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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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薛光旭 |
영어공식명칭 | Seol Kwangwo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심민정 |
출생 시기/일시 | 1791년 - 설광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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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22년 - 설광욱 사망 |
출생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
거주|이주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
사당|배향지 | 설광욱 효자각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성 |
본관 | 경주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 효자.
[개설]
설광욱(薛光旭)은 1791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소일(小日), 호는 심제(心齊)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설광욱은 9세에 아버지 상을 당하자 3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어머니의 종기가 심해지자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는 등 극진히 간호하였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시묘살이를 하였다. 설광욱은 효행으로 정려되었다.
[가계]
설광욱의 아버지는 설찬(薛瓚)이다.
[활동 사항]
설광욱은 9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스스로를 죄인이라 하고, 장례를 극진히 하였다. 이후 3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24세 때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매일 정성 들여 기도한 덕에 어머니가 금세 회복하였다고 한다.
설광욱은 26세 때 어머니의 몸에 종기가 생기자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고, 병이 점점 깊어져 상처 주변에 이가 생기자 자신의 머리에 이를 옮기고, 대소변의 맛을 보았다고 한다.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10여 차례 수혈하기도 하였다. 1817년 9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설광욱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어머니 뒤를 따르려 하였으나 주위 사람들이 끝까지 만류하였다고 한다.
설광욱은 부북면 무연리 뒷산 정상에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시묘살이를 하였다. 물을 구하기 힘든 곳이라 풀잎의 이슬로 목을 축이며 생활하던 중 갑자기 맑은 샘물이 솟아나고 3년 시묘살이를 마치자 샘물도 말라 없어졌다고 한다. 시묘살이를 하는 동안에는 밤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설광욱을 지켜 주었다고 한다. 시묘살이가 끝난 뒤에도 매일 성묘를 다녔는데, 마을 사람들이 설광욱의 효성에 감동하여 묘소까지 길을 닦아 주었다. 설광욱은 병이 들어 더 이상 성묘를 할 수 없게 되자 스스로를 불효자라 하며 한탄하였다.
설광욱은 1822년(순조 22) 6월 28일 32세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894년 유학(幼學) 소택진(蘇宅進) 외 경상도 유림 780명이 설광욱의 효행을 조정에 상소하였다. 1981년 6월 설광욱의 효행을 기려 마을 입구에 효자각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