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B030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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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경윤 |
연산면 연산리 시장 구석에 대장간이 자리 잡은 것은 1978년경이다.
대장간의 대장장이 유오랑 할아버지는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 받아 평생 쇠를 만지는 일을 해왔다. 계룡시 신도안면 남선리(옛 논산군 두마면 남선리)에서 아버지 대부터 대장간을 운영하였으며, 12살이 되던 1950년에 불무지에서 불을 다루는 일부터 시작해, 아버지에게 하나씩 전수 받아 지금까지 58년간 한길만을 걸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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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안에서 유오랑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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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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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유오랑 할아버지
유오랑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대장간 일을 한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해에 철물장사를 시작으로 물건을 사다 팔았는데 하나같이 모양이 마음에 안 들고,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철물점 옆에 불통을 만들어 놓고 손봐주고 고쳐주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대장간으로 귀결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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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안에서 유오랑 할아버지
남선리에서 일을 할 때에는 마을 전체가 대장간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연산리에 대장간을 하나 더 만들어 두 곳을 운영하였는데, 1988년쯤에 신도안의 개발정책으로 군사시설인 계룡대가 들어오면서 남선리에 있던 대장간은 없어지고 지금은 연산리에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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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모습
유오랑 할아버지의 연산리 대장간은 1978년쯤 문을 열었다. 무엇이든 ‘뚝딱’하면 만들어 내기로 유명했던 유오랑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인자한 성품과 훌륭한 재주로 남선리 일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유오랑 할아버지 부친은 보릿고개시절부터 시작한 대장간 일로 남선리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가하면, 그 당시 얼마나 배고파, 먹을 것도 없지 일거리도 없지. 동네사람들이 고마워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 누구나 원하는 사람은 다 데려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할 일이 없는 사람들도 다 불러서 일거리를 줬어. 그리고 그때 가족들만 해도 6남매에 거기에 또 딸린 식구 10여명, 그리고 버려진 아이들을 다 데리고 와서 키우고, 주변에 굶고 있는 사람, 불쌍한 사람 다 데려다가 먹이고 입혀 출가까지 시키셨던 대단한 분이여, 요새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 있어.”
가족만 해도 20명이 훌쩍 넘는 대가족이 모여 다함께 살았다. 6남매 중 5째인 유오랑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 아버지께서 미리 후계자로 점찍어 두었다고 한다. 유오랑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점점 일을 배울수록 자신의 손에서 물건이 만들어져 나오는 게 신기하고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쉬워 지금까지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매일 대전에서 연산으로 30㎞거리를 출퇴근을 하는 유오랑 할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 5시 전에 일어난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6시쯤 버스를 타고 대장간으로 출발을 한다. 연산에 도착하는 시간은 늦어도 7시 20분, 그때부터 대장장이로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한 번에 오는 버스가 없어서 2번을 갈아 타고 와. 사실 아침에는 일어나기가 힘들어, 그런데 여기만 오면 힘든 거 하나 없이 즐거워. 이상하지?”
대장장이 일을 천직이며 최고로 생각하며 늙은 유오랑 할아버지는 지금 나이에 어디 가서 취직도 못하고 그렇다고 집에서 놀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데 이렇게 일할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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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하는 유오랑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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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오랑씨 작업모습
“이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어디 있어.” 화덕에서 빨갛게 달궈진 쇠를 ‘뚝딱뚝딱’내려치면서 하는 말씀이다. 주변 지역이 도시화 되고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 가는 시대에 옛 전통을 고집하면서 아버지가 물려주신 방식 그대로 지켜가는 그의 얼굴은 뜨거운 쇳물처럼 붉은 생기가 넘친다.
좋은 쇠가 나오려면 정성스럽게 담금질하며 망치질을 수없이 해야만 한다.
“사러오면 팔고 안 사러오면 말고,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사가고, 없으면 사가도 그만 안사가도 그만이야. 내가 한평생 살면서 이걸 장사로 생각하겠어? 심심하면 일하고 만들고, 건강을 위해서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지.”
기계로 농사짓는 세상에 철물장사가 될까 싶지만 유오랑 할아버지는 큰 걱정이 없다. 자식들에게 손 벌려 본 적도, 용돈을 타서 쓴 적도 없다고 한다. 그냥 이 일 자체가 좋아서 즐기고 있는 듯하다. 물건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논산에서 뿐만 아니라 멀리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와 물건을 사간다. 방송이나 신문에도 출연하여 이름도 많이 알려져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도 종종 있다. 수입산 물건에 비해서는 많게는 10배까지 가격차이가 난다. 낫 하나에 뭐가 그렇게 비싸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계가 만든 것과는 품질이 다르다. 일평생 갈아서 쓰고 또 써도 될 만큼 강하고 튼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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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오랑 할아버지의 작업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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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 손님
“나는 소원도 바라는 것도 하나도 없어, 근데 내가 원통한 게 있는데, 장사하고 물건 만드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좋은데 왜 이렇게 빨리 나이만 먹어 가는지. 10년은 더 하고 싶은데 더 할 수 있으려나? 여기 안 나오는 날이 나 죽은 날인 줄 알어.”
알 만한 사람들은 유오랑 할아버지의 물건은 모두 명품이라고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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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 물건
유오랑 할아버지가 직접 개발한 것이 있을 정도로 쇠로 두들겨 만드는 것 중에 못 만드는 게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쉬는 날이라고는 1년에 두 번 추석, 설날 당일에만 쉰다. 자식들과 어머니가 1990년부터 그만두라고 사정을 해도 자신의 힘이 허락 하는 날까지는 매일 나와 대장간 일을 할 생각이다. 그의 손을 거치면 고장 나서 못 쓰던 것도 금세 새것으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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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오랑씨 작업모습
“내 손 좀 봐. 이 손은 죽어도 썩지도 않아.”
유오랑 할아버지가 내민 손은 사람의 손인지 나무 판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딱딱하고 굳은살 투성이다. 손 안에 열심히 살아온 한 인간의 한평생이 나타나 있었다.
연산리에 사는 이강만 할아버지(71)는 계룡시 두마면 남선리에서 유오랑 할아버지와 같은 동네에 살다가 신도안 개발로 함께 온 사람이다. 가끔씩 대장간에 놀러오는데 유오랑 할아버지와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평생을 함께 살아온 친구이자 동반자이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 사람은 가정 자체가 훌륭한 집안이여, 그런 것을 보고 배워서 그런가. 나이를 먹어서도 끝까지 한결 같은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친구로서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 쇠를 두드려 만드는 것은 있는 그대로 다 나타나니까 거짓말도 못하는 거야. 이 사람이 여기 연산리에 있는 것 자체로도 힘이 되는 사람이지. 앞으로 건강만 조심했으면 좋겠는데, 한 가지 안타까운 건 후계자가 없는 게 너무 아쉬워, 요즘 젊은 사람들 누가 하려고 하나 힘들일 아무도 안하지. 이런 사람 없어. 이 사람은 콩 심은 자리는 꼭 콩이 나고, 팥 심은 자리는 무조건 팥이 나는 그런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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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에서 만난 사람들
편리함에 익숙한 시대에 뜨거운 열기 속에서 대장간을 지키고 있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정보 제공자]
유오랑(남, 1940년생, 연산4리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