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인한(金仁漢)[1899~?]은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일명 김거봉(金巨奉)이라고도 불렸다. 3·1운동이 확산될 당시인 1919년 3월 28일 밤, 노온사리(老温寺里) 경찰주재소에 강제 구금된 이정석(李貞石)을 구출하는 사건과 관련하여 일제에 시위하다가 체포되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성기석(成基錫)[1920~1990]은 본관이 창녕(昌寧)으로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이면서 군수를 지낸 성종영(成鍾永)의 5세손이다. 성기석은 1940년 조선방송국(朝鮮放送局)에 기술직으로 근무할 때 단파수신기(短波受信機)를 제작하여 해외 방송을 청취하면서 아버지를 통하여 이인(李仁)과 조병옥(趙炳玉) 등에게 상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지호(柳志浩)[1892~1977]는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같은 마을에 사는 이정석(李貞石) 등이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노온사리(老溫寺里) 경찰 주재소에 강제 연행되자 3월 28일 최호천(崔浩天)·김인한(金仁漢)·최정성(崔正成) 등과 같이 이정석을 구출하고자 군중 500여 명과 함께 노온사리...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의병(尹宜炳)[1900~1960]은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3·1운동 때 최호천(崔浩天)과 함께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서울에서 만세 시위가 격렬하여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에 돌아와 청년들과 독립 운동을 계획하여 이끌었다. 그리하여 소하리와 가리대리의 주민 200여 명을 지휘하며 1919년 3월 28일...
일제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 이월봉(李月峰)[1915~1977]의 본적지는 시흥군 서면 철산리 55번지[현 광명시 철산동]이나, 보훈처의 기록에 의하면 출생지는 황해도 황주인 것으로 보인다. 1939년 9월 서안(西安) 한국청년전(韓國靑年戰) 때 공작대(工作隊)에 입대하였다. 1940년에는 서안의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5지대(支隊)에 입대하였다. 1941년 중국전(中國戰) 때는...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원(李宗遠)[1864~1940]은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이원중(李元仲) 또는 이종운(李鐘雲)으로도 불렸다. 1919년 3월 27일 밤 아들 이정석(李貞石)이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다가 순사보 최우창 등에게 체포되어 노온사리(老溫寺里) 주재소에 강제 연행되자, 이 사실을 같은 동네의 청년 최호천(崔浩天)·윤의병(...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대한제국은 1905년 11월 일제에 의해 자행된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자주적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황제의 통치권이 크게 손상되었다.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에 따른 군대 해산으로 군인들이 대거 의병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의병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장원겸(張元謙)[1866~?...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주환(崔周煥)[1882~1950]은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같은 마을 사람인 이정석(李貞石)이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되자 3월 28일 밤 최호천(崔浩天)·윤의병(尹宜炳)·이종원(李宗遠)·김인한(金仁漢)·최정성(崔正成)·유지호(柳志浩) 등과 함께 이정석 구출 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호천(崔浩天)[1899~1960]은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21세로 소하리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재학생으로 이곳에서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7일 같은 동네에 사는 이정석(李貞石) 등이 독립 만세 시위를 하다가 노온사리(老溫寺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