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6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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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靜城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214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임승희 |
건립 시기/일시 | 1418년 - 대정성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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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53년 - 대정성 내 대정향교 단산 아래로 이전 |
문물 지정 일시 | 1971년 8월 26일 - 대정성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대정성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재지정 |
소재지 | 대정 성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2142번지 외 91필지 |
성격 | 성곽 유적지 |
문화재 지정 번호 |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에 있는 조선 시대 성터.
[개설]
대정성지는 조선 시대 제주도의 3읍성 중 하나로 대정현에 축성된 성곽 유적지를 말한다. 행정 구역상 대정성지는 대정읍 안성리, 인성리 및 보성리 일대에 걸쳐 자리 잡고 있다. 제주읍성으로부터 대정성지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50km 정도이다.
[변천]
제주도는 1416년(태종 16)에 제주목과 정의현 및 대정현 등 3개 지역으로 분리되었는데, 대정성은 분리된 지 2년 후인 1418년(태종 18) 봄에 초대 현감인 유신이 축성했다.
[위치]
대정성지는 현재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2142번지 외 91필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대정성의 규모는 길이 4,890척[1,467m], 높이 17척 4촌[5.22m]이고 동·서·남·북문[나중에 폐쇠됨] 등 4개의 문과 옹성, 문루 등을 설치했으며 6개의 치성을 갖추고 있었다. 여첩(女牒)[성 위의 담]은 가장 많은 시기에는 240개, 적은 시기에는 155개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외적의 공격이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곽 주변에 파놓은 해자 시설도 있었다고 추정된다.
[현황]
외부 형태로 볼 때, 대정성은 성담을 기준으로 4각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성 안에는 동문과 서문을 잇는 일직선 도로와 남문과 중간 지점을 잇는 주요 도로가 개설되어 있고 전체적으로는 T자형 도로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대정성은 제주목의 제주읍성이나 정의현의 정의현성과 마찬가지로 축성한 이후 시기에 따라 규모가 조금씩 달랐으며 또한 성곽에 필요한 보조 시설도 서로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처음 축성한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증·개축과 더불어 보조 시설들을 정비해 왔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대정성에 주둔했던 병력은 성장 2명과 치총 4명을 비롯하여 현감 수솔관 115명, 성정군 380명, 유직군 40명이었다. 이외에 관할 봉수와 연대가 각각 3개소와 7개소, 또 이에 필요한 병력으로 별장 60명과 봉군 120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대정성 안에는 동헌인 영안관을 비롯하여 윤경당·청풍당·향사당·군관청·인리청·현창·군기고·기패청 등 여러 용도를 지닌 건물들이 있었다. 대정향교도 처음에는 성 안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1653년(효종 4)에 단산 아래로 이전했다. 대정성지는 1971년 8월 26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