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1314
한자 洗心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숭진길 55-7[숭진리 720]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하강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77년연표보기 - 세심정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세심정 화재로 소실
개축|증축 시기/일시 1925년연표보기 - 세심정 개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6년 - 세심정 증축
현 소재지 세심정 -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숭진길 55-7[숭진리 720]지도보기
원소재지 세심정 -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숭진천 서쪽 언덕
성격 누정
양식 목조
정면 칸수 3칸[좌측]|2칸[우측]
측면 칸수 2칸[좌측]|2칸[우측]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숭진리 금호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자.

[개설]

세심정(洗心亭)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숭진리 금호(琴湖)에 정착한 조경암(釣耕庵) 장문익(蔣文益)[1596~1652]의 아들 회옹(晦翁) 장희적(蔣熙績)[1627~1705]이 은거하며 덕성을 함양하던 별장이다. 당호는 장희적의 별호이기도 하다.

밀양과 첫 인연을 맺은 아산장씨 인물은 시조 장서(蔣壻)의 11세손 장림(蔣霖)이다. 장림은 세종 때 경상북도 의성에서 부북면 제대리 지동으로 이거하였고, 고손자 장춘수[1523~1590]는 지동리에서 대항리 하항으로 이거하여 문호를 확장하였다. 장효범(蔣孝範)의 아들이자 장춘수의 사촌 동생이 장경신[1533~1598]인데, 신홍미의 사위가 되어 가족을 데리고 한양 반송방으로 이주하였다. 손자 장문익은 아버지 장영[1566~1611]이 사망하자 형 장문진(蔣文晉)과 함께 치상한 뒤 어머니 밀양박씨를 모시고 삼랑진에 터를 잡았다. 다섯 아들 중 둘째 아들 장희적(蔣熙績)은 창원의 아버지 별서에서 태어나 일찍이 가학을 계승하고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뒤에 큰아버지 장문진에게 입양되었다. 1677년(숙종 3) 숭진천 서쪽 언덕에 별업을 지어 편액 ‘세심정(洗心亭)’을 내걸고 도학을 추구하였는데, 세상을 떠난 뒤 인근 청학리 가정산 뒤 아버지의 묘소 아래에 묻혔다. 세심정 건립 무렵 남곡(南谷) 권해(權瑎)[1639~1704]가 지은 「세심정기」[1687]가 장희적의 『세심정집』에 전한다.

[위치]

세심정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숭진리 720번지에 있다. 금호회관에서 북쪽으로 약 50m 올라가면 나온다.

[변천]

세심정은 1910년 화재로 소실될 때 현판을 가져와 장희적이 거처한 곳으로 전하던 마을 사랑채에 편액을 내걸었다. 당시 장희적이 허목의 제자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편액에 미수체의 ‘복신지(卜新地) 재구정(材舊亭)’이라는 글씨를 상하로 새겨 넣었다. 이후 세심정은 1925년 중수되고 1976년 다시 중수되었다.

[형태]

세심정 건물은 ‘「‘자 형태로 좌측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고, 우측은 정면과 측면이 2칸이다.

[현황]

세심정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건물 전체가 방치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세심정을 통하여 아산장씨의 삼랑진 정착과 밀양 지역 내 사족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