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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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신산리 신당 마을에서 가메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가메골과 포덕산」은 포덕산(飽德山) 정상에서 내려오는 능선이 마치 가마솥과 같이 생겼다는 뜻에서 골짜기 이름을 가메골[부곡(釜谷)]이라고 했다는 지명 전설이다. 이를 「가메골의 지명 유래」라고도 한다. 가메골은 포덕산에 있는 골짜기이다. 2010년 함안 문화원에서 간행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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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조응경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감찰 조응경의 효성」은 조실부모(早失父母)한 까닭에 부모의 얼굴을 알지 못함을 슬퍼하여 초상화를 그려 제사 때에는 반드시 이 그림을 사용하였다는 조응경(趙應卿)[1469~1491]의 효행담이다. 당시 사간(司諫)이었던 자유(子游)어득강(魚得江)[1470∼1550]은 이 초상화를 찬양하는 글을 지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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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이경성 부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남명 선생과 이경성 현감 부부의 효성」은 남명(南冥)조식(曺植)[1501~1572]이 이경성(李景成)의 집에 머물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이경성의 효를 부모의 뜻을 받드는 효"라고 칭송하였고, 또 그의 처 여흥 이씨(驪興李氏)도 시어머니를 섬기는 데 남다른 효를 행했다는 효행담이다. 조선 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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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에서 법수산의 지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법수산(法守山)」은 법수당(法守堂)을 비롯하여 법수산과 그 골짜기에 깃든 마을의 지명 유래담이다. 법수산은 면 소재지의 서북쪽으로 약 1㎞ 지점에 있다. 법수산은 해발 150m이지만 법수면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함주지(咸州誌)』 산천조에는 "법수산은 군성의 북쪽으로 30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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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함안 차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함안 차사(咸安差使)」는 반드시 죄인을 단죄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함안 땅으로 부임한 마지막 관리가 부친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된 노아(蘆兒)의 계교에 빠져서 결국 부친의 죄를 다스리지도 못하고 오히려 놀림감이 되었다는 기생의 지략담이고, 함안 차사라는 명칭 유래담이다. 또한 부친을 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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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문신 조수천의 문집. 조수천(趙壽千)[1482~1553]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중수(仲叟), 호는 북계(北溪)이다. 함안군 군북면 원북동에서 태어났다. 어계(漁溪)조려(趙旅)의 손자로 아버지는 좌윤(左尹) 조금호(趙金虎)이고, 어머니는 유숙(柳塾)의 딸인 진주 유씨(晉州柳氏)이다. 초취 부인은 이세분(李世芬)의 딸인 전의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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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에 편찬된 경상남도 칠원군의 읍지. 칠원 지역은 신라 때 칠토현(漆吐縣)에서 시작하여 칠제(漆堤), 칠원, 구성(龜城), 무릉(武陵) 등으로 불려졌다. 1899년 칠원현은 군상리면(郡上里面)을 포함해 4개 면으로 이루어졌다. 칠원군 원호(元戶)는 2,247호이고, 인구는 남자 5,643명, 여자 3,816명으로 총 9,459명이었다. 1898년을 기준으로 파악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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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에 편찬된 경상남도 칠원현의 읍지. 칠원 지역은 신라 때 칠토현(漆吐縣)에서 시작하여 칠제(漆堤), 칠원, 구성(龜城), 무릉(武陵) 등으로 불려졌다. 1786년 칠원현은 현상리면(縣上里面)을 포함해 4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읍치에서 40리나 떨어진 구산면(龜山面)은 창원부(昌原府)의 경계를 넘어야 하는 월경지(越境地)이다. 1786년의 칠원현 원호(元戶)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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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의 역사와 문화 전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1997년에 발행한 향토지. 함안 지역은 조선 시대 한강(寒岡)정구(鄭逑)가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지인 『함주지(咸州誌)』를 편찬했던 곳이란 자부심을 가진 곳이다. 하지만 1899년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가 편찬되고 난 이후에는 독자적인 지방지가 편찬된 적이 없다. 비록 1995년에 『함주지』가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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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에 있는 함안 문화원에서 매년 발간하는 문예지. 경상남도 함안군은 아라가야(阿羅伽倻)의 유적이 남아 있는 고장으로 서원(書院)·누(樓)·정(亭)·제(齊)가 많으며, 선비가 많이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함안 문화(咸安文化)』에서는 이러한 함안군의 문화유산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료의 발굴도 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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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오횡묵이 편찬한 경상남도 함안군에 관한 기록. 『함안 총쇄록(咸安叢鎖錄)』은 오횡묵(吳宖默)[?~?]이 함안 군수로 재직한 1889년 4월부터 1893년 2월까지의 각종 통치 업무, 지역 인사들과의 교류 등 부임지에서의 전반적 상황을 매일 자세하게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을 엮은 책이다. 2003년 함안 문화원에서 번역하여 『경상도 함안군 총쇄록(慶尙道咸安郡叢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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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오횡묵이 편찬한 경상남도 함안군에 관한 기록. 『함안 총쇄록(咸安叢鎖錄)』은 오횡묵(吳宖默)[?~?]이 함안 군수로 재직한 1889년 4월부터 1893년 2월까지의 각종 통치 업무, 지역 인사들과의 교류 등 부임지에서의 전반적 상황을 매일 자세하게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을 엮은 책이다. 2003년 함안 문화원에서 번역하여 『경상도 함안군 총쇄록(慶尙道咸安郡叢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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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경상남도 함안군을 대상으로 편찬한 종합 인문 지리서. 함안 지역에는 일찍이 변진안야국(弁辰安耶國), 아라가야(阿羅伽倻), 아시량군(阿尸良郡), 함안군(咸安郡), 함주현(咸州縣)과 함주군(咸州郡)이 설치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했다.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1786]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은 병곡면(竝谷面)을 비롯한 18개 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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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편찬된 종합 인문 지리서. 함안 지역에는 일찍이 변진안야국(弁辰安耶國), 아라가야(阿羅伽倻), 아시량군(阿尸良郡), 함안군(咸安郡), 함주현(咸州縣)과 함주군(咸州郡)이 설치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했다.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1899]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은 병곡면(竝谷面)을 비롯한 18개 면으로 구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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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함안 지역의 유향소(留鄕所)와 향청(鄕廳) 품관 구성원의 명부. 함안에서도 조선 전기부터 지역의 명망 있는 사족들을 중심으로 향안이 작성되었으나 화재와 임진왜란으로 함안의 향안과 보(譜)가 함께 소실되었다. 1596년 안옥(安沃)이 지방의 원로들과 향안의 중수를 의논하여 『함주 향안(咸州鄕案)』 초고를 완성하였다. 정유재란 때 이기(李夔)의 노력으로 초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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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정구가 편찬한 경상도 함안군의 읍지. 함주 군수[함안 군수] 정구(鄭逑)가 쓴 『함주지(咸州誌)』의 서문에서 편찬과 간행 계기를 엿볼 수 있다. “함주군은 땅이 넓으나 생산되는 산물은 많지 않고 풍속이 저속해서 순후(淳厚)하지 못하였다. 옛날을 상고해 보니 선비를 배출한 곳이 아닌 것도 아니며, 지금을 살펴보니 아직 문헌을 고징(考徵)할 것이 없다. 어찌 이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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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의 함안 성산산성 유적지 발굴 과정에서 수습된 700여 년 전 고려 시대의 연꽃 씨앗이 발아하여 피운 연꽃 아라 홍련. 전국 최다(最多) 목간(木簡) 출토지로 유명한 함안 성산산성(咸安城山山城)[사적 제67호] 유적지의 저수 시설 내에서 연꽃 씨앗이 다수 수습되었다. 2009년 4월 2일 함안 성산산성을 발굴한 국립 가야 문화재 연구소가 15알을 인수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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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 구역. 소(所)는 향(鄕)이나 부곡과 더불어 고려 시대에 각 지역에 설치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소는 총 285곳, 경상도 지역은 58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다섯 곳이 있고, 칠원현에는 소가 설치되지 않았다. 소의 거주민들은 금·은 등의 광산물, 비단·명주 등의 수공업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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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윤내리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 구역. 부곡(部曲)은 향(鄕), 소(所)와 더불어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중기까지 지속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부곡은 총 431곳, 경상도 지역은 240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3곳의 부곡이 있었고, 칠원현에는 1곳의 부곡이 있었다. 감물곡(甘勿谷) 부곡은 함안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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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걸을 시조로 하고, 안유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세거 성씨. 광주 안씨(廣州安氏)는 경기도 광주(廣州)를 본관으로 하며, 고려태조 때 대장군으로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진 안방걸(安邦傑)을 시조로 삼고 있다. 오늘날 광주 안씨는 모두 함안 입향조 안유(安綏)의 후손들이다. 광주 안씨를 '광릉 안씨(廣陵安氏)'라고도 한다. 함안군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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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의 옛 이름. 함안군의 옛 지명으로는 금라(金羅) 이외에도 아라가야(阿羅伽耶), 아야가야(阿耶伽耶), 아라국(阿羅國), 안야국(安邪國), 안라(安羅), 전라(前羅), 아량촌(阿良村), 아라라성(阿羅羅城) 등이 있다. 현재의 함안군은 가야의 아시량국[아라가야·안라국]이었다가, 560년경 신라에 복속되어 아시량군이 되었다. 신라경덕왕 대인 7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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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의 옛 이름. 함안군의 옛 지명으로는 금라(金羅) 이외에도 아라가야(阿羅伽耶), 아야가야(阿耶伽耶), 아라국(阿羅國), 안야국(安邪國), 안라(安羅), 전라(前羅), 아량촌(阿良村), 아라라성(阿羅羅城) 등이 있다. 현재의 함안군은 가야의 아시량국[아라가야·안라국]이었다가, 560년경 신라에 복속되어 아시량군이 되었다. 신라경덕왕 대인 7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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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에 위치한 자연 습지.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함안에는 습지(濕地)가 많다. 지금은 우포늪이 있는 창녕군을 우리나라 내륙 습지의 상징으로 여기지만, 예로부터 낙동강 제1 지류인 남강의 하상이 완만해지는 함안 지역에 다다르면 크고 작은 다양한 습지가 발달하였다. 함안의 전체적인 형상은 전형적인 남고 북저 형태로 남쪽이 높으며, 북서쪽과 동쪽은 곡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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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관문 성. 내곡리 대현관문성(內谷里大峴關門城)은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와 성격을 파악할 수 없으나, 삼국 시대에 진동 방면에서 가야읍 쪽으로 진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 한티 고개에서 동서로 뻗은 능선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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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있던 제단과 사당. 단묘(壇廟)는 조선 시대에 제사를 지내던 각종 제단과 사당을 지칭한다.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단묘로는 관에서 설치한 사직단(社稷壇), 향교에 있는 문묘(文廟), 여단(厲壇), 성황사(城隍祠), 기우제단 등이 있다. 함안의 단묘와 관련된 기록으로는 『함주지(咸州誌)』의 단묘(壇廟)조의 기록이 있다. 1587년(선조 20) 정구(鄭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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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법정리. 덕대리(德垈里)에 속한 덕촌(德村) 마을은 약 500년 전에 현재 군북 초등학교 앞에서부터 마을에 이르는 지역까지 무성한 숲이 우거져 있었는데 이 숲을 방풍으로 삼아 형성되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바람으로 생기는 피해를 숲이 막아 주어 큰 덕을 보게 되었다고 덕촌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지명에서 덕대리가 유래되었다고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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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법정리. 덕대리(德垈里)에 속한 덕촌(德村) 마을은 약 500년 전에 현재 군북 초등학교 앞에서부터 마을에 이르는 지역까지 무성한 숲이 우거져 있었는데 이 숲을 방풍으로 삼아 형성되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바람으로 생기는 피해를 숲이 막아 주어 큰 덕을 보게 되었다고 덕촌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지명에서 덕대리가 유래되었다고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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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 창건되었던 서원. . 도림 서원(道林書院)은 1702년(숙종 28) 정구(鄭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정구는 1586년(선조 19)에 부임하여 1588년(선조 21)까지 함안 수령(咸安守令)으로 재직하면서 조선 시대 최초의 지방지인『함주지(咸州誌)』를 발간하였다. 도림 서원은 1702년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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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 관아나 역(驛)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에는 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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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절터. 『함주지(咸州誌)』 불우조(佛宇條)에는 쌍안산(雙岸山)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정확한 유래나 사찰의 규모에 대해서는 명기되어 있지 않다. 쌍안산은 현재의 백이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함주지』 산천조(山川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군의 관아에서 서쪽으로 20리[7.85㎞]에 위치하는데, 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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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문인이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창작 활동. 농경 문화가 일찍부터 정착하여 발달한 함안은 서원, 향교, 불교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 예술이 꽃을 피운 곳이다. 문학 역시 인간의 삶을 반영하여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며 변화를 거듭해 왔다. 선사 시대부터 발생한 문학의 기원은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말산리 고분군에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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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를 원조로 하고, 박언침을 시조로 하며, 박한주·박경원·박경현 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세거 성씨. 밀양 박씨는 원조(元祖)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손인 경명왕(景明王)의 세자 박언침(朴彦忱)이 밀성 대군(密城大君)에 봉해진 연유에서 본관을 밀양으로 하게 된 성씨이다. 이를 밀성 박씨(密城朴氏)라고도 한다. 밀양 박씨가 함안에 처음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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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과 진주시 지수면에 걸쳐 있는 산. 방어산(防禦山)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과 『함주지(咸州誌)』[1587]에 일명 대산[방아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함안 쪽에서 군 서쪽의 방어산을 바라보면 흡사 옛날 민간의 디딜방아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데서 유래하지 않았나 짐작되며, 지금도 방아산이라고 부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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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부곡(部曲)은 향(鄕), 소(所)와 더불어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중기까지 지속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부곡은 총 431곳, 경상도 지역은 240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3곳의 부곡이 있었고, 칠원현에는 1곳의 부곡이 있었다. 본산 부곡(本山部曲)은 함안군의 3곳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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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사내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봉산산성(蓬山山城)은 함안 포덕산성(咸安飽德山城) 및 여항산성(艅航山城)과 연계하여 함안 지역을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세 봉우리를 독립적으로 두르는 내성은 아라가야에 의해 축조되었으나 외성의 축조 시기는 알 수 없다. 삼봉산의 북쪽 능선에 외성의 성벽을 쌓지 않았다는 점과 성벽의 축조 수법이 전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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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주동리와 내곡리 일대에 있는 산. 정상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어 예로부터 봉화산(烽火山)이라고 불리었으며 봉곡뒷산, 감현뒷산 또는 파봉산, 파산이라고도 부른다. 봉화산[649m]은 산정이 비교적 험준하고 산기슭도 급경사를 이룬다. 산 정상에 오르면 남쪽으로는 진동만과 대현관문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로는 함안 성점산성[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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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여 활동하고 있는 종교.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현재 법등을 밝히고 있는 사찰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원효암(元曉庵)과 장춘사(長春寺) 등을 꼽을 수 있다. 방어산(防禦山)에 소재한 함안 방어산 마애 약사여래 삼존 입상(咸安防禦山磨崖藥師如來三尊立像)[보물 제159호]은 신라 하대 이 지역 사람들이 신행한 불교 신앙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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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 구역. 소(所)는 향(鄕)이나 부곡과 더불어 고려 시대에 각 지역에 설치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소는 총 285곳, 경상도 지역은 58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다섯 곳이 있고, 칠원현에는 소가 설치되지 않았다. 소의 거주민들은 금·은 등의 광산물, 비단·명주 등의 수공업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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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의 불교 전통을 확인하게 해주는 불교 신행의 중심 공간인 사찰과 암자. 절, 사원, 정사 등으로도 불리는 사찰은 불도를 닦는 수행 공간이자 한국 전통문화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는 많은 사찰이 소재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전통 불교 건축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사찰은 여항산(艅航山)의 원효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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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분포하는 주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산지(山地)는 기복이 뚜렷하고 주위의 저평한 지역과 다소 명백한 산록(山麓)[산기슭]에 의해 구별되는 지표의 일부를 말한다. 평지·대지·구릉지에 비하여 기복이 크고 급경사인 부분이 뚜렷하며,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대지(臺地)와 구별하는 의미로는 기복이 뚜렷한 것 외에 지질 구조가 복잡한 것을 들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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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서촌리(西村里)는 서촌(西村) 마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서촌 마을의 지명은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서촌리의 서쪽 경계부에 위치한 악양루(岳陽樓)는 아현연(阿峴淵)이라고도 하였으며 함안천(咸安川)과 남강(南江)의 합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절벽 중간쯤에 누각(樓閣)이 하나가 있어 악양루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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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서촌리(西村里)는 서촌(西村) 마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서촌 마을의 지명은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서촌리의 서쪽 경계부에 위치한 악양루(岳陽樓)는 아현연(阿峴淵)이라고도 하였으며 함안천(咸安川)과 남강(南江)의 합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절벽 중간쯤에 누각(樓閣)이 하나가 있어 악양루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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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함안의 세거 성씨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초기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다. 조선 중기 한강(寒岡)정구(鄭逑)[1543∼1620]가 편찬한 『함주지(咸州誌)』와 매죽헌(梅竹軒)이명호(李明怘)의 「중수 향안 서(重修鄕案序)」에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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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라에 의해 아라가야가 멸망한 후 신라에 의해 소삼현(召彡縣)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4 지리1 강주(康州) 함안군 조에 "함안군은 법흥왕(法興王)이 많은 군사로 아시량국(阿尸良國)[아나가야(阿那伽耶)라고도 한다] 그 땅을 군(郡)으로 삼았다. 경덕왕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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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소(所)는 향(鄕)이나 부곡과 더불어 고려 시대에 각 지역에 설치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소는 총 285곳, 경상도 지역은 58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다섯 곳이 있고, 칠원현에는 소가 설치되지 않았다. 소의 거주민들은 금·은 등의 광산물, 비단·명주 등의 수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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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분포하는 습기가 많은 축축한 땅. 습지(濕地)란 유속이 느리며 연중 수자원에 의해 습윤된 조건을 갖추거나 유지하고 있으며, 생물의 다양성이 극히 높은 지역을 말한다. 이를 '늪지'라고도 한다. 함안은 우리나라에서 자연 늪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이름을 가진 늪이 무려 55개나 되고, 1~2년만 물을 담으면 늪으로 살아나는 지역도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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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분포하는 습기가 많은 축축한 땅. 습지(濕地)란 유속이 느리며 연중 수자원에 의해 습윤된 조건을 갖추거나 유지하고 있으며, 생물의 다양성이 극히 높은 지역을 말한다. 이를 '늪지'라고도 한다. 함안은 우리나라에서 자연 늪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이름을 가진 늪이 무려 55개나 되고, 1~2년만 물을 담으면 늪으로 살아나는 지역도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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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산서리에 있는 조선 시대 안상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안상의(安尙義)는 순흥 안씨(順興安氏) 취우정파로 자는 사언이다. 『함주지(咸州誌)』 후집에 안상의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황의 증손이며, 호는 희구재(喜懼齋)이다. 어릴 때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고을 사람들이 작은 학동이라 일컬었다. 부모를 받듦에 지극한 효성으로 온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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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와 진주시 사봉면, 이반성면을 연결하는 고개. 어속 고개는 어시기재 또는 어실이 고개라고도 하는데, 어속(於束)이라 하는 것은 예부터 골이 깊고 외진 곳이어서 화적떼가 출몰하여 혼자서 고개를 넘다가는 봉변을 당하기 쉬우므로 여러 사람이 무리를 지어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형도에는 '어색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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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서남부 지역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의 관아나 역(驛)의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의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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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의 교통로상에 세워진 관영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고려 성종 대에 역참제가 구체화되어 전국 22도(道) 525개소에 역(驛)이 만들어졌다. 각 역에는 말과 역장(驛長), 역정(驛丁)을 두었다. 조선 후기에는 모든 역승(驛丞)이 찰방(察訪)으로 승격되었다. 역은 주로 중앙과 지방 사이의 왕명과 공문서를 전달하고 물자를 운송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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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하여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열녀(烈女)는 위급함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거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한 부녀자를 일컫는 말이다. 함안 관련 각종 읍지 등 지리서에서 함안의 열녀를 소개하기 시작한 것은 한강(寒岡)정구(鄭逑)[1543∼1620]가 편찬한 『함주지(咸州誌)』[1587]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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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옥렬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도기 가마터. 옥렬리 도기 가마터는 조선 시대에 운영되었던 도기 가마터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는 많은 도기 가마터가 존재하고 있는데, 그중 분포가 많은 곳 가운데 하나가 옥렬리이다. 『함주지(咸州誌)』 총담조(叢談條)에 "본 군에는 본래 옹기 굽는 사람이 없었다. 직제학 어변갑(魚變甲)이 진주 목사와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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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옥렬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도기 가마터. 옥렬리 도기 가마터는 조선 시대에 운영되었던 도기 가마터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는 많은 도기 가마터가 존재하고 있는데, 그중 분포가 많은 곳 가운데 하나가 옥렬리이다. 『함주지(咸州誌)』 총담조(叢談條)에 "본 군에는 본래 옹기 굽는 사람이 없었다. 직제학 어변갑(魚變甲)이 진주 목사와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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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법정리. 원북리(院北里)는 본동(本洞), 태실[台谷], 새절골[新寺谷]의 세 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원북(院北)이라는 지명은 과거 진양 방면의 역원인 어속원의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원(院)의 북(北)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함주지(咸州誌)』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새절골은 임진왜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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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 관아나 역(驛)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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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공자를 시조로 하고 있는 전통적인 학문 및 종교. 함안은 지리상 경상도의 남북과 동서가 교류하는 지점으로, 퇴계학파와 남명학파의 학문이 어우러진 곳이다. 1906년 함안군과 칠원현(漆原縣)이 합병되어 이루어진 고을로, 역사적으로 많은 인물이 배출되고 높은 학술적 성취를 이룬 곳이다. 함안은 아라가야(阿羅伽耶)가 건국된 이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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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에 있는 법정리. 윤내리(輪內里)에는 윤내(輪內)·부동(釜東)·부남(釜南)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윤내는 마태산 안쪽에 자리한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안골이라고도 한다. 부동은 구산동(龜山洞)이라 불리다가 마을 주변 지세가 장고등(長鼓嶝)과 북실[鼓谷], 북두루미의 모양을 하고 있어 장고와 북이 있으니 가마솥을 걸어 놓고 잔치를 벌여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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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에 있는 조선 전기 이개지의 묘. 이개지 묘(李介智墓)를 비롯하여 모두 7기의 묘가 모여 있으며, 5기의 묘비가 있다. 묘역 가장 위쪽에 모촌(茅村)이정의 묘가 있다. 이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여함으로 조식(曺植)의 문하생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함안 군수 유숭인의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의병을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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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에 있는 조선 전기 이개지의 묘. 이개지 묘(李介智墓)를 비롯하여 모두 7기의 묘가 모여 있으며, 5기의 묘비가 있다. 묘역 가장 위쪽에 모촌(茅村)이정의 묘가 있다. 이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여함으로 조식(曺植)의 문하생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함안 군수 유숭인의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의병을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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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 관아나 역(驛)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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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 문신. 이정(李瀞)[1541~1613]은 조선명종, 선조, 광해군 연간에 경상 우도 지역에서 활약한 학자이다. 남명(南冥)조식(曺植)에게 수학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조식의 선양 사업에 힘썼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여함(汝涵), 호는 모촌(芧村). 증조할아버지는 병조 참지(兵曹參知)를 지낸 이중현(李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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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 관아나 역(驛)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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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또는 집단. 1454년(단종 2)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실린 함안의 인구는 함안군이 732가구에 3,266명, 칠원현이 337가구에 1,330명, 구산현이 104가구에 300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1587년(선조 20) 『함주지(咸州誌)』에 실린 함안군의 인구는 17개 리에 총 1만 5969명[남 8,177명/여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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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 관아나 역(驛)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에는 월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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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칭을 시조로 하고, 이오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세거 성씨. 재령 이씨(載寧李氏)는 황해도 재령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이를 '안릉 이씨(安陵李氏)'라고도 한다. 2000년도 통계 자료에 의하면 전국 가구 수는 1만 6000여 호이며, 종원은 약 5만 여 명이다. 이 중 약 80% 이상이 함안에 입향한 모은(茅隱)이오(李午)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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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특정 근거를 가지고 어떤 사실이나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 전설(傳說)은 전승자가 진실되다 믿고 실제로 있었다고 주장하며,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가 제시되고, 특정의 개별적 증거물을 갖는 이야기를 말한다. 전설은 무엇보다 진실성을 갖는다. 연대, 사건 발생의 장소, 주인공 등이 명시되어 있고, 민중의 경험과 사건의 진실성이 표현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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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함안 지역 역사. 『여지도서(輿地圖書)』와 『함주지(咸州誌)』등을 보면 조선 시대 함안군은 김해진(金海鎭)의 관할이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경상도 외관직(外官職) 조에 보면 함안은 경상도 내에서 종 4품의 군수가 파견된 14곳 중의 하나였다. 『함주지』에는 당시 함안 지역 관할 하의 각 리와 그 소속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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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함안 지역 역사. 『여지도서(輿地圖書)』와 『함주지(咸州誌)』등을 보면 조선 시대 함안군은 김해진(金海鎭)의 관할이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경상도 외관직(外官職) 조에 보면 함안은 경상도 내에서 종 4품의 군수가 파견된 14곳 중의 하나였다. 『함주지』에는 당시 함안 지역 관할 하의 각 리와 그 소속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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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년에 편찬된 현존 최고의 함안 읍지. 『함주지(咸州誌)』는 현존하는 수많은 읍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최고의 읍지이다. 함안 군수 한강(寒岡)정구(鄭逑)와 함안의 재지 사족들이 함께 편찬한 『함주지』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체제를 계승 발전시켜, 보다 풍부한 지역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16세기 이후 편찬된 읍지들은 거의 『함주지』의 체제를 따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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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문신. 조열(趙悅)은 고려공민왕(恭愍王) 때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면서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등과 교유하였고, 고려 말 벼슬을 버리고 함안으로 낙향하였다. 조선 건국 후 출사를 권유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금은(琴隱). 증조할아버지는 삼사 우윤을 지낸 조희(趙禧)이고, 할아버지는 조지흥(趙之興)이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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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문신. 조열(趙悅)은 고려공민왕(恭愍王) 때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면서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등과 교유하였고, 고려 말 벼슬을 버리고 함안으로 낙향하였다. 조선 건국 후 출사를 권유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금은(琴隱). 증조할아버지는 삼사 우윤을 지낸 조희(趙禧)이고, 할아버지는 조지흥(趙之興)이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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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절터.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 968번지와 주서리 967번지, 주서리 968-1번지에 위치한다. 주리사(主吏寺)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 『함주지(咸州誌)』에서 여항산에 자리한 것으로 전해져 온 사찰이다. 현재 주리사 터로 추정되는 곳은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 좌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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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영운리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소(所)는 향(鄕)이나 부곡과 더불어 고려 시대에 각 지역에 설치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소는 총 285곳, 경상도 지역은 58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다섯 곳이 있고, 칠원현에는 소가 설치되지 않았다. 소의 거주민들은 금·은 등의 광산물, 비단·명주 등의 수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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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같은 성과 본관을 가진 사람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관(本貫)이 같은 부계(父系)의 혈족들이 모둠살이를 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를 '동성촌(同姓村)', '동족 부락', '동족 마을', '동성 마을' 등이라고도 한다. 집성촌은 대체로 함안군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함안의 성씨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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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같은 성과 본관을 가진 사람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관(本貫)이 같은 부계(父系)의 혈족들이 모둠살이를 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를 '동성촌(同姓村)', '동족 부락', '동족 마을', '동성 마을' 등이라고도 한다. 집성촌은 대체로 함안군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함안의 성씨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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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소(所)는 향(鄕)이나 부곡과 더불어 고려 시대에 각 지역에 설치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소는 총 285곳, 경상도 지역은 58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다섯 곳이 있고, 칠원현에는 소가 설치되지 않았다. 소의 거주민들은 금·은 등의 광산물, 비단·명주 등의 수공업 제품, 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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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춘곡리에 있던 교통·통신 시설.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에 보이는 군내의 주요 도로망을 살펴보면 동쪽으로 창원 경계까지 25리[약 9.82㎞]이고, 서쪽으로 진주 경계까지 31리이며, 남쪽으로 진해 경계까지 27리[약 12.17㎞]이고, 북쪽으로 의령 경계까지 38리[약 14.92㎞]이다. 군외(郡外)로는 서울까지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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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전근대 함안과 칠원의 충신 인물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관찬 지리서와 두 지역의 각종 '읍지(邑誌)'의 인물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함주지(咸州誌)』[1587]에서부터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1899]나 『칠원군 읍지(漆原郡邑誌)』[1899]에 이르기까지 함안 관련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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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전근대 함안과 칠원의 충신 인물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관찬 지리서와 두 지역의 각종 '읍지(邑誌)'의 인물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함주지(咸州誌)』[1587]에서부터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1899]나 『칠원군 읍지(漆原郡邑誌)』[1899]에 이르기까지 함안 관련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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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 관아나 역(驛)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에는 월촌원(月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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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일대에서 재배 또는 사육되어 생산되는 농축산물과 그 가공품 일체. 함안군은 낙동강(洛東江)과 남강(南江) 연안에 인접해 있고, 토양이 비옥해 농업이 발전한 지역이다. 1587년(선조 25)에 편찬된 『함주지(咸州誌)』를 통해서 당시 함안 지역이 광활한 평야를 갖추고 있었으나 지대가 낮아 홍수의 피해가 잦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둑을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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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에 있던 교통·통신 시설.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에 보이는 군내의 주요 도로망을 살펴보면 동쪽으로 창원 경계까지 25리[약 9.82㎞]이고, 서쪽으로 진주 경계까지 31리이며, 남쪽으로 진해 경계까지 27리[약 12.17㎞]이고, 북쪽으로 의령 경계까지 38리[약 14.92㎞]이다. 군외(郡外)로는 서울까지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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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하기리(下基里)에 속한 자연 마을에는 기동(基洞)[터무]·무등·평기(平基)[하평]·신대(新垈) 등이 있다. 기동 마을은 과거 이 마을을 중심으로 서촌리의 서촌과 동촌을 합하여 터무라고 불렀는데 이는 문무(文武)를 겸비한 학자가 많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평기의 옛 지명은 미나리(彌羅里)로 제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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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하기리(下基里)에 속한 자연 마을에는 기동(基洞)[터무]·무등·평기(平基)[하평]·신대(新垈) 등이 있다. 기동 마을은 과거 이 마을을 중심으로 서촌리의 서촌과 동촌을 합하여 터무라고 불렀는데 이는 문무(文武)를 겸비한 학자가 많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평기의 옛 지명은 미나리(彌羅里)로 제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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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한문으로 된 시, 학문, 한학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함안 지역의 한문학(漢文學)은 조선 왕조의 건국과 함께 본격적으로 발전할 계기가 마련된다. 고려 왕조가 망하자 금은(琴隱)조열(趙悅)과 모은(茅隱)이오(李午) 등은 경상남도 함안 지역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면서 함안 지역에 학문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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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한문으로 된 시, 학문, 한학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함안 지역의 한문학(漢文學)은 조선 왕조의 건국과 함께 본격적으로 발전할 계기가 마련된다. 고려 왕조가 망하자 금은(琴隱)조열(趙悅)과 모은(茅隱)이오(李午) 등은 경상남도 함안 지역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면서 함안 지역에 학문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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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제방 유적. 가야리 전 토성(伽耶里傳土城) 터는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66번지 가야동에 위치한다. 가야리 전 토성 터는 『함주지(咸州誌)』의 기록을 근거로 신가야동을 에워싸는 아라가야의 왕궁 터로 알려져 왔다. 다만 가야국 구허라고 기록하고 있을 뿐 왕궁 터라고 기술한 것은 아니며,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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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송정리·모곡리에 있는 가야 시대·신라 시대의 산성. 함안 문암산성(咸安門巖山城)의 건립 경위는 알 수 없지만 함안 문암산성Ⅰ은 아라가야에 의해서, 함안 문암산성Ⅱ는 신라에 의해서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함주지(咸州誌)』 고적조의 기록으로 보아 1587년(선조 20) 이전에 성곽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경상남도 함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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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와 함안면 괴산리에 걸쳐 있는 신라 시대의 산성. 함안 성산산성(咸安城山山城)은 국립 가야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17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결과, 6세기 중반에 신라에 의해 축성된 함안 지역의 치소성으로 밝혀졌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함주지(咸州誌)』에서 성산에 가야국 구허(舊墟)가 위치하였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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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와 산인면 입곡리에 걸쳐 있는 신라 시대의 산성. 함안 성점산성(咸安城岾山城)의 건립 경위를 알려 주는 기록은 없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을 참고할 때 조선 전기까지는 성곽의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되는 1587년(선조 20)에는 고적조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587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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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돈을 시조로 하고 함안을 본관으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토착 세거 성씨. 함안 윤씨의 시조는 고려원종(元宗) 때 함안백(咸安伯)에 봉해진 윤돈(尹敦)이다. 큰 아들 윤희보(尹希甫)가 함안에 정착한 후 그의 후손들이 윤돈을 시조로 삼고 함안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함안 윤씨의 시조 윤돈의 할아버지는 윤위(尹威)이다. 파평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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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토착 세거 성씨. 함안 이씨는 이상(李尙)을 시조로 하고 고려조부터 함안에 토착하여 대대로 살아온 성씨이다. 이를 '파산 이씨(巴山李氏)'라고도 한다. 함안의 성씨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공통으로 이씨·조씨(趙氏)·채씨·윤씨·유씨(劉氏)·정씨(鄭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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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토착 세거 성씨. 함안 조씨는 시조 조정(趙鼎) 이후로 함안에 정착하여 대를 이어 살아서 함안 지역 최대의 성족(盛族)으로 발전한 성씨이다. 이를 '파산 조씨(巴山趙氏)' 라고도 한다. 201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함안 조씨의 후손은 전국에 총 12만 61가구에 38만 5715명으로 집계된다. 함안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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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토착 세거 성씨. 함안 조씨는 시조 조정(趙鼎) 이후로 함안에 정착하여 대를 이어 살아서 함안 지역 최대의 성족(盛族)으로 발전한 성씨이다. 이를 '파산 조씨(巴山趙氏)' 라고도 한다. 201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함안 조씨의 후손은 전국에 총 12만 61가구에 38만 5715명으로 집계된다. 함안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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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와 주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봉수대. 봉수(烽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밤에는 횃불[烽]로, 낮에는 연기[燧]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봉수제는 기록상으로 고려 중기[12~13세기]에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 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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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와 주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봉수대. 봉수(烽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밤에는 횃불[烽]로, 낮에는 연기[燧]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봉수제는 기록상으로 고려 중기[12~13세기]에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 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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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와 북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읍성. 함안읍성(咸安邑城)은 연해 읍성으로 1510년(중종 10)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축성되었으며, 1555년(명종10)의 증축으로 규모가 확장되었다. 읍성의 규모와 구조, 시설에 대해서는 『함주지(咸州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초축 시의 규모는 5,160척[1.56㎞], 증축 시의 규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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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홍수 방지와 농경지 확보를 위해 하천의 가장자리에 흙으로 쌓아 올린 둑. 경상남도 함안의 제 하천에 조성된 제방은 338㎞로 전국 최장이다. 함안은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하천의 역류(逆流)가 심한 곳이다. 현재의 함안은 이러한 지형적 취약점을 극복하며 성장한 결과이다. 그리고 지형적 문제 극복의 중심에는 바로 제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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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홍수 방지와 농경지 확보를 위해 하천의 가장자리에 흙으로 쌓아 올린 둑. 경상남도 함안의 제 하천에 조성된 제방은 338㎞로 전국 최장이다. 함안은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하천의 역류(逆流)가 심한 곳이다. 현재의 함안은 이러한 지형적 취약점을 극복하며 성장한 결과이다. 그리고 지형적 문제 극복의 중심에는 바로 제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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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관립 교육 기관. 함안 향교(咸安鄕校)는 1392년(태조 원년)에 홍문관(弘文館)의 인가를 받아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 청곡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설이 있으나 사료적인 근거가 불확실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봉성동의 악어담에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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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관립 교육 기관. 함안 향교(咸安鄕校)는 1392년(태조 원년)에 홍문관(弘文館)의 인가를 받아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 청곡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설이 있으나 사료적인 근거가 불확실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봉성동의 악어담에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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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함안 지역에 설치한 관직. 고려 시대에 지방 세력의 통제를 강화하고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자사(刺史) 제도를 받아들였다. 자사는 당나라 안사의 난 이후 관찰사·단련사·자사·방어사를 설치하고 외관제(外官制)를 편성할 때 지방에 파견된 관직이다. 983년(성종 23) 12목을 개편하여 12절도사를 두고, 이보다 작은 주군(州郡)에는 도단련사·단련사·자사·방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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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일대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신라 경덕왕이 757년 지방 9개 주의 명칭을 비롯한 군현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소삼현(召彡縣)을 현무현(玄武縣)으로 바꾸었다. 군현 명칭의 변경은 지방에 대한 중앙 집권적 통치의 강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4 지리1 강주(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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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의 관아나 역(驛)의 주변, 각 역 사이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에 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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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에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효성으로 어버이를 잘 섬긴 자녀. 효자는 부모를 극진히 섬겼거나 각종 형태의 효행이 알려진 인물이다. 효(孝)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정성껏 모시는 것뿐만 아니라 사망한 뒤에도 극진히 제사를 모시는 것 등을 포함한다. 전통 시대에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효행을 실천한 효자는 각종 지리서에서 함안군 44명, 칠원현 9명 등 총 53명 정도가 확인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