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이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747
한자 廣州李氏
영어공식명칭 Gwangju Leessi|Gwangju Lee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태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광주 - 경기도 광주시
성씨 시조 이당

[정의]

이당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밀양시의 세거 성씨.

[연원]

광주이씨(廣州李氏)는 고려 말에 광주(廣州) 지역에서 생원을 지낸 이당(李唐)을 시조로 삼고 있다.

『여지승람(輿地勝覽)』 경기도 광주인물(廣州人物)편에 말하기를 이당은 본래 광주 출신의 관리로 고려 말 국자감(國子監)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했는데 행실이 어질었으며, 아들 5명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선조에 들어와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 겸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에 증직되었다. 이당의 아들 5명 중 둘째인 둔촌(遁村) 이집(李集)이 여말삼은(麗末三隱)과 문교(文交)를 나눴고, 이집의 집이 있던 고을은 이집의 이름을 따서 오늘날 서울의 둔촌동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일설로는 원래 광주이씨의 시조는 이당의 선대 인물인 신라 17대 내물왕(奈勿王) 때 내사령(內使令)을 지낸 이자성(李自成)이라는 설이 있다. 이자성은 칠원(漆原)[지금의 경남 함안]에 세거하여 온 호족(豪族)의 후예로, 신라에서 벼슬을 세습하다가 56대 경순왕(敬順王) 때 고려(高麗)에 나라를 넘기자 이에 불복, 절의를 지켰기에 고려 태조가 강계(降階)하여 억지로 회안(淮安)[지금의 광주]의 호장(戶長)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 후 고려에서는 이들이 광주(廣州) 일원에서 살게 되었는데, 고려 말에 들어와 이당이 생원이 되고, 이당의 아들들이 크게 이름을 떨침으로써 가문이 급속히 번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본관(本貫)을 회안으로 칭관(稱貫)하다가 940년(태조 23)에 지명이 광주(廣州)로 개칭됨에 따라 광주를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하지만 이자성으로부터의 세계도가 실전되어 고려 말에 현달하였던 현조(顯祖)를 각각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수보(修譜)하게 되었다.

광주이씨는 고려 말의 생원 이당(李唐)을 시조로, 이당의 아들로 고려 말에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를 지낸 둔촌 이집(李集)을 1세조로 하는 성씨다. 이집은 원래 이인령(李仁齡), 이원령(李元齡), 이희령(李希齡), 이백령(李白齡), 이천령(李天齡)의 5형제였는데, 그 후손들은 5형제를 각각 1세조로 하고 있다.

한편 이당의 후손들과는 파(派)를 달리하는 계통이 있는데, 이익비(李益庇)의 현손(玄孫) 이록생(李祿生)을 중흥 시조로 하는 율정공(栗亭公) 이관의(李寬義)의 후손과 이익강(李益康)을 중흥 시조로 하는 석탄공(石灘公) 이양중(李養中)과 암탄공(巖灘公) 이양몽(李養蒙)의 후손이 있다. 둔촌공계와 율정공파, 석탄공파, 암탄공파의 3파는 ‘병진보(丙辰譜)’에 의하면 그 선대(先代)로 올라가 이한희(李漢希)의 후손으로 연결이 된다. 거기에 의하면 이익비·이익강은 이한희의 둘째와 셋째 아들이고, 율정공은 이익비의 7세손, 둔촌공은 4세손이고, 석탄공·암탄공은 이익강의 5세손이다. 그러나 이 세 파간의 시조에 대한 의견은 일치하지 않았다가, 1987년 대동보(大同譜) 간행 결의에 의거, 정묘보(丁卯譜)로 완전 합보(合譜)하기에 이르렀다. 그중 율형공파·석탄공파·암탄공파는 소수이고 둔촌공계가 대다수이므로 조선시대에 광주이씨의 번영을 가져온 것도 둔촌공계라고 할 수 있다.

[인물]

광주이씨는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188명, 정승 5명, 문형[대제학] 2명, 청백리 5명, 공신 11명을 배출하였다.

세종 이후 5조(朝)에 걸쳐 ‘출장입상(出將入相)’하였던 명신 이극배(李克培), 폭군 연산(燕山)의 폭정에 서릿발 같은 기개로 항거하다 숨진 이극균(李克均), 선조조 ‘서정쇄신(庶政刷新)’의 기수로 역사에 남은 이준경(李浚慶), 임진왜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명외교관, 명전략가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등의 인물들이 광주이씨 문중에서 나왔다.

근대에 들어와 일제강점기 독립군으로 활약 중 체포되어 순국한 이수택(李壽澤)이 있으며 을사조약 후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순직한 이백래(李白來)가 있다. 또 3·1운동 당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이종훈(李鍾勳)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주인공인 이휘소 박사가 있으며, 이용훈 대법원장, 이수성 전 총리, 이중재 전 의원과 아들 이종구 의원, 이경재 국회의원, 이주영 국회의원 등이 있으며, 이명재 전 검찰총장, 이택순 전 경찰청장도 광주이씨 가문이다. 또 우리나라 여성계의 태두인 이태영 박사를 비롯하여 탤런트 이순재, 야구선수 이승엽도 광주이씨 집안이다.

[현황]

광주이씨는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1985년에는 3만 3816가구 14만 1831명, 2000년에는 4만 8811가구 15만 8249명, 2015년에는 18만 1377명으로 조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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