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축조되었다가 1910년대 일제에 의해 파괴된 광주광역시의 읍성. 광주성은 조선 초기에 동헌과 객사 등 관아가 있었던 읍성이다....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남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남쪽은 '진남문(鎭南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진남문의 '진남(鎭南)'은 "남쪽을 누른다"는 뜻인데, 여기서 남쪽은 일본을 가리킨다. 조선시대에는 광주처럼 남문을 진남문이라고 부르는 곳이 많았다. 1896년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광주...
광주 지역에 건립된 조선시대의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가 되었던 광주읍성 옛터. 1979년에 간행된 『광주시사』에 의하면, 광주읍성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이 있었던 1909년부터 1918년 사이에 헐고 도로를 개설하여 신시가지를 조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기에 축성된 광주의 읍성과 그 사대문.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동과 서남동 일부에 걸쳐 있던 광주읍성으로 고려 시대 말기에 축성하여 일제 강점기 초에 철거되었으며 사대문과 관아 시설을 갖춘 전라남도 행정의 중심지였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광주광역시의 역사.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식민지 통치 지배를 받았던 일제강점기 당시 전라남도 광주 지역은 여러 차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다양한 변천을 겪었으며,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3.1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1392년부터 1910년 일본에 의하여 국권을 강탈당할 때까지의 전라도 광주 지역의 역사. ‘광주’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 처음 사용된 이후 해양·익주·화평·무진으로 불리었으며, 목(牧)·부(府)·주(州)·현(縣) 등 등급의 변화가 빈번하였다. 1373년(공민왕 22) 광주목이 되면서 목사가 파견되는 큰 고을이 되었는데, ‘광주목’은 조선 초에도 그대로 유지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