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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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峯倭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산 21-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배성수 |
성격 | 성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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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수리봉 왜성 터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산 21-1 |
[정의]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산 수리봉에 쌓았던 성터.
[변천]
18세기 중엽 간행된 『여지 도서(輿地圖書)』에 “동문[문학산성]밖 100여 보에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기 위에 왜성(倭城)의 터가 남아 있다. 왜군이 성을 공격할 때 머물렀던 곳이다.”라는 것이 처음 나타나는 기록이다. 임진왜란 당시 인천 부사 김민선과 왜군 사이에 전투가 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문학산 인근에 왜군의 주둔처가 있었을 것이고, 그 흔적이 남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수리봉에서 산성의 동문 쪽으로 통하는 산 능선이 문학산성을 공략하기에 가장 수월한 루트임을 감안한다면 원래 산성의 일부로 수축된 것을 왜군이 장악하고 이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위치]
문학산성의 동문지에서 산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100m 가량 떨어진 곳에 수리봉이 있다.수리봉을 선유봉이라고도 부른다. 왜성지는 이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현재 수리봉 왜성은 그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1949년 인천 시립 박물관의 조사에서도 그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다만, 1997년 6월에 가천 문화 재단에서 이곳을 답사하여 왜성지로 추정되는 부근에서 자기와 와편을 수습했다는 기록이 있다.
[의의와 평가]
수리봉 왜성은 문학산 안관당 터와 함께 임진왜란 당시 문학산이 조선군과 왜군의 격전지였음을 알게 해 주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