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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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代 |
영어공식명칭 | Ancient Time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고대/고대 |
집필자 | 선석열 |
[정의]
삼한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경상남도 밀양시 지역의 역사와 문화.
[개설]
삼한의 기원은 철기 문화가 퍼져 나가기 시작한 기원전 3세기부터이다. 한반도 중부 및 남부에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이라는 3개의 정치 집단이 정립되었다. 밀양 지역에 독자적인 정치 체제를 갖춘 고대 국가가 등장한 것은 삼한 시기부터이다.
[삼한시대]
삼한시대 밀양은 변한에 속하였다. 변한 계통의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이라는 독자적인 정치 체제를 갖춘 고대 국가가 등장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전(韓傳)의 변진조(弁辰條)에 의하면 변한의 미리미동국이라는 정치제가 있었다. 변한 12국은 고대 국가 성립 이전에 초기 국가, 군장 사회, 성읍 국가 등으로 부르는 정치체로서 일반적으로 ‘소국(小國)’이라고 부른다.
[삼국시대]
4세기를 전후하여 고구려·백제·신라가 점차 고대 국가로 정립하여 발전할 때, 변한에서 출발한 가야는 삼국과의 경쟁에서 밀려 고대 국가로 진입하지 못하고 연맹체로 결속 관계가 느슨한 상태에 있었다. 400년(내물왕 45)에 신라의 군사 원조를 요청받은 고구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의 남정으로 낙동강 하류역의 연맹체는 무너지고, 미리미동국은 5세기 이후부터 독자적으로 발전하였다. 6세기 초반 이후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推火郡)을 두었다.
[남북국 시대]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757년(경덕왕 16)에 전국을 9주로 나누고 군현의 명칭을 고칠 때 추화군을 밀성군(密城郡)이라 개칭하였고, 예하의 영현들도 다음과 같이 개칭하였다. 서화현(西火縣)을 상약현(尙藥縣)으로 고쳤는데, 지금의 창녕군 영산면이다. 추포현(推浦縣)을 죽산(竹山)이라고 하며 밀진현(密津縣)으로 고쳤는데, 지금의 밀양시 삼랑진읍이다. 오야산현(烏也山縣)을 오악현(烏岳縣)으로 고쳤는데, 지금의 청도군 청도읍이다. 경산현(驚山縣)을 형산현(荊山縣)으로 고쳤는데, 지금의 청도군 화양읍이다. 솔이산현(率已山縣)을 소산현(蘇山縣)으로 고쳤는데, 지금의 청도군 매전면이다.
[고대 관련 유적]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고인돌 유적이 있다. 12기가 남아 있는 하남읍 남전리의 밀양 남전리 지석묘군[1979년 12월 31일 경상남도 기념물 지정]을 비롯하여 수산리의 고인돌과 조개더미, 양동리의 고인돌, 활성동의 고인돌떼, 삼랑진읍 검세리·용성리의 고인돌떼, 부북면 가산리·덕곡리·춘화리의 고인돌, 상동면 금산리의 고인돌, 산외면 금천리의 고인돌, 산내면 송백리의 고인돌, 임고리·가인리의 고인돌, 초동면 봉황리의 고인돌떼, 상남면 예림리의 고인돌과 조개더미 등이 있다. 삼국시대의 유적으로는 최초로 발굴 조사된 부북면 월산리 고분군과 밀양 추화산 능선에 테뫼식으로 쌓은 밀양 추화산성(密陽推火山城)[1990년 1월 16일 경상남도 기념물 지정]이 있다.
[고대 관련 설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것으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리(使吏)인 간진(侃珍)이 화랑(花郞) 죽만랑(竹曼郞)의 낭도(郎徒)인 득오(得烏)의 휴가 요청을 도와주면서 추화군 능절(能節)의 지대(地代) 30석을 거두어 성중(城中)으로 수송케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삼국유사』의 기록은 통일신라의 조세 제도 연구에 있어 귀중한 사료이다. 신라 향가(鄕歌)로서 득오가 지었다는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로도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