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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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羅下代佛敎-受容-發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고대 |
집필자 | 배재홍 |
[정의]
신라 하대 삼척 지역의 불교 수용과 변화.
[개설]
삼척 지역에는 7세기 중엽 선덕여왕 때 불교가 본격 전파되었다. 그 후 신라 하대에 와서는 선종이 널리 보급되었다. 특히 선종 가운데 범일(梵日)이 개창한 사굴산파(闍崛山派)의 영향이 컸다.
[신라시대 창건 사찰]
신라의 불교는 법흥왕 대에 공인된 이후 왕실의 적극 장려에 힘입어 크게 발전함으로써 각처에 많은 사찰이 세워지고 고승과 학승도 배출되었다. 이 과정에서 삼척 지역에도 불교가 전파되고 사찰들이 건립되어 갔다. 현존하는 삼척 지역의 사찰 가운데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사찰로는 삼화사(三和寺), 지상사(池上寺), 영은사(靈隱寺), 신흥사(新興寺), 삼장사(三藏寺), 천은사(天恩寺)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자료가 대체로 풍부한 삼화사의 창건 설화를 통해 본 신라시대 삼척 지역의 불교 전파와 그 이후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643년 자장 창건설]
자장(慈藏) 창건설은 선덕여왕 때 자장 중심으로 추진된 오대산 성역화 사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덕여왕 때 신라는 불교 신앙을 통하여 강력한 국가 정신을 확립하려고 하였다. 그 일환으로 선덕여왕은 당나라에 있던 자장을 불러들여 오대산을 불교의 중심 도량(道場)으로 만들기 위한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자장은 643년(선덕여왕 12)에 귀국하여 오대산에서 성역화 사업을 진척시켰다. 그러나 지방 세력의 비협조로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그 후 자장은 경주로 돌아가서 대국통(大國統)으로서 황룡사 9층 목탑 건립을 주도하였다. 그후 자장은 만년(晩年)에 다시 오대산을 찾았다.
이처럼 자장은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두 번이나 오대산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자장은 지방 세력이 협조하고 호의를 보이면 그 지역에 사찰을 건립하였다. 수다사(水多寺)[지금의 등명낙가사]와 석남원(石南院)[지금의 정암사]이 바로 당시 자장이 건립한 사찰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당시 자장은 오대산 성역화를 위하여 지방의 협조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수다사와 석남원에서 가까운 삼척의 두타산 일대도 방문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서 삼화사의 창건은 어떤 형태로든 선덕여왕 대에 오대산 성역화 사업을 추진한 자장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829년 창건설]
829년(흥덕왕 4) 창건설은 내용이 조금씩 다른 세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이 세 가지 전설을 종합해 보면 829년에 삼선(三禪) 또는 삼신인(三神人)과 약사삼불(藥師三佛)이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삼척두타산에 와서 청련대, 백련대, 흑련대, 금련대를 창건하였다. 이 가운데 흑련대(黑蓮臺)가 지금의 삼화사로 전해진다.
이 창건 설화는 신라 하대 당시에 삼화사가 교종(敎宗)에서 선종(禪宗)으로 개종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라 하대는 각 지방에 호족이 대두하여 자신들의 종교로서 경주 귀족들과는 달리 선종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9세기에는 선종 9산(山)이 성립되었다. 당시 강릉에서는 범일이 851년(문성왕 13)에 굴산사(崛山寺)에서 강릉 호족 김순식의 후원 아래 사굴산파를 창설하였다.
이에 따라서 강릉과 거리가 가까운 삼척두타산 일대에도 선종이 보급되고, 선종 계통의 승려가 다수 들어왔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과정에서 삼화사도 자연스럽게 선종으로 개종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신라 하대 당시의 삼척 지역 불교계 변화가 반영된 것이 삼화사의 829년 창건 설화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범일조사 창건설]
여기서 범일조사(梵日祖師)는 앞에서 언급한 사굴산파를 개창한 바로 그 인물이다. 『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에 따르면 범일이 사굴산에서 와서 사찰을 세우고 삼공암(三公庵)이라 하였다. 삼공암이라 한 것은 신라 말에 세 명의 신인(神人)이 각기 많은 신료(臣僚) 무리를 거느리고 이곳에 모인 이후 지방민들이 그 산봉우리를 삼공이라 불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또 범일이 삼공암을 창건한 해는 864년(경문왕 4)이라고 명확히 밝힌 기록도 보인다.
이러한 범일 창건설은 그가 삼화사를 처음 창건하였다는 것을 말하기보다 9세기 후반에 삼화사가 범일이 개창한 사굴산파에 편입된 사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범일이 이미 폐허화된 삼화사 터에 새로운 사찰을 건립하고 삼공암이라 하고는 사굴산파에 편입시킨 사실을 말할 수도 있다. 당시 강원도영동 지역 사찰은 대부분 범일의 사굴산파에 편입되었거나 그 영향 아래 있은 것은 틀림없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삼화사도 어떤 형태로든 사굴산파와 관계를 맺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불교 전파와 신라 하대의 선종 보급]
세 가지 삼화사 창건 설화를 종합하면 삼화사는 선덕여왕이 자장 중심으로 추진한 오대산 성역화 사업과 관련하여 7세기 중엽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 후 신라 하대에 들어와 선종으로 개종하였으며, 9세기 후반에는 범일의 사굴산파에 편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삼화사는 고려태조왕건의 후삼국 통일에도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이에 따라서 삼척 지역에는 7세기 중엽 선덕여왕 때 불교가 본격 전파되었고, 신라 하대에 와서는 선종이 널리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선종 가운데 범일이 개창한 사굴산파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