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
-
경상남도 함안군에 전해지는 문자로 기록해 놓은 문집 등의 기록물. 함안 지역 사람들이 남긴 기록 유산으로는 문집류, 책판류, 금석문 등이 있다. 문집이나 실기류는 대부분 개인이나 문중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로 그 가운데는 일부 책판이 전해 오는 것들도 있다. 그 외 금석문으로는 개인 묘소의 묘비(墓碑)와 신도비(神道碑) 등이 있으며, 공신 교서 1점이 있다....
-
고려 후기 위화도 회군에 반대한 후 함안 지역에 은거한 무신. 조순(趙純)은 1388년(우왕 14) 4월 장수로서 군사를 통솔하여 요동 정벌에 참여하였다. 정벌군이 위화도에 이르렀을 때, 우군 도통사 이성계(李成桂)가 회군(回軍)을 단행하자 이에 반대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함안으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본관은 한양(漢陽). 할아버지는 쌍성 총관부 출신으로 용성군(龍城君)...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조순 장군의 비. 조순(趙純)[?~1398]은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1335~1408]와 같이 위화도까지 출전하였다가 이성계가 회군(回軍)하자 "번국(藩國)으로서 상국(上國)을 범하는 것은 진실로 불가하나 왕명(王命)을 받들지 않고 급히 회군함은 더욱 불가하다"라며 반대한 후 벼슬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와 검...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조순 장군의 비. 조순(趙純)[?~1398]은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1335~1408]와 같이 위화도까지 출전하였다가 이성계가 회군(回軍)하자 "번국(藩國)으로서 상국(上國)을 범하는 것은 진실로 불가하나 왕명(王命)을 받들지 않고 급히 회군함은 더욱 불가하다"라며 반대한 후 벼슬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와 검...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전근대 함안과 칠원의 충신 인물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관찬 지리서와 두 지역의 각종 '읍지(邑誌)'의 인물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함주지(咸州誌)』[1587]에서부터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1899]나 『칠원군 읍지(漆原郡邑誌)』[1899]에 이르기까지 함안 관련 각종...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전근대 함안과 칠원의 충신 인물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관찬 지리서와 두 지역의 각종 '읍지(邑誌)'의 인물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함주지(咸州誌)』[1587]에서부터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1899]나 『칠원군 읍지(漆原郡邑誌)』[1899]에 이르기까지 함안 관련 각종...
-
저항의 혼이 흐르는 역수의 땅 함안에서 불의에 굽히지 않고 절의를 지키며 살아온 함안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 함안은 예로부터 충성스럽고 절개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고장이다. 조선 왕조를 부정했던 조순(趙純), 학자 모은(茅隱)이오(李午)가 있으며, 세조의 왕위 찬탈을 반대했던 생육신(生六臣) 중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1420∼1489]도 함안 사람이다. 박한주(朴漢柱...
-
조선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한문으로 된 시, 학문, 한학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함안 지역의 한문학(漢文學)은 조선 왕조의 건국과 함께 본격적으로 발전할 계기가 마련된다. 고려 왕조가 망하자 금은(琴隱)조열(趙悅)과 모은(茅隱)이오(李午) 등은 경상남도 함안 지역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면서 함안 지역에 학문의 뿌리...
-
조선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한문으로 된 시, 학문, 한학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함안 지역의 한문학(漢文學)은 조선 왕조의 건국과 함께 본격적으로 발전할 계기가 마련된다. 고려 왕조가 망하자 금은(琴隱)조열(趙悅)과 모은(茅隱)이오(李午) 등은 경상남도 함안 지역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면서 함안 지역에 학문의 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