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산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대순(姜大珣)[1892~1944]은 아들 강기중(姜基中), 딸 강복기(姜福基)가 있다. 손자는 강호영(姜鎬英), 강호태(姜鎬台), 강호준(姜鎬畯)이 있고 3명의 손녀를 두었다. 강대기(姜大璣)가 셋째 아우이며, 독립운동가 강대한(姜大漢)과 강대익(姜大益)이 집안의 형이다. 강대순은 1892년 1월 16일 함안군 함안면 봉...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대한(姜大漢)[1886~1948]은 1886년 10월 23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아들은 강현중(姜賢中)·강경중(姜璟中)이 있고, 손자는 강호섭(姜鎬燮)·강호진(姜鎬珍)이 있다. 1919년 3·1 운동이 발생하자 함안에서도 거사하기로 하여 태극기와 선언문을 준비하였다.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장례식과 독립 선언식에...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구재옥(具載玉)[1890~1953]은 1890년 11월 13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동에서 태어났다. 구재옥이 참여한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국장을 위해 상경하였다가, 그곳에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한 후에 귀향한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은 이희석(李喜錫)과 안지호(安知鎬)의 지도로 시위를 철저히 준비하...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상집(金祥集)[1888~1939]은 1888년 12월 22일 함안군 여항면에서 태어났다. 한일 병합 당시 20대이던 김상집은 병들어 고통스러워하는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 한의학을 배워 한의사가 되었다. 한의사로 활동하면서 1917년 변상태(卞相泰)·남형우(南亨祐) 등과 대동 청년당(大東靑年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대동...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학곤(金學坤)[1889~?]은 함안군 함안면 북촌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병흠(趙丙欽), 조문국(趙文國), 한관렬(韓灌烈) 등을 통해 서울의 독립운동 소식을 접하고,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을 결의하였다. 김학곤은 비봉산 고천제(告天祭)와 태평루의 독립 선언식에 참석한 후 군중을 지휘...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노일(朴魯一)[1894~1963]은 1894년 10월 11일 함안군 여항면에서 태어났다. 아들로 박문규(朴文圭)가 있다. 박노일은 1919년 3월 19일 일어난 함안읍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의거 당일 비봉산에서 고천제를 지내고, 태평루에서 독립 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시위행진으로 이어졌는데 함안 경찰서 주재소로 가서 유치장을...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시중(安時中)[1880~1974]은 1890년 12월 20일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서 태어났다.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장례식과 독립 선언식에 참여하고 귀향한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한관렬(韓灌烈) 등이 계획하였다. 실질적 지도자는 이희석(李喜錫)으로, 안...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재형(安在瑩)[1882~1935]은 자는 희숙, 호는 도남이다. 아들 안인호(安寅鎬), 안정호(安丁鎬)와 3녀가 있다. 특히 장남 안인호는 함안 독립 유공자 유족회 대표로 활동하였고, 『함안 3·1 독립운동사 편찬 자료』를 펴내어 함안 독립 운동사 정립에 이바지하였다. 안재형은 1882년 6월 28일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종호(安宗鎬)[1886~1961]는 1886년 4월 24일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서 태어났다. 손자 안강영(安康榮)이 있다.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장례식과 독립 선언식에 참여하고 귀향한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한관렬(韓灌烈) 등이 계획하였다. 함안읍 만세...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읍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19일 일어났다.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배하러 갔다가 서울의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 등이 함안군 대산면의 안지호(安知鎬)와 의논하여 계획되었다. 3월 19일 정오 읍내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여 오...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용우(李龍佑)[1898~1930]는 1898년 12월 7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동에서 태어났다. 이용우는 나이 22세에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한 함안 지역 인사인 조한휘(趙漢輝)[한학 교사], 한종순(韓鍾淳)[당시 함안 면장 아들], 박건병(朴鍵秉)[동명 학교 교사] 등에게서 서울의 독립운동에 대해 전해 들었다. 이들은 3월 19일 함...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인구(李寅九)[1877~1924]는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에서 태어났다. 고종의 장례식에 참배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귀향한 조한휘(趙漢輝)[한학 교사], 한종순(韓鍾淳)[당시 함안 면장 아들], 박건병(朴鍵秉)[동명 학교 교사] 등에게서 서울의 독립운동에 대해 전해 들었다. 한종헌(韓鍾憲) 등...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찬영(李讚榮)[1894~1925]은 함안군 함안면 봉성동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국권 회복은 인재 양성에 있다고 보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모의하였다.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함안 지역 인사인 조한휘(趙漢輝)[한학 교사], 한종순(韓鍾淳)[당시 함안면...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희석(李喜錫)[1892~1950]은 함안군 함안읍 대산리에서 태어났으며, 함안군 가야면 검암리에서 자랐다. 1911년 상경하여 중동 학교를 졸업하고, 1914년부터 이중건(李重乾)이 설립한 함안군 여항면동명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였다. 이희석은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한 함안 지역 인사 한학 교사인 조한휘(趙...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종식(張鍾植)[1869~1949]은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함안 지역 인사 한학 교사인 조한휘(趙漢輝)와 이찬영(李讚榮) 등은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하여 3·1 운동을 경험하였다. 이들은 독립 선언문을 들고 함안으로 돌아와서 이희석(李喜錫), 한종순(韓...
-
일제 강점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계승(曺啓承)[1880~1943]은 1900년 옥천(沃川)송병선(宋秉璿)을 찾아가 교화를 받았고, 1905년 송병선이 순국한 후 복수를 다짐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안지호(安智鎬), 조성규(趙聖奎), 안재영(安在瑩) 등과 함안읍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들은 함안 장날에 의거하기로 모의하고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규(趙龍奎)[1880~1944]는 아들 조을석(趙乙錫), 손자 조현제(趙鉉濟), 증손자 조인래(趙仁來)을 두었다. 조용규가 참여한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장례식과 독립 선언식에 참여하고 귀향한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 등이 계획하였다. 함안읍 만세 운동의 실질적 지도자는 이희석(李喜錫)으로 안지호(安知鎬)와 함께 의거...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읍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19일 일어났다.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배하러 갔다가 서울의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 등이 대산면에 사는 안지호(安知鎬)와 의논하여 계획되었다. 3월 19일 정오, 읍내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 운동을 전하였다....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배하러 갔다가 서울의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 등에 의하여 계획되어 3월 19일 정오 읍내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며 일어났다. 오후 2시 3,000...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관렬(韓灌烈)[1892~1950]은 1892년 12월 18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아들로 한종호(韓鍾鎬)가 있다. 한관렬은 고종의 장례에 참배하기 위해 이찬영(李讚榮)·한종순(韓鍾淳)·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 등과 함께 상경하였다. 서울에서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귀향하여 함안...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종순(韓鍾淳)[1893~1932]은 1893년 11월 2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고종의 장례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조한휘(趙漢輝) 등이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한 뒤, 고향으로 귀향하여 함안면에서 만세 운동을 시도하였다. 이에 한종순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3월 19일 함안 장날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
일제 강점기 함안읍 만세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한종헌(韓鍾憲)[1898~1931]은 1898년 4월 3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아들로 한기중(韓基重)이 있다. 1919년 고종의 장례에 참배하기 위해 함안에서는 이찬영(李讚榮)·한종순(韓鍾淳)·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 등이 상경하였다. 그들은 서울에서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육 목표는 '지혜로운 어린이, 예절 바른 어린이, 조화로운 어린이, 꿈을 키우는 어린이'이다. 교훈은 '참되고 슬기롭고 튼튼한 어린이'이다. 1907년 8월 19일 사립 찬명 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08년 7월 1일 설립되었다. 1911년 5월 6일 함안 공립 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6월 1일 함...
-
1919년 3월 19일 경상남도 함안군 읍내 장날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함안의 3·1 운동은 경상남도 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규모와 만세 운동 횟수에서 최대 규모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함안에서 3·1 운동은 3월 9일 칠북면연개 장터 만세 운동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경상남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3·1 운동이었다. 이후 3월 12일과 17일...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와 북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읍성. 함안읍성(咸安邑城)은 연해 읍성으로 1510년(중종 10)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축성되었으며, 1555년(명종10)의 증축으로 규모가 확장되었다. 읍성의 규모와 구조, 시설에 대해서는 『함주지(咸州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초축 시의 규모는 5,160척[1.56㎞], 증축 시의 규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