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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960
한자 權熙穆
영어음역 Gwon Huim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완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일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7일연표보기
출생 시기/일시 1891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930년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권상하(權尙夏)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권도상(權道相)이다.

[활동 사항]

공화주의 정신에 바탕을 두어 전개된 3·1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나라 안팎에서 여러 개의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서울에서는 3·1 운동의 감동 속에서 한성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때 권희목(權熙穆)[1891~1930]은 이규갑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인천의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에서 국민 대회를 열어 한성 임시 정부 수립을 결의하였는데, 이때가 1919년 4월 2일이다.

그해 4월 7일 밤, 안국동에 있는 박이근(朴理根)의 집에서 박이근, 허익환 등과 함께 「조선민국임시정부조직포고문(朝鮮民國臨時政府組織布告文)」과 「도령부령(都領府令)」 제1·2호 2,000여 장을 인쇄하여 서울 시내 요소에 배포하였다가 일제에 체포되었다. 당시 권희목은 천도교가 만세 운동을 주도한다고 보고 천도교와는 별개의 정부조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경성지방법원에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경성복심법원에서 1년형으로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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