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상순·최영달 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경주 최씨의 세계(世系)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26파로 나뉘는데, 그 중 관가정공파(觀稼亭公派)·광정공파(匡靖公派)·정랑공파(正郞公派)·사성공파(司成公派)·화숙공파(和淑公派)·충렬공파(忠烈公派) 등 6대 파가 주축을 이룬다. 하동 지역의 경주 최씨는 전라남도 보성과 경상남도 곤양...
-
1770년(영조 46)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1712~1781]은 조선의 간선 도로망을 여섯 개의 대로로 구분한 바 있다. 여섯 대로의 출발점은 모두 한성이고, 종착점은 조선반도의 각 극지에 있는 주요 도회이다. 제1로는 개성과 평양을 경유한 후 의주까지 이어지는 의주로이고, 제2로는 원산과 함흥을 경유한 후 경흥 서수라까지 이어지는 경흥로이며, 제3로는 원주와 강릉을 경유...
-
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장·김광 형제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광산 김씨는 광주 김씨(光州金氏)로 불리기도 하지만 지금은 광산 김씨로 통일하였다고 한다. 광산은 오늘날 광주시 광산구에 해당한다.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의 왕자였는데, 장차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을 예견하고 무진주 서일동[현재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동]으로 피하여 학문을 닦으며 살았다고...
-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용궁(龍宮), 호는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은 어릴 적부터 성품이 강하고 굳세며 반듯하고 정직하였으며, 지기(志氣)가 총명하고 민첩하며 용기가 있었다. 학문을 익힐 적에는 선생이 감독하지 않아도 날마다 부지런히 공부하였고, 경전과 역사에 통달하여 대의(大義)를 분별할 수 있어 약관의 나이에 문무(文武)를 겸비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33...
-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석손·김명기·김극관 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우리나라 성씨 가운데 김해 김씨의 인구가 가장 많다. 김해 김씨는 분파도 매우 많아 특정 지역의 입향조를 일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동 지역의 김해 김씨는 김유신(金庾信)의 직계 종파 가운데 삼현파(三賢派)[김극일·김일손·김대유]와 사군파(四君派)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김해...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박달리 성지(朴達里城址)의 건립 경위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축조 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웃인 북쪽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구청마을의 산성이 조선 초기에 석축되어 임진왜란 때 쓰였다고 하므로, 박달리 성지 또한 외적 침입에 대비한 성으로 축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세곡마...
-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 시설. 성은 집단의 공동 목적과 더불어 소수의 수비군이 다수의 침략군을 효과적으로 격퇴하거나 침공 속도를 늦추어 후방이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기 위한 방어용 건축물이다. 따라서 성은 인류 역사에서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발생하고, 국가가 성립하면서 나타나는 환호(環濠)와 목책과 같은 방어 시설, 습지에서 발달한 환호취락(環濠...
-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여러 대(代)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 시대 성주, 장군, 촌주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지방 세력을 대표하던 지방...
-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양포리에 설치된 역참. 양포역(良浦驛)은 1462년(세조 8) 역로 정비 때 소촌도(召村道) 역승이 관할하는 16곳의 역 가운데 하나였다. 양포역은 곤양군에서 남해현까지 효율적인 교통과 통신망의 구축을 목적으로 지금의 하동군 진교면 양포리에 설치된 역참이었다. 『세조실록(世祖實錄)』에 따르면 1462년 8월 5일 병조의 건의로 각 도의 역참을 파하...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역사. 하동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그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하동 지역에서 확인된 선사 시대의 유적은 하동군의 동북쪽 덕천강 유역과 서남쪽 섬진강 유역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하동의 역사는 수습된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러 작은 정치체가...
-
경상남도 하동군 지역에서 고려 시대부터 1894년까지 운영되었던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역원(驛院)은 역관(驛館), 역참(驛站), 우역(郵驛)이라고도 한다. 역은 역마(驛馬)와 역로(驛路)를 관리하고, 공무로 지방을 다니는 관리에게 역마와 숙식 등을 제공하는 곳을 말한다. 우리 역사에서 역원제의 시초는 487년(소지왕 9) 신라 소지왕(炤知王) 대 우역(郵驛)의 설치에서 찾을...
-
정의경을 시조로 하고 정보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연일 정씨(延日鄭氏)는 영일 정씨(迎日鄭氏), 또는 오천 정씨(烏川鄭氏)라고도 한다. 영일과 연일 및 오천은 오늘날 경상북도 포항시의 일부 지명에 해당한다. 연일 정씨는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영일호장(迎日戶長)을 지낸 후 영일현백(迎日縣伯)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영일로 하였다. 조선 시대 하동 지역의...
-
김존중을 시조로 하고 김태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용궁 김씨의 시조인 경숙공(景肅公) 김존중(金存中)은 고려조에 좌승선 태자소보(左丞宣太子小保)를 역임한 후 용궁군(龍宮君)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용궁(龍宮)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루었다.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1560~1593]은 1593년 진주성 싸움에서 수성장으로서 순절하여 승...
-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행정 구역. 예부터 ‘붉은몰’이라 불리었는데, 좀 더 명확한 지명 유래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문헌상으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적량부곡(赤良部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적량(赤良), 『여지도서(輿地圖書)』·『호구총수(戶口總數)』·『해동지도(海東地圖)』·『광여도(廣輿圖)』에 하동군에 속했던 적량면(赤良面)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
고려 시대부터 1894년까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정수역(正守驛)은 고려 시대 산남도(山南道) 관할의 28개 역 가운데 하나로 설치되었다. 설치 목적은 중앙과 진주목(晉州牧)[하동군] 간의 효율적인 관계망의 구축을 위해서 요로(要路)인 지금의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영당마을에 두었던 교통과 통신을 위한 시설이었다. 『고려사(高麗史)』 권82, 병지...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아직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규모가 작은 속읍(屬邑)이 적지 않게 존재하였다. 태종 대에는 이런 고을들을 두세 개씩 통합하여 수령을 파견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동현과 남해현은 이미 수령이 파견되어 있는 고을이었지만, 1414년(태종 14) 8월 두 고을을 합쳐 하남현(河南縣)으로 개칭하였다가 이듬해 3월...
-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민첨을 중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진양 강씨는 고려 초에 이미 재경 관인(在京官人)과 재지 세력으로 분화하였다고 보고 있다. 중시조인 은열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1021]은 전자에 해당한다. 강민첨은 고려 현종 때 거란이 침입하자 안찰사로서 동여진을 격퇴시켰고, 1018년(현종 9)에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
정예·정자우·정장·정헌을 시조로 하고 정대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진주의 토성인 진양 정씨는 정예(鄭藝)·정자우(鄭子友)·정장(鄭莊)·정헌(鄭櫶)을 중시조로 하는 네 계열이 존재한다. 네 계열은 신라 말을 전후하여 조상을 같이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고려 초·중기 이전의 선계가 확인되고 있지 않으므로 서로 간의 세계를 밝힐 수 없다. 진양 정씨의 시...
-
하공진·하진·하성 등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흔히 진양 하씨가 익숙하지만 근래에 들어 진주 하씨(晉州河氏)로 칭하는 경우가 많다. 진주의 토성이자 명문인 진양 하씨는 서로 간의 세계가 밝혀지지 않은 하공진(河拱辰)·하진(河珍)·하성(河誠) 세 계열이 이어져 오고 있다. 고려 초·중기 이전의 선계가 확인되고 있지 않다. 물론 진양 하씨가 시조를 달리한다는 말은...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신라 시대 석성. 하동 고소성(河東姑蘇城)이 위치하는 하동군 악양면의 옛 지명은 소다사현(小多沙縣)으로 757년(경덕왕 16)에 악양현(岳陽縣)으로 개명되었다. 하동군 악양면은 섬진강의 물줄기에서 가장 번성한 곳 가운데 하나로서 일찍이 한 읍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하동 고소성의 위치는 호남 내륙과 남해 바다를 연결하는 섬진강 물길을 효...
-
정도정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하동 정씨는 하동의 토성(土姓)이다. 따라서 하동 정씨는 신라 말 고려 초에 이미 하동 지역의 호족으로서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동 정씨는 통일 신라의 군현 체제에서 촌주 세력으로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신라 말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서 하동 지역의 호족으로 성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하동포구 80리’는 그 명칭이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하동포구 80리를 하동포구의 문학적[시적]·정서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동포구 80리라는 명칭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오르내리게 된 것은 1930년대 발표된 문학 작품의 영향이 크고, 이후 1970년대에 인기를 얻었던 몇몇 대중가요가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하동포구...
-
1704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조선 시대에 들어 하동의 읍치는 자주 변경되었으나, 읍격(邑格)에는 큰 변화가 없이 이어져 오다가 18세기 접어들어 읍의 규모와 읍격에 변화를 겪었다. 1702년(숙종 28) 하동 읍민들이 섬진강 일대를 관문으로 삼을 것을 호소하자, 진주목의 악양·화개·진답·적량의 4개 면을 임금의 윤허를 받아 하동으로 분속(...
-
박언신을 시조로 하고 박윤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함양 박씨는 신라 말기 경명왕(景明王)[재위 917~924]의 셋째 아들 박언신(朴彦信)[속함대군]을 시조, 박선(朴善)을 중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하동 지역의 함양 박씨는 중시조 박선의 19세손인 박윤(朴綸)이 함양에서 하동으로 이거(移居)한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신라의 개국시조 박혁거세왕을 원조로 하...
-
이개를 시조로 하고 이석후·이시빈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합천 이씨는 합천을 본관으로 하고 이개(李開)를 시조로 하며, 10세손인 이수전(李守全)[전서공파의 파시조] 대에 이르러 15파로 분파하였다. 이 15파 가운데 하나인 전서공파가 가장 번성하였다. 하동 지역의 합천 이씨는 전서공파와 더불어 참지공파[파시조 이양진(李良眞)]의 후손들이 하동군 악양면·양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