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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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九億里-窟 |
이칭/별칭 | 섯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720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현문필 |
문물 지정 일시 | 2002년 4월 11일 - 구억리노랑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8-1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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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구억리노랑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구억리노랑굴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720번지 외 1필지 |
성격 | 가마터 |
양식 | 옹기가마[돌가마] |
크기(높이) | 145㎝ |
길이 | 1,700㎝ |
둘레 | 너비 289㎝ |
소유자 | 김광찬호 |
관리자 | 서귀포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에 있는 조선 시대 옹기 가마.
[개설]
제주 사람들은 가마[窯]를 ‘굴(窟)’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가마에서 생산된 그릇의 빛깔에 따라 노랑굴과 검은굴로 구분한다. 구억리노랑굴은 구억리 상동 속칭 ‘너비낭알’이라고 불리는 곳 서쪽에 있어 ‘섯굴’이라고도 부른다. 구억리노랑굴은 노란 빛깔을 띠는 옹기가 생산되었던 가마이다. 가마에서는 1,100℃가 넘는 높은 온도로 허벅·통개·장태·고소리·펭 등 다양한 일상 용기들이 생산되었다.
[위치]
가마는 구억리 마을 북동쪽 서광리 방향으로 1.2㎞ 떨어진 지방도 1136호선의 좌측, 서광사거리에서 구억리 방향으로 지방도 1136호선의 우측 농로에서 약 450m 정도 떨어져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720번지[외 1필지]에 위치한다.
[형태]
가마는 18° 정도의 자연 경사면을 이용해 길이 1,700㎝, 소성실의 너비 127㎝ 정도로 축조되었다. 구조는 아궁이·부장[연소실]·불벽·소성실[번조실]·잿불구멍[창불구멍]·뒷구멍[배연구·굴뚝]·출입구·부장쟁이 등 노랑굴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가마벽은 현무암과 흙으로, 천정은 벽돌을 사용해 만들었다. 땔감을 넣는 아궁이는 현무암 판석 3매를 이용하여 ‘����’자형으로 만들었다. 아궁이에서 집어넣은 땔감을 태우는 부장은 소성실 바닥보다 다소 깊게 굴착하여 타원형으로 만들었다. 부장은 벽체와 천장을 현무암과 점토로 만들었다. 부장과 소성실의 경계에는 점토와 돌을 이용해 불벽을 세웠다. 불벽에는 가마벽 가까이에 ‘∩’자형의 불구멍 2개를 두었다. 불구멍은 부장의 불길을 소성실로 골고루 보내는 역할을 한다.
아치형의 출입구는 불벽이 끝나는 가마의 우측에 만들어 소성실에 그릇을 넣고 꺼낼 때 이용했다. 소성실은 부장 길이의 4배 정도로 크게 만들었는데, 벽체는 현무암을 수직으로 쌓고 내부를 점토로 마감했으며, 천장은 벽돌을 이용해 아치형으로 축조하였다. 현존하는 노랑굴 중 소성실의 천장을 벽돌을 사용해 축조한 것은 구억리노랑굴이 유일하다. 가마벽과 천장의 경계 부근에는 소성실의 그릇 번조 상태를 확인하는 잿불구멍을 평균 50㎝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가마의 뒷부분에는 연기가 빠져 나갈 수 있도록 가마바닥에 4개의 사각형 구멍을 두었으나 뒷구멍 일부가 유실되어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아궁이 주변에 돌담을 둘러 부장쟁이를 만들었는데, 가마에 불 땔 바람막이 역할도 하지만 연료를 쌓아놓거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현황]
2002년 4월 11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 58-1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가마는 보호각과 펜스를 세워 관리되고 있다. 적은 양이지만 가마의 좌우측에 가마 폐기물 퇴적이 남아 있다. 북동쪽 약 300m 떨어진 지점에는 구억리 검은굴[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8-2호]이 있다.
[의의와 평가]
구억리노랑굴은 현전하는 노랑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돌가마이다. 가마의 뒷구멍 일부가 파손되었지만 부장쟁이에서 가마의 뒷부분까지 비교적 잘 남아 있어 제주의 전통 가마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