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적인 지도 제작 측면에서 볼 때 현대지도와 구별되는 지도.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의 고문헌과 벽화 등을 통하여 고대 지도의 윤곽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지도가 제작되기 시작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였다. 현존하는 지도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1402년(태종 2)에 김사형·이무·이회 등이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
-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관마리 관마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청터. 관마청은 진도군 지산면 관마마을에서 독치마을로 가는 소로를 따라 가다보면 관마마을 동쪽 끝에 위치한다. 이곳은 큰부엉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리는 지맥의 말단부로, 유적 앞으로는 소하천이 흐르고 있다. 관마청은 조선시대 목장업무를 담당하던 종6품급 관직이었던 감목관이 배치되었던 곳이다. 6방 관속, 관노, 통인, 사...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 송현마을에 있는 와요지. 교동리 와요지는 ‘기와굴’로도 불리며,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기와를 구웠고, 여기에서 생산된 기와들은 진도지역뿐만 아니라 타지에도 공급되었다고 한다. 진도읍에서 북서쪽 도로를 따라 1㎞ 정도 가다 보면 송현마을에 이르게 된다. 가마터는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현재 늘사랑교회가...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금갑리 연대산에 있는 연대지(烟台址).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송정리에서 죽림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접도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300m 정도 가다보면 도로 우측에 금갑리 연대지 안내판이 보인다. 기존 조사에서는 사구미 연대지로 보고되었다가 행정명에 따라 금갑리 연대지로 정정되었다. 횃불이나 연기를 피워 중앙으로 소식을 전달했던 연대는...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남동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활터. 임회면 남동리 사대(射臺)는 남동마을 주민들에 의해 사장(射場:활터)으로 구전되어 왔다. 고지도에 의하면 임회면 남동리 사대는 선소 북서쪽의 가장 안쪽의 해안가에 표기되어 있고, 구전으로만 전해져 왔었다.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사대는 (재)전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시굴·조사되었다. 조사결과 70×90㎝ 규모로, 깊이 3...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남동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선소. 1872년 『남도진여지도(南桃鎭輿地圖)』에 의하면 선소는 ‘전선건물소(戰船建物所)’로 표기되어 있어, 배의 출입과 건조 및 수리 등을 담당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진도 남도진성 앞 홍교에서 서쪽으로 약 400m 정도 들어가면 석축시설이 드러나 있다. 이곳은 남망산[119m]의 북쪽 사면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바다와 연접해...
-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대마도리 돈대봉에 있는 조선시대 돈대 터. 진도군 조도면 대마도리 돈대지는 조도면 대마도의 서쪽 끝에 자리 잡은 돈대산[179m]에 위치한다. 1872년에 제작된『남도진여진지』와 주민들의 전언으로 돈대의 존재가 확인된다. 현재는 모두 유실되어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고, 주변에 석재들만 산재되어 있다....
-
1597년(선조 30) 9월 정유재란 때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명량해협(울돌목)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해전. 1597년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략하여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그해 1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모함을 받아 하옥되었고, 원균(元均)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왜의 수군과 싸웠으나 다대포(多大浦)와 칠천량(漆川梁)에서 대패하였다. 사태가 긴급해지자 조정은 그해 7월 백...
-
가축을 방목하기 위해 만들어진 목초지, 건물, 목책 등을 설치해 놓은 지역. 조선시대의 목마는 교통·군사·농경, 외교상의 교역품, 식용, 그리고 말가죽·말꼬리·말갈기 등의 일용품 등으로 이용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마정(馬政)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 가운데 하나였다.『예기(禮記)』에서 ‘나라의 부를 물으면 목마의 수효로 대답한다.’라고 할 만큼, 전통시대 목마는 국가의 부강을 평가...
-
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남평. 남평문씨 20세손이다. 문익점의 9세손이다. 문익점의 다섯 아둘 중 둘째 아들 문중성(文中誠)의 후손들을 순질공파(純質公派)라 하는데 순질공파의 후손이다. 전라남도 나주에 살던 문한장(文漢章)의 둘째 아들이다. 부인은 창녕조(曺)씨이며 아들은 문억매(文億每)이다. 아들 문억매(文億每)가 진도군 지산면 오류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12...
-
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남평. 남평문씨 20세손이다. 문익점의 9세손이다. 아버지는 문귀중(文貴重)이다. 전라남도 나주군에서 살다가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로 들어왔다. 진도에 있는 남평문씨 집안은 문만 집안, 해남군에서 군내면 대사리로 들어온 22세손 문종(文宗) 집안, 지산면 오류리에 들어온 20세손 문덕련(文德連) 집안 등 세 집안이 있다....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 신동마을 연대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연대지.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 연대지는 신동마을 북동쪽 100m 지점 연대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동쪽은 상굴포와 짝별 사이에 내만 된 해안이 형성되어 있고 북동쪽으로는 상망거리(相望距離) 내에 여귀산봉수대가 위치한다. 이 여귀산 정상에서는 주로 북쪽 해안이 잘 조망된다. 연대는 정상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현...
-
섬과 섬, 섬과 육지 사이에서 배를 보내라고 불을 피워 연락하는 장소. 배가 없는 섬에서 다른 섬이나 육지로 갈 때 혹은 섬으로 가려고 그곳의 배를 부를 때는 불을 피워서 연락한다. 연락은 봉수(烽燧)나 마찬가지로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피운다. 바다에서 불을 피워 교통을 해결한 역사는 매우 오래 전 일이며, 이와 더불어 조난에 대한 구조는 뱃사람들에게 있어서 공통된 과제여서...
-
조선시대에 사설로 운영된 초등교육기관. 서당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초등교육기관이지만, 그 연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에 부락 단위로 운영되는 ‘경당’이라는 학교가 있었는데, 이것이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초기에 이르는 동안 각처에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서당과 관련된 기록은 1124년(인종 2)에 고려에 왔던 송나라의 사신 서장관(書狀官) 서긍(徐兢)이 저술...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성내리 유물산포지는 진도읍에 소재한 진도중학교 뒤편의 구릉상에 자리한다. 구릉은 북산[289.5m]에서 흘러내려 온 토사에 의해 형성되었는데, 유물산포지는 북산의 남쪽 산사면 말단부에 위치한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기와편과 자기편 등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현재 계단식밭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가까운 곳에 민가와 진도읍성이 있...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수역리 수역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와요지. 수역마을은 진도읍의 북서쪽에 위치한다. 진도읍 수역리 와요지는 수역마을에서 남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정남골’로 불리고 있다. 진도읍 수역리 와요지 주변에서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다량의 기와편들이 확인되었다. 현재 이곳은 해발고도 25~45m 정도의 계곡부로 계단식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북...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의 여귀산에 있는 봉수대의 터. 봉수(烽燧)는 횃불과 연기로 변방의 정세를 중앙에 알리던 제도였다. 조선시대 봉수는 전라도에 43개가 있었는데 진도에만 여귀산, 굴포, 삼당산, 첨찰산 등 다섯 곳이 있었다. 이를 통해 정부에서 진도의 경계에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알 수 있다. 삼당산봉수와 굴포봉수는 여귀산의 보조봉수로서 여귀산봉수에 연락했고, 여귀산봉수...
-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여미리 돈대봉에 있는 돈대(墩臺) 터. 여미리 돈대지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여미리의 돈대봉에 위치한다. 돈대란 성벽 위에 석재 등을 쌓아올려 망루와 포루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든 높은 누대를 말하는데, 여미리 돈대지는 옛 지도와 구전에 의해 존재를 알 수 있을 뿐 현재는 여미리 돈대의 형태가 남아 있지 않다. 여미리 돈대지 유적은 진도군 조도면에 있는 상...
-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여미리 동구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성터. 진도군 조도면 동구리는 좌우, 뒷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면은 바다에 임해 있다. S자로 내만 된 전방의 해안은 천연의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바다 쪽에서는 동구리 쪽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현재 마을 앞에는 제방이 축조되어 있어서 염전과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성은 동구리에서 율목으로 넘어가는 속칭 ‘성재’에서...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연주리 연주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801번 도로를 따라 고군면 가계리에서 의신면 쪽으로 가다 보면 북서쪽으로 산줄기를 돌아 연주마을에 이른다. 마을로 들어가서 바다 쪽 소로를 따라가면 계단식 농경지가 경작되고 있고, 이곳에 조선시대 유물이 확인된 ‘소장골’이 있다. 소장골은 바다가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어 작은 만을 이루는 지역으로, 양쪽 산...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금갑리 접도 원다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금갑리 접도의 원다마을 남서쪽에 위치한다. 이곳은 남망산[163.8m] 북쪽의 저평한 사면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현재는 계단식 밭으로 경작 중이다. 이곳에서는 회청색 경질의 토기편과 기와류 등이 다수 수습되었다. 원다마을은 옛날에 원님들이 많이 귀양 온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유배지마을’이라...
-
조선중기 진도 입도조. 본관은 경주. 호는 묵재(黙齋). 경주이씨 26세손이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이계선(李繼先)이다. 아들은 이석강(李錫康), 이석복, 이석정이다.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살다가 진도군 임회면 선학리로 옮겨 정착했다. 그 후손들이 고군면 도론리, 임회면 고산리·매정리, 지산면 가치리·길은리에 살고 있다....
-
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원주. 원주이씨 21세손이다. 경기도 광주에 있다가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정착한 이영화(李英華)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이춘발(李春發)이다. 부인은 밀양박씨이다. 진도군 진도읍 서외리에 살기 시작하였다. 현재 그의 후손들이 의신면 돈지와 군내면 둔전에 세거하고 있다....
-
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인동. 인동장씨 중시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장금용의 6세손으로 장세림(張世林)과 장백림(張百林)의 형제가 있었다. 장세림의 후손은 무안파로, 그 후손 장승언(張承彦)이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東巨次) 막금으로 들어가 진목도 등에 자손이 번졌다....
-
조선중기 창녕조씨 인물.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입도조인 조희직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조한진(曺漢晋)이다. 동생은 조복리(曺復理)이고, 아들은 조섭주(曺燮周)이다. 후손들 중에서 많은 향리가 배출되었다....
-
조선 중기의 유생.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입도조인 조희직의 10세손이다. 아버지가 조계남(曺繼男)의 둘째 아들이다. 아들은 조이걸(曺以傑)이다. 후손들이 동산파(東山派)이다. 진도향교 연원기에 유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절터. 이 절터에서 죽림사라고 단정할 만한 유물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구전과 ‘죽림(竹林)’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보아 이곳의 절터를 죽림사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죽림사는 고려시대 때 창건했다고 전하며『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절의 이름이 처음 나타나지만 연혁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 마을 뒤 북서쪽으로 50...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었던 사공들이 모여 살던 특수 집단촌. 진부(津夫)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관아에 속해 있던 나룻배의 사공을 말한다. 신분은 평민이면서 천역에 종사하는 신량역천(身良役賤)의 계층으로 관선(官船)에 딸려 있었다. 이 진부들에게는 급료 대신 논밭을 지급하였으며, 이들이 모여 살면서 이룬 마을은 진부촌(津夫村)이라 하였다. 고려시대에 진부들은 반역 등의 형벌로...
-
전라남도 진도군에 있었던 특수 촌락 집단. 신분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거주 이동에 제약을 받았고 신분도 세습되어 자연스럽게 같은 업종이나 같은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특수촌락이 형성되었다. 진도군에는 군내면 벽파진, 임회면, 오일시, 십일시, 진도읍 성내리 등지에 특수촌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벽파진 근처에는 사공들이 모여 살던 진부리(津夫里)가 있었다. 임회면에는 어부촌(漁夫村...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원포리 하율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고군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801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하율마을에 이르게 된다. 유물산포지는 하율마을에서 동쪽으로 50m 정도 떨어져 있는 야트막한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다. 유물은 기와편, 자기편 등이 수습되었다. 현재 주변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마을사람들로부터 ‘터들’로 불리고 있다....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해창리 해창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목장지. 진도읍에서 산월리로 향하는 803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소포동마을이 있고, 소포동마을 입구 맞은편에 해창마을로 진입하는 소로가 있다. 목장지는 해창마을 서쪽 끝의 농기계보관창고 뒤편에 위치한다. 이곳은 해발 170m 산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사면부로, 마을 앞에는 진도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주민에 따르면 과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