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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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 축구 발전을 위하여 노력한 체육 행정가. 김상석은 1945년 함안군 체육회가 출범할 때 사무 국장을 맡아 함안군의 체육 발전과 체육 문화 진흥을 위하여 오랫동안 노력하였다. 특히 광복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948년 함안, 가야, 군북, 칠원 대항 축구부 창설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 스스로도 가야면[현 가야읍] 선수가 되어 직접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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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나수범(羅守凡)[1902~1919]은 이명(異名)은 나범숙(羅凡淑)이며 나해숙(羅海淑)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양자로 나병만(羅炳萬), 손자 나희태(羅熙泰)·나정희(羅定熙)가 있다. 나수범은 1902년 3월 28일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에서 다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군북신창 야학교를 졸업하고 나라를 잃은 울분을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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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관문 성. 내곡리 대현관문성(內谷里大峴關門城)은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와 성격을 파악할 수 없으나, 삼국 시대에 진동 방면에서 가야읍 쪽으로 진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 한티 고개에서 동서로 뻗은 능선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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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주범(朴注範)[1885~1919]은 자는 선홍(善洪), 호는 동강(東崗)이며, 초명은 박주한(朴注漢)이다. 부인은 진양 하씨(晉陽河氏)이다. 아들은 박윤근(朴閏根), 박재근(朴在根)이다. 손자는 박희석(朴熙石), 박희철(朴熙喆), 박희관(朴熙琯), 박용기(朴容基)이다. 독립운동가 조용대(趙鏞大)가 매형이다. 박주범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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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정치, 군사적인 목적으로 운용되던 조선 시대의 통신 제도. 봉수(烽燧)란 횃불과 연기로서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를 중앙에 알리는 군사 통신 제도의 하나이다. 조선 시대의 군사 통신 수단을 대표하는 것으로 조선 왕조 500여 년간 국가적인 기간 통신망으로 운영되었다. 횃불과 연기로 국경과 해안의 안위를 약정된 신호 전달 체계에 따라 본읍(本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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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정치, 군사적인 목적으로 운용되던 조선 시대의 통신 제도. 봉수(烽燧)란 횃불과 연기로서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를 중앙에 알리는 군사 통신 제도의 하나이다. 조선 시대의 군사 통신 수단을 대표하는 것으로 조선 왕조 500여 년간 국가적인 기간 통신망으로 운영되었다. 횃불과 연기로 국경과 해안의 안위를 약정된 신호 전달 체계에 따라 본읍(本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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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울에서 벌어진 3·1 운동 소식을 듣고 손종일(孫鍾一)·이원식·황대수(黃大秀) 등이 모의하여 3월 23일 칠원 장날 거사를 결정하였다. 당일 오후 4시경 장터에 결집한 1,000여 군중은 칠원 시가지를 행진하고 경찰 주재소를 포위하기도 하였다. 이후 엄주신·손종일 등의 주동으로 4월 3일 오후 3시에 2차 시위가 일어났다. 8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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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의 교통로상에 세워진 관영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고려 성종 대에 역참제가 구체화되어 전국 22도(道) 525개소에 역(驛)이 만들어졌다. 각 역에는 말과 역장(驛長), 역정(驛丁)을 두었다. 조선 후기에는 모든 역승(驛丞)이 찰방(察訪)으로 승격되었다. 역은 주로 중앙과 지방 사이의 왕명과 공문서를 전달하고 물자를 운송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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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에 있는 조선 전기 이개지의 묘. 이개지 묘(李介智墓)를 비롯하여 모두 7기의 묘가 모여 있으며, 5기의 묘비가 있다. 묘역 가장 위쪽에 모촌(茅村)이정의 묘가 있다. 이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여함으로 조식(曺植)의 문하생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함안 군수 유숭인의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의병을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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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에 있는 조선 전기 이개지의 묘. 이개지 묘(李介智墓)를 비롯하여 모두 7기의 묘가 모여 있으며, 5기의 묘비가 있다. 묘역 가장 위쪽에 모촌(茅村)이정의 묘가 있다. 이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여함으로 조식(曺植)의 문하생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함안 군수 유숭인의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의병을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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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상진(尙眞). 아들로 이영호(李永浩)·이봉호(李奉浩)가 있고, 손자로는 이병균(李秉均)·이병진(李秉進)·이병천(李秉天)이 있다. 이경흠(李卿欽)[1874~1919]은 1874년 9월 19일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 등이 3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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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함안 지역의 역사. 일제 강점기 함안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에 대한 저항이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3·1 운동의 경우 어느 지역보다 치열하게 전개되어 일제 무력에 죽임을 당한 사람도 많았고,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식민지 민족 해방 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1914년 3월 1일 부령(府令) 제111호로 상봉면·하봉면·사봉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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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함안 지역에서 왜적에 대항하여 벌어진 전투. 임진왜란의 초기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전쟁 발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 윤 11월에 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중국 측의 사신이 파견되어 왔을 때 영의정 등이 왕에게 올린 보고문이 주목된다. 중국에 보내기 위하여 작성된 이 보고문은 당시 조선의 처지에서 전황에 대한 허위나 가감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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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칭을 시조로 하고, 이오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세거 성씨. 재령 이씨(載寧李氏)는 황해도 재령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이를 '안릉 이씨(安陵李氏)'라고도 한다. 2000년도 통계 자료에 의하면 전국 가구 수는 1만 6000여 호이며, 종원은 약 5만 여 명이다. 이 중 약 80% 이상이 함안에 입향한 모은(茅隱)이오(李午)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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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함안 지역 역사. 『여지도서(輿地圖書)』와 『함주지(咸州誌)』등을 보면 조선 시대 함안군은 김해진(金海鎭)의 관할이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경상도 외관직(外官職) 조에 보면 함안은 경상도 내에서 종 4품의 군수가 파견된 14곳 중의 하나였다. 『함주지』에는 당시 함안 지역 관할 하의 각 리와 그 소속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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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함안 지역 역사. 『여지도서(輿地圖書)』와 『함주지(咸州誌)』등을 보면 조선 시대 함안군은 김해진(金海鎭)의 관할이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경상도 외관직(外官職) 조에 보면 함안은 경상도 내에서 종 4품의 군수가 파견된 14곳 중의 하나였다. 『함주지』에는 당시 함안 지역 관할 하의 각 리와 그 소속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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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년에 편찬된 현존 최고의 함안 읍지. 『함주지(咸州誌)』는 현존하는 수많은 읍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최고의 읍지이다. 함안 군수 한강(寒岡)정구(鄭逑)와 함안의 재지 사족들이 함께 편찬한 『함주지』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체제를 계승 발전시켜, 보다 풍부한 지역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16세기 이후 편찬된 읍지들은 거의 『함주지』의 체제를 따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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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대(趙鏞大)[1880~1919]는 고조할아버지는 조여필(趙汝弼)이고, 아버지는 조혁규(趙赫奎)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로 조만제(趙晩濟)·조한제(趙漢濟)·조봉제(趙鳳濟)가 있고, 9명의 손자가 있다. 조용대는 1880년 4월 7일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고종 장례식에 다녀온 동지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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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섭(趙鏞燮)[1890~1919]은 1890년 2월 1일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서 6대 종손으로 태어났다. 고종이 붕어(崩御)하자 헤진 상복을 입고 애통해하였다. 고종 장례식에 다녀온 동지들에게서 서울의 독립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 조상규(趙相奎), 김우곤(金宇坤) 등과 3월 20일 군북 장날에 의거하기로 결의하였다. 조용섭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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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주영호(周泳鎬)[1898~1963]는 1898년 7월 10일 지금의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벌어진 3·1 운동 소식을 듣고 손종일(孫鍾一), 이원식, 황대수, 신영수, 주영호, 황영환(黃英煥), 박경천, 윤사문, 윤형규 등이 모의하여 3월 24일 칠원 장날에 거사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후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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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춘곡리에 있던 교통·통신 시설.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에 보이는 군내의 주요 도로망을 살펴보면 동쪽으로 창원 경계까지 25리[약 9.82㎞]이고, 서쪽으로 진주 경계까지 31리이며, 남쪽으로 진해 경계까지 27리[약 12.17㎞]이고, 북쪽으로 의령 경계까지 38리[약 14.92㎞]이다. 군외(郡外)로는 서울까지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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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혼이 흐르는 역수의 땅 함안에서 불의에 굽히지 않고 절의를 지키며 살아온 함안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 함안은 예로부터 충성스럽고 절개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고장이다. 조선 왕조를 부정했던 조순(趙純), 학자 모은(茅隱)이오(李午)가 있으며, 세조의 왕위 찬탈을 반대했던 생육신(生六臣) 중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1420∼1489]도 함안 사람이다. 박한주(朴漢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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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에 있던 교통·통신 시설.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에 보이는 군내의 주요 도로망을 살펴보면 동쪽으로 창원 경계까지 25리[약 9.82㎞]이고, 서쪽으로 진주 경계까지 31리이며, 남쪽으로 진해 경계까지 27리[약 12.17㎞]이고, 북쪽으로 의령 경계까지 38리[약 14.92㎞]이다. 군외(郡外)로는 서울까지 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