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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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耽羅地圖-地圖幷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문기 |
[정의]
1709년 제주도의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를 서문(序文)으로 써서 제작한 제주도 지도와 서문.
[제작 발급 경위]
3단 형식으로 된 이 지도는 상단과 하단에 서문을, 중간에는 지도를 배치하였다. 하단 말미에 “강희 기축 정월 이등 개간(康熙己丑正月李等開刊)”라고 되어 있어, 강희 기축년인 1709년 정월에 이(李) 아무개 등에 의해 처음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이 아무개는 1707년(숙종 32) 9월에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규성(李奎成)으로 추정된다.
[형태]
3단으로 구성된 목판본 제주도 지도로서, 크기는 가로 94㎝, 세로 154㎝이다. 상단에는 제주 읍호의 변천·전결(田結)·목장(牧場)·봉수(烽燧)·연대(烟臺)·효자열녀문(孝子烈女門)·촌점(村店)·연호(烟戶)·관원(官員)·군액(軍額)·공헌(貢獻)과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읍성규모와 공해(公廨)·진성(鎭城)·방호소(防護所)가 기록되어 있다.
중앙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산천·포구·지명·목장·원(院)·과원(果園)·주변 섬 등이 상세히 표기되어 있으며, 지도 주변에 24방위를 표시하였다. 지도는 현재와 달리 남쪽이 위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하단에는 한라산 등 주요 경승(景勝)과 관련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구성/내용]
서귀포 지역과 관련된 서문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3곳의 목장 가운데 정의현은 3곳, 대정현에는 3곳이 있으며, 봉수는 정의현에 10개소, 대정현에 5개소가 있다. 연대는 정의현에 11개소, 대정현에 9개소가 있다. 과원은 40곳 중 정의현에 7곳, 대정현에 6곳이 있으며 효자열녀문은 6곳 가운데 정의현에 1곳이 있다.
시골 주막[村店]은 150곳 가운데 정의현은 35곳, 대정현에는 13곳이 있다. 제주 전체 민가[烟戶]는 8,955호로 정의현은 1,449호, 대정현은 815호이며, 인정(人丁)은 정의현이 7,459명, 대정현은 4,085명이다.
정의현성의 둘레는 2,986척[약 900m] 이고 높이는 9척[약 2.7m]인데, 성안에는 문묘(文廟)·객사(客舍)·사창(司倉)·군기고(軍器庫) 등이 있다. 정의현 소속 방호소는 수산진과 서귀소이다. 대정현성은 둘레가 4,890척[약 1,480m] 높이는 9척이며, 성안에는 객사(客舍)·사창(司倉)·군기고(軍器庫)와 과원 1곳이 있다. 대정현 소속 방호소는 차귀진과 모슬소이다.
하단에는 식생(植生), 한라산과 백록담·영곡(靈谷)·천불봉(千佛峯)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된다. 특히 한라산과 관련해서 “춘분·추분날 남극노인성이 비춤으로써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였다. 또 송악산과 산방·천제담(天帝潭)[천제연]·천지연(天池淵)·정방연(正方淵)의 위치와 광경 등이 묘사되어 있다.
지도에는 상우둔(上牛屯)[상효동]·강정촌(江汀村) 등의 마을이름과 진성(鎭城)·목장·포구·산천 등이 표기되어 있는데 중문원(中文院)이 표시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의의와 평가]
「탐라지도」와 아울러 쓴 서문[幷序]은 18세기 초반 서귀포 지역의 전반적인 상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탐라지도및지도병서는 1991년 6월 4일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