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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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靜縣城- |
이칭/별칭 | 우성목,우석목,무성목,무석목,벅수머리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좌동렬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754년 - 대정현성 돌하르방, 김몽규 목사가 읍성 성문 앞에 세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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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71년 8월 26일 - 대정현성 돌하르방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34호~제2-45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대정현성 돌하르방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34호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와 신평리간 도로변 |
현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35호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사무소 입구 : 남 |
현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36호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리사무소 입구 : 북 |
현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37호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서문옹성 내 |
현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38호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보성초등학교 운동장 입구 |
현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39호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보성초등학교 입구 : 북 |
현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40호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보성초등학교 입구 : 남 |
현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41호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인성리 남문 : 동 |
현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42호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남문 : 서 |
현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43호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추사관 입구 : 동 |
현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44호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추사관 입구 : 서 |
현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45호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인성리 동문옹성 내 |
성격 | 수호신, 위치표시 |
크기(높이,둘레) | 동문지 동[높이145.5cm , 둘레196cm], 동문지 가운데[높이125cm, 둘레186cm], 동문지 서[높이141cm, 둘레157cm] |
크기(높이,둘레) | 남문지 동[높이150.5cm, 둘레205cm], 남문지 서[높이139cm, 둘레198cm] |
크기(높이,둘레) | 보성초등학교 정문 밖 북[높이111.5cm, 둘레156cm], 정문 밖 남[높이 122.5cm, 둘레157cm], 보성초등학교 정문 안[높이116.5cm, 둘레190cm] |
크기(높이,둘레) | 보성마을회관 입구 북[높이122.5cm, 둘레182cm], 남[높이138cm, 둘레160cm] |
크기(높이,둘레) | 보성 상동 돗귀동산[높이131cm, 둘레178cm] |
크기(높이,둘레) | 보성리 길가공터[높이107.5cm, 둘레165cm] |
소유자 | 서귀포시 |
관리자 | 서귀포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
[정의]
조선 시대 대정현 관아 성문 밖에서 수문장 역할을 하였던 12개의 석상.
[개설]
돌하르방은 조선 시대 제주 삼읍인 제주·정의·대정성의 성문 입구에 세워져있던 석상(石像)으로, 수호신적 역할, 주술종교적 역할, 위치표식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돌하르방은 우석목·무성목·벅수머리 등으로 불리웠는데, 해방 후에 ‘돌하르방’으로 통일되었다.
김석익의 『탐라기년』에는 1754년(영조 30년) “목사 김몽규 설 옹중석어성문외(牧使金夢奎設翁仲石於城門外)[목사 김몽규가 성문 밖에 돌하르방을 세우다]”라 하였고, 『담수계편』에는 “제주읍성 동서남 삼문외(濟州邑城 東西南 三門外)[제주읍성 동·서·남 삼문 밖]”라 하였다. 이로 보아 돌하르방은 1754년 김몽규 목사 때에 동·서·남문 밖에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대정현 돌하르방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위치]
대정현성 돌하르방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인성리와 보성리 일대, 옛 대정현성 성문 주변에 있다.
보성·신평간 도로변 속칭 ‘돗귀동산’에 1기, 보성리 마을회관 입구에 2기, 보성초등학교 입구에 2기, 보성초등학교 정문 안에 1기, 대정성 남문지에 2기, 대정성 동문지[추사기념관 매표소 맞은 편]에 3기, 서문옹성 내에 1기가 있다.
[형태]
돌하르방은 제주목·대정현·정의현 삼읍이 각각 다른 양식을 취한다. 대정현의 돌하르방은 제주목에 비하여는 평면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면 정의현 돌하르방보다는 곡선적이고 온후하며 소탈한 형상을 보인다.
원통형 몸에 둥그스름한 얼굴을 하고 테가 있는 모자[벙거지]를 쓰고 있으며 양손은 마치 온몸을 감싸듯이 배 부위를 감싸고 겸손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눈은 확실히 둥글고 크게 표현되었으며 입은 웃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다소 납작한 느낌을 준다.
남문지에 있는 2기의 돌하르방은 수염인지, 옷주름인지 모를 둥근 테가 조각되어 있고, 남문지의 남쪽 돌하르방과 보성마을회관 남쪽 돌하르방은 두 손을 마주 잡고 있는 형태이다.
[현황]
삼읍의 돌하르방은 모두 48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제주성 돌하르방 1기가 분실되어 지금은 47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중 2기는 1960년대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옮겨져 제주에는 45기가 남아있다. 제주도에 남아있는 45기의 돌하르방 중 대정에는 12기가 전해지고 있다. 돌하르방은 1971년 8월 26일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34호~제2-45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동문지의 동쪽에 있는 2기는 2008년 추사기념관을 재건축하면서 기념관 입구에 있던 것을 옮긴 것이고 서쪽에 있는 1기는 원래 위치에서 뒤로 이동되었다. 좁은 도로변에 있어 지나다니는 차에 의한 훼손이 우려되었기 때문이었는데 실제 동문지 서쪽 돌하르방은 목 부분을 수리한 흔적이 남아있다.
남문지 돌하르방 2기와 보성초등학교 정문 밖 남쪽 돌하르방은 온전한 상태이고 북쪽 돌하르방은 머리부분이 훼손된 것을 시멘트로 붙인 흔적이 남아있다.
서문지의 돌하르방은 보성으로 가는 길가 공터에 1기가 있는데 모자 부분이 일부 훼손된 상태이고 보성마을회관 입구의 돌하르방 2기와 보성리 상동 돌하르방 1기는 보전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대정현성 돌하르방은 정의 지역과 대정 지역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동된 것이 많기 때문에 안내판에 원래의 위치를 밝혀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제주 삼읍성을 지키기 위해 제작된 석상으로 제작 년도와 제작 이유가 분명히 알려져 있다. 그래서 조선 시대 대정현성을 지키던 돌하르방은 지금도 대정 지역민들이 중요시하는 학교 입구, 마을 회관 입구, 추사기념관 입구 등에 세워져 있다.
대정현성의 돌하르방은 제주읍성의 돌하르방이나 정의현성의 돌하르방과는 그 모양과 크기에서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제주읍성의 돌하르방이 제주 지역을 대표하는 석상처럼 인식되면서 대정현성의 돌하르방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므로 관공서나 도로변, 교량, 이정표 등에 대정현 돌하르방 모양을 세워서 대정현성의 돌하르방을 지역의 상징물로 홍보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대정에는 미완성 돌하르방 1기가 전해지는데 그 재질이 다른 돌하르방과 같을 뿐 아니라 모자와 얼굴 모양이 일부 조각되어 있다. 조선 시대 돌하르방 제작이 지역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한 돌하르방이 제작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미완성 돌하르방이지만 사람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으로 옮겨두면 좋은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