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8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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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興寺浮屠殿 |
영어공식명칭 | Daeheungsa Budojeon Stupa |
이칭/별칭 | 대흥사 승탑원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산8-6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인선 |
대흥사 부도전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산8-6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대흥사를 빛낸 고승들의 승탑을 모아 놓은 곳.
[개설]
대흥사 일주문을 지나 오른쪽 산기슭 아래에 55기의 부도가 전한다. 대흥사는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고승으로는 사명유정(四溟惟政)[1544~1610], 소요태능(逍遙太能)[1562~1649], 정관일선(靜觀一禪)[1533~1608], 편양언기(鞭羊彦機)[1581~1644] 등이 있는데, 대흥사 부도전(大興寺浮屠殿)은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고승들의 승탑이 대부분이다. 탑신부의 형태에 따라 팔각원당형, 원구형, 석종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팔각원당형 승탑]
대흥사 부도전 중 팔각원당형 승탑은 청허당(淸虛堂)[1520~1604, 1647년 건립, 2.65m], 화악당(華岳堂)[1629~1707, 1709년 건립, 2.1m], 월저당(月渚堂)[1638~1715, 2.1m], 환성당(喚惺堂)[1664~1729, 2.1m], 상월당(霜月堂)[1667~1767, 2.1m], 영곡당(靈谷堂)[2.4m], 지월당(智月堂)[1.5m], 월파당(月坡堂)[1.9m] 등 총 8기이다. 1647년 청허당탑을 시작으로 18세기 중반 상월당탑까지 약 130여 년간 대흥사에서 조성되다가 사라진다. 대표적인 승탑으로는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탑[청허당탑]이 있는데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탑은 약간 다듬은 8각의 지대석 위에 8각의 하대석과 중대석, 상대석을 8각의 탑신을 올렸다. 탑신 중앙에 청허당이라는 당호를 새겼다. 옥개석은 서까래, 추녀, 부연(副椽) 등이 가지런하게 새겨져 있으며, 기왓골이나 내림마루인 우동(隅棟)의 표현은 사실적이어서, 목조 건물의 지붕과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 추녀마루 끝에는 용의 머리와 다람쥐가 조각되어 있다. 머리장식인 상륜부에는 노반(露盤)과 함께 높은 보주(寶珠)가 놓여 있는데, 용무늬와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조선 후기 부도 중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조각 수법이 뛰어나 보물 제1347호로 지정되었다.
[원구형 승탑]
대흥사 부도전 중 원구형 승탑은 설봉당(雪峰堂)[1678~1738, 2.2m], 상월당(霜月堂)[1687~1767, 2.1m], 연담당(蓮潭堂)[1720~1799, 2.0m], 응성당(應星堂)[1799년 건립, 2.4m], 완호당(玩虎堂)[1758~1826, 1828년 건립, 3.2m], 은암탑(銀巖塔)[?~1834, 1835년 건립, 2.6m], 양악당(羊岳堂)[1841년 건립, 2.8], 포륭당(褒龍堂)[1860, 2.4m], 초의탑(草衣塔)[1786~1866, 1871년 건립, 3.0m], 범해당(梵海堂)[1820~1896, 1904년 건립 추정, 2.3m], 경허당(鏡虛堂)[1927년 건립, 2.7], 원응탑(圓應塔)[1929년 건립, 2.4m], 운암당(雲岩堂)[2.3m], 벽해당(碧海堂)[2.2m], 진봉당(珍峯堂)[1.9m], 백련당(白蓮堂)[2.1m], 정암당(靜岩堂)[2.6m], 중봉당(中峰堂)[2.0m], 정월당(定月堂)[2.0m], 구암당(龜岩堂)[1.7m], 무송당(撫松堂)[2.0m], 의암당(義庵堂)[2.1m], 영송탑(靈松塔)[2.3m], 청우당(聽雨堂)[2.8m] 등 25기이다. 원구형 승탑은 18세기 중반 최초로 건립되어 1929년 원응당탑 건립까지 계속해서 형태의 변화를 보인다. 대표적인 승탑은 1841년 건립된 양악당탑이다. 양악당탑은 전체적으로 8각을 기본으로 변형된 형태인데 낮은 8각의 지대석 위에 2단으로 구성된 기단부를 두었는데 하층은 8각으로 원숭이를 비롯한 동물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상층은 4각이며 역시 면마다 문양을 조식하였는데 마치 향로석처럼 보여 대흥사 부도전 승탑 중 기단의 형태가 가장 이채롭다. 탑신부와 옥개석 상륜은 다른 조선 후기 원구형 승탑의 전형을 따랐다.
[석종형 승탑]
대흥사 부도전 중 석종형 승탑은 등계대사허백당탑(登階大師虛白堂塔)[1663년 건립, 2.2m], 설암당(雪岩堂)[1651~1706, 1.6m], 명진당(冥眞堂)[?~1743, 1.8m], 만화당(萬化堂)[1694~1758, 1.8m], 연파당(緣坡堂)[2.3m], 풍담당(風潭堂)[2.1m], 무염당(無染堂)[1.5m], 청련당(靑蓮堂)[1.6m], 연해당(燕海堂)[1.7m], 백화당(白華堂)[2.1m], 용곡당(龍谷堂)[1.1m], 백설당(白雪堂)[1.7m], 성주당(聖珠堂)[1.2m], 낙서당(樂西堂)[1.1m], 호암당(虎岩堂)[2.1m], 벽허당(碧虛堂)[1.9m], 허정당(虛靜堂)[2.0m], 도암당(道庵堂)[1.8m], 일명승탑Ⅰ(逸名僧塔)[1.6m], 일명승탑Ⅱ(逸名僧塔)[1.3m], 일명승탑Ⅲ(逸名僧塔)[1.6m] 등 총 22기이다. 1663년 등계대사허백당탑을 시작으로 하여 조선 후기에 계속해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종형 승탑의 특징은 기단석 위에 석종형의 탑신을 올리고 보주를 종두형으로 올렸다. 각 승탑에 따라 기단석이 팔각이나 원형을 사용하였고, 보주에서 약간의 변화를 보인다.
[특징과 의의]
현재 대흥사 부도전에 남아 있는 승탑은 1647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허당탑을 시작으로 1929년 원응당탑까지 55기의 승탑이 건립되어 전한다. 조선 후기 유행하는 형태인 팔각원당형, 원구형, 석종형 부도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팔각원당형 승탑은 1647년 청허당탑의 건립을 시작으로 약 130여 년간 조성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형태가 간략화되고 문양이 퇴화되거나 생략되는 특징을 보인다. 원구형 승탑은 팔각원당형 승탑을 대신하여 18세기 중반 설봉당탑을 시작으로 1929년까지 계속 건립되는데 처음에는 팔각원당형 승탑의 양식을 계승하다가 점점 형식이 간략화되고 문양이 퇴화되거나 생략되는 특징을 보인다. 석종형 승탑은 1663년 등계대사백당탑을 시작으로 큰 변화 없이 이전 승탑을 답습하고 있다. 대흥사승탑은 형태가 다양하고, 승탑 건립 양식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양상을 잘 보여 주고 있어 조선 후기 승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