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1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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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四友亭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창규 |
건립 시기/일시 | 1965년 - 사우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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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사우정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
원소재지 | 사우정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
성격 | 정자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 있는 정자.
[개설]
사우정(四友亭)은 손암(遜庵) 신성규(申晟圭)가 신정규(申楨圭)[1892~1931], 신문규(申文圭)[1903~1965], 신홍규(申弘圭) 등 세 명의 형들의 유지를 계승하기 위하여 만든 정자이다.
신정규는 조선 성종 시기 밀양에 들어온 낙진당(樂眞堂) 신승준(申承濬)의 14세손이며, 송계(松溪) 신계성(申季誠)의 12세손이다. 1917년에 사종형 신효규(申孝圭)와 함께 7대조 매죽당(梅竹堂) 신동현(申東顯)의 문집을 간행하였다.
신홍규는 호가 중암(重庵)으로 일찍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재능과 식견이 넓고 뛰어났다.
신성규는 문장을 일찍 성취하고 재능과 덕성을 겸비하였는데, 항일 의기가 강하여 경상북도 김천시의 대덕산에 은거하여 보발(保髮)하다가 광복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 교육에 몰두하였다.
신성규가 쓴 「사우정기(四友亭記)」를 보면 사우정의 앞은 청사(廳事)로 하고, 뒤는 실(室)로 만들어 좌실은 ‘정매(征邁)’라고 편액을 걸었는데 형의 뜻을 풀어 쓴 것이라고 한다. 또한 우실은 ‘공회(孔懷)’라고 하였는데 신성규 자신의 감회를 말한 것이며, 정당은 ‘사포서당(沙浦書堂)’이라고 하였는데 자신과 조카들이 독서하는 곳임을 드러내며, 문은 ‘식호문(式好門)’으로 하였는데 훗날 이 문을 출입하는 후손들이 형제들의 당시 마음을 알고 영원히 서로 소홀함이 없게 하고자 하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총괄하여 사우정이라고 하였다.
[위치]
사우정은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 있다.
[변천]
사우정은 신성규의 형들이 지금의 사우정 터에 별업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이후,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40여 년이 지나 1965년에 건립되었다.
[형태]
사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이 팔작지붕이며, 일자형 건물이다.
[의의와 평가]
사우정은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조상들의 훌륭한 업적과 지혜와 슬기를 계승하면서 숭모 정신을 후손들에게 전하는 곳으로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