면 성촌에 살던 노맹준의 딸에게 장가가서 처가살이를 하게 되어, 그 후손들의 정착지가 되었다. 김문손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김유장,...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오는 금다리에 관한 이야기.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의 동림마을과 담양군 남면의 지실마을 사이를 연결하는 금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23m 정도의 시멘트로 만든 다리이고, 그 밑에는 금다리보라고 하는 조그만 보가 있다. 이 금다리와 금다리보의 이름에 관한 유래담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조선 후기 비와 비각. 충효동정려비각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충효마을 입구에 있으며, 김덕령(金德齡)[1567~1596]과 김덕령의 부인 흥양이씨, 김덕령의 형 김덕홍(金德弘)[?~1593]과 아우 김덕보(金德普)[1571~1627]의 충효와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와 비각이다. 김덕홍은 고경명 휘하에 의병으로 참여하여 금산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취가정(醉歌亭)은 1890년(고종 27)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의 후손 김만식(金晩植)과 친족들이 김덕령의 혼을 위로하고 충정을 기리기 위해 김덕령의 성장지에 지은 재실(齋室) 성격의 정자이다. 취가정의 이름은 정철(鄭澈)의 제자였던 권필(權韠)이 자신의 꿈에서 억울하게 죽은 김덕령 장군이 술에 취해 나타나 서로 시...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김덕령이 신이한 능력으로 할아버지의 원수를 죽인다는 복수담. 김덕령(金德齡)[1567~1596]의 할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었는데, 김덕령의 아버지는 김덕령 할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서 김덕령을 낳았다. 불행한 가정사를 알게 된 김덕령이 유명한 대장장이에게 신검(神劍)을 받아서 신출귀몰한 능력으로 할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