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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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完慶 |
영어공식명칭 | Ahn Wan-gyeong |
이칭/별칭 | 정암(貞菴),안택경(安宅慶),안원경(安元慶)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현라 |
활동 시기/일시 | 1423년 - 안완경 식년문과 을과 급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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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36년 - 안완경 중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450년 - 안완경 사헌부대사헌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52년 - 안완경 문종의 고명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453년 - 안완경 충청도관찰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453년 - 안완경 양산으로 귀양 |
몰년 시기/일시 | 1453년 - 안완경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91년 - 안완경 영월 정충단에서 부식 제사 받음 |
출생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사당|배향지 | 모렴당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사포중앙1안길 9[전사포리 619-1] |
성격 | 관인 |
성별 | 남 |
본관 | 광주 |
대표 관직|경력 | 사헌부대사헌 |
[정의]
조선 전기 밀양 출신의 관인.
[가계]
안완경(安完慶)[?~1453]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호는 정암(貞菴)이다. 다른 이름은 안택경(安宅慶)·안원경(安元慶)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총판(摠判) 안사충(安社忠)이며, 할아버지는 낭장(郞將) 안정(安鼎)이다. 아버지는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를 역임한 안처선(安處善)이고, 어머니는 두문동 72현 가운데 한 명인 구홍(具鴻)의 딸 능성구씨(綾城具氏)이다. 부인은 직제학 윤수(尹粹)의 딸 윤정산(尹定山)이다. 아들은 안효손(安孝孫)이며, 딸은 호군(護軍) 박임무(朴林茂)의 아내이다.
안처선의 둘째 아들 안완경이 계유정난(1453)에 사사된 후 큰아들 안엄경(安淹慶)과 손자 안억수(安億壽)가 경상도 밀양의 삽포(鈒浦)[현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로 이주하면서 세거지 지명을 따라 밀양 사포파(密陽沙浦派)라고도 한다.
[활동 사항]
안완경은 1423년(세종 5)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사헌부헌납(司憲府獻納)·병조좌랑·종부시소윤 등을 역임하였다. 1436년(세종 18)에 집현전 직제학(直提學)으로 있으면서 중시(重試)에 합격하였다. 벼슬이 부제학(副提學)으로 올라 병조참의, 좌부승지를 거쳐 1450년(문종 즉위년)에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에 이르렀다.
안완경은 독서당(讀書堂)[젊고 유능한 문관에게 휴가를 주어 오로지 학업을 닦게 하던 제도]에 참여하였다. 1452년(문종 2) 문종이 승하하기 전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고명(顧命)[임금이 유언으로 뒷일을 부탁함]을 남겼을 때 안완경도 참여하였다.
안완경은 1453년(단종 1) 외관직으로 쫓겨나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1453년 수양대군이 황보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 등을 처형하는 계유정난을 일으킨 후 안완경을 안평대군(安平大君) 일파로 지목하여 양산(梁山)에 귀양을 보냈다. 안완경은 귀양지에서 1453년 죽임을 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계유정난 때 사사당한 안완경은 이양(李穰), 민신(閔伸), 조극곤(趙克寬), 이경유(李耕柔) 등과 함께 다섯 영걸(英傑)로 일컬어졌다. 1791년(정조 15)에 영월(寧越)의 정충단(貞忠壇)에서 부식(祔食) 제사를 받았다. 지금은 밀양 사포파 재실인 모렴당[부북면 전사포리 619-1]에서 안완경을 배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