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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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桃里 |
이칭/별칭 | 뒌개,돈포,돈포리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손명철 |
1946년 -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면 신도리 개설 | |
1956년 -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면 신도리에서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신도리로 개편 | |
2006년 -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신도리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로 개편 | |
마을 | 신도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
성격 | 법정리 |
면적 | 8.91㎢ |
가구수 | 376가구 |
인구(남, 여) | 873명[남자 425명, 여자 448명]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신도리의 옛 이름은 ‘뒌개’로, 한자어 돈포(敦浦, 頓浦)는 ‘뒌개’의 한차 차용 표기이다. ‘뒌개’의 뜻은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의 신도2리에 있는 신도리 포구를 이른다. '뒌개‘ 가까이에 있던 마을을 돈포리(敦浦里)[뒌가을]라 하였으며, 18세기 말에 돈포리(頓浦里)로 표기했다.
신도리는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도원리(桃源里)와 순창리(順昌里)를 통합하여 생겼는데, 새롭게 흥성하는 도원리라는 의미에서 신도리라 한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신도리는 1416년(태종 16) 대정현이 설치될 때, 대정현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6세기 말 주로 어업을 하는 사람들이 ‘뒌개’ 일대에 들어와 거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1914년에 제주군 대정면 신도리가 되었으며, 1946년 제주도제가 실시될 때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면 신도리가 되었다. 1950년대 초반 녹남오름[일명 녹남봉, 100.4m] 일대를 신도1리, 논깍골 인근을 신도2리, 비자남케 주변을 신도3리로 구분하였다.
1956년에는 대정면이 대정읍으로 승격되면서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신도리가 되었으며,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남제주군이 서귀포시에 포함되었고,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 신도1리의 상동·하동, 신도2리의 앞동·방앗동·하동, 신도3리의 비자동·대거동이 있다.
[자연 환경]
신도리는 대정읍의 가장 서쪽에 있는 마을로, 전체적으로 해발고도 50m 이하의 평지를 이루며, 남쪽에 정상에 원형 분화구가 있는 녹남오름[100.4m]이 분포한다. 서쪽 해안에서 동쪽 내륙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진다. 주변에는 농토가 넓게 펼쳐져 있다.
겨울철에 비교적 따뜻한 편이며, 다른 지방에 비해 바람이 많다. 태풍의 진입로에 있어 크고 작은 태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기도 하다.
[현황]
신도리는 서귀포시 대정읍 북서쪽에 위치하며 해안과 중산간에 걸쳐 있다. 면적은 8.91㎢로 대정읍 내 13개 법정리 가운데 규모가 세 번째로 크다. 2012년 2월 현재 인구는 376가구, 873명으로 남자가 425명, 여자가 448명이다. 지난 10여 년간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감소 폭도 비교적 큰 편이다. 풋마늘과 겨울감자가 주요 소득원이다.
마을 단체로는 마을회·노인회·청년회·부녀회 등이 있다. 신도2리는 ‘1990년 범죄 없는 마을’, ‘1994년 쓰레기 없는 마을’로 지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