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489
한자 朴陽春
영어공식명칭 Park Yangchun
이칭/별칭 경화(景華),모헌(慕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병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1년연표보기 - 박양춘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31년연표보기 - 박양춘 사망
출생지 후사포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부임|활동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묘소|단소 박양춘 묘소 - 경상남도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
성격 효자
성별 남성
본관 밀성(密城)

[정의]

조선 전기 밀양 출신의 효자.

[가계]

박양춘(朴陽春)[1561~1631]의 본관은 밀성(密城)이며, 자는 경화(景華), 호는 모헌(慕軒)이다. 할아버지는 박대성(朴大成)이고, 아버지는 조선 명종 때 효행으로 호조참의에 제수된 박항(朴恒), 어머니는 장운주(張雲澍)의 딸 안동장씨(安東張氏)이다. 부인은 손경제(孫經濟)의 딸 밀양손씨(密陽孫氏)이고, 아들은 박려(朴瓈)·박오(朴璈)·박업(朴業)이다. 사위는 박지(朴篪)이다.

[활동 사항]

박양춘은 1561년(명종 16)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서 태어나 김천수(金天授)에게 수학하였다. 1576년(선조 9) 아버지가 사망하자 40리 길을 오가며 낮에는 어머니를 봉양하고 밤에는 산소 옆의 여막에서 묘소를 지켰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왜적을 피하지 않고 밤낮으로 관곽(官廓)을 지키며 곡을 하였다고 한다. 이를 보고 박양춘의 효성에 감복한 왜장(倭將) 이시다 미스나리[石田三成]가 “이 사람은 참으로 효자이니 죽여서는 안 된다.”라며 뒤에 오는 군사는 이 산에 들어가지 말라는 표치(標幟)를 세워 놓고 갔다고 한다.

[묘소]

박양춘의 묘소는 경상남도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박양춘은 효행으로 이조참의에 추증되었고, 부북면 후사포리에 효행을 기리는 여표비와 비각이 건립되었다. 왜장 이시다 미스나리가 “출천지효(出天之孝)”라는 글자를 써서 정표(旌表)한 것이 훗날 여표비를 세우는 시초가 되었으며, 이후 마을 사람들이 중수하고 관리하다가 불탔다. 1912년 손익현(孫翼鉉)·조세모(曺世模)·이후성(李厚性)·이병희(李炳熹) 등이 여표비를 재건하고 비각을 세웠다. 비석의 제액은 “모헌박선생여표유허비명병서(慕軒朴先生閭表遺墟碑銘幷序)”라 하였고, 비문은 김도화(金道和)가 짓고 글씨는 안종석(安鍾奭)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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