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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098
한자 金有聲
영어공식명칭 Kim Yuse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노기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5년 12월 27일연표보기 - 김유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0년 - 김유성 광주노동공제회 집행위원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2년 3월 26일 - 김유성 광주지회 소작상조회 창립총회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3년 - 김유성 광주소작인연합회 집행위원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김유성 『시대일보』 광주지국 경영, 남선노농동맹 집행위원으로 선출,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집행위원 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6년 - 김유성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6년 - 김유성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 광주 야체이카 책임자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6년 7월 25일 - 김유성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
활동 시기/일시 1928년 2월 - 김유성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50년 11월 23일연표보기 - 김유성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5년연표보기 - 김유성 건국포장 추서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부 광주읍 금계리 55|
성격 독립유공자
성별
대표 경력 광주노동공제회 집행위원|광주소작인연합회 집행위원|조선노농총동맹 중앙집행위원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김유성(金有聲)[1895~1950]은 전라남도 광주부 광주읍 금계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광주노동공제회(光州勞動共濟會) 집행위원, 1923년 광주소작인연합회(光州小作人聯合會) 집행위원, 1924년 남선노농동맹(南鮮勞農同盟) 집행위원,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 중앙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5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광주 야체이카(yacheika)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1928년 2월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활동 사항]

1920년 4월 11일 경성에서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는데, 조선에서는 처음 결성된 전국적인 노동운동 단체였다. 김유성은 1920년 5월 27일 대구노동공제회(大邱勞動共濟會) 발기를 시작으로 광주노동공제회가 조직되자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조선노동공제회 전국 회원은 1만 5000명에 이르렀다.

조선노동공제회는 노동자 보호에서 농민의 소작인조합 결성에도 앞장섰다. 1923년에는 전국적으로 소작쟁의가 일어났고, 민족 문제로까지 부상하였다. 일제 식민 통치에서 농민운동은 항일투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김유성은 1922년 3월 26일 광주지회 소작상조회(小作相助會) 창립총회에 참여하였으며, 1923년 광주소작인연합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 김유성은 『시대일보』 광주지국을 경영하였다. 1924년 3월 9일부터 남선노농동맹 창립대회가 개최되어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4년 4월 18일 경성에서 조선노농총동맹이 노농운동(勞農運動)의 중앙 단체로 조직되었다. 김유성은 조선노농총동맹 발기회에 참여하고, 중앙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일제가 3.1운동 후 문화 정치로 회유하자, 일부 사회주의 민족운동가들은 급진적인 방법으로 대응하였다. 1924년 4월 김재봉(金在鳳)은 조선노농총동맹과 조선청년총동맹을 각각 결성하였다. 국제공산당의 결의에 따라 1925년 4월 17일 경성에서 조선공산당을 추진하였다. 1924년 5월 김유성은 최안섭(崔安燮), 조준기(曺俊基) 등과 함께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전라남도 광주 야체이카에 소속되었다. 1924년 11월 신의주 사건이 발단이 되어 조선공산당 조직에 대한 제1차 검거 사건이 터졌고, 제1차 조선공산당은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1924년 12월 경성에서 제2차 조선공산당이 재조직되었다. 당 책임비서에는 강달영(姜達永)이 선출되었다.

1926년 김유성은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상무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926년 3월경 전라남도 지역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26년 3월 말 경성에서 개최된 조선노농총동맹 집행위원회에서 전라남도 광주, 순천, 광양 3개소에 야체이카를 조직하였다. 김유성은 광주 야체이카의 책임자가 되었다.

1926년 7월 25일 김유성은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경성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었으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1928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50년 11월 2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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