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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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龍采 |
영어공식명칭 | Choi Yongchae |
이칭/별칭 | 영채,성언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전제훈 |
[정의]
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가계]
최용채(崔龍采)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개명하여 영채(永采)라고 하였다. 자는 성언(成彦)이다. 생원(生員) 최도봉(崔道鳳)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최용채는 집안이 가난하였지만 늙은 부모에게 있는 정성을 다하여 섬겼다. 부모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정성껏 받들어 모시었다. 그러다가 부모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살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다시 3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아니하고 슬퍼하였다.
[상훈과 추모]
최용채의 효행은 1891년(고종 28) 가을에 왕의 명을 받은 이무로(李茂魯)가 이 사실을 듣고 효자로 상신하였으며, 최용채에게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부사 심의홍(沈宜弘)이 글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