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원군 읍지
-
1899년에 편찬된 경상남도 칠원군의 읍지. 칠원 지역은 신라 때 칠토현(漆吐縣)에서 시작하여 칠제(漆堤), 칠원, 구성(龜城), 무릉(武陵) 등으로 불려졌다. 1899년 칠원현은 군상리면(郡上里面)을 포함해 4개 면으로 이루어졌다. 칠원군 원호(元戶)는 2,247호이고, 인구는 남자 5,643명, 여자 3,816명으로 총 9,459명이었다. 1898년을 기준으로 파악된...
-
1786년에 편찬된 경상남도 칠원현의 읍지. 칠원 지역은 신라 때 칠토현(漆吐縣)에서 시작하여 칠제(漆堤), 칠원, 구성(龜城), 무릉(武陵) 등으로 불려졌다. 1786년 칠원현은 현상리면(縣上里面)을 포함해 4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읍치에서 40리나 떨어진 구산면(龜山面)은 창원부(昌原府)의 경계를 넘어야 하는 월경지(越境地)이다. 1786년의 칠원현 원호(元戶)는...
-
전통 시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하여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열녀(烈女)는 위급함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거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한 부녀자를 일컫는 말이다. 함안 관련 각종 읍지 등 지리서에서 함안의 열녀를 소개하기 시작한 것은 한강(寒岡)정구(鄭逑)[1543∼1620]가 편찬한 『함주지(咸州誌)』[1587]로...
-
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이령리에 있던 교통·통신 시설. 『칠원군 읍지(漆原郡邑誌)』에 보이는 주요 도로망은 관아에서 동쪽으로 운곡(雲谷)을 지나 창원 경계까지 10리[약 3.93㎞]이고, 서쪽으로 창인역(昌仁驛)을 지나 함안 경계까지가 10리이다. 남쪽으로 갈치(葛峙)을 지나 창원 경계까지가 7리[약 2.75㎞]이고, 북쪽으로 송치(松峙)를 지나...
-
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향(鄕)은 부곡(部曲, 소(所)와 더불어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까지 지속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향은 총 153곳, 경상도 지역은 43곳이었다. 현재 함안 지역에는 칠원읍에 우질포향(亏叱浦鄕) 1곳이 있었다. 이들은 군현(郡縣)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조·포·역의 3세를...
-
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에 있던 교통·통신 시설. 『칠원군 읍지(漆原郡邑誌)』에 보이는 주요 도로망은 관아에서 동쪽으로 운곡(雲谷)을 지나 창원 경계까지 10리[약 3.93㎞]이고, 서쪽으로 창인역(昌仁驛)을 지나 함안 경계까지가 10리이다. 남쪽으로 갈치(葛峙)를 지나 창원 경계까지가 7리[약 2.75㎞]이고, 북쪽으로 송치(松峙)를 지나...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전근대 함안과 칠원의 충신 인물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관찬 지리서와 두 지역의 각종 '읍지(邑誌)'의 인물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함주지(咸州誌)』[1587]에서부터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1899]나 『칠원군 읍지(漆原郡邑誌)』[1899]에 이르기까지 함안 관련 각종...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전근대 함안과 칠원의 충신 인물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관찬 지리서와 두 지역의 각종 '읍지(邑誌)'의 인물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함주지(咸州誌)』[1587]에서부터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1899]나 『칠원군 읍지(漆原郡邑誌)』[1899]에 이르기까지 함안 관련 각종...
-
전통 시대에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효성으로 어버이를 잘 섬긴 자녀. 효자는 부모를 극진히 섬겼거나 각종 형태의 효행이 알려진 인물이다. 효(孝)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정성껏 모시는 것뿐만 아니라 사망한 뒤에도 극진히 제사를 모시는 것 등을 포함한다. 전통 시대에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효행을 실천한 효자는 각종 지리서에서 함안군 44명, 칠원현 9명 등 총 53명 정도가 확인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