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논산 지역 일대에서 가뭄 시 맞두레로 논에 물을 댈 때 불렀던 농업노동요.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화산리에 사는 김덕만(남, 1915년 채운면 야화리에서 출생하여 해방 후 이주), 연산면 백석리에 사는 박귀덕(남, 1913년 출생), 논산시에 사는 강영식(남, 1937년 부여군 석성면 출생하여 39세에 이주)의 창을 채록하여 『논산시지』에 수록하였다. 「고루박질 소리」는...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아호리에서 광안에 시신을 묻고 달구꾼들이 회와 흙을 밟아 다지면서 부르는 장례 의식요. 「회다지 소리」는 상주의 슬픔을 달래 주는 한편 무덤을 만드는 사람들의 흥을 돋게 하는 역할을 하는 노래로, 논산·부여·공주 문화권에서는 경기 북부나 강원도에 비해 「회다지 소리」가 빈약한 편이다. 논산시의 경우 후렴구에 ‘달귀’가 들어가는 달귀형은 부적면 아호리·연산면...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신양리에서 도리깨로 곡식의 낟알을 떨구면서 부르는 농업노동요. 1989년에 논산시 벌곡면 신양리에서 이매홍, 안경순, 고오복 등이 부른 「도리깨질 소리」를 채록하였다. 메기고 받는 멕받형식이다. 장도리깨가 "여기야" "우려라" 하면, 종도리깨꾼들은 지시하는 대로 "에야" "어야" 하면서 힘내는 소리로 받으며 내려친다. (메)에야/ (받)에야/ (메)여기야/...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논에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노동요. 연무읍 안심리(백갑석), 가야곡면 육곡리(김혜동·신정길·윤은중), 광석면 득윤리(고석중)와 이사리(박영길), 노성면 읍내리(김우현), 두마면 향한리(민영식·하선녀), 벌곡면 사정리(정구채)와 신양리(안경순·이매홍·고오복) 그리고 도산리(조기성), 부적면 아호리(정진용·정만현·권정옥), 상월면 대명1리(박명종 등)와 학당리(...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서 모를 찌면서 불렀던 농업노동요. 논산 지역의 「모찌기 소리」는 별도로 있지 않으나, 상월면 대명리에서는 “뭉쳐 뭉쳐 뭉쳐 놓세”를 받음구로 하는 뭉치세 류를 모찔 때 부른다. 2002년도에 상월면 대명리 1구의 주민 박명종과 이재원 등의 창을 채록하였다. 메기고 받는 멕받형식이다. 전국적으로는 먼데류·쪘네류·철더럭쿵류·불림곡 유용류 등과 경상도 모...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서 물이 새지 않도록 방죽을 다지면서 불렀던 노동요. 방죽을 다질 때에 상월면 대명리 사람들은 차류를 가창하였다. 가야곡면 육곡리의 신정길 제보에 의하면 못터를 다질 때에는 차류(“어여러 차”)와 상사류(“얼럴럴 상사디야”)를 불렀다고 한다. 1987년에 가야곡면 육곡리에서 이재원의 노래를, 2002년에 상월면 대명리 1구에서 주민들의 창을 채록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서 범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에 논산시에서 출간한 『논산시지』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있는 어느 마을 야산에 한 쌍의 호랑이가 살았다. 호랑이는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말썽을 부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매년 호랑이의 제물로 예쁜 처녀를 바쳤다. 이 마을에는 농부의 딸이 살고 있었는데, 농부의...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에서 말린 볏가리를 지게에 얹고 마을로 옮기면서 불렀던 노동요. 전라북도의 부안, 정읍, 김제, 순창 지방에서 「벼등짐 소리」를 채록한 바 있지만, 채운면의 「벼등짐 소리」는 이들과 곡이 다르다. 1989년에 채운면 화산리에 살고 있는 주민 김덕만(채운면 야화리에서 1915년에 출생)의 창을 채록하였다. 메기고 받는 멕받형식으로, 받음구 예는 “헤-헤-...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볏단을 자리개로 묶은 후 탈곡하면서 부르던 노동요. 「벼바숨 소리」는 충청남도 지방에서도 중서부 지역이 왕성하다. 천안시, 아산시, 연기군, 금산군 및 대전 등지에는 전해져 있지 않다. 논산시 지역에서는 널리 불린 듯한 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가야곡면 육곡리(신정길 창), 노성면 읍내리(김우현 창), 벌곡면 신양리(안경순 등), 상월면 대명리(박명종 등)와 학...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장례를 치르면서 부르는 상례의식요. 1987년부터 2002년까지 논산읍과 강경읍, 상월면, 부적면 등 논산 읍면에서 토민들로부터 「상부 소리」를 채록하였다. 이를 근거로 2003년 문화재청에서 출간한 『충남지방의 상부 소리』와 2005년에 논산시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논산시지』에 일부를 수록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시에 전해 오는 「상부 소리」는 널액막음 소리...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에서 쌍계사 하마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에 논산시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논산시지』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불명산(佛明山)에 쌍계사가 있다. 이 절은 하늘의 상제(上帝)가 짓도록 하였다고 한다. 옛날에 상제가 이 땅에 절을 하나 짓기로 마음먹고 아들을 세상으로 내려보냈다. 상제의 아들은 지금의 쌍계사 자리에 절터...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에서 석불보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에 논산시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논산시지』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나라 안에 호열자(虎列刺, 콜레라)가 번성하여 민심이 흉흉하고 여기저기에서 사람이 죽어 나갔다. 조정에서는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어 고심하고 있을 뿐이었다. 새끼줄을 치고 격리시키는 것 외에는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 날이 갈...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서 논을 매면서 바숨형 논맴소리 뒤에 풍장굿을 쳐가며 부르던 농업노동요. 「쌈 소리」는 농부들이 논을 다 매 갈 무렵, 선소리꾼이 처음에 ‘우-아-아-’ 하고 소리 내는 것을 신호로 에염을 싸 가면서 하던 소리이다. 따라서「쌈 소리」를 논산 지역의 「옹골 소리」처럼 일반적인 「에염 싸는 소리」로도 이해할 수 있다. 2002년에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서 김매기를 할 때 부르던 농업노동요. 볏모를 이식하고 나서 활착하게 되면 논에 난 잡풀을 제거하는데, 논산 지역에서는 이와 같은 잡풀 제거 작업을 ‘김맨다’고 하였다. 「얼카산이냐」는 이 김매기를 할 때 부르던 노동요이다. 이소라가 조사·채록하여 2005년에 출간된 『논산시지』에 수록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의 자료는 주민 박명종이 메기...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에서 아기장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산리 아기장수」는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은진 고을에 단란하게 살아가는 한 부부가 있었다. 집 옆에는 수백 년 묵은 큰 나무가 서 있었다. 부부는 이 나무를 정성껏 위하였다. 비록 가난하였지만 부부간의 사이가 좋아 마을 사람들이 부러워하였다. 그러나 자식...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에서 아흔아홉 칸 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윤대감과 아흔아홉칸집」은 2005년 논산시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논산시지』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때에 지금의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 노성초등학교가 있는 곳에 윤대감이라고 하는 큰 부자가 아흔아홉 칸이 되는 큰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윤대감은 재력도 풍부하고 세도도 당당하여 전국에서 그를 모르는...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와 양촌면 오산리에서 의적 달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의적 달이」는 2005년 논산시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논산시지』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전기의 일이다. 나라의 기틀이 잡히기 직전인지라 나라 안 여기저기에서 도적들이 우글거리며 남의 물건을 약탈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이러한 도적을 소탕하기 위해 군사들을 풀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서 상여를 운구하면서 부르는 행상 소리의 하나. 「줄행상 소리」는 상월면 대명리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인데, 「짝 소리」처럼 상여꾼이 상여의 앞뒤의 두 패로 나뉘지 않고, 일반 행상때처럼 상여의 좌우에 상여꾼들이 늘어서서 운구하며 부르는 의식요이다. 메기고 받는 멕받 형식으로 되어 있다. 2002년 9월 23일에 이소라가 논산시 상월면 대명1리로...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서 논밭의 잡풀을 매면서 불렀던 농업노동요. 지심 소리란 「논맴 소리」와 「밭맴 소리」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보통명사이지만, 여기에서는 상월면 대명리 1구의 가창자들이 「지심 소리」라 이름하는 이른바 바숨형 「논맴 소리」만 다룬다. 은진면 교촌리 최광식 창("아에-헤, 허 어로 고호 나-")과 양촌면 도평리 3구 문무중 창(“아하 헤”) 및 양촌면...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지역에서 상여를 운구하면서 부르는 행상 소리의 하나. 「짝소리」는 상월면 대명리에서 방맹이상여로 운구할 때에 상여의 앞쪽과 뒤쪽에 두 패로 나뉜 상여꾼들이 부르는 운상 소리이다. 일반의 상례의식요에 비해 경쾌하여 전라남도의 세 마디 어노류와 더불어 「춤상여 소리」라 일컬을 수 있는 있는 것으로, 멕받 형식인 세 마디 어노류의 메김소리만을 가지고 짝패 형식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천동리에서 노송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광석면 천동2리 대중마을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배의 형국이다. 그래서 어느 곳을 파도 물이 나올 뿐만 아니라 물맛이 좋아 샘골이라고도 불린다. 「천동리 노송」이야기는 조씨가 노승의 도움으로 우물을 파고 그 옆에 소나무를 심었으나 조씨의 후손이 이 소나무를 베어버려 가세가 쇠퇴하였다는 풍수담이다. 1994년 논산문...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집터나 못터를 다질 때 부르던 노동요. 「터다짐 소리」란 집터나 못터를 다질 때 지경돌을 동아줄로 엮거나, 또는 묵직한 나무둥치에 나무 손잡이를 달고 붙잡아 내리치며 부르던 소리이다. 넓은 의미의 「터다짐 소리」에 속하는 「묘터 다지는 소리」는 지역에 따라 달구꾼들이 달굿대를 이용하여 발로 밟으면서 다지는 경우, 광 밖에서 달굿대만 광 안에 넣고 다지는 경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의 황산벌에서 있었던 백제 마지막 전쟁을 코미디 형식으로 만든 영화. 「황산벌」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희화(戱化)한 최초의 한국영화이다. 논산시 연산면 지역의 천호리(天護里)·연산리·표정리(表井里)·관동리(官洞里)·송정리(松亭里) 등을 포함하는 곳인 황산벌은 백제시대 최후의 격전지로 영화에서는 당시에도 사투리를 썼다는 가정에서 기존의 역사를 코믹하게 재구성하...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율리에서 마당배미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논산시지편찬위회에서 간행한 『논산시지』에 실려 있다. 옛날 광석면 율리 횟방골에 덕을 베풀며 사는 황부자가 있었다. 길가는 나그네가 이 집을 찾으면 따뜻이 맞아들여 대접하니 손님이 그치질 않았다. 반면 부녀자들은 물에서 손을 뗄 여가도 없이 분주하였고 언제나 손이 짓물러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이...
-
논산문화원에서 매년 글짓기 입상 작품을 모아 발간하는 학생 문예지. 논산문화원에서는 1986년 5월부터 관내 청소년백일장을 열고 우수 작품에 대한 시상식을 개최해 왔다. 그러다가 1993년 8월 20일 지난 8년간의 수상 작품과 경로효친에 대한 글짓기 공모를 통한 우수 작품을 선별하여 『논산문예』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논산문화원에서는 원래 논산시 관내 청소년들을 일정한 장소에 모아...
-
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있는 한국문인협회 논산지부에서 발간하는 문예지. 『논산문학』은 1993년 창간된 이래 한국문인협회 논산지부 회원 및 논산 출신 문인들의 작품을 싣고 있다. 게재되는 작품의 주요 장르는 시와 수필이지만 소설이나 평론 등도 자주 실리고 있다. 연간지이며 사화집(詞華集)의 성격을 띠고 있다. 논산 지역에는 1991년에 이미 한국문인협회 논산지부가 설립되었으나 실...
-
2005년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발간한 시지. 1994년 『논산군지』 발간 이후 1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새롭게 변화하고 발전된 모습을 반영하고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집필자로 선정하여 새로운 자료들을 조사하고 보완·수정하여 2005년 12월에 발간하였다. 특히 ‘충절과 예학의 고장’이라 불리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논산시를 부각하기 위해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지리...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활동하는 놀뫼문학동인회에서 발간하는 문학 동인지. 『놀뫼문학』을 발행하는 놀뫼문학동인회는 논산 지역에 거주하는 시인들이 주축이 되어 1987년 12월에 결성한 문학동인회이다. 명칭은 논산의 옛 이름인 ‘놀뫼’에서 따왔으며, 시인들만의 동인회라는 점에서 금산의 좌도문학회와 성격이 비슷하다. 동인지 발간, 시 낭송회, 백일장, 독서 강좌 등의 다양한 사업을 통해 논...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활동하는 황산문학동인회에서 발간하는 문학 동인지. 『황산문학』은 충청남도 논산시와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 문인들의 문예 동인지이다. 1993년 창간호를 발표한 이후 10명 내외 동인들의 작품을 모아 연간지 형태로 꾸준히 발간해 오고 있다. 1993년 황산문학동인회 회원들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뒷받침하고 남성 문인들뿐 아니라 중앙문단에서도 소외받는 지역 여성...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곡리의 명칭은 산수가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의미의 한자에서 유래된 설과 옛날 이곳에 갓을 파는 점포가 있어 갓점골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화하여 가곡리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장구면(長久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중리(九中里)·노계리(魯溪里)·지장리(芝庄里)·중산리(中山里) 등을 병합하고 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가곡리 지역에 있는 산지·구릉 등의 고지로 둘러싸인 분지. 우리나라 분지는 대부분 암석경연 차이에 따른 차별침식의 결과나 단층선의 형성으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가곡리 분지의 경우 남쪽에 동~서 방향의 단층선이 발견되고 있으나 분지 형성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듯하며, 지질구조상 좌우 사면의 지질 차이와 하천의 개석에 의해 형성된 분지로 추측된다. 지질...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 가곡영당에서 매년 봄과 가을에 이삼 장군을 모시는 제례. 백일헌 이삼(李森) 장군은 가곡영당이 있는 상월면 석종리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상월면 주곡리 출신이다. 이삼 장군은 소년 시절 바로 이웃 마을에 사는 명재 윤증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삼(森)이란 이름도 스승인 명재 윤증이 지어준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삼 장군은 조선시대 영조 대에 훈련대장...
-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면. 조선시대 가야실의 이름을 따서 가야곡면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 지역으로, 두월(斗月)·등리(登里)·조정(釣亭)·종연(鍾淵)·소조(所鳥)의 5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마면(葛麻面)의 목곡(木谷)·성덕(城德)·평리(坪里)·서촌(西村)·매오(梅五)·병암(屛岩) 등 20개리와 상두면(上豆面)의 비종(飛宗)·두계(杜溪)·강청(江淸)...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야촌리 일원에 있는 산업 집적화 시설. 지방산업단지는 지방자치단체가 기획하고 지원하여 조성된 산업단지로, 주로 농공단지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다. 지방의 유휴 노동력을 활용하고, 이를 통해 도시와 농촌 지역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조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야곡산업단지 역시 초기에는 농공단지로 조성되었으나, 논산 지역의 산업 여건이 변화되고...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서 만드는 전통 약주. 가야곡왕주는 조선 말기 곡주의 규제가 완화되자 명성왕후의 친정인 여흥민씨 집안에서 집안 대대로 전해 오는 곡주와 조선시대 중엽에 성행했던 약술을 접목시켜 왕실에 진상하던 술에서 유래되었다. 후일 가야곡왕주는 여흥민씨 민재득이 딸인 도화회에게 전수하였고, 도화회는 현재 제조자인 딸 남상란에게 전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민재덕...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가정에서 오래 전부터 믿어져 온 신앙. 마을이란 정주 공간에는 산신을 위시한 여러 신들이 좌정하여 마을을 보살펴 주듯이, 집 안에도 다양한 신령이 깃들어 있어 길흉화복을 주관한다고 인식된다. 각 가정에서는 이들 신령을 잘 모시고 섬기는 종교적 의례를 거행함으로써 집안의 평안과 축복을 얻고자 하였다. 논산 지역의 가정신앙은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두 가지...
-
이인보를 시조로 하고 이다림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가평이씨의 시조 이인보(李仁輔)는 신라 때 완산(현 전라북도 전주시)의 호장을 지낸 인물이다. 『가평이씨세보』에 의하면 이인보의 8세손 이기문(李起文)이 조종에 이거하면서 본관을 조종으로 하였다가 조선 태조 때 조종이 가평에 편입된 후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의 손자 이다림(李多林)이 가평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서 조선 중기까지의 가평이씨 묘역. 가평이씨 집안은 고려시대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의 손자 이다림(李多林, 1394~1468)이 송리의 딸과 혼인하면서, 연산면 화악리에 세거하던 여산송씨의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화악리와 가까운 청동리에 세거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다림의 아들인 이형손(李亨孫, 1418~...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부터 마을 앞 넓은 들에서 쌀이 나오고, 산에서는 칡이 많이 나온다 하여 갈미(葛米) 또는 갈산(葛山)이라 불리고 있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광석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은동리(銀洞里)·입석리(立石里)의 각 일부와 득윤면(得尹面) 상동리(上洞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갈산리라 하여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에 있었던 농촌진흥회. 농촌진흥회란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후, 관료-유지 지배 체제의 형성 과정에서 총독부가 식민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발전시킨 주요한 기구 중 하나이다. 그중 갈산리 농촌진흥회는 연기군 봉암리 농촌진흥회, 당진군 유곡리 농촌진흥회와 함께 가장 유명한 충청남도의 3대 농촌진흥회 중 하나였다. 갈산리 농촌진흥회는 총독부가 광석면...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감곡리는 옛날 이 마을에 여승들이 수도하던 적사암이란 절이 있었는데, 감사(甘寺)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또한 감사가 있는 계곡이라 하여 감절 또는 감곡(甘谷)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적사곡면(赤寺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신리(基新里)·성수평리(城水坪里)·한신리(漢新里)를 병합하고 감곡리...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외성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조화로운 개성 있는 학생, 기초 능력을 토대로 창의력 있는 학생, 폭 넓은 경험을 바탕을 진로를 개척하는 학생,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학생,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바르고 알차고 튼튼하게’이다. 1954년 9월 10일에 부적국민학교 감곡분...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도산리에서 발원하여 벌곡면 어곡리를 지나 대전광역시 대덕구 문평동에서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 갑천 수계는 크게 신도천 유역과 벌곡천 유역으로 구분될 수 있다. 신도천 유역은 갑천의 상류로서 계룡산 남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신도안에서 부채꼴 모양의 지류를 모아 갑천에 연결되는데,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를 거쳐 대전광역시 기성동에서는 감입곡류를 한다. 벌곡천은 대둔...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1㎞ 떨어진 갓점마을의 서북향 계곡의 말단에 위치한다. 약 661㎡(약 200평)의 면적이 황폐된 채 남아 있는데 여기에서 약간의 기와편이 산견되었다. 절터에서 확인된 기와편은 조선시대 것으로 사찰의 조영시기를 조선시대로 추정할 수 있으며, 소규모의 암자형 불사가 자리했던 것으로...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의 각 단체들이 연합하여 강경 지역에 설립한 연맹. 강경각단체연맹은 지역 계몽을 위한 다양한 운동들을 총체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3·1운동 이후 일제가 무단통치를 폐기하고 이른바 문화정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의 각 지방에는 근대식 학교 교육을 통해 신지식을 수용한 지역 청년들에 의해 각종 청년운동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청년들은...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에 설치된 갑문. 강경갑문은 조석(潮汐)에 지장을 받지 않으면서 화물의 하역과 선적 작업을 가능하게 하고, 강물의 수위(水位)를 조절함으로써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1924년 10월 강경읍 내를 관통하는 하천의 하류 북옥리에 건립되었다. 강경포구가 성시를 누리던 시절 강경갑문은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명물이었다. 그러나 199...
-
충청남도 강경 지역에서 개항 이후에 건립된 건축물. 1910년 한일합방이 되어 우리 땅이 일제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일제는 건축 식민화를 본격화하였다. 1916년에는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설립하여 우리 건축가를 일부 양성하기도 하였다. 1920년대에는 모더니즘 양식, 곧 근대주의 건물이 개별적인 형태로 세워지기 시작했으나 일제 밑에서 교육을 받은 우리 건축가들은 그들의 식민화 건축 활동...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강경중앙장로교회는 하나님의 은총과 성도들의 눈물어린 기도와 헌신적 봉사로 교회의 성장을 꾀하여 하나님의 구령사업과 사회 봉사 활동에 매진하고자 설립되었다. 강경중앙장로교회는 1961년 1월 26일 강경읍 중앙리 20번지에서 고 오일수 장로의 가족을 중심으로 20여 명의 성도들이 모여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시작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 있는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후반 강경공립보통학교 개교 30주년을 기념하여 강경공립보통학교 후원회의 지원으로 준공된 건물로 한국 근대교육 시설의 주요 구성 요소의 하나인 학교 강당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논산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라는 역사적인 상징성과 함께 근대 도시 강경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의 하나로 연구 및 활용...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었던 고용인들 중심의 친목회. 강경고용인친목회는 1920년대 전개된 계몽운동의 영향을 받아, 논산군 강경면(현 논산시 강경읍) 지역의 고용인들을 중심으로 회원들의 복리 향상과 교양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강경고용인친목회는 1925년 5월 『조선일보』 강경지국에서 경찰의 엄중한 경계 속에서 창립되었다. 당시 회장은 우호경, 총무는 박석규 등...
-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던 천주교 교회. 강경 지역이 한국천주교회의 역사에 처음 기록된 것은 1883년의 일이다. 천주교 대전교구 통계자료집에 의하면, 1883년 당시 전라도 지역을 관할하던 리우빌 신부(Liouville, 한국명 유달영(柳達榮), 파리외방전교회)가 방문하여 사목 활동을 한 공소 중 은진 지방에 강경공소가 나타난다. 1883년 4월...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있는 농업협동조합. 강경농업협동조합은 지역 농업인들의 경제적 이익 증진과 권리 향유 및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69년 12월 23일 설립 인가를 받고 1970년 1월 28일 강경리 농업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1971년 9월 강경읍 대흥리 19-6번지에 사무소 건물을 매입하였다. 1972년 1월부터 상호 금융 업무를 취급하기 시작...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돌다리. 강경 미내다리는 채운면 삼거리 강경천에 설치되었으며, 조선시대 충청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도로상에 놓였던 다리이다. 강경 미내다리는 길이 30m, 너비 2.8m, 높이 4.5m로 건설 당시 삼남 지역에서 제일 규모가 큰 다리였다. 3개의 홍예(虹霓)는 가운데가 크고 남북쪽이 약간 작으며, 받침은 긴 장대석으로 쌓고 그 위에...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서 해마다 10월 중순에 열리는 젓갈 축제. 1930년대 최대의 성시를 이루었던 금강 상류의 강경 지역은 지리적으로 내륙 깊숙이 위치해 해상 교통과 육상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매김하면서 각종 수산물의 거래가 왕성했다. 또한, 하루에 100척 이상의 각종 선박들이 서해와 남해 등지에서 잡은 생선과 건어물, 소금 등의 거래가 이루어진 곳으로, 내륙과 섬의 교역 중...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강경포구로 들어오는 새우를 소금에 절여 만든 음식. 새우젓은 새우를 잡은 시기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부르는데, 음력 5월에 담근 것을 오젓, 음력 6월에 담근 것을 육젓, 가을에 담근 것을 추젓이라 한다. 오젓은 음력 5월에 잡히는 살이 많은 참새우로 담근 새우젓으로, 껍질이 얇고 맑은 연분홍빛을 띠며 육젓 다음으로 좋은 젓갈이다. 육젓은 음력 6월...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있는 시외버스 정차 및 승하차 시설. 강경시외버스터미널은 강경읍에서 공주·논산·천안·성남·조치원·청주·서울·대전 등지로 운행하는 시외버스와 논산시의 성동면과 연무읍, 부여군의 석성면 등지로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승하차할 수 있는 시설로서 건립되었다. 강경시외버스터미널은 1999년까지는 강경역 부근의 터미널길에 있었다. 2000년에 터미널길에서 1㎞ 정...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있는 호남선 기차역. 강경역이 있는 강경읍은 논산시의 남부에 위치하며, 행정구역상 서부는 금강과 부여군, 남부는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과 접경 지역으로서 호남과 호서의 관문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과 어우러진 강경읍에는 논산팔경 중의 하나인 옥녀봉과 금강이 자리 잡고 있으며, 강경평야가 있어 곡창지대로 손꼽히기도 한다. 강경읍에서는 매년 1...
-
조선 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설립된 우체국. 강경우편국은 강경 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우체국으로서, 이후 계속해서 논산·석성·노성 지역에도 우체국이 개설됨으로써 논산 전역은 근대적 우편 체제로 개편되었다. 1902년 7월 1일 통신원고시 제5호에 의해 강경우편국이 개설되었다. 이와 더불어 1903년 2월 20일에는 통신원령 제2호로 강경에 전보사가 설치되었으며, 같은 해 4월 1...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읍. 강경포(江景浦)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금강을 낀 포구의 이름이 이 지방의 지명으로 대표하게 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은진현(恩津縣)에 강경호가 있다고 나오고, 미내교비에도 강경촌이라는 지명이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지명인 것 같다. 본래 은진군 김포면(金浦面) 지역으로, 상강(上江)·환대(換垈)·홍교(虹橋)·답대(沓垈)·황산(...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의 강경읍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강경읍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의 3·1운동에 호응하여 충청남도 논산의 강경읍 일원에서 1919년 3월 10일부터 4월 7일까지 전개된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 항거한 일련의 독립만세운동을 말한다. 강경읍은 논산 지역뿐만 아니라 충청남도 전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된 대표적인 지역으로 주로 옥녀봉과 시장을...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서 5일 간격으로 열리는 재래시장. 조선시대 강경장(江景場)은 금강 수운을 기초로 하여 주변 지역에서 산출되는 생산물의 집하, 배급 기능을 담당하는 시장이었다. 강경장은 추석이나 설을 전후한 시기에 1만 5천여 명 이상이 몰리는 큰 시장으로, 19세기 초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전국 15개 장시 중 하나로 꼽혔으며, 조선 말기에는 대구장·평...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있던 전기 보급회사.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흔적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지역 중의 하나이다. 강경포구를 중심으로 상인과 농어민, 그리고 각지에서 몰려든 객주(客主)들이 성황을 이루었으며, 강경역이 세워짐으로써 강경역 주변은 새로운 근대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렇듯 강경 지역의 급속한 인구 밀집으로 인해 각종 시설이 들...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일원에 있는 강경전통맛깔젓 유통 시장. 강경젓갈시장은 1930년대까지 국내 3대 시장 중 하나였던 강경 시장의 명성을 되찾고, 강경전통맛깔젓을 강경 지방의 특산물로 내세우면서 이를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1990년대부터 강경읍 일원에 복원하기 시작하였다. 1930년대까지 강경 지역은 강경전통맛깔젓 등의 각종 수산물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포구가 있었...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강경전통맛깔젓 홍보를 위한 전시관. 일제강점기까지 원산포구와 함께 전국 2대 포구로 유명했던 강경포구와 평양시장·대구시장과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으로 번성했던 강경시장은 서해안에서 생산되는 각종 수산물이 집산되어 거래되던 곳이었다. 당시 새우·황석어 등 어물을 염장, 발효시켜 젓갈로 만들어 판매하면서 반찬과 김장재료로서 강경젓갈은 전국적으로 유...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의 젓갈을 특화시킨 정보화마을. 강경읍 남교리·태평리·염천리 일대는 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어 예부터 곡창지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강경읍에 있는 강경포구(江景浦口)에는 서해와 통하는 금강이 있어 굴지의 수산항으로서 한 세기 영화를 누리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강경은 계룡산과 대둔산에서 발원하는 금강 지류들이 논산천(論山川)에서 합류하고 강경읍 부근에서 금강...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절 바르고 스스로 소질을 계발하며 푸른 꿈을 키우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큰 꿈, 큰 희망’이다. 1905년 4월 2일 2년제 사립 보명학교로 개교하였다가 1907년 4월 7일 4년제 공립 강경보통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20년 3월 1일 수업 연한을 6개년으로 인가받았다. 1938년 4월 1일...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 수철천에서 시작되어 강경읍 북옥리에서 논산천에 합류되는 하천. 강경천 유역은 연무읍·채운면·강경읍 일대의 넓은 평탄지를 곡류하는 강경천과 그 지류 유역으로서 발원지는 함박봉과 그 주변 산지이다. 즉 함박봉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는 마산천과 연무읍 고내리·황화정리의 내부 산간지에서 흘러 내려 북서류하는 황화천이 연무읍 모청 부근에서 합류하여 북서류한다. 강...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흐르는 강경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축조된 제방. 강경천은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에 위치한 함박봉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는 마산천과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황화정리의 내부 산간지에서 흘러 내려 북서류하는 황화천이 연무읍 금곡리 모청마을 부근에서 합류하여 북서류하면서 형성되는 하천이다. 강경천은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의 용화산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는 여산천과 익...
-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천의 제방공사. 강경천 제방공사는 일제강점기에 현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이 호남선 개통, 호남병원 설립, 강경전기주식회사 설립, 학교 설립 등과 더불어 도시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제방공사이다. 홍수로 인한 강경천의 범람 피해를 예방하고 가뭄에 대비하여 농업용수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시행하였다. 1922년부터 1924년까지...
-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강경천 및 논산천 개수 사업. 일제강점기 현 충청남도 논산 지역이 호남선 개통, 호남병원 설립, 강경전기주식회사 설립, 학교 설립 등과 더불어 도시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개수 사업이다. 홍수로 인한 강경천 및 논산천의 범람 피해를 예방하고 가뭄에 대비하여 농업용수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시행하였다. 1931년부터 1933년까지...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에 설립된 청년회. 3·1운동 이후 일제가 무단통치를 폐기하고 이른바 문화정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의 각 지방에는 근대식 학교 교육을 통해 신지식을 수용한 지역 청년들에 의해 각종 청년운동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청년들은 군이나 면 혹은 동리 단위로 청년수양단체를 결성한 뒤 야학·생활 개선 등과 같은 민중계몽 활동과 강연회·토론...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에 있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교회. 1889년의 창립예배 이후 1896년에 창립된 강경침례교회는 논산 지역 개신교 중에 가장 먼저 설립된 교회이다. 1889년 한국에 온 캐나다인 선교사 펜윅의 영향으로 미국 보스톤 클라멘톤 침례교회 엘라씽기념선교회에서 파송한 폴링과 스태드맨의 선교로 1896년 2월 9일 지병석이 강경읍 북옥리 136번지 자택에서 강경...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포구. 강경포구는 금강 본류와 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내륙으로 통하는 논산천, 강경천, 염천 등의 지류가 이어지고, 서해의 조류도 강경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해상 교통과 내륙 교통을 잇는 큰 포구로 번성하였다. 강경포구는 조선 말기 3대 시장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강경장을 배경으로 하여, 성어기인 3~6월의 4개월 동안은 하루 100여 척의 배가...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서로 돕고 바른 예절을 실천하는 어린이, 깊이 생각하고 새로움을 탐구하는 어린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의지가 강한 어린이, 소질을 계발하고 자기의 꿈을 가꾸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5년 10월 25일 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12월 10일 강경남정국민학교...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효자와 열녀. 강병흠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한겨울에 아버지가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저수지의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드리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밤낮으로 약을 달이는 등 병간호를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꿈속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아버지 병에는 산삼이 좋다고 하며 산삼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다음날 강병흠이 할머니가 일러준...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효열 정려. 강병흠은 진주강씨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친이 살아 있을 때 정성을 다하여 섬겼고, 사망한 후에는 6년간 시묘살이를 하면서 항상 옷자락에 돌을 담고 다니며 고행하여 사람들이 포석효자(包石孝子)라고 불렀다. 강병흠의 처인 평택임씨 역시 시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하였고, 남편이 죽자 자결하였다. 이들의 효열행을 기리고...
-
충청남도 논산시 부창동에 속하는 법정동. 산의 형태가 마치 생강처럼 생겼다고 하여 생미 또는 생매·강매·강산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성본면(城本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죽곡리(竹谷里)·동산리(銅山里)·해창리(海倉里)의 각 일부와 화지산면(花枝山面) 취암리(鷲岩里)의 일부와 송산면(松山面) 내동리(奈洞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강산리라 하여 논산군 대조...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에 있는 강상고등학교 음악 동아리. 강상고등학교 관악부는 강상고등학교 학생들이 음악 활동 체험을 통하여 올바른 정서와 인성을 기르고, 음악 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하여 1931년 설립되었다. 강상고등학교 관악부에서는 강상고등학교의 특색 사업인 ‘소외된 이웃을 위한 연주 봉사’를 실현하기 위하여 충청남도 논산시에 소재한 요양...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복이(復而), 호는 월당(月塘)·삼당(三塘). 아버지는 이조참의를 역임한 강찬(姜燦)이고, 외할아버지는 김은휘(金殷輝)이다. 딸이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빈(嬪)이 되었다. 큰아버지인 강돈(姜焞)에게 입양되었다. 강석기는 김장생의 문하에서 송준길(宋浚吉)과 함께 예학(禮學)을 공부하였으며, 훗날 입신양명하여 김장생 문하의 구대...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세형은 1899년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면 중정(仲町)에서 출생하였다. 잡화상으로 일하던 중, 1919년 3월 10일 곽성진(郭性鎭)·석광열(石光烈)·박금봉(朴今奉)·추병갑(秋炳甲)·김종갑(金鍾甲) 등과 함께 사립 창영학교 교사 엄창섭(嚴昌燮)이 주도하는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강세형 등은 1919년 3월 8일 강경읍에서 조선...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유생이자 효자. 자는 공직(公直), 호는 중화재(中和齋).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강의(姜毅)이다. 강응정은 부모에 대한 효가 지극하여 1470년(성종 1) 효행으로 관직에 천거되었으나 이를 사양하였다. 1483년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 유생으로 김용석(金用石), 신종호(申從濩), 박연(朴演), 손효조(孫孝祖), 정경조(鄭敬祖), 권주(權柱) 등과...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강응정의 정려. 강응정(姜應貞)은 모친이 병들자 3년여 동안 정성껏 봉양하여 천수를 누리게 하였고, 사망한 후에는 5년 동안 정성껏 시묘를 하였다. 강응정의 이런 효심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성종이 친필로 쓴 현판을 내리고 정려를 건립토록 하였다. 가야곡면소재지에서 산소지를 거쳐 연산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4.5㎞를 가면 산노...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왕암천의 주변에 있는 마을인데, 예부터 냇가에 돌이 많아 내가 항시 말라 있어 간천이라 불러오다 강청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상두면(上豆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비종리(飛宗里)·두계리(杜溪里)·원곡리(元谷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강청리라 하여 가야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밀의 알곡을 떨어내는 데 쓰던 농기구. 개상은 밀농사에서 탈곡기가 일반화되기 이전인 1970년대까지 쓰였던 농기구이다. 굵은 통나무를 옆으로 뉘어 고정시켜 쓰거나 나무 도구통(절구통)을 눕혀서 썼는데, 논산 지역에서는 통상적으로 도구통을 사용했다. 개상은 길이 1m 이상 되는 굵고 둥근 통나무 네댓 개를 가로로 대어 엮고 다리 네 개를 박아 만든 것이다. 이...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가톨릭에서 분리되었으며 로마가톨릭·동방정교(그리스정교)와 더불어 기독교 3대 교파 중 하나가 되었다. 전 세계에는 루터교(Lutheran), 장로교(Presbyterian), 성공회(Anglican, 聖公會), 침례교(Baptist), 감리교(Methodist), 성결교(Holiness Ch...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물이 흐르고 낮은 산등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개척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석성군(石城郡) 병촌면(甁村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불암리(佛岩里)·원당리(元堂里)와 우곤면(牛昆面)의 서당동, 임천군(林川郡)의 일부를 병합하고 개척리라 하여 성동면에 편입되고, 1932년에는 채운면(彩雲面) 신촌리가 추가 편입 되었다. 19...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대한불교 법상종 소속 사찰. 936년(태조 19) 황산군(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서 후백제 신검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일이 부처님의 은혜와 산신령의 도움에 의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여 연산면 천호리에 개태사를 창건하기로 하였다. 940년 개태사가 완공되자 왕건은 화엄법회를 열고 친히 소문(疏文)을 지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호남선 기차역.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세운 사찰이다. 개태사 인근에 있어 이름 붙여진 개태사역은 호남선의 철도역으로 건립되었다. 1944년 4월 9일 광석신호장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56년 2월 보통역으로 승격되었다. 1968년 11월 29일 현재의 역사를 준공하였고, 1969년 10월 1일 개태사역으로 역명...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지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세운 개국 사찰이다. 936년 창건되어 940년 완공되었다. 개태사 오층석탑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치하기 위해 건립된 석조물로 금당과 더불어 경내의 중앙에 위치하였다. 기단부는 대부분 결실된 채 탑신부와 상륜 일부가 남아 있다. 평면 방형에 탑신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고려 전기 사찰 터. 태조 왕건은 936년(태조 19) 황산군(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서 후백제 신검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후삼국을 통일한 후, 삼국 통일이 부처님의 은혜와 산신령의 도움에 의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여 연산면 천호리에 개태사를 창건하기로 하였다. 『고려사』 태조세가 19년조에 따르면 “이 해 광흥사, 현성사, 미륵사, 사천왕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에 있는 고려 전기 가마솥. 개태사 철확은 원래 개태사 창건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이 승려 5백여 명이 밥을 지어먹을 솥으로 내려 준 것이라고 전한다. 개태사가 폐허가 된 이후 벌판에 방치되어 있다가 1887년(고종 24)의 정해년 대홍수 때 4㎞ 정도 떠내려가 연산읍 앞 냇가에 방치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일본 사람들이 일본으로 가져가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와 계룡시 두마면 사이에 있는 고개. 개태치 아래에 936년(태조 19) 고려 태조가 창건한 개태사가 있어서 사찰의 이름을 따 개태치라 부르게 되었다. 개태치는 논산시 북동쪽 남~북 방향의 능선인 천호봉(352m)·깃대봉(393.1m)·국사봉(國司峯, 333m)에 있는 고개로,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개의 서쪽은 남~북 방향의 골짜기가 형성되어...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초상이나 혼례 등 사람이 많은 곳에 다녀온 뒤 아팠을 때 행하던 치병 의례. 객지에서 죽은 사람의 혼령을 뜻하는 객귀는 흔히 ‘뜬귀신’, ‘뜬것’, ‘잡귀’ 등으로 불린다. 가족 중에서 외출을 하고 돌아온 후에 까닭 없이 몸이 아프거나 몸살감기 증세를 보이면 객귀가 붙어 발병한 것으로 의심하여 객귀물림을 한다. 논산 지역의 객귀물림 중에는 잔밥먹이기나 해물리...
-
조선 후기 강경포구에서 상품의 위탁판매·창고업·화물수송업·금융업 등을 행하던 중간 상인. 논산의 서쪽에 자리한 강경포구는 조선 후기 농업생산력이 증대되면서 18세기 이후 상품작물이 등장함과 동시에 장시(場市)로 크게 발전한 곳이다. 전국의 3대 장시로 불릴 만큼 큰 규모의 장시가 열리고 상품유통이 활발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장시에는 수많은 전문직의 사람들이 상주하였는...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길거리를 떠도는 귀신을 위해 지내는 제사. 거리제는 대개 정초나 음력 정월 대보름 무렵에, 마을 어귀나 큰길 등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곳에서 부정을 막아 집안이 평안하고 마을에 큰 탈이 없기를 비는 뜻에서 치성을 드리는 의례이다. 길대장군제, 노신제(路神祭), 도로제(道路祭) 등으로 불린다. 논산 지역의 거리제는 주제자(집단)에 따라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부인리 외 16개소에 있는 고령토 광산. 고령토(高嶺土)는 바위 속에 있는 정장석(正長石)·소다 장석(長石)·회장석(灰長石) 등의 장석류(長石類)가 탄산 또는 물에 의하여 화학적으로 분해되는 풍화에 의해 생성된 흙이다. 도자기의 태토나 유약, 시멘트 등의 원료로 쓰는 고령토는 카올린·고릉토·백도토(白陶土)라고도 하며, 한국에서는 흔히 백토(白土)라고 한다....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모래벌판을 개척한 지역으로 선비들이 많이 살았던 데서 거사(居士)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모촌면(募村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방축리(防築里)·신평리(新坪里)·송정리(松亭里)·차곡리(磋谷里)·갈전리(葛田里)·죽내리(竹內里)·신흥리(新興里)의 각 일부와 적사곡면(赤寺谷面) 동상리(東床里)의 일부를 병...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와 연산면 고정리 사이에 있는 고개. 거정치재 아래에 고정리가 있는데, 이 마을에 예전에 큰절이 있었다고 하여 거절터·붉절골·적사곡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거정터·거정리·거정티·거정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따 거정치 또는 거정치고개·거정치재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거정치재는 반상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85m의 낮은 고개이다. 고개의 북쪽 능...
-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지식기반 사회를 선도할 정보기술 활용 능력과 실용 직무 능력을 가진 전문인, 다문화 이해 능력과 외국어 활용 능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 적응 능력을 갖춘 세계인, 창의적 지도력과 봉사 생활 습관을 바탕으로 국가와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민주시민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80년 사학재단 건양학원을 설립하였으며, 1988년 4월에 교육부로...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에 큰 바위가 많아 바위돌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다 하여 거미바위라 하였는데, 거미바위 아래로 냇물이 흐르고 있어 거천 또는 검천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벌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주티리[舟峙里]·축동(杻洞)·오작곡(五作谷)을 병합하고 검천리라 하여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 구고운재에서 발원하여 갑천에 합류하는 하천. 검천천은 논산시와 계룡시의 경계부에 위치해 있는 구고운재에서 발원하여 북~남 방향으로 약 1.2㎞ 흐르다가 서~동 방향으로 유로를 변경하여 벌곡면 양산리에서 갑천에 유입된다. 논산시 동쪽의 산지 사이를 흐르기 때문에 넓은 평탄지를 찾을 수 없으며, 특이할 만한 하천지형 또한 찾기 힘들다. 2010년 말 현재...
-
후백제의 초대 왕. 아버지는 농민 출신으로 뒤에 장군이 된 아자개(阿慈介)이며, 어머니는 상원부인(上院夫人)과 남원부인(南院夫人) 중 누구인지, 또 그 성씨가 무엇인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동생은 능애(能哀), 용개(龍蓋), 보개(寶蓋), 소개(小蓋)이며 누나는 대주도금(大主刀金)이다. 견훤은 892년(진성여왕 6) 신라 왕실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무진주(武珍州, 현 광주광역시)를...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에 있는 학자 이항래를 제향하는 재실. 이항래(李恒來)의 본관은 전주, 호는 월파(月波)이다. 조선 태조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益安大君) 이방의(李芳毅)의 증손 이현동(李賢童)의 12세손으로 천성이 어질고 착하였으며, 문장이 높고 학문이 깊었다. 부귀를 멀리하고 평생 학문과 덕을 쌓으며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가야곡면사무소에서 북쪽 1.7㎞ 지점에...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 18세기 이래 상품화폐 경제가 발달하자 화물의 대량운송이 가능한 곳인 포구가 경제산업 입지의 중요한 조건의 하나로 등장하게 되었다. 충청남도 논산의 강경 지역은 수로로도 비교적 큰 선박이 들어올 수 있었으며 육로로도 북으로는 공주, 남으로는 전주에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편리한 교통 이외에...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시묘리에 있는 효부 경주김씨의 기적비. 김씨부인은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온 마을에서 효녀 중의 효녀라고 칭찬이 그치질 않았다. 또한 예의범절도 깍듯하여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 시묘리에 살고 있는 박노봉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비록 살림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지만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남달라 주위에서의 칭송이 그치질 않았다...
-
이알평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경주이씨의 시조는 이알평(李謁平)이다. 이알평은 박혁거세가 왕이 된 뒤 아찬에 올라 군무를 장악했으며, 32년에 양산촌(陽山村) 이씨를 하사받았다. 경주이씨는 고려 후기 문인 이제현을 배출하면서 명문으로 성장하였다. 경주이씨가 논산 지역에서 언제부터 어떠한 경위로 세거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논산시 연산 지...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과 공주시 계룡면·반포면과 계룡시 신도안면에 걸쳐 있는 산. 계룡산은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숲을 지닌데다, 교통의 요지인 대전광역시와 가까이 있어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다. 경관이 매우 뛰어나 삼국시대에는 백제를 대표하는 산으로 계룡 또는 계람산·옹산·중악 등의 이름으로 바다 건너 당나라까지 알려졌으며, 통일신라시대 후에는 오악(五嶽) 중 서악(西嶽)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과 공주시 반포면·계룡면, 계룡시 두마면 및 대전광역시의 유성구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 백두대간 중 금남정맥의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계룡산국립공원은 지리산국립공원에 이어 두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계룡산은 조선을 개국한 후 태조가 신도안(현 계룡시 신도안면 일대)에 도읍을 정하려고 이 지역을 답사하였을 당시, 동행한 무학대사가 산의 형국이 금계포란형...
-
백제 말기 논산 지역에서 신라군을 맞아 싸운 무신. 성왕이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고 의자왕의 즉위 이래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는 당나라와 협력하여 서로 대립하였다. 결국 백제의 위기가 현실화되어, 660년(의자왕 20) 김유신(金庾信)과 소정방(蘇定方)의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지금의 대전 동쪽 마도령과 백강(白江)으로 진격해 왔다....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계백장군 유허지. 백제 말기인 660년(의자왕 20)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과 백강으로 진격해 오자, 계백 장군은 황산벌에서 5천여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신라 김유신의 5만 대군에 맞서 싸웠다. 전장에 나가기 전에는 가족들이 적의 노비가 되는 부끄러움을 면하기 위해 스스로 부인과 자식을 죽이고 떠났다고 한다. 계백 장군은 죽음을 각...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사이에 있는 고개. 고내곡재는 성재 또는 고내골재라고도 부른다. 옛날에는 산적들이 웅거(雄據)하여 이 고개를 넘어가는 행인들을 괴롭히기도 했다고 한다. 고생대 오도비스기에서 캠브리아기 사이에 형성된 옥천층군문주리층에 해당하며 흑운모편암과 견운모편암을 주로하고 있는 고개이다. 고개의 북쪽은 소릉재와 함박재(340m)로 이어지며,...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전라북도 여산군(礪山郡) 합선면(合先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옹점리(饔店里)·보성리(保城里)·외평리(外坪里)·신평리(新坪里)·신기리(新基里)·고분리(古分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고내리라 하여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1월 1일 연무읍이 승격됨에 따라 논산군 연무읍에 편입되고, 1996년...
-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논산시 지역 고등학교는 보통 교육을 주로 실시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와 전문 교육을 실시하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구분된다. 논산 지역은 타 지역에 비해 실업계 고등학교가 많으며 공업계와 실업계 고등학교들은 학생 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추세이다. 일반계 고등학교 역시 학급 수 감축을 피하고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
고려 건국 이후부터 고려 말까지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 통일신라시대에 웅주와 전주의 관할 구역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논산 지역은 고려조에 들어와 웅주가 공주로 개칭되면서 모두 공주의 관할 구역이 되었으며 연산군(連山郡), 덕은군(德恩郡), 니산현(尼山縣), 시진현(市津縣)이 그 구체적인 지역이었다. 연산군은 통일신라시대에 황산군이라 불리었으나 고려 초에 개명되어 현종 9년에 공...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서 생산되는 광물. 고령토는 바위 속 장석(長石)이 풍화 작용을 받아 이루어진 흰색 또는 회색의 진흙으로 도자기나 시멘트 따위의 원료로 쓰이는 광물이다. 고령석(카올리나이트)과 할로이사이트가 주성분으로, 장석류가 탄산, 물에 의한 화학적 풍화작용을 거쳐 생성된다. 순백색 또는 약간 회색이며 도자기의 원료로, 백자, 분청사기, 청자상감자기에 사용된다. 1970...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아궁이의 재를 긁거나 알곡을 넓게 펼칠 때 쓰는 농기구. 고무래에는 부엌의 재를 치우는 데 쓰는 부엌고무래와 수확한 벼, 보리, 콩 등 알곡을 넓게 펴거나 알곡들을 끌어 모으는 데 사용하는 곡식용 고무래가 있는데 모두 농가의 필수 농기구였다. 고무래의 정확한 연원은 알 수 없으나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고 정착 생활을 하면서 쓰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을...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고상준은 1900년 12월 17일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 중앙동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당시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 살던 중 1919년 3월 10일 곽성진(郭性鎭)·석광열(石光烈)·박금봉(朴今奉)·추병갑(秋炳甲)·김종갑(金鍾甲) 등과 함께 사립 창영학교 교사 엄창섭(嚴昌燮)이 주도하는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고상준...
-
이황(李璜)을 시조로 하고 이민(李岷)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고성이씨의 시조는 한문제(漢文帝) 때 사람인 이반(李槃)의 24세손 이황(李璜)으로 알려져 있다. 고성이씨는 고려 말 이후에 성세를 보였으며,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36명, 상신 1명을 배출하였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인물은 이원(李原)이다. 이원의 가계(家系)는 고려의 명문으로 고조부는 충렬왕 때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끼고 괭이다리(괭잇다리)가 있어, 이 다리 이름에서 마을 이름을 고양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백석면(白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식한면(食汗面) 교촌리(校村里)와 하교촌리(下校村里)를 병합하고 고양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연산면...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절터.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가 1557년(명종 12) 윤원형 당에 의해 삭탈관작, 문외 출송을 당하자 연산 지역으로 퇴거해 와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고운사 경내를 빌려 서재로 사용하고, 편액을 정회당이라 하였다. 그 후 효종이 고운사를 김집에게 사패지로 하사하자 현재의 자리로 자리를 옮겨 절을 개창하였다. 원래 고운사가 있던 곳은...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 고운사지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시대 부도. 부도는 승려들이 열반한 후 다비가 행해지고 이 과정에서 생긴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석조물이다. 일반적으로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석조물은 불탑으로 부르고 있으며, 부도와는 엄밀하게 구분되고 있다. 고운사는 원래 벌곡면 양산리에 있었으나 조선 중기 벌곡면 수락리로 이건하였다. 사역의 후면 산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에 큰절이 있었으므로 붉절골 또는 적사곡(赤寺谷)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거절터 또는 거정터·거정치·거정대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지역으로, 적사곡면(赤寺谷面)이 되어 청동(靑洞)·범남(凡南)·풍덕(豊德)·충곡(忠谷)·거사티[居寺峙]·안천(安川)·성겁(城劫)·성내(城內)의 8개 리를 관할해 오다가 1895년(고종 3...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서 광산김씨가 모여 사는 마을. 고정리는 1400년대 초반 광산김씨 동족촌락으로 형성된 이래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광산김씨 문중에서 배타적 공간으로 지켜 온 곳이다. 연산에 거주한 광산김씨의 연원(淵源)은 고려시기 본관지 광산을 이탈하여 중앙 정계에 진출했던 재경(在京) 광산김씨의 일파였다. 김약채(金若采)가 광산김씨로서는 최초로 연산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던 조선시대 석상. 사계 김장생의 조모 양천허씨의 사후 묘역을 정해 준 승려가 장례 기일을 지키라는 당부를 하였는데, 이 당부를 잊고 장례를 진행하자 승려가 갑자기 사망하였다고 한다. 훗날 이 사실을 안 종중원(宗中員)들이 승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양천허씨의 묘역이 바라보이는 지점에 묘소를 향하여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고정리 원고정...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열녀 양천허씨 정려. 양천허씨는 조선 전기 태조 때 대사헌을 지낸 허응(許應)의 딸로 광산김씨 김문(金問)과 결혼하였다. 17세에 남편이 죽자 부모가 다시 출가시키려고 하므로 아이를 데리고 시아버지 집으로 가서 평생을 마쳤다는 기록이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 보인다. 양천허씨는 유복자인 김철산을 정성을 다해 키워 좌의정을 지낸 김...
-
충청남도 논산과 관련한 조선시대 지도. 역사서로서 논산 지역을 언급한 최초의 문헌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있긴 하나 그 내용은 논산 자취의 편린만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고려사(高麗史)』조차도 실제 편찬 연대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보다 늦고 그 내용도 소략하여, 논산 지역 관련 지명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문헌은 『세종실록지리지』부터라...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와 벌곡면 검천리 경계에 있는 고개. 곰치재의 특별한 명칭유래는 확인할 수 없으나, 산직리 남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인 곡막 또는 골막을 상웅티라고도 하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명칭이 변하여 웅티 또는 웅재 등으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고개를 중심으로 서쪽 사면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석영반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동쪽 사면은 시대미상인 옥천 누층군 대...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위락 및 체육 시설을 활용할 수 있도록 설치한 녹지. 논산시의 공원은 자연공원과 도시공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공원은 국립공원·도립공원 등으로 구성되고, 도시공원은 어린이공원·근린공원·도시자연공원·묘지공원 등으로 구분된다. 공원은 총 58개소로 면적은 21,100,000㎡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자연공원이 1개소로 18,476,000㎡, 도...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성진은 1899년 10월 6일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서 출생하였다. 전라남도 순천 외가에서 순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17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1919년 학우들과 함께 서울 탑동공원에서의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고향인 논산 강경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계백 장군이 신라의 16세 소년 관창(官昌)을 사로잡아 그 의기를 가상히 여겨 살려 보냈는데 관창이 다시 침입하여 그를 부득이 잡아 죽인 곳이라고 하여 관창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관청골 또는 관동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식한면(食汗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촌리(校村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관동리라 하여...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터. 조선시대 논산 지역은 니산현(노성현)·연산현·은진현의 세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들 세 지역은 조선시대에 폐합되거나 분리되는 변화를 겪었는데, 조선시대에 군현이 폐합되는 경우는 그 지역에서 역적 또는 강상(綱常)의 죄인이 발생하거나 변란과 재해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게 되어 독립 군현으로 기능하기가 곤란할 때였다. 이렇게 한번 폐...
-
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속하는 법정동. 반야산 기슭에 관촉사가 있어서 관촉 또는 관촉리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화지산면(花枝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죽암리(竹岩里)·주천리(注川里)의 각 일부와 송산면(松山面) 와야리(瓦也里)의 각 일부, 연산군(連山郡) 적사곡면(赤寺谷面) 평리(坪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관촉리라 하여 논산군 논산면에 편입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관촉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반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불상 중의 하나인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석조미륵보살입상과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고 전하는 목조 건축물은 남아 있지 않다. 전형적인 산지가람으로 본래의 사역은 현재보다 더 넓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에 있는 고려 전기 석조물. 불단은 숭배 대상인 불(佛)·보살(菩薩) 등을 모시기 위해 불당 안에 설치하는 높은 단을 말한다.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석단(石壇)·토단(土壇)·목단(木壇) 등이 있고, 모양에 따라 방단(方壇)·8각단(八角壇)·원단(圓壇) 등이 있다. 관촉사 석조불단은 지대석, 면석, 갑석 등 가구 기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석은 7개의 판...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관촉사 석탑은 관촉사 내 관촉사 석등(보물 제232호)과 관촉사 배례석(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상층 기단은 하대갑석 상면에 조출(造出)된 2단의 중석받침 위에 있다. 상대중석의 각 모퉁이에는 우주(隅柱)가 조각되어 있고, 우주와 우주 사이에는 1개의 탱주(撐柱)가 모각(模刻)되어 있다. 상대중석의...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물. 배례석은 일반적으로 사찰의 탑이나 불상 앞에 있는데, 예배 때 예를 올리거나 의식집행, 혹은 의식에 사용되는 향로나 촛대 등의 용구를 놓기 위해 조성한 석조물이다. 관촉사 배례석은 관촉사 석등에서 동쪽으로 약 10m 정도 떨어진 화단에 있는데, 뒷면에 관촉사 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관촉사 배례석은 장방형으로 상면에 연화문이...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물. 관촉사 석문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나 이를 고증할 만한 기록이나 고고학적 자료가 없다. 석문의 경우 특히 다른 사찰에서 예를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비교 자료 또한 없는 실정이다. 관촉사가 조성된 이후 참배객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동·서·남·북 네 곳에 문을 달고 담을 둘렀다고 하는데, 관촉사 석문은 동...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넓은 들이 있어서 너분들이라 하였고, 훈훈한 인심으로 이 마을을 가면 더운물과 더운 밥을 준다 하여 더분들 또는 더운들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 넓은 돌이 있다 해서 광석(廣石)이라 하던 것이 광석(光石)이 되었고, 조선시대 서당에서 배우는 사람이 많아 마을을 빛냈다 하여 광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광석면 지역으로,...
-
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약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말기 신무왕의 셋째 왕자로 태어났다.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자 신라의 비운을 예견한 김흥광은 무주(武州, 현 광주광역시 평장동)의 서일동에 피신 은거함으로써 시조가 되었다. 광산김씨 가문은 조선시대에 총 260여 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고, 여기에서 정승·대제학·청백리·...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양촌리 평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광산김씨 효열부 3명에게 내려진 정려. 조선 명종 때 광산김씨 가문의 사당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다. 이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조상의 신주를 꺼내 오기 위해 불길에 싸여 있는 사당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할머니가 나오지 않자 그 며느리가 뒤를 이어 사당 안으로 들어갔고, 또 아무런 소식이 없자 곧이어 손자며느리도 뒤를 따라 들어...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지역에 넓은 돌이 있어서 광석이라 이름하였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광석면(廣石面)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득윤면(得尹面) 상동(上洞)·윤리(尹里)·중리(中里)·지동(止洞)·사동(沙洞)·신당(新堂)·소당(小堂)·대당(大堂) 등 8개 리와 장구면(長久面) 덕포(德浦)·평전(平田)·서변(西邊)·오강(五江)·율리(栗里)·산직(山直...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에 있는 가옥이 무질서하게 밀집되어 있는 촌락. 논산 지역의 농촌은 거의 전부가 집촌이며, 집촌 중에서도 괴촌이 지배적이다. 괴촌은 가옥이 불규칙하고 무질서하게 밀집되어 있는 촌락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의 다른 농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논산 지역 농촌 마을은 대부분 집촌, 그 중에서도 괴촌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을 수 있다. 첫째...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광물을 채굴·생산하는 일련의 산업 활동. 논산시는 동쪽으로 계룡산과 대둔산이 자리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넓은 평야가 조성되어 있어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서쪽의 농경지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어 현재 다른 시군에 비해 광업은 지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932년에는 노성에 사금을 채취하던 광권이 등록되어 있었...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시내나 강을 사람·차 등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다리. 논산시의 교량은 2002~2008년 사이 고속국도, 일반국도, 지방도 및 시도 모두 증감 없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2009년 기준 전체 교량은 181개소, 전체 연장은 11,967.6m이다. 2009년 기준 전체 교량의 읍·면·동별 분포를 보면 강경읍이 2,193.8m로 가장 많고, 노성면이 223.8...
-
충청남도 논산시의 교육 기관, 시설 및 관련 시책. 논산 지역의 교육을 일제강점기에 해당하는 근대교육과 논산교육청 및 논산 교육 기관 중심의 현대교육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1920년대 충청남도 지역의 인문계 학교로서는 공주고등보통학교와 대전중학교, 여학교로서는 공주여자고등보통학교, 실업계 학교로서는 공주사범학교, 강경상업학교, 예산농업학교 등이 유명했다. 그중 논...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교촌2리에 세워진 15기 비석군. 교촌리 비석군은 은진면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80년대 후반 현 위치인 논산시 은진면 교촌리 삼거리에서 동쪽 도로 북측에 남서향으로 비석 15기가 일렬로 세워 놓았다. 비석의 형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관찰사심공의신영세불망비(觀察使沈公宜臣永世不忘碑)는 지붕형[옥개형(屋蓋形)]으로 1837년(헌...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서 파평윤씨가 모여 사는 마을. 파평윤씨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명문거족이었으며, 조선시대에도 많은 학자·정치가를 배출하고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명문가이다. 그 가운데 노성 지역의 파평윤씨를 ‘노종 5방파’라고 칭한다. 17세기에 당쟁이 격화되면서 서인이 노·소론으로 나누어질 때 파평윤씨 집안을 중심으로 소론의 중심지가 되었던 지역이 노성현이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 마을에 노성향교가 있어서 향교말 또는 교촌(郊村)이라 불렸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읍내면(邑內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촌(新村)·죽촌(竹村)·천아동(天牙洞)의 일부와 하도면(下道面) 주막리(酒幕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교촌리라 하여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 은진향교가 세워진 이후 향교말 또는 교촌(校村)으로 불렸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송산면(松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의승리(義承里)·내동리(奈洞里)의 각 일부와 대조곡면(大鳥谷面)의 북문리(北門里) 일부를 병합하고 교촌리라 하여 논산군 은진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
충청남도 논산시를 연결하는 교통망과 교통 현황. 논산시의 교통은 크게 철도 교통과 도로 교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철도 교통의 경우 호남선이 논산시 중앙부를 북동 및 남서 방향으로 관통하고 있고, 연무선이 개설되어 있다. 철도에는 논산역·강경역·연무대역·개태사역·연산역·부황역이 개설되어 있으며, 새로 건설될 호남고속철도의 정차 역으로는 논산역이 지정되었다. 도로 교통의 경우 호남고...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신앙 공동체. 교회라는 말은 본래 넓은 의미로 같은 종교를 믿는 신자의 집단 또는 집회소를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회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개신교인들의 가시적인 단체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다. 현재 전 세계에는 수백 개의 개신교 교파가 존재하고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에서는 감리교회, 장로교회, 성결교회, 침례교회 등...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에 있는 구 강경공립상업학교의 교장 관사. 강경공립상업학교는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최초로 세워진 중등 교육기관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건축된 강경공립상업학교의 교육 시설 중 교장 관사는 1930년대 초반에 신축되어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으며 1920~30년대 학교 관사의 성격과 근대적 주택 건축 기술의 여러 특징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결성되었던 노동조합. 강경노동조합은 1910년 중반 강경포구의 하역 작업 처리 업무를 담당하던 노동자들이 결성한 조직체로서, 일반적인 의미의 노동조합이라기보다는 하역 노동자들의 동업자 모임에 가까운 조직이었다. 1920년대 당시 내륙 지방으로의 수산물 유통은 대부분 강경포구를 통해 전국으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강경노동조합의 규모나 세력은 대단하였다....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에 설립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교회. 구 강경성결교회는 1918년 10월 성결교단에서 파송한 정달성 전도사가 충남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93-1번지에 있는 한옥 2칸을 빌려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가 시작되었다. 강경 3·1운동 당시 영국 존 토마스 선교사의 구타 사건으로 변상받은 돈으로 1923년 교회를 건축하였다. 기독교 종말론적 신앙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 중기 사찰 터.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는 1557년(명종 12) 윤원형 당에 의해 삭탈관직, 문외출송을 당하자 연산 지역으로 퇴거해 와서 고운사 경내를 빌려 서재로 사용하고, 편액을 정회당이라 하였다. 그 후 효종이 고운사 땅을 김집에게 사패지로 하사하자 고운사는 왼쪽 능선 너머에 있는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로 옮겨 갔다. 원래...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와 계룡시 두마면 경계에 있는 고개. 구 고운재에는 과거에 고운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이 수락리로 옮겨 감에 따라 구고운 또는 구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논산시 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남~북 방향의 천호봉(352m)·깃대봉(393.1m) 능선의 동쪽에 해당하는 고개로, 남쪽은 벌곡천에 유입하는 검천천의 지류가 북~남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말로 전승되는 민간 지식의 총체. 구비전승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구비문학이라고 불러왔던 민간문예물들이다. 구비문학의 구비(口碑)는 본래 구전(口傳)에서 온 것이다. 기왕의 글로 기록되어 전하거나 기록된 문학과는 서로 상반된다. 요컨대 현장에서 글이 아닌 말로 전승되는 문학을 구비문학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또한 구비문학은 함께 만들어내는 문학으로서의 성격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 윤씨 문중 서원 터. 구산서원은 서인계 성혼의 학맥을 이은 곳으로, 훗날 후손 중에 소론의 거두였던 윤증(尹拯)이 배출되었다. 파평 윤씨는 성혼, 김장생, 김집, 송시열 등 대 유학자들과 관계가 깊은 대표적 호서 명가의 하나이다. 특히 김장생의 광산 김씨와 빈번한 혼인 관계를 맺었는데, 이는 호서 사림 내에서 파평 윤씨 일족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주변에 거북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거북바위 또는 구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화곡면(禾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미동(美洞)을 병합하고 구암리로 하여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노성면 구암리가 되었다. 구암리의 북부·서부·동부 및...
-
조선시대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조선시대 지방 행정기관의 소재지로 형성되었던 취락. 구읍취락(舊邑聚落)은 조선시대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이 주재하던 부·목·군·현 등 지방 행정기관의 소재지인 읍취락 중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소재하던 행정기관이 폐쇄 혹은 이전됨에 따라 행정적 기능을 상실한 취락을 의미한다. 현재 논산시의 구읍취락은 은진면(조선시대 은진현)의 연서리, 연산면(조선시대...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활을 쏘아 표적을 맞추어서 승부를 겨루는 전통 무술. 각궁(전통활)은 옛날의 무기로 생산된 때와는 달리 취미생활에 의존한 개인의 경영에 의하여 제작된다. 전통활은 물소뿔·물소 힘줄·뽕나무·민어부레풀 등을 이용하여 제작되며, 보급형인 개량궁은 인조뿔과 나무 등을 합성하여 만든다. 국궁은 주로 노인층의 전유물이었으나, 양궁의 보급과 더불어 젊은층에도 레저 스포츠...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연무읍 마전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1호선은 전 구간이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평안북도 신의주시까지 이르는 일반국도이다. 목포시에서 판문점까지의 길이는 498.7㎞이고, 목포시에서 신의주시까지의 길이는 939㎞이다. 판문점까지 왕복 2차선은 152.9㎞, 왕복 4차선은 279.6㎞, 왕복 6차선은 64.9㎞이다. 미포장도로는 636m, 미개통 도로...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월오리에서 강경읍 채산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23호선은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에서 충청남도 천안시에 이르는 일반국도이다. 길이는 394.1㎞이다. 왕복 2차선은 276.2㎞, 왕복 4차선은 117.9㎞이고, 도로포장률은 100%이다. 전국 25개 남북 노선 가운데 하나로, 각 지방국토관리청이 관리한다. 전체 길이 100m 이상의 장대교가 14개소, 소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성동면 원북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4호선은 전체 구간이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에서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에 이르는 일반국도이다. 길이는 370.7㎞이다. 왕복 2차선은 210.5㎞, 왕복 4차선은 131.4㎞, 왕복 6차선은 27.7㎞이다. 미개통 도로는 1.1㎞, 도로포장률은 99.7%이다. 전체 길이 100m 이상의 장대교가 21개소, 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사면 신양리와 논산시 양촌면 거사리·산직리에 걸쳐 있는 봉우리. 우리나라에는 국사봉이란 이름의 산봉우리가 많은데, 일반적으로 國師峯(국사봉)으로 표기하는 곳이 많다. 그러나 2007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지형도(1:50,000)」에 의하면 논산의 국사봉은 國司峯(국사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국사봉에는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국사봉은 탑...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현감 권석효의 선정비. 권석효 선정비는 현감으로서 선정을 베푼 권석효를 치하하기 위해 계묘년 6월에 건립되었다. 논산시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0.2㎞ 정도 가다 보면 하도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0.19㎞ 가다가 우회전하여 오른쪽 방향으로 약 2㎞ 직진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상월면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현감 권용규의 영세불망비. 현감 권용규의 공적을 후대에 알리고 이를 잊지 않기 위해 임술년 3월에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논산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0.2㎞ 정도 가다 보면 하도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0.19㎞ 가다가 우회전하여 오른쪽 방향으로 약 2㎞ 직진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상월 방면으로 우회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 양촌면, 벌곡면 등에서 생산되어 유리나 도자기, 내화벽돌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광물. 주로 석영으로 이뤄진 광물인 규석은 흰색·회색·붉은색을 띠는데, 순도가 높은 흰색은 백규석, 페그마타이트에 포함되어 장석과 함께 채굴되는 것은 장규석(長硅石), 점토가 다소 섞여 있는 것은 연규석(軟硅石), 철분을 함유하여 붉은색을 띠는 것은 노재규석(爐材硅石)...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동산3리에 있는 그리스도교 교파의 교회. 그리스도의교회가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일본 주재 미국인 윌리엄 커닝햄(William D. Cunningham) 선교사가 1924년 10월 파송한 한국인 전도인 이완건에 의해서였다. 자생적으로는 구세군 사관 출신의 성낙소 목사가 1927년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화수리에 기독지교회(基督之敎會)를 세웠고, 1931...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극 단체. 논산은 윤백남(尹白南)이라는 걸출한 근대극의 선구자를 배출한 고장이다. 현재 논산 지역을 대표하는 극단으로는 극단 파프리카가 있으며, 대학 극단인 극단 광장이 학생 극단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논산에서 처음 창립된 극단은 1980년대 활동했던 극단 샛강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를 이어 1989년에 청소년 극단인 논산여자상업고등학교의...
-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 건양대학교 내에 있는 극단. 극단 광장은 논산 지역 청소년들과 주민들이 연극을 통하여 문화적 혜택을 향유함과 동시에 논산 지역의 공연 문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1991년 5월 건양대학교 공연미디어학과 교수 이충무를 중심으로 창단되었다. 광장이란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가 서로의 삶을 통해 배우며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의 의미를 담고...
-
충청남도 논산시 강산동 논산여자상업고등학교 내에 있는 극단. 극단 새벽은 학생들의 건전한 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창의적 정신과 부지런한 자세로 각자의 몫을 다함으로써 조화를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는 자세를 배우고, 나아가 연기력을 향상시킴으로써 대학 진학과 연극계 진출에 도움을 주고자 창단되었다. 1987년 예술에 재능이 있는 논산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들이 주축이...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극단. 극단 처용은 문화적으로 척박한 논산 지역에 연극 인구의 저변 확대와 연극을 통하여 고급 문화의 향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90년 4월 15일 정건일을 대표로 하여 김종욱·길현율·김정흠·조영기·박병태·전행선 등이 중심이 되어 창단, 논산 지역 최초의 공연단체로 등록되었다. 같은 해 9월 극...
-
충청남도 논산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연극 단체. 극단 파프리카는 지방 극단의 취약점인 연기력을 서울 지역에 있던 출향 연극인들의 합세를 통해 보강하는 등 매우 의욕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02년부터 2008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문화관광부 무대공연작품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수준 높은 공연을 펼치고 있는 극단이다. 극단 파프리카는 논산 지역의...
-
강경은 금강과 논산천이 합류하는 가항(可航) 포구로서 전라북도 용안면의 평야 지대, 논산평야 등 국내 굴지의 미곡 생산지를 배후에 끼고 있어 조선 후기 이래 전국적인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1876년 개항 이래 충청도 전체의 시장권이 철도와 개항장을 거점으로 제국주의적 상품 유통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전통적 시장권의 중심인 강경의 지위는 하락하였다. 그러나 유통시장권에서의 지위...
-
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이루어진 계몽주의 교육. 근대교육은 근대국가의 성립이나 자본주의 사회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된 교육으로 주로 계몽사조를 기초로 나타난 계몽주의 교육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근대교육은 한국의 근대를 어떻게 시기 구분하느냐에 따라 다소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본격적인 개항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880년대부터 1945년 해방까...
-
충청남도 논산시 서부를 지나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강.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금강은 공주에 이르러서는 웅진강, 부여에서는 백마강, 하류에서는 고성진강(古城津江) 등으로 불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굽이치며 흐르는 강의 물결이 비단결 같다는 뜻으로 금강(錦江)이라 부르게 되었다. 금강 외에 호강(湖江)으로도 불린다. 금강 하류가 폭이 넓어 호수로 연상해서였을 것이다. 소백산맥...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채산리에 있는 요보호 아동을 위한 보육 시설. 금강애린원은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없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의 역군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이를 위한 서비스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하여 1946년 10월 1일 김형일이 금강애린원을 개원하여, 같은 해 10월 10일 충청남도로부터 시설 인가를 허가받았다. 1958년 4월 30일 호남후생원을 흡수 통...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있는 금곡사우(金谷祠宇)의 이름을 따서 금곡리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구자곡면(九子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촌리(西村里)·무동리(武洞里)·화석리(火石里)의 각 일부와 전라북도 여산군 피제면의 신리 일부를 병합하고 금곡리라 하여 논산군 구자곡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1월 1일 연무읍이 승격됨에 따...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 금곡서원은 1682년(숙종 8) 기호사림의 종사였던 신독재 김집이 발의하였으며 노론의 거두인 송시열, 송준길 등이 추진하였다. 금곡서원 건립의 주도 인물들을 볼 때 서원의 건립은 기호사림, 또는 노론의 강력한 지지, 광산 김씨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건물의 상량문을 지은 인물은 윤증으로, 건립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지에서 출토된 고려 전기 금동탑. 개태사지는 고려 태조 왕권이 후백제를 물리치고 창건한 절터이다. 개태사 금동대탑은 고려 전기(10~11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개태사의 폐사로 역사 속에 묻혀 있다가, 1960년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금동탑은 절의 중심적인 존재라기보다 건물 안에 장식품으로 안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탑의 성격보다...
-
유삼재를 시조로 하고 유효통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기계(杞溪)는 경상북도 포항시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기계유씨(杞溪兪氏)는 신라 때 아찬(阿湌)을 역임한 유삼재(兪三宰)를 시조로 한다. 그의 후손 유의신(兪義臣)이 신라 멸망 후 고려왕조에 불복하자 태조(太祖)가 기계호장(杞溪戶長)을 삼았다. 그 후 후손들이 기계를 본관으로 하였다. 기계유씨는 조선 초기부터...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올리는 의례. 기우제는 농경사회의 한 풍습으로 비가 오지 않을 때 주민의 집단행사로서 마을 단위로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규모가 큰 경우에는 면 단위 또는 군 차원에서 기우제를 거행하기도 한다. 예전에 기우제장으로 주로 활용되었던 곳은 용(龍)이 깃들어 있는 산천을 비롯하여 민간에서 신성시되는 우물·바위·못·저수지...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정월부터 삼월까지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세시풍속. 농사를 근간으로 하여 생활하던 농민들에게 농사의 풍흉(豊凶)은 무엇보다 관심의 대상이 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한계 속에서 미래를 긍정적으로 이끌고 풍년을 기대하며 다양한 형태의 의례를 베푼다. 특히 농사는 인간의 힘만으로는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하늘의 힘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늘 정성을...
-
‘충절과 선비의 고장’, ‘양반의 고장’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충청도, 그 이미지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충청 지역을 대표하고 있으며 강한 상징성을 띠고 있다. 그러한 상징의 연원은 조선시대 가장 오랜 기간 정권을 잡고 있었던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존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중심에 논산에서 뿌리내린 호서 사족의 활약을 통해서 찾을 수 있다. 이는 기호 유학을 이야기할 때...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17세기 이후 발전한 기호 지역의 성리학. 기호유학은 이이(李珥), 성혼(成渾), 조헌(趙憲) 등 경기 지역의 유학자들에 의해 성립되어,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 충청 지역의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발전한 유학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학술적으로는 이이의 학설을 따르는 학파를 주기적 경향의 성리학을 전개했다고 평...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1년을 주기로 하여 반복하는 대기의 종합 평균 상태. 기후는 자연환경의 여러 요소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며, 인간의 생활과 활동을 좌우하는 요소이다. 기후는 생태계에 영향을 미쳐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모든 농업, 산업, 공업은 물론 교통 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인류는 이러한 기후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활하며 문명을 일구어...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감곡리에 있는 스테인리스 파이프 제조업체. 1991년 10월 길산정밀을 설립하였다가 1998년 1월 길산정밀주식회사로 법인 전환하였다. 1999년 6월 의정부공장을 설립하였다. 2001년 1월 상표 ‘길산’을 등록하였다. 2003년 12월 대전시 오정동에 코일센터 및 판매장을 준공하였다. 2006년 2월 길산정밀(주)에서 길산파이프(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노성군수 김갑순의 선정비. 선정비의 주인인 노성군수 김갑순은 충청남도 및 공주 지역 일대에서 갑부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별달리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었으나 한 여인을 만나 그녀를 충청감사의 소첩으로 소개하여 당시 최고의 갑부 자리에 올랐다. 김갑순이 노성군수로서 봉세관을 겸임하고 있을 때, 연산군에 있는 선희궁(宣禧宮) 소유의 궁...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김문(金問)이며, 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다. 어머니는 대도호부사를 지낸 김명리(金明理)의 딸로서 안동김씨(安東金氏)이며, 형은 김국광(金國光)이다. 김겸광은 1453년(단종 1)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그 후 감찰, 정언, 병조좌랑, 병조정랑을 거쳐 1460년(세조 6) 장령에 승진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겸광의 묘소. 본관이 광산(光山)인 김겸광은 1453년(단종 1)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그 뒤 감찰, 정언 등을 거쳐 1460년(세조 6) 장령으로 승진하였다. 같은 해 신숙주(申叔舟)의 종사관이 되어 건주위(建州衛)의 야인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우고 군기시정에 오른 뒤로 여러 관직을 거쳤다. 1465...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공신 김겸광의 신도비. 김겸광 신도비는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좌리공신 3등으로 광성군에 봉해진 김겸광의 공을 추대하여 1492년(성종 23)에 세웠다. 논산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계룡 방향으로 약 11㎞ 가다 보면 계백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직진하면 고정리가 나온다. 신도비는 쇠머리에 위치해 있다. 1507년(...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회(重晦), 호는 황강(黃岡). 좌의정(左議政) 김국광(金國光)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현감 김호(金鎬)이며, 어머니는 공조정랑 이광원(李光元)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며, 아들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김계휘는 1549년(명종 4)문과에 급제한 뒤 권지승문원정자가 되고 바로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의 묘역. 김계휘(金繼輝, 1526~1582)의 본관은 광산, 자는 중회(重晦), 호는 황강(黃岡)이다. 현감 김호(金鎬)의 아들이고, 김장생(金長生)의 아버지이다. 1549년(명종 4)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이조좌랑·이조정랑 등을 지냈다. 1566년(명종 21) 직제학으로 문과 중시에 율과로 급제하여 대사헌·예조판서·경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의 신도비. 김계휘(金繼輝)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좌의정 김국광의 현손이며, 현감 김호의 아들로 사계 김장생의 아버지이다. 김계휘 신도비는 원래 고정리 마을 안에 있었으나 후대에 마을 입구로 옮겼다고 전한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1.5㎞ 정도 가면 남쪽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 정도 들어...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명. 좌의정(左議政) 김국광(金國光)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현감 김호(金鎬)이며, 어머니는 공조정랑 이광원(李光元)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며, 형은 김계휘(金桂輝)이다. 조카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김공휘는 율곡(栗谷) 이이(李珥)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월사, 김선원, 김청음 등과 교유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공휘 묘비.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 문하에서 수학하여 경전과 예학을 강구한 김공휘는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는데, 어느 요직에서건 치적이 현저하였다. 김공휘는 연산 휴정서원에 배향되었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를 가면 남측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를 들어가면 광산김씨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
논산 출신의 시인. 김관식은 1934년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서 출생하였고, 논산시 강경읍의 중앙보통공립학교를 거쳐 강경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50년 강경상업고등학교 2학년 시절 남한의 여러 문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시작하였다. 이후 충남대학교에 입학하였다가 고려대학교로 전학하고, 다시 동국대학교로 편입하였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정인보, 오세창,...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교준의 시혜 기념비. 김교준이 백성에게 은혜를 베푼 것을 기념하기 위해 비를 건립하였다. 김교준 기념비는 신충리에 있는 14기의 비석군 중 하나이다. 논산시에서 공주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4.86㎞를 가면 상월면사무소가 나온다. 김교준 기념비는 상월면사무소 담장 밖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비석은 귀접이형으로 높이 11...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관경(觀卿), 호는 서석(瑞石). 할아버지는 김문(金問)이며, 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다. 어머니는 대도호부사 김명리(金明理)의 딸로서 안동김씨(安東金氏)이며, 아우는 김겸광(金謙光)이다. 김국광은 1441년(세종 24) 문과에 병과 7인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1445년(세종 28) 황해도도사로 승진하고 144...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국광의 사당. 김국광(金國光, 1415~1480)의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서석(瑞石)이다. 세종 때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등을 역임하였고, 세조 때 북방 오랑캐의 침입을 맞아 함경도 경차관으로 공을 세워 병조 참판, 병조 판서에 이르렀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남이 장군과 함께 평정하였...
-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왕대리에 있는 조선 전기 김국광의 신도비. 김국광 신도비는 구 신도비와 신 신도비 2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구비는 1489년(성종 20)에 세워졌고, 신비는 1726년(영조 2)에 세워졌다. 왕의 총애를 받았던 김국광은 병이 들어 사직한 뒤 병치레를 하였다. 왕이 이를 슬퍼하며 부의를 내리고 사후에 쓸 장사 지낼 기구를 보내주었는데, 김국광의 아들 김극...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무화(茂和). 할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 아버지는 좌참찬 김겸광(金謙光), 어머니는 사직 진계손(陳繼孫)의 딸로서 삼척진씨(三陟陳氏)이다. 숙부는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이다. 김극개는 1496년(연산군 3) 진사시에 합격하고 1519년(중종 14) 식년시 문과에 병과 19인으로 급제하였다. 병조정랑, 훈련원...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 아버지는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 어머니는 전첨(典籤) 황보신(黃保身)의 딸로서 장수황씨(長水黃氏)이다. 김극괴는 1483년(성종 15) 영남좌도에 변이 일어났을 때 성종의 자문에 응한 숙부 김겸광(金謙光)에 의해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로 천거되어 적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다. 묘소는 논산시...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고, 아버지는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이다. 어머니는 전첨(典籤) 황보신(黃保身)의 딸로서 장수황씨(長水黃氏)이다. 김극수는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올라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에 제수되었고 원종공신(原從功臣) 회맹제에 참여하였다. 군자감판관을 거쳐 충훈부경력으로 재직 중 아버지의...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김기범은 현재의 논산시 관촉동에 살면서 부모님이 90세 이상 장수할 때까지 효를 다하였다. 부모님이 드시고 싶어 하는 음식은 반드시 구해다 드렸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노쇠하여 중풍이 걸리고 눈까지 어두워져 앞을 분간하지도 못하게 되자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직접 떠서 드렸다. 또한 아버지가 갑자기 병석에 누운 뒤 잉어탕이 먹고 싶다고 하자 엄동설한인데도...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김기범과 김재준 부자의 정려. 김기범의 호는 석계이다. 광산김씨로 아버지는 김재준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이 드시고 싶다는 음식은 반드시 구해 드리고, 어머님이 병으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되자 아침저녁으로 직접 음식을 떠 드리면서 봉양하였다. 김기범의 부친 김재준의 자는 사영, 호는 춘당이다. 김재준은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김재준의 처...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 원실보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김기서와 김재형 부자의 정려. 김기서는 광산김씨로 아버지는 김재형이다. 김기서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한겨울에 냇가에서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아 봉양하면서 정성으로 병간호를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상례(喪禮)를 다하고 3년간 매일 성묘하였는데, 묘소 앞에 김기서가 무릎을...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 말기 현감 김기순의 불망비. 불망비는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줄인 말로 선정을 베푼 것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건립하였다. 그러나 김기순 불망비가 어떠한 연유로 이곳에 세워지게 되었는지 자세한 기록이 나와 있지 않아 좀 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나, 현감 김기순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백성들이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기순 불망...
-
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준영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김녕김씨의 시조는 김시흥(金時興)으로, 경순왕의 8세손이라고 한다. 김시흥은 고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을 거쳐 동북면병마사를 지냈고, 광록대부평장사에 올랐다. 김녕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김녕을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김녕은 김해의 옛 지명으로, 가락국의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김씨와 신라의 김알...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김동신의 기공비. 15대 상월면장이었던 김동신은 벌곡면장을 시작으로 두마 광석을 거쳐 상월면장으로 부임하였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활성화로 국위가 신장되고 농촌 근대화 사업으로 민심이 합해졌을 때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초지일관 면정에 기강을 확립하고 면정의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또한 우국사상과 애민사상이 투철하여 농촌 기반 사업으로 농로 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조선시대 면임 김두종의 불망비. 면임(面任)이란 조선시대 지방의 면에서 호적과 공공 사무를 담당했던 직책이다. 풍헌(風憲)·약정(約正)·존위(尊位)·권농(勸農)·집강(執綱)·도유사(都有司) 등으로도 불렸다. 조선 후기에는 국가의 향촌 지배 기구가 강화되어 향촌의 자치 영역인 면리가 직접적인 통제를 받게 됨으로써 면임이 부세를 비롯해 여러 행정...
-
조선 후기의 열녀.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강재윤(姜在潤)이다. 김두한의 처 진주강씨는 출가한 후 남편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남편의 대소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고, 자기의 넓적다리를 베어내고 손가락을 잘라 공양하며 지극정성으로 병수발을 들었다. 그러나 결국 남편이 죽자 1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며 죽으려고 물속에 뛰어들기도 하였지만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자결하지 못하...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말기 진주강씨의 정려. 진주강씨는 금령김씨 김두한(金斗漢)의 처로서, 강재윤의 딸이다. 결혼하여 남편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남편의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고, 자신의 넓적다리를 베어내고 손가락을 잘라 공양하는 등 지극 정성으로 병수발을 들었다. 그럼에도 남편이 죽자 자결하려 하였다가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실패로 돌아간 뒤 평생 수절하여...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 아버지는 현감 김호(金鎬)이고, 형은 황강 김계휘(金繼輝)이다. 김립휘는 함열현감 등 여러 군의 현감을 지내고 별제, 전부를 거쳐 장례원사의를 지냈다. 광해군 때 방응서의 옥화(獄禍)가 일어나자 사직하고 고향인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 동산마을에 은거하면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서화에 조예가 깊었으며, 경학과 예학에도 밝았다. 충청남도...
-
조선 전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양천(陽川). 문경공(文敬公) 허공(許珙)의 현손녀이다. 아버지는 허웅이고, 남편은 김문(金問)으로 광산김씨(光山金氏)이다. 김문 처 양천허씨는 17세에 남편 김문과 사별한 후 개가하지 않고 당시 연산 지역에 있던 시집으로 들어와 유복자 김철산(金鐵山)을 낳고 장성시켜 현달하게 하였다. 그의 손자 김국광(金國光), 김겸광(金謙光), 후손 김계휘...
-
조선 후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일(士逸), 호는 허주(虛舟). 좌의정(左議政)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계휘(金繼輝)이고, 아버지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어머니는 부사 조대건(趙大乾)의 딸로서 창녕조씨(昌寧趙氏), 형은 김집(金集)이다. 아내는 둘인데 첫째 부인은 안동김씨(安東金氏)로서 1남 3녀를 낳았으며 둘째 부인은 연안서씨(...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조선시대 월오면장 김배국의 시혜비. 김배국 시혜비의 ‘시혜’는 보폐시혜(補弊施惠)를 줄인 말로 보폐(補弊)는 폐단을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이로 보아 김배국이 월오면장으로 재직하면서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서 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논산에서 공주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4.86㎞를 가면 상월면사무소가 나온다. 김배국 시혜비는...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보(士輔), 호는 묵옹(黙翁)·신독재(愼獨齋). 좌의정(左議政)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계휘(金繼輝)이고, 아버지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어머니는 첫째 부인 창녕조씨(昌寧趙氏) 사후 들어온 측실이다. 형은 김영(金榮), 김경(金檠), 김고(金杲), 김구(金榘), 김규(金槼), 이복형제는 김은(...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 효죽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공촌면장 김상식의 불망비. 공촌면은 조선시대 여산군(礪山郡)에 속한 면이다. 1914년 익산군 황화면(皇華面)에 통합되었고, 1963년 충청남도 논산군 구자곡면과 통합되면서 육군훈련소의 연무대(鍊武臺) 이름을 따 연무읍이라 하였다. 공촌면장이었던 김상식이 공촌면 주민들에게 베푼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건립하였다. 논산시에서 전...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여화(汝和), 호는 기기재(棄棄齋)·묵계(默溪). 광성군(光城君) 김겸광(金謙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하겸(金夏兼)이고, 어머니는 진사 이중과(李仲科)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큰아버지 김용겸(金用兼)에게 입양되었다. 김상연은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서 배웠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1716년(숙종 42) 부친상을 당...
-
충청남도 논산 출신의 열녀. 김상훈의 처 대구서씨는 18세에 김상훈과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병으로 자리에 누웠다. 백방으로 약을 써 보았으나 소용이 없자 이듬해 결국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남편의 입에 흘려 넣어 주었으나 닷새 후 남편이 죽었다. 개가하지 않고 시부모를 잘 봉양하고 유복자를 키웠다. 1954년 논산시 연무읍 봉동1리 뒷산에 열녀비가 세워졌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봉동1리에 있는 김상훈 처 대구서씨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열녀문. 김상훈의 처 서씨는 어려서부터 천성이 유순하고 효성스러워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하였다. 18세에 연무읍 봉동리의 김상훈에게 출가하였는데, 시집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백방으로 약을 써보아도 소용이 없자 서씨는 자기 손가락을 잘라 남편 입 속에 피를 흘려 넣어...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병절교위 김균(金鈞)이고, 어머니는 국세인(鞠世仁)의 딸로서 담양국씨(潭陽鞠氏)이다. 김성휘는 유복자로 태어나 집안이 궁핍하여 학문의 길에 나갈 수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치산(治産)에 힘써 재부를 축적, 당대의 거부가 되었다. 1592년(선조 26)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성휘의 묘비. 김성휘는 유복자로 태어나 배움을 얻지 못했으나 산업에 힘을 기울여 인근에서 알아주는 부자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나라가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자 군량미를 헌납하여 국익을 도왔다. 벼슬은 형조참의에 이르렀고, 평생 일군 재산으로 구제 사업을 하면서도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일생을 마쳤다. 양촌면사무소에서 대둔산...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1리 장선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김수의 처 완산이씨 정려. 완산이씨는 고령인 남편 김수(金檖)가 죽자 뒤를 따라 죽었다. 이 사실을 알고 조정에서 1772년(영조 48) 정월에 정려를 내렸다.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시 탄천면으로 통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6㎞쯤 가면 공주시와 논산시의 경계 지점에 호암리 장마루마을이 있으며,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약 1...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김섭(金燮)이다. 김수남은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서인으로서 광해군의 정치에 반대하여 은거하였다. 인조가 즉위한 후 162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에 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때 형조 분사랑(分司郞)으로 강화도에 들어갔다가 청군에 의해 성이 함락되...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수남의 정려. 김수남(金秀南, 1576~1636)은 광산김씨로, 자는 여일(汝一), 호는 만치당(萬痴堂)이며, 사계 김장생의 문인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은진현 충신조에 의하면, 김수남은 1624년(인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정랑이 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 호종한 이후 적군이...
-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광산김씨 논산 입향조.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광성군(光城君) 김정(金鼎)이고 어머니는 전법판서(典法判書) 이방(李昉)의 딸로서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광산김씨의 연산 입향사적은 불분명하나 입향조는 김약채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실전된 김약채의 묘가 경기도 양주 풍양에 있었고 아들 김문(金問)의 묘는 장단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관직 생활 때문에 개성 근...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숙은 고향인 논산에서 교육사업을 하다가 1911년 단애(丹崖) 윤세복(尹世復), 윤세용(尹世茸) 등이 만주 봉천성(奉天城) 환인현(桓仁縣)에 설립한 동창학교(東昌學校)에서 학교장인 백농(白儂) 이동하(李東廈), 이극로(李克魯)와 함께 한인 이주민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2세들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일본 공사관의 방해공작으로 동창학교는...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이성현감(利城縣監) 김극조(金克祧)이다. 김완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용맹이 알려져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복남(李福男)의 휘하에 들어갔다. 같은 해 여름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도방어사 고언백(高彦伯)의 막하에 있다가 전라도병마절도사 이광악(李光岳)을 따라 남원에 갔다. 이때 아버지 김극조를 무고하여 죽게 한 한덕수(韓德修)...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김장생(金長生)의 5세손이다. 김우택은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어 부친의 병환 시에 찬물에 목욕하며 쾌유를 빌었으며 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였다. 부친상을 당해서는 3년간을 반찬없이 죽만 먹고 지냈으며 3년 동안 성묘를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머리에 종기를 앓고 있을 때는 3주일 동안 입으로 빨아내어 완치시켰다. 하...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욱배는 1941년 5월 광복군 공작원 김천성(金天成, 1914~1945), 이덕산(李德山, 1919~?)과 접선하여 광복군 제2지대 제1구대 구대원으로 입대한 후 1945년 8월까지 3년 9월간 광복군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7월 한미 합동정보교육과정인 OSS훈련 정보·파괴반을 수료하였으며, 광복군 국내 정진군 충청도반의 제1조에 소속되어...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유휘의 묘표. 김유휘는 광산인으로 부사직을 지냈고, 손자인 김곤보(金坤寶)가 1620년에 병기 수송에 응모했던 일로 인하여 공조 참의가 추증되었다. 양촌면사무소에서 대둔산 운주 방면으로 1㎞ 정도 가다가 우회전한다. 양촌리 방면으로 3㎞ 정도 가다 보면 임화리 마을에 도착한다. 김유휘 묘표는 임화리 마을의 뒷산에 위치하고 있다. 김...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좌의정 김국광(金國光)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김호(金鎬)이고,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이며, 형은 김계휘(金繼輝)이다. 큰아버지인 김석(金錫)에게 입양되었다. 김은휘는 정지운(鄭之雲)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여러 차례 과거에 실패한 후 음보(蔭補)로 관직에 나가 활인서별제, 사포서별제, 수운판관(水運判官), 통례원인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은휘의 묘갈. 김은휘(金殷輝, 1529~1611)의 자는 경회이고, 본관은 광산인으로 김계휘의 아우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출중하고 사리에 밝았으며 안력이 뛰어나서 책을 볼 때 10행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율곡 이이 및 구봉 송익필과 친교하였다. 관직은 천안현감을 비롯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논산에서 국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응근의 불망비. 김응근(金應根, 1793~1863)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경(溪卿), 호는 의석(宜石)이다. 1816년(순조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822년 익위사세마가 되었다. 그 뒤 외직으로 여러 고을 수령을 거쳐 1857년 충청도관찰사겸순찰사에 제수되었다가 1860년 공조판서, 이어 형조판서를...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김반(金槃)이다. 어머니는 연안서씨(延安徐氏)이며, 형은 김익희(金益熙)이다. 김익겸은 1635년(인조 13) 생원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636년 후금(後金)의 황태극(皇太極)이 국호를 청(淸)으로 고친 일을 축하하기 위해 춘신사(春信使)로 파견된 나덕헌(羅德憲), 이확(李廓) 등이...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문(仲文), 호는 창주(滄州).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김반(金槃)이다. 어머니는 서주(徐澍)의 딸로서 연안서씨(延安徐氏)이다. 동생은 김익겸(金益兼)이다. 김익희는 1633년(인조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부정자에 등용되었다. 그 해 검열을 거쳐 홍문록(弘文錄)에 올랐다. 1635년 수찬과 사서...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조선 중기 명종 때 광산김씨 문중 사당에 원인 모를 화재가 났는데, 김인종 처 수원백씨는 조상의 신주를 꺼내 오기 위해 불길에 휩싸인 사당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였다. 그러자 김인종 처 수원백씨의 자부인 김두현 처 영성정씨가 사당으로 들어갔고, 이어 손부인 김세기 처 김해김씨가 들어갔으나 모두 나오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조선 중기 명종 때 김인종...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고령.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김장생(金莊生)이고, 어머니는 훈련원 참군 노승주의 딸이다. 김임은 논산시 노성면 일대의 토지를 대부분 소유한 만석의 거부로서 사람들이 산림재상(山林宰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선비로서 풍류를 즐기면서 여생을 보냈다. 묘소는 논산시 노성면 호암1리에 있다. 1513년(중종 8)에 호조판서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임의 신도비. 김임의 본관은 고령, 자는 평경(平卿)으로 김수문의 부친이다. 김임은 노성에 거주하면서 1513년(중종 8) 진사로 호조판서에 증직되었는데, 당시 만석꾼으로서 인근 30리가 그의 소유지였다. 이에 산림재상(山林宰相)이라 불렸다고 전한다. 그러나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선비로 살면서 객들을 불러 술자리를 베풀고 풍류를 즐...
-
조선 중기 활동한 무신. 본관은 광산. 아버지는 과의교위 김덕린(金德麟)이고, 어머니는 전의이씨로 감찰 이위의 딸이다. 김자빈은 어려서부터 무예를 연마하고 사계 김장생 문하에서 수학하여 경서와 병략에 통달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을 때 충청도관찰사 정세규의 추천으로 종사관이 되었다. 의병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으로 가던 중 숙부 김덕...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장생을 제향한 사당. 조선 후기 호서사림을 대표하였던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본관이 광산, 호는 사계(沙溪)이며, 대사헌 김계휘의 아들이다. 송익필과 이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당대를 대표하는 대 유학자로서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우리나라 예학의 토대를 확립하였다. 늦은 나이에 과거 시험을 거치지 않고 벼슬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장생의 신도비. 김장생 신도비는 성품이 곧고 강직하며 바른 것이 무엇이며 세상의 이치란 어떤 것인가를 알고는 학문에 힘쓴 김장생의 공과 인품을 기록하여 널리 후대에 알리기 위해 1634년(인조 12)에 건립되었다. 김장생 신도비는 김장생 묘소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논산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계룡 방향으로 약 11㎞ 가다 보면 계...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순천(順天). 절재(節齋) 김종서(金宗瑞)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김수언이다. 김장생 처 순천김씨는 사계 김장생의 부인 창녕조씨(昌寧曺氏) 사후에 계배(繼配)로 들어가 6형제를 낳아 잘 양육하고 집안일과 남편 수발을 잘 돌보았다. 남편 김장생의 장례를 마친 후 자결하였다. 묘소는 충청남도 계룡시 금암리에 자리하고 있다. 1906년에 효열이 조정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장생과 광산김씨 문중 사람들의 묘소. 고정리의 김장생 묘소 일원에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 김장생과 광산김씨의 중흥을 이룬 김장생의 7대조모인 양천허씨, 그리고 김철산과 김철산의 처인 안동김씨, 김겸광, 김공휘, 김선생 등의 묘소가 모여 있다. 이곳에는 또한 김겸광 신도비와 김장생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고, 양천허씨의 재실인 논산...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사계 김장생의 후손이다. 김재경은 광산김씨 7대조에 자손이 없어 양자로 들어갔다. 양자로 들어간 뒤에 양어머니가 아들 삼형제를 두게 되어 구박을 받았으나 친부모에게 다하지 못한 효도를 양부모를 위하여 다하였다. 양어머니는 처음에는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나 그의 마음이 변함없고 진심함을 알고 난 후에는 친아들처럼 잘 보살펴 주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재경의 정려. 김재경은 광산김씨 7대조에 자식이 없어 양자로 들어갔는데, 양자로 들어간 뒤 양어머니가 아들 셋을 낳으면서 김재경을 구박하였지만 효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주위에 김재경의 효행이 널리 알려져 1864년(고종 1) 정려가 내려졌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1.5㎞를 가다가 남쪽 도로로 2.5㎞를...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영, 호는 춘당. 아버지는 김기범(金箕範)이다. 김재준은 어려서부터 유학의 예법을 익히고 장성하여 부모에게 효를 다하였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라에 눕게 되자 매일 대소변을 직접 처리하면서 병세를 알아보려고 대변 맛을 보며 약을 선택하여 달여서 드렸다. 교관을 지냈다. 묘소는 논산시 관촉동 반야산에 있다. 논산시 관촉동 관촉...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숙우, 호는 삼육재.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의 6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입부(立夫) 김성휘(金成輝)이다. 김정망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항상 손바닥에 ‘효우(孝友)’ 두 글자를 써 가지고 다니면서 한시도 잊지 않고 보곤 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병환이 나...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석서리에 있는 조선 중기 효자 김정망의 정려. 김정망의 자는 숙우(叔遇)이고, 호는 삼육재(三六齋)이다. 오강(梧岡) 김성휘(金成輝)의 손자로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효우근신(孝友謹身)한 것을 계기로 추천이 되어 관직이 현감에 이르렀는데, 효우(孝友) 두 자를 손바닥에 써넣고 다녔다고 한다. 어느 날 부친이 병환으로 눕게 되자 정성껏 병간호를 하면서...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조현은 1911년 4월 고향인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 소재의 배양학교(培養學校)를 인수하여 육영학교(育英學校)로 바꿔 개교시킨 후 1919년 총독부령에 의하여 육영학교가 양촌공립보통학교(현 양촌초등학교의 전신)로 개편될 때까지 민족교육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1922년 독립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조선은행권(朝鮮銀行券) 위조 계획을 세...
-
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종지(宗之). 할아버지는 좌의정 광산부원군 김국광이고, 아버지는 대사간 김극뉴이다. 부인은 영산신씨로 풍저창수 신우정의 딸이다. 4남을 두었는데 큰아들은 군수 김석이며, 둘째 아들은 별제 김종이고, 셋째 아들은 증참판인 김호이고, 넷째 아들은 호군 김단이다. 김종윤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고 성품이 후덕하고 행동에 절도가 있었다....
-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김녕김씨 논산 입향조.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태진(泰晋), 호는 동악(東岳). 신라 경순왕의 8세손 김시흥의 후손이다. 김준영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몽진하는 선조의 어가를 호위하였다. 어가를 호위하는 데 많은 걱정과 어려움이 뒤따랐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왕을 보필하였다. 선조가 환궁 후에 김준영의 공을 인정하여 충근정량호성공신 3등에 책훈하였...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의 7세손이자 입부(立夫) 김성휘(金成輝)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효자 김정망(金廷望), 부인은 의령남씨(宜寧南氏)이다. 김중창은 일찍이 성균생원이 되었으나 특별히 관직에는 뜻을 두지 않아 초야에 묻혀 학문에 열중하며 집안일을 보살피고 처리하는데 전념하였다. 효자인 아버지의 효행을 옆에서 직접...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숙진1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중창의 정려. 김중창(1619~1684)은 본관이 광산이다. 광산김씨로 부원군 김국광의 7세손이며, 충곡서원에 배향된 김정망의 아들이다. 1654년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김중창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유순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대변을 맛보면서 병세를 짐작하였고 단지(斷指)하여...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순국지사. 김지수 1900년 중추원의관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 후 일제가 내놓은 회유책인 노인은사금(老人恩賜金) 수령을 거절하였으며, 헌병대의 회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저항하다가 1911년 칼로 자결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에 이어 1991년 대한민국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달보(達甫), 호는 죽천(竹泉). 사계 김장생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영돈령부사 김만기(金萬基)이고, 어머니는 한유량(韓有良)의 딸이다. 누이동생은 숙종비 인경왕후(仁敬王后)이며, 부인은 정철(鄭澈)의 6대 손녀로서 1752년(영조 28)에 정려를 받았다. 김진규는 1682년(숙종 8) 진사시에 수석으로 합격하고, 1686년(숙종 1...
-
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이초(而初), 호는 서윤(庶尹). 세조의 즉위를 도와 원종공신에 3등에 책록된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김진일은 어릴 적부터 행실이 올바르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영릉참봉을 지냈으며, 헌릉령과 사재감 첨정을 거쳐 통정대부 한성부서윤을 역임하였다. 1721년(숙종 46)에 일어난 신임사화로 인해 조정이나 관직에 회의를 느끼고...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집의 신도비. 김집 신도비는 사계 김장생의 아들로 태어난 김집이 아버지 못지않게 학자로서 뛰어나고 청렴한 삶을 산 것을 후손에게 길이 알리고 본받게 하기 위해 1659년(효종 10)에 양산리 고운사지에 세웠다. 논산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계룡 방향으로 약 13.8㎞ 가다 보면 계백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약 4....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광산김씨 문경공파 종중에서 소유하고 있는 1661년(현종 2) 김집의 문묘 배향을 명하는 교서. 김집(金集, 1574~1656)의 본관은 광산,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세거지는 충청남도 연산(連山)이며,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8세에 송상현(宋象賢)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으나 학통은 아버지 김장생(金長生)의 가학을 이어받았다. 18세...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집의 묘소. 김집의 본관은 광산으로,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아버지는 사계 김장생이다. 1591년(선조 24) 진사로 합격하였고, 1610년(광해군 2) 헌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를 보고 은퇴하여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인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은거하게 된다. 인조반정 뒤 다시 등용되어 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유학자 김집을 제향하는 사당. 김집(金集, 1574~1656)은 김장생의 아들로서 본관은 광산, 호는 신독재(愼獨齋)로, 호서 출신의 저명한 유학자이다. 1610년(광해군 2)에 참봉이 되었으나 광해군의 문란한 통치 행위를 보고 은퇴하였으며 인조 반정 후 부여 현감으로 등용되어 집의, 공조 참의를 지냈다. 효종 즉위 후, 예조 참판,...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광산김씨 논산 입향조.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김문(金問)이며, 어머니는 대사헌을 지낸 허응(許應)의 딸로 정경부인(貞敬夫人) 허씨(許氏)이다. 아들 넷을 두었는데 장남은 좌의정을 지낸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이며, 나머지 아들들은 김겸광, 김정광, 김경광이다. 김철산은 김문(金問)의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였던 정경부인(貞敬夫人) 허씨(許氏)를 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철산의 묘비. 김철산의 아버지는 증좌찬성(贈左贊成) 김문(金問)이며, 어머니는 증정경부인 양천허씨(陽川許氏)이다. 천품이 순후하고 강직하여 모두가 숨은 덕이 있다고 칭송하였다. 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에 책봉되었고, 대광보국 숭록대부 영의정부사 광성부원군에 추증되었다. 처음 세워진 묘비는 오랜 세월의 풍우로 인해 마모되었고, 172...
-
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태오는 전라북도 익산군 출신으로 25세 때 당시의 충청남도 논산군 논산읍 등화리로 이사를 왔다. 처음에는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 주는 것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으며, 천도교 교인으로서 서울 천도교령에 가서 지하독립운동을 했다.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확산되자 논산 지역으로 내려와 손필규(孫弼奎), 이백순(李伯純...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가 대래, 호는 둔암(屯庵). 김필태는 향리에서 후학들을 교육하여 인재를 양성하였으며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여 돌아가신 뒤에도 성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안 도백의 추천으로 사헌부감찰과 영릉령을 지냈다. 1811년(순조 11) 문인인 황언진(黃彦鎭) 등의 편집을 거쳐 손자인 김광옥(金光鈺)에 의해 간행된 『둔암집...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한수의 불망비. 김한수의 공적을 잊지 않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건립한 불망비이다. 김한수(金韓洙)의 활동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록을 찾기 어렵지만, 『방여총지(方輿總志)』 전라도 지역 증직 인사 명단에 순조 연간 ‘광산인감찰(光山人監察)’로 올라 있는 점을 감안할 때, 1830년에 비가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논산시에서 계룡 방향으로...
-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김해김씨는 가락국을 세운 김수로왕(金首露王, 42~177)을 시조로 한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김수로왕은 48년 하늘에서 내려온 금합에 담겨진 황금 알 6개 중에서 태어나 아도(我刀), 여도(汝刀), 피도(彼刀), 오도(五刀), 유수(留水), 유천(留天), 신천(神天), 오천(五天), 신귀(神鬼) 등 구간(九干)에 의해...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시인이자 언론인. 김형원은 1900년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였다. 언론인으로서 김형원의 행적을 보면, 1920년대 『동아일보(東亞日報)』와 『조선일보(朝鮮日報)』의 기자를 거쳐 『동아일보』 사회부장, 『중외일보(中外日報)』·『조선일보』·『매일신보(每日新報)』의 편집국장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복간된 조선일보사에...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지언(止彦), 호는 화양당(華陽堂). 김호는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식이나 생각이 아주 깊고 행동이나 몸가짐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진사를 거쳐 정선군수를 지냈으며 원주진관병마첨절제사를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호소사로 종사하던 스승 김장생을 따라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숙경(叔京). 아버지는 진산군수 김종윤이며, 부인은 전의이씨(全義李氏)로 공조정랑 이광원(李光元)의 딸이다. 아들은 김계휘(金繼輝)이며, 손자는 사계 김장생이다. 김호는 음보로 선공감주부와 지례현감을 역임하였다. 평소 학문에 힘썼으며 추만(秋巒) 정지운(鄭之雲)과 두터운 교분을 나누며 교유하였다. 특히 역학(易學)과 성리학(性理學)...
-
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익지(翼之), 호는 묵재(默齋). 아버지는 찰방 김적이며, 어머니는 화순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1614년(광해군 6) 사마시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며, 많은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628년(인조 6)에는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며, 1630년(인조 8)은 장악원직장이 되었다. 1631년(인조 9) 감찰을 지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와 벌곡면 덕목리에 걸쳐 있는 산봉우리. 전통시대 깃대봉이라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봉화나 봉수와 같이 군사 목적의 통신수단으로 이용되는 곳에 주로 붙여졌다고 한다. 깃대봉은 옥천층군 변성 사질암층 중 남쪽의 국사봉과 마찬가지로 규암, 석영 흑운모 장석 및 오매암으로 구성되 있으며, 일부 석회·규산·염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에는 덕목재가 있고, 서쪽은...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와 가야곡면 삼전리,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에 걸쳐 있는 봉우리. 까치봉의 동쪽에는 까치울재가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옛날 억울한 죄를 짓고 여기에 피신했던 어느 노학자가 자기 아들을 염탐차 고을에 보낸 뒤, 그 아들이 돌아올 때쯤 까치봉에서 까치가 떼를 지어 울어대면 반가워 고개까지 나가 아들을 반겼다고 한다. 이를 따 산봉우리를 까치봉이라 하고, 고...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사이에 있는 고개. 옛날 억울한 죄를 짓고 여기에 피신했던 어느 노학자가 자기 아들을 염탐차 고을에 보낸 후 그 아들이 돌아올 때쯤 까치봉에서 까치가 떼를 지어 울어대면 반가워 고개까지 나가 아들을 반겼다고 한다. 이를 따서 산봉우리를 까치봉이라 하고, 고개를 까치울재라고 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생대 오도비스기에서 캠브리아기...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티리에서 음력 4월 8일 무렵 두레 일꾼들을 위해 벌이는 잔치. 두레는 한해 농사를 협업하여 짓고자 조직한 마을 일꾼들의 조직이다. 큰 마을에서는 김매기 철이 되면 두레를 짜서 김을 맸다. 이때 농민들은 풍장을 치며 고된 노동의 시름을 잊었다. 김매기가 끝나게 되면 큰 잔치를 벌이고, 농신에게 풍년을 빌며 하루를 즐기기도 하였다. 이때 일꾼을 지휘하는 연장...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와 연산면 백석리에서 가축먹일 풀짐을 하러가거나 땔감을 장만하러 지게지고 산을 오르고 내릴때에 불렀던 노동요. 나무꾼 소리로서 경상도의 「어산영」, 전라남도의 「산떨이」, 전라북도 익산의 「지게목발 노래」처럼 지역에 따라 별도의 소리가 불리는 곳도 있지만, 논산 지역에서는 나무를 하며 부르는 노동요로 특정 주제보다 일에 흥을 돋우거나 자신의 신세 한탄을...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정월대보름이나 사월초파일에 하는 불꽃놀이. 집안에 있는 감나무나 대추나무에 소금과 숯가루를 적당히 섞어서 만든 긴 대롱을 늘어뜨린 다음 불을 붙이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불꽃이 튄다. 이는 정월 대보름날 밤에 마당에 가랫불을 놓고 대통을 터뜨리는 것이나, 달집태우기를 하면서 통대나무를 섞어서 불을 놓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참나무 숯 껍데...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강경포(江景浦)의 남쪽에 있다 하여 일제강점기에는 남정(南町)이라 하였으며, 1947년 일본식 동명의 변경에 의하여 상업학교와 여학교가 있는 남쪽의 학교촌이라는 뜻에서 남교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金浦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강리(上江里)·환대리(換垈里)·홍교리(虹橋里)의 각 일부와 답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면장 남덕원의 불망비. 남덕원 불망비는 면장 남덕원이 베푼 선정을 기려 면민들이 건립하였다. 연산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통하는 포장도로를 따라 약 6.5㎞쯤 가면 백석리에 이르는데, 남덕원 불망비는 도로의 오른쪽에 김두종 불망비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근처에 이공겸 부부 효열 정려가 자리 잡고 있다. 비석은 호패형으로, 비의 앞면에 ‘면...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령(宜寧). 호는 경재(敬齋). 아버지는 남명한(南溟瀚)이다. 남두건은 조선 중기 학자로 효자였던 아버지 남명한과 함께 초야에서 학문을 함께하고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의 강론을 즐기고 낙으로 삼으며 일생을 보냈다. 또한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기로 고을에 명성이 자자하였고 그것을 행함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어 모든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
-
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의령. 자는 운약(雲若), 호는 취은(醉隱). 아버지는 부위(副尉) 남응곤(南應坤)이며, 아들은 남두건(南斗建)이다. 남명한은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임금을 호종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에 군량을 운반하는 책임을 맡아 철저하게 완수하였다. 조정에서 남명한의 공로를...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산리의 뒷편에 있는 목단봉(牧丹峰)은 산이 수려하기로 유명한데, 산이 남쪽으로 향하고 있어 햇볕이 따뜻하고 기름진 고을이라 하여 남산리라 하였다고 한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모촌면(募村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침동리(沈洞里)·가사동(柯士洞)과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 도정리(道井里)·제비리(諸非里)를 병...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남씨(南氏)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하여 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성본면(城本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거리·의승리(義承里)·길음리(吉音里)·등리(登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남산리라 하여 논산군 은진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은진면 남...
-
홍천하·홍선행를 시조로 하고 홍세구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남양홍씨는 당홍(唐洪)과 토홍(土洪)으로 나뉜다. 당홍은 당나라의 8학사 중 한 명으로 고구려에 왔다가 귀화한 홍천하(洪天河)를 시조로 하고 고려의 개국공신인 홍은열(洪殷悅)을 중시조 겸 일세조로 한다. 시조 홍천하는 당성에 정착하였는데 이후 고려시대에 당성이 남양(현 경기도 수원시·화성군 일부)으로...
-
양우량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남원양씨는 양우량(梁友諒)을 시조로 하는데 양우량은 본래 탐라국을 세웠다고 전하는 제주양씨였으나, 757년(경덕왕 16) 나라에 공을 세워 남원백에 봉해진 후 후손들이 양우량을 시조로 하고 남원을 본관으로 삼아 분적하였다고 한다. 논산에 입향한 남원양씨 인물로는 조선 중기 무신 양함(梁諴, 1564~1592)이 있다. 양함은 임진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남일우의 거사비. 충청도관찰사겸순찰사 남일우가 연산 지역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 것을 기려서 건립되었다. 거사비는 감사(監司)나 수령이 갈린 뒤에 그 선정을 사모하여 고을 주민들이 세운 비석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논산시에서 계룡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82㎞ 가다 보면 연산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상월 방면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두사면장 남정로의 영세불망비. 남정로 불망비가 자리 잡고 있는 읍내리는 무정리·남산리·홍문리·상반리·왕림리·죽촌의 일부와 요동과 고랑리 일부를 병합한 구역으로, 이에 두사면장 남정로의 불망비가 현재의 위치에 세워진 경위를 유추할 수 있다. 두사면(豆寺面)은 대동리, 대산리, 중산리, 소산리, 고랑리의 5개 리를 관할하는 작은 면으로서...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의령(宜寧). 호는 매계(梅溪). 남준은 호서 출신 거유 조헌(趙憲)과 막역한 사이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을 도와 전투에 참여하여 선전관으로 의병을 모집하였고, 군량을 운반하는 책임을 맡았다. 가장 치열하였다고 회자되는 금산 전투에 참여하여 용감하게 싸우다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1858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있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연산현감 남준응의 선정비. 남준응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연산현감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푼 공적을 기리기 위해 연산현 주민들이 세웠다. 원두갈로, 비의 석질은 화강암이고, 비의 크기는 높이 101㎝, 너비 43㎝이다. 비의 앞면에 ‘현감남후준응선정비(縣監南侯駿應善政碑)’라고 기록되어 있다. 연산현감을 지내고 떠난 사람 중 선정비가 세워진...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옛날부터 선비들이 많이 모여 공부하던 지역이라 하여 내동(奈洞)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송산면(松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하동(大河洞)·교촌(校村) 일부와 성본면(城本面)의 강산리(薑山里) 일부, 화지산면(花枝山面)의 취암리(鷲岩里) 일부를 병합하고 내동리라 하여 논산군 대조곡면(大鳥谷面)에 편입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민물고기 연구 개발 시설. 내수면개발시험장은 잉어·향어·붕어·메기 등 토산 담수어의 보호·관리와 참게·쏘가리·대농갱이·철갑상어·관상어 등 새로운 양식품종의 개발 등 민물 수산자원에 관한 전반적인 연구개발과 새로운 양어 기술의 보급을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1966년 충청남도 수산자원관리소가 설립되어 충청남도 지역의 수산자원을 전반적으로 관리해 왔...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신당리에 있는 남양홍씨 선조를 제향한 사당. 노당사는 홍유구(洪有龜), 홍희정, 홍희충, 홍도, 홍연산, 홍종, 홍인준, 홍인숙, 홍함, 홍정국, 홍흡, 홍경방, 홍식, 홍경정 등 남양홍씨 14위를 제향하고 있는 문중 사우이다. 광석면사무소에서 중리로 향하는 서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300m 가면 북쪽 구릉에 소로가 있고, 이 길로 100m쯤 들어가면 북동향...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 지역에 설립된 청년회. 3·1운동 이후 일제가 무단통치를 폐기하고 이른바 문화정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의 각 지방에는 근대식 학교 교육을 통해 신지식을 수용한 지역 청년들에 의해 각종 청년운동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청년들은 군이나 면 혹은 동리 단위로 청년수양단체를 결성한 뒤 야학·생활 개선 등과 같은 민중계몽 활동과 강연회·토론...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노동의 능률을 높이거나 즐겁게 일하기 위해 노동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 논산의 노동요는 남성들의 일노래, 그 중에서도 1960년대 이전 농업 노동요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일 노래란 여럿이 함께 일할 때 일을 질서 있게 능률적으로 하기 위해 부른다. 논산의 여성들은 주로 가내나 텃밭에서 단독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 노동요로서의 형성과 전승이 미미한 편이다....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숯골에서 음력 정월 나흗날이나 열나흗날에 액막이로 노두를 놓던 세시풍속. 노두놓기는 마을 개울에 노두(징검다리)를 놓아서 사람들이 개울을 쉽게 건너다니도록 하는 행위로, 이렇게 하면 개울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한 셈이 되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노두 놓기는 예부터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지역에서 정초에 행해 오던 세시 의례였으나, 마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1리에서 음력 2월 초하루에 노래기를 없애려고 행하던 세시풍속. 옛날 농촌의 가옥은 짚으로 지붕을 덮은 초가집이었기 때문에 짚 안에 노래기가 알을 까고 번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래기는 본래 냄새가 지독한 벌레이다. 마을에는 이를 예방하기 위한 ‘노래기 바늘주기’라는 속신이 전해져 왔다. 이러한 풍속은 논산 지역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던 조선 전기 유학자 박증의 후손들이 남긴 유물. 박증(朴增, 1461~1517)은 외조부 성삼문의 충절을 추모하여 벼슬의 뜻을 버리고 32세 되던 1492년(성종 23) 노성현 암천(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로 은거하여 일생을 마쳤다. 이로써 무안박씨 노성파가 형성되었다. 박증이 노성 지역으로 입향한 이후 후손들이 지금까지 노성 지역에 세거하고...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두레풍장을 전승·보존하기 위한 단체. 여름철 농촌에서는 어느 정도 논매기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마을 단위로 모임을 갖고 두레날을 잡는다. 두레는 과거에 마을 단위로 일꾼들이 한데 모여서 집단 노동을 하는 조직체이다. 두레 조직을 할 때에는 우선 그 동네의 어른으로 일을 잘 알고 마을에서 존경받는 이를 뽑아 ‘좌상’으로 삼는다. 두레날은 마을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서 머스크멜론을 주품종으로 생산하는 특산 과일. 노성멜론은 10여 년 전부터 재배에 나섰으나 수해와 재배 기술의 낙후로 번번이 실패를 맛보았다. 2004년 이전까지 농가별로 생산한 멜론을 출하했지만 일조량이 적당치 못하고 품질이 균일하지 않아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후 노성농업협동조합으로부터 재배기술을 전수받고 전라남도 담양의 선진지를 견학...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면. 노성이란 지명은 조선 전기에 니성현(尼城縣)을 노성현(魯城縣)으로 개칭한 데서 시작되었다. 백제시대에는 열야산현(熱也山縣), 통일신라시대에는 니산현(尼山縣)으로 개칭되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니성현(尼城縣)으로 바뀌었다. 본래 노성현의 소재지로 읍내면이라 하여 교촌, 신촌, 죽촌, 천재동, 송아, 송당, 월명, 왕림, 상반, 무정, 남산, 홍문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구읍취락. 노성면 읍내리는 조선시대 노성현의 읍취락(邑聚落)이었기 때문에 읍내(邑內)란 명칭이 유래했다. 노성현의 구읍취락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던 예전 기능을 이미 상실하였다. 노성은 본래 백제 때에는 열야산현이었는데, 당나라가 노산주(魯山州)로 고쳤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니산으로 고치고 웅주(현 공주)에 귀속되었다....
-
1893년 노성현감의 탐학 행위에 반발하여 충청남도 논산 지역 농민들이 일으킨 민란. 노성민란은 전운소(轉運所)에서 운송하다 남은 미곡 400석 중 200석을 전 노성현감이 착복하였는데, 1893년에 부임한 신임 현감 황후연(黃厚淵)이 농민들에게 이 200석을 대신 물게 하자, 이에 반발하여 일어난 봉기이다. 농민들은 장두(狀頭) 유치복(兪致福)이 중심이 되어 여러 차례 민회(民會...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가곡리·송당리와 상월면 신충리·월오리에 걸쳐 있는 산. 노성면은 1656년(효종 7) 때부터 노성현(魯城縣)으로 불렸는데, 노성산은 이 지명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측된다. 기반암은 편마암 및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편마암인 지역들은 대부분 150m 이상의 산지를 이루고 있어 상대적으로 해발 고도가 높다. 그러나 화강암이 분포하는 곳은 50~60m 이하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 노성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노성산성 봉수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으로는 조선시대 읍지들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에 의하면 “봉화가 관아의 북쪽 산성에 한 군데 있다. 서쪽으로 은진 노산(蘆山)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으로 공주 효포산(曉浦山)에 신호를 보낸다.”라고 하였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하대리 경계에서 시작되어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덕평리에서 연산천에 합류하는 하천. 노성면은 1656년(효종 7)부터 노성현(魯城縣)으로 불렸는데, 노성천도 이 지역 명칭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성천은 계룡산 서쪽 계곡 및 널티고개에서 발원하여 월암천·중장천·월산천·용두천·주천 등의 지류와 합류하여 본류를 이루며, 논산시 대교동에서 연산천과 합...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노성향교의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4성위(四聖位)를 모셨으며, 동무에는 송조 1현과 동국 9현의 위패를 모셨다. 서무에도 송조 1현과 동국 9현을 모셔 모두 5성 20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에 제향하고 있다. 춘추의 제향시에는 주로 성동면, 광석면, 노성면, 상월면 지역 유림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노성향교의 대성전. 노성향교는 노성 지역의 인재를 양성하고 유도를 연찬(硏鑽), 강론할 목적으로 노성산 아래향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이다. 노성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의 5성위를 모시고 있다. 동무에는 송조 1현과 동국 9현의 위패를 모셨다. 서무에도 송조 1현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북서쪽에서 발원하여 석성천에 합류하는 하천. 노치천은 구릉지 곡간의 충적지를 흐르는 하천으로, 현재는 유로직강화가 되어 있어 하천의 양안에 인공제방이 축조되어 있다. 2010년 말 현재 노치천의 유로 연장은 3.8㎞이고, 유역 면적은 7.95㎢이다. 본류는 국가하천 금강이며, 제1지류는 지방1급하천인 석성천이다. 노치천은 노성면 북쪽에서 시작되어 북동~남서...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티마을 뒷산이 삿갓 같이 생겼다 하여 삿갓재라고 하고, 갓재 또는 갈재라고 하던 것을 ‘갈’음이 갈대를 연상시켜 갈대 노(蘆)자를 써서 노티라고도 표기하고 티를 고개 치(峙)자를 쓰되 읽기는 ‘티’로 하여 노티리가 되었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화곡면(禾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목동(木洞)·성동(聖洞)을 병합하고...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티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노티리 사지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 장마루에서 호암리 방향으로 약 1.8㎞ 거리에 위치한 노성면 노티리 가재마을(호암산의 서향사면)의 동쪽 끝(호암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은 산 중턱을 정지하고 조성한 것으로 보이나 현재 사역으로 추정되는 면적은 약 990㎡(약 300평)이며 이들은 모두 밭으로 개간되었지만 현...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야촌리에 있는 돈육 가공 업체. 녹원축산은 다년간의 일본 수출과 국내 굴지의 대기업 납품을 통해 축적한 돈육 가공 기술력을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보다 청결하고 신선한 돈육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업체이다. 녹원축산은 철저한 품질 및 위생 관리를 통해 청정 돈육을 가공·생산하여 소비자에게 안전한 식재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1년 12월 1일...
-
충청남도 논산시 차령산맥 남동부의 금강 하류에 형성된 평야. 논산시와 강경읍에 걸쳐 있어서 이 두 지역의 이름에서 각각 첫 글자를 따서 논강평야라 부르게 되었다. 논강평야는 계룡산 구릉의 동·서·북부에서 논산시 강경읍에 걸쳐 있는데, 지역의 기반암은 선캄브리아기의 서산시층에 속하는 규암과 편마암류, 중생대 쥐라기의 대보화강암 및 백악기의 불국사화강암으로 이루어 있다. 대부분 준평원...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여럿이 논을 매면서 부르던 농업노동요. 이소라는 1987년·1989년·1992년·2002년에 논산 지역에서 민요 조사·녹음을 실시하였다. 그중 논산의 토박이 농민으로부터 논맴 소리를 녹음한 지역은 강경읍, 연무읍, 가야곡면, 광석면 득윤리·이사리, 두마면, 벌곡면 사정리·신양리·도산리, 부적면 등이다. 논산 일대에서 1960년대 이전에 불렸던 논맴 소리로는 「얼...
-
충청남도 논산시 개태사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은 본래 개태사지에 있던 것을 현재의 장소로 옮겨 놓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느 곳에서 옮겨 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개태사지에서는 발굴 조사 결과 건물 터가 확인되었고 개태사의 명문기와도 수습되었다. 아울러 구 개태사를 조성하기 위해 축조해 놓은 석축도 마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논산 개...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에 있는 고려 전기 석조물. 석등은 백제 시대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찰 경내에 조성된 석조물이다. 교리적 측면과 실용적 측면이 융합되어 주로 사찰의 중심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논산 관촉사 석등은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및 관촉사 앞뜰을 밝히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논산 관촉사 석등은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앞에 있는 5.4...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관촉사 사적비에 따르면, 968년(광종 19)에 사제촌의 여자가 반야산 서북쪽 모퉁이에서 고사리를 채취하고 있는데, 홀연 동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가보니 큰 돌이 땅 속에서 솟아나오고 있었다. 괴이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사위에게 말하니, 사위가 곧 현감에...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노강서원은 윤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을 위하여 세운 서원으로, 1682년(숙종 8)에 사액을 받았다. 성향은 기호계이며, 윤황을 주향으로 하고 윤문거(尹文擧), 윤선거(尹宣擧), 윤증(尹拯) 3인을 추향하는 서원이다. 논산시 광석면에서 북쪽으로 약 1.3㎞를 가면 오강리로 건너는 덕포천 운교(雲...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 논산 돈암서원은 김장생의 문인들이 스승을 추모하여 사우를 건립한 뒤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 오다 사당 앞에 강당을 건립하면서 서원의 단초를 이루었다. 또한 돈암서원은 1659년(효종 10)에 이어 1660년 (현종 1), 두 번 사액을 받은 특이한 사례이다. 돈암서원은 영향력의 범위가 넓어서 호서 지역 전체 뿐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강당. 돈암서원의 강당 건물로 1634년 서원 창건시 건축하였고 강학 공간으로 사용 및 호서 사림의 활동 거점으로 이용되었다. 강당이 사당 방향과 직각으로 배치되는 예는 그리 흔하지 않으나,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은 강학 공간에서 앞면에 직각 방향으로 틀어져 배치되어 있다.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연산역 남쪽 국도 1호...
-
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과 부창동에서 매년 4월에 열리는 논산딸기 홍보 축제. 논산딸기는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봉리와 정지리 등에서 포도과수원의 간작으로 재배되기도 했으나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967년 논산시 채운면 용화리에 살던 박상규가 보령시 웅천면에서 다나 품종을 도입하여 재배하면서부터이다. 이후 재배면적의 급격한 증가와 영농 기술의 발전으로 2008년에는 95...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쌍계사에 있는 조선 후기 건물. 쌍계사는 논산의 최남단으로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작봉산[불명산]을 주산으로 삼고 있으며, 사찰 이름에서 살필 수 있는 것처럼 두 계곡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화재로 폐기된 것을 1716년(숙종 42)에 중창하였고, 1736년(영종 12) 화재로 전소된 것을 1739년 다시 중건하였다. 논산...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에 있는 공공 도서관. 논산강경도서관은 논산 지역 주민들에게 정보 습득의 공간과 생활문화의 공간을 제공하고, 취학 전 아동들과 노인층이 자유롭게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설립되었다. 논산강경도서관은 1993년 9월 3일 착공하여, 1994년 8월 6일 준공하였다. 1994년 9월 12일 「논산시 공공도서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가 제정, 공포되...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에 있는 논산시 관할 치안 행정 기관. 논산경찰서는 논산 지역의 범죄 예방 정책의 수립과 집행, 기타 이에 관련된 활동을 통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22년 강경읍 중앙리에 강경경찰서를 설치하고 각 면 단위에 주재소를 1개소씩 설치하였다. 1945년 8·15 해방과 더불어 경찰 제도 개혁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돈육 도축 및 가공 전문 센터. 논산계룡축협 식육유통센터는 1991년 개장하였다.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일부 지역의 양돈 농가 돼지를 반입·도축·가공하여 전국으로 유통시키는 논산계룡축산농업협동조합 산하의 돈육 도축 및 가공 전문 센터로, 충청남도 남부 지역 축산물 종합처리장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다. 논산계룡축협 식육유통센터는 국제 경쟁력을...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던 고용인들 중심의 친목회. 논산고용인친목회는 1920년대 전개된 계몽운동의 영향을 받아, 논산 지역의 고용인들을 중심으로 회원들의 복리 향상과 교양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논산고용인친목회는 강경고용인친목회 설립 이듬해인 1926년 1월 논산읍 내의 각종 상점 점원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되었다. 회장에는 윤상혁, 부회장에는 전복성, 재무부에는...
-
충청남도 논산시 화지동에 있는 재래시장. 논산공설시장은 논산 지역 상인들에게 안정된 판매처를 제공하고 논산 서민들이 저렴하고 질 좋은 물품을 구입할 수 있게 함으로써 논산 지역의 상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1976년 논산시 중앙부 상업지구 내에 조성되었다. 논산공설시장의 규모는 대지 총 면적 7,701㎡에 건물 총 면적은 4,008㎡이다. 입주해 있는 상점 수는 총 96개이고 노점...
-
일제강점기와 현대에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논산 지역에서 오늘날과 같은 군 행정 체계가 마련된 것은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이후부터였다. 현재 논산시의 관내구역도 1914년 군면 폐합 때 그 범위가 대체로 확정되었다. 즉 1908년 현재의 논산시 관내에는 은진군·연산군·노성군·석성군(일부) 소속의 면과 동리가 소속되어 있었으나, 1914년 군면 폐합과 동시에 구역...
-
광복 직후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설치된 민중 자치 기구. 인민위원회는 광복 직후 전국 각지에 조직된 민중 자치 기구이다. 처음에는 지방 조직으로 출발하였으나 1945년 8월 말경에는 전국적으로 145개소가 결성되었다. 강령은 대체로 비슷한데 첫째, 일본의 모든 재산은 한국인에게 돌려준다. 둘째, 모든 토지와 공장은 노동자·농민에게 속한다. 셋째, 모든 남녀는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갖춘 어린이, 창의적으로 탐구하는 어린이, 더불어 생활하고 봉사하는 어린이, 소질과 자기 자랑을 가꾸는 어린이, 몸과 마음을 튼튼히 가꾸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2003년 12월 30일에 36학급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2004년 3월 1일 21학급으로 개교하였다. 2005년 3월 1일 26학급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부창동에 있는 농업협동조합. 논산농업협동조합은 지역 농업인들의 경제적 이익 증진과 권리 향유 및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71년 12월 31일 은진농업협동조합, 1972년 8월 29일 논산농업협동조합, 1972년 9월 6일 채운농업협동조합이 각각 설립되었다. 이후 1998년 6월 29일 은진농업협동조합, 논산농업협동조합, 채운농업협동조합이 합병되...
-
1894년 충청남도 논산에서 개최되었던 남접 및 북접 동학농민군 간의 회합. 논산대회는 1894년 동학농민전쟁의 2차 봉기에서 충청남도 공주를 공격하기 위해 전봉준의 남접농민군과 손병희의 북접농민군이 충청남도 논산에서 합류하여 동학농민군 대본영을 설치하기로 결정한 대회(회합)이다. 청일전쟁에서의 승리가 확실해진 일본군에 대항하기 위해 전라도 일대를 중심으로 집강소 통치를 시행하고...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덕평리에 있는 고려 시대 불상. 논산 덕평리 석조여래입상은 현재 무릎 이하 부분이 흙에 묻혀 있어 원래의 크기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남아 있는 불신만 1.95m인 거상이다. 머리 부분은 다소 마멸되었으나 육계가 큼직하며 얼굴이 풍만하고 이마의 백호 형태가 확인된다.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면서 복스러운 편이나 얼굴 전체에 비해 작게 표현되어 조잡한 모습을 보인...
-
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초 기본 학력 정착으로 실력 있는 학생, 예절바르고 질서 있는 행동으로 도덕적인 학생, 튼튼한 몸과 마음을 길러 심신이 건강한 학생, 앞선 생각과 활동의 다양화로 창의적인 학생, 특기와 소질을 갈고 닦아 자주적인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5년 5월 16일에 논산취암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56년 4월 1일에 논산동성...
-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에 있는 문화 예술 공연 및 전시장. 1980년대 논산군 내의 전시·공연장으로는 화지산신용협동조합에서 운영하던 화지산문화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화지산문화공간은 전시 공간이 넉넉지 못하고 공연장으로 사용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라 군민들은 대규모 문화 공간이 건립되기를 기대하였다. 이에 따라 1985년 8월 10일 논산군에서 논산군 예산 8억 6천6백만 원과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에 있는 지역 문화 사업과 향토 문화 연구를 위해 설립된 문화 예술 단체. 논산문화원에서는 설립 초기인 1950년대 주한미국공보원의 지원과 더불어 지역 유지들의 성금으로 대공 선무 활동과 한글 가르치기, 영화 상영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64년에 「지방문화사업조성법」에 의거 문화원이란 명칭 사용과 법인 인가를 받은 공인단체가 되었고 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인 논...
-
충청남도 논산시 반월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게 행동하는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 새롭게 탐구하는 학생, 건강하게 생활하는 학생, 더불어 살아가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2년 5월 16일 논산남공립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49년 5월 1일 논산반월국민학교로, 1996년 3월 1일에는 논산반월초등학교로 각각 개칭되었다. 2015년 2월 12일 제70회...
-
충청남도 논산시 대교동에 있는 조선 후기 논산석교를 중수한 뒤 세운 2기의 비. 은진현감 서증보(徐曾輔)가 큰 장마로 유실된 다리에 큰 돌을 놓아 논산 지역의 발전에 기여하고,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통행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비로, 1846년(헌종 12)과 1858년(철종 9)에 건립하였다. 논산시에서 득안대로를 타고 강경 방향으로 약 2㎞ 가다가 놀...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에 있는 조선시대 돌다리. 논산 석성 수탕교는 논산과 부여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성동뜰의 넓은 평야 지역을 흐르는 석성천을 가로질러 놓였던 석교이다. 『동국여지승람』 등 조선시대 편찬된 지리지에는 수탕석교·수탕천교·수탕교 등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지 주민들은 주창다리로 부르고 있다. 수탕교는 일제강점기까지도 석성뜰에 농사일을 하러 가는 큰 길 역...
-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에 있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교회. 논산성결교회는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어 이 땅의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를 위해 필요 중심적 전도, 영감 있는 예배, 하나 되는 교제, 전인적인 구역가족, 열정적인 영성, 변화되는 훈련, 열매 맺는 1천 사역, 세계비전 12국 선교를 목표로 하여 활동하고 있다. 1932년 7월 6일 박중래...
-
충청남도 논산시 강산동에 있는 대전지방국세청 산하 세무 행정 기관. 논산세무서는 충청남도 논산시와 부여군·계룡시의 세입의 징수 및 수납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34년 5월 강경세무서로 발족하였다. 1962년 1월 강경읍에서 논산읍으로 이전하면서 논산세무서로 개칭하였다. 1997년 11월 충청남도 논산시 강산동 647번지[논산대로241번길 6]에 청사를 신축하...
-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에 있는 논산시 관할 소방 행정기관. 소방서는 화재 예방 및 진압 업무 외에 긴급구조 및 구급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행정자치부장관 소속하에 설치된 행정기관이다. 1958년 개정된 「소방법」에 따라 풍수해 및 설해(雪害)에 의한 인명구조 활동을 시작했으며, 1967년「소방법」개정으로 화재 인명구조만을 담당하다가 1983년에 구급업무가 소방기구업무로 법제화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마애불. 논산 수락리 마애불은 대둔산 정상부의 북서쪽 비탈 바위에 새겨져 있다. 논산 수락리 마애불은 바위 벽면에 음각된 불상으로 전체 길이 2.7m, 가슴 넓이 99㎝이다. 오른팔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렸고, 왼손은 손가락을 펴서 가슴에 얹은 모습이다. 양 어깨를 감싼 옷은 발 부분까지 내려져 있다. 주름이 발목까지 선명하게...
-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 논산시청 내에 속해 있는 근대5종 경기 선수단. 근대5종이란 수영·승마·사격·크로스컨트리·펜싱의 5가지 종목을 겨루어, 각 종목의 정해진 계산법에 따라 득점을 산출하여 종합적으로 승자를 가리는 경기 종목이다. 논산시청은 전문 직장 체육팀으로 근대5종, 인라인롤러, 보디빌딩 등 모두 3개 종목에 16명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근대5종선수단은 5명, 인라인롤러팀...
-
충청남도 논산시 부창동에 있는 기독교 단체. 1989년 4월 기독교 교단의 교회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의 여러 기독교 교단과 연합 단체, 교계 지도자들의 협력기관으로서 나름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시대적 사명을 충실히 담당하고자 설립되었다. 이와 함께 1989년 12월 논산 지역 기독교 단체의 연합회로 논산시 기독교연합회가 함께 조직되었다. 논산시 기독교연합회는 논산 지역의...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덕평리에 있는 논산시 직속 농업 기술 센터. 논산시 농업기술센터는 고품질 쌀의 안정 생산 정착, 농업 환경의 유지 보전, 친환경 농업 기술에 의한 안전한 농축산물의 생산과 유통 실현, 지역 특화 작목의 명산지화 조기 정착, 농업인 작목별 연구회 활성화를 통한 전문 농업 인력 양성, 지역 특산물 가공 상품의 개발 및 벤처 농업 기술 지원, 소비자와 농업인이 상...
-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에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 관리 기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 제114조의 규정에 의하여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이자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와 병립하는 독립된 합의제 헌법기관이다. 그리고 논산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시·도선거관리위윈회의 하나인 충청남도 선거관리위...
-
충청남도 논산시 등화동에 있던 하수 정화 시설. 논산시 환경사업소는 생활하수 및 쓰레기의 증가로 하천의 수질 오염이 날로 심각해지는 문제를 첨단 하수처리 방식으로 정화함으로써 하천의 수질을 보전하고 청결한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건립되었다. 1996년 12월 논산하수도정비 기본계획이 환경부로부터 승인되었다. 1997년 5월 환경부로부터 논산시 환경사업소 설치인가를 받았고, 19...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논산시민의 의사를 대표하고 입법을 담당하는 합의 기관. 지방의회란 일정한 지역을 기초로 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로부터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그 지방의 행정사무를 자치기관을 통하여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활동과정을 말한다. 즉 논산시의회는 논산시가 논산의 행정사무를 자치기관을 통하여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활동 과정으로, 논산시의 정책·집행 활동에 대한 효율성을...
-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에 있는 지방 행정 기관. 논산시청은 중앙 정부 및 충청남도 도청으로부터 위임된 업무와 자치권이 있는 고유 행정 업무 및 민원 업무 수행을 위해 설치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연산군, 은진군, 노성군, 석성군을 병합하여 15개 면을 관할하는 논산군이 되었다. 1931년에는 강경면이 강경읍으로 승격되어 1읍 14면이 되었으며, 1938년에는 논산면이 논...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 부적면소재지에서 연산면으로 이어진 국도 1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신풍리로 접어드는 도로를 만난다. 이 길을 따라 4㎞가량 더 가면 부적면 신풍리 풍덕말이 나온다. 논산 신풍리 마애불은 풍덕말 동쪽에 솟은 고정산 남쪽 비탈에 있다. 신풍리 마애불 남쪽 가까운 곳에 영사암이 자리하고 있다. 논산 신풍리 마애불은 10여m가량의 거대한...
-
충청남도 논산시 반월동에 있는 호남선 기차역. 우리나라 철도는 1899년 제물포와 노량진을 잇는 33㎞의 경인선 부설이 그 시초로, 이는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한 군사적·정치적 목적과 일본으로의 공업 원료 공급을 위한 자원 개발 및 자료수송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발달하였다. 그 후 주로 북남 방향의 팔자형 간선 철도들이 건설되어 육상교통 발달에 큰 공헌을 하였는데, 자동차 및 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문의 처 양천허씨 재실. 양천허씨는 태조 때 대사헌을 지닌 허응의 딸로 광산김씨 김문(金問)에게 출가하였고, 17세에 홀몸이 되자 친정 부모의 재가 권유를 거부하고, 연산에 내려와 유복자인 김철산을 키우며 일생을 마쳤다. 훗날 자손 중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을 비롯, 대사헌을 지낸 김계휘, 기호 사림의 거두 김장생과 김집 등 대유학자...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반남박씨의 재실. 상월면 대우리는 반남박씨의 집성촌이다. 논산 영사재는 예빈시참봉을 지내고,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박동민(朴東民, 1556~1593)과 사헌부집의를 지낸 아들 박휘, 손자 박세기(朴世耆,1618~1691) 3대를 제향 하는 재실이다. 1690년 창건되었고 논산 영사재 앞에는 박세기 신도비가 세워져 있고, 그 밖에 묘표석...
-
충청남도 논산시 화지동에 있는 우편, 전신, 금융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공공 기관. 우체국은 국장의 지위에 따라 4급(서기관국), 5급(사무관국), 6급(주사국), 7급(주사보국)으로 분류되거나 기능에 따라 체신청, 우편집중국, 집배국, 무집배국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따라 일반우체국,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 중 4급과 5급우체국은 총괄국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에 있는 조선시대 돌다리. 다리 앞에 대리석으로 된 원항교 개건비(院項橋改建碑)가 서 있는데, 비문에 따르면 1900년에 4명의 승려가 기금을 내고 민간인이 협조하여 모금한 4,130냥으로 다리를 고쳐 지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논산 원목다리(원항교)가 처음 세워진 때는 강경의 미내다리와 같은 시기인 1730년경으로 추정된다. 논산 원목다리는 조선시대...
-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유도회총본부 산하 논산지부. 조선조의 지방 교육기관이었던 향교는 제향과 교육의 양대 기능을 담당했다. 그러나 교육 기능은 17세기 이후 서원의 발전 증가에 따라 쇠퇴하였고, 1894년(고종 31)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문묘에 향사하는 석전(釋奠)만을 행하고 있다. 각 지방 유림회는 광복 이후 유교계를 대표하는 제도적 기구인 성균관-향교-유도회의 지부이다. 논산...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윤환 선생 고택 내에 있는 조선 중기 재실. 윤황(尹煌, 1572~1639)은 윤창세(尹昌世,1543~1593)의 아들로 동부승지와 이조참의 등 여러 요직을 역임했으며,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였다. 아들은 윤선거이고, 손자는 숙종 대 소론의 거두였던 명재 윤증이다. 윤환 선생 고택은 1985년 12월 31일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고,...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의 논산읍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논산읍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의 3·1운동에 호응하여 충청남도 논산군 논산읍 일원에서 1919년 3월 12일부터 4월 7일까지 전개된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 항거한 일련의 독립만세운동으로 논산읍민뿐만 아니라 학생과 강경읍민까지 가세하여 합동으로 전개된 운동이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0년에 걸쳐 일제는 조선총독부...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원재료나 반제품을 가공하여 공산품을 생산·판매하는 산업 시설. 논산 지역은 예부터 넓은 평야와 함께 농업이 주산업으로 되어 있어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 시설이 낙후된 지역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농업이 점차 쇠락하면서 농촌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농촌 인구의 도시 이주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으로 농공단지 건립이 추진되면서 공장 건설이 다소 활성화되기...
-
충청남도 논산시 대교동에서 5일 간격으로 열리는 재래시장. 논산 지역은 지역적으로 주요 곡창 지대인 논산평야를 끼고 있고, 논산천을 통한 선운이 편리하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시장이 발달하였다. 논산장은 조선 말기부터 논산시 은진면은 물론 노성면·연산면 등지에서 많은 물화가 집산되어 형성되었다. 논산장은 예부터 평양시장·대구시장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시장으로 유명하였다. 논산장은 소시...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월오리에 있는 정신 요양 시설. 논산정신요양원은 각종 치료 및 상담 프로그램의 운영을 통하여 환우들의 치료와 요양을 극대화함과 동시에 환우 가족들의 경제적 어려움 및 정신적 고통을 감소시켜 지역 사회 복지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6년 6월 17일 사회복지법인 정양원으로 법인 인가를 받았다. 1987년 10월 14일 사회복지법인 논산정신요양원...
-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성품으로 꿈을 키워가는 어린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어린이, 자기의 소질을 계발하는 어린이, 새 시대의 문화를 창조하는 어린이, 민주시민의 자세를 배우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97년 3월 1일 28개 학급으로 개교하였다. 1998년 3월 1일 38개 학급으로 증설 인가를 받았다. 1999년 3월에는 44개...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정지리와 원남리, 원북리에 있는 산업 집적화 시설. 논산지방산업단지는 수도권 산업체의 지방 분산과 함께 논산 지역 제조업체의 입지 수요를 충족시키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중소공업진흥공단과 논산시가 공동으로 사업비 183억 원을 들여 조성하였다. 1997년 10월 24일 지방산업단지로 지정 승인을 받아 착공하였다. 2004년 6월 30일 논산지방산업...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거사리를 지나 강경읍에서 강경천에 합류하는 하천. 논산천은 논산시의 중앙부를 관통하면서 노성천·연산천·왕암천 등을 지류로 하는 논산평야의 근간이 되는 하천이다. 논산천은 전라북도 완주군 우주면의 왕사봉에서 발원하여 장선천·인천천 등의 이름으로 흐르다가 탑정저수지를 지난 다음 왕암천을 합류하고, 논산대교 상류 약 700m 지점에 이르러 가장 큰 지류인 노성천과...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흐르는 논산천에 축조된 제방. 논산천은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 713m 지점 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에서는 북서쪽으로 흐르면서 장선천이 된다. 논산시 양촌면에 이르러 인천천이 되며, 논산 중심 시가지에 이르러 연산천과 노성천이 합류한 뒤 남서쪽으로 흐른다. 채운면에서 방축천, 강경읍에서는 강경천이 합류하여 강경읍 서창리와 성동면 개...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설립된 청년 단체. 3·1운동 이후 일제가 무단통치를 폐기하고 이른바 문화정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의 각 지방에는 근대식 학교 교육을 통해 신지식을 수용한 지역 청년들에 의해 각종 청년운동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청년들은 군이나 면 혹은 동리 단위로 청년수양단체를 결성한 뒤 야학·생활 개선 등과 같은 민중계몽 활동과 강연회·토론회·...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딸기.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일대는 36년의 딸기 재배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국 최대의 딸기 주산지이다. 이 일대는 비옥한 토양과 맑은 물, 풍부한 일조 조건을 갖추고 있어 딸기의 맛과 향, 당도 등이 우수하며,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양촌딸기는 1967년 다나 품종을 도입하여 밭에서 짚 멀칭 노지 재배를 하기 시작하였다. 1973년에는...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청주 양씨 선조를 제향하는 사당. 논산 충헌사는 충헌공(忠憲公) 양기(楊起)를 주향으로 하고, 양치·양희지·양응춘·양훤 등을 제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양기의 본관은 청주, 호는 암곡, 시호는 충헌이다. 양치는 양기의 증손으로 호는 퇴은(退隱)이다. 세종 때 김종서를 도와 육진을 개척하고 두만강을 국경선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황...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탑정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논산 탑정리 석탑은 원래 지금의 탑정저수지 지역에 있던 어린사(魚鱗寺)라는 절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절이 수몰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 온 것이라고 전한다. 전언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남쪽으로 견훤을 정벌할 때 이곳에 주둔하여 어린사를 지었다고 한다. 절의 주위에는 옛 성이 둘러싸고 있었으나 없어졌다고 하며, 석탑은 후백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 하표정마을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논산 표정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 조사는 충남대학교백제연구소(도구머리 고분군), 국립부여박물관(당골 고분군), 공주대학교 박물관(하표정 고분군)에 의하여 3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서로 인접해 있으면서도 각각의 조사된 고분 명칭이나 내용 면에서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논산 표정리 도구머리 고분군과 논산 표정리 당골 고분...
-
1907년부터 1921년까지 충청남도 논산시 부창동에 있던 천주교 교회. 공소는 천주교 교회 중 본당보다 작은 단위의 기초 교회를 말하며, 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연2회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성사를 집행하는 곳이다. 한국에서는 천주교 전파 초기부터 박해로 인해 깊은 산속이나 왕래가 드문 외진 곳에 교우촌이 형성되면서 공소가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도 1883년부터 강...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문학 동호회. 놀뫼문학동인회는 창작 활동을 통한 논산 지역 문학의 발전, 동인 상호간의 교류와 친목 도모, 논산 시민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 제고 등을 목적으로 논산 지역에 거주하는 시인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하였다. ‘놀뫼’는 논산 지역의 옛 이름이다. 1987년 12월 권선옥, 김광순, 김선우, 김종우, 김진성, 맹남섭, 최금숙 등이 주축이 되어...
-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에 있는 미술 동호회. 놀뫼미술회는 1972년 논산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던 서양화가 박춘화를 중심으로 8명의 회원이 논산 지역의 미술 발전과 회원들의 창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2년 9월 발기인 모임을 가졌다. 같은 해 11월에 논산궁전예식장에서 창립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놀뫼미술회 창립 이후 한국미술협회 논산지부를 비롯하여 몇몇의...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활동했던 남녀 혼성 합창단. 놀뫼합창단은 충남합창경연대회에 출전할 목적으로 1987년 논산시의 지원을 받아 충청남도 논산시에 거주하는 교회 성가대원을 주축으로 설립되었다. 놀뫼합창단은 충남합창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한 후 단원들 상호간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자연스럽게 지역 사회를 위한 음악 활동을 계속하게 되었다. 1994년 초 합창단을 이끌던 음악 교사가 다...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지역 산업 육성을 위해 건립된 산업 집적화 시설. 농공단지란 1983년 12월에 제정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에 따라 농촌 지역에 산업체를 유치하여 지방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건립된 산업 집적화 시설이다. 논산 지역에는 현재 연산농공단지와 가야곡산업단지, 은진농공단지, 연무농공단지, 양지농공단지, 동산농공단지 등이 건립되어 있는데, 이들 농공단지들은 제조업...
-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농민이 그 생활 조건 또는 사회적 환경의 개선을 위해 전개한 사회운동. 일반적으로 농민운동은 노동운동과 같이 계급으로서의 농민이 스스로의 노동 조건과 경영 조건의 유지·개선·확장 또는 사회·정치적 생활 조건의 유지·향상을 위해 단결해서 행동하는 조직적 투쟁을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흔히 농민조합운동, 농촌갱생운동, 농촌청년운동 등을 포...
-
충청남도 논산의 옛 두마면 향한리에서 농부들이 모를 심으면서 부르던 민요. 국어사전에서 농부가는 농부들이 부르는 노래라 하여 농요의 의미로 쓰고 있다. 조선시대 가사작품인 「농부가」는 권농가(勸農歌)적 성격을 갖기도 한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불리는 농부가는 전라북도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불리는 「모심는 소리」를 창자가 유입하여 부르는 삽입 가요이다. 논산 지방의 보편적 「모심는...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두레 일에 앞서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농신에게 지내는 제의. 과거에 김매기는 보통 마을 장정들로 구성된 두레를 통한 집단 협업방식으로 행해졌다. 농신제는 정기적 제의는 아니었으며 일꾼들이 두레 일을 시작하기 전에 풍년을 농신(農神)에게 기원하는 제사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용신제라고도 하며, 기우제의 일종으로 지내기도 하였다. 두레가 시작되면 이장이 징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일대에 있던 신라의 행정구역. 니산현은 현재 충청남도 논산시에 폐합된 옛 고을로 일부 부여군에 편입된 지역이 있으나 대체로 논산시 노성면·상월면·광석면 일대이다. 백제 때에는 열야산현이었으나 신라 때 니산현으로 고쳤다. 조선에 들어와 현이 되었으며, 1800년에 노성으로 고쳤다. 1895년 공주부 관할 아래 노성군으로 있다가 1896년 충청남도에 속했다. 1...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사정리에 있는 관광 농원. 다선관광농원은 정부의 관광농원 육성시책에 참여하여 도시의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청량한 자연의 풍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 건립되었다. 다선관광농원이 자리한 곳은 1980년대 중반까지 벌곡의 한삼내가 굽이쳐 흐르고 산세의 풍광이 빼어난 곳이어서 부유층들이 여름에 찾아와 물놀이를 즐기던 곳이었다. 1980년대 후반으...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5월 5일에 지내던 명절.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서, 수리 혹은 수릿날이라고도 부르고, 또는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부른다. 단오는 초오(初五)의 뜻으로 5월의 첫째 말날[午日]을 가리킨다. 이 날은 해가 가장 또렷할 뿐만 아니라 정오 때가 되면 하늘 한가운데 온다 하여 생긴 말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일이기도 하였으나 근래에 와서는...
-
전득시를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담양전씨는 전득시(田得時)를 시조로 한다. 고려 중엽 전라도 담양 출신의 충원공 전득시는 문과에 급제 후 좌복야, 참지정사를 역임하고 담양군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전득시를 시조로 하고 담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담양전씨의 계파는 전녹생(田祿生)을 파조로 하는 야은공파(壄隱公派), 전귀생(田貴生)을 파조로 하는 뇌은공파(牢隱公派)...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집터를 관장하는 지신(地神)이 깃들어 있는 장소. 당산은 장독대를 중심으로 집안 뒤꼍의 야트막한 언덕을 아우르는 용어로 흔히 ‘후토당산(后土堂山)’으로 호칭된다. 마치 한 마을에는 수호신으로 치성을 받는 당산이 존재하듯이, 집안에도 그 터를 주관하는 신령이 좌정한 곳을 당산이라고 부른다. 논산 지역에서 당산은 ‘터주’와 동일한 의미로 혼용되기도 한다. 이는...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동네에 큰 돌다리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돌다리 또는 석교리라 하였다가 대교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대교동은 예부터 호남, 즉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로 강경 미내다리와 채운 원목교·큰다리(지금의 논산대교)로 이어지는 당시로는 매우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다. 대교다리는 『춘향전』에서 이 도령이 지났다는 다리로, 대교다리가 있는 대교동은 은진·여산 방...
-
충청남도 논산시 대교동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대교동성당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 정신으로 지역 사회를 복음화시키고, 모든 이가 하느님의 구원에 동참하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을 지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영곤(金榮坤, 필립보) 신부가 논산읍 반월동 66번지의 세종여관 2층을 임차하여 임시 성당으로 삼고 첫 미사를 드렸다....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연산군(連山郡) 벌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르돌·용암리(龍岩里)·가정리(柯亭里)를 병합하고 대덕리라 하여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벌곡면 대덕리가 되었다. 남부는 360여m로 가장 높은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고, 서부는 340여m, 동부는 270여m,...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과 양촌면 및 전라북도 완주군에 걸쳐 있는 산. 대둔산의 옛 이름은 한듬산이라고 하며, 계룡산의 지세와 겨루다 패해 한이 맺힌 산이라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또한 한듬산은 순 우리말로 ‘크다’는 뜻의 ‘한’과 ‘덩이’라는 뜻의 ‘듬’을 한자화하면서 한은 ‘대(大)’로, 듬은 비슷한 ‘둔(芚)’으로 되었다는 설이 있다고 전해 오기도 한다. 노령산맥의 북부에 위치하...
-
충청남도 논산시·금산군과 전라북도 완주군의 경계에 있는 대둔산을 중심으로 한 도립공원. 대둔산도립공원은 충청남도의 대둔산도립공원과 전라북도의 대둔산도립공원으로 나뉜다. 전라북도 대둔산도립공원의 면적은 38.1㎢이며, 1977년 3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대둔산도립공원의 면적은 24.54㎢이며, 1980년 5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대둔산은 경관이 빼어나 일찍부터 많...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군 상월면 대명리에 설립되었던 농민 조합. 대명농민조합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설립된 최초의 합법적인 농민조합이었다. 이와 더불어 채운면, 성동면 등에서도 면단위의 농민회가 조직됨으로써 논산 지역의 합법적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3·1운동 이후 사회주의가 유입됨에 따라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는 계기를 맞았다...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강줄기를 경계로 하여 지형이 마치 대망이와 같다 하여 대망골이라 불렀다. 그 후 무안박씨(務安朴氏)가 살면서 대명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상도면(上道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후동(後洞)·양암리(陽岩里)·강구리(康衢里)·금동(琴洞)·시목동(柿木洞)을 병합하고 대명리라 하여 논산군 상월면에 편입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서 시작되어 지경리에서 주천에 합류하는 하천. 대명천은 비교적 짧은 하천으로, 계룡산 남쪽 능선에 해당하는 향적산(574m)의 남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하천이다. 발원지에서 남동~북서 방향으로 약 1㎞ 흐르다 동~서 방향으로 약 1㎞ 정도 흘러 노성천의 지류인 주천에 합류된다. 계룡산 천황봉에서 국사봉(國事峰, 대명리 소재)에 이르는 능선의 서쪽 사면...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촌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다양한 경험으로 심신이 조화롭게 발달한 어린이, 문제를 해결하고 생각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어린이, 폭넓은 학습으로 미래의 꿈을 가꾸는 어린이, 우리 전통과 문화를 익히고 애호하는 어린이, 바른 생활 습관으로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9년 4월 1일에 상월초등학교 대명분교장으로 설립 인가를...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와 연산면 연산리 경계에 있는 고개. 대목재 동쪽에는 한삼천리의 대목리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은 옛날 목재로 사용하던 큰 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대목(大木)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이 고개를 대목재·대목티·대목령 등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논산시 동쪽 천호봉(352m)-깃대봉(393.1m)-국사봉(國司峰, 333m)에 이르는...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소울의 큰마을이 있으므로, 큰소울·큰솔·대우동(大牛洞)이라 하였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상도면(上道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우동(小牛洞)을 병합하고 대우리라 하여 논산군 상월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가 되었다. 대우리의 동부는 국사봉(國事峰, 대명리 소...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월면 일대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 하여 대촌리라 하였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상도면(上道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잔산리(棧山里)·신평리(新坪里)·궁동(弓洞)·촌산리(村山里)·반곡리(反谷里)·무동(舞洞)의 각 일 부를 병합하고 대촌리라 하여 논산군 상월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서 발원하여 상월면 지경리에서 주천에 합류하는 하천. 대촌천은 비교적 짧은 하천으로, 계룡산 남쪽 능선에 해당하는 국사봉(國事峰, 대명리 소재)의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하천이다. 발원지에서 동~서 방향으로 약 1㎞ 흐르다 남~북 방향으로 약 2㎞ 흘러 노성천의 지류인 주천에 합류된다. 계룡산 천황봉에서 국사봉(國事峰)에 이르는 능선의 서쪽 사면은 노...
-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국·공립 및 사립 대학교. 현재 논산시에 소재한 종합 사립 대학교는 3개교이고, 전문대학은 1개교가 있다. 그중 사립 대학교는 건양대학교·한민학교·금강대학교가 있으며, 전문대학은 한국폴리텍바이오대학이 있다. 각 대학별 구체적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논산 지역의 본격적인 대학 교육의 시작은 1991년 건양대학교의 설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건양대학교...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정정(大正町)이라 하다가 1947년 일본식 동명의 변경에 의하여 대흥동(大興洞)으로 변경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 지역으로, 황산(黃山)의 일부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채운면 성서리(城西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대정정이라 하여 논산군 강경면에 편입되었다. 1931년 4월 1일 강경면이 강경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강경읍...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있는 재래시장. 강경은 1920·1930년까지 대구, 평양과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대흥시장은 상업도시로서의 강경의 맥을 잇기 위해 1955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전통 재래시장이다. 1955년 10월, 현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 48-32번지[계백로105번길 8-4]에 5일장으로 개장하였다. 강경의 쇠퇴와 대형 할인점의...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 있는 고개. 더운뎅이재에는 성황당인 덕은당(德恩堂)이 있어서 덕은당재라 하던 것이 변하여 더운뎅이 또는 더운뎅이재가 되었다고 한다. 고생대 오도비스기에서 캠브리아기 사이에 형성된 옥천층군문주리층을 기반암으로 흑운모편암과 견운모편암을 주로하고 있는 고개이다. 편암류뿐만 아니라 결정질 석회암을 협재하고 있어 석회석이 생산되기도 했지만 1990년경 경영...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부터 덕을 입으려면 덕밑을 찾아가라는 말이 있다. 덕곡리는 대둔산 아래의 아늑한 피난지로 알려져 있는데, 덕실·덕밑 또는 덕곡이라 불렸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벌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벌곡(中伐谷)·상사암리(相思岩里)·상벌곡리(上伐谷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덕곡리라 하여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
-
백제시대 논산 지역에 있었던 군현. 덕근군은 현재 충청남도 논산시 관할 구역의 일부로 편제되어 있는 지역이나 삼국시대 당시에는 백제에 속한 군현의 하나로 완산에 소속되었으며 은진면 일대가 그 중심지였다. 그리고 동방성이 위치했던 곳으로 백제가 신라를 공격하거나 신라의 백제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백제시대 당시 논산 지역은 3개의 군현으로 나누어져...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오래된 떡갈나무가 있는데 나라에 변란이라도 있으면 소리를 내어 미리 알려주어 이 나무를 덕나무라 부르게 되었고, 덕나무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덕목리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벌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점동(店洞)·귀암리(貴岩里)·대동(垈洞) 일부를 병합하고 덕목리라 하여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에 큰 바위가 있어 덕바우 또는 덕암리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백석면(白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행정리(杏亭里)·도구리(道龜里)를 병합하고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연산면 덕암리가 되었다. 덕암리의 동부는 함지봉(咸芝峰, 386.5m)과...
-
이전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덕은이씨는 이전(李筌)을 시조로 한다. 이전은 진위이씨의 시조 이자영(李自英)의 5세손으로 고려 말 한성우윤을 역임하고 덕은군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이전을 시조로 하고 덕은(현 논산시 은진면)을 본관으로 삼아 진위이씨에서 분적했다. 덕은이씨를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전의 아들인 이운생(李芸生)과 조선 중기 이인수(李仁獸)·이기...
-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자리한 덕은현의 치소(治所) 자리. 덕은현은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일부의 삼국시대 행정구역으로, 덕은현의 백제 때 명칭은 덕근군이다. 백제의 덕은현 치소는 지금의 가야곡면 면소재지인 행정리의 서쪽에 있는 덕은골로 전해 온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는 덕근군을 덕은군(德殷郡)으로, 고려 전기에는 덕은군(德恩郡)으로 개정하였다. 은진...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연산군(連山郡) 부인처면(夫人處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왕남동(旺南洞)·왕북리(旺北里)·덕지동(德池洞)·둔전평(屯田坪)·창리(倉里)·아호리(阿湖里)·계전리(桂田里)의 각 일부와 노성군(魯城郡) 천동면(泉洞面)의 왕전리(旺田里) 일부를 병합하고 왕남(旺南)과 덕지(德池)의 이름을 따서 왕덕리(旺德里)라 하고 논산군 부적면...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넓은 들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덕들 또는 덕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조선시대 원님들이 가마를 타고 한양으로 오갈 때 모습이 모두 보인다 하여 가마들이라고도 불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외성면(外城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황리(夫皇里)·다오개리(多五介里)·관학리(觀學里)·묵동(墨洞)·용구산리(用九山里) 일부와...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사람·차 등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비교적 넓은 길. 논산시에는 호남고속도로와 천안논산고속도로의 2개 고속도로, 국도 1호선·국도 4호선·국도 23호선의 3개 국도, 지방도 68호선·지방도 643호선·지방도 645호선·지방도 691호선·지방도 697호선·지방도 799호선 등 6개 지방도, 시도 1호선·시도 2호선·시도 3호선·시도 4호선·시도 5호선·시도...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곡물의 겉을 싸고 있는 깍지를 두드려 알곡을 빼내는 데 쓰는 농기구. 먼 옛날 보리의 겉껍질을 벗기거나 콩깍지로부터 콩알을 분리할 때 작은 막대기로 두들기던 것이 발전하여 도리깨가 생겨났을 것이다. 탈곡기가 일반화되기 이전까지는 농가에서 직접 도리깨를 만들어 사용했으나 탈곡기가 일반화되고 농촌의 작물 재배 경향이 벼농사와 특용작물로 재편되면서 보리, 콩, 팥...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부터 마을에 통뫼가 있다 하여 도산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벌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고티[長古峙]·신촌(新村)의 일부를 병합하고 도산리라 하여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벌곡면 도산리가 되었다. 도산리의 북부 및 남부지역은 해발고도 400여m...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도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전인적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을 추구하는 학생, 기초 능력을 토대로 새롭게 궁리하는 학생, 폭넓은 교양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 우리문화를 이해하고 전통을 세워가는 학생, 이웃과 나라의 발전에 공헌하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2년 3월 5일 도산간이학교로 개교하였다. 1942년 4월 1일 벌곡국민학교 도산분교...
-
고려 후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초명은 유(兪), 자는 자예(子藝), 호는 청송당(靑松堂). 도응이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에 은거하면서 성주도씨가 충청도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아들 도사면(都思勉)은 다시 논산시 연산면 어은리로 낙향하였고, 손자 도경손(都慶孫)은 여산송씨의 사위가 되어 처가에서 가까운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로 이주하여 세거하였다. 도응은 고려...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효자. 도처중의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효행 사적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1645년 명정이 내려져 정려가 논산시 상월면 한천2리에 세워졌다. 정려 안 명정 현판에는 ‘효자사인도처중지문 숭정을유팔월일 명정려(孝子士人都處中之門崇禎乙酉 八月日命旌閭)’라고 쓰여 있다. 1979년의 정려중수기가 명정 현판과 함께 걸려 있다. 1697년(숙종 23)에 예조에서...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한천리에 있는 조선 중기 효자 도처중의 정려. 도처중(都處中, 1642~?)은 본관이 팔거(八莒)로, 지극한 효행이 알려져 1645년(인조 23) 명정을 받았고, 1679년(숙종 5) 예조에서 편찬한 효행등제(孝行等第)의 상물질(賞物秩)에 올라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도처중의 효행 사적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효자 도처중 정려는 상월면 한천리 안골 입구...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리봉(道理峯)이 있으므로 도리들 또는 도평(道坪)이라 하였다. 본래 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 운북면(雲北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도상리(道上里)·도하리(道下里)·상리(上里)·중리(中里)와 은진군(恩津郡) 가야곡면(可也谷面)의 석서리(石西里) 일부를 합하고 도평리라 하여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
-
일제강점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민족 운동. 일반적으로 한국에서의 독립운동이라 함은 조선 말기 외세의 침투에 대항하여 이루어졌던 국권 회복을 위한 활동으로부터 일제강점기에 주권 회복을 위해 전개했던 일련의 반외세·항일운동을 의미한다. 이 시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독립운동은 주로 독립만세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거...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전개한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인사들. 일반적으로 독립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전개된 여러 가지 민족 운동을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3·1운동, 국내외 군자금 모금 활동, 만주 지역 항일운동, 임시정부 및 광복군 활동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활동을 전개한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주요 인사들로는 강세형(姜世馨), 고상준(高相俊), 곽성...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 인근에 있는 바위. 현재 돈암(遯巖)은 숲말(임리1구)의 김집 선생 사당에서 신림마을로 가는 길모퉁이에 있다. 옛날 이 돈암이 있던 부근에 돈암서원이 있었다. 현재 돈암서원(遯巖書院)은 연산면 임리2구에 있는데, 1634년(인조 12) 숲말에서 서원을 창설하여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을 모시고, 1658년(효종 9)에 그 아들 신독재(愼獨齋...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 원정비. 돈암서원 원정비는 돈암서원을 세우게 된 배경과 서원의 구조를 남기기 위해 건립한 비석이다.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의 학문과 성품을 칭송하는 글도 새겨 놓았다.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연산역 남쪽 국도 1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2.3㎞를 가면 도로 남쪽에 돈암서원 입구가 있다. 돈암서원 원정비는 서원 내의 강당 건물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에 있는 조선 말기 돈암서원 이건비.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 12)에 건립되어 사계 김장생, 신독재 김집,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을 배향한 서원이다. 돈암서원은 본래 현재 위치에서 약 1.5㎞ 떨어진 숲말에 있었다. 숲말에는 김장생 아호의 연원인 사계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홍수로 사계천이 범람하여 서원의 담장을 침색해 들어오게 되었다고...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사당. 돈암서원 유경사는 호서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장생을 주향으로 하며, 1658년(효종 9)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을 추배하였고, 이어 1688년(숙종 14)에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95년에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각각 추배하고 있는 곳이다.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연산역 남쪽...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담비가 많이 살던 담비산이 이 마을에 있고, 이 담비산을 동산이라고도 하였다가 마을 이름도 동산이라 불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죽본면(竹本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독각리(犢角里)·구방리(舊坊里)·서재리(書齋里)·용계리(龍溪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동산리라 하여 논산군 구자곡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1월...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를 하는 학생, 우리 얼과 문화를 이해하고 가꾸는 학생, 더불어 사는 생활 예절을 실천하는 학생, 지식 정보화 사회에 창의적으로 적응하는 학생,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룬 개성 있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60년 4월 1일에 개교하였으며, 1980년 3월 8일에 동산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서 동토로 생긴 병을 치료하기 위해 행하던 주술적 의례. 동토(動土) 혹은 동티란 흙이나 나무 등을 잘못 다루었을 때 지신(地神)이나 목신(木神) 등의 노여움을 사서 발병하는 증상을 일컫는다. 가령 장독의 위치를 옮기고 나서, 또는 집 안에 새로운 물건을 들이든가 담장을 수리한 뒤에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면 동티가 났다고 한다. 이밖에도 동티의 종류는...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강경의 동쪽에 있다 하여 일제강점기에는 동정(東町)이라 했는데, 1947년 일본식 동명의 변경에 의하여 동흥동(東興洞)으로 변경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정이라 하여 논산군 강경면에 편입되었다. 1931년 4월 1일 강경면이 강경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강경읍에 소속되어 오다가 1947년...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에서는 김매기를 마친 농군들이 노동의 힘겨움을 위로하기 위해 한바탕 신명난 놀이판을 벌인다. 부잣집 마당에서 기와를 얹을 때처럼 농군들이 허리를 굽히고 그 위로 한 사람씩 지나가는 방식으로 놀이를 하는데, 이를 지와바리(혹은 지와바지)라고 한다. 이때 아이를 낳는 산고(産苦)를 흉내 내며 여름 농사의 힘든 고비를 알리고, 아이를 출산함으로써 산고를 견뎌...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이곳에 팥절이라는 작은 절이 있었는데, 팥절을 한문화하여 두사(豆寺)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산리(大山里)·중산리·소산리와 대동리(大洞里)의 일부, 읍내면 송아리(松牙里)의 일부, 득윤면(得尹面) 사동리(沙洞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두사리라 하여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풍수설에 의하면 운중반월형(雲中半月形)의 명당이 있다 하여 두월(斗月)이라 하였다고 한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가야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당리(堂里) 일부를 병합하고 두월리라 하여 가야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가 되었다. 두월리의 남부·중부 및 서...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에 등수소(登水所)가 있던 곳으로, 파평윤씨 한 사람이 마을로 이사와 덕을 많이 쌓으면서 살아가므로, 선행을 많이 하는 윤씨를 얻은 마을이라 하여 득윤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득윤면(得尹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에 개편에 따라 윤리(尹里)·중리(中里)·지동(止洞)의 각 일부와 광석면 갈산리(葛山里)의 일...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득윤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논산시 광석면 광석초등학교에서 신당리 방면으로 2㎞ 정도 가면 득윤리가 나온다. 득윤리 유물산포지는 득윤리의 북동쪽 구릉 부분에 위치하는 것으로 전한다. 지표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으나, 몸체가 반파된 회청색 경질의 굽다리접시가 수습되었다. 또한 이 일대에서는 간돌화살촉이 수습되기도 한 것으로 전한다. 득윤리 유물산포지 맞...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백중에 장정들이 무거운 돌을 들어 보임으로써 성년으로 인정 받던 세시풍속. 들돌들기는 ‘드는 돌’이라는 의미에서 ‘들돌’이라 불리는 돌을 들어야만 마을의 장정으로 간주하였던 논산 지역의 풍속이었다. 크기는 장사가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의 무거운 돌이며, 작은 돌은 쌀 한 가마 정도의 무게로 등뒤로 넘기기를 할 수 있는 들돌이다. 대개 타원형이거나 원형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산등에 있어서 등골 또는 등리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가야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두면(上豆面)의 두계리(杜溪里) 일부와 갈마면(葛麻面)의 목곡리(木谷里)와 성덕리(城德里)의 각 일부, 송산면(松山面) 와야리(瓦也里)의 각 일부, 연산군(連山郡) 적사곡면(赤寺谷面)의 중하성리(中下城里) 일부를 병합...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이 낮은 산등성이에 있다 하여 등말 또는 등리라 하였다가 등리와 황화산성의 이름을 따서 등화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봉수를 올렸던 지역이라 하여 등화로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성본면(城本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창리(海倉里)·남산리(南山里)의 각 일부와 화산면(花山面) 광교리(光橋里)·중리(中...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장어를 잡는 방식. 장어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의 도랑 사이에 주로 서식한다. 밀물과 함께 바다로부터 들어온 장어는 도랑의 플랑크톤을 먹기 위해 도랑 깊숙이 숨어드는데, 똘맥이는 밀물이 들어오면 도랑 입구에 미리 묻어둔 그물을 들어 올려 도랑 입구를 막는 방법이다. 다음 썰물이 되어 도랑물이 빠지면서 장어도 도랑 입구 쪽으로 나오게 되어 자...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평천역(平川驛)이 있을 때 말을 먹이던 곳이 있어서 마굿들 또는 마구평(馬九坪)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백제시대에 신마(神馬) 아홉 마리가 나타난 마을이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마구평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예부터 마구평리에는 말 아홉 마리가 함께 먹는 구마동식(九馬同食)의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의 명당이 있다고 전...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마구평리에 설립되었던 수리조합. 논산군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들판이 넓은 지역이었다. 특히 북동쪽으로 논산천, 남동쪽으로 강경천을 따라 넓게 발달된 강경평야(논산평야)는 1920년 당시 논 23,854정보와 밭 7,326정보가 경작되던 대평원이었다. 강경평야는 논에서만 1년에 298,000석가량의 현미가 산출되는 등 조선의 3대 미작지대 중...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명당자리가 있다는 마산(馬山)이 있어서 이 마을 이름을 마산리 또는 마산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구자곡면(九子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화석리(火石里)·장등리(長登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다시 마산리라 하여 논산군 구자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 성태봉에서 발원하여 안심리에서 강경천에 합류하는 하천. 마산천은 비교적 짧은 하천으로 우둠저수지가 축조되어 있고, 약 2㎞의 곡간을 지나 논산평야의 외곽에 이른다. 현재 이곳은 경지 정리가 잘 되어 있어 과거의 유로를 상실한 상태로 남아 있다. 2010년 말 현재 마산천의 유로 연장은 8.96㎞이고, 유역 면적은 13.56㎢이다. 제1지류는 논산천이고...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삼밭과 내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삼밭내 또는 마전이라 하였다. 본래 전라북도 여산군(礪山郡) 공촌면(公村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야등리(野登里)·승지리(僧池里)·신량리(新良里)·구량리(舊良里)·장항리(獐項里)·송화리(松花里)·고분리(古分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1월 1...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마을 단위로 산신제를 올릴 때 각 가정에서 마련하는 떡시루. 산신제는 기본적으로 마을 전체를 위한 것이라 그 의례 절차에는 개인의 소망을 삽입시킬 수 있는 여백이 근원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물론 각 개인이나 가정이 화평하지 않고서는 마을의 안녕도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가정에서는 역시 독자적인 운수가 있는 것이다. 마짐시루는 마을에서 산...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높은 산의 좁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만목골 또는 만목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벌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망티[望峙], 독방리(讀房里), 신촌(新村), 사삼암리(思三岩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만목리라 하여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벌곡면...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경계에 있는 고개. 고개 아래에 만목리 또는 말목이라는 마을이 있어 이에 근거하여 말목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생대 오도비스기에서 캠브리아기 사이에 형성된 옥천층군문주리층을 기반암으로 주로 흑운모편암과 견운모편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개 북쪽을 지나 남~북 방향의 골짜기가 있어서 왕암천이 흐르고 있고, 이 하천에 의해 형성된...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알곡이나 농산물을 담아 두는 농기구. 처음엔 볏짚 등을 엮어 만들었으며, 이후에는 닥나무 껍질을 섞어서 만들거나 종이로 만들기도 했다. 차츰 모양도 예쁘게 만들어 썼으나 값싸고 다양한 플라스틱 그릇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차츰 자취를 감추어 요즘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통기성이 좋아 곡식 등을 보관하기에는 좋지만, 요즘에는 경제성이 없어 메꾸리를 만드는 사람이...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와 계룡시 남선면 부남리 경계에 있는 고개. 향적산(574m)에 매달린 것 같이 보인다고 하여 맨재 또는 현령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계룡산의 남쪽 산릉인 천황봉(845.1m)~함지봉(386.5m)에 이르는 능선에 속하는 고개이다. 이 산줄기는 주로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능선 부분은 산성암맥류인 그라노파이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멘재도 이에 속...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울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이름을 따서 명암리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모촌면(茅村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왕대리(旺垈里)·중명암리(中鳴岩里)·하명암리(下鳴岩里)·신량리(新良里)·반곡리(盤谷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명암리라 하여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명절에 준비하여 먹는 음식. 명절음식은 때에 맞추어 먹는 음식이라 하여 시절(時節)음식이라고도 한다. 명절을 맞이하여 해당 절기(節氣)에 생산된 재료로 음식을 마련해 먹는데 설날의 떡국, 정월 대보름날의 보름밥과 묵은 나물, 단오의 쑥떡, 유두의 밀국수, 복날의 개장국, 추석의 송편, 시월의 첫무리떡, 동지의 팥죽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때는 모처럼 맞은 농...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 일대에서 생산되는 고구마. 고구마는 100g에 30㎎ 정도의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는데, 이 비타민 C는 가열해도 60%가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다. 그리고 고구마 100g 중에는 칼륨 400㎎이 함유하여 몸 안의 여분 염분을 소변과 함께 배출시켜 고혈압 등 성인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 등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구마·호박·당근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호·김계휘를 제향하는 재실. 모선재는 조선 중기 예학의 대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조부(祖父)인 김호와 부친 김계휘(金繼輝)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자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대략 1700년대 초반인 것으로 전한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 가면...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띠가 많이 있어서 띠울 또는 모촌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모촌면(茅村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리곡리(高里谷理)·웅천리(熊川里)·신계리(新溪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모촌리라 하여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가 되었다. 모촌리의 북부는...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나무가 무성하여 나무골 또는 목곡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갈마면(葛麻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촌리(坪村里)와 서촌리(西村里)를 병합하고 목곡리라 하여 가야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가야곡면 목곡리가 되었다. 목곡리의 남부는 해발고도 230여m의 구...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와 벌곡면 수락리 경계에 있는 고개. 동쪽에는 무수티라는 마을이 있는데, 선인무수형(仙人舞袖形)의 명당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무수티라 불렸고, 고개 이름도 여기서 따서 부르게 되었다. 무수재 북쪽으로 바랑산(555.4m)과 월성봉(647m) 등의 산이 솟아 있다. 고개 인근을 비롯한 북쪽 산지들의 기반암은 중생대 화강암대를 관입한 응회암이 주요 산체를...
-
박진승을 시조로 하고 박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무안박씨 시조는 박진승(朴進昇)으로,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여섯 째 아들 완산대군 박언화의 후예이다. 박진승은 고려 전기에 공을 세워 무안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무안이라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려시대의 박승중(朴昇中), 조선시대의 박의장(朴毅長)·박홍장(朴弘長)·박창하(朴昌夏),...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4리 모청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 무작금의 충노비. 무작금 비는 이례적으로 김수남의 정려와 묘소에 각각 한 기씩 세움으로써 죽어서도 충신 김수남을 지키는 충노로서 역할을 하게 하였다. 김수남의 묘소는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에 있지만 김수남은 은진면 사람으로 정려가 연무읍 금곡4리에 있어 무작금의 비 또한 김수남 정려 옆에 세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불망기념비. 무후지고혼 불망기념비는 충·효·열 삼강(三綱)을 행하고 죽은 인물 중 자손이 없어서 그 행적이 전해지지 않는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졌다. 논산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0.4㎞ 가다 보면 하도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약 3㎞ 가다가 상월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가다 보면 노성 궐리사가...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구체적이며 비유적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논산 문학의 대상 범위는 논산에서 태어나 논산에서 문학 활동을 했던 작가들과 논산에서 출생한 뒤 타지에 가서 활동한 작가, 그리고 논산 지역의 문학 활동에 참여하여 논산 문학 발전에 기여한 작가들과 작품들이다. 조선시대의 논산 문학은 주로 한문학이 주류를 이룬다. 논산 지역 인물들의 문집은...
-
충청남도 논산시 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문학단체. 논산의 문학단체는 시동인회로부터 출발했다. 1960년대 초반에 논산의 중고등학생들로 조직된 요람벌시동인회는 시인 김대현이 학생들에게 문학 이론과 창작 방법을 지도하면서 발전해 나갔다. 이들은 회원들의 작품들을 모아 시동인집 『요람벌』을 발간하기도 했다. 1965년에는 논산 지역 문학 지망생들을 모아 황산벌시동인회를 조직하였는데, 김영...
-
충청남도 논산시의 현대 문화 예술 전반과 예술 문화 단체들의 활동 현황. 논산 지역 문화·예술의 양대 산맥은 논산문화원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논산지회라 할 수 있다. 처음 논산에서 현대 문화·예술 활동이 시작되어 걸음마 단계에 있던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정도까지는 논산문화원에서 향토전통문화 발굴, 축제행사, 문학, 미술, 음악, 영화, 서예, 농악 등 거의 모든 문화·예...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는 유형에 따라 유형문화재·무형문화재·기념물·민속자료 등으로 나뉘고, 지정 여부에 따라 지정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로 구분된다. 2008년 현재 논산시에는 국가지정문화재 12점(보물 7점·천연기념물 1점·사적 2점·중요민속문화재 2점), 도지정문화재 44점(유형문화재 24점·무형문화재 1점·기념물 15점·민속자료 4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두사리와 광석면 사월리 경계에 있는 고개. 고개의 모양이 옥녀가 물레를 잣는 형국이라서 물레치라고 부른다. 물레치는 반상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진 23m의 낮은 고개이다. 주변은 대체로 논산천의 작은 지류 하천들에 의해 개석된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고, 고개의 남쪽으로 논산천의 지류인 노성천이 흐르고 있다. 논산시 대교동에서 연산천과 합류하여 논산천에 유입되고 있...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물통을 나를 때 사용하는 지게. 물지게는 예부터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 농촌 지역에서 많은 양의 물을 효과적으로 나르기 위하여 만들어 썼던 생활도구이다. 물동이는 여자만 이고 다녔지만 물지게는 남녀 구분 없이 졌다. 물동이에 담긴 물을 머리에 이고 다니다가 물지게가 나와 공동우물이나 마을 공동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먹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그러나 농촌에도 19...
-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한 논산 지역의 예술. 미술은 일정한 세계상이나 인간상을 미적·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로 그림·조각·건축·공예·서예 등을 총칭하는 말로 공간 예술 또는 조형 예술로 불리기도 한다.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 생활이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미술활동으로 많은 미술품들이 전해지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논산 지역 미술을 시대별로 개관한다....
-
충청남도 논산 지역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믿어져 내려온 신앙. 민간신앙은 매우 폭넓은 개념이어서 민속학에서도 한정된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마을신앙, 가정신앙, 무속신앙, 풍수신앙, 점복신앙 그리고 자연물 신앙 등이 모두 민간신앙에 들며, 금기(禁忌)·주부(呪符)·주술(呪術) 행위 등도 포함한다. 여기에서는 마을신앙과 가정신앙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논산 지역은 구릉성 산...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현감 민동호의 선정비. 논산시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0.2㎞ 가다 보면 하도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0.19㎞ 가다가 우회전하여 오른쪽 방향으로 약 2㎞ 직진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상월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가다 보면 노성면사무소가 보인다. 민동호 선정비는 노성면사무소 근처에 있는 노성교회 아래 노성면...
-
조선 전기 활동한 무신. 본관은 여흥. 자는 분충(奮忠). 할아버지는 여원군 민백훤(閔伯萱)이고, 아버지는 좌찬성 여강군 민수산(閔壽山)이다. 여흥민씨 위양공파의 파조이다. 민발은 1437년(세종 19)에 음보로 내금위에 속하였다가 여러 벼슬을 거쳐 부사직에 이르렀다. 1450년 수양대군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53년(단종 1)에는 사복시대호군으로 있다가 무과에 합격하여...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민간의 생활 풍습. 민속은 한 문화권 내에서 다수가 향유하고 있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문화로 민중들이 자연적·역사적·사회적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지혜와 믿음으로 엮어낸 생활양식이다. 또 각 절기에 따른 생활 풍습과 생산 관계가 반영되어 있다. 이는 민속 문화의 창작자와 수요자 자체가 생산자 농민이거나 어민·수공업자·상인들이었던 탓이다. 민의...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논산 지역의 생활과 습관을 반영한 놀이. 논산 지역은 넓은 들판을 소유하고 있어 예부터 농사와 관련한 민속놀이가 발달되어 있다. 민속놀이는 개인 놀이와 집단 놀이로 나눌 수 있는데, 개인 놀이에는 연날리기·윷놀이·들돌들기·종경도(從卿圖) 등이 있고, 집단 놀이에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된 연산백중놀이와 술멕이·줄다리기·쥐불놀이·지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던 조선 말기 도순사 민영상의 영세불망비. 『고종실록(高宗實錄)』의 기록에 의하면, 민영상이 자신이 관할하는 평택(平澤)과 직산(稷山) 두 고을의 백성이 곤궁하고 어려움에 처하자 세금 감면을 요구하였다고 되어 있어, 이러한 공적으로 불망비가 세워진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1889년(고종 26) 2월 10일자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민영상 불...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논산사람들이 그 생활환경, 감정 및 생각을 표현한 노래로서 오랜 세월동안 구전으로 전해 오는 노래. 민요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생활의 필요에 의해 생성되고 향유되고 전승된 민간의 노래를 말한다. 민요의 종류는 각 나라의 민요 실태와 관점 및 필요에 따라 달리 분류될 수 있는 바, 민요 분류의 잣대로는 지역, 대상, 소재, 가창방법, 선법, 기능 등을 생각해 볼...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여산부사 민의호의 불망비. 논산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8.95㎞ 직진하다 보면 황화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봉곡서원이 나온다. 민의호 불망비는 봉곡서원 바깥 담장 아래에 서향으로 서 있다. 비석은 귀접이형으로 높이 100㎝, 너비 40.5㎝, 두께 11㎝이다. 앞면 좌우에 공적 내용이...
-
일제강점기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전개한 논산 지역의 모든 저항운동의 범칭. 민족운동은 소수 민족이 다수 민족의 억압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식민지 상태나 종속 상태에서 압박당하는 민족이 지배 민족이나 국가의 압박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운동을 범칭하는 말로 민족해방운동이라고도 한다. 민족은 그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여야 한다는 민족자결(民族自決)의 이념을 바탕으로 특히 식민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공충도관찰사를 지낸 민치상의 선정비. 민치상(1825~1888)은 1867년 공충도관찰사가 되었으며, 뒤이어 1870년 11월까지 공충감사(公忠監司)를 잉임(仍任)한 기록이 있다. 민치상 선정비가 신미년에 건립되었으므로 민치상의 재임 시기와 신미년을 대조하면 1871년(고종 8)을 선정비의 건립 연대로 짐작할 수 있다. 논산시에서 공...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채광리·오산리와 벌곡면 덕곡리·수락리에 걸쳐 있는 산. 산의 생김새가 바랑(걸낭)같이 생겼다 하여 바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바랑산(555.4m)은 논산시 양촌면과 벌곡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바랑산의 북서 사면은 식생으로 자라고 있지만 남동 사면은 응회암류의 기반암 절벽이 산정을 이루고 있다. 바랑산 산록은 30° 이상의 사면경사를 유지하여 곳곳에 기반암에서...
-
논산 출신의 소설가. 1905년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서 출생한 박노갑(朴魯甲)은 1928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이후 일본 호세이대학[法政大學] 법문학부에 입학하여 카프 계열의 무산자사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3년 대학을 졸업한 이후 귀국하여 신문사, 출판사, 잡지사 등의 기자를 지냈고, 1934년 단편 「안해」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사인이었던 박동래의 불망비. 사인 박동래가 백성에게 베풀었던 은혜를 기리고 오래도록 잊지 않기 위해 건립하였다. 논산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8.95㎞ 직진하다 보면 황화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봉곡서원이 나온다. 박동래 불망비는 봉곡서원 바깥 담장 아래에 서향하여 서 있다. 비석은 귀접이...
-
조선 중기 반남박씨 논산 입향조.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는 박동민(朴東民)과 아들은 사헌부집의를 지낸 박휘이고, 손자 박세기 3대를 제향하는 문중재실인 영사재(永思齋)가 있다. 또한 박동민의 아내인 전주이씨에게 내려진 정려가 있다. 본관은 반남(潘南). 할아버지는 사간을 지낸 박소이며, 아버지는 박응천이다. 형제로 박동현과 좌참찬을 지낸 박동선이 있으며, 아들은 사헌부집의...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열녀. 본관은 전주. 익안대군의 7대손이며, 아버지는 이눌(李訥, 1552~1631)이며, 남편은 영사재에 제향된 박동민(朴東民, 1566~1593)이다. 슬하에 3형제를 두었다. 박동민의 처 전주이씨는 노모께 효도를 하고 남편에 대한 내조에 최선을 다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주이씨는 남편과 함께 노모를 모시고 아들 3형제와 피난을 떠났다....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박동민의 처 전주이씨 정려. 열녀 박동민의 처 전주이씨(1556~1593)는 익안대군의 7세손으로 이눌(李訥)의 딸이고, 영사재에 제향된 박동민의 처이다. 전주이씨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남편과 함께 노모를 모시고 아들 3형제와 피난을 떠났다. 그러나 노성 대우리에 이르러 남편이 장질부사로 죽었고, 이씨는 남편을 따르기로 결...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말기 통훈대부참봉 박상규의 기념비. 1905년(고종 42) 4월 8일자 대한제국기 관보인 「궁정록사」에 의하면, 박상규는 개성 대흥산성 목청전 행궁 영건 때 활동한 인물로 기념비의 조성 시기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노성면 교촌리 궐리사 외삼문 서편으로 20m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다. 농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지붕돌[가첨석]을 올려놓았...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박상문의 정려. 박상문(朴尙文, 1615~1672)의 본관은 무안, 자는 욱재(郁哉)이다. 무안박씨로 할아버지는 박종원이고, 아버지는 박훈이며, 박증의 5대손이다. 박상문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났는데, 이와 관련하여 무겁교 일화가 전한다. 무겁교는 상월면에 있었던 다리인데,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단지(斷指)하여 피를...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언효(彦孝). 아버지는 박이현(朴而絢)이다. 박영서는 무과에 급제하여 옥구현감에 창성부사가 되었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선봉장이 되어 남이흥(南以興), 정충신(鄭忠信) 등과 난을 토벌하다 포로로 잡혔는데, 이괄의 회유에 굴하지 않아 사살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며, 사후에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62...
-
논산 출신의 시인. 1925년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서 출생한 박용래(朴龍來)는 향토색 짙은 서정적 시 세계로 충청도 지역의 시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시인이었다. 강고한 시적 자의식을 견지한 박용래는 1980년 11월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박용래는 중앙보통학교를 거쳐 1943년 당시 명문 학교였던 강경상업학교를 전교 수석으로 졸업하고 조선은행에 입사하여 은행원 생활을 하였...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용진은 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논산군 광석면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는데,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출동한 일본 경찰이 만세시위대를 총칼로 진압하기 시작하였고, 이때 박용진은 일본 경찰이 발포한 흉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1982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1991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천. 자는 여수(汝粹). 아들은 박영서이다. 박이현은 남명 조식과 덕계 오건에게 경학을 배웠으며, 창애서실을 지어 경전을 연구하고 성정을 도야하였다. 평소 충절의 의기가 높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 고경명과 함께 경상북도 성주와 전라북도 무주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적을 쫓아 대교평에 이르렀다가 치열한 전투 끝에 적에게...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왕전리 마두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박이현과 박영서 부자의 정려. 박이현·박영서 정려는 1689년(숙종 15) 명정을 받았다. 박이현의 본관은 순천이고, 자는 여수(汝粹)이며, 참봉 대영(大榮)의 아들이다. 남명 조식과 덕계 오건에게서 학문을 익혔다.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켜 김면(金沔)의 막하에서 동지들을 모아 고향에서 진을 치고 호남의 고경명 등과 연계...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박종원의 묘표. 박종원은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나 집안이 부유하여 재산을 백성을 구휼하는 데 사용하였다. 그는 비록 입신양명하지 않았으나 백성을 위해 자산을 썼기에 왕이 이를 귀히 여겨 관직을 내렸다. 이에 1672년(현종 13) 상월면 학당리에 묘표로 기록하여 남겨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논산에서 국도 23호선을 타...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무안박씨 논산 입향조 박증의 조선 전기 묘소. 박증(朴增)의 본관은 무안(務安)으로 자는 익지, 호는 암천(巖川)이다. 천성이 매우 청렴하고 강직하였으며, 사후 형조참의에 제수되었다. 본래 노성의 모곡서원에 배향되었으나 서원이 철폐된 뒤 묘소가 있는 당점산으로 서원을 이건하여 당호재라 하고 그곳에서 배향하고 있다. 1933년에 복원된부적면 충...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박증의 조선 중기 묘표. 박증의 자는 익지이고 호는 암천으로 본관은 무안이다. 천성이 매우 청렴하고 강직했으며, 사후에 형조참의를 제수받았다. 본래 노성의 모곡서원에 배향되었으나 서원이 철폐된 이후에 묘소가 있는 당점산의 당호재와 복원된 충곡서원에서 배향되고 있다. 박증 묘표는 박증이 죽은 지 150여 년이 지난 1670년(현종 11)에 건립되...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지형이 마치 소반같이 생겼다 하여 반곡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모촌면(茅村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당리(書堂里)·원북리(院北里)·갈전리(葛田里)·하명암리(下鳴暗里)·거사리(居士里)의 각 일부와 적사곡면(赤寺谷面)의 동상리(東床里) 일부와 내적면(內赤面)의 고정리(高正里) 일부를 병합하고 반곡리라 하...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기만의 개성을 계발하는 학생, 기본 능력을 갖춘 학생, 자기 일을 생각하는 학생,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학생,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7년 8월 10일 양촌초등학교 반곡간이학교로 설립되었으며, 1949년 9월 30일에 반곡초등학교로 승격되어 개교하였다. 2015년 2월 12일 제65회 졸...
-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동민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반남박씨는 박응주(朴應珠)를 시조로 한다. 박응주는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고려 고종 때 반남호장을 지냈으며 이후 후손들이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반남(현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을 본관으로 삼았다. 반남박씨는 고려 말 문정공 박상충으로부터 번영을 누리기 시작하여 박상충의 아들 평도공 박은(朴訔)은 조선조에 들어와...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반송(盤松)이 있으므로 반송골 또는 반송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부인처면(夫人處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정리(九井里)·평천리(平川里)·마구평리(馬九坪里)·동신리(東新里)·대동(垈洞)의 각 일부와 적사곡면(赤寺谷面) 구정리(龜亭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반송리라 하여 논산군 부적면에 편입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반바우가 있어서 반바우 또는 반암(半岩)이라 하였다. 본래 전라북도 전주군(全州郡) 양량소면(陽良所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물한리(勿汗里)·제비리(諸非里)·도정리(道井里)의 각 일부와 연산군 모촌면(茅村面)의 남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반암리라 하고 양촌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
-
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과 관촉동 사이에 있는 산. 반야(般若)는 불교용어로 대승 불교에서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고 불법을 꿰뚫는 지혜‘, ‘분별(分別)·망상(妄想)을 떠난 지혜(智慧)’를 뜻한다고 한다. 반야산은 논산천의 남쪽에 해당하며, 반상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릉성 산지이다. 관촉사 경내에는 화강암 절리를 살펴볼 수 있는 노두가 나타나고 있다. 산의 주변은 전체적...
-
충청남도 논산시 반야산 북쪽 독립된 구릉지에 위치한 시대 미상의 산성. 반야산성은 지산동과 관촉동에 걸쳐 있는데, 논산평야가 내려다보이고 시야가 넓게 펼쳐져 있어 산성이 위치하기에 적합한 지형을 갖추고 있다. 반야산성은 토성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전할 뿐 현재 토성의 흔적은 북벽 일부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논산시의 상수도 시설이 있어서 지형의 변화가 심하게 이루어졌으며...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반달처럼 생긴 산의 동쪽에 마을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동촌(東村)이라고도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화지산면(花枝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대리(場垈里)·종포리(淙浦里)·취암리(鷲岩里)의 각 일부와 성본면(城本面)의 마연(馬淵) 일부, 연산군(連山郡) 부인처면(夫人處面)의 둔전평(屯田坪) 일부를 병합하여 반월리(半...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경계에 있는 고개. 산길이 험하여 옛날에는 혼자서 이 산길을 넘어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길이 좁고 험하여 낮에도 밤과 같이 어둠침침하다 하여 밤아니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고개 남동쪽의 지질은 고생대 오도비스기에서 캠브리아기 사이에 형성된 옥천군창리층에 해당하며, 주로 흑색점판암·석영·견운모편암및 흑운모편암으로 이루...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방죽이 있어서 방죽말이라 하였다. 예부터 은진면의 명당자리가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어서, 우리나라의 피난지를 말하려면 방축리의 조곡이 꼽힐 정도였다고 한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대조곡면(大鳥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암리(場岩里)·토현리(兎峴里) 일부와 성본면(城本面)의 남산리(南山里) 일부를 병합하고 방...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동산리와 은진면 시묘리에서 발원하여 채운면 화산리에서 논산천에 합류하는 하천. 방축천은 연무읍 동산리 담배산(87.6m)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는 한 지류와 은진면 시묘리에서 발원하여 북서류하는 또 하나의 지류 등 두 줄기의 상류가 연무읍 북동부일대에 곡저 충적지를 형성한 뒤, 은진면 새터 근처에서 합류가 되어 연속해서 은진면 남부 및 채운면 동부일대의 침식평탄...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방한민은 1920년 『조선일보』 창간을 주도했으며, 편집 및 사회부 기자로 재직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일제의 잔학성을 폭로 규탄하는 「골수에 맺힌 조선인의 한(恨)」이란 배일(排日) 연재 기사를 게재하였다. 일제의 간섭과 압력으로 조선일보에서 해고를 당하고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정창선(鄭昌先) 등과 함께...
-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배성철의 정려. 배성철은 어느 한겨울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독하자 집 뒤에 단을 쌓고 어머니 대신 죽기를 기원하였으며, 꽁꽁 언 냇물에서 잉어를 구해다 드리고 단지(斷指)하여 피를 내어 들게 하는 효를 행하여 결국 소생시켰다. 어머니가 천수를 다해 돌아가셨을 때는 3년 동안 과일, 고기, 냄새나는 음식, 술 등을 멀리하고 흰 소금만으로...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남식은 1919년 8월 조병채(趙炳彩), 김영진(金瑛鎭), 윤태병(尹太炳), 윤상기(尹相起) 등과 중국 길림에서 활동 중이던 북로군정서를 도와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 대한건국단을 조직하였다. 대한건국단은 일경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단원들이 함께 모여 다니지 않고 서...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열녀. 본관은 은진(恩津). 아버지는 송치덕이다. 은진송씨는 16세에 백상준에게 출가하였다. 남편이 갑자기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자 남편의 병을 정성스럽게 보살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마친 후 10여 일간 곡기를 끊어서 자결하였다. 묘소는 논산시 가야곡면 병암리에 있다. 1812년(순조 12) 열부 정려가 내려져 논산시 가야곡면 병암리 매오리마...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병암1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상준의 처 은진송씨 정려. 열부 은진송씨는 송치덕(宋致德)의 딸이고, 수원 백상준의 부인이다. 천성이 유순하고 효성이 깊었는데, 16세에 출가하여 1년도 못 되어서 남편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송씨 부인은 정성을 다해 치료하고 시부모님 또한 극진히 봉양하니, 남편의 병도 좀 나아졌다. 남편의 병이 어느 정...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부터 마을 안에 흰돌이 많아서 흰돌, 흔돌 또는 백석이라 불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지역으로 백석면이 되어 덕암리(德岩里)·당곡리(棠谷里)·상암리(上岩里)·상표리(上表里)·중표리·하표리·신표리(新表里)·신범리(新凡里)·고양리(高陽里)·행정리(杏亭里)·도구리(道龜里)·덕산리(德山里)·용산리(龍山里) 등의 3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룬 개성 있는 학생, 기초와 기본을 토대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학생, 학습 경험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학생, 전통문화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학생, 이웃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바르게 새롭게 씩씩하게’이다. 1934년 3월 31일에 연산공립보통학교...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관 이삼의 영정을 모신 사당. 이삼(李森, 1677~1735)의 본관은 함평이며, 윤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힘과 담력이 뛰어나 병조판서 김구의 권고로 무예를 연마, 숙종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정주목사를 거쳐 함경남도병마절도사를 지내면서 군제 개혁에 관심을 기울였고, 경종 때 소론으로서 우포도대장, 총융사, 어영대장을 역임하였으...
-
삼국시대 백제 관할의 논산 지역의 역사. 백제(百濟)는 고구려·신라와 함께 한국 역사에서 삼국시대라는 각축전을 전개한 고대국가의 하나로 부여 계통의 여러 이주민 세력이 한강 유역의 선주민과 결합하고 마한의 여러 소국들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온조왕을 시조로 하여 B.C. 18년 현재의 한강 하류인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475년 고구려의 침략으로 인해 한성(서울)에...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개된 백제부흥운동. 백제부흥운동은 백제 멸망 이후 4년간에 걸쳐 백제의 왕족, 유신(遺臣), 유민들이 주류성과 임존성을 거점으로 백제를 다시 일으키려 한 운동으로 당시 논산 지역에서는 이들에 호응하여 덕안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660년(의자왕 20) 나당연합군이 수도인 사비성(泗沘城, 지금의 부여)을 공격하자 의자왕과 태자를 비롯한 왕족들이 웅진성(熊津...
-
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있는 종합병원. 백제종합병원은 환자 중심 병원, 친절한 병원, 쾌적한 병원을 경영 모토로 우수한 의료진과 최신 의료장비를 갖춘 양질의 병원이다. 첨단 진료를 위한 노력, 사회봉사를 통한 의술실현, 친절병원 정착으로 환자 만족 실현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백제종합병원은 1980년 4월 14일에 의료법인으로 설립허가를 받고, 1982년 5월 4일 46실 219병...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상(李常)의 영정을 모신 사당. 백파(白波) 이상(李常)은 태조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益安大君) 이방의(李芳毅)의 손자이다. 이상의 아들인 이현동(李賢童)은 세조가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벌곡면 조령리에 낙향한 후 정착하였고, 조선후기에 그 후손들이 백파 이상 영당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벌곡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호남고속도로...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강경포구에서 조업 배가 나갈 때 안전을 위해 지내던 고사. 뱃고사는 선주와 뱃동사가 주축이 되어 치러지는데, 이들이 뱃일을 공동으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포구 일대에서 활동하는 객주들이 선주들에게서 좋은 물건을 떼기 위하여 뱃고사에 쓸 제물비를 대주기도 하였다. 뱃고사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뱃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전의 기원이다. 과거에는 금강에...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나는 바다빙어목 뱅어과에 속하는 물고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백어(白魚),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빙어(氷魚)로 기록되어 있다. 죽으면 몸 빛깔이 하얗게 변한다 하여 백어(白魚)라 하였다. 예부터 우리말로는 뱅어라고 불렀고, 어린 뱅어는 실 가닥처럼 생겨서 실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몸이 전체적으...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면. 연산 동쪽에 있어서 동면이라 하다가, 대둔산 줄기가 뻗어내려 큰 골짜기를 이룬다고 하여 벌실·버실·벌곡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동면으로, 1895년(고종 32)에 벌실면 또는 벌곡면이라고 하여 검천(檢川)·주티[舟峙]·축동(杻洞)·오작동(五作洞)·도산(道山)·장고티[長古峙]·신촌(新村)·덕곡(德谷)·중벌곡(中伐谷)·상사암(相思岩)·상벌곡...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 고개의 형태가 마치 범의 허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범허리재라고 부른다. 범허리재는 고생대 오도비스기에서 캠브리아기 사이에 형성된 옥천층군문주리층을 기반암으로 흑운모편암과 견운모편암을 주로 하고 있는 고개이다. 논산시의 산지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주변은 대체로 산지로 둘러싸여 평야는 찾기 힘들다. 북쪽 가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병사리에는 파평윤씨 노종파(魯宗派)들의 묘소가 많이 있다. 이 묘소를 지키는 묘막을 병사라고 하는데, 묘막이 있는 동네라고 하여 병사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장구면(長久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접지산리(接枝山里), 내촌리(內村里)·유봉리(酉峯里)·대병리(大丙里)·소병리(小丙里)를 병합하고 병사리라...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병풍처럼 생긴 병풍바위가 있어서 병암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갈마면(葛麻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매오리(梅梧里)·신촌리(新村里) 일부 가야곡면 조정리(釣亭里) 일부, 연산군(連山郡) 적사곡면(赤寺谷面)의 동상리(東床里) 일부, 모촌면(茅村面) 거사리(居士里)·신흥리(新興里)·신계리(新溪...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지형이 마치 병 모양과 같이 생겨 병골 또는 병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석성군(石城郡)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중리(小中里)·원궁리(元宮里)·대중리(大中里)·개척리(盖尺里)의 각 일부와 삼산면(三山面) 대장리(大長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병촌리라 하여 성동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에 설립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교회. 병촌교회는 성동면 개척리에서 1938년 5월 7일 이계섭 목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1943년 12월 일제의 탄압으로 해산되었다가 광복과 더불어 교회를 재건한 뒤 1948년 6월 15일 새 예배당을 건립했다. 6·25전쟁 때 공산군들이 도주에 앞서 병촌교회 신도 16세대 66명을 한꺼번에 흙구덩이를...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한전리에 있는 정신장애자를 위한 종합 복지 시설. 보람의집은 정신장애인에게 재활직업훈련 및 각종 프로그램을 통하여 정신장애기능 회복과 질병관리능력을 향상시키고, 기능적 기술훈련을 쌓아 외부에 취업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6년 5월 1일 법인 설립 인가를 받고, 1987년 4월 21일 요양시설 설치허가를 획득하였다. 1999년 7월 2...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정초에 복을 받기 위해 엿을 먹었던 세시풍속. 복엿먹기는 엿이 끈끈하면서 죽죽 잘 늘어나므로 것처럼 복이 달라붙고 늘어나라는 의미에서 행해지던 세시풍속이었다. 지금은 엿을 직접 고지도 않고 먹지도 않아 소멸되었지만, 복엿먹기가 정월의 시작 시점을 이용한 의례로 과거에는 논산 지역 어느 집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풍속이었다. 과거 논산 지역에서는 음력 섣달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사원. 봉곡서원은 이계맹(李繼孟), 이순인(李純仁), 남명한(南溟瀚), 진극효(陳克孝), 남두건(南斗建)을 제향한 곳으로, 우암 송시열과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의 발의로 창건되었다. 논산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48㎞를 가면 논산시 연무읍이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약 2.94㎞를 가다 보면...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이 마을에 공촌부곡(公村部曲)이 있어서 공골 또는 공촌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변하여 뷩골 또는 봉동이라 하였다. 본래 전라북도 여산군(礪山郡) 공촌면(公村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봉리(上鳳里)·하봉리(下鳳里)·칠전리(七田里)·두화리(杜花里)·장항리(獐項里)의 각 일부와 북산면(北山面)의 교항리(橋項里)·포변리(...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조선시대 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소식을 전하던 통신 수단. 봉수는 군사적 목적에 의해 설치한 통신 수단으로 변방의 다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되었다.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봉수대를 두어,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써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3개, 적이 국경을 침범하면 4개, 전투...
-
서융을 시조로 하고 서정수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부여서씨는 의자왕의 아들 서융(徐隆, 부여융이라고도 함)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서융은 660년(의자왕 22)에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패하여 멸망한 뒤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에 끌려갔다. 당나라 고종은 서융에게 서씨의 성을 하사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전한다. 이후 세계(世系)는 알 수 없으나, 서융의 원손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부여서씨의 열녀비. 부여서씨는 서옥훈(徐鋈勳)의 딸로, 소진철(蘇鎭喆)의 부인이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어질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남달라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하였다. 13세에 소진철과 결혼한 후 시부모를 잘 모시고 남편을 지극히 공경하니 효부라고 칭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는데, 좋다는 약은 다 구하여 정...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 있는 부여서씨의 재실. 부여서씨 재실은 가야곡면 삼전리에 주로 세거하고 있는 부여서씨 종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건축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재실 아래쪽 영모재(永慕齋)가 1967년에 건립되었고, 숭효재는 이보다 앞서 건립되었다는 사실로 그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가야곡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2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500m 정도 가서...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과 황산벌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꿈을 꾸었는데 여기에 사는 무당에게 해몽을 듣고 후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그 무당에게 부인이라는 칭호를 주고 부인당을 지어 주었다. 부인당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부인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지역으로, 부인당이 있었으므로 부인처면(夫人處...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면. 부인당(夫人堂)의 이름을 따서 부인처 또는 부인처면(夫人處面)이라 하다가 부인처면과 적사곡(赤寺谷)에서 ‘부’ 자와 ‘적’ 자 각 한 글자씩 따서 부적면이 되었다. 본래 연산군 지역으로 부인처 또는 부인처면이 되어 신전(薪田)·마구평(馬九坪)·아호(阿湖)·평천(平川)·구정(九井)·반송(盤松)·동신(東新)·대동(垈洞)·신기(新基)·계전(桂田) 등 2...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본래 석성군(石城郡) 삼산면(三山面) 화정리(花亭里)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논산군 성동면(城東面)에 속하였다가, 1938년 10월 10일 논산면이 논산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대화정(大和町)이 되었다. 1947년 창말의 이름을 따서 부창동으로 개칭되었고, 1988년 8월 부창리라 하였다가 1996년 3월 논산군이 시로...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부엉산이 있다 하여 부엉이 또는 부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외성면(外城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외리(新外里)·서당동(書堂洞)·다오개리(多五介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부황리라 하여 부적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부적면 부황리가 되었다. 부황리의...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부황리에 있는 호남선의 무인 간이역. 부황역은 호남선 상에서 연산역과 논산역을 잇는 간이역으로 건립되었다. 1955년 8월 21일 연산역의 관리를 받는 배치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70년 9월 보통역으로 승격하였으나, 1991년 9월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 1993년 3월 역무원이 없는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어 이후 역사가 철거되었다. 2006년...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북정(北町)이라 하였다가 1947년 북정과 옥녀봉(玉女峰)의 이름을 따서 북옥동(北玉洞)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은진군 김포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창전리(倉前里), 서촌리(西村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강경 북쪽에 있어서 북정이라 하고 강경면에 편입하였다. 1931년 강경면이 강경읍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활동하는 종교. 논산 지역은 백제의 옛 수도인 공주, 부여와 인접하고 있어서 삼국시대부터 불교가 널리 신앙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찰의 건립 기록은 고려시대 때이다. 고려의 태조 왕건은 삼국통일을 완성한 936년(태조 19)에 개태사를 설립하여 호국도량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논산 지역에 불교가 성행하였으나 조선 중기 이...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불교 관련 문화유산. 논산 지역의 주요 불교유적으로는 개태사와 그 경내에 있는 개태사 삼존석불입상, 개태사 오층석탑, 개태사지 석조(石槽), 개태사 철확(鐵鑊) 등이 있다. 그리고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있다. 개태사의 옛터로 현 개태사의 북쪽 약 2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의 절터인 동북쪽에는 건물 자리와 주춧돌, 석조, 불대좌(佛...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양촌리 탑안이마을에서 음력 정월 초3일 낮에 화재를 막기 위해 지내는 의례. 양촌1리 탑안이마을에서는 산신제와 천륭제를 지내기에 앞서 속칭 ‘불맥이(불막이)’를 한다. 이는 화산으로 지목된 앞산 상봉에 간수를 담은 작은 단지를 묻고 불을 놓는 의례를 일컫는다. 이러한 불맥이의 관행은 탑안이마을 외에도 양촌면 신기리·양촌리 등에서 전승되는 독특한 화재막이 의식...
-
충청남도 논산시 불암산에 있는 시대 미상의 산성. 강경읍의 북쪽으로 금강의 지류인 논산천(論山川)이 동에서 서로 흘러 금강에 유입된다. 논산천을 건너 금강 본류를 타고 북쪽으로 2㎞ 정도 올라가면 해발 60m의 나지막한 독립 구릉인 불암산이 나타난다. 불암산성은 불암산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불암산성은 산 정상부의 능선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길게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성벽은 동벽...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야촌리에 있는 (주)빙그레의 유제품 생산 공장. 빙그레는 1960년대 후반 경제 개발이 한창이던 때 우유와 아이스크림 중심의 유가공 전문업체로 출발하여 현재는 아이스크림, 유제품, 스낵을 주로 생산하는 종합식품회사로 투게더, 바나나맛우유와 같은 대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하며, 식품연구소 1개소가 있고, 생산 공장은 도...
-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조상의 위패·영정을 모셔 두고 제향을 행하는 장소. 사당이란 조상의 위패나 영정을 배향하고 매년 기일에 제사를 올리는 건조물을 말한다. 특히 이름난 학자나 충신 등의 공적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건립된 사당을 향현사(鄕賢祠)라고 한다. 조선 태종 때에는 고려 이후의 명신을 예조에서 명단을 작성해서 각각 연고지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도록 권장하였다. 그러...
-
충청남도 논산을 중심으로 한 조선시대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유학자와 선비 세력에 대한 호칭.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사림(士林)이란 고려시대에 유학자 또는 유학을 닦은 관료로 유사(儒士), 유신(儒臣) 등으로 불렸으며, 말기에 신유학이 들어오면서 사대부·사인·사류(士類)·사족(士族) 등의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사...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이루어지는 법에 의한 민사 및 형사 사건의 재판과 그에 관련되는 국가 작용. 일반적으로 사법은 입법, 행정과 함께 국가 통치 작용의 하나이다. 개인 상호간 또는 국가와 개인 간의 법률관계에 관한 쟁의로 소송이 제기될 경우 무엇이 적법인가를 선언하는 행위로서 그 범위는 국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사법 제도는 좁은 의미로 재판 제도를 의미하나, 넓은 의미로는 검찰...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기름진 전답이 많아 논밭에는 곡식들이 풍성하였는데, 새들이 곡식을 먹기 위해 많이 모여들어 서식했다 하여 새들 또는 새롤이라 하였고, 모래가 많은 지역이므로 사동(沙洞)이라고도 하였다. 노성군 득윤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읍내면 송아리 일부를 병합하여 사월리라 하고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하였다. 같은 해 6월 1일 광석면...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모래가 있는 큰 냇가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사정 또는 사정리라 하였다. 연산군 벌곡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원두문리, 척고목리, 인정리를 병합하여 사정리라 하고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벌곡면 사정리가 되었다. 사정1리, 사정2리의 2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중...
-
조선시대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던 토신과 곡신에게 제사 지내던 제단. 사직단은 원래 임금이 사직신(社稷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는 사직단이 모두 설치 되어있었는데, 논산 지역에서는 은진현ㆍ연산현ㆍ노성(니산)현에 사직단이 설치되어 있었고 매년 수령이 임금을 대신하여 제사를 지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관찬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사진과 관련된 역사와 현황. 사진은 빛을 매체로 하여 물체의 상을 감광성 기록 재료 위에 기록하는 방법 또는 그 방법으로 얻은 화상을 말한다. 즉 가시광선·자외선·적외선·감마선·전자선 등의 작용을 이용하여 감광층(感光層) 위에 물체의 반영구적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사진은 빛으로 그린다는 의미의 라틴어로서 카메라를 이용하여 사물을 기...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불상을 모셔 놓고 불교 신행을 행하는 장소. 사찰은 본래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우기를 피해 한 곳에 모여 생활 하는 일조의 공동 주거지였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종교 의례를 행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변모하였으며 절, 사원(寺院), 정사(精舍), 가람(伽藍)이라고도 한다. 사찰은 규모에 따라 사(寺)와 암(庵)으로 대별된다. 사(寺)는 여러 대중...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살포재 밑에 있다고 하여 살표재 또는 사포라 불렸다. 연산군 백석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귀암리·신정리·송산리·신소리·평촌·구정리의 각 일부와 외성면 소원리·개정리, 노성군 하도면 숙진동 일부를 각각 병합하여 사포리라 하고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연산면 사포리가 되...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사회 복지 사업을 행할 목적으로 설치된 시설. 사회복지시설은 넓은 의미로 사회복지관, 아동보육시설, 요양시설, 장애인복지시설 등 전문 사회복지 사업을 수행하는 장소뿐만 아니라 각종 복지 활동의 연락, 협의, 조직 등 광범위한 모든 제도와 활동을 총칭한다. 좁은 의미로는 요보호 대상자가 일정한 주거 시설 내에서 생활하도록 하여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을 사...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분포하는 주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논산시는 전형적인 동고서저의 지형적 특색을 지닌 곳이다. 서쪽인 금강 본류 쪽으로 트인 저위평탄면 형태로, 동쪽과 남쪽에 해발고도 200m 이상의 산지가 분포한다. 즉 동북부에서 동남부에 이르는 일대는 계룡산(鷄龍山, 845m)·대둔산(大芚山, 878.9m)과 접하고, 이들 산지에 인접한 지역에는 해발고도 50m...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선비들이 많이 은거하였던 고을로, 선비들이 늙어서 산에 묻혀 산다 하여 산노리라 하였다. 은진군 갈마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산정리, 금보리, 원촌리, 세동리, 신촌리의 각 일부와 가야곡면 조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산노리라 하고 가야곡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가...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동쪽에 산이 있어 마을 이름을 산동리(山東里)라 하였다. 노성군 광석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논산리·입석리 각 일부와 은진군 화지산면 반월리 일부, 연산군 부인처면 창리 일부를 병합하여 산동리라 하고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광석면 산동리가 되었다. 입석천과...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와 계룡시 엄사면 도곡리 경계에 있는 고개. 산명재는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진 고개로서, 계룡산 남쪽 능선에 해당하는 향적산(574m) 남쪽에 위치해 있는 고개이다. 남쪽으로 윗산명재와 아랫산명재가 있다. 높이는 390m이며, 산명재의 서북쪽 사면에는 계룡산 남부 능선에서 발원한 주천과 세천, 대촌천 등의 지류들이 합류하여 대명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산명...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논산 노성산성(魯城山成)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산성골이라 하였다. 노성군 월오면(月午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원동(院洞), 주막리(酒幕里), 학당리(鶴塘里) 각 일부와 읍내면(邑內面) 천재동(天才洞) 일부를 병합하여 산성리라 하고 논산군 상월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상월...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이나 시월 상달에 산신을 모시고 드리는 마을 제사. 산신제는 산악 숭배의 전통을 잇는 대표적인 마을 신앙의 하나이다. 건국신화에 녹아 있는 천신강림(天神降臨)의 우주관이나 고대의 제천의례(祭天儀禮)에서 잘 드러나듯이 산신 신앙은 천신 숭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신라의 삼산오악(三山五嶽)이나 백제의 삼산신앙(三山信仰), 그리고 고구려의 산천제(...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황산(黃山)과 양촌(陽村)의 이름을 따서 산양리(山陽里)라 하였다. 은진군 김포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삼거리(三巨里)·상강리(上江里)의 각 일부와 채운면 양촌리(陽村里)·성서리(城西里)·중내리(中內里)·신기리(新基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산양리라 하고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하였다. 193...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마을에 산직(山直, 산지기) 집이 있어서 산직말이라 하였다. 연산군 모촌면(茅村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상웅티리, 장동(壯洞)을 병합하여 산직리라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가 되었다. 산직1리, 산직2리의 2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세 갈래의 큰길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삼거리라 하였다. 은진군 김포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상강면 일부와 채운면 평촌리, 도곡면 직촌·신촌리, 화산면 하리를 병합하여 삼거리라 하고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가 되었다. 삼거1리, 삼거2리, 삼거...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초복·중복·말복의 세 절기에 행하는 세시풍속. 삼복(三伏)은 하지를 기점으로 하여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 넷째 경일(庚日)을 중복(中伏), 입추(立秋) 후 첫째 경일(庚日)을 말복(末伏)이라 한다. 삼복은 10일 간격으로 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삼복은 일 년 중 가장 더운 20여 일 사이에 들어 있으며, 그 사이를 복중(伏中)이라 하여 더위를 피하...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산이 세 개 있어 삼산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소하리와 대하리 일부를 병합하여 삼산리라 하고 성동면에 편입하였으며,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성동면 삼산리가 되었다. 삼산1리, 삼산2리의 2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전 지역이 해발 고도 20여m 안팎의 낮고 평평한 평야 지대로, 남부는...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아이의 점지와 출산, 수명과 질병 등을 관장하는 가신. 삼신은 “없는 아기 태워주고 있는 아기 길러준다”는 말처럼 생명의 잉태와 육아를 주관하는 신령으로 삼신할매라고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삼신은 흰색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흰머리를 한 인자한 할머니 모습의 여신으로 상징된다. 삼신을 모시는 장소는 안방 윗목의 모서리로서 논산 지역에서는 흔히 ‘삼신께’라는 표...
-
1919년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발생한 독립만세 시위 운동. 논산 지역에서의 3·1운동은 3월 10일부터 4월 4일까지 일어났다. 이 시기에는 크고 작은 만세 시위가 빈발하였으나 큰 시위는 네 차례에 걸쳐 발생하였다. 처음 발생한 시위 운동은 3월 10일 강경 옥녀봉에서 엄창섭·강금옥·추병갑·곽성진·석광열·박금봉·정기섭·한규섭·고상준 등 50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한 만세 시위 운...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은진군 하두면에 속했던 곳으로 삼박골 또는 삼백리라고도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암리, 은평리, 안기리, 육한리, 입점리를 병합하여 삼전리라 하고 구자곡면에 편입하였다. 1962년 11월 21일 법령 제1176호에 의하여 가야곡면에 편입하였으며,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가 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농산물이나 흙, 자갈 등을 옮길 때 사용하는 농기구. 1970년대 이전에는 나무 테에 볏짚으로 만든 삼태기를 썼지만 만들기도 까다롭고 품이 많이 들었다. 최근에는 자동차 폐타이어를 얇게 떼어내 굵은 철사 테에 대고 꿰매는 형식으로 만든 삼태기를 철물점이나 농기구 상회에서 판매하고 있다. 삼태기는 커다란 쓰레받기와 비슷한데, 직육면체의 양철통을 대각선으로 잘라...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삼호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삼호감리교회는 일제강점기에 기도처로 시작하여 해방 이후 설립된 교회이다. 기독교 복음 전파를 통한 지역민의 심신 안정을 위해 설립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강경황산교회의 삼호리 기도처로 처음 시작되었다. 그리고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에 일제가 남긴 소위 ‘적산’을 인수하면서 삼호교회를 설립하여 현재에 이...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장호의 이름을 따서 삼호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오산리 외 7개 지역의 일부를 병합하여 삼호리라 하였다. 1988년 2월 17일 현재의 단일 행정리로 재조정되었으며,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성동면 삼호리가 되었다. 삼호리는 곡창 지역으로 산지는 거의 없고 전 지역이...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성천(魯城川)을 따라 내려오는 큰길을 위아래로 나누어 위쪽을 상도(上道)라 하고, 아래쪽을 하도(下道)라 하였다. 노성군 상도면(上道面) 지역으로 후동(後洞)·대명동(大明洞)·대우(大牛)·소우(小牛)·잔산(棧山)·신평(新坪)·궁동(弓洞)·촌산(村山)·반곡(反谷)·무동(舞洞)·와야(瓦也)·석전(石田)·만화(萬化)·지경(地境)·산직(山直)의...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면. 본래 노성군(魯城郡) 월오면(月午面), 상도면(上道面), 하도면(下道面) 지역으로, 월오면은 산성(山城)·원동(院洞)·주막(酒幕)·학당(鶴塘)·통산(通山)·중리(中里)·낙동(樂洞)·신리(新里)·충보(忠洑)·당산(堂山)·산소(山所)·왕정(旺井)의 12개리를 관할하였고, 상도면(上道面)은 무등리(無等里)·가척리(加尺里)·대야동리(大野洞里)·대명동리(...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와 계룡시 두마면 입암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 논산시 벌곡면과 계룡시 두마면 경계의 고개에는 많은 새들이 모여들어 서식하고 있고, 새를 닮은 산봉우리들이 많아서 새재 또는 조령(鳥嶺)이라 부른다고 한다. 새재는 중생대 쥐라기에 형성된 흑운모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고개이다. 주변은 대체로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현저한 평야는 보이지 않으나, 새재가 위치해 있는...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영원은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9년 12월에 같은 학교 학생인 김상흠, 이동원, 김영하, 민영로 등과 함께 윤주연의 집에 모여 항일결사단체인 조선학생동지회(朝鮮學生同志會)를 조직하였다. 조선학생동지회는 독립투쟁을 3·1운동과 같은 방법으로 거행하기로 하고, 1942년 3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그러면서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키기...
-
조선 중기 이후 유학 연구와 선현 제향을 위하여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 논산 지역의 서원은 인구와 면적에 비해서 사원의 수와 위상 면에서 특기할 만하다. 논산 지역의 서원은 주로 인조·숙종 연간에 건립되었는데 현재 사액 서원과 비사액 서원을 합쳐 10여 곳에 이른다. 사액 서원으로는 죽림 서원, 돈암 서원, 노강 서원이 있으며, 이들 서원은 당시 호서 지역을 대표하는 서원으로서...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부여(夫餘).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萬竹)·만죽헌(萬竹軒). 아버지는 서진남(徐震男)이고, 어머니는 직제학 이약해(李若海)의 딸로서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서익은 1554년(명종 9) 13세 때에 향시에 장원하고 1564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병조좌랑, 이조좌랑, 교리, 사인을 역...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서익의 묘갈. 1672년(현종 13) 서익의 묘소 앞에 세워져 있는 묘갈로 서익의 행적이나 업적, 관직 등 서익 개인에 관련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그의 후손들에 대해 자세하게 적고 있다. 육곡리에 위치한 가야곡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2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500m 정도 가서 다시 남쪽으로 향하는 지방도 643호선을 따라...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서익의 묘소. 서익의 본관은 부여(扶餘)로, 1554년(명종 9) 13세 때에 향시에 장원하고, 1564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좌랑과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서천군수, 안동부사, 의주목사 등을 지냈다. 문장과 도덕, 기절(氣節)이 뛰어나 이이(李珥)·정철(鄭澈)로부...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행림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 서익(徐益, 1542~1587)의 묘정비. 서익의 묘정비는 서익선생의 인품과 학문적 소양을 높이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1867년(고종 4)에 건립되었다. 가야곡면 육곡리 덕은골은 부여서씨의 집성촌이다. 덕은골은 백제 때 은진현 바깥을 다스리는 큰 고을이었는데, 부여서씨의 경우 이때부터 궁중을 드나드는 권위 있는 성씨였...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강경 서쪽에 있다는 의미의 서촌(西村)이라 하였다가 1947년 일본식 명칭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서촌과 창전리(倉前里)의 이름을 따서 서창동(西倉洞)이라 하였다. 은진군 김포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병부리, 산정리(山亭里), 석교리(石橋里), 강변리(江邊里), 창전리, 상원촌(上原村)을 병합하여 서촌이라 하고 논산군 강경...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서필원의 인정비. 서필원 인정비는 서필원이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한 후 다시 대사성이 되어 전라도를 떠나자 지역 백성들이 건립한 것이다. 서필원의 공적을 살펴보면, 1659년(효종 10) 전국적으로 흉년이 들었을 때 자신의 봉록을 내어 백성을 구휼하고, 소 전염병이 돌아 경작이 어려울 때에는 다른 도로부터 소를 얻어 나누어 주었다고 한...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석천(石川)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석서(石西)라 하였다. 은진군 갈마면(葛痲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하석리(下石里), 신촌리(莘村里), 고촌리(高村里), 오령리(梧嶺里) 일부를 병합하여 석서리라 하고 논산군 가야곡면에 편입하였다. 1971년 7월 1일 논산군 양촌면 석서리가 되었고,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득윤리에서 시작하여 성동면 우곤리에서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 2010년 말 현재 석성천은 지방1급하천으로 본류는 금강이다. 유로 연장은 20.94㎞이고, 유역 면적은 145.78㎢이다. 우교천은 공주시 이인면 성정산에서 발원하여 공주시 탄천면과 논산시 노성면 사이의 경계를 이루며 남류하다가 광석면 중리에서 석성천과 합류한다. 하관천은 공주시 탄천면에서 발원하...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돌이 많아서 돌마루 또는 석종(石宗)이라 하였다. 노성군 상도면(上道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석전리(石田里), 대명동(大明洞) 각 일부와 공주군 익구곡면(益口谷面) 양화리(陽化里) 일부와 가척리(加尺里)를 병합하여 석종리라 하고 논산군 상월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상월...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선거권을 가진 지역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선거는 ‘일정한 조직이나 집단에 있어서 특정의 지위에 취임할 사람을 그 조직이나 집단 구성원들이 집합적인 의사표시를 통하여 선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수인이 일정한 직에 취임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는 반드시 국가 기관의 선임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초기 철기시대로 구분된다. 이는 덴마크의 톰센(C. J. Thomsen)이 제안한 3시대 체계[Three age system]에 따라 인류가 생산한 유물에 따라 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의 3대 시기로 구분한 것에 기초한 것이다.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2...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준영의 사우. 김준영(金俊榮)은 본관이 금령이고, 호는 동악(東岳)이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자 어가를 모시고 호종하여 그 공으로 충근정희호성이등공신이 되었고, 분성군·김해군에 훈봉되었으며, 정일품대광보국숭록대부에 올랐다. 시호는 충정이다. 선충사 뒤 야산에 김준영 묘소가 있다. 은진면소재지인 교촌리 삼거리 남...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으로 새해의 첫날인 정월 초하룻날에 지내는 명절. 논산 지역에서 설은 흔히 ‘구정(舊正)’ 또는 ‘설날’이라고 한다. 새해를 시작하는 날이므로 추석과 함께 최고의 명절로 친다. 논산 지역에서는 경기도와 달리 떡국에 만두를 넣지 않으며, 이월에 나이떡도 쪄먹지 않는다. 명재 윤증의 후예가 살고 있는 노성면의 교촌리, 사계 김장생의 14세손 종손이 거주하는...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옛날부터 구비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 설화는 신화와 전설, 민담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지역성이 제대로 드러나는 설화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전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증거물을 갖추어야 한다. 이 증거물은 바위나 암석·수목·성곽·인물 등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대상은 반드시 특정 지역에 위치하거나 연고를 두게 된다. 신화...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율리에 있는 한센병 환자를 위한 요양 시설. 1956년 논산본당(현 부창동성당)의 성재덕 신부가 강경 지역에서 정착지를 얻지 못한 채 떠돌고 있던 음성 상태의 한센병 환자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치료하는 등 구호 사업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논산본당 천주교 신자들의 주도로 나환자들을 위한 본격적인 구호 시설로 성광원이 건립되었다. 1957년 12월...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병촌리에 있었던 공립 초등학교. 첫째, 자신감과 희망을 가지고 원대한 포부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다.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아가는 사람은 쉽게 좌절하지 않으며 언젠가는 승리한다는 목표이다. 둘째, 언제 어디서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다. 감사한 마음은 문화시민이 가지는 가장 큰 성품 중의 하나이며, 감...
-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천주교의 종교 의식이 행해지는 회당. 성당(聖堂)은 본래 그리스도교 중 로마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의 신자들이 모여 예배를 하는 교회를 범칭 하는 말이나 주로 로마 가톨릭 교회를 지칭하는 말로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는 주요 성당으로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으로 논산부창동성당, 강경성당, 연무성당, 논산내동성당, 논산대교동성당...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안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며 살아오던 마을이라 하여 성덕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은진군 가야곡면(可也谷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성겁들 일부와 송산면(松山面) 와야리(瓦也里) 일부, 연산군(連山郡) 적사곡면(赤寺谷面) 중하성리(中下城里) 일부를 병합하여 성덕리라 하고 논산군 가야곡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행정구역...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성덕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스스로 공부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학생, 예절을 알고 실천하며 질서를 지키는 도덕적인 학생, 향토를 사랑하고 사회발전에 기여하며 애국하는 학생, 체력을 단련하고 환경을 가꾸는 위생적인 학생의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57년 7월 30일 은진국민학교 성덕분교장으로 설립되었다. 1959년 12월 31일 성덕국민학교...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금성산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성동이라고 하였다. 본래 석성군(石城郡) 원북면(院北面) 지역으로, 하동(下東)·하서(下西)·중리(中里)·소죽(小竹)·악산(岳山)·장상(壯上)·양상(陽上)·갈산(葛山)·음상(陰上)·도리(島里)·동상(東上)·서상(西上)·송촌(松村)의 1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병촌면(甁村面)의 불암(佛岩)...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성삼문의 묘비. 매죽헌(梅竹軒) 성삼문(1418~1456)은 1435년(단종 1)에 생원 급제하였고, 1438년 대과에 급제하여 세종, 문종, 단종을 내리 섬기고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다. 단종이 복위 운동을 전개하다가 세조에 의해 처형을 당하였는데, 지금의 노량진역 부근에서 다리를 꿰뚫고 사지를 찢는 처형을 받았다. 이런 성삼문의...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성삼문을 제향하는 사당. 사육신으로 잘 알려진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은 본관이 창녕이고,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다. 논산에 묘소와 별업(별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성삼문은 숙종 때 충절인만 모아 제향한 인근 부적면 충곡리 충곡서원에도 제향된 바 있다. 성삼문 사당은 1991년에 창녕성씨 대전·충남지구 종친회에서...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성삼문의 유허비. 1673년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 446-2에 세워졌다가 후에 충곡서원으로 옮겨졌다. 성삼문의 관작이 회복되자 1692년 성삼문 사당을 동쪽으로 옮기고, 성삼문과 절의 5신을 모셨다. 1702년 계백을 주벽으로 하여 향현 8선생을 봉안하였다. 1827년 원래 유허비가 있던 자리에는 앞면에 ‘창녕성선생유허비(昌寧成先...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 조성된 조선 전기 문신 성삼문의 묘소. 매죽헌(梅竹軒) 성삼문은 1438년(세종 20)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1447년(세종 29)에는 문과 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집현전 학사로 뽑혀 세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으며 한글 창제에도 공로가 크다. 그러나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황보인, 김종서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잡자...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집안 대주의 운수와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가신. “성주는 대주(大主) 믿고 대주는 성주 믿는다”는 말처럼, 성주는 가정의 웃어른인 대주를 위한 신령이다. 집안에 깃든 여러 신령 중에서 가장 높은 신격의 하나로 신앙되고 있으며, 논산 지역에서는 흔히 안방 윗목이 성주신의 좌정처로 인식된다. 충청남도 지역에서 나타나는 성주의 신체(神體)는 한지에 쌀, 동전, 기타...
-
도순을 시조로 하고 도사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성주도씨의 시조는 도순(都順)으로 고려 원종 때 전리상서를 역임했다. 도순은 정몽주 등과 함께 고려의 신하로 몰려 조선 건국 이후 수난을 당하였다. 도순 이후 성주도씨는 한동안 출사를 꺼렸으나, 조선 중·후기에 이르러 15명의 문·무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성주도씨 8세손 도사면(都思勉)이 고성이씨 입향조인 이...
-
충청남도 연산면 관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성주도씨의 사당. 성주도씨 사우는 노은(魯隱) 도응(都膺)을 제향하고 있는 곳으로, 사우 안의 어필각에는 조선 태조가 도응에게 내린 왕지(王旨) 4매(枚)와 녹패(祿牌) 1매가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 보관된 성주도씨 종중문서는 1981년 7월 15일 보물 제724호로 지정되었다. 왕지는 조선 초기 교지 형식, 교지 서체의 변화, 왕지와 교지...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겁들이 있는 상성리(上城里)와 평리(坪里)를 통합하고 두 마을의 이름을 따서 성평리라 하였다. 과거 상성(上城) 땅이 연산읍에, 하성(下城) 땅이 은진읍에 속하였기 때문에 상성은 연산뜸, 하성은 은진뜸이라 불렀다고 한다. 은진군 적사곡면(赤寺谷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성겁들에 있는 상성리·하성리(下城里)·평리의 각...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세거해 온 성씨. 조선 전기 토착 성씨들의 미미한 활동상에 비해, 연산현 향촌 사회의 주도권을 갖고 있던 세력은 여말선초에 입향한 이거 사족(士族)들이었다. 이거 사족들은 연산천(連山川)의 지류를 따라 농경지 개간이 용이한 산간 계곡에 근거지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여말 정국 변동에 따라 은거지를 정하고 낙향한 경우로, 모두 여산송씨(礪山宋氏)와의 혼맥을 통해...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한 해를 단위로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주기적·의례적으로 거행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행위. 세시풍속이란 예부터 전해지는 농경사회의 풍속이며, 매년 농사력에 맞추어 관례(慣例)로서 행하여지는 전승적 행사와 의례를 가리킨다. 봄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로 새로운 시작과 더불어 농사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정월 초하룻날에는 한해의 시작을 조상께 고하고 본격적인 농사철...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이무기가 집을 짓고 반룡이 되어서 천운을 기다렸다가 승천한다는 용굴이 있다 하여 소룡골이라 하였다. 은진군 구자곡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양지리(陽地里) 일부를 병합하여 소룡리라 하고 논산군 구자곡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1월 1일 구자곡면이 연무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군 연무읍 소룡리가 되었고, 1996년 논산군...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 경계에 있는 고개. 소릉재는 고생대 오도비스기에서 캄브리아기 사이에 형성된 옥천층군문주리층에 해당하며 흑운모편암과 견운모편암으로 이루어진 고개이다. 높이는 315m이며, 고개의 동쪽은 함박재·함박봉(403m)에 이어지며, 남쪽으로는 고내곡재에 이어지고 있다. 주변이 대체로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나 고개의 서쪽으로 구합저수...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소를 부리는 데 필요한 줄을 꼬는 풍속. 소줄꼬기는 논산 지역의 농촌에서 한 해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일 년 동안 사용할 쟁기줄이나 써레줄 등 농사에 필요한 줄을 만드는 정월 대보름의 세시풍속이다. 일부 마을에서는 소 있는 집에서만 행하기도 하지만 여럿이 모여서 함께 꼬기도 한다. 소줄의 종류는 소를 몰고 다닐 때 쓰는 고삐, 쟁기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사용하는 대나무로 만든 둥근 그릇. 1970년대까지도 소쿠리가 많이 쓰였지만 이후 값싸고 편리한 플라스틱 그릇이 다양하게 나오면서 요즘은 자취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주민들에 따르면 1970년대에 쌀 한 되면 큰 소쿠리 하나에 작은 것 하나 정도를 끼워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대나무로 만든 그릇으로 위에서 보면 둥근 형태이고 옆에서 보면 위가 열린 반달형이...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필규는 1870년 7월 20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남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904년 천도교인으로 진보회를 조직하는 데 참여하였고, 일제강점이 시작되면서는 천도교를 발판삼아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1912년 서울에서 49일 동안 국운 회복 기도를 드렸고, 1918년에는 손병희 산하에서 있으면서 독립운동 자금 조달에 힘썼다. 또한 천도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성산 동남쪽 자락에 있는 마을로 여기에 있던 산신당을 속칭 속당이라 하였는데, 점차 송당이라 불리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내촌, 소골, 소라실, 쇠지기, 송당, 월명동 등을 병합하여 송당리라 하고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가 되었다. 북부는 해발 고도 20...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 전기 절터. 송당리 사지는 노성면소재지 서쪽에 있는 노성산(320m) 남쪽 기슭에 있다. 정식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절터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의 문양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 세워진 절로 추정된다. 또한 조선 전기에 많이 제작된 분청 조각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에도 한동안 유지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절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송문림의 묘표. 여산송씨(礪山宋氏)는 여말선초(麗末鮮初)에 연산 화악리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송서(宋瑞)의 아들인 송윤번(宋允蕃)이 진잠(鎭岑)에 살다가 그 아들 송전(宋琠)이 화악리로 이거해 살기 시작했다. 이미 송윤번의 셋째 딸이 고성 사람과 결혼하여 고양리에 내려와 세거하게 되었고 송전(宋琠)의 딸은 기계인(杞溪人) 유효...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송불암에 있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불상. 송불암 미륵불은 석불사라는 옛 절에 안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당시의 석불사는 지금의 자리에서 동쪽으로 약 50m 들어간 산기슭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타 없어졌다고 전한다. 현재의 송불암(松佛庵)이란 명칭은 송불암 미륵불 바로 옆의 노송이 불상과 조화를 이루며 지붕처럼 퍼져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소나무가 무성하였으므로 솔미 또는 송산이라 하였다. 연산군 백석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구정리 일부와 외성면 부황리·청림리·중외리·하외리·왕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송산리라 하고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연산면 송산리가 되었다. 송산1리, 송산2리의 2개 행정리로...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우재(尤齋). 봉사(奉事)를 지낸 송구수(宋龜壽)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이고,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로서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1625년(인조 3)에 도사...
-
충청남도 논산시 휴정서원에 배향된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여산(礪山). 아버지는 판관 송사련(宋祀連)이다. 송익필은 할머니 감정(甘丁)이 안돈후(安敦厚)의 천첩 소생으로 신분이 미천하였으나 아버지 송사련이 안처겸(安處謙)의 역모를 조작 고발하여 공신에 책봉되고 당상관에 올라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송익필은 재능이 비상하고 문장이 뛰어나 아우 송한필(宋翰弼)과 함께 일찍부터...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재기는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확산되자 이근석, 이근오, 이봉세 등과 강경 장날인 3월 20일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3월 16일부터 18일까지 만세운동에 쓸 태극기 300여개를 제작하였으며, 3월 20일에 규합한 주민 70여 명과 옥녀봉에 올라 만세를 부르고 강경시장으로 진입하였다. 이때 출동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소나무 숲에다 정자를 만들었다 하여 소정이 또는 송정이라 하였다. 연산군 식한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중개태리, 한림정리, 산노리, 북계리, 상송리, 하송리, 호동, 천호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송정리라 하고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가 되었다. 송정1리...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종빈은 영가무용단(詠歌舞踊團)을 설립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영가무용단을 재정비하고 단원인 이내수(李來修)·윤상욱(尹相旭)·김한복(金漢復)·임종만(林鍾萬) 등과 함께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일대에서 해외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11월 25일 동지 선영기(宣永基)와...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 아버지는 영천군수를 지낸 송이창(宋爾昌)이다. 1624년(인조 2) 진사가 되었고, 1630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세마(洗馬)에 제수된 이후 효종이 즉위할 때까지 내시교관(內侍敎官)·동몽교관(童蒙敎官)·대군사부·형조좌랑·사헌부지평·한성부판관 등에 임명되었으나 대부분 관직에 나아가지...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둔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틈으로 흘러서 떨어지는 모양이 진경이라 하여 수락리 또는 무수골이라 하였다. 연산군 벌곡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신고운리, 상벌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수락리라 하고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가 되었다. 수락1리, 수락2리의 2개...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와 연산면 한전리, 고정리에 걸쳐 있는 산. 예전에는 충훈산이라고 불렀는데, 이 산에서 백제의 계백 장군 머리가 떨어졌다고 하여 수락산 또는 충혼산이라 부른다. 논산시의 전체적인 지형은 동고서저의 지형인데, 수락산은 동쪽 산지와 서쪽 평야지역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점이적인 구릉성 산지의 일부이다. 이 산은 전체적으로 반상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서 발원하여 황화천에 합류하는 하천. 수철천은 지방2급하천으로 본류는 금강이며, 제1지류는 논산천, 제2지류는 강경천, 제3지류는 마산천, 제4지류는 황화천이다. 유로 연장은 6.77㎞이고, 유역면적은 8.31㎢이다. 수철천은 논산시 연무읍 남동쪽에 위치해 있는 고내리 고내못이 위치해 있는 소규모 분지에서 발원하여 북서 방향으로 흘러 마산천과 합류한...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에 있는 조선시대 수탕석교에 대한 3기의 비석.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석성현조」에 “수탕포와 수탕석교가 석성현의 동쪽 7리에 있고, 수탕원이 동쪽 13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성동면 지역이 포구에 원과 다리가 있는 중요한 교통 요지였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수탕석교를 중수하고 그에 대한 기록을 남긴 수탕석교비군은 사적비,...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정감록(鄭鑑錄)』에 따르면 계룡산 신도안이 도읍지가 되면 배가 드나드는 고을이 된다 하여 숙진골 또는 숙진곡이라 하였다. 노성군 하도면(下道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와룡리(臥龍里)·노오리(魯五里) 각 일부, 상도면(上道面) 만화동(萬化洞) 일부를 병합하여 숙진리라 하고 논산군 상월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
박영규를 시조로 하고 박영서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순천박씨는 우리나라 박씨의 원시조인 박혁거세의 후손 박영규(朴英規)를 시조로 한다. 박영규는 승주 사람으로 고려의 개국공신이다. 후백제 왕 견훤의 사위였으나 견훤의 뜻에 따라 왕건에 내응(內應)하여, 후백제의 신검을 토주(討誅)한 공으로 좌승(佐丞)이 되어 땅을 하사받았다. 순천박씨의 세계(世系)는 중시조 박...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술골에서는 장승을 마을의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장승제를 지낸다. 마을 입구 장승거리에 있는 남녀 장승은 각각 ‘천하대장군축귀신(天下大將軍逐鬼神)’과 ‘지하대장군축귀신(地下大將軍逐鬼神)’이라고 명명(命名)된다. 그 옆의 짐대에는 긴 장대에 나무로 깎은 오리를 앉혔다. 이들 장승과 짐대는 마을 입구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장승제는 기본적으로 분향(焚香)-...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칠석이나 백중에 두렛일을 마치고 술을 마시며 벌이는 놀이판. 칠석(음력 7월 7일)이나 백중(음력 7월 15일) 즈음이 되면 여름 농사인 김매기가 끝난다. 김매기는 여름 농사일 중 가장 고된 노동으로, 이것을 마치고는 한바탕 놀이판을 벌여 모처럼 술을 나누어 먹으며 논다. 이런 연유로 술멕이라 하기도 하고, 두레먹이라고도 한다. 술멕이를 베푸는 시기는...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서식하는 숭어과에 속하는 물고기. 숭어는 최대 몸길이 120㎝, 몸무게 8㎏에 달한다. 머리는 다소 납작하지만 몸 뒤쪽으로 가면 옆으로 납작하다. 눈은 크며 잘 발달된 기름눈까풀로 덮여 있다. 눈앞에는 2쌍의 콧구멍이 있다. 입은 비스듬히 경사져 있고 입술은 얇으며 위턱의 뒤끝은 눈의 앞 가장자리에 달한다. 위턱은 아래턱보다 약간 길며, 양턱에는 가느다란 솜...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지씨(池氏) 집안의 한 효자가 3년 동안 시묘를 살았다 하여 시묘골이라 하였다. 은진군 죽본면(竹本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부수리(富壽里)·용계리(龍溪里) 각 일부와 가야곡면 두월리(斗月里) 일부, 대조곡면(大鳥谷面) 용와리(龍臥里)·백양리(栢楊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시묘리라 하고 논산군 구자곡면(九子谷面)에...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시묘리에서 발원하여 토양리에서 방축천에 합류하는 하천. 시묘천이 발원하는 시묘리는 해발고도 40여m의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의 지형은 하천에 의해 개석된 구릉지와 충적평야들로 이루어져 있다. 2010년 말 현재 시묘천은 지방2급하천으로 본류는 금강이며, 제1지류는 논산천, 제2지류는 방축천이다. 유로 연장은 5.06㎞이고, 유역 면적은 9.99㎢이다....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시민이 주체가 되어 공익을 달성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각종 사회운동의 범칭. 시민운동은 시민들이 사회 각 영역에서의 공익을 달성하기 위해 상호 연대하여 전개하는 운동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즉 시민들이 개인의 자주적이고 자발적인 참가를 전제로 유동적이고 유연한 관련 조직들이나 연대들의 형성을 통하여 비정치적이고 비당파적으로 전개할 뿐만 아니라 그 목적도...
-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일반적으로 시장은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을 말한다. 상설 시장은 일정 지역 내 하나의 건물 안에서 영업자가 항시 물품의 매매 교환을 할 수 있는 시장을 말하며 정기 시장은 일정 구역 안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을 말한다. 따라서 시장은 상품 교환의 발생 빈도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느냐, 연속적으로 매일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정기...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논산 지역은 충청남도의 남부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금강이 북에서 남쪽 방향으로 흐르고, 북동쪽은 계룡산(鷄龍山)·대둔산(大芚山)이 걸쳐 있는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또한 남쪽은 전라북도 완주군과 익산시와 경계를 접하고 있어 식생활에 있어서도 이러한 지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기호 유교 문화권의 중심이란 지역...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개된 신간회 지회 설립을 위한 운동. 신간회는 1926년의 6·10만세운동을 계기로 학생들의 애국운동에 자극되어 1927년에 민주주의를 표방한 좌·우익 합작으로 성립된 민족운동단체이다. 국내의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공산주의 진영 간의 타협과 이러한 결사의 허가를 통해 독립운동가의 동태를 용이하게 파악·활용하려는 일제의 가장된 유화정책의 소산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부터 마을에 사다리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사다리·새다리라 하였고, 한자로는 사제촌(沙梯村)으로 표기하였는데 새다리의 ‘새’를 신(新), ‘다리’를 교(橋)로 의역하면서 신교리(新橋里)가 되었다. 연산군(連山郡) 적사곡면(赤寺谷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내동(內洞), 아곡리(阿谷里), 사교리(沙橋里), 구정리(龜亭里)...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말, 새터, 신기라 하였다.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상사리(上沙里), 하사리(下沙里), 고암리(高岩里)를 병합하여 신기리라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양촌면 신기리가 되었다. 신기1리, 신기2리의 2개...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마을에 신당(神堂)이 있었던 데서 신당리(神堂里)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노성군(魯城郡) 득윤면(得尹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당리(大堂里), 소당리(小堂里), 사동리(沙洞里)의 각 일부와 장구면(長久面) 덕포리(德浦里)를 병합하여 신당리라 하고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하였다. 1927년 9월 20일 광석면...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시사에 관한 뉴스를 비롯한 정보·지식·오락·광고 등을 전달하는 정기 간행물. 논산에서 발간되며 주로 논산 지역의 소식을 전하는 신문으로 주간으로 발행되는 종이 신문인 『놀뫼신문』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창간된 인터넷 신문인 『논산인터넷뉴스』(『엔에스아이뉴스』)와 『굿모닝 뉴스』가 있다. 논산에서 처음 논산 지역의 소식을 전하는 신문이 창간된 것은 1989년 8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에서 발원하여 연산리에서 연산천에 합류하는 하천. 신암리를 흐르는 하천이라 하여 신암천이라 불린다. 함박봉의 서쪽 사면은 경사가 급하며 하천에 의해 개석된 소규모 분지성 지형이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서 신암천이 발원하여 수지상 하계패턴을 이루며 북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지형도상으로는 평탄지에 가까우나 중하류의 평야에 비해선 80~100여m로 고도가...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선암에서 신선들이 바둑을 두는 것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터를 잡았다는 신대 사람들과 양곡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 하여 신양리라 하였다. 연산군 벌곡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신대리, 도리산리, 조동리, 양곡리, 동계리, 공수산리, 반송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양리라 하고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씨가 처음 이룩한 마을이라 하여 신양뜸 또는 신양리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모촌면(茅村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량리(下良里)·황산리(黃山里)·시목동(枾木洞)·중명암리(中鳴岩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신양리라 하여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1983년 2월 15일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전리를 흘러 봉동리에서 강경천에 유입하는 하천. 2010년 말 현재 신양천은 지방2급하천으로 본류는 금강이며, 제1지류는 강경천이다. 유로 연장은 4.38㎞이고, 유역 면적은 11.53㎢이다. 신양천은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태성리와 호산리에서 발원하여 도계(道界)를 넘어 마전리, 봉동리를 관류하는 하천이다. 상류에서부터 약 1.5㎞까지는 남북으로 흐르다가...
-
충청남도 논산시 파평윤씨 충헌공파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신임사화를 기록한 윤광안의 일기. 파평윤씨 노종(魯宗)문중은 입향조인 윤돈(尹暾, 1519~1577)의 다섯 손자 대에서 설봉공파·문정공파·충헌공파·서윤공파·전부공파 등 노종 오방파로 갈리게 되는데, 『신임일기』를 보관하고 있는 파평윤씨 충헌공파는 이중 셋째 집의 윤전(尹烇)을 파조로 한다. 신임사화(辛壬士禍)는...
-
1900년대부터 발생하여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종교. 논산 지역의 신종교는 조선 말 계룡산을 중심으로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유사 종교로 지칭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유사 종교들은 신종교라는 면모를 내세워 민심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고, 이들 중 일부 신종교들은 많은 신도와 민심을 얻기도 했다. 여기서 알아야 할 사실은 신종교의 한 가운데에 논산 출신인 일부(一夫) 김...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노성군(魯城郡) 월오면(月午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통상리(通上里)·중리(中里)·낙동(樂洞)·신리(新里)·충보리(忠洑里)와 공주군(公州郡) 진두면(辰豆面) 공평리(公坪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신리(新里)의 ‘신’과 충보리(忠洑里)의 ‘충’을 따서 신충리라 하여 논산군 상월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신충리는 논산과 공주를 잇는 도로변에 있는 마을로 상월면 소재지에서 공주 쪽으로 약 500m 지점에 있다. 신충리 고분군이 있는 신충리 북단은 노성산성이 있는 노성산의 북동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산에서 흘러내린 끝자락이다. 신충리 고분군에 대한 지표 조사가 실시된 적은 없다. 신충리 고분군은 동쪽으로 뻗은 구릉의 남쪽 비탈에 있...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세워진 14기의 비석군. 상월면사무소 담 밖 도로변에 비석 14기가 일렬로 동쪽을 향하여 세워져 있다. 원래 신충3리에 있던 것을 1983년 면사무소 준공과 함께 현 위치로 옮겨 왔다.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군수김후갑순청덕선정비(郡守金侯甲淳淸德善政碑)는 지붕[옥개]형(屋蓋形)으로 갑진년 11월에...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의 공신 양함을 모신 사당. 양함(梁諴)은 임진왜란 때 신립과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한 무장으로, 묘소는 노성면 가곡리에 있다. 신충사는 신충리에 있는 충신 정려와 함께 세워졌다. 당시 29세였던 장수 양함은 시신을 채 거두지 못해 초혼장으로 지금의 노성면 가곡리에 안장되었는데, 이때 나라에서 국사를 보내 제사처를 정해 주었다고...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연산군(連山郡) 적사곡면(赤寺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덕리·풍덕리·보우리(洑隅里)·안천리(顔川里)·중리(中里)의 일부와 가야곡면(加也谷面) 월경리(越境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신덕(新德)과 풍덕(豊德)에서 ‘신(新)’ 자와 ‘풍(豊)’ 자를 따 신풍리라 하여 논산군 부적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현창은 1918년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대한독립애국단에 가입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군자금을 지참하고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에 밀파되었고, 상하이[上海]에서 병원을 개업하여 얻은 수익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전달했다. 1921년 임시정부의정원 충청도의원으로 활동했으며, 같은 해 8월에는 태평양회의 외교후...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채운들과 함께 오화지지(五華之地)로 불리는 곳으로, 이 고장은 신화(莘華)의 고장으로 신화 또는 신화리라고 하였다. 본래 전라북도 여산군 피제면(皮堤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연리(冠淵里)·입석리(立石里)·산화리(山花里)·죽산리(竹山里)·신기리(新基里)의 각 일부와 북삼면(北三面) 반리(般里)·포변리(浦邊里)의 각 일...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연산군(連山郡) 모촌면(茅村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계리(新溪里)·죽내리(竹內里)·웅천리(熊川里)의 각 일부와 은진군 갈마면(葛麻面) 방현리(防峴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새로 일어나라는 뜻으로 신흥리라 하여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양촌면 신흥리가 되었...
-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기성 종교에 대하여 전개된 새로운 종교운동. 우리나라의 신흥종교는 300~400개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수적으로 다양하고 각기 계통을 달리함에도 불구 여러 특징들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내용만 다를 뿐 그 내적 구조는 어느 종파를 막론하고 동일해 보일 정도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신흥종교운동은 19세...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땅속 깊이 큰 바위가 박혀 있다 하여 심바위 또는 심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도곡면(道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후동(厚洞)·가동(柯洞)·동교리(東橋里)·음지리(陰地里)·이화리(梨花里)의 각 일부와 전라북도 여산군 피제면(皮堤面) 사천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심암리라 하여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쌍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서, 백암(白庵)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중건비(重建碑)에 의하면 고려 때 행촌(杏村) 이임의 발원으로 창건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창건 연대와 창건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절 입구에 세워진 비문에 의하면 쌍계사에는 극락전을 비롯하여 관음전, 선원, 동당...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쌍계사에 있는 조선시대 부도군. 부도는 승려들이 열반한 후 다비가 행해지고 이 과정에서 생긴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석조물이다. 일반적으로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석조물은 불탑으로 부르고 있으며, 부도와는 엄밀하게 구분되고 있다. 쌍계사 부도는 쌍계사에서 입적(入寂)한 고승들의 유골이나 사리(舍利)를 봉안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충...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어은리와 계룡시 엄사면 도곡리 경계에 있는 고개. 산명재와 능선을 함께 하며 하산티[下山峙]로 불렸기 때문에 아랫산명재라고 불린다. 아랫산명재는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진 고개이며, 계룡산 남쪽 능선에 해당하는 향적산(574m) 남쪽에 위치해 있는 고개이다. 아랫산명재 북쪽에 산명재와 윗산명재가 있으며, 서쪽은 일음골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논산천의 지류인 아호(阿湖)가 동쪽 벌판에 있는데, 물이 호수처럼 잔잔하다고 하여 애오랏 또는 아호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부인처면(夫人處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적사곡면(赤寺谷面) 주천리(注川里)·평리(平里)·신교리(新橋里)의 일부, 화지산면(花枝山面) 주천리(注川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아호리라 하여...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사람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고장이라 하여 안심리 또는 안심동이라 하였다. 본래 전라북도 여산군 피제면(皮堤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상리(九相里)·삼거리(三巨里)·신리(新里)·죽산리(竹山里)·사천리(沙川里)·신기리(新基里)·신화리(莘華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안심리라 하여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에 편입하였다. 19...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안여택의 정려. 안여택(安汝宅, 1691~1783)은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자는 인숙이며, 문성공 안향(安珦)의 17세손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부모가 살았을 때 효성을 다하였고 부모가 죽은 후에는 3년간 시묘하였다고 전한다. 안여택은 어머니가 병환에 있을 때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여 간호하였고, 어머니가 죽...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에서 집안에 모신 여러 신령에게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안택(安宅)은 글자 뜻 그대로 집안을 평안하게 하는 굿을 말한다. 대개 독경(讀經)을 하는 앉은굿 법사(法師)가 주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논산 지역에서는 부녀자들이 집안에 모신 여러 신령을 위로하고 치성을 드리는 ‘첫무리’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혼용되기도 한다. 첫무리란 가을걷이를 마친 시...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벌곡면사무소에서 두마 쪽으로 국도를 따라가면 왼쪽에 조령1리 안터마을이 나온다. 안터 사지는 안터마을 뒷산 남쪽 계곡 중턱에 있다. 현재 절터는 황폐해지고 잡목만 우거져 있어 정확한 건물의 형태를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사찰을 지을 때 축조한 1m의 축대석과 자연 초석 형태의 석재가 남아 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기와 조각으로...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달걀을 받기 위해 농가의 닭장 안에 짚으로 만들어 둔 보관용 도구. 통구리라는 말은 통가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통가리란 쑥대나 싸리, 뜸 등을 새끼로 엮어 땅에 둥글게 둘러치고 그 안에 감자나 고구마 따위의 곡식을 채워 쌓은 더미를 말한다. 알통구리를 닭의 알을 담아 두는 저장 도구라는 의미에서 알통가리라고도 부른다. 또한 달기(닭) 둥가리라고도 한다....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들판에 있다 하여 들말 또는 야촌이라 하였다. 마을 모양이 배의 형국이라 하여 마을에 우물을 파면 침몰된다고 우물을 파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한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하두면(下豆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정리(柯亭里)·두강리(杜江里)의 각 일부, 상두면(上豆面) 육곡리(六谷里)·강청리(江淸里)의 각...
-
일제강점기 이후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개되어 온 농촌계몽운동 또는 문맹퇴치운동. 야학은 야간에 수업을 하는 비정규적 교육 기관을 말하며 야간에 운영되는 정규적 교육 기관인 야간학교와는 구별된다. 야학은 일제강점기에 크게 발달하였으며 이 시기의 야학은 식민지교육정책에 따른 교육 시설의 부족과 생활의 빈곤으로 정규학교의 취학이 어려운 시기에 민중들에 대한 초등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들꽃이 많이 핀다 하여 들꽃미 또는 야화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화산면(花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석현리(石峴里)를 병합하고 야화리라 하여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가 되었다. 행정구역은 야화1리와 야화2리, 야화3리로 이루어져 있다....
-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청주양씨 시조.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암곡(巖谷). 양기(楊起)는 중국인으로 원나라에서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에 올라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과 중서성정승을 지냈다. 1351년(충정왕 3) 공민왕이 연경에 머무르다 왕위에 오르기 위하여 고려로 돌아갈 때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배종하고 들어와서 고려에 정착하였다. 그 후 원나라에 가서 공물을 삭감하...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기하는 구한말에 공주군수를 역임하였으며, 1910년 일제 강점이 시작되자 만주로 망명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남만주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교통부장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1920년에는 광복군사령부 선전부장, 정보국장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1921년에는 상하이[上海]로 가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의 공신 김완의 영정을 모신 사당. 본관이 김해인 김완(金完, 1577~1635)은 임진왜란 때 용맹이 알려져 전라도병마절도사 이복남 휘하에 들어갔다. 이때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도방어사 막하로 갔다가 전라도병마절도사 이광악을 따라 남원으로 갔다가 부친을 무고하여 죽게 한 한덕수가 병력을 점검하자 칼로 찔러 죽이려다가 실패하였다. 남원...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라 때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이곳을 지나다가 산세를 보고, 좌청룡 우백호로서 북서쪽은 높은 지대이고 동남쪽은 낮은 지대여서 수원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므로 거주지로서 신선지라 하여 양지 쪽의 양(陽)자와 산맥의 산(山)자를 따서 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에 사는 단양이씨가 이곳에...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전사하여 논산에 정려가 세워진 문신, 의병장.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인경(仁卿), 호는 도곡(道谷). 양응춘은 회덕현감을 지내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趙憲)을 따라 청주에서 왜군을 무찔렀고, 이어서 금산 전투에 참가하여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후 이조참의로 증직되었고, 1720년 충신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8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양응춘에게 내려진 정려. 양응춘은 청주양씨로, 자는 인경(仁卿)이고, 호는 도곡(道谷)이다. 회덕현감을 지냈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을 따라 청주성의 탈환전에서 왜적을 무찔렀다. 이어서 금산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왜적을 베었으나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러한 공적으로 이조참의에 추증되고 17...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매화산(梅花山) 아래 양지 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양지편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구자곡면(九子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산리(馬山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양지리라 하여 논산군 구자곡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1월 1일 연무읍이 승격됨에 따라 논산군 연무읍에 편입되었고,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양지리에 있는 양돈단지. 양지리 양돈단지는 1994년 「농촌근대화촉진법」에 의거해 농림부 지원 사업으로서 정부지원금을 지원받아 건립되었다. 논산시 지역은 육군 제2훈련소 연무대를 비롯한 군부대에서 반입된 음식물 찌꺼기를 사료로 활용하면서 양돈단지가 활발히 형성되었다. 양지리 양돈단지 축사는 총 135동이 있으며, 축사의 총 면적은 약 37,934㎡에 달한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문의 처 양천허씨 묘비. 양천허씨는 17세의 나이에 당시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김약채의 아들 김문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양천허씨는 이미 김철산을 임신하고 있었는데, 시집이 있었던 연산면으로 내려와 아들을 낳고 가문이 번창할 수 있도록 밑바탕을 만들어주었다. 양천허씨의 아들인 김...
-
구한말에 설립되어 1950년대까지 충청남도 논산에 있던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양촌감리교회는 1907년 12월 1일 박일래 목사에 의해 인천교회로 설립되었으나 1921년 큰 홍수로 인해 대파되었다. 이후 1947년까지 교역자 없이 김정숙 전도사가 홀로 교회를 지키면서 운영해왔으나,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시 양촌 지역을 장악한 공산당이 교회를 접수하여 민청회관으로 사용...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서 매년 11월에 열리는 곶감축제. 양촌감이 달고 맛있는 이유는 양촌 지역 감나무들의 수령이 최소 30년 이상 된 고목으로서 감의 육질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기 때문이다. 또한 양촌 지역은 북서계절풍이 강하여 통풍에 유리하고, 산지로 둘러싸여 먼지 등이 날리지 않는 청정한 자연 조건으로 인해 천일건조에 알맞은 지역이다. 양촌면은 양촌곶감의 품질을 인정받아 20...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양지 쪽에 있어서 양지편 또는 양촌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갈마면(葛麻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노촌리(蘆村里)·가정리(柯亭里)·동구리(洞口里)의 각 일부와 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 운북면(雲北面) 구만리(九萬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양촌리라 하여 가야곡면에 편입하였다. 1983년 2월 15일 양촌리의...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내[川]의 양쪽으로 갈라져 있어 양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리(新里)·임하리(林下里)의 각 일부와 전라북도 고산군 운북면(雲北面)의 하고리(下高里) 일부를 병합하고 양촌리라 하여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양량소면의 ‘양(陽)’자와 촌면의 ‘촌(村)’자를 따서 양촌이라고 하였다. 백제시대에는 황등야산군에 속하였다가 신라시대에 황산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시대로 넘어가면서 연산현에 속하였다가 고려 후기 은산현에 속하게 되었다. 그후 조선시대에는 연산군(連山郡) 모촌면(茅村面) 지역으로, 방축(防築)·신평(新坪)·송정(松亭)·차곡(磋谷)·거사(居士)...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의 양촌면에서 전개된 농민조합운동. 양촌면 적기시위는 1930년대 초반까지 농민조합의 결성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논산 지역 양촌면의 지역 활동가들과 지주들에게 예속된 머슴들인 농민노동자들이 합세하여 농민조합의 일종인 머슴계를 합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전개한 혁명적 노동운동이다. 일제강점기 전반의 논산 지역의 농민운동은 삼남 지역에 비해 비조직적이었으며 활발...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남당산에서 발원하여 양촌리, 임화리를 흘러 논산천에 합류하는 하천. 양촌리를 흐르는 하천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2010년 말 현재 양촌천은 지방2급하천으로 본류는 금강이며, 제1지류는 논산천이다. 유로 연장은 3.57㎞이고, 유역 면적은 9.34㎢이다. 양촌천은 논산시 남동부의 남당산(376m)에서 발원한 하천이다. 크게 동쪽과 서쪽의 소하천이 임화리 평촌에...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원(南原).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였다. 함창현감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립(申砬)과 함께 충주 탄금대 아래 달천에서 배수진을 치고 적을 맞아 악전고투하면서 마지막까지 선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전사하였다. 묘는 노성면 가곡리에 있다. 당시 양함은 29세로 시신도 거두지 못한 채 장사지냈는데, 이때 나라에서 국사...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조선 말기 충신 양함의 정려. 양함(1564~1592)은 본관이 남원으로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였고, 함창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신립과 함께 충주 탄금대 아래 달천에서 배수진을 치고 적을 맞아 최후까지 선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사하였다. 양함이 죽은 후 300여 년이 지난 1886년(고종 23)에 명정을 받...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골짜기에 길게 늘어져 있다 하여 느락골 또는 어라동·어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벌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풍리(新豊里)·서근야미리(西斤夜味里)·내어곡리(內於谷里)·사삼암리(思三岩里)·외어곡리(外於谷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어곡리라 하여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물의 흐름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방법. 어덕매기는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자연을 이용한 고기잡이로 전통적인 ‘어살[漁箭]’ 어법을 내수면 어법으로 변용한 것이다. 어살이란 물고기를 잡는 장치로, 고기가 들도록 물이 드나드는 곳에 싸리·참대·장나무 등을 둘러 꽂아 둔 울타리를 일컫는다. 금강 하구에 속한 강경읍 주변에서는 예전부터 물이 드나드는...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농작물이나 거름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농기구. 어림이는 삼태기의 일종으로 주로 고구마·감자·토란 등과 같이 크기가 있는 농작물을 담아 가까운 거리로 옮길 때 지게에 짊어지거나 또는 우마차에 실을 때 사용하던 농업용 작업 도구이다. 거름을 담아서 지게에 지거나 논밭에 흩뿌릴 때도 사용하였다. 논산 지역에서는 보통 싸리삼태미라고 불렀다. 1970년대까지 농가에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은골 또는 어은, 어은동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백석면(白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현리(沙峴里)·송리(三松里)·산소리(山所里)·일음리(日音里)·탄동리(炭洞里)·덕곡리(德谷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어은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어은1리에 있는 돌탑. 논산시 연산면 어은1리 일은골로 접어드는 어은지(漁隱池) 북동쪽 끝자락 옆에 있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본래 길 양쪽에 탑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1기만 남아 있다. 마을 주민들은 그냥 ‘탑’이라고 부른다. 어은리 일은골 방사탑은 높이 2.7m, 둘레 3.6m의 둥근 기둥 모양의 돌탑이다. 마을 공동 의례는 없으나, 외지의 무...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매체를 통하여 여론을 형성하거나 인쇄물을 제작·복제하여 출간하는 일의 총칭. 일반적으로 언론은 담화·토론·연설·연극·방송·음악·영화 등 구두(口頭)를 통한 사상 발표를 말하며, 출판은 문서·서적·도화·사진·신문·잡지·조각 등 문자 및 상형(象形)에 의한 사상 발표를 의미한다. 그러나 두 용어 모두 개인이나 집단의 의견이나 사상을 외부에 발표하는...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민물고기를 잡기 위해 사용하던 도구. 얼개미는 본래 곡식이나 가루 등을 치는 큰 체로서 곡물을 선별할 때 쓰이는 도구이다. 논산 지역 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냇가에서 작은 민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였다. 실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얼개미를 이용하여 냇가에 있는 고기를 떠내는 방식은 가장 원시적이면서 손쉬운 어로 방식의 하나였다. 강경...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굵은 가루를 걸러 내기 위해 만든 도구.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우수한 사람들만 따로 선발하는 일을 얼게미의 기능에 빗대어 “얼게미로 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굵은 가루를 걸러 내는 얼게미에 비해 콩고물처럼 가는 가루를 내리는 도구를 곤체라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얼게미를 만들 때 송판으로 쳇바퀴를 만들었으나 요즘은 플라스틱으로 쳇바퀴를 만들고 형태...
-
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엄창섭은 1892년 12월 12일 전라북도 익산군[현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 47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전라북도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 학생 강금옥의 권유를 받고 강경에서 이른바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심한다.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의...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소설가. 엄흥섭은 1906년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서 태어났다. 경남도립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진주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습작시대』, 『백웅(白熊)』, 『신시단』 등의 편집동인으로 활동했다. 이때부터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1929년 카프(KAPF)에 가담하고 같은 해에 『조선문예』에 「세 거리로」를 발표하였다. 또 이듬해 『조선지광(朝鮮之光)』에...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집안의 재복과 행운을 관장하는 가신의 하나. 업은 다른 가신(家神)과는 달리 흔히 동물의 형상으로 상징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 종류는 구렁이업과 족제비업이 가장 흔하지만, 이밖에도 두꺼비업, 인업(人業), 송아지지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업신의 좌정처는 뒤꼍이나 광에 있다고 관념된다. 형태는 특별한 신체(神體)를 모시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만 가정에 따...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왕암리에 있는 hy의 식·음료 생산 공장. hy 논산공장은 논산시의 대표적인 식·음료 제조업체 공장이다. 1969년 11월 한국야쿠르트유업주식회사가 창립되었다. 1971년 6월 안양공장이 준공되었다. 1983년 7월 라면의 생산·판매·수출이 개시되었다. 1985년 6월 논산공장이 준공되었다. 1995년 5월 음료를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
-
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여산은 현 전라북도 익산이다. 여산송씨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진사로 나라에 공훈을 세워 여산군에 봉해졌으며 은청광록대부로 추밀원부사에 추증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송유익의 선계는 중국의 경조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의 후손 송자영이다. 송자영은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송...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여산송씨 묘역. 여산송씨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연산면 화악리에 입향하여 연산 지역에서 토착 세력으로서의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연산면 면소재지에서 우회전하여 지방도 697호선을 따라 3㎞ 가면 오른쪽으로 국도 1호선과 만난다. 국도 1호선을 따라 3㎞가량 가다가 계백로에서 화악리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충청남...
-
이은백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여주이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세 파가 있다. 이들 세 파는 이인덕(李仁德)을 시조로 하는 교위공파와 이은백(李殷伯)을 시조로 하고 이규보(李奎報)를 중시조로 하는 문순공파, 이세정(李世貞)을 시조로 하는 경주파이다. 이 세 파의 여주이씨는 다 같이 고려 중기에 경기도 여주에 정착하여 대대로 호장(戶長)·향공진사(鄕貢進士) 등 향직을...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의 변천 과정과 과거의 사실. 현재까지 조사·발굴된 유적이나 유물에 의하면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의 인간 사회의 형성과 전개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를 전후하여 현재까지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는 선사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현대로 나눌 수 있다. 논산 지역은 자연 지리적으로 동고서저...
-
조선 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로에 세워져 국가가 경영한 여관. 역원에서의 '역'은 전근대시대에 중앙정부와 지방 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설치한 교통 통신 조직의 일종이며, 원은 고려시대·조선시대에 출장하는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의 일종이다. 역과 관련되어 설치되므로 보통 역원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논산 지역에서는 남항...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정월 초부터 대보름 사이에 연을 날리며 노는 민속놀이. 연날리기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성행했던 정월의 대표적인 전래놀이이다. 연날리기를 하는 장소는 장애물이 없는 넓은 공터나 제방, 언덕 같은 곳이 안성맞춤이다. 연은 형태와 명칭에 따라 무려 7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논산 지역에서는 주로 방패연·가오리연·꼬리연 등이 사용되었다. 연은 창호...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죽본리에 조성된 농공단지. 농공단지는 1984년 제정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을 근거로 농촌 지역에 조성된 소규모 공단을 의미한다. 주로 도시와 농어촌 간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농촌의 유휴 인력을 이용한 농산물 임가공·섬유 업체 등을 유치하고 있다. 공해 업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업종 제한이 없다. 연무농공단지는 공장입지를 마련하는 데 애로를 겪고 있는...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공공 도서관. 연무도서관은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가야곡면, 은진면 지역의 주민을 위한 정보의 공간 및 생활문화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996년 7월 1일 도서관 건물을 착공하고 1997년 8월 6일 준공하였다. 1998년 4월 3일 정식으로 개관하였으며, 2001년 7월 20일 연무읍장을 도서관장으로 임명하였다. 2015년...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에 있는 채운역과 연무읍 안심리 연무역을 잇는 군용 철로. 전체 길이는 약 6.1㎞이며, 논산시 채운면과 연무읍을 가로질러 남동 방향으로 부설되어 있다. 총 공사비는 내자 약 1억 6000만 원과 외자 24만 달러가 투입되었으며, 연 40,420명의 근로자와 2,570명의 교통부 직원 및 군 병력 2개 대대가 동원되었다. 연무선은 육군 제2훈련소(일명...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산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연무성당은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 정신으로 지역 사회를 복음화시키고, 모든 이가 하느님의 구원에 동참하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을 지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조선 왕조가 천주교를 박해하던 시기 경기도 일대와 충청남도 지역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경계 지역의 전라북도 고산 일대로...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읍. 6·25전쟁이 끝난 후 육군 제2훈련소가 구자곡면 지역에 창설되고, 군인들이 훈련받는 곳이라는 뜻으로 연무대(鍊武臺)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되었다. 백제와 신라시대 때는 덕은군과 여산군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에 시율현·피제현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에는 대은진현·공촌면으로 불렸다. 그 후 은진군(恩津郡) 구자곡면(九子谷面)으로, 서촌(西村)·무동(武洞)·화...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동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슬기롭게 해결하는 실력 있는 학생, 고운 심성으로 예절을 실천하는 학생, 건강한 몸으로 안전하게 생활하는 학생, 이치를 탐구하고 도전하는 학생, 우리 문화를 지키고 사랑하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65년 9월 1일에 연무중앙국민학교로 인가를 받았으며, 1965년 9월 7일에 연무중앙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81...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개성을 추구하는 학생, 창의력을 발휘하는 학생, 진로를 개척하는 학생,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학생,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9년 4월 20일 연무대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81년 3월 9일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6년 3월 1일 연무대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97...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덕암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연산에서 공주 방향 도로를 따라 약 8㎞ 정도 가면 연산면 덕암리에 이른다. 덕암리 고분군은 덕암리 행경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서쪽 방향으로 흘러내린 구릉 남사면의 비교적 경사가 심하게 이루어진 곳에 입지해 있다. 1992년 10월 28일 논산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고분은 대부분 입구를 남쪽으로 향한 채 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귀부석. 연산공원 귀부석은 연산면 연산리 연산공원 안 낮은 구릉 진입로 입구에 있는데, ‘연산공원’이라고 새긴 비신을 얹고 있다. 지금의 위치가 본래의 자리는 아닌 듯한데, 본래는 연산공원 일대 관아 터 유적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연산공원 귀부석은 네 발이 구부러져 있고 발톱무늬가 선명하며, 꼬리는 ㄴ자로 꺾여 있다. 전체적으로...
-
고려 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 일원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연산군은 백제가 관할했던 삼국시대에는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 또는 황등야군으로 불렸으며, 신라의 삼국 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는 황산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연산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018년(현종 9) 공주 임내에 병합되기도 했다. 조선 전기인 1413년(태종 13)에는 연산현이 되었으나 1646년(인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조성된 농공단지. 농공단지는 1984년 제정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을 근거로 농촌 지역에 조성된 소규모 공단을 의미한다. 주로 도시와 농어촌 간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농촌의 유휴 인력을 이용한 농산물 임가공·섬유 업체 등을 유치하고 있다. 공해 업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업종 제한이 없다. 연산농공단지는 연산면과 두마면(현 계룡시) 일대의 농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연산현의 소재지여서 읍내리 혹은 연산읍내로 불리다 연산리라 하였다. 본래 연산현 소재지로 현내면이 되어 구아동(舊衙洞)·백애(白厓)·월양대(月陽垈)·일양대(日陽垈)·신암(莘岩)·옥계리(玉溪里)·백림동(栢林洞)·옥전리(玉田里)·중리(中里)의 9개리를 관할하다 1894년(고종 31) 군내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촌리(南村...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면. 삼국시대 황산군 지역으로, 고려시대에 연산군으로 개편된 뒤 연산이란 지명이 나타나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현내면(縣內面) 지역으로, 황령(黃嶺)·신곡(莘谷)·남촌(南村)·북촌(北村)·신암(莘岩)의 5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성면(外城面)의 소계(巢溪)·개정(盖井)·부황(夫皇)·청림(靑林)·중외(中外)·하외(下外)·...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의 가로를 따라서 형성된 촌락. 가촌(街村)은 봉건시대의 주막거리나 저잣거리처럼 가로(街路)를 중심으로 형성되며 또 상업적 기능이 높다. 산지가 바다에 임한 좁은 해안도로를 끼고 달리는 가도 등에서는 한쪽으로만 형성된 가촌을 많이 볼 수 있다. 토지의 분할은 가도와 직각 방향으로 좁고 길게 한다. 연산면 연산리 가촌이란 명칭은 연산리 주민들에게 널리 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구읍취락. 연산면은 조선시대 연산현 지역으로서, 연산리는 연산현의 행정 업무를 집행하던 관아가 있던 구읍취락이다. 지금은 예전과 같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던 읍취락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다. 연산현은 은진, 니산, 석성과 함께 충청도 공주진(公州鎭)에 소속되어 있었고, 공주목사 관할 하의 연산현감이 있었다. 연산현은 진산군(현 충청남도...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과 은진면 일대에서 일어난 농민 폭동 사건. 조선 말기 삼정(三政)의 문란과 지배층의 과중한 착취, 세도정치의 불합리성, 문호개방 이후 급속히 증가한 국가지출 등은 농민에게 2중 3중의 부담을 지웠다. 여기에 더하여 조세의 징수관인 아전(衙前)의 행패 또한 극심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1862년(철종 13) 2월 진주에서 민란이 일어나 삼남 전역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 연산면 면소재지에서 대전 방향으로 3㎞쯤 가면 송정리 하송마을에 이르는데, 이곳의 서쪽 산 능선에 있다. 지리적 위치로 보면 계룡산 줄기의 남단에 해당한다. 연산 송정리 마애삼존불 앞 왼쪽에 개태사가 있다. 높이 4.3m, 너비 3.5m의 수직 화강암 벽에 선각한 입상의 삼존불이다. 불상의 높이는 본존불 3.2m, 우협시불 1...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연산현 관아를 출입하였던 정문.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동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6㎞쯤 가면 구 연산면소재지 인 연산리가 나온다. 이곳 농촌지도소 연산지소 서쪽에 연산아문이 자리하고 있다. 연산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 양식 2층 목조누각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직사각형의 돌기둥...
-
조선 말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설립되었던 사립학교. 1908년 논산 지역에는 사립학교가 다수 설립되었는데,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1908년 6월 연산에서는 민성학교가 처음으로 개교하였다. 뒤이어 동년 7월 18일에는 논산 돈암서원에 연산여명학교가 개교하였다. 이날 입학한 학생은 50여 명이었고, 각종 경비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종중에서 전담하였다. 초대 교장에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극유의 처 의령남씨의 재실. 연산 영사재 뒤쪽 50m 정도 거리의 구릉에 의령남씨의 묘소가 있으며, 묘역에는 묘비·문인석·석등·상석 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상석은 최근의 것이다. 묘비명은 1689년(숙종 15)에 세워진 것으로 호패형이고, 앞면에 ‘유명조선정부인의령남씨지묘(有明朝鮮貞夫人宜寧南氏之墓)’라 새겨져 있다. 연산 영사재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동부와 중남부를 흘러 오산리에서 노성천으로 유입되는 하천. 연산면을 흐르는 하천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연산천의 하곡은 북남 방향의 상류로부터 연산리에 이르는 구간에서는 비교적 좁은 직선상의 곡지를 이루며, 이에 따라 비교적 좁은 곡저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이에 직각으로 꺾이는 동서 방향의 구간에서는 점차 넓어져서 상류부보다 훨씬 넓은 곡저평야를 이루고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용화사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 연산 천호리 비로자나석불은 용화사에서 약 500m 거리에 있는 구 개태사지(開泰寺址)에서 출토된 것으로, 처음 발견했을 때 불두가 파손되어 있었으나 최근에 보수되었다. 1980년 10월 23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었다. 연산 천호리 비로자나석불은 높이 110㎝로, 화강암으로 조상하였다. 왼쪽 무릎을 세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 처음 설립하였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와 서무가 있고, 교육 공간으로 강...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연산향교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대성전.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에 처음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서무가 있고, 교육 공간으로 강당...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연산향교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강당.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에 처음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서무가 있고,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
조선 전기와 중기 충청남도 논산시 일원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호서읍지(湖西邑誌)』 등의 옛 지리지나 읍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각 지리지 읍지들은 형식과 방식에 차이를 보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의 객사 터. 조선시대 연산현의 객사로 읍치의 중심인 객사에서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다. 따라서 객사는 수령의 집무청인 동헌보다 높은 곳에 있었고, 관아 시설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며 전망 또한 좋은 곳에 자리하였는데, 이 때문에도 관아 안에서는 가장 위압적인 규모를 가지고 있...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의 관아 터. 관아(官衙)란 조선시대 읍치에 있던 관청건물을 통칭하며 연산현 관아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동헌, 국왕의 위패를 모셔 둔 객사, 고을 양반들의 대표자 격인 좌수와 별감이 있는 향청, 아전들이 근무하던 질청, 기생과 노비들이 있는 관노청 등이 있었다. 정조 연간에 간행된 『연산현지』에 따르면, 연산현 관아에는 동헌...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옥거리 앞에 연꽃이 만발한 연못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연정(蓮亭)이라 불렀으며, 이 연정의 서쪽에 마을이 있어서 연서리(蓮西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대조곡면(大鳥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리(上里)·홍문리(弘門里)·북문리(北門里)·용와리(龍臥里)·백양리(栢楊里...
-
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연저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연안이씨의 시조는 이무(李茂)로, 본래 당나라 출신이다. 660년(태종무열왕 7) 나당연합군 대총관 소정방(蘇定方)의 부장(副將)이 되어 신라에 들어와 백제를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고, 이후 신라에 귀화하여 연안후(延安侯)에 봉해지고 연안을 식읍으로 받아 살게 되었다. 그 후손들이 이무를 시조로 받들어 세계(世...
-
조선시대 논산 지역에 연고를 둔 절개 높은 여자를 일컫는 말. 열녀(烈女)는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貞操)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守節)한 부녀자를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열녀 중에는 또 ‘마당과부’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조혼(早婚)이 예사였던 시절에 혼례만 치르고 미처 시가(媤家)로 가기 전에 신랑이 죽는...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염상오는 1885년 11월 26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 646번지[항월1길 68]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손필규(孫弼奎), 김태오(金泰午), 이백순(李伯純), 이근옥(李根玉) 등이 주도하에 이루어진 이른바 ‘논산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대는 강경에서부터 논산으로 이동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논산읍내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광산김씨의 재실. 염수재는 유학자 김장생(1548~1631)을 모신 사당의 앞면에 있는 재실이다. 염수재의 건축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염수재 정문에 걸린 김재경 정려의 연대가 1864년(고종 1)인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이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염수재 뒤쪽으로 김장생 사당과 연결된 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광산김씨...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강경포가 마을 앞에 있어서 소금배가 드나들면서 소금을 쌓아 둔다고 하여 염촌(鹽村)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염대리(鹽垈里)·강변촌(江邊村) 일부를 병합하고 염정이라 하여 논산군 강경면에 편입하였다. 1931년 강경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강경읍에 소속되어 오다가 1947년 염천동...
-
문중이나 지역의 유림들이 특정 조상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에서 매년 기일에 거행하는 제향. 영당이란 향사(鄕祠)·사(祠)·이사(里祠) 등과 같은 곳이지만 위패가 아닌 특정 조상의 영정(影幀)을 봉안한 사우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조선 건국 후에 국가적 차원에서 사전(祀典)의 정비를 단행하면서 사대부가는 가묘를 설치하였고, 향촌에서는 기존의 무속적이거나 불교적인 제사를 음사로 규정하여...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지금의 영사암이 있는 터에 처음 절이 세워진 것은 고려시대로 추정되나 언제 없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 현재 영사암지에 있는 암자는 조선시대 1465년(세조 11) 문인 김철산(金鐵山)이 부모의 묘를 모시기 위해 건물을 짓고 암자에 ‘영사암(永思庵)’이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1875년(고종 12) 다시 고쳐 지었다고 한다. 부적면...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영은사지에 있는 조선시대 부도.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의 바랑산 북곡(北谷) 내에 위치하는 영주사는 최근에 새로 조성된 사찰로, 영은사(靈隱寺)라는 구사지(舊寺址) 위에 건축된 것이다. 사역 내의 대웅전 전면 북측에 부도 1기가 남아 있는데, 이 부도는 영은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영은사지 부도는 석종형(石鐘形)으로 기단과 탑신만 남아 있고,...
-
충청남도 논산시 건양대학교에서 부설하여 운영하고 있는 예학 관련 연구원. 예학교육연구원은 예학에 관한 모든 학문과 사상을 연구하여 한국 전통예학을 정리 심화시키고, 현대사회에 적합한 예문화를 정립하며, 예의 교육에 노력함으로서 한국의 학술문화 창달과 보급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7년 10월 개원하였으며, 2000년 3월 예절마당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예학...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다섯 개의 강물(냇물)이 마을 앞에서 합류한다고 하여 오강(五江)이라 하였는데, 노강서원(魯岡書院)이 여기에 있어 오강(五岡)이라 하였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장구면(長久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전리(平田里)·서변리(西邊里)·율리(栗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오강리라 하여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성평리에 있는 식음료 제조업체. 오뚜기삼화식품은 전통차와 기능차 등 각종 다류를 생산하여 내수 및 해외로 수출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77년 경기도 안양에 삼화식품공사를 설립하여 율무, 생강, 한약 등 농산물을 주원료로 하는 국산차를 최초로 개발, 제조하기 시작하였다. 1979년 경기도 이천으로 확장 이전하였고, 1983년 다시 충청남도 논산으로 확장 이...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에 있는 산지·구릉 등의 고지로 둘러싸인 분지.. 오산리 분지는 버팽이천을 끼고 동서 방향으로 둥글게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을 통해 논산천의 상류인 장선천의 충적지에 이어지고 있다. 오산리 분지는 대체로 해발고도 200~500여m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데, 대표적으로 북쪽의 바랑산(555.4m), 동쪽의 월성봉, 무수재 등이 있다. 분지의 지질을 살펴보...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는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 있는 가운데 낮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오미 또는 오산(鰲山)이라 하였다. 그 뒤 학자 이명봉(李鳴鳳)이 내려와 살면서 자신의 호(號)를 따서 오산(梧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촌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구산(鰲龜山)이 있으므로 오구미(五口味) 또는 오산·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백석면(白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오리(上梧里)·하오리(下梧里)·송산리(松山里)·부황리(夫皇里)의 각 일부와 노성군(魯城郡) 하도면(下道面) 노오리(魯五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오산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에 있는 조선 말기 판관 오일영의 불망비. 1888년(고종 25)에 판관을 지낸 오일영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불망비이다. 원두형 단갈로, 비의 석질은 화강암이다. 비신의 높이는 100㎝이고 폭이 42㎝이다. 비의 앞면에 ‘판관오후일영영세불망비(判官吳侯鎰泳永世不忘碑)’라 기록되어 있다. 인천리 은정자 밑에 세워져 있는 오일영 불망비는 작은 단갈로 길...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옥녀봉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군. 옥녀봉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금강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다. 금강이 옥녀봉 앞에서 휘돌아 흘러 넓은 강폭을 이루며, 잔잔한 물가에 물고기들이 노닐며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자연 경치를 즐기며 곳곳에 암각을 새겨 놓은 것이라 추측된다. 그리고 암각 해조문은 선박들의 왕래를 돕기 위해 조수가 들어오고 나가...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에 걸쳐 있는 산. 산봉우리가 마치 옥녀처럼 단정하다 하며, 옛날 선녀들이 여기에 내려와 놀다 가곤 했다고 한다. 옥녀봉은 높이가 411.7m이며, 논산시 가야곡면과 완주군 화산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왕암천의 발원지이다. 기반암은 옥천층군의 문주리층으로 주로 편암이 분포하고 있다. 옥녀봉 남서쪽에는 석회암이 협재되어 있...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에 있는 산. 옥녀봉은 논산시 강경읍 금강 변에 있는 낮은 야산이나 주변 일대가 금강 변의 넓은 평야 지대여서 실제보다 높게 느껴진다. 조선시대 은진현 서쪽 금강에 접한 지리적 요충지로서 산 정상에 봉수대가 있고, 아래에는 포구와 은진현의 세곡이 모이는 강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옥녀봉의 봉화는 남쪽으로는 익산군 용암면의 광두원산의 봉수, 북쪽으로는 황...
-
1919년 3월 10일의 제1차 옥녀봉 만세운동은 강경읍의 장날인 오후 3시경 엄창섭(嚴昌燮)이 주도하여 500여 명의 군중이 강경의 옥녀봉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하산하여 일본인이 거주하는 본정통(本町通)을 경유하여 강경시장을 일주하며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였다. 일본 경찰은 무력으로 진압했고 이날이 일본의 육군기념일이라 재향군인과 소방조를 동원하여 주동인물들을 체포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에서 발원하여 읍내리에서 노성천에 합류하는 하천. 2010년 말 현재 옥천은 지방2급하천으로 본류는 금강이고, 제1지류는 논산천이며, 제2지류는 노성천이다. 유로 연장은 2.4㎞이고, 유역 면적은 3.34㎢이다. 옥천은 논산시 북부의 노성산(348.1m)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1㎞ 정도 흐르다 동쪽으로 유로를 변경하여 노성천에 합류하는 비교적 짧은 하천...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마을에 기와점이 있어서 오얏골 또는 와야리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송산면(松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촌리(校村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와야리라 하여 논산군 은진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은진면 와야리가 되었다. 서부와 남부는 20여m의 낮은 구릉성...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연산군 외성면 지역으로, 덕평·부황·다오개·관학·목동·용구산·신외·서당동·상외·분동·잔포·중외·하외·정외의 14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외리·븐동·잔포(잔포)·중외·하외·정외의 각 일부와 적사곡면의 감곡리 일부, 부인처면의 산소리·신삼거리를 병합하여 외성리라 하고 논산군 부적면에 편입하였다. 외성리와 상외성...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어은리에서 발원하여 오산리에서 연산천에 합류하는 하천. 계룡산 남쪽 능선에 해당하는 윗산명재 서사면에서 발원하는 하천이다. 연산면 북부에서 남쪽으로 흘러 장전리에서 동쪽으로 유로를 바꾼 뒤 오산리에서 연산천에 합류한다. 주변이 200~300여m 산지와 낮은 구릉, 하안단구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곡저평야가 잘 발달되어 있고, 하천의 양안에는 인공제방이 축조되...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골짜기에 큰 바위가 깔려 있어서 왕바위 또는 왕암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하두면(下豆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강리(斗江里)·가동리(柯洞里)의 각 일부와 상두면(上豆面) 육곡리(六谷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왕암리라 하여 구자곡면(九子谷面)에 편입하였다. 1962년 11월 21일 가야곡면에 편입되었고, 19...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왕암리 부근에서 발원하여 은진면 성덕리에서 논산천에 합류하는 하천. 왕암천은 가야곡면 왕암리 부근에서 발원하여 북서부 일대에 곡저충적지를 전개시킨 뒤, 연속해서 은진면과 부적면의 면계를 이루면서 은진면 성덕리 근처에서 논산천에 흘러든다. 왕암천 상류부에는 하천 유역을 따라 배후습지 및 하성단구면에 나타난다. 2010년 말 현재왕암천의 유로 연장은 12.8㎞...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 있는 호수. 왕암호 주변 지형은 동쪽의 증토산과 서쪽의 통박산 지류에 둘러싸인 산악지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암호 주변 증토산의 산세가 험함에도 불구하고 0~15°가 50.4%를 차지하여 주로 산악지형을 제외한 대부분이 남~북 방향으로 5° 이하의 완경사를 이루고 있다. 주변의 임상은 주로 혼효림·침엽수림·소나무림이 골고루 분포하며, 남~북 방향으...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군과 격전을 벌일 때의 일이다. 하루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철관을 쓰고 바다에 들어가자 닭이 울고 수만의 집에서 방망이 소리가 요란한 꿈을 꾸었다. 그런데 지금의 부인리에서 살던 무당이 해몽을 하기를,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진 것은 임금 왕(王) 자를 의미하며, 철관 방망이 소리는 등극...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왕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인성으로 꿈을 키워가는 학생,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학생, 자기의 소질을 계발하는 학생,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학생, 공동체의 발전에 참여하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왕전초등학교는 1952년 5월 3일에 광석국민학교 왕전분교로 개설되었으며, 1953년 4월 30일에 왕전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80년...
-
고려 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 해적의 총칭. 우리나라와 중국의 해안 지역에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옛 일본 해적을 총칭하여 왜구라고 한다. 일찍이 삼국시대에도 우리나라에 일본의 해적이 침입한 바 있지만 침입 규모나 피해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친 시기에는 거의 해마다 침입했고 피해도 막대하여 ‘왜인(倭人)들이 노...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외성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외성감리교회는 1907년 배세라가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경천교회 소속 신현구로부터 전도를 받아 건립하였으며, 건립 당시 교회의 명칭은 기독교 미연회 조선감리회 공주지방 외성교회였다. 1936년 3월 24일 배세라는 자신의 집에다 예배소를 정하여 남녀 10여 명과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함석으로 된 면적 72.6...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외성산성이 있어 외잣·외재 또는 외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외성면(外城面) 지역으로 덕평(德坪)·부황(夫皇)·다오개(多五介)·관학(觀學)·묵동(墨洞)·용구산(用九山)·신외(新外)·서당동(書堂洞)·상외(上外)·분동(粉洞)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외리·분동·잔포리(殘浦里)·중외리(中外里...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계룡산 줄기인 향적산 국사봉(國師峰)의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용국사는 1946년 승려 박보명에 의해 창건되었다. 1946년 해방을 맞아 귀국한 박보명이 절터로 적합한 곳을 찾다가 토굴을 만들어 거주하면서 예불을 올리기 시작했다. 몇 년 후 박보명이 세상을 떠나고 승려 최진공이 오면서 대웅전, 삼선각, 요사채 등의 건...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부터 마을 뒤에 있는 산이 마치 용이 누워 있는 형국처럼 보여서 용산리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대조곡면(大鳥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직리(山直里)·용와리(龍臥里)·세피리(世被里)·백양리(栢楊里)의 각 일부와 송산면(松山面) 교촌리(校村里)의 일부, 가야곡면 두월리(斗月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용산...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부황리에 있는 파평윤씨 충헌공파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윤원거·윤유·민준의 문집 판각. 조선 중기의 유학자 용서(龍西) 윤원거(尹元擧, 1601~1672)와 그의 아들 봉계(鳳溪) 윤유(尹揄, 1647~1721), 제자 성재(省齋) 민준(閔晙, 1642~1776)의 문집 판목 150판으로, 윤원거의 『용서집』, 윤유의 『봉계집』, 민준의 『성재집』...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채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용암사의 연혁을 확인할 만한 자료는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백제 말엽인 660년경 채운향(彩雲鄕)에 낙안사(落雁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이 용암사의 전신(前身)이었다고 한다. 낙안사는 고려 말기에 강경 옥녀봉에 옮겨 세워졌고, 절 명칭을 용암사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5년 후 다시 본래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정초나 정월 14일에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의례. 논산 지역에서 용왕제는 흔히 요왕제·유왕제·유황제·샘고사 등으로 불린다. 여기에서 용왕이란 수신(水神)의 상징적인 존재인 용(龍)을 지칭한다. 따라서 용왕제를 지내는 장소는 물과 관련된 곳, 즉 마을의 공동우물을 비롯하여 깨끗한 샘이나 시냇물, 방죽, 계곡 등 매우 다양하다. 용왕제는 부녀...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꽃이 많이 피는 용머리 산이 있다고 하여 용꽃·용화 또는 상리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화산면(花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순촌(筍村)과 대조곡면(大鳥谷面) 토현(兎峴)의 일부를 병합하고 용화리라 하여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채운면 용화리가...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시대 절터. 상월면 산성리에서 상도리를 거쳐 신원사 방면으로 도로를 따라 5㎞가량 가면 오른쪽에 용화사지가 있다. 신원사에서 남쪽으로 약 1㎞ 떨어진 계룡산 서쪽 줄기의 남쪽 비탈면에 해당한다. 절터에 새로 조영된 용화사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절터 가운데 암벽에는 마애불 1구가 새겨져 있다. 절터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기와가 대부분...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 용화사지 주변에서 확인된 시대 미상의 불상 머리 부분. 용화사지 불두는 용화사지의 사역(寺域) 뒷면 계룡산 서쪽 사면에 약 165.29㎡ 규모의 평탄 대지에 자리하고 있다. 용화사지 불두는 본래 현 위치에서 위로 5m 떨어진 거리에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목 부분 이하는 결실되었고, 머리에 육계(肉髻)의 형태가 있는데 절단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에 있는 산의 형태가 마치 소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소골이라 불리다 후에 우곤이라 불리게 되었다. 본래 석성군(石城郡)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리(上里)·월외리(月外里)·포전리(浦田里)와 서당동(書堂洞)의 각 일부와 비당면(碑堂面)의 옥산리(玉山里) 일부와 현내면(縣內面)의 창리(倉里)·남산리(南山里)의 각 일부...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부터 신선객의 요람지로 꼽히던 곳으로, 이상적인 잘사는 나라가 되었을 때 도읍지로서 임금터가 될 것이라고 전해 오는 말에 따라 마을 이름도 임금터 또는 우기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도곡면(道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화리(梨花里)·토양리(土良里)의 각 일부와 대조곡면(大鳥谷面) 방축리(防築里)의...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토양리에 있는 동물용 의약품 제조 업체. 우성양행은 가축의 성장을 촉진하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우수한 사료 첨가제를 생산하여 사료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우수한 품질의 동물약품과 페트 푸드(PET FOOD)를 보급하여 축수산업 및 페트(PET)산업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79년 8월 주식회사 서광양행으로 창립하였다. 같은 해 10월 주식회사...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 있는 서북광산에서 채광하는 규산염 광물. 운모는 화강암 가운데 많이 들어 있는 규산염 광물의 하나이다. 단사 정계에 속하는 결정으로, 흔히 육각의 판(板) 모양을 띠며 얇은 조각으로 잘 갈라지는 성질이 있다. 백운모와 흑운모·견운모 등이 있는데, 백운모는 유리의 대용·전기 절연체 따위로 널리 쓰나 흑운모는 그다지 잘 쓰지 않는다. 운모는 오늘날 절...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의 금강 지류와 앞바다에 서식하는 멸치과에 속하는 물고기. 웅어는 갈대 속에서 많이 자라서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어(葦魚, 갈대고기)라고도 한다. 강경에서는 우여, 의주에서는 웅에, 해주에서는 차나리, 충청도 등지에서는 우어라고 불린다. 몸길이는 약 22~30㎝이다. 몸통은 가늘고 길며 배의 모서리 부분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꼬리는 가늘며 길다. 입은 커...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성동면에 행인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수탕원(水湯院)을 두었는데, 이 수탕원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석성군(石城郡) 원북면(院北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동리(下東里)·하서리(下西里)·중리(中里)·소죽리(小竹里)의 각 일부와 우곤면(牛昆面) 상리(上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원남리라 하여...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안에 원형인 산봉우리가 있어 두리봉 또는 원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석성군(石城郡)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리(中里)·하리(下里)·화정리(花亭里)·야동(冶洞)의 각 일부와 은진군(恩津郡) 성본면(城本面) 해창리(海倉里)의 일부와 노성군(魯城郡) 광석면(光石面) 입석리(立石里)·논산리(論山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정지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절을 알고 바르게 실천하는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창의적인 학생, 소질을 찾아 꿈을 키워가는 학생, 서로 돕고 사랑하며 봉사하는 학생, 몸과 마음이 건강한 학생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60년 4월 23일 원봉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82년 3월 8일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6년 3월 1일 현재의 원봉초등학...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수탕원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원북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석성군(石城郡)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산리(缶山里)·장상리(壯上里)·양상리(陽上里)·갈산리(葛山里)·음상리(陰上里)·도리(島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원북리라 하여 성동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성동면 원...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불교 계통의 신종교. 원불교는 소태산 박중빈(朴重彬, 1891~1943)의 대각으로 1916년 4월 창립된 한국의 민족 종교이며, 그 연원은 불법에 두되, 종교개혁·인간개혁·사회개혁을 추구하는 신종교이다. 원불교의 기본 교리는 일원상(一圓相)·사은(四恩)·사요(四要)·삼학(三學)·팔조(八條)·사대 강령 등이다. 현재 전라북도 익산시에 중...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원불교 산하 수련기관. 원불교 삼동원은 원불교 교조 박중빈 대종사의 일원대도를 바탕으로 하고 제2대 정산 종법사가 제창한 삼동윤리 정신을 실천하여 모든 종교와 민족과 사상의 장벽을 트고 누구나 수도할 수 있는 도량 건설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1959년 정산 종법사의 지시로 충청남도 논산군 두마면의 신도안 대궐터를 매입하여 1960년 9월 1일에...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월오리를 흘러 노성천에 합류되는 하천. 계룡산지 서편은 남북 방향의 구조곡이 형성되어 있으며, 월산천은 이 구조곡의 서쪽 산지를 개석하고 있다. 노성천과 합류 지점에 중평들로 불리는 넓은 충적지를 형성하고 있다. 2010년 말 현재 월산천은 본류는 금강이고, 제1지류는 논산천이며, 제2지류는 노성천이다. 유로 연장은 3.69㎞이며, 유역 면적은 6.34㎢이다...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부터 성벽에 비추어진 달빛의 수려함이 으뜸이라 하여 월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석성군(石城郡) 원북면(院北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상리(東上里)·서상리(西上里)·송촌리(松村里)와 삼산면(三山面) 대하리(大下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월성리라 하여 성동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2월 17일 월성3리가 분리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월성리 월명산에 있는 시대 미상의 산성. 월성리 산성이 자리한 월성리 일대는 논산 강경 일대에 펼쳐져 있는 이른바 논강평야의 일부로, 주변 지역이 드넓은 평야로 되어 있다. 이 평야 지대에 해발 70m의 월명산이 있다. 월성리 산성은 월명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월명산은 해발 70m에 불과하지만 주변 지역이 온통 평야로 되어 있어 주변을 손쉽게 내려다볼...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와 벌곡면 덕곡리·수락리에 걸쳐 있는 산. 월성봉은 월성봉이라는 봉우리 이름보다 월봉성, 다리성 등 성채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고려 때 토적(土賊) 달리(達里)가 이곳에 웅거하며 노략질이 심하여 관군이 포위한 지 한 해가 지나서야 겨우 토벌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토성(土城)에 달이 비치면 그 고요함이야말로 숨을 죽이는 듯했고, 성벽에 비친 달빛...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있는 계룡산(鷄龍山)의 모양이 마치 달과 같이 보인다고 하여 다리실 또는 월오동이라 불렀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월오면(月午面) 지역으로, 산성(山城)·원동(院洞)·주막(酒幕)·학당(鶴塘)·통산(通山)·중리(中里)·낙동(樂洞)·신리(新里)·충보(忠洑)·당산(當山)·산소(山所)·왕정(旺井)의 12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어은리와 계룡시 엄사면 도곡리 경계에 있는 고개. 산명재와 능선을 함께하며 상산티[上山峙]로 불렸기 때문에 윗산명재라고 불렸다. 윗산명재는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진 고개이며, 계룡산 남쪽 능선에 해당하는 향적산(574m) 남쪽에 위치해 있는 고개이다. 북쪽에 산명재, 남쪽에 아랫산명재가 있다. 윗산명재의 서북쪽 사면에는 계룡산 남부 능선에서 발원한 주천과 세천...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보급된 유학을 종교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 유교는 공자를 시조(始祖)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으로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한다. 삼강오륜을 덕목으로 하며 사서삼경을 경전으로 한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며, 수천...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6월 15일에 지내던 명절. 유두(流頭)인 음력 6월 15일은 흔히 유월명절이라고 한다. 유두는 연중 가장 바쁜 시기로, ‘미끈유월’이라는 말처럼 이맘때가 되면 두레의 김매기로 짬이 없다. 밭농사도 마무리 손길로 분주한 때이다. 현재 유둣날의 세시풍속은 오래 전에 소멸되어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우며, 이는 논산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별미로 먹던 밀국수는...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휴계(休溪). 하정공파(夏亭公派)로 아버지는 유신민(柳信民)이다. 유제민(柳濟民)과 유정민(柳定民)이 종백부이며, 유문원(柳文遠)은 종질이다. 유무는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병자호란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연산에 칩거하였다. 나라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잠시 찰방에 봉직한 후 곧 사직하...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문화(文化). 하정공파(夏亭公派)로 유제민(柳濟民)과 유정민(柳定民)이 숙부이며, 유무(柳懋)의 종질이다. 유문원은 원래 유무가 배향된 연산의 휴정서원(休亭書院)에 배향되어 있었다. 휴정서원은 처음에 유무만 배향하였으나 뒤이어 유문원을 배향하였고, 1735년에는 이항길(李恒吉)을, 1751년에는 김정망(金廷望)과 권수를 배향하였다. 휴정서원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명재 윤증의 영정을 모신 사당.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3㎞를 가면 병사교가 있다. 이곳에서 남서쪽 소로를 따라 300m 정도 가면 유봉마을에 이르는데, 이곳에 유봉 영당이 자리 잡고 있다. 기호 유현이자 성리학의 대가로서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1629~1714)은 40세 때 병사리로 낙향하여 강...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유연의 묘소 앞에 세워진 묘표. 유연(柳淵)은 통정대부를 지내고 노성면 병사리로 낙향하여 살았다. 아들이 있었지만 후사가 없었다. 두 딸을 두었는데 한 명은 청주한씨에게, 다른 한 명은 파평윤씨에게 출가하여 재산을 두 딸에게 분재하였다. 병사리에는 파평윤씨들이 오래전부터 세거하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유연의 묘와 큰사위인 한여헌 묘,...
-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학령기 전 어린이 교육 담당 기관. 유치원은 「교육법」에 의해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취학하기 전까지의 유아를 교육하고자 설치, 운영되는 교육부 관할의 교육기관이다. 유치원은 재정 형태에 따라 공립과 사립으로 구분된다. 공립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주를 이루며, 사립은 개인, 법인, 종교단체 등 설립 주체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있다. 세계 최초의 유치원은 18...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감곡리에 있는 폴리에틸렌 제품 제조업체. 1990년 유니온포리마케미컬(주)로 창업하였다 1997년 유피씨(주)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5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자본총금액은 52억 8769만 원, 매출액은 422억 5055만 원이며, 일본·미국·유럽·중국·동남아 지역에 수출하고 있다. 유피씨에서는 1회용 기저귀와 생리대에 사용되는 통기성...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육곡감리교회의 시작은 논산 지역의 토착 세력이었던 부여서씨 서기훈·서일선·서성선 등 종중의 청년들과 장남진 등이 1904년 3월 15일 당시 일본군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직접 남장로교의 황화정교회와 접촉한 다음 예배인도자들을 초청하여 대종가(大宗家) 집을 빌려 예배를 올리면서 설립되었다. 초기 육곡감리교...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제 때 덕은(德恩)이란 고을이 있었던 곳으로. 태봉산을 등지고 뻗어 내려온 야산에 낮은 골짜기 6개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백제의 덕은고을이 있던 곳으로 조선 3대 태종 때 은진(恩津)에 속했다가 상두면(上豆面)에 편입되어 여수울·여술·육곡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두면(下豆面) 야촌리(野村里)의 일부를 병...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있는 육군 훈련병 양성소. 육군훈련소는 6·25 전쟁 당시 제주도에 위치한 제1훈련소가 훈련장과 병영 시설 등 제반 여건이 미비하고 보급 및 수송에 불편함이 있어, 기본전투 수행 능력을 구비한 보충 병력을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양성하기 위하여 창설되었다. 1951년 11월 1일 제2훈련소가 창설되었으며, 1960년 4월 1일에는 제2군사령부에 예속되었다. 1...
-
충청남도 논산시 부창동에 있는 6·25전쟁 참전 용사들을 위한 보훈단체. 6·25참전전우회 논산시지회는 6·25전쟁을 재조명하여 참전용사의 명예 선양과 호국정신을 계승하고, 해외 참전 국가의 유대를 강화하며, 전후 세대의 국가관 확립 및 호국안보 의식을 고취시켜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89년 3월 6·25참전호국동지회가 결성되었다. 1990년 3월 창군 및 6·25...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경교의 묘비. 윤경교는 파평인으로 자는 양일, 호는 장호이다. 윤황의 증손이며, 윤변의 아들로 1632년(인조 10) 9월 18일에 태어났다. 1657년에 진사에 합격하였고, 1663년 식년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지평에 이르렀으며, 1670년(현종 11) 문학이 되었다. 남인 허적을 탄핵하다 갑산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 1681년 공...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경중(敬仲), 호는 남애(南厓)·유당(柳塘). 증조할아버지는 장령을 지낸 윤순거(尹舜擧)이고,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윤혜교(尹惠敎)이다. 1744년(영조 20)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해주판관으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45년 세자시강원사서·홍문관부수찬·사간원헌납 등을 거쳐 1748년 홍문관부교리·홍문관수찬, 175...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동만은 1898년 현재의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서 출생하여 자전거 상점을 운영하였다. 1919년 3월 10일 강경 지역의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 교사 엄창섭(嚴昌燮)의 주도 아래 이루어진 이른바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윤동만은 엄창섭, 추병갑(秋炳甲), 고상준(高相俊) 등 시위주도자들과 함께 10일 오후 3시가 되자 옥녀봉에...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사임(士任). 증조할아버지는 윤순거(尹舜擧)이고, 아버지는 윤덕교(尹德敎)이다. 윤증(尹拯)의 문인으로 1713년(숙종 39) 진사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을 거쳐 세자시강원사서·홍문관수찬·사헌부지평·사간원사간을 역임하였다. 이어 의정부사인·사간원대사간·공조참판 등을 지냈고, 1753년(영조 29) 한성부판윤에 올...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망(汝望), 호는 석호(石湖).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합격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승정원주서·세자시강원설서·예조좌랑·병조좌랑을 거쳐 제천현감·춘추관수찬관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문거의 묘비. 윤문거의 자는 여망이고, 호는 석호이며, 본관은 파평으로 팔송 윤황의 아들이다. 김집의 문인으로 1630년(인조 8) 생원이 되었고, 1633년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검열, 설서, 낭관, 정언, 부수찬, 부교리 등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과의 화의가 그릇됨을 주장하고 끝까지 싸워 나라를 지킬 것...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윤문거의 묘소. 윤문거는 본관이 파평(坡平)이고 자는 여망(汝望)이며 호는 석호(石湖)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의 딸이다.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과 교유하였으며, 조익(趙翼), 김상헌(金尙憲) 등에게도 배웠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 상정마을에 있는 윤문거의 신도비. 윤문거의 본관은 파평으로, 자는 여망이고 호는 석호이다. 대사간 윤황의 아들로 태어나 1633년(인조 11)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설서, 낭관, 정언 부수찬, 부교리 등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부친을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가 임금을 호종하였다. 1639년 부친상을 당하여 3년간 상을 마친 후에...
-
논산 출신의 극작가·소설가·영화감독. 윤백남은 1888년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서 태어났다. 윤백남은 예명이며 본명은 윤교중(尹敎重), 아명은 윤학중(尹學重)이다. 그는 1901년 경성학당 중학부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웠고, 일본의 와세대대학 고등예과를 거쳐 정경과에 진학하였다가 동경고등상업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했다. 그는 동경 유학 시절에 일본 현대문학을 섭렵하면서 당시...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상긍은 1893년 11월 9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 93번지[상월로 610-32]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10월 11일 광복단(光復團) 전라, 경상, 충청 3도의 책임자 김국경과 함께 조선총독부 정무총감(政務總監)을 암살하기 위해 논산에 온 충남지단장 박재옥을 만나 광복단 단원으로 가입하였다. 이때 충남지단 통신원으로 임명되...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상기는 1889년 5월 3일 현재의 논산시 광석면 천동리 17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1월 중국 길림 지방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군 단체인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군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충청남도 지역에서 백남식, 임종귀, 윤태병 등과 함께 비밀조직인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을 조직한 뒤 전국을 다니며 인쇄물 배포를 통해 독립과 항일의식...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 원고개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윤상정의 정려. 윤상정은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자는 익삼(益三)이며, 생원에 합격한 인물이다. 어머니가 병으로 누웠을 때 항상 어머니의 분뇨를 직접 처리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증직하고 1891년(고종 28)에 명정하여 효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
-
조선 중기의 문인.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길보(吉甫), 호 미촌(美村)·노서(魯西)·산천재(山泉齋).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윤문거(尹文擧)가 형이며, 윤증(尹拯)이 아들이다. 1633년(인조 11) 식년문과에 형 윤문거와 함께 급제하였다. 1636년 청나라 사신이 입국하자 성균관의 유생들을 모아, 사신의 목을...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공주(公州). 아버지는 이장백(李長白)이며, 남편은 미촌(美村) 윤선거(尹宣擧)로서 파평윤씨(坡平尹氏)이다. 윤선거 처 공주이씨는 윤선거에게 시집을 와서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로 피신을 하였다. 청군의 공격으로 강화도가 함락되고 포로로 잡힐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되자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자결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선거 처 공주이씨에게 내려진 정려. 노서 윤선거(1610~1669) 처 공주이씨는 공주의 토성이자 명문가인 생원 이장백(李長白)의 딸로 태어나 19세가 되던 1626년(인조 4)에 윤선거와 혼인하였다.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편 윤선거와 함께 강화도로 피난하였는데, 1637년 강화도가 함락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수의 묘표. 윤수는 파평인으로 윤창세의 장남이다. 자는 명숙, 호는 운봉으로, 아들이 없어 윤황의 아들 윤순거가 양자로 들어와 대를 이었다. 명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죽주도호부사를 지냈고 후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윤수가 죽은 지 17년 지났을 때 묘표를 세워 자손들이 알아보도록 하게 해달라는 윤덕요의 요청에 윤순거가 명을 썼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윤순거의 묘역. 윤순거(尹舜擧, 1596~1668)의 자는 노직(魯直), 호는 동토(童土)이다. 아버지는 윤황(尹煌)이나 큰아버지 윤수(尹燧)에게 입양되어 성장하였다. 윤순거는 파평윤씨의 정신적 전통과 인물 양성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파평윤씨 종학당을 건립하고 집안의 자제들을 가르쳤으며, 병사 종중과 규약의 기반을 마련하는 등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순거의 신도비. 윤순거(1596~1668)는 자는 노직(魯直)이고, 호는 동토(童土)이다. 윤황의 아들로서 어려서는 성문준에게 수학했고, 시는 강항에게, 예는 김장생에게 배웠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였는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아버지 윤황이 귀양가고, 숙부는 강화도 싸움에서 순절하자 집안과 나라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 봉곡서원에 있는 조선시대 선비 윤용병의 청렴비. 윤용병은 청렴한 선비로, 도박과 내기를 싫어하고 청렴하게 살았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은진현 유림들이 연무읍 고내리 봉곡서원 바깥마당에 다른 비들과 함께 나란히 청렴비를 세웠다. 비의 형식은 귀접이 단갈로, 비의 규모는 높이 100㎝, 폭 40㎝, 두께 16㎝이다. 비의 앞면에 ‘사인윤용병견도청렴비(士人...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이병은 1885년 11월 1일 현재의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 영선사주사(營繕司主事)로 있을 때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여러 차례 복수토역소(復讐討逆疏)를 올렸다. 한편 고종의 밀령을 받아 명성황후 시해의 진상을 조사 보고하고 정부 내의 친일세력을 숙청하려다 실패했다. 1903년 5월에는 청국(淸國) 동순태(同順泰)의 상표(...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윤창세의 묘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는 노종 5방파의 아버지이며, 파평윤씨가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던 윤창세의 묘비가 세워져 있다. 윤창세는 처음 논산으로 이거한 파평윤씨 윤돈의 아들로 노성면 병사리로 처음 터전을 옮긴 인물로서, 평소 효심이 깊어 자손과 제자들로부터 효렴공(孝廉公)이라 불렸으며, 나라에 대한 충절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시대 파평윤씨 묘역과 묘비. 윤창세 선생 묘소 일원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싸우다가 진중에서 전사하여 훗날 이조참판으로 추증된 윤창세의 묘소가 제일 먼저 자리 잡은 곳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와우형(臥牛形)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 묘소가 마련된 이후 윤창세의 자손들은 노종 5방파로 발전하였다. 묘역에는 노종 5방파 직계 선조...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태병은 1889년 9월 17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1월 백남식·임종귀 등과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을 조직하여 중국 길림 지방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군 단체 북로군정서를 도와 조국 독립을 달성하자는 데 뜻을 같이 두었다. 이를 위하여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에 힘을 쏟았다.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홍중은 1875년 8월 18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257번지[노성로 321-13]에서 출생하였다. 1898년 일제의 강제 단발령에 저항하여 항일시위를 한 이후 본격적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07년에는 서울에서 동우회(同友會)를 조직하고 결사대를 구성하여 항일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때 윤홍중은 체포되어 1개월간 구...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노곡(魯谷). 아버지는 윤창세이며, 장인은 성혼이다. 슬하에 8형제를 두었는데 후손들이 매우 번성하여 14명의 대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윤순거·윤문거·윤선거·윤증 등 호서 유림의 큰 줄기를 이룬 이들이 모두 이 가계에서 나왔다.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윤황의 묘비.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파평윤씨 노종 5방파 중의 한 사람인 문정공(文正公) 윤황(尹煌)의 묘비로, 가계와 행적, 그가 올렸던 상소문의 내용들이 새겨져 있다. 윤황은 윤창세(尹昌世)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우계 성혼의 문인으로 글씨를 잘 썼다. 인조 때 문신으로 활약하였는데 병자호란 당시 김상헌 등과 척화를 강력히 주장...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윤황의 묘소와 묘비. 윤황(尹煌, 1572~1639)은 윤창세(尹昌世)의 둘째 아들로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1597년(선조 30) 장원 급제한 후 벼슬길에 나아가 봉상시정(奉常寺正)·군기감정(軍器監正)을 거쳐 동부승지·이조참의·전주부윤을 지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과 1636...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윤황의 묘역. 윤황은 노성면 병사리에 세거의 기반을 마련한 윤창세의 둘째 아들로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宋),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노성의 파평윤씨 가문은 우국충절의 사족 가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데 윤창세의 다섯 아들은 노성을 중심으로 번성하여 노성 오방파로 불렸으며, 오방파 중에서도 윤황의 직계들이 가장 번성하...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밤나무가 많은 지역이라 해서 밤골이라 부르다가 후에 율리로 바뀌었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장구면(長久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직리(山直里)를 병합하고 율리라 하여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광석면 율리가 되었다. 행정구역은 율1리와 율2리, 율3리로...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이나 명절에 윷가락을 던지고 말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 윷놀이는 주로 마을회관이나 공터에 모여서 한다. 윷놀이에는 윷판과 윷이 필요한데, 논산 지역에서 사용되는 윷은 길이 15~20㎝쯤 되는 ‘장작윷’이다. 또한 길이 3㎝ 내외의 ‘종발윷’도 있다. 이는 윷가락을 작은 종지나 종발에 담아 손으로 움켜쥐고 흔들다가 바닥에 뿌리는 방식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있던 조선 후기 은진 미내에 석교를 세운 것을 기념한 비. 조선 전기에 충청도와 전라도를 잇는 옛길이 있었고, 큰 냇물이 흘러 작은 돌다리를 놓아 통행하였다. 어느 해 큰 홍수가 나고 다리가 유실된 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주민들의 통행에 많은 불편을 주었다. 관청에서도 손을 대지 않자 이 고을 석설산과 송만운을 중심으로 황산의...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에 있는 고려 시대 불상. 은진 관촉리 비로자나석불입상은 높이 340㎝의 화강석으로 만든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이다. 낮은 육계(肉髻)를 지닌 머리는 윤곽이 뚜렷하며, 귀가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얼굴은 둥그렇고 풍만한 모습을 지녔는데, 이마의 정중앙에는 백호공이 선각되어 있고, 눈썹을 선명하게 음각으로 표현하였으며, 그 아래 은행알 형태의 눈을 표현하고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토양리에 조성된 농공단지. 농공단지는 1984년 제정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을 근거로 농촌 지역에 조성된 소규모 공단을 의미한다. 주로 도시와 농어촌 간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농촌의 유휴 인력을 이용한 농산물 임가공·섬유 업체 등을 유치하고 있다. 공해 업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업종 제한이 없다. 은진농공단지는 농촌 유휴 인력을 산업 인력으로 활용함으...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면. 조선 전기 덕은군과 시진현이 합하여 은진현(慇津縣)이 되었다. 덕은군은 백제시대에 덕근군(德近郡)이라 하던 것을 신라 경덕왕 때 덕은군(德殷郡)이라 개정하고 고려 전기에 다시 덕은군(德恩郡)이라 고쳤다. 시진현(市津縣)은 본래 덕은군(德殷郡)의 영현(領縣)으로 가지내현(加知奈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시진현이라 하고 고려 현종 9년에 덕은(德恩)과...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시대 구읍취락. 논산시 은진면에 있는 연정(蓮亭)의 서쪽에 위치하여 연서라 부르게 된 연서리는 은진면의 면소재지로 조선시대에는 현감이 집무하는 동헌이 있었던 구읍취락(舊邑聚落)이다. 지금은 은진면사무소·은진치안센터·은진보건소·농촌지도소·은진농업협동조합·은진초등학교·은진우체국 등 각종 기관이 들어서 있다. 은진면은 조선시대 은진현이었다. 13...
-
송대원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은진송씨는 송대원(宋大原)을 시조로 한다. 본래 은진송씨는 여산송씨의 시조인 송유익(宋惟翊)의 동생 송천익(宋天翊)에서 비롯되나 송천익 이후의 계보가 실전되어 송천익의 후손으로 고려 후기 판원사를 지내고 은진군에 봉해진 송대원을 시조로 해서 은진(현 논산시 은진면)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전한다. 은진송씨는 조선시대 재상 2명,...
-
임자미를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은진임씨는 임자미(林自美)를 시조로 하는데, 임자미는 고려 숙종 때의 인물로 본래는 평택임씨였으나 시진군에 봉해진 후 은진을 본관으로 삼아 분적하였다. 은진(현 논산시 은진면)은 조선시대 들어서 시진과 덕은이 합쳐 된 덕은이 세종 때 개칭된 이름이다. 임자미 이후 계보를 밝힐 수 없어 고려 후기 조청랑(朝請郞)·태상박사를 역임한 임...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소질을 계발하는 어린이, 이치를 탐구하는 어린이, 아름답게 표현하는 어린이 양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0년 4월 6일 은진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1960년 4월 6일 성덕국민학교로 분리 개교하였으며, 1973년 12월 27일에는 시묘국민학교로 분리 개교하였다. 199...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 은진초등학교에 있는 조선시대 귀부석. 은진초등학교 소재 귀부석은 은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두 그루의 고목 사이에 놓여 있다. 귀부석은 한 개의 석재에 조각되어 있는데, 아래 3분의 1 가량은 땅에 묻히는 부분으로 자연 석재 그대로 남아 있다. 머리는 90도 옆으로 돌린 형태로 눈, 코, 입, 이빨이 조각되어 있다. 입에는 구슬을 물고 있고, 눈과 코...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논산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2.36㎞ 가다 보면 은진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은진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0.75㎞ 가면 향교길이 나오고, 여기서 다시 좌회전하면 은진향교가 나온다. 은진향교는 15세기 익성군의 묘소가 있는 은진면 용산리에 세워졌다.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조선 전기와 중기 충청남도 논산시 일원에 설치된 행정구역.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호서읍지(湖西邑誌)』 등의 옛 지리지나 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기술한 형식과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나 연혁, 호구,...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던 조선 전기 은진현 관아 터. 일제강점기 관아에 보통학교가 설립되면서 관아 유적이 많이 파괴되었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작성된 『은진지도』에 의하면, 외삼문·내삼문·아사·외노방·군고·형청·누상고·사령방·책실·내아문·내아·읍창·창고·향청·관청·장청병현사·작청·삼문·객사·옥 등의 관아 관련 시설물이 표기되어 있다. 이 지도를 통하여 관아시설의 구조...
-
충청남도 논산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민간 서예 단체. 은천서회는 회원들의 창작 역량 강화와 논산 지역 서예 발전을 위해 설립하였다. 서예가 은천(恩泉) 윤여익(尹汝益)이 논산 지역에서 운영해 온 은천서실에서 문하생으로 수학했던 서예인들이 중심이 되어 1984년 은천서회가 결성되었다. 역대 회장으로는 이용교, 한윤택, 윤용하, 윤여신, 박희성, 김철기 등이, 역대 부회장으로는...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외성리와 연산면 임리 경계에 있는 고개. 을목재는 대체로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능선 부분에는 시대 미상의 석영 반암 및 규장암이 관입되어 있다. 북쪽으로 성태봉(119.3m)에 이어지며, 남쪽으로 수락산(150m), 고정산(145m)에 이어지고 있다.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고개이며, 북쪽에 연산천이 흐르고 있다. 을목재는 논산시 시가지로부터...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노성현(魯城縣)의 소재지여서 읍내(邑內)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노성현(魯城縣) 읍내면(邑內面)으로 교촌(校村)·신촌(新村)·죽촌(竹村)·천아동(天牙洞)·송아(松牙)·송당(松堂)·월명(月明)·왕림(旺林)·상반(上盤)·무정(武亭)·남산(南山)·홍문(紅門)의 12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정리·남산리·홍문리·상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19개의 비석군.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번영회관 앞에 비석 19기가 북동 방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시멘트 바닥에 일렬로 세워 놓아 아랫부분의 글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비석의 형태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호패형(戶牌形)으로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글자를 판독하기 어렵다. 2. 행현감이후승기영세불망비(行縣監李侯承紀永世不...
-
남민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의령남씨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원래 당나라 봉양부 여남(汝南) 사람이었다. 신라에 귀화하였는데, 신라 왕이 ‘여남에서 왔다’고 하여 ‘남’이라는 성을 하사하였다.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상신(相臣) 6명과 대제학 6명을 배출하는 등 가문의 격을 올렸다. 의령남씨의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의 개국공신 남재(南在)·...
-
외침을 물리치기 위해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조직되어 활동했던 민병. 의병은 국가가 외침으로 인해 위태로울 때 정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어나 싸웠던 민병을 말한다. 유사 이래 외침을 많이 당했던 우리나라의 경우 의병의 역사도 이미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활동을 보여준 의병은 조선시대의 임진왜란·정묘호란·병자호란 및 구한말의...
-
조선 중기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던 파평윤씨 노종파 의창지. 윤순거가 이이(李珥)의 석담사창지법(石潭社倉之法)의 예에 따라 불의의 재난과 일가집의 궁핍에 대비하는 대비책으로 의창(義倉)을 창설하였다. 즉 의창제를 문중 운영에 도입한 것이다. 윤순거는 문중의 선산과 재실의 운영, 묘사를 위하여 마련된 재정 조치로 의전을 마련하였다. 처음 의전(義田)은 윤순거가 5방파의...
-
근대 논산 출신의 효자. 이건두는 1882년 아버지 이상효와 어머니 순흥안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건두는 평생을 시골에 살면서 정성으로 부모님을 모셨으며, 부모님이 병들자 백방으로 약을 구해다가 고아드리고, 병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을 해드렸다. 1916년에 부친이 죽자 장례를 예대로 정성껏 모시고 3년 동안 한 번도 상복을 벗지 않고 성묘를 다녔다. 1923년 어머니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공겸 부부의 정려. 이공겸은 왕실의 종친으로 옥계도정(玉溪都正) 이현동(李賢童)의 증손이다. 이공겸과 그의 아내 민씨는 양촌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공겸 내외는 부친을 등에 업고 공주를 향하여 피난하기 시작했다. 연산 백석리에 이르러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왜병 무리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공겸...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효자와 열녀. 이공겸과 처 여흥민씨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현재의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 살면서 시아버지를 지극히 모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논산까지 이르게 되자 이공겸은 아버지를 등에 업고 피난길에 올랐는데 공주를 향하여 가다가 연산면 백석리에서 왜적과 마주치게 되었다. 이공겸의 아버지는 아들 내외를 살리려고 빨리 피신하기를 재촉하였으나 이...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효자 이관연의 비각. 이관연은 가평이씨(加平李氏)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친상을 당한 후에는 3년간을 하루같이 곡을 했으며, 어머니 광산김씨(光山金氏)가 병들자 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여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 때와 똑같이 행하니 효자 중의 효자라고 칭찬이 그치지 않았다. 후에 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광좌의 불망비. 이광좌는 경주 사람으로 호는 운곡(雲谷)이다. 이항복의 고손으로 1697년에 별시문과에 장원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신임사화 후에 노론을 제거하고 소론 정권이 수립되자 예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1755년 나주의 벽서사건으로 관작이 추탈되었다. 이광좌가 예조참판으로 있을 때 노성 지역을 지나면서 군민을 구...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이근석은 1898년 3월 23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대교면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에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었고, 논산 지역에서도 1919년 3월 10일과 3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독립 만세 시위가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이근석은 1919년 3월 20일 강경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독립 만세...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근오는 1901년 3월 22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심암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에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었으며, 논산 지역에서도 1919년 3월 10일과 3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독립 만세 운동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이근오는 1919년 3월 20일 강경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근옥은 충청남도 논산 지역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논산읍내에서 벌어진 독립 만세 운동에 태극기 제작 단계부터 참여하였다. 이근옥은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논산 지역에서 손필규·이백순·김태오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우선 시위에 필요한 태극기를 제작하였으며, 1919년 3월 12일 오후 3시경에 강경 지역에...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었고, 논산 지역에서도 1919년 3월 10일과 3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독립 만세 운동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송재기·이근석·이봉세 등은 1919년 3월 20일 강경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근태는 1919년 3월 20일 오후 5시경에 강경장...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춘담.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이기팔은 형제 5명과 우애가 남다르게 깊었으며 평생 부모님에게 효도하다가 부친이 병으로 위독해지자 혼신의 정성을 다하여 간병했으며 돌아가자 비통함이 극에 달해 실신할 정도였다. 장례 후에도 3년간 성묘를 정성껏 하여 인근에 효성이 자자하였다. 이기팔이 죽은 뒤 유림에서 그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기적...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순여. 효령대군 후손으로 형 이기팔과 함께 효행을 행하였다. 이기호는 유학의 예법을 몸소 실천하여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고 서로 도와가며 살았으며 부모님을 모시고 정성껏 봉양하였다. 부친이 병들자 온 힘을 다하여 간병하였다. 그러나 별로 효험이 없자 손가락을 베어서 수혈을 해드려 수일을 연명하게 했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한 겨...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남규는 1878년 9월 17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등리 47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3년 고종으로부터 소모사(召募使)의 직어(職禦)를 받아 국권회복의 기회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 임철규·이응숙 등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상하이[上海] 임시정부를 지원하기로 결의하고 충청남도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남규는...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내수는 1860년 8월 22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 416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홍주(洪州) 지역의 민종식(閔宗植) 의진(義陣)에 참가하여 국권회복운동에 힘을 쏟았으며, 1916년 7월에는 이내수 자신의 집에서 홍주 의진 출신인 이용규(李容珪)·이만직(李晩稙)·윤병일(尹炳日)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
-
조선 전기의 무신이자 가평이씨 논산 중시조. 가평이씨는 신라 말엽에 8세 이기문(李起文) 선대에 의거 조종(朝宗)으로 본관이 바뀌었고, 다시 조선 전기에 31세 이다림(李多林) 중시조(中始祖)에 의거 가평(加平)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관은 가평(加平). 할아버지는 고려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이며, 아버지는 도평의사사를 지낸 이침이다. 이다림은 여...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시대 은진현감 이도선의 불망비. 이도선이 은진현감의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은진현 주민들이 이도선의 선정을 기리고자 세운 비이다. 이도선 불망비는 연서리의 은진면사무소 마당에 세워져 있다. 이도선 불망비는 원래 은진면 교촌리 비석거리에 있던 것을 2004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비의 석질은 화강암이고, 비신의 크기는 높이 140㎝, 폭...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부사 이두현의 불망비. 논산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48㎞를 가면 논산시 연무읍이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약 2.94㎞를 가다 보면 고내리가 나온다. 이두현 불망비는 고내리 효죽골에 자리 잡고 있는 봉곡서원 바깥 담장 아래에 황화정비, 김상식 불망비 등과 함께 세워져 있다. 비의 석질은 화강암으로, 비의...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시대 은진현감 이민제의 불망비. 이민제가 은진현감으로서 지역민에게 선정을 베풀고 떠나자, 은진현 주민들이 그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불망비이다. 이민제 불망비는 원래 교촌리 비석거리에 있던 것으로, 2004년 은진면사무소 마당으로 이건, 보존하고 있다. 비의 석질은 화강암이고, 비신의 크기는 높이 110㎝, 폭 50㎝이다. 비의 앞면에 ‘현...
-
충청남도 논산시 충곡서원에 제향된 조선 중기 공신. 본관은 가평(加平). 자는 자선(子善), 호는 백봉(白峯). 19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분개한 이민진은 의병을 조직하였는데 그 수가 3,000여 명이나 되었다. 의병을 이끌고 당시 연산현감이었던 김홍익과 함께 전쟁터에 나갔다. 출전 당시 이민진은 검은 행전과...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민진의 묘비. 이민진 묘비는 병자호란 당시 외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이민진의 증직과 행적을 새겨놓은 묘비이다. 이민진 묘비는 병자호란이 끝난 지 200여 년이 지난 1838년(헌종 4)에 세워졌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200여 년이 지난 후인 1838년(헌종 4)에 이민진의 충절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정려를 하사받게 되었다. 이민...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3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이민진의 정려. 이민진의 본관은 가평, 자는 자선, 호는 백봉이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자, 의병 3천 명을 모아 연산현감 김홍익과 함께 전장에 나가 싸웠다. 당시 29세의 이민진은 출전할 때 죽기를 맹세하고 검은 행전과 버선을 신고 나갔다. 그러나 광주 험천 지방에 이르러 적을...
-
조선 전기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원훈각에 제향된 종친. 이방의는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로서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이다. 형은 정종 이방과(李芳果)이며, 아우는 태종 이방원(李芳遠)이다. 왕자 가운데 가장 야심이 적어 아우 이방간과 이방원의 왕위계승 싸움에 중립을 지키고, 평소에 시사를 말하지 않았다. 1392년 조선이 개창되어 태조가 즉위하자, 이방의는 익안대군(益安大君)에 봉해졌...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백순은 1885년 5월 9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 236번지[대둔로1189번길 58-9]에서 출생하였다. 서울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일제의 압력이 거세짐에 따라 퇴직하고 1914년 고향인 충청남도 논산 지역으로 돌아왔다. 이백순은 논산 지역으로 돌아와 학당을 세워 청소년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애국정신을 고취시켰다. 1919년...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병주는 1894년 1월 20일 현재의 논산시 강경읍 산양리 72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연희전문학교 학생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이때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2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병주는 출소 후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국외에서의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2...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봉세는 1899년 4월 29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심암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었고, 논산 지역에서도 1919년 3월 10일과 3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독립 만세 시위가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이봉세는 1919년 3월 20일 강경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
-
조선 후기 함평이씨 논산 입향조. 본관은 함평(咸平). 아버지는 부사 이양, 어머니는 진주강씨이다. 세 번 혼인했는데, 양씨와 민씨와 전씨이다. 슬하에는 두 딸과 외아들 이삼, 서자 이송이 있다. 1639년(인조 17)에 이양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학업을 잇지 못하였다. 장성하여 청주양씨 양여필(楊汝弼)의 사위가 되어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들어가 살게 되었...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숫골에 있는 조선 후기 함평이씨 논산 입향조 이사길의 묘소. 이사길(李師吉, 1639~?)은 부사 이양과 진주강씨 사이에서 1639년(인조 17)에 태어났다. 훗날 청주양씨 양여필(楊汝弼)의 사위로 상월면 주곡리에 들어와 함평이씨 논산 입향조가 되었다. 윤선거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노강서원 건립에 협력하였고, 사산감역을 제수받았다. 아들 이삼이 과거...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마을에 배나무가 많아서 배꽃이 만발하는 봄이면 천하일품의 풍경이었다고 한다. 또한 절[寺]을 배꽃이 감싸듯 피어 있어 배절·백절·이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광석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대리(新垈里)·신촌리(新村里)·수항리(水巷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이사리라 하여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하였다....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원백(遠伯). 영조의 아낌을 받아 백일헌(白日軒)이라는 호를 받았다. 함평군 이사길(李師吉)과 남양전씨 사이에서 1677년(숙종 30)에 태어났다. 이삼의 가계는 상계로 올라가면 무반 가문의 전통이 강했다. 그러나 고조 이후는 문반으로서의 성향이 더해져, 이삼이 ‘문무겸전’의 인물이 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삼은 윤증의...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삼의 묘표. 이삼(李森)은 1677년(숙종 3) 상월면 주곡리에서 감역을 지낸 이사길(李師吉)의 아들로 태어났다.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705년(숙종 31) 무과에 급제하여 정주목사·수원부사·한성부우윤을 거쳐 벼슬이 훈련대장에 이르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분무공신 2등에 올라 함은군(咸恩君)에...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삼의 묘소. 이삼은 감역을 지낸 이사길의 아들로 자는 위백이다. 1677년 상월면 주곡리에서 태어나 1735년 59세로 사망하였다. 윤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705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대장을 거쳐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함은군에 봉해졌다. 논산시에서 공주 계룡산 서쪽에 있는 신원사 앞으로 나 있는 지방도 691호...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의 이삼 장군 고택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삼의 유물. 이삼(李森, 1677~1735)은 조선 영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원백(遠伯), 호는 백일헌(白日軒)이다. 상월면 주곡리에서 출생하여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705년(숙종 31) 무과에 올랐다. 힘이 세고 지략이 많으며 기계 제조법과 도창(刀槍) 기예에...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이선익은 어려서부터 예의가 바르고 부모님께 효도를 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정성껏 모셔 왔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병환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병에 좋다는 약을 백방으로 구해다가 손수 달여 드리며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있는 10여 년 동안 추운 겨울에는 물고기를 잡아다 봉양...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이선익의 정려. 이선익(李善益)의 자는 우현(友賢), 호는 야은(野隱)이며, 본관은 가평이다. 어린 시절부터 효자라고 소문이 났는데, 겨울철에도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 홀어머니를 봉양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10여 년 동안 손수 탕약을 끓여 올렸으며, 병이 위독해지자 양손의 손가락을 잘라 그...
-
조선 말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전주(全州). 남편은 고성이씨(固城李氏) 이선일(李善一)이다. 이선일 처 전주이씨는 이선일에게 시집온 후 부모님을 지성으로 모시고 남편에게도 예의를 다하였으며 자녀교육에도 엄격하여 주변에서는 칭찬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이씨는 남편의 상여를 떠나보낸 후 간수를 마시고 자결하였다. 1888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2리 하표정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 이선일의 처 전주이씨의 정려. 전주이씨는 이선일에게 시집온 후 부모님을 지성으로 모시고 남편에게도 예의를 다하였으며, 자녀 교육에도 엄격하여 주변에서는 칭찬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뜨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이씨는 남편의 상여를 떠나 보낸 후 간수를 마시고 자결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
-
충청남도 논산시 행림서원에 제향된 조선 중기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광구(光九), 호는 도애(桃崖).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석탄(石灘) 이신의(李愼儀)이며, 외조부는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이다.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조정에 나아가 관직 생활을 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에 이르렀다. 그러나 광해군 즉위 뒤 정치의 문란함에 회의를 느껴...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은진현감 이소의 선정비. 이소는 전주 사람으로 주계군과 이소재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우계 성혼과 교의을 맺었다. 선조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옹원주부에 이르고, 광해군 때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가 인조반정 후에 이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은진현감으로 내려와 선정을 베풀어 부임한 지 8개월 만에 고을 인심이 순화되었다고 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와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승기의 영세불망비 두 기. 이승기는 한산 사람으로 자는 기경(紀卿)이다. 은진현감과 연산현감, 노성현감 등을 지냈다. 이승기 불망비는 두 기로, 한 기는 연산면 연산리에 있고 또 한 기는 노성면 읍내리 비석거리에 세워져 있다.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이승기 불망비는 1882년(고종 19) 9월 23일에 연산현감으로 부...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노성군참사를 지낸 이시우의 기념비. 1915년 노성군참사를 역임한 이시우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주민들이 세운 비이다. 이시우 기념비는 원래 신충3리에 있던 비석거리에 세워져 있었는데, 1983년 상월면사무소를 현재의 자리인 신충리 53-2[백일헌로 1049]에 짓고 나서 담장 밖 도로 변에 옮겨 세웠다. 이시우 기념비 외에도 김갑순...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거사1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열녀 이완경을 기리는 비. 이완경은 이원린의 딸로, 염재훈의 처이다. 남편을 잘 모시고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 주위에서 부러워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비록 남편이 한쪽 다리가 불편한 불구의 몸이었지만 부부 간의 금실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성난 맹수가 집안으로 뛰어 들어와 병든 남편을 덮치려 하자 몸을 던져 맹수를 가로막았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양지리에 있는 자동차 시트 제조업체. 이원컴포텍(주)는 현대자동차(주) 전주공장에 자동차 시트 및 내장재를 납품하기 위해 전주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논산에 공장을 설립하였다. 1994년 11월 현대자동차(주) 전주공장 신축과 함께 (주)현대공업의 상용차 시트 사업 부문을 분리하여 충청남도 논산에 이원산업(주)을 설립하였다. 1995년 8월 첫 제...
-
조선 후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의령(宜寧). 남편은 전주이씨(全州李氏) 이인덕(李仁德)이며, 아들은 사헌부감찰을 지낸 이조순(李曺純)이다. 이인덕 처 의령남씨는 남편 이인덕이 중병에 걸려 자리에 눕자 지성으로 병간호를 하였으나 남편이 죽자 아들에게 남편의 유언을 전하고 자결하였다. 의령남씨의 아들 이조순이 사헌부감찰에 있을 때인 1863년 명정이 내려져 논산시 두마면 엄사리...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가평(加平). 어버지는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이다. 할아버지는 적개의 공훈으로 책록되어 가평군으로 봉해진 이형손이다. 이장생은 1467년(세조 13)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활쏘기를 좋아해 가평군이 그의 장점을 취하여 무예를 익히게 하였다. 1490년에 갑과에 급제하여 용양위후부장을 제수하였다가, 선전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이장생의 묘소. 이장생은 가평인으로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의 아들로 1467년에 태어나 1522년에 죽었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를 좋아하여 1490년(성종 21) 갑과에 급제하였고 용양을 거쳐 선전관을 지냈으며, 함경도절도사와 충청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형조참판으로 있을 때 사은사로 중국에 다녀오고 평안도절도사를 지냈다...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이정보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에 이름이 높았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몸져눕자 자신이 대신 병을 앓기를 기도하고 병세를 짐작하기 위해 어머니의 변을 맛보았다. 의식 없는 어머니를 위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수혈하는 등 지극 정성으로 효를 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모친이 주무시고 있는 집에 불이 났는데, 이정보는 누워 있는 모친이 놀랄까 봐...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등리 대실뜸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정보의 정려. 이정보(李廷輔)는 본관이 합천(陜川)으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에 이름이 나 있었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자신이 대신 병을 앓기를 기도하고 변을 맛보았으며,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어머니한테 수혈을 하는 등의 효를 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불이 난 일이 있었다. 이정보는 병석에 있...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이종덕의 기념비. 일제강점기에 마름을 지낸 이종덕이 재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베푼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경비를 마련하여 세운 비이다. 이종덕 시혜비는 원래 신충3리에 있던 비석거리에 세워져 있었는데, 1983년 상월면사무소를 현재의 자리인 신충리 53-2번지[백일헌로 1049]에 짓고 나서 담장 밖 도로 변에 옮겨 세웠다...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가평(加平). 자는 불부. 할아버지는 병조판서인 이다림이며, 아버지는 적개의 공훈으로 책록되어 가평군으로 봉해진 이형손, 어머니는 순안현령 우원구의 딸이다. 전주최씨 충의위 최희보의 딸과 혼인하여 2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이 함경도절도사를 지낸 이장생이다. 1449년에 태어나 1503년에 세상을 떠났다. 일찍 조정에 나가 30세에 통훈대부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감을 지낸 이초로의 거사비. 이초로는 전라남도 함평 사람으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650년(효종 1) 2월 연산현감으로 취임하여 동년 8월에 사직하였다. 이초로가 연산현감을 사직한 뒤 연산 주민들이 그가 재임 당시 행했던 치적을 기리고자 거사비를 세웠다. 논산시에서 계룡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82㎞...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충규는 1891년 7월 14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부터 시작된 독립 만세 운동은 다음 달인 4월에도 계속되었다. 1919년 4월 4일 당시 전라북도 이리 지역에서 문용기와 박도현 등 기독교 인사들이 주도한 독립 만세 운동이 이리시장에서 일어났다. 독립 만세 시위대가 이리 시내로 행진하자 300여 명...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이항국의 공적비. 은진 지역에서는 예전부터 농촌 특산물로 복숭아 나무를 많이 재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래종은 복숭아 수확 시기가 똑같아 한꺼번에 출하가 되기 때문에 가격이 하락하여 농촌 수익이 줄어들게 마련이었다. 황해도 황주 태생으로 1947년 2월에 은진 지역에 정착한 이항국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1950년 3월, 일찍 수확할 수 있는...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구(子久), 호는 과암(果菴). 이항길은 김장생의 이웃에 살면서 그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제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으므로 송시열과 송준길, 성혼 등이 스승을 찾아 공부하러 올 때면 먼저 이항길을 찾아 선생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이항길은 80세의 노친을 효성을 다해 모셨으며, 이러한 이항길의 학행과 행동 범절을 김장생이...
-
조선 중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수원. 할아버지는 중종이며, 아버지는 선조의 형인 하원군, 어머니는 영의정 홍섬의 딸인 남양홍씨이다. 군수 소수의 딸 진주소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다. 13세 때 익성정을 배수하고 그 뒤에 도정으로 승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에 파천되어 북방으로부터 하원군을 모시고 여러 달 만에 행재소에 다다르니 선조...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종친 이향령의 묘소. 익성군 이향령은 조선 중종의 아홉 번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손자로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때 뒤따라 호위하여 1597년(선조 30) 정의대부익성군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옥사가 일어나 진릉군을 추대하였다는 이이첨(李爾瞻)의 무고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었다가...
-
충청남도 논산시 충곡서원에 제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농맹아(聾盲啞). 증조부는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이며, 아버지는 백파도정(白波都正) 이상(李常)이다.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다. 이현동은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왕손의 몸일지라도 부귀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강호산인(江湖散人) 김숙자(金叔滋)의 문인으로 그의 아들 김종직(金宗直)과 도의(道義)...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에 있는 조선 전기 종친 이현동의 묘소. 이현동의 본관은 전주, 호는 농맹아(聾盲啞)이다. 태조의 3남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의 증손이며, 백파(白波) 이상(李常)의 아들이다.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부귀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이를 한탄하며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로 낙향하여 정착하였다. 평생을 조령리에 살며 북...
-
조선 전기 활동한 무신. 본관은 가평. 자는 창백(昌伯). 아버지는 가평이씨의 중시조인 첨지중추원사 이다림(李多林)이며, 어머니는 지금주사 송리(宋理)의 딸이다. 1436년(세종 18) 무과갑과에 급제하고 1447년에 중시장원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쳤다. 1455년(세조 1) 12월 판관으로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로로 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적...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이홍묵의 처 전씨는 병자호란이 일어나 남편 이홍묵은 의병에 자원하게 되자 의복에 붉은 색실로 꾀매어 행장을 차려 주었다. 얼마 후 광주(廣州) 험천(險川)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참패했다는 비보를 듣고 부인은 집에서 기르던 개 한 마리를 데리고 격전장에 가서 남편의 시신을 찾다가 의복에 붉은 실로 꿰맨 흔적을 보고 남편임을 확인하고는 시신을 수습하여 마을...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산직1리 장골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이홍묵의 처 전씨의 정려. 전씨는 이홍묵의 부인이다. 병자호란 때 남편이 종군하여 광주 험천에서 전사하자 몸소 격전장에 가서 남편의 시신을 찾아 마을까지 운반해 장례를 치렀다. 남편의 관을 묻기 위해 땅을 팔 때 인부들에게 남편의 성격이 광활하였으니 묘를 넓게 파달라고 하고, 하관은 혼자 하겠다며 사람들을 물리친 후 비수로...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심암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서로 돕고 바른 예절을 실천하는 학생, 기초 능력을 길러 새로움을 탐구하는 학생, 다양한 학습 경험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학생, 소질을 계발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의지가 굳센 학생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60년 4월 1일 이화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83년 1월 6일 병설유치원 설립인가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이희갑의 선정기념비.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노성군이 논산군으로 편입되어 노성면이 되었다. 이희갑은 9대 면장으로 장기간 재임하면서 노성면의 발전과 노성 주민들의 어려운 일을 잘 해결해 주고 주민들의 화합을 위하여 힘을 썼는데, 이때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주민들이 비를 세워 칭송하였다. 논산시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조선시대 익안대군 이방의의 영정을 모신 사당. 익안대군 영당은 원래 경기도 여주에 있었는데, 1958년 전주이씨 익안대군파 종가가 논산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영정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익안대군(益安大君) 이방의(李芳毅)는 태조의 셋째 아들로 정종의 아우이며 태종의 형이다. 1392년(태조 1)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군에 봉해지고 1398년 개국공...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원훈각에 있는 익안대군 이방의의 초상화. 「익안대군 영정」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 ?~1404)를 그린 초상화이다. 현재는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316번지에 있는 익안대군 영당인 원훈각(元勳閣)에 보관되어 있다. 이방의는 고려 공양왕 때 판밀직사사가 되었고,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대군에 봉...
-
충청남도 논산시에 거주하는 주민수 또는 집단. 인구 구성은 각종 구성 요소를 파악하여 그 편성에 의해 표현된다. 인구 구성 요소로는 성(남녀)·연령·인종 등 개인의 의지로 좌우할 수 없는 요소와 개인의 의지가 나타나고 생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산업·직업·노동 등의 경제적 요소와 거주지·결혼 상태·학력 등의 사회적 요소, 국적·언어·종교 등의 문화적 요소 등이 있다. 인구 구성의...
-
충청남도 논산시의 지역적 관점에서 지표에서 발생하는 인간 활동의 모든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 논산 지역의 인문지리는 문화지리학·사회지리학·경제지리학·정치지리학·역사지리학 등으로 나누어지며, 인구·민족·취락·도시·농업·공업·상업·교통 등에 관하여 이들의 지리적 분포, 지리적 구조, 환경과의 관계를 연구한다. 논산시는 2개 읍·11개 면·2개 동 등 총 15개 행정구역으로 구성되...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흐르는 내의 이름이 인내여서 마을 이름을 인내 또는 인천(仁川)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장리(越場里)·본장리(本場里)·동산리(東山里)·도정리(道井里)·하광리(下光里)의 각 일부와 연산군(連山郡) 모촌면(茅村面) 남산리(南山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인천리라...
-
1905년 이후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일본인들이 소유한 농장. 일본인들의 토지 소유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불하정책에 의해 전국적으로 급속히 증가하였다. 일본인들은 조선에서 일본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농토를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국에 걸쳐 많은 농장을 조성할 수 있었다. 1909년 6월 전국적으로 있었던 일본인 지주는 총 692명이었고, 소유 면적은 52,426정보, 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숲이 울창하므로 숲말 또는 임리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외성면(外城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산리(九山里)·신림리(新林里)·남리(南里)·학정리(鶴汀里)·상림리(上林里)·중림리(中林里)·하림리(下林里)와 내적면(內赤面) 상범리(上凡里)를 병합하고 임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임리정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건립하여 후학들에게 강학하던 곳으로 원래는 황산정(黃山亭)이라고 하였으나, 임리정기비(臨履亭記碑)에 의하면 『시경』의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며 엷은 어름을 밟는 것같이 하라”는 구절을 따라 임리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임리정은 정면...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상현(金尙鉉, 1811~1890)의 「임리정기」를 새긴 비석. 임리정(臨履亭)은 1606년 사계 김장생(金長生)이 최명룡·송흥주·윤운구와 집을 지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강경의 황산(黃山) 산기슭에 있다. 이로 인하여 네 사람은 이이(李珥)의 묘당을 세우고자 약속하였으나 당시에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1626년(인조...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병완은 1887년 6월 23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교리 63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9월 말 임시정부 요원 김탁(金鐸)으로부터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에 동참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여기에 찬성하여 김강(金剛)·홍태우(洪泰祐) 등과 행동을 같이하기로 하였다. 우선 임병완은 선산을 문중의 허락 없이 임으로 매각하여 임시정부 군자금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임준상의 선정비. 임준상(林準相, 1856~?)은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임택수(林宅洙)의 아들로 태어나 1885년 식년시에 급제하였다. 조선 말기 노성현감을 역임한 임준상은 「노성향교 선생안」이 유실되어 정확한 재임 기간은 알 수 없으나 선정비에 의하면 임준상이 재임할 당시 선정을 베풀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많은 현감들이 노...
-
임진왜란 당시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개된 전투.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1597년의 제2차 침략전쟁을 따로 정유재란이라고도 하며, 일본에서는 분로쿠 게이초(文祿慶長)의 역(役), 중국에서는 만력(萬曆)의 역(役)이라고 한다. 당시 충청남도 논산 지역도 특히 제2차 침략전쟁을 계기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는 격전지가...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 운북면(雲北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교리(新郊里)·백촌리(柏村里)·계동리(桂洞里)·무수동(無愁洞)·상고리(上高里)·하고리(下高里)·구만리(九萬里)와 은진군 가야곡면의 석서리(石西里), 양촌리(陽村里)의 각 일부를 병합한 뒤 폐합 대상 자연마을 중의 하나인 고산임화의 이름을 따서 임화리라...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입춘에 대문이나 기둥에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면 글귀를 붙이는 세시풍속. 우리나라 사람들은 입춘이 되면 입춘이 드는 시간에 맞추어 좋은 글귀를 쓴 종이를 집안 곳곳에 붙였다. 예전에는 집안 어른이 입춘첩을 직접 묵서하여 써 붙였으나, 최근에는 평소 다니는 절에 가서 얻어 오기도 한다. 천장 위에 ‘세재○○만사형통(歲在○○萬事亨通)’이라 쓴 종이를 붙여...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태풍·홍수·호우·폭설·가뭄·지진·황사·적조 등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자연 현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재해. 자연재해는 기상·지변·생물 등에 급격히 나타난 자연 현상 때문에 입는 재난으로, 인간들에 의해 일어나는 인재(人災)와 크게 구별된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자연재해가 전체 재해의 거의 전부였으나, 산업혁명 이후로 인재의 비중이 커졌다. 호우란 일반적으로 큰비...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지질·지형·토양·기후 등의 지리적 조건. 논산시의 자연지리는 지질·지형·토양·기후 등의 측면에서 정리될 수 있다. 먼저 논산시의 지형은 대략 타원형을 이루며 동고서저의 지형적 특색을 지니고 있다. 북동부는 험준한 산악지대로서 계룡산(鷄龍山, 845.1m)·대둔산(大芚山, 878.9m)과 접하고, 남서부는 계룡산과 대둔산에서 발원하는 논산천이 금강(錦江)으로 유...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에 걸쳐 있는 산. 쌍계사(雙溪寺) 중건비에 따르면 “절 남쪽의 작봉산과 남당산은 동서로 이어져 충남과 전북의 경계를 이루는데, 작봉산 자락의 북쪽에 전망이 트인 넓은 대지가 형성되었고 그곳에 쌍계사가 위치한다. 따라서 쌍계사는 작봉산의 북쪽 기슭에 북향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조선 문헌에는 “쌍계사가...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각 가정에서 음력 정월 말날[午日]에 장을 담는 풍습. 장(醬)은 정월부터 삼월까지 적당한 시간에 담지만 정월에 담근 장이 가장 맛있다고 하는데, 논산시에서는 예전부터 말날[午日]에 주로 담았다. 단지 안에 메주, 소금, 물을 넣고 고추, 참숯, 대추를 각기 세 개씩 넣는다. 고추처럼 빛깔이 곱고, 대추처럼 달기를 바라며 넣는다. 참숯은 잡냄새가 나지 않도록...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얕은 산으로 둘러쳐진 장구형 지형이 있다고 하여 장구동이라고 부른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장구면(長久面)으로 구중(九中)·노계(魯溪)·지장(芝庄)·가곡(佳谷)·중산(中山)·접지산(接枝山)·내촌(內村)·유봉(酉峯)·대병(大丙)·소병(小丙)·구동(久洞)·사교(沙橋) 등 18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동리·사교...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어곡리와 대전광역시 서구 오동에 걸쳐 있는 산. 산의 모양이 준엄하여 장군과 같으며, 장군대좌형(將軍臺座形)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장군봉 또는 장군산이란 명칭은 전국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봉우리의 형태나 풍수지리학적 형국에 따른 명칭들이 대부분이다. 장군봉은 높이 268.2m이며, 기반암은 옥천누층군 창리층으로 녹색천매암이 분포해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에서 발원하여 석서리에서 논산천에 합류하는 하천. 유수의 계통을 보면, 장성천(지방2급하천)의 본류는 금강이며 제1지류는 논산천이다. 유로 연장은 7.9㎞이고, 유역 면적은 19.99㎢이다. 하천지정근거는 충남 247호(1966년 9월 20일)에 의해 이루어졌다. 곡간지를 흐르는 하천으로 현저한 충적평야는 발견할 수 없으나 논산천과 합류하는 지점인 상류...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장승을 수호신으로 세우고 일정한 날짜에 지내는 마을 제사. 전라도와 경상남도 해안에서는 장승을 장승·장성·벅수·벅시·법수·법시·당산할아버지 등으로 부르고, 충청도에서는 장승·장신·수살막이·수살이·수살목 등으로 부르며, 경기도에서는 장승이라 한다. 논산 지역에서는 주로 나무 또는 화강석 등으로 사람의 얼굴 형상을 깎아 만들어 세우고는 장승이라 불렀다. 예부터...
-
조선시대 충청남도의 논산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개설된 장시망. 조선시대 논산 지역의 장시를 살펴보면, 은진에는 읍내장·저교장(楮橋場), 강경장(상·하장으로 구분), 논산장, 연산에 사교장(沙橋場)·두마장(斗馬場) 등의 장시가 있었지만 노성에는 없었다. 논산이 위치한 금강 유역은 충청도 지역 중에서도 가장 장시밀도가 높은 곳이었다. 조선 후기 충청도 전체의 장시권 평균 면적은 107㎢...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에 걸쳐 있는 산. 특별한 명칭유래는 찾을 수 없었으며, 봉우재라고 불렸다. 봉우재라는 명칭은 보통 봉화와 관련 있는 산에 붙는 경우가 많다. 장재봉은 높이 487.3m이며, 기반암은 옥천층군오태산규암층에 해당하며 주로 규암, 역질규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우리의 주변은 산지가 대부분이며 논산시의 서쪽과 같은 평지는 찾아...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천변에 갈꽃이 만발하게 피어 꽃마을을 이룬다 하여 장화리라 하였다. 충청남도 은진군 김포면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곶리와 화산면 신촌리를 병합하여 장화리라 하고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장화1리·장화2리·장화3리로 나누어...
-
강경시장의 역사는 17세기 말경에 열린 하시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시장이라기보다 민간 소유답에 휴한기를 이용하여 상품을 진열하는 정도였다. 1808년 저습지를 매립하여 입지를 확보하면서 큰 시장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그 후 인구가 늘어나면서 시가지를 조성하게 되어 상권은 더욱 넓어졌다. 상시장이 생긴 것은 지금의 북옥동 등 옥녀봉 밑의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시장을 증설해...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에서 열린 논산 지역 청년단체들의 축구대회. 전논산청년단축구대회는 일제강점기에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조직되어 활동하던 청년단체들의 연대 강화를 통한 전체 군 단위 통일조직의 건설을 모색하기 위해 양촌면 인천청년회의 주최로 개최된 대회이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는 1920년대 초반부터 각종 사회단체들의 설립과 더불어 청...
-
이도를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전의(全義)는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전의면[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시조 이도(李棹)는 고려 통일 때 공을 세워 삼한개국익찬 2등 공신 삼중대광태사에 책록되었고 전산후(全山侯)에 봉해졌다. 공주 출신으로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고자 공주에 이르렀을 때 금강이 범람하여 멈추자 도강 방법을 주도한 공으로 도(棹)...
-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현동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전주이씨 족보 『선원선계(璿源先系)』에 의하면 이한은 전주의 토착 세력으로 명문 태생이었다. 이성계(李成桂)의 6대조 이린(李隣)과 그의 형 이의방(李義方)은 고려시대 중앙 정부에 진출하였으며, 이성계의 직계 선조는 당시 여진족(女眞族)이 사는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살기도...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주이씨 익성군파의 재실. 전주이씨 익성군파 재실 내부에는 선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지 않으며, ‘익성군파보시사실기(益城君派譜時事實記)’라는 현판과 ‘세모재(世慕齋)’라는 현판만 걸려 있다. 은진면 용산리 전주이씨 익성군파 묘역이 있는 구릉 하단부 남동향에 위치하고 있다. 전주이씨 익성군파 재실은 문간채와 재실, 뒷문, 서문으로 구성...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는 전통적인 형태의 가옥. 논산 지역의 전통가옥은 대들보 아래 방을 2열로 배치하는 복렬형(겹집)과 일렬로 배치하는 단열형(홑집)으로 구분된다. 복렬형 가옥은 관북 지방, 평안북도 압록강 연안의 산지, 강원도 동부의 태백산맥 양쪽 비탈, 경상북도 북부 등에 분포한다. 단열형 가옥은 서남부 지방에 주로 분포하는데 복렬형보다 규모가 작으며 직가형(直家型)과 곡가...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풍물 단체. 전통예술단 마당굿은 전통 풍물을 배워 익히고 전파하는 풍물 단체로 극단 처용의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2001년에 창단된 전통예술단이다. 전통 사물놀이 가락인 웃다리풍물, 삼도풍물, 판굿과 충청 지역의 두레풍물뿐 아니라 대북과 모듬북 공연, 소리와 몸짓(퍼포먼스), 사물연극 등을 중심으로 하는 공연 문화의 재구성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고...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곡물을 찧기 위해 만든 도구. 논산 지역에서는 절구통을 도구통 또는 도고통이라 하며 도구대(절굿공이)와 함께 짝을 이루어 사용한다. 도구통과 도구대를 사용하여 일하는 것을 도구질이라 하며, 둘이서 함께 도구통을 가운데 두고 마주 서서 일하는 것을 쌍도구질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만들기 쉬운 나무절구통이 많았지만 차츰 견고성이 탁월한 돌절구통으로 변화해 갔다....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세시풍속. 논산 지역에서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관행은 주로 정월 대보름과 봄철에 집중되어 있다. 대보름날 대표적인 점풍으로는 콩불이(일명 달불이), 윷놀이점, 달점, 소점 등이 있다. 그런가 하면 식물의 생육 상태와 동물의 움직임을 보고 풍흉을 알아보기도 하는데, 보리뿌리점이나 까치집점·느티나무점·소쩍새점 등이 좋은 예가 된다. 풍흉을...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기섭은 1898년 12월 27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채산리 274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염정(䀋町) 지역에서 곡물상을 경영하고 있던 정기섭은 1919년 3월 10일 오전 엄창섭(嚴昌燮) 등의 독립 만세 운동 주동자들의 참여를 권유받고 이날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규섭에게도 함께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1919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대규의 송덕비. 일제강점기 지방 사료는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어서 그 시대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전 참봉 정대규(鄭大圭)의 청덕(淸德)도 단갈(短碣)의 비문 외에는 더 이상 상고할 수가 없다. 주민들이 전 참봉 정대규의 청덕을 기리기 위해 1938년 송덕비를 건립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
-
충청남도 논산 출신의 충신·효자·열녀 등에게 정문을 세워 표창하는 일. 충·효·열 삼강윤리를 중요하게 여기던 조선시대에는 충신·효자·열녀를 찾아내 그 행적을 기록하고 표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국가적 사안이었다. 표창의 방법은 여러 단계로 나뉘어 법적으로 규정되었는데, 예조와 의정부의 심사를 거쳐 국왕의 재가를 받아 시행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표창이 바로 정려(旌閭)였다. 정려가...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안에 동지미라는 이름의 산이 있어 정지리라 부르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이 통폐합되면서 상리 외 6개 지역의 일부를 병합하여 정지리라 하고 성동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2월 17일 정지4리가 추가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정지1리·정지2리·정지3리·정지4리로...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광복 직후에 나타난 논산 지역 최초의 정치적 움직임은 건국준비위원회 활동이었다. 건국준비위원회 활동은 1945년 9월 6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자대회를 전후하여 인민위원회 활동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미군정을 수립하자마자 인민위원회를 불법화하고 좌익 세력...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 있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절터. 가야곡면에서 전라북도 완주군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643호선을 따라가면 삼전리 삼백골마을과 안터마을이 나온다. 정토사지는 안터마을 정토산 남동쪽 능선에 있다. 현재 절터에는 대나무와 잡초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어 사실상 모습을 짐작하기는 어려우나 4단 축대 위에 대지가 조성되어 있고, 주변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에...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왕암리와 연무읍 양지리에 걸쳐 있는 산. 정토산에는 정토사라는 절이 있으며, 이를 따 정토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정토산은 증토산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건설부 산하 국립지리원에서 1987년 발행된 「지형도(1:50,000)」에는 증토산으로 표기되어 있었으나, 국토지리정보원에서 2007년 발행한 「지형도(1:50,000)」와 각종 도로지도 등에서 정토산으로 표...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 구고운사 경내에 있던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의 서재. 황강(黃岡) 김계휘(金繼輝, 1526~1582)는 1557년(명종 12)에 윤원형 당에 의해 삭탈관작, 문외 출송을 당하자 연산 지역으로 퇴거해 와서 구고운사 경내를 빌려 서재로 사용하고, 편액을 정회당이라 하였다. 『당중입의』, 『정회당 유장』에 의하면 정회당은 초입시에 합격하고 문리가 통한 유생...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정효성의 선정비. 은진향교에 있던 선생안이 유실되어 은진현감을 지낸 정효성의 재임 기간을 알 수 없으나 주민들이 주선하여 은진현감을 지낸 정효성의 청렴 후덕한 선정을 기리기 위해 정효성 선정비를 건립하였다. 1975년 은진면 교촌리 석림사 승강장 근처에 정효성 선정비를 포함하여 은진면 일대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모아 비석거리를 조...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조상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지내는 의례. 예부터 상례(喪禮)는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제례(祭禮)는 복잡하다고 여겨왔다. 상례는 정통의 확립과 관련하여 후계자의 선정 문제 등이 어려운 부분이라면, 제례에서는 제를 지내는 제주와 가문에 따라 내용과 절차 등이 복잡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남의 제사에 밤 놓아라, 대추 놓아라”라는 속담과 “가례(家禮)는 가가례...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던 농업 생산력 증대를 위한 수리 시설. 『고려사(高麗史)』의 명종 18년(1182) 3월조에 기록된, “때에 맞추어 농사를 권장하고 힘써 제언(堤堰)을 수축하여 저수(貯水)하고 물을 대게 하여 황모지(荒耗地)가 없도록 하여 백성들의 먹을거리를 풍족하게 하라.”는 내용을 보면 제언 축조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인 16세기 이후 수리...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구하(趙龜夏, 1815~1877)의 불망비. 조구하가 연산 지역을 암행하면서 여러 사안에 선처를 베풀어 그가 떠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1842년 세운 불망비이다. 양촌면에서 운주로 가는 도로변인 인천리 은정자마을 느티나무 아래에 원래 세워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원두갈의 형태로, 비신의 석질은 화강암이다. 비의 크기는 높...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규년의 선정비. 조규년이 은진현감으로 부임하여 백성들의 고충을 들어 주고 구휼 활동을 하였으며, 민원을 공정하게 처리하여 준 치적을 기리기 위해 백성들이 힘을 모아 1842년(헌종 8) 조규년 선정비를 건립하였다. 1975년 은진면 교촌리 석림사 승강장 근처에 조규년 선정비를 포함하여 은진면 일대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모아 비...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연티, 응봉산, 봉황산이 있어서 ‘새조(鳥) 자’를 따서 샛골 또는 조동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 벌곡면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창평리, 외어곡리, 반송리와 진잠군 하남면 조동, 우명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조동리라 하고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벌곡면에...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두마면 산소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새재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새재 또는 조령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 벌곡면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모전리, 송정리, 반송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조령리라 하고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게 되었다. 남부와 서부는 해발고도...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문신. 어려서부터 마음씨가 착하여 집안 어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온순한 성품과 웃어른을 대하는 예의범절이 남달라 주위에서 칭송이 대단하였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숭릉태봉(崇陵泰封) 벼슬에 올랐으나 홀로 계신 모친을 모시기 위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연산으로 내려왔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 속에서도 모친을 극진히 봉양하였는데, 모친은 노쇠하여 병석에 눕게 되었...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말기 조병호의 불망비. 조병호(趙秉鎬, 1847~1910)는 본관이 임천으로, 1866년(고종 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법규교정소의정관(法規校正所議定官)이 되었다. 1881년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왔으며, 1885년 공조판서와 예조판서를 거쳐 1892년 충청도관찰사와 1894년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893년(고종 30) 조병호...
-
조선시대 논산의 역사. 1. 조선 건국 고려의 멸망 이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는 신 도읍을 정하는 것이었고 논산 계룡산 부근의 신도내는 고려시대의 남경이었던 한양과 더불어 그 유력한 후보지의 하나였다. 당시 논산의 계룡산 부근이 강력한 천도 지역으로 떠오른 이유는 권중화(權仲和)의 역할이 컸다. 권중화는 태조의 명으로 태실증고사로 왕실 안태의 장소를 물색...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조수의의 선정비. 조수의(趙守誼, 1699~?)는 본관이 한양으로, 자는 정숙(正叔)이다. 1735년(영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758년 5월 연산현감으로 부임하여 1762년 정월에 이임할 때까지 무려 5년 동안 연산현감으로서 선정을 베풀었다. 조수의가 천안군수로 떠날 때 주민들이 그의 이임을 말리며 아쉬워했으나 어쩔 수 없...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민간에서 부엌과 불을 관장한다고 믿는 신. 조왕은 흔히 여성의 신으로 관념되며, 속칭 조왕할매로 불린다. 조왕은 부엌을 관장하면서도 육아 및 집안을 돌보아주는 가신(家神)으로 신앙되기도 한다. “여자가 조왕을 잘 모셔야 집안이 평안하다”는 말은 그런 연유로 회자되는 말이다. 조왕신이 좌정한 곳은 지난날 여성의 전유물인 부엌이다. 그러나 여느 가신처럼 특별한 신...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일부 마을이 탑정저수지로 인하여 침수되었는데, 남아 있는 부분의 산기슭에 정자처럼 생긴 바위와 병풍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낚시터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여 조정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갈마면의 신촌리 일부를 병합하여 조정리라 하고 가야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가야곡...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조진익의 불망비. 조진익(趙鎭翼, 1762~?)은 본관이 양주로, 자는 사현(士顯)이다. 1789년(정조 13)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1822년 9월 연산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다가 1825년 4월 24일 평양서윤으로 승진되어 이임하였다. 조진익이 연산현감으로 재임할 당시 베푼 선정의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연...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조한숙의 청덕비. 조한숙(趙漢肅, 1866~?)은 본관이 임천이고, 자는 원약(元若)이다. 아버지는 행진위현령(行振威縣令) 조성호(趙性鎬)이다. 1891년(고종 28) 사마시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노성군수로 재임하였다. 노성군수로 재임할 당시 조한숙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관리들이 재임하고 떠나면 비를 세워주는 관행에 따라...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충청남도 논산 지역은 유교, 불교, 천주교 및 개신교뿐만 아니라 한국의 여러 신흥종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종교가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는 지역이다. 특히 지난 100년은 초반에는 국가와 민족이 존망의 기로에 섰던 시기였으며, 후반에는 근대화를 통하여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희망찬 시기였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황도유학, 황도불교...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북쪽에 소(沼)가 생길 것이라 해서 북소(北沼) 또는 종연(鐘淵), 종북(鐘北)이라 하였다. 충청남도 은진군 가야곡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조리, 조정리 일부를 종연리라 하고 가야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종연1리·종연2리·종연3리로 구...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파평 윤씨 문중에서 운영해 오던 서당. 종학당의 전신은 현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50m 거리에 있는 정수루이다. 정수루는 누각과 서재가 있어 선비들이 학문을 토론하며 시문을 짓던 장소였다. 정수루 정면 중앙에는 정수루(淨水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좌우로 향원익청(香遠益淸), 오가백록(吾家白鹿)이란 현판이 각각 걸려 있다. 호암산...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마을 앞에 큰길이 있었는데, 그 큰길에 술집이 많이 있어서 술골 또는 주막거리라 한 데서 주곡리라 이름 붙여졌다. 충청남도 노성군 하도면(下道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동주막리(東酒幕里), 서주막리(西酒幕里)를 병합하여 주곡리(酒谷里)라 하여 논산군 상월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낚싯줄에 여러 개의 바늘을 달아 고기를 잡기 위해 만든 어업용 도구. 주낙은 땅주낙·뜬주낙·선주낙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땅주낙은 물속의 땅 가까이에서 생식하는 고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뜬주낙은 표층이나 중층에 있는 어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낚시가 수면 아래 적당한 깊이에 있어야 한다. 선주낙은 낚싯줄을 수직으로 늘어뜨렸다가...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우리의 주생활은 1960년대 들어 구조의 변화를 겪어 평면 구성과 외관의 특이성 등이 나타났다. 1970년대에는 새마을운동의 영향을 받아 거주 환경, 집의 구조, 재료 등 주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났으며, 1970년대 이후 국가 시책과 더불어 양적·질적인 확대가 이루어졌다. 1980년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변화의 범위는 더욱 확대되어 과거...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에서 발원하여 지경리에서 대명천과 대촌천을 합류한 후 노성천에 유입되는 하천. 계룡산 남쪽 능선의 서쪽 사면은 주천을 비롯한 대명천, 대촌천 등에 의해 개석된 화강암 분지지형이 형성되어 있으며, 수지상 하도패턴을 나타내고 있다. 주천은 분지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하천이 흐르는 구간 주변은 대부분 저산성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2010년 말 현재 주천...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통폐합 대상 지역의 하나였던 섭밭달(섶밭말)에 섶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져 있었는데, 그중 대나무가 특히 많이 우거져 있어서 죽림리라 했다. 원래는 공주 곡화천면(曲火川面)에 속한 지역이었다. 죽림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로리·장동·방축리·구동리 등의 일부를 병합하여 죽림리라 하고, 논산군 노성면에...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 논산시에서 익산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9.71㎝ 가면 강경읍이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약 0.72㎞ 가다보면 황산리가 나온다. 죽림서원은 황산리에서 북쪽에 솟은 동산을 두고 금강 쪽을 바라보며 자리하고 있다. 죽림서원은 1626년(인조 4)에 세워졌다. 1663년(현종 4)에 중건하였으며 그로부터 2...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죽림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 묘정비. 죽림서원은 1626년(인조 4)에 세워진 사립 교육 기관이다. 본래 창건 때에는 지명을 따서 황산 서원(黃山書院)이라 하였다. 죽림서원 창건에 최초 발의하고 건의한 인물들은 김장생의 문인인 최명룡, 송흥주 등이었다. 이들이 이이(李珥), 성혼(成渾), 김장생(金長生)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황산사(黃山祠...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밑 또는 죽본이라고 하는데, 마을 앞에 방죽을 새로 만들었다고 하여 신방리라고도 한다. 충청남도 은진군 죽본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방리(舊坊里), 서재리(書齋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논산군 구자곡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1월 1일 연무읍이 승격되면서 논산군 연무읍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나무가 무성한 지역이라 해서 댓들 또는 죽평이라 불렀다. 본래는 은진군 구자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무동리(武洞里), 소룡리(巢龍里), 장등리(長登里)의 각 일부와 전라북도 여산군 합선면의 죽평리를 병합하여 죽평리라 하고 논산군 구자곡면에 편입하였다가 1963년 1월 1일 연무읍이 승격됨에 따라 논산군 연무읍에 편입...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정월 대보름에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놀이. 논산 지역은 논농사를 주로 하는 평야 지대이면서도 줄다리기의 전통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1936년 일본 관학자들의 조사보고에도 줄다리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애당초 미미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일부 마을에서 자연촌 단위 또는 부녀자들의 단합 차원에서 소규모로 행해졌...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중·하의 세 마을 가운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중리라 부른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리, 대당리를 병합하여 중리라 하고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중1리·중2리로 구성되어 있다. 중부와 동부는 해발고도 20여m의 낮은 구릉성 산지를 국지적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중산(中山) 밑에 있다 하여 중산, 중재 또는 중티라 하였다. 충청남도 은진군 상두면(上豆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우항리(牛項里), 동구리(洞口里) 일부를 병합하여 중산리라 하고 논산군 가야곡면에 편입하였다. 1983년 2월 15일 가야곡면 양촌리 일부(노촌, 동구리마을)와 함께 양촌면 중산리로 편입되었다. 199...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에 있는 조선 말기 강재민의 처 경주최씨와 강병흠과 처 평택임씨·성주이씨의 비. 양촌면 중산리 쌍계사 입구 1㎞ 지점 길가의 서향 사면에 비석 2기가 세워져 있다. 강재민의 처 경주최씨의 비는 1910년(순종 4)에 건립되었으며, 높이 127㎝, 너비 48㎝, 두께 15㎝이다. 강병흠과 처 평택임씨·재처 성주이씨의 비는 옥개형으로, 1910년에 건립되었...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강경의 한 가운데 있어서 중촌(中村)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일본식 이름 중정(中町)으로 되었다가 1947년 일본식 동명 변경으로 중앙동(中央洞)이 된 데서 유래했다. 충청남도 은진군 김포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분전리(粉廛里), 제포리(薺浦里), 죽전리(竹廛里), 신대리(新垈里), 원기리(...
-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중등 보통 교육 담당 기관. 논산 지역은 1996년 논산시로 승격된 이후 학교의 증가와는 달리 학급당 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이는 2000년부터 적용한 7차 교육과정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교육환경 개선 차원에서 학급당 인원을 지속적으로 감축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7차 교육과정은 국민공통기본 교육 기간을 설정하고 수준별 교육과정 편성과 운...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성군(魯城郡)과 공주군(公州郡)의 경계에 있다 하여 지경터 또는 지경처(地境處)라 하였다. 원래는 노성군 상도면(上道面)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산직리(山直里)·무동리(舞童里) 일부와 월오면(月午面) 왕정리(旺井里), 공주군 익구곡면(益口谷面) 월오리(月午里)·명동(明洞), 하성리 각 일부, 공주군 진두면의...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 왕우내마을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지경리 고분군은 지경리 왕우내마을 뒷산 남사면에 위치한다. 현재 이곳은 송림이 우거져 있는 상태이다. 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으나, 외견상 고분은 이미 도굴 또는 파괴되어 있으며, 석축묘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도굴된 1기의 고분을 보면 대형 판석으로 매우 정교하게 묘실을 축조한 단면 육각형의 고임식 천장...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와 가야곡면 삼전리 경계에 있는 고개. 고개의 서쪽에 진악리(鎭岳里)라는 마을이 위치해 있는데, 이 이름이 지내기로 변하였고, 이를 따 지내기재라 부르게 되었다. 지내기재는 고생대 오도비스기에서 캄브리아기 사이에 형성된 옥천층군문주리층을 기반암으로 흑운모편암과 견운모편암을 주로 하고 있다. 고개의 남쪽으로는 범허리재, 옥녀봉(411.7m)에 이르며 북쪽...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오계 사육 농장. 오계(烏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가금류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오골계는 살, 가죽, 뼈가 어두운 자색(紫色)이며 털은 보통 흰색, 검은색, 붉은 갈색을 띤다. 아시아가 원산지로, 체질이 약하고 산란 수가 적다. 이에 비해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나는 우리나라 특산종인 오계는 깃털, 살...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에 있는 고지산의 이름에서 지산을 따서 마을 이름으로 불렀다고 전한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화지산면(花枝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종포(淙浦) 일부와 연산군(連山郡) 적사곡면(赤寺谷面)의 평리(坪里)·주천리(注川里)의 각 일부, 부인처면(夫人處面)의 둔전평 일부를 병합하고 주천리라 하여 논산군 논산면에 편입하였다. 19...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에서 칠석이나 백중을 맞아 벌이는 두레굿 중간에 부수적으로 하는 놀이. 지와바리는 지붕에 얹는 ‘기와’와 ‘밟다’라는 말의 사투리로 여름철 논매기가 끝나갈 무렵인 칠월 칠석이나 백중 즈음 두레굿에서 행하던 민속놀이이다. 집을 짓고 기와를 얹을 때 기와가 자리를 잘 잡도록 사람들이 지붕에 올라가 흙을 다지는 작업에서 유래된 명칭이기도 하다. 광석면 오강리...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땅의 생긴 모양이나 형세. 논산시는 전형적인 동고서저의 지형적 특색을 지닌다. 본시의 개략적 지형은 서쪽인 금강 본류 쪽으로 트인 저위평탄면 형태로, 동쪽과 남쪽에 해발고도 200m 이상의 산지가 분포한다. 즉 동북부에서 동남부에 이르는 일대는 계룡산지와 대둔산 줄기가 연결되어 험준한 산악지를 형성하며, 이들 산지에 인접한 지역에는 해발고도 50m 내외의 산...
-
충청남도 논산시 봉곡서원에 제향된 조선 중기 무신. 본관은 삼척(三陟). 호는 추당(湫塘). 아버지는 조선 개국공신 진충귀의 증손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연산군 때 임천군수를 역임한 진암수(陳巖壽)이다. 진암수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진극효는 둘째이며, 삼형제 모두 학문에 뛰어났다. 선조 때 진사가 되어 학업에 전념하였다. 성품이 청렴결백하고 독실하여 시인 묵객들과 교우하였다. 제자...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왕암리에 있는 (주)진주햄 육류 가공 공장. (주)진주햄은 경상남도 양산시 유산동 150번지[유산공단7길 39]에 본사와 공장이 있으며, 진주햄 논산공장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서울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생산 제품은 햄, 소시지, 맛살, 냉동식품, 캔류 등이 있으며, 주요 제품은 햄과 소시지류이다. 1963년 8월 평화상사를 설립하여 진주어묵을 생산 시판...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진진 처 담양국씨는 천성이 효성스러워 부모를 극진히 섬겨 어려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으며 16세에 진진(陳璡)에게 출가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마을에 당도하자 마을 사람들은 앞산에 나가 농기구를 가지고 대항하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모두 피난을 떠나게 되자 남편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왜적이 점점 가까워 오자 남편에게 꼭 살아서 부모님과 어린...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에 있는 조선 중기 진진 처 담양국씨의 정려. 담양국씨는 진진의 부인이다. 임진왜란 일어나자 왜적은 논산의 가야곡까지 몰려 들어왔고, 마을 사람들은 앞산에 나가 농기구를 가지고 왜적에게 대항하였다. 그러나 총칼이 없는지라 모두 후퇴하게 되었는데, 이때 국씨도 남편과 함께 피난을 떠났다. 왜적이 점차 가까워 오자 국씨 부인은 남편에게 꼭 살아서 부모님과...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동일한 조상의 후손들이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우위를 점하는 촌락. 조선 후기 마을들은 당시의 사회 경제적 여건 변화에 따라 점차 동성 문중을 중심으로 취락을 형성하는 동족마을로 바뀌어 갔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논농사가 발달함에 따라 평야 지대를 중심으로 생산력이 증대되자, 주거의 형태도 구릉 중심의 산촌(散村) 형태에서 평야 지대의 집촌 형태로 촌락 구조가 바...
-
조계룡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창녕조씨(昌寧曺氏)는 신라 진평왕의 사위 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하고 있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조계룡은 한림학사 이광옥(李光玉)의 딸 이예향(李禮香)을 어머니로 두고 있는데, 후에 진평왕의 사위가 되었고, 보국대장군상주국대도독태자태사(輔國大將軍上柱國大都督太子太師)에 올랐으며,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해졌...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채동과 광달의 이름을 따서 채광리라 하였다.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상광리(上光里), 하광리(下光里), 채동(彩洞), 오산리(梧山里) 일부를 병합하여 채광리라 하고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금정(錦町)이라 했다가 1947년 일본식 명칭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채운산(彩雲山)의 이름을 따서 채산동(彩山洞)이라 한데서 유래했다. 충청남도 은진군 채운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채산리(彩山里), 학동(鶴洞), 작지리(鵲旨里), 양촌리(陽村里) 성북리(城北里)를 병합하여 금정이라 하고...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된데 유래한다. 부연하면, 1931년 강경읍에 편입될 때 영정(榮町)으로 되었으나, 1947년 일본식 명칭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1914년 지명인 채운면(彩雲面)에 의거하여 채운동(彩雲洞)이 된데서 유래한다. 충청남도 은진군 채운면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방죽 채운제(彩雲堤) 안쪽이 되므로 방죽...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면. 채운이란 이름은 본래 채홍(彩虹), 곧 무지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채홍은 예부터 상서로운 조짐으로 여겼는데, 색상이나 무늬가 채색된 구름에서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는 은진군 채운면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도곡면 직촌·신암·후동·가동·동교·음지·이화·우기·토량·화정·상동의 12개리와 김포면 삼거리·상강·장곶·황산·북촌·홍교·신...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채운면 독립만세운동은 채운면 인사들이 1919년 3월의 강경읍내 시장에서의 독립만세운동에 이어 채운면 면민들과 함께 고창한 독립만세운동이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0년에 걸쳐 일제는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더불어 헌병경찰제를 통한 무력을 앞세워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직접 통치를 단행하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일제 식민 통치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송준길 손윗누이의 묘표. 연산면 고정리 광산김씨 선산에 있는 송처자의 묘표는 10세의 나이에 요절한 처녀의 것이기에 주목이 되는데, 묘표는 후에 송준길이 세운 것이다. 이 묘표의 비신은 보존 상태도 양호하며, 팔작지붕 모양의 가첨석과 농대석을 갖춘 중요한 자료이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누이의 죽...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물이 풍부하여 이 마을 어디를 파도 샘물이 솟는다 해서 샘골 또는 천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척리, 대중리, 소중리의 각 일부와 광석면의 이사리 일부를 병합하여 천동리라 하고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천동1리·천동2리·천동...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천주교는 로마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그리스도교회로서 동방정교회나 프로테스탄트교회와는 구별되는 가톨릭교회를 말한다. 가톨릭이란 ‘보편적·공동적·일반적’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말로서 스스로를 ‘유일하고, 성스럽고, 공변되며, 사도(使徒)로부터 전래된 교회’라고 믿고 있는 그리스도교회가 전 인류를 위한 유일한 구원의 기관이라는 것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천호산(天護山)의 이름을 따서 천호리라 하였다. 천호리는 본래 연산군 식한면에 속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개태리, 호동, 화악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천호리라 하고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게 되었다. 남서부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전 지역이 200~300m의 구릉성...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와 계룡시 두마면 입암리에 걸쳐 있는 산. 산이 용마루 같이 길게 6㎞가량 남쪽에서 북쪽으로 뻗어 갔으므로 누르기재, 또는 황산(黃山)이라고 하였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신검을 일리천에서 크게 이기고, 계속 추격하여 이 곳에 이르러 항복을 받아 마침내 삼한을 통일하여 고려 왕조를 세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이 도와주신 산이라 하여, 천호산으...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시월 길일에 가신을 위한 의례에서 사용하는 떡. 음력 시월이 되어 햇곡이 나오면 햇곡을 먹기 전에 가장 먼저 수확한 것 중 좋은 쌀을 골라 떡을 찐다. 처음 찌는 떡이자, 가을을 갈무리하는 떡이라 하여 첫무리떡 또는 철무리떡이라 부른다. 한편 충청남도 남부와 경기도 남부에서는 가을떡, 충청남도 서북부에서는 가을배끼, 경기도 북부에서는 도신(禱神)떡, 전...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개된 청년 중심의 민족운동. 3·1운동 이후 일제가 무단통치를 폐기하고 이른바 문화정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의 각 지방에는 근대식 학교 교육을 통해 신지식을 수용한 지역 청년들에 의해 각종 청년운동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청년들은 군이나 면 혹은 동리 단위로 청년수양단체를 결성한 뒤 야학·생활 개선 등과 같은 민중계몽 활동과 강...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에 토기를 굽던 사람들이 살던 마을인데, 이들이 청동을 발견한 뒤 청동을 캐는 데 전념하게 되면서 마을 이름도 청동이 나오는 마을이라 하여 청동(靑銅) 또는 청동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내적면(內赤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온산리(慍山里)·하락리(河洛里)·양촌리(陽村里)·수정리(水井里)·한전리(閑...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후기 영상과 귀상의 충노비. 연산현 사람 이민진(李敏進)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죽기를 각오하고 검은색 버선과 행전을 차고 남한산성으로 의병을 이끌고 갔다. 남한산성 근처 광주 험천에 이르러 왜적의 저지를 받아 치열한 전투 끝에 이민진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전투가 끝난 후 동행했던 노비 영상(永上)과 귀상(貴上)은 많은 전사자들 중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개성을 추구하고 꿈을 키우는 사람으로 전인적인 개성인, 기초와 기본 위에 창의적인 사람으로 창의적인 능력인, 소질을 계발하고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으로 진로 개척인,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으로 문화 창조인, 공동체의 발전에 봉사하는 사람으로 공동체 공헌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7년 12월 10일 청동국민학교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PVC를 소재로 한 창호 및 도어 제조업체. 청암은 PVC 창호 및 도어 공장 설비를 완비하고 자체 브랜드로 제품을 생산하여 21세기 중부권 최고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미래 지향적인 첨단 건축 분야 진출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6년 6월 회사를 설립하였다. 1998년 1월 PVC 도어 공장 및 설비를 완비하였다. 2000년 2월 대전대...
-
양기를 시조로 하고 양춘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는 청주양씨, 함평이씨, 전주이씨 세 집안이 살고 있는데, 이 중 청주양씨는 주곡리의 터줏대감이라 불릴 만큼 오랜 세월 세거해 왔다. 1920년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 따르면, 1920년대 논산의 동족마을에 대한 자료에서 청주양씨가 상월면 주곡리에 동족마을을...
-
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여헌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한씨는 한국의 최고 역사를 지닌 이른바 삼한갑족이다. 본관은 문헌에 청주 외에 평산·한양·안변 등 1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 청주에서 분적되었다고 한다. 한씨는 멀리 고조선시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청주한씨세보』에 의하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의 후대에 우성(友誠)·우평(友平)·우량(友諒)의...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에 있는 남양홍씨 선조를 제향하는 사당. 논산 초포 지역에 처음 터를 잡은 남양홍씨(南陽洪氏)는 양정재(養正齋) 홍세구(洪世耈)이며, 이후 대대로 세거하게 되자 후손들이 사당을 세우고 매년 제향을 시작하였다. 창건연대는 불분명하다. 사당 주변 야산 일대가 남양홍씨 묘역인데, 사당에는 홍세구·홍수정·홍남익·홍구·홍찬원·홍진희 등 남양홍씨 6인이 제향되어...
-
충청남도 논산시 지역에서 주민들 생활의 기본 단위를 구성하는 취락의 한 유형. 촌락은 도시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혈연과 지연에 기반 한 인간생활의 기본 단위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통합을 이룬 지역 집단을 가리킨다. 전통 사회에서 주민들은 혈연 및 지연에 기초하고 생업 활동과 신앙생활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지역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선사시대 유적지...
-
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추병갑은 1903년 8월 14일 현재의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6일과 3월 7일경 세도면 사립 창영학교 교사 엄창섭(嚴昌燮)의 주도 아래 1919년 3월 10일 강경 장날에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정하고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1919년 3월 8일 추병갑은 강경읍에서 한지 60매, 물...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제의 만고충신 계백 장군이 전사한 수락산이 있고 사육신의 한 사람인 매죽헌 성삼문의 유허가 있어 그 충절을 추모하고자 충곡이라 하였다. 1914년 적사곡면의 한양리, 한북리, 중리를 병합하여 충곡리라 하고 부적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충곡1리·충곡2리로 구성되어 있...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충곡서원은 원래 백제 장군인 계백과 박팽년(朴彭年), 성삼문(成三問),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하위지(河緯地), 유응부(兪應孚) 등 사육신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었으나 점차 그 수가 늘어 18위가 배향되어 있다. 8명의 선현을 제향한다 하여 팔현 서원(八賢書院), 육신 서원(六臣書院)이라 불렸던 기록도...
-
충청남도 논산시 부창동에 있는 충청남도 교육청 산하 교육 시설. 충청남도 남부평생학습관은 도교육청 산하 기관으로서 노래교실, 생활 관련 기능 연수 등을 통해 사회교육의 기반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충청남도 남부평생학습관은 지역 문화 센터로서 각종 자료를 비치하여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함은 물론, 다양한 교육 욕구를 수용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지역 주민의 삶의...
-
충청남도 논산의 노성 지역 파평윤씨 가문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양반 가문이다. 노성은 이들 파평윤씨 노종 5방파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배출된 유서와 전통이 살아 있는 곳으로, 특히 이곳에 집중되어 분포한 종학당과 병사, 선영과 영당, 서원과 정려, 종가 고택 등은 조선시대 호서 지역 양반들의 유교 문화를 빠짐없이 접할 수 있는 문화 자원이다. 특히 후학들이 정신문화와 유교적 사회...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인 충헌공 윤전의 재실. 윤전은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610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으며, 1613년(광해군 5) 유생 이위경이 폐모소를 올렸을 때, 상소를 저지시키려다 파면되었다. 이후 1615년 호조좌랑에 이르렀으나 사판(仕版)에서 삭제되었고, 1623년(인조 1) 경기도사로 복직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이...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마을 안에 독수리가 날아가는 듯한 형태의 수리바위가 있어 수름바위 또는 취암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화지산면(花枝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주동(酒洞)·반월동(半月洞) 일부와 성본면(城本面)의 마연(馬淵) 일부, 연산군(連山郡) 부인처면(夫人處面)의 둔전평(屯田坪) 일부를 병합하여 취암리라 하고 논산군...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7월 7일에 지내는 명절. 농가에서는 칠석날 아침에 논이나 밭에 나가지 않는 풍습이 있다. 그것은 칠성할머니가 논밭의 곡식을 둘러보러 내려오므로 농가에서는 칠성할머니가 다시 올라갈 때까지 집에서 근신한다. 속설에 따르면 이날 짚신할머니와 짚신할아버지가 만나는데 까치가 다리를 놓아 준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칠석이 지나면 까치의 머리가 다 벗겨져 있다고...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자손의 수명장수를 주관한다고 믿는 가신. 칠성은 아이의 명을 이어주고 복을 주는 신령이다. 북두칠성으로 7명이며, 남성이라고 관념한다. 또한 가정에서 모시는 신령 가운데 칠성이 가장 윗분이라고 생각한다. 칠성에게 빌어서 자손을 얻은 경우는 칠성에 더욱 정성을 드려야 한다. 칠성신은 집안에 깃든 대표적인 가신의 하나이지만, 민간에서는 마을신앙의 대상물로도 치성...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2월 1일 아침에 콩을 볶아 먹으며 그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풍속. 논산 지역의 농가에서는 음력 이월 초하룻날 새벽에 콩을 볶아 먹는다. 다른 지역에서는 정월 보름날에 행하기도 하지만 논산 지역에서는 반드시 이월 초하룻날에 콩을 볶아 먹는다. 콩을 볶으면서는 “새삼볶자! 근잠볶자! 노래기알 볶자!”라고 반복하여 왼다. 새삼은 논에 나는 풀이며, 근잠...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논에 물을 퍼 올리기 위해 만든 도구. 타래박은 물보다 논이 높은 위치에 있을 때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사용한다. 타래박으로 퍼 올릴 수 있는 물의 양이 적고 또 논에 물을 채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넓은 논에 물을 대기는 힘들다. 따라서 못자리 등 작은 규모의 논에 물을 보충할 때 주로 이용하는데, 물과 논의 높이 차가 대략 60㎝ 이하여야...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양촌리 탑안이마을에 있는 시대 미상의 절터. 마을에 존재했던 옛 절의 명칭은 알 수 없으나 ‘탑안이’라는 마을 이름은 절터 안에 있던 1기의 탑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탑은 일제강점기에 외부로 반출되었고, 지금은 탑이 서있던 위치만 짐작할 뿐이다. 양촌면소재지에서 전라북도 완산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1.5㎞가량 가면 양촌리가 나오고, 다시 길을 따라 1.5...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양촌리 탑안이마을에서는 원인을 모른 채 빈번하게 일어나는 화재를 마을 앞산이나 그 부근의 산에서 내뿜는 화기(火氣)에 의한 것으로 여기고, 화산(火山)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산에 ‘소금단지’나 ‘간물(바닷물)단지’를 묻는다. 소금단지 묻기는 동제(洞祭)의 일환으로 치러진다. 곧 음력 정월 초사흗날 오후에 제관들은 마을 앞산인 승재골에 올라 화재뱅이의 목적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때 개태사가 번창했을 때 많은 사찰과 암자가 산재해 있었다. 고려 말 개태사의 비구승 대명이 죽은 뒤 사리가 발견되어 이것을 보전하기 위해 사리석탑 3층을 세웠다. 그 뒤 충청도 감찰사 이몽필이 삼층석탑의 품위를 높이기 위해 마을의 명칭을 탑정이라 지어주었다. 원래 연산군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내리, 금성리,...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가야곡면·양촌면 일원에 조성된 농업용 저수지. 탑정저수지는 충청남도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로 광석면·성동면·채운면과 강경읍에 걸쳐 있는 논강평야의 농업용수와 논산 지역 상수원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대둔산과 금산군 남이휴양림 및 전라북도 완주군 고당면 병암리에서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로 흐르는 물이 가야곡면과 부적면 탑정리에 모이도록 조성되었다. 19...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대화정(大和町)으로 되었다가 1947년 일본식 명칭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태평동(太平洞)으로 된 데서 유래한다. 충청남도 은진군 김포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교항리(橋項里), 조대리(鳥垈里)를 병합하여 대화정이라고 하고 논산군 강경면에 편입하였다. 1931년 강경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강경...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벼를 일시적으로 보관하던 저장 창고. 토광이란 본래 널 따위를 깔지 않은 흙바닥 그대로의 저장 공간을 말한다. 마루, 사랑방 등에 일정한 공간을 구획하여 만들거나 아니면 공터에 처음부터 토광용으로 작은 건물 형태로 만들기도 한다. 문기둥에는 홈을 파고 같은 높이의 판자를 차례대로 끼우면서 벼를 채우고, 이를 꺼내서 사용할 때는 역시 판자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
충청남도 논산시 지역에서 육상의 지각을 덮고 있는 기반암 풍화 물질에 생물체의 유기물이 혼합되어 이루어진 물질.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분포하는 암석은 편마암류(36%)와 화강암류(27%)이며, 그 다음으로 현무암·반암·응회암 등의 화성암 및 석회암, 이암·사암·역암 등의 퇴적암 순이다. 논산시의 토양 또한 여기에 준한다. 논산시의 토양은 지형의 특징에 따라 해안 평탄지에 분포된 토...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에는 말을 많이 기르던 곳으로 땅이 비옥하고 풀이 잘자라 토질이 좋은 곳이라 하여 토양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충청남도 은진군 도곡면(道谷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기리(新基里), 갈현리(葛峴里), 웅전리(熊田里)의 일부와 죽본면(竹本面)의 용계리(龍溪里) 일부, 전라북도 여산군(礪山郡) 피제면(皮堤面) 사...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가을에 추수한 벼를 임시로 보관하기 위해 만든 도구. 가을 추수 기간이 되면 갑자기 많은 양의 벼가 한꺼번에 수확되기 때문에 이를 효율적으로 보관하기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벼를 보관하기 위해 창고 대용으로 임시 보관 시설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통가리이다. 통가리는 가을 추수에서 이듬해 설까지 일시적으로 벼를 보관하기 위하여 볏짚과 가마니·새끼를 이...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와 가야곡면 삼전리·양촌리에 걸쳐 있는 산. 고생대 오도비스기에서 캄브리아기 사이에 형성된 옥천층군문주리층에 해당하며, 주로 흑운모편암과 견운모편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통박산의 능선은 북서~남 방향의 산지이며, 남쪽으로 삼재와 까치봉에 이어지며 북서쪽으로 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높이 303.8m이며, 동쪽과 서쪽은 곡저충적평야로 이루어져 있고, 서쪽에...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생산되는 특색 있는 산물. 특산물은 좁게는 한 지방의 토산물을 이르지만, 한 나라의 유별난 산물도 이에 포함된다. 토산은 토산물을 뜻하는 말로, 조선시대에는 토산품이 도 단위로 할당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특산물의 종류에는 곡물류·과물류·채소류·화초류·조수류(鳥獸類)·어패류·약재류·광물류·공예품류 등이 있다. 논산 지역의 특산물은 주로 농산물이 많으며, 이들...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 논산시는 차령산맥이 북서계절풍을 막아 주어 연평균 기온이 13°C로 따뜻하고 강수량이 연간 1,300㎜로 풍부하며 첫서리가 10월 중순, 마지막 서리가 4월 중순경에 내리는 지역으로 논농사에 적합한 곳이다. 논산시는 전통적으로 기름진 토양과 풍부한 일조량에 맑은 물이 흐르는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갖춘 논농사에 적합한 지역으로, 금강을 끼고 있는...
-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돈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파평윤씨는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고려 개국공신에 책록된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는 성씨로 고려시대 유명한 문벌귀족 중의 하나였다. 윤신달과 관련해서는 파평현 용연(龍淵)에 있던 옥함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부이므로 그전의 다른 이야기나 모습은 알 수 없으며, 그의 후손들이 파평현을 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파평윤씨 문중 건물. 파평윤씨 정수루는 파평윤씨 문중에서 운영하던 서당인 파평윤씨 종학당의 전신이자 문인들이 학문을 토론하며 시문을 짓던 장소이기도 하다. 파평윤씨 정수루와 파평윤씨 종학당은 약 340여 년간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파평윤씨 가문 출신의 대과 급제자 46명 대다수가 이곳 출신이었다고 전해진다. 파평윤씨 종학당은 164...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윤씨 덕포공 윤진의 재실. 노성면 병사리 1구 마을회관 건너편 소로로 약 350m 정도 들어가 오른쪽 길로 200m 가면 덕포선생 고택과 병사, 파평윤씨 재실, 파평윤씨 덕포공 재실, 파평윤씨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파평윤씨 재실과 같은 장소에 있었던 건물로, 1988년 충청남도에서 문화재자료 제299호로 지정하였으나 덕포공...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전기 파평윤씨의 재실. 노성면 병사리 1구 마을회관 건너편 소로로 약 30m 정도 들어가 다시 오른쪽(동쪽) 길로 200m 가면 덕포공 고택과 병사, 파평윤씨 묘역이 나온다. 파평윤씨 재실인 병사는 1574년(선조 7)에 건축되었다고 전한다. 1630년대에 윤순거가 선조 묘소 수호사로 지었던 건물과 파평윤씨 덕포공 윤진의 재실을 포함하여...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정자로 1633년(현종 4)에 송시열이 건립함. 1663년(현종 4) 송시열이 스승인 김장생이 임리정을 짓고 강학을 시작하자 스승과 가까운 곳에 있고 싶은 마음에 팔괘정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당대의 학자 및 제자들을 강학하였던 장소로 전해지는 팔괘정은 죽림서원의 북쪽 언덕에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마치 죽림서원의 양 날개처럼 사우를 위요하고...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팔괘정 주변에 있는 조선 중기 암각군. 우암 송시열이 팔괘정을 짓고 생활하고 있을 때 팔괘정에 글이 걸린 꿈을 꾼 뒤 새겼다고 전한다. 각자를 한 정확한 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논산에서 강경읍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6.32㎞를 가다 보면 산양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지방도 68호선을 타고 약 0.5㎞를 가면 강경읍 역전로가 나오는데,...
-
조춘을 시조로 하고 조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평양조씨(平壤趙氏)의 시조는 조춘(趙椿)으로 고려 때 남송(南宋)에 가서 금(金)나라를 정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송나라 상장군(上將軍)이 되었다고 한다. 조춘은 상원(祥原, 현 평안남도 중화)에 정착하여 4세손까지 내려오다가 5세손인 조인규(趙仁規)의 딸이 충숙왕의 비가 되자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에 봉해지게...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는 절터. 논산 지역은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에 인접한 지역으로 이때부터 직접·간접으로 불교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되나, 기록상 사찰의 창건이 이루어진 때는 고려 전기이다. 논산 지역에 있는 폐사지로는 문화재로 지정된 개태사지 외에도 논산 송불암 사지, 운제사지, 어린사지, 안터사지, 탑안이사지, 봉선암지, 정토사지를 포함하여 약 30여 개가 곳곳...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갈이 많고 물이 적은 지역이라 샘물이 말라 식수 보급의 곤란을 겪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표정(表井)이라고 하였다. 충청남도 연산군 백석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표리, 중표리, 하표리, 신표리, 신범리, 당곡리의 일부와 외성면의 고양교, 청림리 일부를 병합하여 표정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 하표정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연산에서 상월로 통하는 지방도 697호선을 타고 약 1㎞ 정도 가면 사갑들이라는 들판이 나온다. 사갑들 북단에 표정리 하표정마을이 자리한다. 하표정마을은 계룡산지의 남쪽 끝 서사면에 해당된다. 표정리 고인돌군은 하표정마을에 모두 3기가 위치한다. 1기는 나지막한 구릉의 서쪽 말단부에 있는 민묘 옆에 있으며, 2기는...
-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충청남도 논산시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는 자연환경과 사람의 길흉화복을 연관지어 설명하는 전통적 지리 이론이다. 풍수지리의 기본 논리는 일정한 경로를 따라 땅속에 돌아다니는 생기(生氣)를 사람이 접함으로써 복을 얻고 화를 피하자는 것으로, 도성·절·집·무덤 등을 만드는 데 있어 지상(地相)을 판단하는 이론이다. 풍수지리는 산·수(水)·방위·사...
-
조맹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풍양조씨는 고려조 개국공신 조맹(趙孟)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조맹은 후삼국시대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참여하여 개국공신으로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이르렀다. 풍양조씨들은 시조 조맹의 출생지이자 세거지였던 풍양(豐壤, 현 경기도 남양주시)을 본향으로 두었다. 풍양은 조맹은 이곳에서 태어나 노년까지 살...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이전의 지역인 하도면의 이름을 따라 하도리라 했다. 본래 충청남도 노성군 하도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풍양조씨와 의령남씨가 살며 행세한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성재동·요동·만화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하도리라 하고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게...
-
충청남도 논산시 지역에서 육지 표면의 자연 수계를 따라 물이 흘러 형성된 물길과 계류. 논산시의 수계는 금강 본류와 금강으로 흘러드는 지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금강의 지류들은 거의 계룡산지와 대둔산지로부터 발원하여 남류한 후 논산천에 모여 강경읍 부근에서 금강 본류로 흘러든다. 따라서 수계망은 대체로 수지상(樹枝狀)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에는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논...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학이 떼를 지어 서식했다 하여 학당(鶴塘)이라 하였다. 충청남도 노성군 하도면(下道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장리(新庄里), 암천리(岩川里)의 일부와 상도면(上道面)의 무동(舞洞), 대촌리(大村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학당리(鶴塘里)라 하여 논산군 상월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
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있는 한국국악협회 산하 논산시 지부. 한국국악협회 논산시지부는 회원의 권익 옹호와 회원 간의 친목 도모 및 논산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7년 2월 김용근 외 30여 명이 뜻을 모아 모임을 결성하고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로부터 논산시지부로 인준을 받고, 초대 지부장으로 유영창을 선출하였다. 이후 제2대 남종순 지부장과 제3...
-
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있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논산지회 산하 문학단체. 한국문인협회 논산지부는 1991년 11월 30여 명의 지역 문인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1992년 ‘문학의 해’를 앞두고, 지역 문학의 활성화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서울권에 집중된 문학 활동만으로는 우리나라 문학의 진정한 발전을 도모하기 어렵다는 데 공감하고 지역문학의 활성화와 문화 도시로서의 논산의 위상...
-
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있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논산지회 산하 사진단체. 한국사진작가협회 논산지부는 지역 사진 예술의 저변 확대와 사진작가의 권익을 옹호하며, 국내외 사진인 교류 및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79년 사진문화예술의 불모지와 다름없던 논산에 사진을 좋아하는 6인이 모여 놀뫼사진회라는 모임을 발족하였다. 놀뫼사진회 발족 이후 논산 지역에...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에 있는 한방 의약품 제조업체. (주)한국신약은 자연을 소중히 생각하는 기업,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기업, 인간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 이념을 바탕으로, 좋은 품질 우수한 한방 의약품 생산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61년 2월 충청남도 대전시 대동 63-6번지에 (주)한국신약이 설립되었다. 1984년 3월 국내 최초로 한방 액제류인 갈근탕·십...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로 구성된 합창단. 한국아가페합창단은 소외 받고 어려운 가정에 대한 위안 및 시골의 작은 교회 찬양 봉사를 통한 선교와 시민들을 위한 음악 연주를 위해 설립되었다. 1995년 논산중앙장로교회 홍권기 장로의 주선으로 논산시에 거주하는 기독교 신자들 중 학창 시절 성악을 했거나 교회 찬양대 등에서 활동하는 음악에 소질 있는 사람...
-
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있는 한국연예예술인협회 산하 논산 지역 지부. 한국연예예술인협회 논산지부는 회원 상호간의 친선과 단결을 통하여 회원의 권익 옹호와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나아가 연예 예술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9년 1월 29일 회원 20여 명이 모여 한국연예협회 충남남부분실로 설립되었으며 분실장에 송중빈이 선출되었다. 2003년 1월 27일 한국...
-
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있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 지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논산지회는 논산의 예술문화인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회원의 권익을 옹호하며 향토 예술의 창달로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4년 2월 19일 한국문인협회 논산지부 김영배 지부장, 한국국악협회 논산지부 송중빈 지부장, 한국사진작가협회 논산지부 박태진 지부장, 한국미술협회...
-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한국음악협회 산하 논산 지역 지부. 한국음악협회 논산시지부는 논산 지역 음악 교사들이 주축이 되고 음악학원 원장들도 함께 하여 한국음악협회의 정관에 따라 4년제 음악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정회원, 2년제 이상의 음악 전공 졸업자와 음악 단체의 장을 맡고 있는 사람은 준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단체이다. 한국음악협회 논산시지부는 지역 사회의 음악 발전에 기여하고,...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규섭은 1898년 2월 7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오전에 한규섭은 정기섭(鄭沂燮)으로부터 50명의 청년이 강경 지역으로 와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정해져 있고, 다른 지역은 이미 독립 만세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오후에 있을 독립 만세 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받았다. 정기...
-
충청남도 논산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민간 서예 단체. 한묵회는 회원들의 창작 역량 강화와 논산 지역 서예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논산 지역에서 서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산발적인 모임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해 오던 중 회원들의 창작 역량 강화와 논산 지역의 서예 발전을 위하여 조직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1975년 2월에 임성규를 비롯한 동호인들이 중심이 되어 한묵회...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큰 내가 있어서 한삼내 또는 한삼천이라 불렀다고도 하고, 옛날에 한 도사가 마을을 지나다가 산세가 좋아서 너울너울 춤을 추다 소매 한쪽이 떨어져서 한삼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벌곡면(伐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목동(大木洞)·대동(垈洞)의 일부를 병합하고 한삼천리라 하여 논산군 벌곡...
-
조선시대에 충청남도 논산 지역은 한양과 전라도를 잇는 주요 교통로의 하나였다. 충청도 공주와 전라도 여산 사이의 논산 구간을 정리하면, 노성면-부적면 부인리-부적면 마구평리-부적면 아호리-은진면 교촌리-채운면 야화리-채운면 장화리-채운면 삼거리-강경포로 나타낼 수 있다. 이들 지역의 일부 마을에는 주요 교통로를 지키는 동시에 길손의 안녕을 도모하는 서낭이나 노표(路標) 장승 등이...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에 있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요양 시설. 1953년 6·25전쟁 휴전 직후 전쟁으로 인한 충격과 정서 불안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정신질환자가 많이 발생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경천이 일반인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는 무연고 정신 질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계룡정심원을 설립하였다. 한울빌리지는 1953년 5월 충청남도 논산군 두마면 용동리에 위치한 계룡산...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한천리는 예부터 찬물이 많이 나는 고장으로 이름났다. 옛날 한양으로 오고 가는 나그네들이 노성현 하도면에서 일박하고 돌아가야 선객(仙客)의 멋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여름에도 찬물이 많이 나와 한천(寒泉)이라 하였다. 충청남도 노성군 하도면(下道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평리(坪里), 내동(內洞)을 병합하여 한...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나무의 속을 파내서 곡물을 담을 수 있도록 만든 그릇. 1960년~1970년까지만 해도 각 가정에서는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함박을 만들었다. 그러나 함박보다 가볍고 손쉽게 쓸 수 있는 다양한 모양의 스테인리스 그릇과 플라스틱 그릇들이 생산되면서 상대적으로 무겁고 투박한 함박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후 경제성이 없으니 당연히 만들지도 않게 되어서 지금은 농...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와 벌곡면 한삼천리에 걸쳐 있는 산. 함박봉 북쪽 능선에는 황령재가 있는데, 이곳에 함박산성 또는 황령산성이라 불리는 토성이 있다. 백제 때 구축한 산성으로 주위가 약 300m에 이른다. 백제군의 중요한 산성이었으며, 삼국시대 말기 신라와 백제 간의 전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산의 모양이 함지박처럼 생겼다 하여 유래하였다. 함박봉은 북으로 천마산,...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 경계에 있는 고개. 함박재 위에 위치한 함박봉(403m)은 산 봉우리가 작약꽃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고, 여기에서 고개 이름도 함박재로 불리게 되었다. 함박재는 고생대 오도비스기에서 캄브리아기 사이에 형성된 옥천층군문주리층을 기반암으로 흑운모편암과 견운모편암을 주로 하는 고개이다. 고개의 서쪽 능선으로는 소릉재에 이어...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나라의 환곡 창고가 있어서 환적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함적골 또는 함적곡이라 하였다. 충청남도 은진군 갈마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국동리, 장사리, 남촌리를 병합하여 함적리라 하고 가야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함적1리·함적2리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덕암리에 있는 산. 함지봉은 백제 황산성이 자리 잡고 있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황산성은 일명 황성이라고도 불리며, 백제의 웅진시대부터 사비시대에 걸쳐 축조된 성으로 추측되며, 북쪽은 험난한 산세로 되어 있어 적의 침입이 어려운 지세를 이용하여 자연석을 축성하였고 북쪽을 제외하고는 활석을 사용하여 축성하였는데 성 높이는 서부가 2m, 동부가 1.8m이고, 성...
-
이개를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합천이씨(陜川李氏)는 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 인물인 이개(李開)를 시조로 하고 있는 성씨이다. 이개는 신라조에 벼슬하여 강양군(현 경상남도 합천군)에 봉해졌다. 이개는 신라 6촌장 중의 하나로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의 촌장이며 유리왕 때 이씨(李氏) 성을 하사받았다는 이알평(李謁平)의 후손으로, 합천이씨는 경주이씨에서 분적한...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풍수지리에 운중명월이란 명당이 있고, 지형이 반달 모양이므로 항월이라 하였다. 노성군 두마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합정리, 오류동, 서변리, 대동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항월리라 하고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광석면 소속으로 되었다. 행정구역은 항월1리·항월2리·항월3리·...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에서 비가 오기를 기원하며 지냈던 기우제. 항월리 기우제는 여성들이 주관하는 이른바 ‘날궂이 기우’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는 가뭄이 닥쳐 농작물이 타들어갈 때 여성들이 ‘미친 짓을 해야 비가 내린다’거나, ‘도깨비짓을 해야 비가 온다’는 민간 사고에 기초한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었다고 전하는데 근래에는 지내지 않고 있다. 오래도록 비가 내리지 않으...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 유동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논산~공주 간 도로를 따라 약 5㎞쯤 가면 도로 오른쪽으로 항월리에 이르는 소로가 나타나는데, 이 소로변 북쪽에 항월리 유동 고분군이 있다. 항월리 유동 고분군은 백제시대의 돌덧널무덤 계통으로 보인다. 지표면에 유실된 고분 석재는 화강석으로 약간 다듬은 흔적을 보이고 있는데, 규모도 비교적 큰 것들이다. 2008년까지 지...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3리 대동마을 입구 바위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이틀에 지내는 마을 제사. 항월3리 대동 석불제와 관련해서는 ‘호열자’라고 불렸던 콜레라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온 나라에 콜레라가 번성하여 민심이 흉흉할 시절 이 마을에도 병이 번졌는데, 어느 날 노승이 지나다가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바위를 모시면 재난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1리에서 객귀 붙은 환자에게 행하는 주술적 의례. 객귀(客鬼)는 집 밖이나 객지에서 죽은 사람의 혼령을 말한다. 죽은 사람의 넋이 저승에 가지 못하고 원귀가 되어 떠돌아다니며 아무에게나 붙어 여러 가지 재앙을 가져온다 하여 꺼리고 두려워한다. 예전에는 초상집과 같이 부정한 장소에 다녀오거나 외출을 했다가 돌아온 후에 갑자기 몸이 춥고 두통이 나면 뜬귀신[...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죽본리에 있는 장류 전문 제조 공장. (주)해찬들은 논산시의 대표적인 장류 제조업체 공장으로서 1973년 9월 13일 설립되었다. 해찬들은 ‘해가 가득 찬 들녘’의 줄임말로서, CJ주식회사의 장류 전문 브랜드다. 6·25 전쟁 당시 황해도에서 월남한 오광선, 오문선 형제에 의해 대전을 기반으로 1973년 설립되었다. 삼원상회, 삼원식품을 거쳐 1996년 5월...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8월에 햅쌀로 밥을 지어 조상과 집안의 여러 가신에게 감사하며 올리는 의례. 음력 팔월 즈음이 되면 햅쌀이 생산된다. 그 해에 처음 생산된 것을 사람이 먹기 이전에 먼저 신령께 올린다. 이를 햅쌀 천신[新穀薦新]이라 한다. 햅쌀로 지은 밥은 집안에서 기제(忌祭)를 올리는 조상과 집안 곳곳에 모신 가신(家神)에게 올린다. 조상보다는 가신에게 올리는 것이...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행림서원은 1867년(고종 4)에 세워진 부여 서씨의 문중 서원으로, 육곡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부여 서씨들의 상징적 유물이기도 하다. 논산시내에서 은진 사거리 쪽으로 가다가 왼쪽 가야곡면 방향으로 약 5㎞ 직진하면 노래골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야촌리 사거리 방면으로 지방도 68호선을 타고 약 2㎞ 직진하...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상여에 시신을 모신 관을 싣고 묘소까지 운구하면서 부르는 의식노동요. 논산 지역에서 의식노동요로서 불리는 행상 소리에는 「운상 소리」 외에도 「짝 소리」 및 비(非)넘차류에 속하는 「두 마디 소리」와 「한 마디 소리」가 있다. 그 중에 비넘차류는 멕받 형식으로 불리며, 「짝 소리」는 상여꾼이 두 패(앞뒤 각각 6명으로 모두 12명)로 나누어 부르는 윤창이다. 일...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통치작용. 과거와는 달리 현대의 행정은 국민 또는 주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 외에도 수도·전기·교통·통신 등 사회 간접 시설의 제공, 학교·도서관·공원 등 문화 시설의 확충, 사회적 약자 보호와 경제 활동의 적극적인 지도...
-
충청남도 논산시를 형성하고 있는 전체 면적 및 행정 체계. 현재 논산시 행정구역의 원형은 1914년 3월 1일 군폐합령(郡廢合令) 제111호에 의거하여 연산군(連山郡)·은진군(恩津郡)·노성군(魯城郡)과 석성군(石城郡)의 일부를 통합하여 15개 면으로 구성된 논산군(論山郡)이다. 항간에서는 논산을 ‘놀뫼’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황산(黃山)’의 뜻이라고 한다. 2011년 7월 현...
-
조선시대에 정부가 각 고을에 설립한 교육기관으로 제향과 교육을 담당했던 기관. 향교는 조선시대에 제향과 교육의 양대 기능을 담당했던 기관이었다. 그러나 교육 기능은 17세기 이후 서원이 증가함에 따라 쇠퇴하였고, 1894년(고종 31)에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대성전에 제사하는 기능만 남게 되었다. 논산 지역 향교는 노성면 교촌리 노성향교, 연산면 관동리 연산향교, 은진면 교촌리 은진...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와 계룡시 엄사면 향한리에 걸쳐 있는 산. 향적산은 향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유래하였다. 국사봉(國師峰)이라고도 하는데 신도안이 도읍이 되면 나라의 왕을 가르칠 스승이 이곳에서 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향적산 부근에 있는 국사봉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에 도읍을 정할 때 친히 올라가 국사를 논했다 하여 국사봉(國事峰)이라 하였다고 한다. 계룡...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허옥렴의 시혜비.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기 이전 상월면은 노성군 월오면 지역이었다. 그 당시 월오면장을 지낸 허옥렴(許鈺廉)이 재임 시 선정을 베풀어 이를 기리고자 면민들이 힘을 모아 허옥렴 시혜비를 건립하였다. 1983년 상월면 신충리에 면사무소를 신축하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면사무소로 옮겨 세우면서 본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3리에 있는 조선 중기 현감 이씨의 묘소. 묘역은 쌍분이며 묘비, 상석, 문인석, 묘갈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2기의 묘비에는 각각 ‘현감가평이공지묘(縣監加平李公之墓)’, ‘선인조씨지묘(先人趙氏之墓)’라고 음각되어 있다. 전체 높이는 255㎝로 비신의 높이 150㎝, 너비 70㎝, 두께 22㎝이다. 묘갈의 이수는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놓고 다투는 형상으...
-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 현대라 함은 역사학의 시대 구분 가운데 사상(思想)이나 그 밖의 것이 현재와 같다고 생각되는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1945년 8·15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동양사에서는 신해혁명(辛亥革命, 1911) 이후부터 현재까지, 서양사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현대로 구분하고 있다. 일제강점...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루어진 문학 활동. 논산 지역의 현대문학은 20세기 전반기의 일제강점기 아래에서 출발하였다. 논산의 현대문학은 리리시즘 문학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리얼리즘 문학이나 모더니즘 문학이 부분적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시에서의 김형원이나 소설에서의 엄흥섭, 김홍신이 리얼리즘 문학의 대표적 인물이다. 윤백남은 영상문학에서 선구적 업적을...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전리와 광석면 정지리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는 정부의 전국 간선도로망 구성계획에 따라 경부고속도로에 이어 건설된 노선이다. 호남고속도로는 당초 경부고속도로 서울시점 145㎞ 지점인 대전광역시 신대동 회덕분기점을 시점으로 전주~광주~순천 간을 잇는 연장 261.1㎞의 호남고속도로와 부산광역시 구포 IC를 기점으로 마산-진주-순천을 있는 연장 176...
-
일제강점기 설립된 충청남도 논산 지역 최초의 근대적 의료기관. 호남병원은 1913년에 설립되어 이듬해인 1914년에 개업하였다. 1928년 병원 건물을 신축하였으나 2004년 멸실되었다. 호남병원은 강경읍 서창리 55-1[계백로167번길 49]에 위치하였으며, 전체 면적 438㎡에 건물 면적은 240㎡였다. 병실 10여 개를 갖추고 있었으며, 건물 규모는 지상 2층, 건물 구조는...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서 연산면 천호리를 경유하는 철도 노선. 호남선(湖南線)은 대전조차장역에서 목포역에 이르는 총거리 252.5㎞의 철도이다. 대한제국 고종 때에 서울에서 목포에 이르는 철도를 부설하려고 하였으나 수원에서 천안, 대전을 거쳐 영남으로 이어지는 경부선 철도의 부설권이 일본 측에 넘어가 독자적인 간선 철도를 부설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 뒤 1914년 조선총독...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범바위가 있어 호암(虎岩)이라고 하였다. 원래 충청남도 노성군 화곡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리·소중리·장선리·방축리·장동 각 일부를 병합하여 호암리라고 하고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하면서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호암1리·호암2리로 구성되어 있다. 동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에 있었던 공립 초등학교.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도덕인,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개성 있는 건강인, 새롭게 생각하고 슬기롭게 생활하는 창의인, 다양한 체험과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자율인, 폭넓은 교양을 쌓아 진로를 개척하는 개척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했다. 1953년 5월 1일 호암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70년 3월 1일 삼동국민학...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무지개다리가 있어 무지개다리, 또는 홍교리라고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金浦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포(越浦)·북촌(北村)·상원촌(上原村)·병부(並付)·중촌(中村)의 각 일부와 신장리(新場里)를 병합하고 일본인들의 본거지라는 뜻에서 본정이라 하여 논산시 강경면에 편입하였다. 1931년 강경면이 읍...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구표는 1923년 1월 10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한천리 237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4년 태평양전쟁이 말기에 접어들면서 일제는 병력 충원을 위해 조선의 학생들까지 전쟁에 동원하였다. 홍구표는 1944년 2월 일본 군대에 학도병으로 강제 동원되어 중국 귀덕(歸德) 지역에서 일본군 기병소사(騎兵小射)로 복무하였다. 복무 중 광복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명후의 선정비. 홍명후(洪明厚, 1787~?)는 본관이 남양으로, 자는 일성(一誠)이다. 1805년(순조 5) 사마시에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거친 후, 1829년 7월 17일부터 1833년 9월 이임하기까지 5년간 연산현감을 역임하였다. 홍명후가 연산현감으로 재임할 당시 주민들의 고충을 덜어 주고 어려운 일을 신원시켜 주어 선정을...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병두는 1884년 2월 13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반월동 98번지[해월로167번길 9-1]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부터 시작된 독립 만세 운동은 다음 달인 4월에도 계속되었다. 홍병두는 1919년 4월 1일 당시 충청남도 대덕군 유성시장에서 기독교인(基督敎人)·천도교인(天道敎人) 등과 합동으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과정에...
-
조선 전기 남양홍씨 논산 입향조. 남양홍씨는 홍세구(洪世耇)의 논산 입향 이후 논산 지역에서 대대로 터를 잡고 성장했으며, 노당사·초포사 등의 문중사우를 건립하여 매년 제향을 드리는 등 사족으로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홍세구(洪世耇)는 윤증과 함께 어려서는 보인당(輔仁堂)에서, 자라서는 양정재(養正齋)에서 동문수학하였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선경(善慶), 호는...
-
조선 말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기계(杞溪). 시남(市南) 유계(兪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유치백이며, 남편은 홍순성(洪淳成)으로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홍순성 처 기계유씨는 19세에 시집온 지 열 달도 채 되기 전에 남편이 병사하자 장례를 마치고 간장 한 사발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묘소는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에 있다. 1891년(고종 27) 조정에서 명정(銘旌)이 내려져...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4리 입구에 있는 조선 말기 열녀 홍순성 처 기계유씨의 정려. 기계유씨는 시남(市南) 유계(兪啓, 1607~1664)의 후손 유치백(兪致白, 1845~?)의 딸이며, 남양(南陽) 홍순성의 부인이다. 천성이 단정하고 정숙하였으며 시부모를 정성으로 모시고 남편을 극진히 섬겨 칭찬이 자자했다. 그런데 출가한 지 10개월도 못 되었을 때 남편이 병사하게 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홍우현의 선정비. 조선시대 지방 관리인 현감으로 나아가려면 사마시에 합격을 해야 정식으로 부임할 수 있었다. 노성향교에 선생안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으나, 홍우현이 노성현감으로 부임하여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었음을 알 수 있다. 노성현감을 역임한 홍우현(洪祐賢)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백성들이 1880년(고종 17) 홍우현 선정비...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진유는 1897년 10월 24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삼호리 224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고 나서 1921년 11월 박열(朴烈)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 활동을 하고자 흑도회(黑濤會)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내분이 생기자 1922년 흑우회(黑友會)를 창립하여 『현사회(現社會)』와 『민중운동』 등의 잡지를 통해 무정부주의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충청남도 노성군 화곡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전리·덕동리·용막리를 병합하여 화곡리라 하고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게 되었다. 동부와 서부는 해발고도 120~140m의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고, 남부는 100여m의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에 꽃이 많이 피는 화산(花山)이 있어 화산 또는 매꽃미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화산면(花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광교리(光橋里)를 병합하고 중리(中里)라 하여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화산리로 명칭이 개칭되었으며,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채운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뒷산이 꽃으로 두른 언덕이라 하여 화악이라 불렀으며, 뒷산 이름도 화악산이라 불린다. 본래 연산군 식한면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화악산 밑에 있어 화악골 또는 화악이라 불러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수락리, 청동, 이곡의 일부를 병합하여 화악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연산면에 속...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1월 14일 밤 화재를 예방하고자 행하였던 세시풍속. 논산 지역에서 전승되는 화재막이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마을 차원의 화재막이를 거행하는 것인데, 이는 화산(火山)으로 지목되는 산봉우리에 소금단지나 간수를 담은 항아리를 묻고 불을 놓는 의식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정월 대보름 무렵에 각 가정에서 행하였던 불맥이가 있다. 화...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들 가운데에 통뫼와 화정(花亭)이 앞에 있는 홧대벌이 있어 화정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리와 5개 지역의 일부를 병합하여 화정이라 하고 성동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화정1리와 화정2리로 구성되어 있다. 북서부와 북동부는 해발고도...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에 큰 느티나무가 정자처럼 서 있고 주위에는 온통 꽃밭이 펼쳐져 있어 꽃정이 또는 화정이라 하였다. 원래 충청남도 은진군 노곡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동리, 음지리, 신촌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화정리라 하고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채운면에 속...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반야산(般若山)에서 준령이 내려와 화지에서 꽃이 핀 길지라고 해서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화지산면(花枝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반월리 일부와 성본면(城本面)의 해창리(海倉里) 일부, 연산군(連山郡) 부인처면(夫人處面)의 둔전평(屯田坪) 일부를 병합하여 화지리라 하고 논산군 논산면에 편입하였다. 1938년 10...
-
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있는 클래식 기타 합주단. 환타지아 클래식 기타 합주단은 밝고 건전한 고전음악의 지도·연주·보급을 통하여 청소년들이 음악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폭을 넓히도록 하여 정서 함양을 돕고 나아가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88년 9월 이근우를 주축으로 예술문화단체 샛강 내 환타지아 클래식 기타 합주단으로 창립되어, 1990년 6월 30일 제1회...
-
삼국시대 충청남도 논산시 일원에 설치된 백제의 행정구역. 황등야산군은 백제시대 군명(郡名)으로 ‘누루뫼(連山)’라는 고유의 말을 한자 ‘황등야산(黃等也山)’으로 표기한 것으로 이해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 『여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와 벌곡면 한삼천리 경계에 있는 고개. 황령재에는 함박산성 또는 황령산성이라 불리는 토성이 있다. 백제 때 구축 한 산성으로 주위가 약 300m에 이른다. 백제군의 중요한 산성이었으며, 삼국시대 말기 신라와 백제 간의 전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황령재는 바로 황령산성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황령재의 기반암은 선캄브리아기 변성암류로 주로 흑운모편마암이며...
-
삼국시대 충청남도 논산 일원에 설치된 통일신라의 행정구역. 백제의 행정구역이었던 황등야산군이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경덕왕에 의해 황산군으로 개칭된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황금정(黃金町)으로 되었다가 1947년 일본식 명칭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황산동(黃山洞)으로 된 데에서 유래하였다. 전라북도 여산군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황산(黃山)과 황산포(黃山浦)가 있어 황산이라 하였다. 1895년(고종 32) 충청남도 은진군 김포면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황금정이라...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문학 동호회. 황산문학동인회는 논산 지역 여성 문인들의 결속을 다지고 문학 활동의 장을 넓혀 나가기 위해 결성되었다. 1993년 결성 초기부터 김영화·김옥인·김진하·유진영·윤순정·이상숙 등의 시인, 강표성·경정희·김미숙·김점수·김종혜·김현숙 등의 수필가, 조은섭 소설가, 구수경 평론가 등이 참여해 오고 있다. 2009년 현재 논산 지역에 연고...
-
660년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일대의 벌판. 황산벌은 660년 백제와 신라가 대규모 전투를 벌였던 당시 백제의 행정구역이었던 황등야산군의 벌판으로,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일대의 벌판을 말한다. 936년에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백제의 신검(神劒)과 일리천(一利川)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도망가는 적군을 추격하여 끝내 이곳에서 후...
-
논산시 연산면 일대의 황산벌에서 있었던 660년 백제군과 신라군 간의 전투. 황산벌전투는 백제 의자왕이 즉위 이후 고구려와 연합하면서 신라를 공격해 642년(의자왕 2)부터 대야성(大耶城)을 비롯하여 남부 지역 40여 성을 함락시키자 이에 위기를 느낀 신라가 김춘추를 당에 보내 군사동맹을 체결함과 더불어 백제를 공격하면서 벌어진 양국의 운명이 걸린 일전이었다. 7세기 중반 신라는...
-
황산벌전투는 백제의 계백 장군이 이끄는 5천 결사대와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5만 군이 충청남도 논산의 황산벌에서 660년 7월 9일부터 7월 10까지 2일간에 걸쳐 벌인 전투를 말한다. 황산벌 전투는 비록 패배한 전투였지만, 다른 어떤 전투보다도 한국전쟁 역사상 커다란 의미를 지니며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다. 백제 말기의 정치 상황은 대부분의 고위 관료들이 자신의 안위와 정...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광리에 있는 미술 단체. 황산벌 조각회는 회원 개개인의 창작 역량을 강화하고,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미술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88년 11월 윤황식을 중심으로 하여 논산청년미술회로 출범하였다. 2006년황산벌조각회로 명칭이 바뀌었다. 창립 당시 회원 자격을 논산 출신의 고등학교 졸업자로 엄격히 제한하였으나, 이후 자격 요건이 완화되어 논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황산벌 일원에서 음력 7월 초·중순에 농사의 신명을 돋우는 두레 풍물놀이. 황산벌은 넓은 들판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들녘이 넓어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되었다. 황산벌에서 음력 7월 초부터 중순까지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 힘든 것을 잊기 위해 일음악으로 쓰이던 풍물놀이가 바로 황산벌풍장놀이다. 일터에는 늘 풍물이 함께 한다. 일과 어우러진 풍물을 이곳에서는...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강경포구를 드나들던 황토로 물들인 돛을 단 배. 강경포구는 조선 후기 내륙의 대표적인 3대 장시의 하나로, 서해안의 소금과 해물이 강경포구를 통해 충청도 내륙 전역으로 유통되었다. 조선 후기의 유일한 운송 수단인 황포돛배는 면포에 황톳물을 들인 기폭을 달고 끊임없이 금강을 오르내렸다. 금강에 토사가 쌓이고, 금강 하구가 막혀 운항이 중단되었지만 과거...
-
충청남도 논산시 부창동에 있는 산. 조선시대 황화산은 봉화대로 이용되었는데, 남쪽으로 강경산 봉수를 받아 북쪽으로 노성산성 봉수에 응하였다고 한다. 황화성은 백제 때 가지내현(加知奈縣) 또는 갈내(乫乃) 뒤에 위치해 있어서 갈내성 또는 갈라성이라 하였다. 백제 30대 의자왕이 이곳에서 평평하고 큰 바위에 앉아 강을 내려다보면서 놀고, 그 바위를 황화대라 명명하여, 황화산 또는 황화...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 관찰사 등 관리들이 머물렀던 황화정이 있었다 하여 황화정리라 하였다. 본래 전라북도 여산군 합선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피제면(皮堤面)의 신리 일부와 은진군 구자곡면의 무동(武洞) 일부를 병합하여 황화정이라 하고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1월 1일 연무읍이 승격됨에 따라 논산군 연...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황화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비. 황화정(皇華亭)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 지점인 황화정리에 세워져 있다. 황화정은 관리들이나 과객이 지나다가 잠시 머물러 쉬어가기도 하고 관찰사를 전송하거나 영접하던 곳으로, 조선시대 전라도 신구 관찰사가 임무 교대를 하였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전라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여산 고을에서 최북단이며, 북쪽으로 위치한 작고 낮은...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서 발원하여 안심리에서 마산천에 합류하는 하천. 2010년 말 현재 황화천은 지방2급하천으로 본류는 금강이며, 제1지류는 강경천, 제2지류는 마산천이다. 유로 연장은 6.5㎞이고, 유역 면적은 5.79㎢이다. 황화천은 논산시 연무읍 남동쪽에 위치해 있는 고내리 수철천과 황화정리의 구합선에서부터 시작하는 하천이다. 고내곡마을이 위치해 있는 소규모 분지에...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논산에서 노론과 소론의 선봉에 섰던 송시열과 윤증의 사상 대립. 남인이었던 백호 윤휴(尹鑴)는 새로운 이념설을 주장하면서 모든 경서의 집주(集註)를 상대적 성리학적 견해로 고치고자 하였다. 윤휴의 주자학에 대한 비판론은 당시 주자학의 적통을 이은 송시열(宋時烈)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문제였다. 이에 따라 송시열은 윤휴를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배척하였다. 서인과...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가야곡면소재지에서 산소지를 거쳐 연산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4.5㎞ 가면 산노리 효암서원 앞에 이른다. 서원 입구 오른쪽에 강응정 정려가 있다 효암서원의 전신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가야곡면 두월리의 갈산사로서, 1713년(숙종 39) 현재의 자리인 산노리에 다시 세운 것이다. 당시 갈산사는 중화재 강응정을 모신...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부모를 지극한 정성으로 섬긴 자식을 일컫는 말.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충신·효자·열녀에 대한 포장(襃獎)이 수여되었다. 유교적 산물인 충·효·열 삼강에 대한 관념은 유교가 수용되어 정착된 후대에 형성되었을 터이지만, 충신이나 효자에 대한 칭송이나 포장은 고대부터 있었다. 유교적 이념을 기반으로 해 효도를 중요시한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효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이 마을에 살았던 신씨가 과거에 등과하여 솟대를 세워 이 마을을 솟대배기라고도 하고, 효자가 있어 마을 입구에 효대를 세워 효대배기라고도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효대를 한문으로 효죽(孝竹)이라고 표기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요현동·봉익동·하반용동·사교리·대정리 등 각 일부를 병합하여 효죽리라고 하고 논...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 후동 산제 및 마을 기금에 관한 문서. 대명리 후동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초사흗날 마을을 굽어보는 국사봉에 올라 마을의 안녕을 위한 산제를 지내는데, 산제와 관련한 후동산제절목(後洞山祭節目)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후동산제절목은 1859년부터 기록이 남아있고, 노안 및 하계는 각각 1854년, 1858년부터 기록되었다. 1911년 이후 일제강점기...
-
후삼국시대 후백제 관할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 한국역사에서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라 함은 892년 견훤이 광주를 점령하고 왕을 칭한 때부터 936년 고려에 의해 한반도가 다시 통일되기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그리고 이때 견훤(甄萱)이 세운 나라가 후백제로 신라·태봉(후고구려)과 함께 후삼국을 이루었다가 936년 고려에 의해서 멸망되었다. 이 시기 논산 지역의 역사를 관할 국가...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촌리에 있는 주사제 용기 제조업체인 휴베나의 제조 공장. 1992년 4월 비봉이화학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1996년 1월 국제유리(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이후 시설 증설, 전문 생산 인력 확충, QC/QA 체계 등을 수립하였으며 휴베나로 상호를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 생산 제품은 주사제용 앰풀(ampoule)과 바이알(vial, 유리병...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휴정서원은 기호 사림의 종장인 김장생의 친족과 그의 학통을 받은 문인들만을 제향한 점에서 여타 기호계 서원과는 의미가 다르다. 연산 지역은 호서 지방의 대표적인 서원인 논산 돈암 서원이 있는 곳이다. 기호학파의 거두 김장생을 제향한 논산 돈암 서원이 존재하고 있는데 다시 그의 친족 문인들로 구성된 휴정서원이 세워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