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88 |
---|---|
한자 | 孫滸 |
영어공식명칭 | Son Ho |
이칭/별칭 | 경암(敬菴),손허(孫許),손진현(孫振顯)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노규현 |
출생 시기/일시 | 1897년 3월 15일 - 손호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4년~1921년 - 손호 밀양 산내면 면서기 근무 |
몰년 시기/일시 | 1936년 8월 23일 - 손호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12월 26일 - 손호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송백리 -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송백리 |
활동지 | 만주 - 중국 만주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손호(孫滸)[1897~1936]의 본관은 밀성, 호는 경암(敬菴)이다. 다름 이름으로 손허(孫許), 손진현(孫振顯)이 있다. 1897년 3월 15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송백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손호는 1914년부터 1921년까지 밀양 산내면의 면서기로 근무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신민부(新民府)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손호는 1927년 4월 신민부 중앙집행위원장 김좌진(金佐鎭)으로부터 일제 고관과 친일 분자의 주살, 주요 시설의 폭파, 군자금 모집 등의 밀명을 받고 이병묵(李丙默), 신현규(申鉉圭), 손봉현(孫鳳鉉), 윤창선(尹昌善) 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하여 대구 지역을 주 무대로 활동하였다.
손호는 동서 손봉현 등과 부호인 장인 김태진에게 군자금 3,000원을 받아 내고, 또 처남 김용출을 포섭하여 북만주로 데려가 대종교 교인으로 만드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대종교 교주 윤세복(尹世復)의 아들 윤홍선(尹興善)과 함께 활동하던 중 1928년 5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손호는 1929년 9월 25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강도(强盜)’ 등의 죄명으로 징역 10년 형을 받고 경성형무소(京城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6년 8월 23일 옥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손호에게 1990년 12월 26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송백리 양송정에 사적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