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곡리는 오랜 세월 동안 부여서씨가 터를 잡고 살아온 동족마을이다. 2000년대 들어서도 주민의 약 30%가 부여서씨이며 마을 곳곳에 부여서씨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들은 가문의 전통이 먼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백제 왕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믿는데,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셋째 아들 부여융을 시조로 여긴다. 육곡리에서 태어나 자라며 문중의 작은 일까지 도맡...
현재의 육곡리는 면소재지의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전통시대에는 호남에서 서울로 갈 때에 반드시 지나는 큰 길목이었다. 오늘날처럼 여러 갈래 도로가 발달하기 전인 1970년대만 해도 논산, 강경, 대전을 가려면 반드시 육곡리를 거쳤다. 이 같은 지리적 환경 덕분에 육곡리는 백제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행정중심지의 역할을 하였고, 독립적인 군현지역으로서 행정체제가 마련될 수 있었다. 백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