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대산면
-
1872년 제작된 『경상도 지도』에 수록된 옛 함안군의 관찬 지도. 조선 후기의 함안군(咸安郡)은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가야읍, 여항면, 군북면, 법수면, 대산면, 산인면 일대로 읍치는 함안면 봉성리이다. 함안 지역은 가야 제국 중에서 아라가야가 있었던 속으로 560년쯤 신라에게 멸망하여 편입되었다. 「함안군 지도(咸安郡地圖)」는 현재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
-
1894년 1월 12일 함안 지역 향전의 모순을 타파하고자 일어난 농민 항쟁. 조선 후기 사회는 농업 생산력의 발전과 상품 화폐 경제의 발전에 따른 양반 중심의 향촌 사회 질서가 변화해 가고 있었다. 특히 향촌 사회에서 재지 세력 사이에 각종 향권을 둘러싼 향전(鄕戰)이 발생하였다. 함안 지역의 향전은 남당과 북당의 대립에서 비롯하였다. 이는 북당인 조윤수가 반벌(班閥) 식자층 이...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운송 수단. 함안군은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남해 고속 도로와 연접하고, 중부 내륙 고속 도로가 남북으로 통과하며 인근 대도시인 창원, 부산, 진주, 대구 등과 접근성이 뛰어난 교통의 요충지이다. 그리고 경전선이 함안역, 군북역 등을 통과하여 경상남도와 전라도를 잇고 있다. 전통 시대 함안군의 도로는...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운송 수단. 함안군은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남해 고속 도로와 연접하고, 중부 내륙 고속 도로가 남북으로 통과하며 인근 대도시인 창원, 부산, 진주, 대구 등과 접근성이 뛰어난 교통의 요충지이다. 그리고 경전선이 함안역, 군북역 등을 통과하여 경상남도와 전라도를 잇고 있다. 전통 시대 함안군의 도로는...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구혜리(九惠里)에 속한 구혜 마을은 논골[畓谷]이라고도 하는데 옛날부터 다른 곳에 비해 늪보다 비교적 논이 많아 논골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구혜리 북쪽 경계의 남강(南江) 변에 위치한 송도 나루[松島津]는 함안군 대산면과 의령군 지정면을 연결하는 나루였으나 지금은 다리가 설치되어 나루의 구실은 없어졌다. 송도는 연꽃...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구혜리(九惠里)에 속한 구혜 마을은 논골[畓谷]이라고도 하는데 옛날부터 다른 곳에 비해 늪보다 비교적 논이 많아 논골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구혜리 북쪽 경계의 남강(南江) 변에 위치한 송도 나루[松島津]는 함안군 대산면과 의령군 지정면을 연결하는 나루였으나 지금은 다리가 설치되어 나루의 구실은 없어졌다. 송도는 연꽃...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대사리(大沙里)는 대사동(大沙洞)과 사촌동(沙村洞)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사동은 과거 그릇을 굽는 가마터가 있었다고 하여 사기실 또는 사기소(沙器所)라 하였다. 사곡(沙谷)은 대사동이 위치한 곳으로 안곡산(安谷山) 서북 비탈면으로 발달한 계곡이며 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가마터가 세 군데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남아...
-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는 법정면.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대산면(代山面)은 원래 대산리로 함안에서 제일 큰 리였다는 것에서 명칭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대산면은 원래 대산리였다. 조선 후기 리가 면으로 바뀌면서 내대산면과 외대산면으로 분리되었다. 이후 1914년 행정 구역 조정 시에 내대산면과 외대산면을 대산면으로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구혜리에 있는 대산면 관할 행정 기관. 경상남도 함안군을 구성하고 있는 2개 읍[가야읍·칠원읍], 8개 면[함안면·군북면·법수면·대산면·칠서면·칠북면·산인면·여항면] 중에서 대산면의 행정 사무를 맡아 보는 기관이다. 대산면 사무소는 대산면의 행정 능률 및 주민 편의 도모와 함께 주민 등록 관리 업무, 주민 행복 지원 업무, 사...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부목리(富木里)는 부촌동(富村洞)·목지동(木池洞)·마산동(馬山洞)의 3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옛날에는 소리방[聲村]이라 불렀다. 부촌동은 부목리에서 제일 안쪽에 있는 마을로 일제 강점기 때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부자 동네라고 소문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촌 옆에는 낙동강(洛東江) 줄기가 흐르고, 강가에는 마당 같...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서촌리(西村里)는 서촌(西村) 마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서촌 마을의 지명은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서촌리의 서쪽 경계부에 위치한 악양루(岳陽樓)는 아현연(阿峴淵)이라고도 하였으며 함안천(咸安川)과 남강(南江)의 합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절벽 중간쯤에 누각(樓閣)이 하나가 있어 악양루라 부...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서촌리(西村里)는 서촌(西村) 마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서촌 마을의 지명은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서촌리의 서쪽 경계부에 위치한 악양루(岳陽樓)는 아현연(阿峴淵)이라고도 하였으며 함안천(咸安川)과 남강(南江)의 합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절벽 중간쯤에 누각(樓閣)이 하나가 있어 악양루라 부...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옥렬리(玉悅里)라는 지명은 옥산(玉山) 마을에서 유래된 것으로 옛날에 이 마을에 오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아서 오씨실[吳氏谷]이라 부른 것이 옥이실로 되었다가 지금의 옥열(玉悅)로 되었다. 또한 옥렬리는 옥산 마을의 옥(玉) 자와 이열(耳悅) 마을에서 열(悅) 자를 따서 옥열이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옥렬리에 속한...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장암(長岩)이라는 지명은 장포(長浦)와 대암(大岩)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대암 마을은 큰 바위들이 많아 붙여진 지명이며 산을 개간해 농경지로 활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바위가 많았다고 한다. 대암동(大岩洞)에 속하는 능골 마을[능곡 마을] 은 동네 뒷산에 300년 전에 축조된 순흥 안씨(順興安氏)의 커다...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장암(長岩)이라는 지명은 장포(長浦)와 대암(大岩)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대암 마을은 큰 바위들이 많아 붙여진 지명이며 산을 개간해 농경지로 활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바위가 많았다고 한다. 대암동(大岩洞)에 속하는 능골 마을[능곡 마을] 은 동네 뒷산에 300년 전에 축조된 순흥 안씨(順興安氏)의 커다...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함안 지역 역사. 『여지도서(輿地圖書)』와 『함주지(咸州誌)』등을 보면 조선 시대 함안군은 김해진(金海鎭)의 관할이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경상도 외관직(外官職) 조에 보면 함안은 경상도 내에서 종 4품의 군수가 파견된 14곳 중의 하나였다. 『함주지』에는 당시 함안 지역 관할 하의 각 리와 그 소속 방...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함안 지역 역사. 『여지도서(輿地圖書)』와 『함주지(咸州誌)』등을 보면 조선 시대 함안군은 김해진(金海鎭)의 관할이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경상도 외관직(外官職) 조에 보면 함안은 경상도 내에서 종 4품의 군수가 파견된 14곳 중의 하나였다. 『함주지』에는 당시 함안 지역 관할 하의 각 리와 그 소속 방...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하기리(下基里)에 속한 자연 마을에는 기동(基洞)[터무]·무등·평기(平基)[하평]·신대(新垈) 등이 있다. 기동 마을은 과거 이 마을을 중심으로 서촌리의 서촌과 동촌을 합하여 터무라고 불렀는데 이는 문무(文武)를 겸비한 학자가 많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평기의 옛 지명은 미나리(彌羅里)로 제방을...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하기리(下基里)에 속한 자연 마을에는 기동(基洞)[터무]·무등·평기(平基)[하평]·신대(新垈) 등이 있다. 기동 마을은 과거 이 마을을 중심으로 서촌리의 서촌과 동촌을 합하여 터무라고 불렀는데 이는 문무(文武)를 겸비한 학자가 많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평기의 옛 지명은 미나리(彌羅里)로 제방을...
-
조선 후기 함안 지역의 향권 장악을 둘러싼 재지 세력과 신흥 세력 간의 대립. 함안 지역에서 남당과 북당이 형성된 것은 북당의 영수 조윤수가 향권을 장악하려는 데서 기인한다. 본래 남당과 북당은 당파적 색깔에 의해서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조윤수가 함안 북쪽 내대산면에 거주하였고, 그의 반대파들 대부분이 남쪽에 거주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호방(戶房)을 중심으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