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광명 지역의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세 운동이 벌어진 옛 노온사리 주재소[현 온신초등학교] 자리에 세운 기념비. 3.1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진 온신초등학교 자리는, 일제의 강권적인 식민지 통치에 항거하여 일어난 1919년 3.1운동 시기 광명 지역에서 독립만세운동의 기치를 처음 올려 민족혼을 빛낸 곳이다. 광명 지역의 3.1운동은 1919년 3월...
-
경기도 광명시에서 일제 강점기 금·은·동·아연 등을 채굴하다가 광복 후 오랫동안 버려졌던 가학리 광산을 동굴 테마 파크로 만든 이야기. 광명동굴에 관한 첫 기록은 1950년에 발행된 『금천지』에 보인다. 1903년 5월 2일 시흥군 가학리에 ‘시흥광산’이 개광(開鑛)되었다고 수록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1912년 이이다 큐이지로[飯田 九一郞]라는 일본인 이름으로 광산...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던 개항기 전통 가옥. 광명역사를 뒤로 하고 서독터널을 지나 600m 전방의 사거리에서 좌회전, 230m 전방 도로변 바로 오른쪽에 광명시 가학동의 강신하 가옥이 있다. 근처에 청기와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남쪽으로 30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청 상량문의 묵서는 ‘귀룡숭정기원후성상이십사년정해삼월십이일미시입주상량가주을묘생계좌정향용귀(龜龍崇禎紀元後聖上貳...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가학동 성강수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781-5번지[공세동길 23]에 있다. 광명역사를 뒤로 하고 서독터널을 지나 600m 전방의 사거리에서 좌회전, 200m 전방 도로변 오른쪽의 청기와식당 바로 뒷집이다. 가학동은 조선시대에 공세마을이라 일컫던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창녕성씨가 입향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가학동...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개항기 전통 가옥. 가학동 이용림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324번지에 있다. 옛 공판장 가까이 위치한다. 가학동 이용림 가옥 안채의 마루에 반자가 쳐져 있어 어쩔 수 없이 이용림의 기억으로 따지자면 건축 연대는 1900년대 초로 짐작된다. 이용림의 말에 의하면 시집 올 당시부터 집이 있었다고 한다. 이용림은 1915년생 토끼띠로, 18세인 1932...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이형수 가옥의 담장과 토광. 가학동 이형수 가옥은 일찌감치 개조가 되어 가옥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단지 흙돌 담장과 토고(土庫), 또는 토광이라 말할 수 있는 창고를 조사하였다. 흙돌 담장과 토고 또는 토광의 조성 연대는 이형수의 아버지가 직접 쌓고 지었다고 하는 진술로 봐서 1940년대로 추정된다.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336번지에 있...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전통 가옥.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336번지이다. 가학동 이희선 가옥이 위치한 마을은 서독터널을 빠져나와 가학삼거리 방향으로 500m 전방에 있는 첫 번째 교통 신호등 앞에서 우회전하다가 곧 좌회전하여 300m 전방에서 우회전하면 도고내길로 접어들며, 다시 300m 전진하면 큰길 왼편에 있다. 가옥은 길 초입에 있고, 대문 왼쪽 벽에 ‘시온목장’이란 하...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전통 가옥이자 식당. 광명역사를 뒤로 하고 서독터널을 지나 600m 전방의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200m 전방 도로변 바로 오른쪽에 있다. 근처에 가학동 성강수 가옥과 가학동 강신하 가옥이 있다. 가학동 청기와 식당은 현재 성강수가 운영하고 있다. 성강수의 말에 의하면 안채는 1948년, 사랑채는 1960년대에 건축하였다고 한다. 대청 상량문의 묵서는...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고인돌군 주변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절구 역할을 한 도구. 가학동 출토 갈판은 1996~1997년에 한양대학교 박물관에서 가학동 고인돌군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했을 때, 가학동 고인돌군 인근의 주거지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갈판은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에 절구 역할을 한 분말용 도구로, 곡물이나 열매를 부수어 가는 데 사용되었다. 밑에 놓인 갈판은 갈판...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고인돌군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돌화살촉. 돌화살촉은 선사시대 사냥 도구인 활의 부속품으로, 돌을 가공하여 화살의 머리에 붙였던 화살촉이다. 석촉(石鏃)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돌화살촉은 신석기시대부터 등장하며, 청동기시대에는 주거지 유적에서 많이 출토된다. 돌칼과 함께 고인돌 부장 용품으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재질은 흑요석, 편암, 판암 등 다양한 재료가...
-
2001년 반딧불이 서식지 보호를 위해 경기도 광명시의 시민 단체가 벌인 시민운동. 가학산 반딧불이 살리기운동은 경기도 광명시 가학산에 있는 반딧불이 서식지를 보호하고자 추진되었다. 광명YMCA 생태 모임의 가학산 모니터링 과정에서 가학산에 반딧불이 서식지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나, 광명시에서 가학산을 지나는 고속 철도의 광명 역사 연계도로 건설 계획에 따라 가학산 관통 터널 공...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강석기의 신도비. 신도비는 임금이나 종2품 이상 벼슬아치의 무덤 아래쪽에 세운 석비를 말한다. 강석기(姜碩期)[1580~1643]는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금천(衿川)이다. 금천현 서면 노온사리[현 광명시 노온사동·학온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복이(復而), 호는 월당(月塘)·삼당(三塘)이다. 일찍이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 들어...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덕휘(德輝), 호는 동곽(東郭). 증조할아버지는 강숙돌(姜叔突)이고, 할아버지는 강뢰(姜賚)이며, 아버지는 현령(縣令)을 지낸 강유경(姜惟慶)이다. 강찬(姜燦)[1557~1603]은 1582년(선조 15)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이듬해 알성시(謁聖試)에서 병과 3인으로 급제하였다. 승정원사변가주서를 거쳐 1587년(선조 20) 호...
-
광명 지역은 남북으로 가학산과 서독산, 구름산, 도덕산이 길게 시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형성된 지역이다. 이 산들을 중심으로 광명동과 철산동, 하안동, 소하동, 일직동, 가학동, 노온사동에 속한 자연마을에 깃들여 많은 사람들이 누대에 걸쳐 살아왔다. 그러나 도덕산 자락의 철산동과 하안동, 광명동 지역은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화로 본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광명시 교육에서 주요한 화두는 절대 부족한 관내 고등학교의 수였다. 1981년 개청 당시 광명고등학교와 광명여자고등학교[현 명문고등학교], 광명공업고등학교 3개교에서 1991년 광명북고등학교가 개교했지만 중학교 졸업 학생 중 상당수가 관내로 진학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 문제는 1997년 광문고등학교와 소하고등학교, 충현고등학교 등 3개의 고등학...
-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경기도 광명 지역에 실시한 대규모 임야조사사업. 임야조사사업은 일제가 한반도 내에서 식민지 경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일환으로 전국 임야의 소유권을 재확정하고자 추진한 사업으로, 1916년 시험적인 준비 조사를 거쳐 1917년부터 1924년까지 조사와 측량 등을 마쳤다. 이에 부수하는 심의 처리 등의 사무는 조선총독부 임야조사위원회 주관으로 1919년에 개...
-
1912년 조선총독부에서 토지조사사업을 마친 후에 만든 광명 지역의 토지조사부.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서는 1910년 3월 15일 칙령 제23호에 따라 1910년 8월 24일 법률 제7호로 「토지 조사법」을 공포했다. 이후 1912년 8월 13일 조선총독부제령 제2호로 「토지 조사령」을 공포하면서 토지조사사업이 시작되었고, 위 법령에 의거하여 전국적으로 ‘토지조사부’가 만들어졌다....
-
1945년 한반도 신탁 통치안에 대해 광명 주민들이 벌인 반대 시위. 모스크바3상회의의 신탁 통치 결정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반탁 운동이 일어났으나, 좌익이 찬탁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좌우익의 이념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미국·영국·소련 3국의 외상들이 모여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고 5년 기한의 신탁 통치를 결정하였다. 보다 중요한 사항은 임시 정부...
-
1949년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실시된 농지 개혁 관련 문서. 농지 개혁은 정부 수립 이전인 1948년 3월 중앙토지행정처가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후 정부가 수립되고 헌법이 제정되면서 정책화되었다. 1949년 6월 21일 법률 제31호로 「농지개혁법」이 발효된 후, 1950년 3월 25일 시행령에 이어 농지 시행 규칙이 1950년 4월 28일 제정·공포되었다. 「소하읍 분배농...
-
대한민국 경기도 중서부에 있는 시. 광명시는 한반도 중부에 있는 기초자치단체로 경기도 중서부에 자리한다. 북쪽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동과 천왕동, 구로동, 동쪽으로는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동과 시흥동, 남동쪽과 남서쪽은 경기도 안양시, 시흥시와 접한다. 광명시의 동단인 소하1동과 서단인 옥길동 사이 거리는 6.55㎞, 북단인 철산1동과 남단인 가학동 사이 거리는 10.32㎞이다....
-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있는 시립 예술단. 광명시는 성인으로 구성된 광명시립합창단, 청소년으로 꾸린 광명시 소년소녀합창단, 광명농악을 보전, 전수하기 위한 광명시립농악단을 운영하고 있다. 광명시립예술단은 광명 시민의 정서 함양과 지역의 문화·예술을 발전시킬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광명시립합창단은 1981년 어머니합창단으로 출발하였다. 2000년 광명시립합창단으로 승격하여 같은 해 1...
-
경기도 광명시의 주산은 높이 237m의 구름산이다. 광명시의 중앙에 자리 잡고 광명시를 동서로 가르는 구름산은 아왕봉 또는 운봉(雲峰)으로도 불렸다. 바로 이 구름산의 서쪽에서부터 동쪽까지의 줄기를 타고 역사상 훌륭한 인물들이 터를 잡고 뜻을 펼쳤는데, 그들이 바로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과 소현세자의 빈인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1611~1646], 경...
-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청소년 전문 기관. 광명시 청소년 정책의 기틀을 마련하고, 효율적인 지원으로 광명시 청소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자 설립하였다. 2018년 1월 26일 경기도의 설립 허가를 받고 같은 해 3월 1일 광명시청소년재단으로 출범하였다. ‘지역 중심 청소년 성장, 청소년이 행복한 지역 사회, 지속 성장 시스템 확립’이라는 전략...
-
경기도 광명시 광명7동에 있는 전통 가옥. 광명7동 김득철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광명7동 419-1번지에 있다. 광명시 중앙도서관과 광문고등학교 사이로 난 구렁곡길을 따라 남쪽으로 500m쯤 내려오면 원광명노인정이 있다. 여기서 동쪽 샘물길로 접어들어 90m 정도 가다보면 앞에 보이는 기와집이다. 상량문은 페인트를 덧칠하여 보이지 않으나 김득철의 말에 따르면 건축 연도는 1946년...
-
경기도 광명시 광명7동에 있는 전통 가옥. 광명시 중앙도서관과 광문고등학교 사이로 난 구렁곡길을 따라 남쪽으로 500m쯤 내려오면 원광명노인정이 있다. 여기서 서쪽으로 3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안채에 상량문은 반자가 되어 있어 확인이 불가능했지만, 사랑채에 상량문이 있어 건축 연대의 확인이 가능했다. 상량문의 내용은 “용×세재기축이월이십일신시견주상량가주무진생□비인간지오복응천...
-
1993년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가학리 광산 폐광 마을에서 광석 가루가 유출되어 주민들이 중금속에 노출된 사건. 1993년 9월 환경처에서 전국 260개 지역, 1,300개 지점에 대해 토양 중 중금속 함유량을 조사한 결과,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소재 가학리 광산[시흥광산]의 경우 아연 및 카드뮴 함량이 자연 함량보다 20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서독산 중턱에 있는 가학리 광...
-
경기도 광명시에서 살았던 시인 기형도를 기리기 위하여 만든 문학관. 기형도는 1960년 경기도 옹진군 연평면[현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 속한 연평도에서 태어났다. 기형도가 다섯 살 되던 해인 1964년 일가족이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로 이사하였다. 이후 기형도는 1989년 사망할 때까지 광명시에서 거주하였다. 광명시에서는 기형도의 시에 담긴 정신을 기리고자...
-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김대덕의 묘에서 출토된 명기류. 명기(明器)는 죽은 사람의 내세 생활을 위해 무덤에 함께 부장하는 기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에는 15세기 후반 명기에 대한 양식이 정립되었고, 16~19세기에 걸쳐 소형 사발·접시·병 등이 주로 부장되었다. 묘지석과 함께 부장되는 명기들은 순백자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으나 청화백...
-
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1차 시흥농민봉기는 1898년(고종 35) 전임 군수 문봉오가 향리들의 도움을 받아 가혹한 수탈과 탐학을 저지른 후 이임하자 신임 군수가 부임하지 않은 상황에서 광명 지역을 포함한 시흥현 6개 면 42개 리의 주민들이 시흥 읍내에서 집회를 열고 관속배들의 집을 습격하여 행정력을 마비시킨 사건이다. 이 사건은 정부에서 파견된 조사관에 의해 같은 해 9...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전통 가옥.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435-1번지[능촌2길 10-10]에 있다. 노온사동 강영근 가옥은 깔끔하게 단장하여 식당으로 개조되면서 상량문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여주인의 말에 따르면 60년쯤 되었다고 하니 건축 연대는 1950년대쯤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집은 식당으로 변경되면서 안채만 덜렁 남고 나머지 부분에 문간채와 식당 공간이 자리...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전통 가옥. 능촌사거리에서 밤일로사거리로 향하는 광명로를 따라 800m 정도 진행하다 보면 오른쪽에 2차선 도로가 보이는데, 그 길이 원노온사길이다. 이 길로 진입한 후 200m 전진하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보일 듯 말 듯한 편도 1차선 정도의 작은 마을길을 따라 50m 진행하면 왼쪽에 노온사동 김건필 가옥이 있다. 상량문은 보이지 않으나 집주인의 말에...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전통 가옥.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419-1번지에 노온사동 양주완 가옥이 있다. 능촌사거리에서 북쪽 1시 방향으로 직선거리 150m 전방에 있고, 대로변에 백제주유소가 있다. 좌표는 37°26′36.15″N, 126°50′52.57″E이고, 고도는 32m이다. 대청의 상량문은 페인트로 덧칠하여 보이지 않으나, 집주인의 말에 따르면 집이 7...
-
철산동 쇠머리 지역은 예부터 덕수장씨 일족이 모여 살던 세거지였다. 덕수장씨 가문이 철산2동에 정착한 것은 임진왜란 당시 행주산성에서 권율 장군의 휘하에서 싸우다 전사한 충의공 장응기(張應箕)의 영정을 그의 넷째 아들 장준(張晙)이 옮겨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장준의 후예들은 충의사라는 사당을 건립해 대대로 제를 지내 왔다. 철산주공12단지...
-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광명 지역의 현대 문학은 광명시의 승격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 승격 이전의 광명 지역은 주로 시흥군에 속한 소하읍과 광명리에 불과하여, 근대 이전의 문학에서 뛰어난 문학사나 활동 기록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광명 지역에서 문학 활동이 시작된 것은 1988년 광명시청 문화공보...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광명 영회원에서 소현세자의 부인 민회빈 강씨의 기일에 지내는 제사. 광명 영회원은 민회빈 강씨(愍懷嬪姜氏)[1611~1646]의 묘역이다. 민회빈강씨 기신제향은 강씨가 사약을 받고 죽은 1646년(인조 24) 3월 26일[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한 4월 30일에 정기적으로 제를 지내 영혼을 달래는 의식이다. 민회빈 강씨는 청나라 심양에서 귀국한 지 얼마 되지...
-
1999년 3월 9일 광명시는 교육을 통해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사회적인 삶을 배우고 나눔으로써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교육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전국의 지방 자치 단체 중에서는 처음으로 평생학습도시를 선언했다. 사실, 오래 전부터 광명 지역 주민들은 지역에 대학이 들어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법적인 제약 등으로 대학을 유치하는 것은 어려웠다. 이런 시민들의 요구와 갈증을 다...
-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특정 지역의 세거성씨(世居姓氏)는 어떤 가문이나 인물이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세거성씨는 입향조(入鄕祖)가 있게 마련인데, 입향조는 실존한 인물로서 추적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역사가 오래되어 막연히 성씨만 구전되는 경우도 있다. 촌락 사회, 특히 집성촌에서는 입향조를 정점으로...
-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전통 가옥. 소하2동 이양호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1079-2번지[영당로 5-4]에 있다. 집 가까이에 오리 이원익(李元翼)의 유적지가 있다. 안채 마루의 상량대에 상량문이 있다. “갑신사월십오일미시입주상량(甲申四月十五日未時立柱上樑)”이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갑신(甲申)은 연간지(年干支)로 1944년에 해당한다. 안채 목부재들이...
-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개항기 전통 가옥. 소하2동 장덕열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324-26번지[설월로 8-7]에 있다. 동네가 재개발된다는 소리에 수리도 못하고 있다. 남에게 세를 주지 않고 그대로 빈집으로 있다. 그런데 가옥의 상량문이 보이지 않는다. 집주인의 말에 의하면, 건축 연대가 1900년대 초라고 한다. 안채와 문간채가 각각 ‘ㄱ’자 형과 ‘ㄴ’자 형의...
-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전통 가옥. 소하2동 장혜순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332번지[설월로 30-48]에 있다. 오리로를 따라 소하사거리를 지나면 서면초등학교가 있고 거기서 150m 전방의 비보호 구역을 좌회전하여 진입하면 소하2동이 나온다. 현재 통장을 맡고 있는 최문락의 집 바로 뒤에 있다. 좌표는 37°26′27.33″N, 126°51′34.10″E이고, 고도...
-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개항기 전통 가옥. 소하2동 최동영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333-1번지[설월로 30-58]에 위치하고 있다. 소하2동 최동영 가옥은 마을 입향시조(入鄕始祖)의 집안 종가(宗家)이다. 상량문이 발견되지 않아 건축 연대가 확실하지 않다. 건축 대장상으로는 건축 연대가 1930년대로 안채가 사랑채보다 몇 년 일찍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연대는...
-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전통 가옥. 소하2동 최문락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329-1번지[설월로 30-4]에 있다. 소유자는 마을에서 통장 일을 보는 최문락으로, 상량문이 없지만 건축 연대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최문락은 1960년대에 소하2동 최문락 가옥을 짓다가 군대를 나갔다고 한다. 그때 나이가 21세나 22세로 대자귀로 기둥을 다듬었다고 하며, 목수는 장절리...
-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개항기 전통 가옥. 소하2동 최범락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333번지에 있다. 소하2동 최범락 가옥은 소하2동 최동영 가옥과 이웃하며, 건축 연대는 건축물 대장상으로는 1939년이나 1880년대 후반까지로도 추정된다. 경사지를 평탄하게 만져 조성한 집터에 ‘ㄱ’자 형의 안채와 ‘ㅡ’자 형의 별채가 튼 ‘ㄷ’자 형태의 배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전통 가옥. 소하2동 최창락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354-4번지[설월로 40]에 있다. 상량문이 없지만 주변인들로부터 전해들은 말을 참고하면 대략적인 건축 연대가 1950년대로 짐작된다. 안채는 ‘┌’형이고, 사랑채는 ‘┚’형의 평면으로, 두 채가 튼 ‘ㅁ’자로서 우상(右上)과 좌하(左下)로 트인 ‘□∕’ 배치를 하고 있다. 안채는 계좌정향(...
-
일제강점기 광명 지역을 포함한 시흥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운동단체. 3·1운동 이후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이 소위 문화 정치로 바뀌면서 외형적으로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전국적으로 많은 단체들이 결성되어 활발하게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경기도에서도 3·1운동 이후 1920년대 말까지 178개의 청년 단체가 20개 군에서 결성되었다. 이 가운데 시흥 지역에서는 1...
-
광명 지역 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시장은 재래시장과 상가형 시장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재래시장은 예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 시장을 말하며, 상가형 시장은 아파트 건설이나 택지 개발로 새로이 설립된 대규모 상권에 자리 잡은 상가를 말한다. 광명 지역에 자리한 전통 시장으로 대표적인 곳은 광명시장과 새마을시장이며, 상가형 시장은 철산중앙시장과 2001아울렛 철산점 등을 들 수...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불법 남침으로 경기도 광명시에서 있었던 전쟁의 양상.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약 3년 1개월간 지속된 전쟁으로, 당시 시흥군에 속해 있던 광명 지역도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시흥은 서울~수원~오산으로 이어지는 인민군의 주공격 방향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시흥군이 수도 서울에 인접했기에 서울 방어와 탈환을 위한...
-
철산동은 자연적으로는 안양천을 동쪽으로 끼고 있는 수변 지역으로, 개청 이후 신도시로 개발된 곳이다. 안양천 주변으로 개발 이후 20여 년이 지나면서 안정적인 주거 단지를 이루고 있는 철산 아파트 단지는 철산동 풍경의 중요한 요소이다. 안양천은 살아 있다. 하천 생태 측면에서도 그렇고, 안양천을 품고 사는 시민들의 마음속에서도 그렇다.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매...
-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발의 묘. 이발(李潑)[1544~1589]은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을 계기로 일어난 기축옥사에서 모반에 가담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고문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때 82세의 노모와 8세 아들도 형벌 끝에 죽음을 당하였는데, 형 이급(李汲), 아우 이길(李洁)도 죽음을 당하였다. 당시 노모는 형벌이 너무 지나치다며...
-
조선 후기 광명 지역의 대표적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 태종의 아들인 익녕군 이치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함천군 이억재(李億載)이다. 이원익의 가계는 익녕군 이치-수천군 이정은-청기군 이표-함천군 이억재-이원익으로 이어진다. 이원익(李元翼)[1547~1634]은 1573년(선조 6) 성균관전적이 되었으며, 그해 2월 성절사 권덕여(權德輿)의...
-
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문신 이원익이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을 애도하며 남긴 시. 1604년(선조 37) 이원익(李元翼)이 아내 영일 정씨(迎日 鄭氏)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輓詩)이다. 이 만시는 만장(輓章)에 쓴 것으로, 장사를 지낸 후 내용은 베껴 보관하고 태우는 것이 관례이나 이원익이 손수 쓴 것이라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보존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따로 제목은...
-
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기도 광명 지역의 역사.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동안 광명 지역은 시흥군 서면과 남면으로 편제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를 겪지 않으면서 현 광명시의 전신으로서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광명 지역에서도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 항일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3·...
-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전통 가옥. 일직동 이봉선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26번지[자경로61번길 21]에 있다. 현재 가옥이 있는 마을은 경부고속철도와 서해안고속도로, 그리고 제2경인고속도로로 둘러싸여 있어 갇힌 답답한 형국이다. 이봉선이 증조부 땅에 1948년 음력 3월에 시작하여 일 년 반 동안 지은 집이다. 이봉선은 대략적인 공사가 1949년 4월인가 5월인가에 중...
-
철산리가 속해 있는 광명시청이 개청 이후 가장 먼저 맞은 지역 문제는 홍수였다. 1981년 7월 2일 새벽, 광명시민들이 광명시청 개청으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곤히 잠들어 있던 시각, 수도권 일대에 내린 집중 호우로 213가구가 침수되고 833명이 인근 학교로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당시 철산리를 포함한 광명 지역은 안양천이 동쪽으로 흐르고 시 북쪽 끝에서는 부천...
-
경기도 광명시가 1999년 전국 최초로 추진한 평생학습도시 선언의 배경과 과정 및 현황. 광명시의 평생학습도시 개념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8월 민선 제2기 광명시장인 백재현의 지시로 8월 광명시청 총무과, 광명교육청 사회체육과, 광명문화원, 광명복지관, 하안종합복지관, 주민과 함께하는 광명 만남의 집 등 관계자 10여 명이 ‘평생학습센터 설립 추진을 위한 실무준비...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개항기 정원용의 묘갈. 정원용 묘갈은 1872년 정원용(鄭元容)의 사후, 일찍이 준비해 놓은 구름산 아래 주봉(珠峯) 갑좌(甲坐) 아래에 먼저 별세한 정경부인 강릉김씨와 합장한 묘역에 맏아들인 정기세(鄭基世)가 주도하여 묘 앞에 세운 것이다.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산178-6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서울~안산 간 국도 상행선 방향이다. 광명IC 진입로...
-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하천 이용과 관련하여 광명 지역에 내린 조치. 조선하천령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의 어업 및 하천 이용에 관해 내린 규제 명령으로, 하천을 국토 경영의 일환으로 철저히 관리하려는 목적에서 시행되었다. 조선하천령을 통해 하천이 국유로 규정되었으며, 하천변과 둑 등 하천 구역에 대해서도 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폐천(廢川) 처분의 규정이 없어 폐천...
-
우리 민족은 가는 곳마다 먼저 학교를 세우고 높은 교육열로 자녀들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철산동의 광명광덕초등학교 설립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높은 교육열을 그대로 보여 준 철산리 주민들의 실제 경험담이다. 1959년 주민들이 직접 세운 광명광덕초등학교는 주민들의 자랑이었고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역 내 중요한 공공 기관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별다...
-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2022년 3월 개원을 목표로 설립하고 있는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대학병원. 2017년 ‘광명의료복합클러스터’ 조성 사업 운영자로 중앙대학교병원이 선정되었다. 2018년 2월 20일 역세권 도시지원용지1-2의 건축 허가가 나 같은 해 7월 18일 착공식을 하였다. 중앙대학교 광명병원 건립 시행자는 광명하나바이온이다. 2018년 착공 당시에는 건축 연면적...
-
철산동의 광명시민회관 전시실 입구와 광명시민운동장 사이 자그마한 녹지 사이에는 장방형의 육중한 바위가 하나 놓여 있다. 예사롭지 않은 모습의 이 바위는 ‘철산동 고인돌’로 알려진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철산동 고인돌은 보통 덮개식이라 말하는 북방 양식으로, 육중한 덮개돌과 상대적으로 작은 받침돌 2개로 이루어져 있다. 고인돌이 위치한 곳은 2007년 주변 재정비...
-
삶의 공간이 삶의 모습을 만들어 낸다는 말처럼, 철산동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철산동이 만들어 낸 삶의 일상이다. 철산동은 광명시의 중심 지역이다. 광명시청을 비롯해 법원, 세무서 등 행정 기관들이 위치해 있어 행정타운 기능과 함께 중심 상업 지역이 자리 잡고 있다. 지하철 7호선 철산역이 있어 서울 등 타 지역과의 교통이 편리하다. 중앙로 대로변을 따라...
-
철산동 지역은 시 승격 이후 광명시의 중심지로 성장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현대 행정의 기본 서비스인 복지 사업과 주민센터 운영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빨리 자리 잡거나 선진적인 시스템이 시도되어 모범적인 사례를 많이 배출하였다. 철산4동에서 살게 된 지 16년이 되었다는 임봉식[1930년생] 씨는 요즘 목요일만 손꼽아 기다린다며 이렇게 말한다. “아무 연고가 없...
-
철산1동부터 철산4동까지로 구분되어 있는 철산동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이름과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1960년대에는 지금의 철산1동, 철산2동, 철산3동, 철산4동과 도덕산 자락이 각각 사성[일명 뱀수], 모세[일명 연서], 쇠머리, 왕승골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마을마다 저마다의 고유한 이름과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시흥군 서면 시절...
-
철산리는 옛날에 쇠머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쇠머리’란 도덕산에서 안양천 쪽으로 뻗어 나온 산줄기가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철산리(鐵山里)의 철(鐵)은 소[牛]의 경기도식 발음인 ‘쇠’가 ‘쇠 철(鐵)’ 자로 혼동돼 기록된 것으로 추측된다. 산(山)은 고어에서 머리처럼 튀어나온 부분을 표기할 때 쓰이는 예에 따라 사용되었다. 구전...
-
광명시는 뚜렷한 정체성이나 도시 특성 혹은 상징을 찾기가 쉽지 않은 도시다. 그렇듯 주거와 생활이 중심이 되어 있는 이 도시의 한복판에 상업 지구가 있다. 광명시 철산중심상업지구가 광명시의 ‘명소’ 중 한 곳으로 자리한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곳은 광명시민들뿐만 아니라 주변 외지인들도 찾아와 소일하는 곳이다. 철산중심상업지구에 모이는 이들은 실로 다양하다....
-
경기도 광명시에서 제정한 공무원 포상 제도. 조선 시대 광명 출신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청백리로 유명한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정신을 현대에 살려, 청렴결백하고 헌신 봉사하는 공무원을 선발함으로써 공무원 사회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깨끗한 공직 풍토를 조성하기 위하여 2011년 광명시에서 「광명시 오리 이원익 청백리상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이에 의거하...
-
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2차 시흥농민봉기는 1901년 착공하여 1904년 개통된 경부선의 영등포~수원 간 공사에 강제 동원한 데 이어 토지를 대가 없이 수용한 일에 크게 반발하여 군민 2,000여 명이 항거한 사건이다. 1904년 9월 13일까지 6개 면 집강들에게 봉기 계획을 전달하는 한편, 시흥군의 모든 가구마다 한 명씩 반드시 집회에 참여하도록 하여 9월 14일 읍내...
-
1911년 일제가 한국의 토지 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실시한 경제 정책. 일제는 1910년 9월 오키나와와 대만에서 토지를 조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해 9월 30일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관제(朝鮮總督府 臨時土地調査局官制)」를 공포하고 1912년 8월에는 「토지 조사령」을 공포하였다. 일제는 전 근대적인 소유 관계 아래에 놓여 있는 토지 소유 관계를 근...
-
경기도 광명 지역에 분포하는 기복이 적고 비교적 넓게 퍼진 땅. 평야는 지각이 오랜 동안 안정된 지역이다. 침강한 지역에 침식이나 퇴적에 의해 형성된다. 지각 운동의 파장(波長)이 큰 대륙에서는 넓은 평야가 형성되고, 새로운 조산대(造山帶)의 평야는 일반적으로 좁다. 평야는 크게 침식에 의하여 형성된 침식평야와 퇴적에 의해 형성된 퇴적평야[충적평야]로 나누어진다. 광명시의 평야는...
-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있던 일제강점기 전통 가옥. 하안동 김광식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474-5번지에 있다. 하안동 김광식 가옥은 건축 연대가 확실하다. 안채 대청 상량문에는 “용소화이십년을유삼월초사일묘시입주상량가주기축생□비인간지오복응천상지삼광용(龍昭和二十年乙酉三月初四日卯時立柱上樑家主己丑生□備人間之五福應天上之三光龍)”이라 되어 있는데, “소화이십년을유삼월초사일(昭和二十年乙...
-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있던 개항기 전통 가옥. 하안동 김은임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480번지에 있다. 2003년도에 경기문화재단에서 펴낸 『경기도 건축문화유산』 1에 의하면 “광무칠년갑진이월초팔일진시입주상량(光武七年甲辰二月初八日辰時立柱上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건축 연대는 1903년이 확실한데, 2009년 10월 해체 작업 때 상량문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위의...
-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있던 개항기 전통 가옥.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484번지에 있다. 하안동 김인석 가옥의 상량문은 안채 대청의 반자 때문에 확인할 수 없다. 집주인 또한 상량문 기록에 대한 정확한 기억은 없으며, 옛 기억을 되살려 건립 시기를 추정하면 1900년대 초라고 한다. 하안동 김인석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1960년대 지붕을 초가에서 시멘트 기와로 교...
-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있던 개항기 전통 가옥. 하안동 김정대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484번지에 있다. 상량문의 묵서를 파악할 수 있는 상량대는 니스 칠을 하여 훼손되었다. 건축 연대가 1900년대 초로 추정되는 집이다. ‘ㄱ’형의 안채와 ‘ㄴ’형의 사랑채가 기본적으로 튼 ‘ㅁ’자 배치를 하고 있다. ‘ㄴ’형의 사랑채는 안채를 기준으로, 시계 방향으로 8도 정도 돌아앉아 있...
-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있던 전통 가옥. 하안동 평석호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484-2번지에 위치한다. 하안동 평석호 가옥의 상량문은 훼손되어 보이지 않으나 이 집 안주인의 정확한 진술을 토대로 안채는 1950년대의 것으로, 사랑채는 1960년도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지 529㎡에 시아버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안채가 150여 년 되었으며 바깥채는 1963년에 지었다고...
-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있던 개항기 전통 가옥. 하안동 평재원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478번지에 위치한다. 상량문이 안 보이는 관계로 건축 연대가 불분명하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1900년대 초로 여겨진다.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가 집 어귀 못미처에 수령(樹齡)이 300년을 훌쩍 넘긴 보호수가 있다. 경사지를 평단하게 집터를 조성하였다. 안채 쪽이 약간 높은 대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