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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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尙允 |
영어공식명칭 | Park Sang Yoon |
이칭/별칭 | 화국(華國),경재(絅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구진성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 박상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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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박상윤 파리장서에 서명 |
몰년 시기/일시 | 1938년 - 박상윤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5년 - 박상윤 건국포장 추서 |
출생지 | 청운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청운리 282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박상윤(朴尙允)[1881~1938]의 본관은 밀성(密城), 자는 화국(華國), 호는 경재(絅齋)이다. 박상윤은 1881년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청운리 282에서 박경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소눌문인록」에는 박상윤의 생년이 ‘경진년’, 즉 1880년으로 표기되어 있다.
[활동 사항]
박상윤은 노상직(盧相稷)의 제자로, 스승 및 동문들과 함께 1919년 파리장서에 서명하였다. 제1차 유림단운동으로도 불리는 파리장서운동은 3·1운동 이후 곽종석(郭鍾錫)을 비롯한 전국의 유림들이 파리강화회의에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파리장서에 서명한 인물은 총 137명이었는데, 여기에 박상윤을 비롯한 밀양·김해·창녕·청도 등지의 노상직 제자 13인이 참여하였다. 박상윤의 스승 노상직은 조선이 강제 병합되자 1911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국권회복의 길을 모색하다가, 1913년 귀국하여 서당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여 유림을 규합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박상윤 또한 그 영향으로 파리장서에 서명한 것으로 보인다. 박상윤은 1938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박상윤에게는 2005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