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청룡리 청룡마을에 있는 못에 얽힌 이야기. 「기생못 전설」은 고려 후기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군이 승화후 온[왕온]을 왕으로 추대한 뒤, 진도를 본거지 삼아 몽골과 맞서 싸우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1979년 7월 30일 진도군 의신면 청룡리 청룡마을에서 지춘상이 조사하였고, 제보자는 그 마을의 이덕순(남, 82세)이다. 삼별초군이 진...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바위에 얽힌 이야기. 망바위전설은 고려후기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군이 승화후 온(溫)을 왕으로 추대한 뒤, 진도를 본거지삼아 몽골과 맞서 싸우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망바위는 군내면 용장리 방북(현 오룡초등학교)의 주산인 대암석을 말한다. 고려후기 진도로 내려온 삼별초군들이 이 바위에 올라, 세곡이나 보물을 싣고 가는 배...
-
고려 후기의 무장(武將)·정치가. 김방경은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서 대몽항쟁의 주력인 삼별초(三別抄)를 진압했고, 원의 일본 정벌 때 고려군을 이끌고 출정했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본연(本然).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병부상서·한림학사를 지낸 김효인(金孝印)이다. 김방경은 첫 부인으로 박익정(朴益旌)의 딸을 맞이하였다. 기거랑지제고중서사인을 지낸 박익정은 무인 집권...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도(凊道). 초명은 중룡(仲龍). 고려시대 시중(侍中)을 역임한 김여흥(金餘興)의 셋째 아들로 청도김씨의 시조이다. 선계(先系)는 김알지(金閼智)라 기록되어 있고,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悅)의 7세손이다. 1190년(명종 20)에 경상북도 청도군 하남면 대성리(大城里)에서 태어났다. 1218년(고종 5) 문과에 장원급제...
-
고려 후기의 무신. 강화도에서는 김통정이 강화 교동면 출신으로 구전되어 오고 있다. 김통정에 관해서는 구전설화가 여럿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탄생설화로는 과부 어머니가 지렁이와 희롱하여 태어났다고 하여 원래 성은 지렁이 ‘진’씨였으나 나중에 김씨로 고쳐 김통정이 되었다고 한다. 김통정은 배중손(裵仲孫) 등과 함께 개경 환도를 반대하여 삼별초를 거느리고 대몽항전을 하였다. 배중...
-
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시조는 수로왕(首露王)이며, 수로왕의 제12대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대소 98파로 나뉜다. 그 가운데 김유신의 직계종파(直系宗派)는 고려의 김목경(金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김익경(金益卿)을 중시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金管)을 중시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이다. 1530년에 간행...
-
고려 후기의 무신. 1270년(원종 11) 원종이 몽고와의 화평 교섭에 의하여 출륙환도(出陸還都)를 결정하고 삼별초의 명단을 압수하였다. 이때 노영희는 야별초지유(夜別抄指諭)로서 배중손과 함께 궐기하였다. 이들은 승화후 왕온을 왕으로 옹립하고 관부를 설치하여 반몽고, 반개경정부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항전을 위하여 근거지를 강화도에서 진도로 옮겼다. 진도에 근거지를...
-
고려 후기의 문신. 삼별초가 진도를 근거지로 기세를 떨치고 있을 때, 고려 정부와 몽고는 삼별초를 회유하기 위해 몽고 사신 두원외(杜員外)와 함께 박천주(朴天澍)를 1271년(원종 12) 1월 6일 진도로 보냈다. 삼별초는 회유하러 온 두원외와 박천주에게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그리고는 몰래 병선(兵船) 20척으로 관군을 습격하여 배 1척을 나포하고 군사 90명을 죽이고 두원외를...
-
고려후기 삼별초를 이끌었던 장군. 배중손이 역사에 뚜렷이 부각되는 것은 삼별초의 대몽항전 이후부터이며, 그 이전의 경력은 자세하지 않다. 왕정복고파와는 달리 대몽항전의 지속을 주장하였던 임연(林衍) 부자 계열에 속하는 무인으로, 임연 부자의 몰락 후에 대몽 강경파의 선봉에 서서 비타협적 항전을 계속한 인물이다. 배중손은 서반의 장군인 동시에 가장 유력한 삼별초의 지휘관이었던 까닭에...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서 발굴된 중국의 통나무배. 진도 통나무배가 처음 알려진 것은 1978년으로, 월간지『예향』에 실린 삼별초 관련 답사기행문에서이다. 이를 근거로 문화재청에서는 현장을 답사하고 조사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같은 해 11월 조사원을 현지에 파견하여 매몰선의 실체를 확인,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노출된 유구의 형상으로 보아 선체일 가능성이 있으나, 시굴 등...
-
고려 후기의 재상. 신사전(申思佃)은 무반으로 관직에 나아간 듯하며 1260년(원종 1)에 상장군에 올랐다. 1263년(원종 4)에 병부상서가 되었고, 이후 재추의 반열에 들었다. 1268년(원종 9)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가 되었고, 뒤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다. 찬성사(贊成事)로 치사(致仕)하였고, 1289년(충렬왕 15)에 생을 마감하였다. 1259년(원종 즉위) 고려와...
-
고려 후기 삼별초의 토벌에 참여한 몽고 원수. 1270년(원종 11) 몽고 원수 아해(阿海)는 전라도추토사로 임명된 김방경과 함께 진도로 삼별초를 토벌하기 위해 갔다. 아해는 김방경과 함께 삼견원(三堅院)에 주둔하면서 삼별초와 여러 날 대치하였다. 대치하던 중 반남 사람 홍찬(洪贊)·홍기(洪機)가 아해에게 “김방경과 공유 등은 비밀리에 반적과 서로 내통하고 있다.”고 고하였다. 이...
-
고려 후기의 문신. 1255년(고종 42) 판사천국사(判司天局事) 안방열은 몽고군에게 파괴당한 지릉(智陵)[명종의 능, 경기도 장단군]을 수축하였다. 1259년(고종 46) 술사 백승현(白勝賢)이 강화의 삼랑성(三郎城)에 가궐(假闕)을 지으면 왕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진언하였다. 왕이 안방열에게 가궐 건축의 이로움과 해로움에 대해 묻자 “백승현의 말은 믿을 수는 없으나 한번 시험해...
-
고려후기 왕족으로 진도현에 유배된 인물. 1153년(의종 7)에 고려 18대 국왕 의종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장경황후 김씨이다. 초명은 왕홍(王泓)이고, 효령태자(孝靈太子)로 봉해졌다. 1170년(의종 24) 무신난을 일으킨 정중부는 의종은 거제도로 유배시키고, 태자 왕기는 영은관으로 옮겼다가 진도현으로 유배시켰다....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서 의신면 운림산방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전설에 따르면 고려후기 삼별초의 난 때 영영공이 자신의 아들들에게 자신의 친형인 왕온을 구해오도록 했다. 영영공은 자신의 친형이 삼별초의 인질로 잡혀가 타의에 의해 왕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왕온은 삼별초가 몽골 및 고려 연합군과 항전하면서 이 고갯길을 넘어 퇴각하는 과정에서 홍다구의 칼에 맞아 죽었고, 이 고갯길...
-
고려 후기의 왕족으로 삼별초에 의해 진도에서 왕으로 추대된 인물. 왕온은 고려 현종의 8대손이다. 청화후 왕경(王璟)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제로 왕서·왕염(王剡)·왕정(王珽)이 있다. 아들은 왕환(王桓)이다. 왕춘(王瑃)·왕희(王禧)·왕기(王祺)가 숙부이다. 승화후(承化侯)에 봉해졌다. 1270년(원종 11) 고려와 몽고가 강화하기로 하고 왕실이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
-
고려 후기의 왕족. 고려 현종의 9대손이다. 영녕공(永寧公) 왕준(王綧)의 아들이며, 삼별초가 왕으로 추대한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의 조카이다. 형제로는 왕희(王熙)·왕함·왕시·왕화(王和)·왕림(王琳)이 있다. 아들은 왕미이다. 신안후에 봉해졌다. 1270년(원종 11) 삼별초가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여 진도에 웅거하자, 고려 조정은 왕옹을 아우 왕희와 함께 파견하여 삼별초를...
-
고려 후기의 왕족. 고려 현종의 9대손이다. 영녕공(永寧公) 왕준(王綧)의 아들이며, 삼별초가 왕으로 추대한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의 조카이다. 형제로는 왕옹(王雍)·왕함·왕시·왕화(王和)·왕림(王琳)이 있다. 아들은 왕형(王珩)·왕구(王玖)이다. 광화후에 봉해졌다. 1270년(원종 11) 삼별초는 반란을 일으키면서 왕희의 숙부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진도를 점령하였다. 고려...
-
고려 후기의 승려. 웅천선사는 진도의 유서 깊은 사찰인 쌍계사의 상성암을 1212년(강종 원년)에 건립하였다. 그 외에 웅천선사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장흥. 고려 중기 예종대에 문장으로 명망을 떨치고 문하시중을 역임한 위계정(魏繼廷)이 9대조이다. 위충(魏祌)의 아버지는 위윤기(魏潤琦)이다.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면 방촌에서 태어났으며 그 후손들이 현재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에 살고 있다. 고려 후기에 조회와 의례를 맡아보던 합문(閤門)의 판사(判事, 정3품)를 역임하였다. 1391년(공양왕 3) 11월...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남동리 남산마을에 있는 위충의 묘. 진도읍에서 죽엽리로 향하는 803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남산교회가 있는데, 여기서 150m 정도 떨어져 유적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남산[245.3m]의 북쪽 경사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비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위충은 장흥 사람으로 용호장군(龍虎將軍) 윤기의 아들이며, 간성군사(杆城郡事) 수(脩)의 손...
-
고려 후기의 문신. 자는 자장(子長). 수안현(守安縣)[현재 경기도 양주] 사람이다. 삼한공신(三韓功臣) 윤봉(尹逢)의 7세손으로, 검교호부상서(檢校戶部尙書) 윤유연(尹裕延)의 둘째아들이다.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사마시에 합격 후 지수주사판관(知水州事判官), 현덕궁녹사(玄德宮錄事), 좌우위녹사참군사(左右衛錄事參軍事), 진도현령, 감찰어사, 상서도관원외랑(尙書都官員外郎)을 역...
-
고려 후기의 무신. 1270년(원종 11)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봉기하여 진도로 내려갈 때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강화도에 있다가 노비들을 모아 삼별초를 구포(仇浦)까지 추격하여 5명을 베었다. 또한 낭중(郎中) 전문윤(田文胤)과 함께 강화도의 부고(府庫)를 봉쇄하여 도적을 예방하였다. 이후 경상도 안찰사가 되었다. 1271년(원종 12)에 밀성군(密城郡)[현재 경상남도 밀양]에서...
-
고려 후기의 문신. 장흥임씨 중흥조인 임의[1041~1117]로부터 8세손이다. 아버지는 임석(任碩)이다. 아버지와 함께 1352년 공민왕이 원나라 연경에 갔을 때 수행하여 수종 2등공신이 되었다. 그의 아들 임정(任貞)이 진도에 정착하였고, 손자 임은(任誾)은 1437년 진도 창군에 공을 세웠다. 묘와 비석이 진도읍내 정거름재 너머 금선당(琴仙堂) 임씨 선산에 있다....
-
고려 후기 삼별초의 항쟁 때 죽은 왕온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고분. 전 왕온의 묘에는 진도에서 있었던 삼별초 항쟁과 관련된 전설이 다음과 같이 전해져 오고 있다. “옛날 삼별초 항쟁 때 왕이 몽고군에게 쫓겨서 왕무덤재까지 왔는데 지금의 논수골에서 일대 격전이 벌어졌다. 격전 중에 싸움을 피해 다녔던 왕온은 몽고장수 홍다구에 의해 사로잡혔다. 왕온을 살리려고 덤볐던 왕온의 아들 왕환(...
-
고려 후기의 승려. 1198년(신종 원년)에 진도군 의신면에 있는 쌍계사 정수암을 건립하였다. 정달선사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기록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
고려 후기의 문신. 바둑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며 다섯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해 오룡(五龍) 집안이라 불렸다. 그의 아들 5형제 집안은 전라남도의 명문가를 이루었다.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시조 조계룡(繼龍)의 25세손이며 진도 입도조 조희직의 증조부이다. 고려 후기에 시중을 지냈다.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전라남도 나주군 남평면 오룡동으로 내려와...
-
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시조 조계룡의 28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정통(曺精通), 할아버지는 조한용(曺漢龍), 아버지는 조경숙(曺景淑)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는 사촌 동서 간이다. 부인은 강윤충(康允忠)의 딸이며, 아들 조근(曺謹)과 조심(曺諶)을 두었다. 조희직은 1366년(공민왕 15) 정언(正言, 종6품) 재임 중 정추(鄭樞)·이존오(李存吾)와 함께 신돈...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충주. 1378년 전라도도순문사로 장흥부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다. 1388년에는 요동(遼東) 정벌에 안주도부원수로 참가했다가 우군도통사 이성계의 편을 들어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389년(공양왕 1)에는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을 세운 공으로 문하찬성사에 발탁되었으며, 중흥공신녹권(中興功臣錄券)을 받고 충의군(忠義君)에 봉해졌다. 공...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금골산 어귀에 있는 고려시대 오층석탑. 현재 금골산의 어귀에 금성초등학교가 있는데, 원래 이곳에는 고려시대 때 지어진 해원사(海院寺)가 있었다고 전한다. 진도 금골산 오층석탑은 금성초등학교 교정 가에 위치해 있다. 진도 금골산 오층석탑은 단층의 기단에 오층의 석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1층 탑신의 폭이 좁으면서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지대석은 4장의...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 1270년 (원종 11) 배중손과 노영희 등이 몽고에 굴복한 고려 정부에 반발하여 삼별초와 그 지지자들을 이끌고 강화도에서 진도로 내려와 이곳에서 부서(部署)를 정하고 관부(官府)를 열었으며, 궁궐과 성곽을 쌓고 몽고 침략자와 개경 정부에 반기를 들어 승화후 온(承和侯溫)을 왕으로 추대하여 왕실과 대립되는 정권을 세웠는데, 이...
-
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창녕조씨 시조는 경상남도 창녕의 옥암동에서 태어나 진평왕(眞平王, 579~632 재위)의 사위가 된 조계룡이다. 조계룡(曺繼龍)은 벼슬이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 상주국(上柱國) 대도독(大都督) 태자태사(太子太師)에 올라 창성부원군(昌成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그의 후손들이 창녕(昌寧)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시조 조...
-
고려 원종·충렬왕 때의 부원(附元) 분자. 본관은 남양. 본명은 홍준기(洪俊奇)이며 홍다구(洪茶丘)는 아명(兒名)이다. 몽고명은 찰구이(察球爾)로, 원나라에서 태어나 자랐다. 할아버지는 1218년(고종 5) 몽골에 투항한 홍대순(洪大純)이며, 아버지는 몽골 침입의 길잡이 노릇을 한 홍복원(洪福源)이다. 원나라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세조가 그를 다구라고 불렀다고 한다. 1261년(...
-
중국 원나라의 무장(武將) 흔도(忻都)는 홀돈(忽敦)이라고도 한다. 1276년(충렬왕 2) 흔도의 아들과 안평공(安平公)의 딸이 결혼하였다. 1277년(충렬왕 3) 흔도의 아들 기(琪)가 수사공으로 임명되었다. 기는 안평공(安平公)의 딸과 결혼하였으므로 왕실의 예에 준하여 이 관직을 주었으며 또 성을 쓰지 않고 이름만 썼다. 고려 후기 삼별초 토벌과 일본 정벌을 위해 고려에 왔다....
-
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몽고 승려. 진도에서 태어났으나 1271년(원종 12) 진도 삼별초 토평 때 몽고에 잡혀가 스님이 되어 원나라 황제의 스승이 되었다. 1294년(충렬왕 20) 7월 고국의 부모를 찾아 고려 개성에 왔을 때 고려 관리들이 조복을 갖추고 성문 밖에 나가 맞아들여 숙능사에 머물게 했다. 부모가 진도를 떠나 충청남도 서산에서 남의 집 고용살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