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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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迎日鄭氏 |
영어음역 | Yeongil Jeongssi |
영어의미역 | Uiheung Bak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인호 |
세거|집성지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 |수산면 하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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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정극유(鄭克儒) |
입향 시조 | 정보연(鄭普衍) |
[정의]
정극유을 시조로 하고 정보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영일 정씨의 원조는 신라 육촌(六村)의 하나인 자산진지부(觜山珍支部) 촌장인 지백호(智伯虎)이다. 지백호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양육한 공으로 공신이 되었으며, 정씨 성을 하사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중간 계보를 잃어버려 족보 및 종친회를 각각 다르게 하는 두 파가 있다. 고려 의종 대의 중신인 정습명(鄭襲明)을 1세조로 하는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와 정극유(鄭克儒)를 1세조로 하는 감무공파(監務公派)가 있다. 감무공파의 인물로는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오천군(烏川君)에 봉해진 정사도(鄭思道), 조선 선조(宣祖) 때 송강 정철(鄭澈), 조선 인조(仁祖) 때 대제학을 지낸 정홍명(鄭弘溟), 영조(英祖) 때 영의정 정호(鄭澔) 등이 있었다. 지주사공파의 인물로는 고려 말 충신 정몽주(鄭夢周), 현종(顯宗) 때 우의정 정유성(鄭維成), 정유성의 손자인 양명학의 거성 정제두(鄭齊斗) 등이 있었다.
제천의 영일 정씨로는 정보연, 집의를 지낸 정천(鄭洊), 도사를 지낸 정태하(鄭泰河)와 불천위인 정익하(鄭益河)가 나왔다. 그리고 정태하-정규(鄭槼)-정유환(鄭猷煥)-정재찬(鄭在瓚) 등으로 이어진다. 이 계열은 과거와 관직 등을 통해 조선 후기까지 유력 족세를 유지하였다.
[입향 경위]
제천의 영일 정씨는 봉화에 거주했던 감무공파 정양(鄭瀁)[1600~1668]의 후손이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 일대에 입향하면서 뿌리를 내렸다. 영일 정씨는 정양 때 월림에 정착했다는 이야기도 전하나, 정양의 아들 정보연(鄭普衍)이 백운의 민광훈(閔光勳)의 딸 여흥 민씨와 혼인하면서 지역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1964년 「제천군각읍면씨족별통계표」에 따르면 영일 정씨가 금성면에 107세대 거주하였으며, 1998년 마을지에 따르면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 수산면 하천리 등지에서 거주하였다. 최근에는 본관 성씨별 자료를 수집하지 않아 자세한 세대수는 알 수 없으며, 2000년 자료에 따르면 제천시에는 연일 정씨가 507가구 1,506명, 영일 정씨가 124가구 362명이 있었다.
[관련 유적]
영일 정씨 중에 호산(壺山) 정재찬, 건재(健齋) 정일원(鄭一源), 계릉(桂陵) 정운호(鄭雲灝) 등은 유고를 남겼다. 송운 정운경(鄭雲慶)은 의병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후손가에 의병 관련 문건이 다수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